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9)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9)화(19/195)
3. 과거의 기억
#16
12년 전 대격변 이후 역사상 단 한 번 등장한 S급 레드-블랙 던전.
대던전.
1203명의 용감한 지원자들이 그곳에 향했다.
그곳의 첫 번째 지형은 용암 지대였다. 포탈은 용암의 강 한가운데로 연결되어 있었고, 당시 진입 선두 그룹이던 윤서는 열기를 느끼자마자 재빨리 실드를 펼쳤으나 한발 늦어 버렸다.
당시에는 전 세계가 몬스터와 전쟁을 하는 중이었고, 인류의 무기는 더더욱 부족한 형편이었다. 그럼에도 지구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각국이 십시일반으로 전차, 장갑차, 자주포 같은 화기를 지원했는데, 그 대부분이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추락해서 녹아 없어졌다. 용기 있게 자원한 수십 명의 지원자들도 던전에 진입하는 순간 허무하게 죽어 버렸다.
크아악!
크악!
시신을 거둘 여유조차 주지 않고 바로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용암 속에서 기어 나온 그것들은 도깨비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리벤저는 포탈 속으로 한 발 내딛자마자 전열을 가다듬을 정신도 없이 무아지경으로 전투를 치렀다. 첫 전투는 수 시간 후에야 끝났다.
그 뒤로는 방어계 헌터들의 실드에만 의존하여 용암 불구덩이 속을 헤매는 나날이 이어졌다. 가장 고생한 이는 윤서였다. 마력이 많고 회복력이 빠른 만큼 다른 이들의 세 배 더 오랫동안 실드를 펼쳐야 했고, 전투 시 실드에만 집중하는 방어계 헌터들과 달리 공격에도 나서야 했다.
가끔 섬을 발견할 때면 윤서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섬은 하루도 못 가 가라앉기 일쑤였고, 윤서는 언제나 마력 고갈 상태에서 무리하게 실드를 사용했다.
단, 윤서의 스킬은 ‘생존’에만 도움이 됐을 뿐이라 ‘공략’에는 큰 진척이 없었다.
‘공략’에 가장 큰 역할을 한 헌터는 바로 이도민이었다.
S급 각성자, 이도민. 그는 서채윤과 같은 열아홉 살이었는데, 서채윤과는 달리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했다. 쇼맨십이 있고, 열아홉 살답지 않은 성숙한 발언들로 인기가 많은 헌터였다.
그리고…… 서채윤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윤서가 대던전 레이드를 결심한 건 이도민 때문이었다.
처음 대던전이 알려지고 레이드 멤버를 구성할 때 윤서는 지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도민이 레이드에 합류하게 됐다고 뻔뻔한 표정으로 말해 와서, 친구 혼자 보낼 수 없었던 윤서도 리벤저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들어온 대던전에서 살아남는 데만 급급한 채로 30여 일이 흐르고, 생존자가 800명대가 되었을 때였다. 이도민이 리벤저의 리더 그룹을 조용히 불러 모았다.
레이드를 이끌고 있는 리더들은 총 다섯 명으로, 이도민, 서채윤, 이강진 그리고 외국인 헌터 두 명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요. 폭발까지 48일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 용암도 탈출하지 못했어요. 분명 여기 말고도 다른 지형이 있을 텐데 이대로면 시간 초과로 폭발해 버리고 말 거예요.”
“우리도 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저한테 방법이 있어요.”
“방법이라면?”
“제게 <사건의 지평선>이란 스킬이 있습니다. 블랙홀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이 공간의 시간을 더는 흐르지 않게 해 주죠.”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줬으면 좋겠군.”
이도민은 근처를 둘러봤다. 사방에 넘실거리는 용암 속에서 손가락보다 작은 ‘용암 벌레’ 한 마리를 낚아채 온 그는 벌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채윤아, 이 벌레한테 <스파크> 좀 사용해 줘.”
윤서는 영문 모른 채 벌레한테 <스파크>를 사용했다. 동시에 이도민도 <사건의 지평선>을 사용했다. 어떤 경계선 같은 게 희미하게 <스파크>와 벌레 주변을 감싸는 게 보였다.
벌레는 작은 벼락에 바로 타 죽어야 하는데, 그 경계선 안에서 벼락은 허공에 멈춰 있었고 벌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윤서와 이강진을 비롯한 사람들이 신기하게 그것을 들여다봤다. 이도민이 설명했다.
“우리 입장에서 이 경계선 안의 시간은 지금 아주 느리게 흐르고 있어요. 거의 멈춰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블랙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사건의 지평선’ 밖에 영향을 주지 못하듯, 이 경계선을 기점으로 내부와 외부의 시공간이 완전히 단절되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거예요.”
이도민은 손을 뻗어 스킬을 해제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난 건 작은 잿더미였다. 윤서는 가면 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른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이미 타 죽어 있는 거야?”
“경계선 밖의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거지. 벌레 입장에서는 아무런 특이한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범하게 시간이 흘렀거든.”
“…….”
“전 이 스킬을 던전에 사용할까 해요. 정확히는 던전 내의 가이아 시스템에. 그래야 폭발까지 남은 시간이 흘러가지 않을 테니까.”
“과연, 그런 거군.”
“그래. 확실히 이해했어.”
사람들이 감탄했다. 윤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을 쓰고 있던 덕분에 어리둥절하고도 청순한 눈망울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이도민 헌터, 이런 스킬을 갖고 있으면 진즉 사용하지 그랬습니까.”
“제 맘대로 사용할 순 없었어요. 우리의 시간은 길어지니까요…. 수년, 혹은 수십 년을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보내야 하는데 그걸 제가 혼자 결정할 수는 없잖아요….”
이도민의 말이 맞았다. 이건 모두가 감당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리더들끼리 결정할 수는 없었다. 이강진은 이걸 모두와 공유했다.
아주 짧은 찬반 토론 후 스킬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78일이라는 주어진 시간 중 벌써 30일이 부질없이 흘러갔으니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날부터 마력 고갈로 반실신 상태가 되는 사람은 윤서 외에도 한 명이 더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