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22)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22)화(22/195)
#19
마지막 지형은 함정뿐만 아니라 잡몹도 많이 출몰했다. 종류도 다양하고, 모두 A급이었다. 용암, 늪, 산과 동굴에 나왔던 놈들은 기본이고, 곳곳에 석상이 놓여 있으면 십중팔구가 몬스터로 변했다. 전갈, 지네, 도마뱀, 박쥐 등 작은 것들까지 전부 A급이라서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되는 곳이었다.
육안으로 발견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것도 있는데, 이것들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 알을 까서 양식으로 쓰거나 아니면 뇌를 파먹고 들어가 그 자리를 자신이 대신했다. 전자의 경우에는 숙주가 죽고 끝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숙주가 몬스터에게 몸을 조종당해 같은 편을 공격하게 된다. 고통도 느끼지 않는지 팔과 다리를 자르고 치명상을 입혀도 움직이므로 반드시 목을 잘라 내야 했다. 이렇게 죽은 이들 중에는 <가이아의 눈> 보유자도 있었다. 이강진은 그의 목을 자르기 전 <가이아의 그림자>로 스킬을 복사했다.
당시 생존 리벤저들은 한 명 한 명이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그들은 바깥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으므로… 서로가 서로에게 더없이 소중했다. 그런 이들의 목을 직접 잘라야 하는 건 큰 고통이었다.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건 전투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으니 바로 굶주림이었다.
늪과 산에는 풀떼기나 과일이라도 있었지만, 신전에는 이끼 말고는 먹을 게 없었다. 그나마 이끼도 독 이끼여서 정화해서 먹어야 했는데, 정화 스킬에 소모되는 마력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굶주리기 직전에야 아주 조금씩 뜯어 먹었다.
신전에서의 사망 원인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건 물론 전투 중 사망이었지만, 굶주림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용암, 늪, 동굴을 모두 이겨 내고 신전에 들어온 생존자 중 111명이 아사했다.
각성자는 낮은 등급이라도 하루 이틀 굶는 걸로는 끄떡없다. B급 정도만 되어도 일주일을 굶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많은 수가 아사할 정도의 긴 시간을 헤맨 것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던전에 들어왔는데, 몬스터와의 전투로 죽는 게 아니라 굶어 죽어야 했던 이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상황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리벤저는 이곳이 마지막 지형이라는 것. 오로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
신전 지형의 보스 몬스터 역시 세 마리였다. 거대 전갈, 지네, 도마뱀 형태가 한꺼번에 등장했는데 이 중 지네 몬스터와의 전투에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
그동안의 보스 몬스터들은 발견하기까지가 오래 걸렸고, 발견 후부터는 길어도 시스템상으로 하루에서 이틀 정도면 처치에 성공했다. 지네 몬스터가 특별히 강했던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아군의 화력 부족이었다.
C등급 이상의 던전 보스는 전투 중 일정 이상의 대미지를 입으면 진화한다. C급은 한 번, B급은 두 번, A급과 S급은 세 번 이상. 이러한 각 단계를 페이즈라고 칭했다.
페이즈가 바뀔 때마다 피해의 절반을 회복하고, 공격 패턴이 전 단계와는 달라지며, 공격력도 급성장한다. 심지어는 1페이즈 때 물 공격을 하던 놈이 2페이즈 때는 불 공격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헌터들 또한 새로운 전술로 상대해야 하고, 필연적으로 공략 기간이 길어졌다.
리벤저는 그동안 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보스 몬스터들을 2페이즈 안에서 처치해 왔다. 페이즈가 전환되기도 전에 압도적인 화력으로 눌러 버린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순차적으로 출몰한 다른 지형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세 마리가 한꺼번에 나왔고, 인원수가 많이 줄어든 지금은 한 명당 소모하는 마력도 많아졌으며, 스킬 쿨타임에 걸려 사실상 무력하게 손 놓고 있는 상태나 다름없는 헌터들이 생겨났다. 아니, 그들을 지키며 싸워야 했으니 방해되는 짐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윤서는 마력을 아끼지 않고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이곳이 마지막 지형이고, 세 번째 보스 몬스터이니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 지네를 처치했다.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 현재 지형 4/4 : 현재 인원 71명 : 폭발까지 25시간
1,203명이 들어왔으나 71명만이 남았다. 너무 많이 죽었다.
생존자들은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저 던전 진입 메시지를 바라보며 얼른 저 메시지가 클리어 성공 메시지로 바뀌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의 앞에 나타난 건 성공 메시지가 아니었다.
크아아아아
공포를 자아내는 커다란 울음소리와 함께 주변 지형이 와르르 무너졌다.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리벤저들이 다수 죽었다. 무너지는 지하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생존자들은 까마득한 크기의 거대 몬스터를 발견했다.
머리와 꼬리가 세 개씩 달린 거대 드래곤이었고, 크기가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몬스터보다 거대하여 하체만 간신히 보일 정도였다.
휘두르는 손가락에 스치기만 해도 사람 몸 같은 건 흔적도 남지 않았으며, 피한다고 하더라도 움직임이 만들어 낸 충격파에 온몸이 으스러졌다. 윤서의 실드에도 금이 갔을 정도이니 수천만 톤급의 위력이었을 것이다.
머리 세 개는 각각 화염, 얼음, 전격을 내뿜었고 그 범위가 광활해서 피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뒤쪽으로 공격하기에도 꼬리들 때문에 쉽지 않았다. 공격력은 상당하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이나 다행히 방어력은 낮았다. A급 이상 공격 스킬로도 가죽을 찢고 살점을 들어낼 수 있는데 회복력은 또 좋아서, 한번 공격할 때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공격을 퍼부어야 했다.
머리 하나를 잘라 낼 때마다 페이즈가 바뀌었다. 머리 세 개를 동시에 잘라 낸다면 마지막 페이즈 없이 죽일 수 있었겠지만 공격력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그러지 못했다.
이 열세 번째 놈이 최종 보스라는 어떤 직감이 든 리벤저들은 목숨을 걸고 공격했다. 윤서도 마찬가지였다. 힐러들은 마력 회복 스킬을 쏟아부으며 윤서를 지원했다.
“나는 치료하지 마. 서채윤에게 치유 스킬을 사용해!”
“서채윤에게 마력을 써. 서채윤만이 희망이야.”
“서채윤을 살려 내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리벤저는 그들이 살아날 기회를 포기하고 서채윤에게 치유 스킬을 양보했다. 치유 스킬 보유자들 또한 죽어 가는 이들을 내버려 두고 서채윤을 치유했다.
세 번째 페이즈에 들어섰을 때, 마침내 윤서에게 상태 이상이 생겼다.
상태 이상 : 치유 스킬 내성
남은 시간 : 796,999시간 59분 59초
이런 상태 이상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한계가 생겨 버린 마력으로 윤서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효율을 내야만 했다.
당시 생존한 소수의 리벤저 중에서 윤서의 공격력이 가장 강했다. 가장 강했던 이강진이 <사건의 지평선> 때문에 이렇다 할 스킬도 사용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먼 곳에 숨어 있어야만 했으므로 선두에 서서 몬스터를 공격할 사람은 윤서밖에 없었다.
치유 스킬이 통하지 않아 회복되지 않는 신체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윤서는 눈앞이 가물가물한 상태로 햅쌀이를 휘두르면서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을 들었다.
“채윤아, 실드 스킬을 사용하지 말고 공격해!”
“우리를 보호하지 마. 그 마력으로 보스를 공격하란 말이야!”
그건 죽음을 앞둔 순간에 뼈를 깎는 심정으로 온 힘을 다해 뱉어 낸 외침이었다.
나를 보호할 필요 없으니 던전을 클리어해.
우리는 평화를 위해 기꺼이 죽겠어.
윤서는 그들이 ‘숭고한 희생’을 하게 두고 싶지 않았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그들의 마지막 말을 따랐다. 그들을 보호하고 있던 실드를 해제하고 남은 마력을 공격 스킬에 쏟아부었다.
마침내 마지막 머리를 절단했고, 보스는 절명하며 뒤로 고꾸라졌다. 보스 몬스터의 시체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윤서는 모든 마력을 소진하여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그런 윤서를 이강진이 받아 냈다.
“전부 끝났어….”
“이제 나갈 수 있어.”
살아남은 이들이 둘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제 던전 클리어 메시지가 뜨고 출구 포탈이 나타날 것이다.
윤서는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들려오는 목소리 수가 왜 이렇게 적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모인 생존자는 윤서와 이강진을 포함해 5명이었다.
윤서는 이강진의 품 안에서 조금 더 상체를 들었다. 사방에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보이는 모든 게 다 시체들이었다.
산 사람은 다섯 명뿐이었다.
지구는 안전해졌다.
여기 있는 다섯 명은 살아서 던전을 나가 깨끗한 곳에서 치료받고, 인류의 영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인류를 지키기 위해 몬스터와 전투하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윤서는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희생과 죽음과 삶. 모든 게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가이아 시스템의 숨겨진 비밀이 등장했습니다.
스킬 <관측자의 검>이 발동합니다.
<관측자의 검>이 가이아 시스템의 마지막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눈앞에 떠오른 것은 던전 클리어 메시지가 아니라 또 다른 던전의 발생을 알리는 절망의 문장이었다.
***
심한 두통 때문에 잠에서 깬 윤서는 아침 스트레칭을 포기하고 대신 침대 위에서 끙끙 앓았다. 오랜만에 ‘선택된 자’를 봤기 때문일까. 권지한의 시스템 프로필을 열람한 순간부터 계속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싶더니 결국 대던전 꿈을 꿨다. 윤서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늘 머리맡에 두는 진통제 병을 열어 약을 한 움큼 삼켰다.
약효가 돌고 몇 분이 지나자 두통이 가셨다. 윤서는 오늘은 정말 아침 식사고 뭐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일어났다.
식사하면서 무심코 핸드폰을 들었다가 낙엽 길드 채팅창이 떠들썩한 걸 발견했다. 윤서는 벌써 300개 이상의 메시지가 쌓인 채팅창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천천히 읽었다.
가장 첫 글은 석영이 최강의 정예들로만 이루어진 공격대의 결성을 공식 발표했다는 기사 링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