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30)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30)화(30/195)
#26
김진해의 주위로 회색 원이 파동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잠시 후 김진해는 한 곳을 가리켰다.
“저쪽에 세 마리 있고, 크기가 꽤 큽니다. 하나는 비행 능력도 있는 것 같네요.”
“좋네.”
홍의윤이 엑셀을 밟았다. 이제 싸울 생각에 신난 얼굴이었다. 조수석의 이정인이 물었다.
“두 분, 가이아 시스템한테서 아이템 선물 받았죠? 어때요? 쓸모 있는 것 같아요?”
김진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특성과는 상관없는 것 받았어요. C급 아이템 ‘황혼의 잡탕찌개’ 엄청 매운 찌개라네요.”
“하하, 싫어하는 사람한테 선물 주면 딱이겠네요.”
김진해가 홍의윤을 힐끔 쳐다봤다.
“가질래?”
“죽고 싶냐?”
“왜, 매운 거 못 먹어? 머리카락은 새빨간데 맛은 아기 입맛인가 봐.”
“그딴 도발이 통할 것 같냐. 생각이 존나 멍청한 게 힐러답네.”
“윤서 씨는 뭐 받았어요?”
홍의윤과 김진해 사이에서 다시 파지직 전기가 튀는 와중에 이정인이 질문을 건넸다.
“아, 저도 별거 아닙니다.”
“궁금한데 뭔지 말 좀 해 주세요. 아이템 이름은요?”
“너무 별로라서 다시 보기도 싫군요.”
“숨기는 게 더 수상한데요.”
이정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윤서는 어깨만 으쓱했다. 선물 따위 받지 않았다. 받은 거라곤 모두에게나 준다는 사용 설명서뿐이다. 애초에 그의 첫 던전 진입은 11년 전이었고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그때는 아이템 선물 따위도 없었는데, 정말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
크아아아아.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몬스터의 괴성도 선명해졌다. 이젠 슬슬 윤서도 긴장했는데, 몬스터 때문이 아니라 옆자리의 김진해 때문이었다. 던전이 처음인 그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홍의윤과의 티격태격도 더는 없었고,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스킬 <인류 도감>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시스템 프로필을 열람합니다.
인류 도감 : 김진해, 27세, 남성
등급 : C급
특성 : 치유사
(봄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스킬 : <생존 가치> C. <생명 반응> C, <봄의 노래> D
고유 스킬 : <소생하는 봄> A
∗ 그 외 스테이터스를 열람하시겠습니까?
체력 980/1001
마력 2600/3100
‘체력이 이게 뭐야. 완전 아기잖아….’
윤서는 뼈와 가죽만 남은 손주를 보는 할머니 같은 시선으로 김진해의 상태 창을 딱하게 바라봤다. 사실 김진해의 마력은 C급치고는 아주 많은 편이었으나 윤서에게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연약해 보일 뿐이었다.
‘이렇게 연약한 데다가 힐러잖아. 힐러는 항상 예민하지.’
대격변 당시부터 활동했지만, 성격이 예민하지 않은 힐러는 딱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 바로 박수빈. 박수빈은 좀 수더분하면서도 능글맞은 면이 있는 남자였다. 하긴 그랬기에 첩자 역할에 제격이었는지도 몰랐다.
만날 때마다 눈웃음 살살 치면서 곁을 맴돌았던 게 다 서채윤인지 아닌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는 건 괘씸했지만, 지금 말 없는 남궁심해와 극도로 소심한 박강 사이에서 고생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끼에에에에!
“놈들이 이쪽을 발견했다. 모두 내려.”
차가 급정거했다. 다급히 내리자마자 홍의윤이 길드 아공간으로 차를 집어넣었다. 집어넣는 것도 아공간 사용이라고 길드 경험치가 소모됐다.
콰왕, 차가 있던 자리에 진흙 덩어리가 와서 박혔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차가 파괴되었을 것이다.
“두 마리네?”
집채만 한 부리를 가진 새 몬스터와 말의 하체에 사자의 머리를 한 몬스터였다.
“분명 세 마리였습니다. 어디 숨어 있는 모양이에요.”
“글쎄, 네 스킬이 존나 엉망일지도 모르지.”
“믿든 말든 맘대로 해. 어차피 내 말 안 믿어서 손해 보는 건 싸우는 당신을 테니까.”
홍의윤과 김진해가 서로를 노려봤다.
<보호하는 베일> 내구도 90/100
그사이 거조가 내뱉은 불덩어리가 실드에 맞고 폭발했다. 본래 B급 실드면 내구도가 50%만 남아야 했는데…. 윤서가 몬스터들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이들에게 건 보호 실드를 강화하는 바람에 10%만 깎였다.
이들이 조금 다쳐도 어차피 포션과 치유 스킬로 금방 나을 거라는 걸 알지만, 대던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윤서는 눈앞에서 누군가 다치는 걸 보는 게 싫었다.
콰앙-!
새가 날갯짓으로 강한 바람을 일으켜 실드를 공격했다. 내구도가 실시간으로 깎여 나갔다. 이정인과 홍의윤은 던전을 숱하게 드나든 경력자로서 B급 헌터의 <보호하는 베일>이면 이 정도 공격으로 어느 정도 내구도가 깎이겠구나 예상한 수치가 있었는데, 윤서의 실드가 기대를 상회하자 다소 놀랐다.
“실드가 튼튼하니 일단 주위를 경계하면서 두 마리 먼저 해치우죠. 저는 비행 스킬이 없는데, 홍의윤 헌터가 새 몬스터를 처리해 줄래요?”
이정인이 홍의윤에게 부탁했다.
“저것쯤이야 간단해.”
“말 몬스터는 제가 최대한 방어할게요.”
“빨리 끝내고 도와주지.”
홍의윤이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냈다. 기다란 창이었다. 홍의윤은 창의 양 끝에 불덩어리를 맺고서 날아올랐다.
이정인은 말 몬스터와의 거리를 가늠하며 말했다.
“윤서 씨, 저는 공격계가 아니라서 간신히 방어하는 정도예요. 아직 한 마리의 행방을 알 수 없으니…. 힐러 보호가 최우선입니다.”
“알겠습니다.”
윤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인이 바닥을 박차고 말 몬스터에게 향했다. 콰앙, 퍽, 끄에에엑. 무시할 수 없는 소리가 위에서도 앞에서도 들려왔다.
“분명 세 마리였는데…. C급 스킬이긴 하지만 틀렸다면 가호 신께서 계시를 줬을 거예요.”
“다시 스킬 못 씁니까?”
“쿨타임이 한 시간이라.”
김진해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헌터들의 스킬 재사용 시간은 천차만별인데, 위력이 강한 고유 스킬의 경우에는 한 시간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재사용 시간을 줄여 주는 아이템이나 스킬을 가진 헌터는 인기가 많았다. 보통 보조계 헌터들이 재사용 시간 단축 스킬을 가졌는데, 이 임시 팀에는 공교롭게도 그 스킬 보유자가 없었다.
김진해는 초조한 낯으로 홍의윤과 이정인을 번갈아 쳐다봤다. 두 사람이 다친다면 곧장 치유 스킬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었으나 윤서의 실드 스킬이 꽤 버티고 있었다.
“윤서 씨는 실드 재사용 시간이 얼마나 돼요?”
“걱정할 정도로 길지는 않습니다. 김진해 헌터의 치유 스킬 재사용 시간은요?”
“<봄의 노래>는 마력이 허용하는 한 계속 사용 가능하지만 더 강한 스킬은 이틀에 한 번밖에 사용 못 해요.”
“그렇군요. 걱정 마세요. 제가 계속 실드를 사용할 테니까.”
윤서는 김진해가 너무 긴장하고 불안해해서 약한 척하는 것도 잊고서 안심시켰다.
김진해에겐 이곳이 첫 던전이니 겁에 질리는 게 당연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윤서가 아니라 서채윤이라는 걸 알았어도 긴장할 터였다.
윤서는 그들로부터 5m 떨어진 곳의 땅을 바라봤다.
그는 사실 세 번째 몬스터가 발밑에 있다는 걸 이곳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웜 형태로 꽤 크기가 컸으며, 지금은 숨어서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홍의윤’이 스킬 <이터널 헝거>를 사용합니다.
‘홍의윤’의 공격력이 향상됩니다.
몬스터가 겁에 질렸습니다.
‘홍의윤’이 스킬 <마그마 임팩트>를 사용합니다.
‘홍의윤’이 스킬 <불의 고리>를 사용합니다!
홍의윤이 불에 휩싸인 창으로 몬스터의 날개를 찔렀다. 날갯죽지가 주욱 찢어지며 새가 괴성을 내질렀다. 몸부림치던 새의 발톱이 홍의윤에게 닿았으나 <보호하는 베일>로 인해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쿨타임을 줄여 주는 아이템을 덕지덕지하고 있나 보군. 마력 포션도 충분하니 홍의윤은 걱정 없어.’
성격은 안 좋긴 하지만 확실히 이런 전투에서는 신뢰할 만한 강한 헌터였다.
윤서는 이정인 쪽을 바라봤다. 이정인의 무기는 채찍이었는데, 꽤 고전하고 있었다.
인류 도감 : 이정인, 28세, 남성
등급 : B급
(아이템 ‘펠트 이어링’ 사용으로 스킬 성공률이 증가합니다)
특성 : 인형술사
(얼굴 없는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만들어진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스킬 : <팬터마임> B, <조련> A
고유 스킬 : <삐에로의 가면 뒤> B, <꼭두각시 인형> S
∗ 그 외 스테이터스를 열람하시겠습니까?
체력 4891/6100
마력 2046/2980
갖고 있는 스킬들이 등급은 좋았으나 확실히 공격 특화는 아니었다.
‘이정인’이 아이템 ‘더미 인형’을 사용합니다.
크아아아!
이정인과 똑같이 생긴 형체가 등장했다. 더미 인형은 보조개 달린 웃음을 지으며 가시 달린 채찍으로 몬스터를 후려쳤다. 괴성을 지르며 인형에게 달려드는 몬스터의 뒤쪽에서 이번엔 진짜 이정인이 공격했다.
공격력이 약해 치명상은 입힐 순 없지만 홍의윤이 올 때까지 시간 끄는 정도는 충분히 할 것 같았다.
문제는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는 웜이었다. 이 커다란 벌레가 주시하는 대상은 이 중에서 이정인이었는데 이정인은 웜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죽음의 신이 전투를 종용합니다.
생명의 신이 멀리 피하기를 권합니다.
‘깜짝이야.’
아직 신들의 계시에 익숙하지 않은 윤서가 얼른 로그를 치워 버리고 김진해에게 말했다.
“김진해 헌터, 이곳을 벗어나지 마세요.”
“네?”
스킬 <보호하는 베일>을 사용합니다.
윤서는 김진해의 주위로 넓게 보호막을 펼쳐 줬다. 김진해는 당황스러운 듯했다.
“유, 윤서 씨는 어디 가려고요?”
“저는 이정인 헌터를 도와야겠습니다.”
윤서는 김진해가 뭐라 말하기도 전 보호막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