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23)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23)화(23/195)
#20
1팀은 S급 다섯 명, 2팀은 A급 25명으로 구성된 이 공격대는 앞으로 A급 옐로우 이상의 던전을 책임질 거라는 것, 최근 진흙 속 진주들을 발굴해 임시 팀을 결성했다는 것과 이 임시 팀에서 테스트를 통과한 소수가 정예 팀에 추가될 거라는 설명이 나와 있었다.
팀 이름과 명단 등 그 외의 정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헌터 네임 헬파이어 홍의윤이 임시 팀의 멤버이고, 정예 팀 이름은 퍼펙트일지도 모른다는 걸 기사가 뜬 지 2분 만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HELLHONNG
퍼펙트….
#새로운 시작
홍의윤이 SNS에 자기 집 발코니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셀카와 함께 올린 글 때문이었다. 그 작은 찻잔에 들어있는 게 차가 아니라 에스프레소라는 걸 어떻게 알았냐면, 누군가의 차 추천해달라는 댓글에 홍의윤이 ‘에스프레소입니다.’라고 직접 답글을 달았기 때문이다.
SNS 업로드 후 석영의 어떤 언질이 있었던 건지, 홍의윤은 몇 분이 지나 문구를 수정했다.
HELLHONNG
보석은 진흙 속에서도 빛나기 마련….
#새로운 시작
진흙 속 진주라는 표현이 퍽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에 질세라 멸하는 자와 세정 길드에서도 그들 길드원이 임시 팀의 일원이 되었다고 기사를 내보냈다. 멸하는 자에서는 김진해의 얼굴까지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세정은 아예 공식 계정에 대문짝만하게 ‘페이지 헌터 임시 팀 합류’라는 글과 함께 이정인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러니 호들갑 좋아하는 낙엽 길드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단체 채팅 창은 이미 윤서가 대스타가 된 것처럼 난리였다. 윤서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우선 석영에 오늘 출근을 미루겠다고 통보하고, 바로 낙엽 길드로 향했다. 대민 지원 팀, 던전 공략 팀은 자리를 비웠고 경영 지원 팀 사람들만 있었다. 바로 그 경영 지원 팀이 방문의 목적이었다.
“팀장님.”
“앗, 윤서 씨!”
경영 지원 팀 팀장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윤서를 반겼다.
“어서 와요.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아, 일단 축하한단 말부터-.”
“신상 공개 안 합니다.”
신나 죽으려는 표정의 경영 지원 팀 팀장에게 윤서는 표정을 싹 굳히고 찬물을 끼얹었다.
“절대 내 신상 공개하지 마세요. 절대로. 절대. 인터뷰도 안 합니다. 얼굴 안 나오는 지면 인터뷰도 무조건 거절하세요. 이미 길드장과도 얘기 끝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윤서 씨. 이게 어떤 기회인데!”
팀장이 세상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처럼 경악했다.
“제 성격 알잖아요. 전 조용한 게 좋습니다. 어차피 임시 팀 테스트에서도 탈락할 거고요.”
“탈락할 테니까 그 전에 뽕을 뽑아야죠. 우리 낙엽의 이름을 널리 알릴 기회란 말이에요.”
“이제 우린 석영입니다.”
“맨날 나뭇잎이니 이파리니 하던 레인보우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 줄 수 있다고요. 그 석영 정예 팀의 후보가 낙엽 길드원이라는 걸 알려 주면 얼마나 배 아파 죽겠어요?”
“본때를 보여 줄 기회는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앞으로도 있겠지, 하고 10년을 참았어요. 이제 더는 못 참아!”
“팀장님은 입사한 지 이제 5년 됐잖아요.”
“내 영혼은 길드 창단 때부터 함께했어요!”
팀장은 주장을 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윤서는 이렇게 나올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다.
스킬 <거짓 기억>을 사용합니다.
“제가 임시 팀이라는 걸 외부에 알리지 마세요. 레인보우 길드에는 이미 복수했잖아요. 그리고 외부에 밝힌다고 해도 큰 화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죠.”
“흐윽…. 네, 그래요. 그럼….”
<거짓 기억>은 가벼운 암시도 걸 수 있는 스킬이다. 이런 식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스킬에 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팀장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주절거렸다.
“헌터넷 영상 인터뷰 촬영이랑 화보집 촬영 취소해야겠네요. 지면 CF 촬영도…. 인터뷰 12개 잡아 놨는데…. 윤서 씨 영입 일화를 담은 낙엽 길드 에세이도 내고 영화로도 만들 생각이었는데….”
“…….”
뉴스 뜬지 두 시간 만에 참으로 엄청난 행동력이었다. 윤서는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고민 없이 <거짓 기억>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대화가 일단락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윤서를 따라 팀장도 일어났다. 그는 윤서를 배웅하면서 물었다.
“그나저나 윤서 씨, 던전 괜찮겠어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잖아요. 정예 팀 선별 테스트라면 낮은 등급도 아닐 텐데 크게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되네요.”
“어쩔 수 없죠. 이제 와서 빠질 수도 없고.”
가볍게 대답했으나 사실 가벼운 문제는 아니었다. 가능성은 낮지만 던전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번 던전 진입은 임시 팀에서 빠질 좋은 수단이기도 했다. 윤서는 차라리 던전에 들어가서 최선을 다해서 못할 생각이었다.
아무 데도 안 다치고, 활약도 안 하는 것. 이게 이번의 목표였다.
***
임시 팀은 석영의 지하에 마련된 전용 트레이닝 룸에서 개인 훈련을 진행했다. 권지한도 동반하고, 팀원들의 능력치가 이미 검증되었으며, 공략의 목적이 테스트에 있기 때문에 팀 훈련은 따로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힐러인 김진해를 제외하고 스킬 위력을 테스트해 봤는데, 가장 두각을 드러낸 이는 단연 홍의윤이었다. 홍의윤은 그리 크지 않은 체구임에도 힘이 좋았고, 몸이 민첩하고 날쌨다. 화염 스킬 또한 파괴적인 위력을 자랑했다. 박강은 의외로 몸을 잘 쓰는 타입이었고, 남궁심해는 센스 있는 스킬 운용 능력을 보였으며, 이정인은 공격과 방어의 밸런스가 맞았다. 단, 화심은 이렇다 할 능력을 보이지 않았다.
‘화심을 제외하면 확실히 원석으로 손꼽힐 만하네.’
표정은 무심을 가장했지만, 속으로는 거듭 감탄했다. 이렇게 강한 사람들을 발굴해 낸 것도 놀랍고, 이렇게 강한 이들이 10년 전에도 있었다면, 이라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윤서는 가장 마지막 차례였다. 그는 딱 B급 수준의 실드를 만들어 보여서 지켜보는 이들의 기대감을 대폭 낮췄다. 전력을 살펴보러 온 석영 간부들이 돌아가고, 기분 좋아진 윤서가 승리의 미소를 짓는 그때였다.
“저… 윤서 헌터.”
“네.”
그에게 말을 걸어 온 이는 더벅머리 뿔테 안경 박강이었다. 그는 커다란 덩치를 구기고서 윤서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 제, 제가 사실….”
“…….”
“제 헌터복이…. 하, 하, 한복인데….”
“한복?”
“개, 개량, 개량 한복, 그냥 한복, 아니고, 개량 한복…이에요. 미, 미리 알아 두셔야… 하, 할 것 같아서…….”
박강이 겁에 질려서 외쳤다.
윤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 더벅머리가 왜 그의 헌터복이 개량 한복이라는 사실을 겁에 질려서 말하고 있는지.
“유, 윤서 헌터가 하, 한복을… 몹시 싫, 싫어한다고 들어서….”
“아.”
“고, 공략 날. 제 복장을 보고… 노, 놀라실까 봐.”
“저 한복 안 싫어합니다.”
박수빈이 윤서를 매국노로 매도하는 자리에 박강도 함께 있었다는 게 기억났다. 윤서는 얼른 해명했지만 박강은 들어 먹는 눈치가 아니었다.
“시, 싫어할 수도 있…고…. 사,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고.”
“아뇨. 한국인은 한복 싫어해서는 안 되죠.”
“하, 하지만 윤서 헌터는 싫어….”
“안 싫어한다고요.”
“…….”
“한복만이 지닌 아름다움을 늘 사랑하고 있으니, 개량 한복이든 그냥 한복이든 갓이라도 쓰든 편하게 입고 오십시오.”
“네, 네…. 가, 감사합니다.”
박강이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윤서는 박강과 헤어진 후 바로 박수빈에게 당신 때문에 내가 매국노 의심을 받고 있지 않으냐고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 대화를 나눈 날 이후로는 박강이 따로 말을 걸어 오지는 않았다. 한 번 더 말을 걸면 핸드폰에 저장한 한복 앨범을 보여 주려고 했기 때문에 유감이었다.
어영부영 며칠이 흘러 금요일이 되었다.
그동안 윤서는 지하 수련장에 출퇴근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종종 고위 간부들과 함께 임시 팀의 훈련을 지켜보다가 가는 유준철의 시선이 주로 화심이나 김진해에게 머무른다는 것.
윤서는 그 점이 이상했다.
‘왜 화심과 김진해한테 흥미를 갖는 거지?’
가장 강한 자는 누가 봐도 홍의윤인데, 왜?
석영 길드장은 강한 헌터들로만 꾸려진 정예 팀을 만들 거라고 했다. 권지한의 <가이아의 눈>으로 모두의 시스템 프로필을 봤다면, 홍의윤이 가장 강하다는 것과 화심이 평범한 C급 헌터라는 것도 알았을 텐데 왜 화심을 주시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진해야 좋은 치유 스킬을 갖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나는 서채윤을 찾기 위해 석영에 왔다.’
불현듯 합병식 연회 때 들었던 남궁심해의 말이 떠올랐다. 서채윤을 찾기 위해 석영에 들어온 남궁심해는 임시 팀 합류를 고분고분 받아들였다. 이건 대체 무슨 뜻인가.
윤서는 이 임시 팀이 퍼펙트라는 정예 팀을 꾸리기 위한 중간 단계라는 목적 외에도, 무언가 더 있을 것 같다는 꺼림칙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
콧수염
윤서야 시간 나면 들러~ 우리 딸이랑 통화도 좀하고^^
오후에 콧수염 아저씨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마침 퇴근하려던 윤서는 이 아저씨과 대화를 해 봐야겠다고 판단했다.
지금 그쪽으로 올라가도 돼요?
콧수염
87층이다. 비서들 자리 비웠으니까 그냥 바로 들어오면 돼
윤서는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87층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는 복도가 나왔다. 개미 한 마리 없는 복도인데 윤서는 왠지 모를 한기를 느끼고 팔뚝을 쓸었다.
아저씨의 말대로 비서들 자리로 보이는 이사실 앞은 비어 있었다. 윤서는 노크도 하지 않고 벌컥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