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34)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34)화(34/195)
#29
“하, 그럼 이젠 어떡하냐. 간파 스킬도 안 통하고, 능력 쓰고 있을 때 현장 검거할 수도 없고.”
“어차피 ‘저 사실 존나 세요’ 하고 자백하길 바랐던 것도 아니잖아. 저놈이 정체를 숨긴 S급 각성자든, 서채윤이든. 써먹을 수 있는 능력자라면 써먹으면 그만이지.”
한참 이마를 짚고 한숨만 쉬던 유준철이 고개를 들고 권지한을 쳐다봤다.
“너 그 말은 윤서를 바로 퍼펙트에 들이라는 뜻이냐?”
권지한이 입술 끝을 삐뚜름하게 올렸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서도 우리는 알지 못하는 스킬을 사용해 70% 지분율을 만들어 냈는데 테스트가 더 필요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스킬이 아니라 진짜 아이템이었던 거면? 정말로 운 좋게 첫 던전 선물로 S급 아이템을 얻은 거였을 수도 있어.”
“‘작작 좀 해라’. 누가 봐도 저놈이 방금 생각해 낸 이름이잖아. 형, 작작 좀 해.”
“가이아 시스템 네이밍 센스 원래도 형편없어. 가미라 헌터 무기 아이템 이름을 봐. ‘붉은 거인의 검’이잖아.”
“붉은 거인의 검이라니 있어 보이고 괜찮은데요?”
둘 옆에 앉아서 윤서에게 열심히 간파 스킬을 사용 중이던 헌터가 끼어들었다. 유준철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미라 헌터 무기는 노란색 활이란 말이야.”
“…….”
간파 스킬 헌터가 다시 고개를 내리고 취조실 상황에 집중했다.
유준철은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투둑, 툭 두드렸다.
“퍼펙트는 정말 고르고 골라 만든 정예 팀이야. 앞으로 그 팀이 공략할 던전들은 모두 S급 던전들이고, 10월에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너도 알잖아. 검증 없이 들여보냈다가 죽을 수도 있어.”
“알겠는데 그럼 저렇게 잡아떼고 있는 놈을 어떻게 검증할 건데? 존나 답답하게 굴고 있어.”
권지한이 미간을 구겼다. 하지만 그도 유준철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퍼펙트는 조만간 일어날 어떤 일을 대비해 만든 지구 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S급으로만 이루어진 1팀과 A급만 이루어진 2팀을 다 합쳐도 서른 명밖에 안 되지만 그 화력은 한 도시도 하룻밤 만에 뚝딱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대로 윤서를 검증 없이 퍼펙트에 들이고 S급 던전에 진입했다가 사실 뭣도 없는 약한 각성자임이 밝혀지면 저자를 보호하며 싸워야 하는데, 그런 던전에서는 누군가를 보호하며 싸우는 게 불가능했다. 권지한은 윤서가 강하다고 확신하지만, 유준철은 그 확신이 없으니 길드장으로서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면서도 답답한 권지한은 콧잔등을 잔뜩 찌푸린 채 윤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스물아홉 살이라기엔 지나치게 어려 보이는 미인은 ‘작작 좀 해라’라는 표정으로 취조당하고 있었다.
스킬 <가이아의 눈>을 사용합니다.
혹시나 해서 다시 간파 스킬을 사용하자 윤서의 눈동자가 S급만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떠오른 프로필 창엔 역시 검은 네모가 가득했다. 어떤 스킬로 방어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아까부터 펼치고 있는 <명왕의 밤>에는 다른 헌터들의 스킬만 잡힐 뿐 윤서가 뭔갈 사용했다는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S급이 분명해. 괜히 하급 던전 보내서 검증할 생각하지 말고 날 믿어.”
“…….”
유준철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서는 결국 입술을 뗐다.
“그래, 알겠다. 윤서는 퍼펙트 1팀에 들이도록 하지.”
“현명한 선택이야, 형.”
권지한이 언제 찌푸렸냐는 듯 씨익 웃었다. 그의 회색 눈은 흥미로 반짝거렸다.
얼른 싸우고 싶다.
어떤 모습으로 싸울지, 어떤 새로운 스킬을 사용할지, 얼마나 강한지 궁금하다. 저 심드렁한 표정이 패배로 인해 일그러지는 모습도 보고 싶고, 얼마나 오래 버틸지도 궁금했다. 다른 S급들은 너무 쉽게 패배를 인정해서 재미가 없었는데 윤서는 그들보다 강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이아의 눈>을 이렇게까지 방어한 사람은 저 남자가 처음이니까. 다른 S급들은 깨진 글자가 이렇게 많지 않았다.
유준철이 취조실 안 헌터들에게 이제 심문을 끝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앞의 마이크 버튼을 누를 때였다.
– 윤서 헌터.
권지한이 불쑥 마이크를 빼앗고는 윤서를 불렀다. 갑자기 울려 퍼지는 낮은 음성에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유준철은 물론이고 취조실 안의 윤서 또한 동그래진 눈으로 그에게는 거울일 이쪽을 바라봤다.
– 우리는 렌즈 카메라를 통해 당신이 스킬을 사용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당신이 S급 헌터라는 것도, 공격력 강화 고유 스킬을 가졌다는 것도 전부 드러났으니 순순히 협조하길 바랍니다.
권지한이 미끼를 던졌다. 유준철이 조마조마한 시선으로 권지한과 윤서를 번갈아 쳐다봤다.
권지한 또한 입꼬리를 올린 채 윤서를 주시했다.
그때 윤서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렌즈 카메라를 통해 확인했다고?’
던전 진입 전 매니저는 렌즈 카메라에 시스템 창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이 없더라도 당연히 보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현재로서는 각성자 본인이 허용하지 않는 한 시스템 창은 타인이 볼 수 없으니까. 스킬이나 아이템을 이용해 타인이 허가 없이 볼 수 있는 건 시스템 프로필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만약 저는 모르는 무언가 신기술로 만들어진 렌즈였다면? 혹은 ‘최대 공로자’처럼 그 사이 던전 내 시스템에 변화가 있었다면?
‘아니야. 내 시스템 창을 봤다면 내가 서채윤인 걸 눈치챘을 테고, 그럼 이런 반응일 리가 없어.’
게다가 윤서가 사용한 <해치의 야성>은 공격력 강화 스킬이 아니라 몬스터 방어력 약화 스킬이었다. 어떻게든 떠보려고 그럴듯한 말로 꾸며 내는 게 분명했다.
– 윤서 헌터.
권지한일 게 분명한 음성이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
– 우리는 당신의 비밀을 압니다. 원한다면 당신이 S급 헌터라는 건 우리만 알고 세상에는 숨기도록 하겠습니다.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우리도 돕겠다는 겁니다. 피차 시간 끌지 말고 털어놓으시죠.
“…제 시스템 창을 봤다고 했습니까?”
윤서가 거울을 보며 물었다.
– 렌즈에 담긴 영상을 모두가 확인했습니다.
윤서는 그 발언을 들으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스킬 <확신의 저울>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발언을 판단합니다.
상대가 판단을 거부했습니다.
‘무슨…!’
윤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확신의 저울>은 S급 스킬이고, 윤서는 스킬 등급 업 아이템을 사용 중이었다. 그런데 권지한은 S+급의 스킬을 거부한 것이다.
‘어떻게…. 분명 권지한의 L급 스킬은 <가이아의 눈> 하나였는데. <가이아의 눈>은 스킬 방어 능력은 없어.’
말도 안 되는 현실에 심장까지 요동쳤다. 그때 취조실 문이 벌컥 열리며 신난 얼굴의 남자가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다.
“왜, 내가 거부해서 놀랐어?”
권지한의 등장에 취조 헌터들이 벌떡 일어났다. 성큼성큼 다가온 권지한은 그들의 의자를 빼앗아 앉고는 윤서의 얼빠진 얼굴을 구경했다.
“이해해. 누가 네 스킬을 거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겠지. S급이란 건 본래 그렇게 오만한 족속들이거든. 아무리 정체를 숨겼다 해도 결국 너도 오만한 S급이라는 거야.”
“…….”
“<확신의 저울>이라…. 상대 발언의 진위를 가려내는 스킬인가? 아무튼 나한텐 통하지 않았고 너는 스킬을 들켰어. 이제 머리는 그만 굴리고 정체를 밝혀.”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대화하는 건 처음이었다.
권지한은 윤서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는 소리를 즐겁게 들었다. 그의 심장 또한 싸움 상대를 만났다는 직감에 쿵쿵, 박동했고 윤서에게 고스란히 들리고 있었다.
권지한이 입술을 비스듬히 올리며 물었다.
“너… 서채윤이야?”
“…….”
윤서는 긴장감에 피부가 찌릿찌릿했다. 이곳을 둘러싼 공기가 밀도 있게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권지한. 고작 스물두 살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헌터라는 타이틀을 얻은 S급 헌터.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잘생긴 얼굴이었는데 치켜 올라간 눈매는 당장이라도 전투에 돌입할 것처럼 호전적이었다. 우락부락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어깨가 넓고 키가 커서 그런지 앞에 이렇게 앉아 있으니 압박감이 들었다.
윤서는 언젠간 권지한과 단둘이서 대화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그가 가이아 스킬을 갖고 있는 선택된 자인 한, 언젠가는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윤서는 딱딱하게 굳었던 표정을 느슨히 풀었다.
“갑자기 서채윤이라니요? 저는 서채윤 헌터가 아닙니다.”
“그럼 왜 S급이라는 걸 숨겼어?”
“스킬 하나를 숨기고 있었던 건 맞지만 저는 S급도 아닙니다.”
“거짓말은 그만하라니까. 시간 낭비야.”
“간파 스킬을 이용해서 프로필을 보면 바로 보일 텐데요. 시간 낭비는 누가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계속 그렇게 우길 생각이야?”
“우기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넌 왜 계속 반말이죠?”
“꼬우면 너도 놓으면 되잖아.”
윤서가 눈을 한번 길게 감았다 뜨면서 올라오는 감정을 꾹 눌러 참았다. 권지한은 그런 윤서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봤다.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숨기려는 거야? 던전에 들어가기 싫어서? 설마 몬스터랑 싸우는 게 무서워?”
“예, 무서워서 들어가기 싫습니다. 그리고 숨기는 게 아니라 S급이 아니라고 사실을 얘기하는 겁니다.”
“아득바득 감추니까 더 수상해. 설마 네가 진짜 서채윤은 아닐 테고.”
“…….”
윤서가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식으로 미간을 좁혔다. 그의 연기는 매우 훌륭해서 ‘정체를 들켜서 당황했지만 애써 모른 척하는 서채윤’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윤서는 답답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대체 서채윤이 여기서 왜 나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