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39)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39)화(39/195)
#34
“아, 근데 퍼펙트 1팀 전부 저만한데. 그 사이에 윤서 씨 있으면 귀엽겠네요.”
박수빈의 해맑은 말에 윤서는 입맛이 뚝 떨어졌다.
“가장 어린 애가 스무 살인데 190cm는 될 거예요. 그다음 어린 헌터는 알다시피 권지한 헌터고. 권지한 헌터도 제가 알기론 195cm는 될 텐데 윤서 씨 큰일 났네요. 옆에 서지 않게 조심해야겠어요. 권지한이 은근히 장난기가 있어서 막 놀릴지도 몰라요.”
“닥치시죠.”
권지한 얘기를 하자 윤서는 아예 숟가락을 놔 버렸다. 사실 그릇을 다 비운 참이긴 했다.
“하하, 아주 질색하네. 권지한 헌터의 레이더에 걸리지만 않으면 심하게 장난치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레이더?”
“네, 강사레.”
진즉 다 먹었던 박수빈은 휴지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강사레? 윤서는 난생처음 들어 보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다. 박수빈은 안 그래도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예쁘장한 사람이 고개를 갸웃하니 무척 귀여웠으나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강한 사람 레이더라고, 저희는 강사레라고 줄여서 부르고 있어요. 권지한 헌터는 그보다 약한 사람에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 대신 S급 같은 강한 사람에겐 흥미가 넘쳐서 엄청 귀찮게 하거든요. 윤서 씨가 들어가는 1팀은 S급들밖에 없어서 앞으로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 될 수도 있어요.”
“재미있는 광경이라면 어떤 겁니까?”
“권지한은 싸우자고 따라다니고 다른 헌터들은 초췌해져서 피하는 모습이죠.”
윤서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식판을 비운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을 나서며 박수빈이 이어서 설명했다.
“윤서 씨도 옆에서 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당사자만 아니면 한 명은 쫓아다니고 한 명은 도망 다니는 게 시트콤 같거든요. 싸우자는 얘기만 안 들으면 권지한 헌터는 그냥 재미있고 잘생긴 스물두 살 청년일 뿐이죠. 만약 권지한 헌터가 윤서 씨한테 싸우자고 말하면 매우 유감이겠지만.”
“…….”
이미 선전포고 당한 윤서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착잡해졌다. 복도를 걷던 박수빈이 윤서의 표정을 보고 설마 하는 눈빛을 했다.
“설마….”
“네, 이미 들었습니다.”
“이런….”
박수빈은 윤서보다 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거의 절망적이었다.
“거절했나요?”
“물론 거절했습니다.”
“소용없어요.”
“…….”
“그 사람의 마음에 드는 내용으로 대련이 끝나지 않는 이상은 계속 싸우자고 말해 올 거예요….”
“누구 싸움을 피한 헌터는 한 명도 없었습니까?”
박수빈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피하다가도 스물네 시간 시달리다 보면 싸울 수밖에 없어요. 집에 가는 길에 뒤를 노리기도 하고, 던전에서 몬스터를 앞에 두고도 주먹을 내뻗기도 하고, 부축해 주는 척하면서 스킬을 사용한다더라고요….”
“싸워서 한 번 지면 좀 편해질까요?”
“권지한 헌터가 보기에 윤서 씨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패배했다 싶으면 풀어 주고, 일부러 졌다거나 스킬을 아끼는 모습을 보이면 계속 싸움을 걸 거예요. 오늘 만날 S급 중에 더 이상 권지한 헌터가 싸움을 걸지 않는 헌터들이 있으니 비결을 한번 물어보세요. 저도 수소문해 볼 테니까.”
박수빈은 자기 일처럼 심각하게 반응했다. 표정이나 말투가 어떻게 보면 윤서보다 심각했다. 아마 권지한에게 시달리는 S급들을 가까이에서 본 탓인 것 같았다.
“후, 그래도 오늘은 권지한 헌터가 임시 팀과 던전에 들어가서 다행이네요….”
임시 팀의 테스트는 계속되고 있었다. 처음에 윤서가 너무 압도적인 활약을 보인 탓에 다른 원석이 빛을 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임시팀과 권지한은 또다시 던전에 들어간 상태였는데 이번엔 A급 던전이었다.
“다행도 아닙니다. A급이라 해도 몇 시간이면 클리어할 테고 내일은 만나겠죠.”
“아닐걸요. 후보들 힘만으로 던전을 클리어해야 해서 며칠 걸릴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정말 유감이지만요…. 어쩌다가 권지한 헌터에게…. 정말 안타깝게 됐어요….”
박수빈의 어조는 숫제 명복을 비는 어투였다.
얼마나 끔찍하길래….
윤서는 이제 슬슬 겁이 났다.
***
“제 안내는 여기까지네요. 여긴 1팀 전용이라 전 출입 불가거든요.”
박수빈이 걱정과 아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서채윤 후보자들의 첫 번째 테스트 후 수색 팀은 해산되었고 박수빈은 예정대로 퍼펙트 2팀에 입성한 상태였다.
“안내 감사했습니다.”
“열심히 해서 꼭 1팀으로 올라갈게요. 외로워도 참아요.”
윤서는 안 올라와도 됩니다만, 이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어쨌든 박수빈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친해지고 싶다고 직접 말해 오기도 했으니까.
박수빈과 헤어진 윤서가 복도를 걸었다. 하얗고 깔끔한 복도를 걷는 동안 윤서는 1팀 헌터들 이름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수재희’가 아이템 ‘강자 탐지’를 사용합니다.
‘수재희’가 당신의 <거짓 기억> 프로필을 보고 있습니다.
‘로렌스 밀레’가 스킬 <네가 감히 눈독을 들여?>를 사용합니다.
‘로렌스 밀레’가 당신의 <거짓 기억> 프로필을 보고 있습니다.
‘리오 델리’가 스킬 <내 사람한테 접근하지 마>를 사용합니다.
당신에게는 효력이 없습니다.
‘알렉 스위치’가 아이템 ‘망원경’을 사용합니다.
‘알렉 스위치’가 당신의 <거짓 기억> 프로필을 보고 있습니다.
띠링띠링 올라오는 로그들 때문이었다.
1팀 팀원들이 권지한을 포함해 다섯 명이니 전부 모여 있었다.
커다란 문은 반쯤 열려 있었지만 윤서는 먼저 노크하기 위해 주먹을 갖다 댔다. 그 순간 누군가 문을 벌컥 열었다.
“어서 오세요, 서채윤 형!”
‘서채윤’이라는 분명한 발음과 함께 인사를 건넨 이는 밝은 갈색 머리의 어려 보이는 남자였다. 윤서는 이미 퍼펙트의 S급 헌터 리스트를 받았기 때문에 이자가 누군지 알았다. 그는 무심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수재희 헌터. 제 이름은 서채윤이 아니라 윤서입니다.”
“에이, 딱딱하게 성까지 붙이지 마세요. 재희야, 라고 부르면 돼요. 채윤이 형.”
“안타깝지만 저는 서채윤이 아닙니다.”
윤서는 이번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수재희, 20세. 소환사 특성의 S급 헌터. 그리고 서채윤의 광팬이라고 박수빈이 건네준 리스트에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수재희가 발랄하게 눈매를 휘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서채윤 후보1 형이라고 부를게요.”
“그냥 윤서라고 불러 주시죠.”
“후보1 형, 너무 딱딱하다.”
“퍼펙트 팀원1 씨, 이제 저 좀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헐….”
수재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람 반 신기함 반이 담긴 시선이었다. 대체 왜 저렇게 놀라는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은 윤서는 수재희를 무시하고 옆으로 들어갔다.
대저택 응접실처럼 꾸며진 퍼펙트 1팀 대기실 안에는 외국인만 세 명 있었다. 금발에 안경 쓴 여자와 잿빛 머리에 창백한 남자는 서로 달라붙은 채 경계심 어린 눈으로 윤서를 노려봤고,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인은 건너편 소파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마치 이곳엔 관심도 없다는 듯…. 복도를 걸어오며 그가 간파 아이템을 사용했다는 걸 아는 윤서는 우스울 뿐이었다.
“윤서 형, 제가 우리 팀원들 소개해 줄게요.”
수재희가 냉큼 옆에 섰다. 호칭은 후보1 형에서 윤서 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저 닭살 커플 중 안경 쓴 누나는 로렌스 밀레, 나이는 스물여섯이고 특성은 샤먼이에요. 네크로맨서 스킬 엄청 강력해서 형 직접 보면 놀랄걸요. 창백한 형은 리오 델리, 특성은 뱀파이어인데 햇빛 아래도 잘 걸어 다녀요. 로렌스 누나랑 리오 형은 사랑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어서 특이하게 커플 스킬도 있어요. 혹시 몬스터 토하는 모습 본 적 있어요?”
“…없습니다.”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상 없다고 대답했다.
“앞으로 보게 될 거예요.”
“…….”
“저 아저씨는 알렉 스위치. 우리 아빠보다 한 살 어리니까, 음…. 올해로 쉰둘. 특성은 창작. 쓰는 대로 이루어지는 엄청난 스킬을 가졌죠. 셋 다 외국 헌터들이지만 통역 아이템을 쓰고 있고, 한국말도 어느 정도 하니까 평범하게 대화하면 돼요.”
“소개 감사합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정중해요? 말 편하게 하세요.”
“저는 이게 편해서요. 수재희 헌터는 말 놓아도 됩니다.”
“형이랑 저랑 아홉 살이나 차이 나는데 말 놔도 돼요?”
“예.”
수재희가 눈을 깜빡이더니 귀엽게 웃었다.
“저도 존댓말 쓸게요. 선 긋는 게 아니라 진짜로 존댓말이 좋아서 그래요.”
“알겠습니다.”
수재희는 박수빈과는 다른 의미로 친화력 좋은 사람이었다. 박수빈이 이럴 땐 능글맞게 느껴졌는데, 나이 어린 애가 이러니 그저 귀여웠다.
‘다들 우리가 이렇게 보였던 걸까.’
열아홉이면 사실 알 거 다 아는 나이고 성인이나 마찬가지인데 리벤저들은 두 사람이 어리다고 그저 어화둥둥했다. 윤서는 어린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보다 강한 각성자를 보호하려 하는 걸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채윤이가 막내예요. 제가 채윤이보다 생일 빠르다니까요?’
그 와중에 이도민은 그렇게 주장하면서 윤서를 어떻게든 최종 막내로 만들려고 했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둘 다 고만고만했을 텐데 말이다.
“형, 일단 커플 형 누나한테 인사해요.”
“잠시만요.”
대던전에서의 나날이 떠오른 윤서는 심호흡하며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신경 안정제 두 알을 삼켰다. 수재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약은 뭐예요?”
“신경 안정제입니다. S급 분들 앞이라 떨리네요.”
“아, 그렇구나….”
대격변과 아포칼립스 이후 약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윤서는 눈치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