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37)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37)화(37/195)
#32
“검은색 포탈이라…. 얼마나 위험할지 짐작도 안 가는군요….”
도등수 또한 대던전에 들어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착잡함이 흘러넘치는 모습에 그레이스 나름대로 위로라고 입을 열었다.
“저번에는 도등수 부길드장님의 시체를 봤는데 이번에는 없었습니다. 불안해하기에는 일러요.”
“시체도 남지 않을 정도로 짓이겨졌나 보죠.”
“검은 포탈로 사람이 들어간 후 도등수 부길드장님도 막 따라 들어가려고 했는데 꿈이 끊긴 걸지도 몰라요.”
“검은 포탈에 들어가는 건 그거대로 비극입니다. 그냥 위로해 주지 마세요.”
그레이스가 입을 다물었다. 도등수는 애써 좋은 생각을 했다.
일단 2년간 그들이 해 온 것들이 영 쓸모없는 일은 아니었다는 걸 알았으니 성과는 성과였다.
처음엔 고민이 많았다. 이런 중대한 일을 대중에게 비밀로 해도 되느냐와 철저히 비밀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했고, 지금부터 대던전에 대비해 각 나라와 길드의 아이템들을 공유하자, 각성 연구를 서둘러서 헌터를 육성시키자, 심지어는 지구를 포기하고 화성으로 이주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결국 알리지 않는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가짜 평화 속에서 시간이 흘러 어느새 처음 계시가 내려온 지 햇수로 2년째가 되었다.
앞으로 3개월 후 10월 어느 날, 북극에 검붉은색의 포탈이 나타날 것이다.
10년 전 모두를 공포에 떨게 했던 대던전의 재림.
사실 도등수는 10년 전처럼 전 세계가 공황에 빠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벤토리, 길드 시스템, 던전 맵 등 그때에는 없었던 많은 기능이 업데이트되었고, S급 헌터도 두 배로 늘어났으며 화력 또한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졌다. 실제로 권지한은 S급 오렌지 던전을 홀로 격파하질 않았던가. 상식적으로 인류는 그때보다 너무 강해졌고,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패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도등수 또한 높은 공격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활용도 높은 텔레포트 스킬로 몬스터들을 가지고 놀기도 했다.
검붉은 포탈의 대던전은 S급 레드 던전보다 한 단계 위의 던전이다.
고작 한 단계 위.
상식적으로, 이론적으로, 이성적으로 클리어에 실패할 리가 없었다. 수월하게 성공하지는 못해도 실패할 가능성은 낮았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런 미래를 봤느냐는 말이야.’
문제는 그레이스의 계시였다.
산처럼 쌓인 헌터들의 시체…. 폭발하는 대던전과 멸망한 지구.
공략에 실패한 미래.
10년 전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공략에 성공한 레드-블랙 던전을 왜 실패하게 되는 건지 이유는 모르지만, S급 예언자가 그런 미래를 봤으니 계시에 대비해야만 한다.
‘차라리 석영에 들어오지 말걸. 약소 길드에나 들어가서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면 대던전 공략에 끌려가지는 않을 텐데.’
하필 도등수는 인류를 책임질 의무가 있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헌터 길드, 석영의 부길드장인 바람에 대던전 공략 멤버로 확정되었다.
석영의 퍼펙트, 에우로페의 아테나, 미국 S 길드의 메멘토 모리 등 대형 길드의 정예 팀도 진입 예정이었는데 아직 그 정예 팀의 팀원들은 이 사실을 몰랐으니 도등수는 그들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본 미래가 바뀌었다는 건 우리가 2년간 해 온 것들이 결코 미미하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하니까. 2년간의 일 중 미래에 큰 변화를 일으킬 만한 무언가가 있었던 건 분명한데 예상되는 게 있습니까?”
“글쎄요. 서채윤 후보자들과 던전에 들어간 것 정도…. 저는 그때 다른 던전 공략 중이어서 못 봤지만 진흙 속 진주를 찾았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중에 정말로 서채윤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서채윤이든 아니든 전력에 도움이 될 만한 강한 각성자를 찾은 것만으로도 미래가 바뀔 수 있겠죠. 검은 포탈에 들어가는 사람이 권지한이 아닐지도요….”
도등수가 손목의 U패드를 켜더니 화면을 허공에 띄웠다. 서채윤 후보자 7인의 사진이 펼쳐졌다. 라 비지나는 서채윤의 얼굴을 알고 있으므로 표정 변화나 살피자는 심산이었는데 그녀는 사진에 집중하지 못했다. 여전히 머리가 아픈 듯했다.
‘곧 대화가 불가능하겠는데.’
도등수로서는 라 비지나가 제정신일 때 어떻게든 도움될 만한 걸 얻어 내야 했다.
“라 비지나 헌터, 아무리 계약에 묶여 있어도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분명 있을 겁니다. 세상에 완벽한 계약이란 없는 법입니다.”
“으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서채윤이 있어야 지구도 안전합니다. 천 명이 넘는 리벤저가 간신히 지켜 낸 지구이지 않습니까.”
도등수가 라 비지나에게 호소했다. 라 비지나는 얘기를 듣고는 있는 건지 점점 눈빛이 흐리멍덩해졌다. 그때 그레이스가 말했다.
“라 비지나 헌터, 준비했던 걸 주세요.”
“준비했던 거?”
“석영에서 사람이 오면 주겠다고 한 게 있잖아요.”
“아아.”
라 비지나는 얼마나 머리가 아픈지 잔뜩 인상을 쓴 채 긴 신음을 흘렸다. 아니, 준비한 게 있으면 진즉 줄 것이지. 도등수가 초조하게 기다렸다.
“나는 서채윤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몸에 부담이 오고, 그 녀석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머리를 망치로 두들기는 것처럼 아프다오. 하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다행히 아직 남은 정신력이 있는지 라 비지나가 테이블 밑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물쇠가 달린 철제 금고였다. 그녀는 금고 버튼을 눌러서 문을 열고 내용물을 도등수에게 보여 줬다.
“아이템…?”
칼자루에 옅은 푸른빛의 보석이 박힌 단검이었는데 검집은 없었고 날은 상해 있었다. 언뜻 평범해 보이나 묵직한 위압감을 내뿜어서 도등수는 한눈에 이것이 평범한 아이템이 아님을 알았다.
도등수는 가이아 시스템으로 아이템을 확인했다.
‘존재하는 넋’
등급: S급
이 강한 무기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
당신이 원하는 형태로 제한 없이 변형할 수 있습니다.
∗ 현재 아이템 / 단검 형태
∗ 귀속된 상태입니다.
∗ 비활성화 상태입니다.
도등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는 흔들리는 눈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설마….”
라 비지나와 그레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10년 전 서채윤이 사용한 무기였다.
***
“무기요?”
윤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박수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서 씨도 이제 무기를 가져야지요. 그 퍼펙트 1팀의 멤버가 되는데 방어구도 튼튼하고 멋있는 걸로 맞추고요. 솔직히 호명산 던전 때 윤서 씨가 입었던 옷은 좀… 10년 전 같았어요.”
“…….”
“아, 물론 어울렸지만요. 사람들은 얼굴 믿고 옷 막 입네, 했을 거예요.”
“다음번엔 추리닝 입고 갈까 합니다.”
“저 농담 아니에요, 윤서 씨. 퍼펙트는 앞으로 S급 던전만 갈 거라고요. 그에 맞는 헌터복과 아이템이 있어야 해요.”
박수빈이 짐짓 근엄한 체했다.
박수빈은 퍼펙트 1팀에 입성하는 윤서를 위해 석영 건물 안내를 자원했다. 아시아 전역에서 최고층인 만큼 복잡하기도 한 곳이라 일단 헌터로서 자주 들를 곳만 알려 주기로 했는데, 가장 먼저 온 곳이 바로 아이템 제작 부서인 150층~160층이었다.
“S급 아이템은 159층과 160층이에요. 다른 곳은 굳이 가실 필요 없어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박수빈이 바로 159층을 누르며 말하자 윤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박수빈 씨, 저 B급입니다.”
“아닌 거 다 아는데 이제 그만 포기하세요. 저도 C급이 아니고, 윤서 씨도 B급이 아니죠.”
박수빈이 부드럽게 말했다. 윤서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 지금까지 속여 왔다는 걸 참 당당히도 말하고 있군요, 라는 눈빛이었다. 박수빈은 살짝 눈치를 봤다가 윤서가 크게 화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윤서 씨를 속였지만 윤서 씨도 등급을 속였으니까 피차일반으로 치자고요. 대신 앞으로는 속이지 않는 걸로 약속하기. 어때요?”
“제가 속인 거랑 같습니까? 그쪽은 1년이나 절 염탐했는데. 스토킹은 범법입니다.”
“우리 길드장을 신고하세요. 저는 지시에 따랐을 뿐이란 말입니다.”
“길드장이 사람 죽이라고 하면 아주 죽이겠어요?”
“아, 도착했네요.”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박수빈이 냉큼 내렸다. 윤서는 터덜터덜 따라갔다.
“먼저 무기부터 보시죠.”
무기 제작실 인원 몇몇이 박수빈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박수빈은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는 윤서를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길드원증을 세 번을 더 댄 후에야 도착한 곳은 무기 진열실이었다.
“여기 있는 게 다 S급입니다. 엄청나죠?”
약 40평 정도 되는 규모였고, 무기는 총 16점 있었다. S급 무기 하나 가격이 기본 50억이니 여기서 하나만 훔쳐서 달아나도 인생 피는 것이다.
“다 공짜입니까?”
“물론 무료 대여예요.”
“대여요?”
“네, 석영에서 소속 헌터들에게 빌려주는 시스템이에요. 계약서도 작성하죠. 수리비는 모두 길드에서 부담하고, 아예 파괴되더라도 사용자의 고의성이 없는 한 책임을 물리지는 않으니 걱정 마세요.”
“통 크게 헌터한테 주는 줄 알았는데 실망이군요.”
“아, 20% 할인가로 구입할 수 있기도 해요.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제가 사 드릴게요.”
기본 수십 억인 아이템을 사 주겠다는 말에 윤서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박수빈은 빙긋 웃었다.
“1년간 속인 게 죄송해서 그래요.”
“할인받아도 수십 억인데요?”
“저 돈 잘 벌어요. 앞으로 윤서 씨가 더 잘 벌게 되겠지만.”
박수빈은 얼른 덧붙였다.
“저 정말 윤서 씨랑 잘 지내고 싶어요. 비록 길드 지시였다 하더라도 어쨌든 전 사기꾼 스토커나 다름없고 그걸 어떻게든 수습하고 싶은 거예요….”
윤서는 잠시 박수빈을 쳐다봤다. 박수빈은 부드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굳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진심이란 것쯤은 전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