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40)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40)화(40/195)
#35
다시 약병을 잘 닫아 주머니에 넣은 윤서는 계속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커플에게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둘은 서로에게 빈틈없이 달라붙으며 경계했다.
“안녕하세요, 윤서입니다.”
“…….”
“…….”
커플은 윤서를 한 번 보고, 서로를 흘깃 보고, 다시 윤서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훑었다가, 경계심을 최대치로 올린 얼굴로 서로를 더욱 끌어안았다.
이들은 본래 유럽 길드 소속이다가 작년에 석영에 들어왔다고 했다. 사랑의 신의 가호를 받았다거나 강력한 커플 스킬이 있다는 것까지는 몰랐으나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연인인 것만은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둘의 가시 돋은 시선을 받으며 무심하게 서 있는 윤서에게 수재희가 속삭였다.
“형이 너무 예쁘… 잘생겨서 그래요. 저 둘은 조금이라도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은 극혐하거든요. 자기 애인한테 접근할까 봐 말도 안 걸어요.”
“수재희 헌터와는 잘 지냅니까?”
“지금은 친해졌는데 처음엔 저 엄청 경계했어요. 저 완전 잘생겼잖아요.”
수재희의 코끝이 한껏 올라갔다. 사실 그는 잘생겼다기보다는 귀엽게 생긴 편이었다. 얼굴은 베이비 페이스인데 몸은 짐승이라 커플이 견제할 만했다.
“…….”
커플이 윤서를 힐끔거렸다.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는 듯한데 둘 다 눈치 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재희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윤서 형, 이상형이 뭐예요?”
“이상형?”
갑자기 이런 걸 왜 물어. 윤서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재희를 쳐다봤다.
“제 이상형은 솔직하지 못하고 새침한 여자거든요. 제 이상형이 이 커플과는 전혀 다른 덕분에 커플의 경계에서 벗어났죠. 형 이상형은요?”
윤서는 커플이 저를 경계하든 말든 상관없었으나 순순히 대답했다.
“제 이상형은 모두 다 죽게 생긴 절체절명의 위기에 ‘나에게는 아직 12개의 포션이 남아 있습니다’ 하고 가서 다 때려 부수고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오는 엄청나게 강한 사람입니다.”
좌중이 잠깐 조용해졌다가 곧 커다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알렉도 낮게 웃고 커플도 미소 지었지만 특히 가장 크게 웃은 이는 재희였다.
“아, 무슨 이순신 장군이에요? 개웃기다, 진짜.”
“평생 솔로로 살겠군.”
“평생 커플은 못 되겠다.”
외국인 커플은 윤서의 이상형이 제 연인과 전혀 다르다는 걸 알자마자 바로 안심한 듯 웃음 섞인 말을 한마디씩 했다. 수재희는 웃느라 끅끅대면서 말했다.
“너무 웃겨서 미치겠다. 지한이 형 이상형 다음으로 가장 충격적인 이상형이었어요. 지한이 형 이상형 들었을 때도 평생 솔로로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윤서 형은 더하겠다. 아, 윤서 형은 모르죠? 지한이 형 이상형.”
“으윽.”
“웁.”
안심하고 웃던 외국인 커플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인상을 썼다. 특히 리오는 떫은 감을 한껏 깨문 듯한 얼굴로 멀찌감치 떨어졌다. 수재희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리오를 바라보고는 커플이 왜 저러는지 연유를 모르는 윤서에게 설명했다.
“형, 이해해주세요. 지한이 형이 요즘 리오 형한테 계속 싸우자고 해서 리오 형 반년 사이에 10kg이나 빠졌거든요. 권지한이라는 이름만 들리면 경기를 일으켜요.”
“권지한을 말하는 거였군요.”
“네, 세계 최강 헌터 권지한. 그 형 이상형이 진짜 웃겨요. 뭐냐면-.”
“안 궁금합니다. 제발 알려 주지 마시죠.”
윤서가 정색하자 재희는 한 번 더 웃었다.
다음으로는 알렉 스위치와의 인사가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윤서입니다.”
“안녕하신가.”
알렉이 기다렸다는 듯 아까부터 한 페이지도 넘어가질 않던 책을 덮었다. 본격적으로 대화하겠다는 것처럼 안경도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리 와 앉게나.”
윤서와 재희는 알렉의 건너편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커플도 슬며시 가까이 다가왔다.
알렉은 긴 다리를 꼬며 분위기를 잡았다.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네.”
“말씀하세요.”
“눈치챘겠지만 우리는 간파 스킬로 자네의 시스템 프로필을 봤네. B급으로 적혀 있더군. 하지만 정예 1팀이 된 걸 보면 S급이라는 뜻이겠지.”
이제 윤서는 B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게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자네는 서채윤인가?”
넷의 시선이 일제히 윤서를 향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윤서는 무심하게 고개를 저었다.
“유감이지만 저는 아닙니다. 다른 임시 팀 후보 중에 있을지도 모르죠.”
‘알렉 스위치’가 스킬 <창조-거짓말 판독기>를 사용합니다.
스킬 <거짓 기억>을 사용합니다.
윤서는 누군가 스킬로 진위를 가리려 할 것임을 예상해서 움찔하지도 않았다. 알렉은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눈앞의 허공을 응시하더니 실망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아아. 자네는 서채윤이 아니었군.”
그러자 커플들도 실망스러운 탄식을 흘렸다. 수재희 또한 길게 한숨 쉬고는 말했다.
“형 생각엔 임시 팀 중 누가 서채윤일 것 같아요?”
“글쎄, 홍의윤 아닐까요.”
윤서는 일부러 유준철이 가장 의심하고 있는 둘 중 한 명의 이름을 말했다. 넷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하긴 유준철 길드장도 홍의윤을 말하기는 했지. 그런데 난 홍의윤의 성격과 말투가 마음에 안 드네. 서채윤 님이라고 하기엔 품위가 없지 않은가.”
“헬파이어라는 헌터 네임도 너무 유치해. 진짜 뱀파이어인 우리 자기도 안 쓰는데 말이야.”
“서채윤 님은 관심이 싫어서 10년째 잠적 중이신데 홍의윤은 SNS 관종이잖아. 대체 왜 관심받고 싶어 할까? 난 세상에서 관심받고 싶은 사람은 우리 자기밖에 없는데.”
“달링….”
“허니….”
커플이 서로를 끌어안고 찐한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저것들이 뭐 하는 짓이지?
29년 솔로 윤서는 눈살을 와락 구겼는데 이 상황이 익숙한지 알렉과 수재희는 반응하지도 않았다. 둘은 여전히 ‘홍의윤은 서채윤 님이라기엔 품위가 없다, 서채윤 님은 후보자 중에 없을지도 모른다’ 같은 말을 심각하게 하고 있었다. 국내외 정세에 대해 토론하는 사람들처럼 진중했다.
윤서는 애써 무심한 표정을 가장하며 가만히 들었다. 그의 얼굴을 발견한 수재희가 웃었다.
“형, 놀란 거 아니죠? 사실 저희 다 서채윤 그루피들이에요. 알렉 아저씨는 유럽에서 제일 큰 서채윤 팬클럽 사무국장이었고, 누나랑 형도 지부장 맡았었대요.”
“한국 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사무국장 관둬야 하는 거였네. 서채윤 님을 만나면 꼭 사무국장 퇴직서에 사인을 받을걸세.”
“서채윤이라면 내 달콤한 애플파이와 눈을 마주쳐도 용서할 수 있어.”
“나도 서채윤이라면 내 귀여운 파랑새와 악수해도 용서할 거야.”
사인도, 눈 맞춤도, 악수도 하기 싫은 윤서는 절대로 정체를 들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사실 서채윤 님 정도면 품위가 없어도 되죠. 서채윤 님이라고 생각하면 홍의윤의 싸가지 없음도 귀여워 보이지 않겠어요? 안 그래요, 윤서 형?”
“홍의윤 헌터가… 귀여운 면이 있긴 있더군요.”
윤서는 자신이 서채윤이라는 의혹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거짓말도 할 수 있었다.
“으음, 홍의윤이면 안 되는데. 나는 화심 헌터에게 걸었단 말이네.”
알렉이 말했다.
이 사람들은 내기까지 했던 것이다.
“젠장, 귀여운 면이 있다니. 우리 달콤한 호박파이는 그 홍의윤이라는 사람은 절대로 쳐다보지도 마.”
“당연하지. 내 사랑스러운 종달새도 절대 악수도 하면 안 돼.”
그 와중에 커플은 저러면서 또 입을 맞추고 있었다. 윤서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스킬을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커플의 입을 틀어막는 스킬을. 아니면 저 둘의 통역 아이템을 부숴 버리든가.
윤서와 달리 커플의 염장에 익숙한 재희는 심각한 대화를 이어 갔다.
“사실 저도 화심한테 걸었단 말이에요. 윤서 형, 화심은 어떤 사람이에요? 길드장 형이 화심도 요주의 인물이라던데.”
“말수 적고 분위기는 묵직한데 글쎄, 서채윤 같지는 않아요. 정말 강한 각성자인지도 의문이고.”
“얼른 만나고 싶다. 저도 임시 팀이랑 던전에 같이 들어가고 싶었는데 길드장 형이 절대로 허락 안 하더라고요.”
“우리가 어제 막 던전 공략을 끝낸 참이니 당연하네. 석영은 헌터 복지가 좋은 길드라 연달아서 던전에 들어가지는 못하게 하더군. 휴가가 끝나면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던전에 들어가게 될 테니 참게나.”
그 말에 윤서는 조금 놀랐다.
“어제 던전을 클리어했다고요?”
“네, 형. 어제저녁에 끝났어요. 무려 S급 던전이었는데 아무도 안 죽었어요. 그린 색깔이긴 했지만.”
“7일을 꽉 채워서 나왔네. 길드장이 7일 걸렸으니 7일 쉬라고 했지만 오늘 서채윤 후보가 팀에 들어온다고 하니 길드에 안 나올 수가 있어야지. 정말 서채윤 님이라면 영광스러운 첫 대면을 놓칠 수는 없지 않나.”
윤서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작게 탄식했다. 현재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퍼펙트가 던전 공략에 나섰는데 아무런 기사가 나오지 않은 것도 놀랍고, S급 그린을 일주일 만에 클리어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2팀과 함께 공략한 겁니까?”
알렉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지한 헌터를 제외한 1팀 4명과 2팀 A급 헌터들 25명이 들어갔네.”
“윽.”
“큭.”
알렉이 권지한을 입에 담자 또다시 커플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갔다.
“내가 방심했네. 미안하군.”
알렉이 순순히 사과했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얼마나 귀찮게 굴었길래….
그러고 보니 박수빈이 1팀 팀원들에게 권지한의 싸움을 피하는 법을 물어보라고 했었다.
“권지한 헌터는 왜 그렇게 싸움을 좋아하는 겁니까? 저한테도 싸우자고 하던데요.”
“아…. 형한테도요?”
싸한 침묵이 주위를 감돌더니 곧 모두 한목소리로 말했다.
“유감이에요….”
“유감이네….”
“유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