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2)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2)화(2/195)
1. 정체를 숨긴 헌터
#01
세상은 격변했다.
어느 날 세계 곳곳에 기이한 현상들이 생겼고, 동시에 몇몇 사람들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모두 어리둥절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 반투명 창은 무엇인지, 왜 누구에겐 안 보이고 누구에겐 보이는 건지…. 사람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 괴물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왔고, 세계는 빠르게 무너졌다.
아포칼립스라고 일컬어지는 초기 암흑기, 어떤 이들은 지구가 멸망했다고 생각했으나 어떤 이들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황폐해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차츰 상황을 파악하고, 괴물들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정보를 얻어 갔다.
반투명 창이 보이는 이들, 이른바 ‘각성자’들은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 지구상 곳곳에 던전이 생기고 있다는 것과 이 던전을 시간 내에 클리어하지 못하면 그 속의 괴물, 즉 몬스터가 밖으로 범람하거나 던전 자체가 폭발해서 일대를 죽음의 땅으로 만든다는 사실 등. 많은 희생으로 얻은 정보였다.
이 정보를 토대로 몇몇 유능한 이들이 인류의 재건을 위해 앞서 이끌었고, 서로 반목하던 국가들은 이제는 힘을 합쳤으며, 인종과 종교를 떠나 모든 인류가 하나가 되어 몬스터와 싸웠다.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키워 가던 그때, 북극에 던전 하나가 나타났다. 여태까지 존재했던 모든 던전 중 가장 위험한 등급이었고, 클리어하지 못할 시의 폭발 규모는 페름기 대멸종에 버금갈 것으로 추정됐다.
전대미문의 대재앙이 눈앞에 닥친 인류는 슬퍼할 시간조차 없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은 대던전에 들어가겠다고 자원했으며, 각 국가는 핵무기를 포함한 군 장비들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대던전에는 들어갈 수 있는 최대 인원인 1,203명이 입장했다. 사람들은 이 1,203명을 ‘리벤저’라고 불렀다. 선두에 선 이들은 각성자 중 가장 강한 이들 여섯 명으로 꾸려진 다국적 팀이었다. 그 뒤로 여든두 개의 각성자 팀이 따랐고, 후미는 각성하지 않았으나 용감하게 자원한 비각성자들이 맡았다.
1,203명의 영웅, 리벤저가 공략에 나선 후 던전 내부의 일은 알지 못하는 전 세계 사람들은 그저 기도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폭발을 하루 앞둔 날 던전은 클리어되었고, 세계는 멸망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희생은 컸다.
1,203명 중 대던전에서 살아 나온 이는 단 네 명. 그중 한 명이 바로 리벤저의 에이스로 불린 서채윤이었다.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서채윤은 정신을 잃고 다른 이에게 업힌 채 던전을 나왔으며 그날을 기점으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사망했다, 능력을 잃었다, 정신 질환이 생겼다 등 소문은 무성했으나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했다. 서채윤에 대해 유일하게 아는 이들은 입을 닫았고, 사람들 속에서 서채윤은 전설처럼 회자되었다.
그리고 10년 후….
***
오늘따라 햇빛이 쨍쨍하고 바람 한 줄기 불어오지 않았다. 7월 한여름,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주상 복합 주택 옥상에서 두 시간째 땡볕 아래 서 있자니 아무리 체력이 평균 이상인 윤서라도 슬슬 지쳤다. 그냥 일찍 끝낼 걸 그랬나. 윤서는 손부채질하며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목이며 얼굴이며 햇빛에 닿은 부위에 열이 오르고 있었다.
“헌터님!”
마침 진척 상황을 보러 왔던 건물 주인이 후다닥 핸디형 선풍기를 가지고 왔다.
“헌터님, 이거 쓰세요. 많이 더우시죠?”
“이제 거의 다 끝나서 괜찮습니다. 물러나 계세요.”
“예, 예.”
건물 주인이 황송해하면서 옥상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무명 길드 소속이라도 각성자인 이상, 비각성자 민간인의 눈에는 대단한 헌터라 어딜 가든 항상 대접받았다.
윤서는 기초 작업과 방위 계산을 마치고 U패드에 숫자를 입력한 후 계약 이력에서 주소를 찾아 연동했다. 마지막으로 트랩에 손을 대고 마력을 소량 주입하자 팟, 하고 허공에 푸른 구체가 생겼다. 윤서는 재빨리 구체를 위로 올려보냈다. 3m 상공까지 떠오른 구체는 점차 투명해지더니 보이지 않게 되었고, 대신 4층짜리 낡은 건물에 푸른 빛깔의 경계선이 생겼다. 실드가 생성된 것이다.
“오오, 완성됐군요.”
건물 주인이 푸른 경계선에 손을 갖다 대며 신기해했다. 윤서가 설치 완료 인증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하는 동안 경계선은 점점 옅어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충격이 있을 때까지 비활성화 상태로 머무를 터였다.
윤서는 평소 손목에 차고 다니는 U패드에서 반투명 디스플레이를 꺼내 계약서를 띄우고 여전히 감탄에 젖어 있는 민간인에게 다가갔다.
“B등급 실드입니다. 확인해 보시고 여기 서명하시면 됩니다.”
“아, 네.”
건물 주인이 펜을 쥐고 사인을 휘갈겼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군요. 저쪽 빌딩은 여섯 시간 걸렸다던데.”
“건물 규모와 등급에 따라 걸리는 시간도 달라져서요. 우선 계약 내용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 다 알고 있는데.”
“내용 설명이 필수입니다.”
윤서는 디스플레이를 집어넣은 후 U패드를 손목에 다시 채웠다. 건물 주인의 시선이 U패드를 따라왔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스마트 워치 같지만, 밴드에서 반투명 디스플레이를 꺼내 펼 수도 있고, 홀로그램도 띄울 수 있는 이 각성자 전용 단말기는 언제나 비각성자의 관심을 끌었다.
“B등급 실드는 B급 이하의 던전 폭발과 그에 상응하는 충격에서 안전합니다. 신청하신 특약에 따라 실드는 첫 충격 발생 후 세 시간 동안 유지되니 참고하시고, 계약 기간은 1년이며 1년씩 자동 연장됩니다. 실드 트랩 유지 보수는 분기별로 저희 길드에서 사람을 보낼 겁니다.”
“그때도 헌터님이 오십니까?”
“물론 헌터가 옵니다.”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그쪽이 오시는지.”
“아…. 제가 올 확률이 높습니다.”
대형 길드에서는 실드 트랩 관련하여 설치 팀과 유지 보수 팀을 따로 두지만, 윤서가 소속된 ‘낙엽’ 같은 소형 길드는 대부분 대민 지원 팀이라는 이름으로 뭉개 놓는다. 이 대민 지원 팀에서 10년간 일해 온 윤서는 서울 서역을 맡고 있으므로 이곳도 그가 배정받을 터였다.
“그렇군요.”
건물 주인이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윤서는 드디어 뙤약볕 옥상에서 벗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늘진 계단도 덥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옥상보다는 나았다. 계단을 내려가며 건물 주인이 주절주절 쓸모없는 잡담을 늘어놨다.
“제가 사실 실드 계약이 처음이라 걱정 많이 했습니다. 주위 소문 들으니까 시간도 오래 걸리고, 헌터들이 갑질도 한대서 오랜 시간 비위 맞춰 줘야 한다고요. 그런데 소문만 그렇지 시간도 빨리 끝나고 헌터님도 참 착하시네요. 편견을 가졌던 것 같아 반성했습니다, 허허.”
“저희 낙엽 길드원들은 그런 헌터들과는 다릅니다. 앞으로도 낙엽 길드 많이 찾아 주세요.”
“예, 예. 주위에 추천하고 다니겠습니다.”
이 작은 대한민국에서도 하루에만 적게는 30개부터 많게는 100개의 던전이 등장한다. 한국은 헌터 체계가 잘 잡힌 편이라 공략에 실패할 확률은 높지 않은데, 문제는 어쨌든 그 실패 확률이 0%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던전 발생을 감지할 방법이 있다고 해도 전국 전역을 감지하는 건 무리다. 발견했을 때의 던전 제한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아 어쩔 수 없이 클리어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포탈 자체가 너무 작아서 소형화 스킬이나 아이템이 있지 않은 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때문에 몬스터 범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으며, 소규모 폭발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발생했다.
이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10년 전, 한 헌터가 폭발 충격과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 주는 실드 저장 장치인 실드 트랩을 만들었다. 그자는 설계도를 인터넷에 공짜로 뿌렸고, 사람들은 건물 보험을 들듯 너도나도 길드에 의뢰해 실드 트랩을 설치했다. 실드 트랩을 변형한 폭발 트랩, 이동 트랩도 만들어지면서 트랩 사업은 이제 각 길드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되었다.
비각성자 입장에서 실드 트랩은 예측 불가능한 재난으로부터 보호해 줄 단 하나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을 이용해 민간인에게 횡포를 부리는 질 나쁜 헌터들도 존재했다. 그 횡포란 실드 방어력을 계약 기준보다 낮춘다거나 마력 저장량을 줄여서 일찍 내구도를 닳게 한다든가 하는 치사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집주인은 윤서가 그런 갑질 헌터가 아니라서 대단히 만족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