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41)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41)화(41/195)
#36
대던전을 막 나왔을 때 받았던 시선과 버금가는 측은한 눈빛이었다. 윤서는 다양한 색의 눈동자에 똑같은 감정이 담겼음을 알았다. 바로 동병상련이었다.
“권지한 헌터와는 언제 싸우기로 했나?”
“아직 안 정했습니다. 일단 거절할 생각입니다.”
“거절은 권하지 않네. 빨리 싸우고 편해지는 게 나을 걸세. 엄청나게 끈질기니까.”
알렉이 떠올리기만 해도 지긋지긋하다는 듯 힘없이 조언했다.
“너무 쉽게 져 버리면 내 작고 귀여운 종달새처럼 계속 시달릴 수도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싸우세요. 내 사랑스러운 애플파이가 권지한에게 완전히 처발렸는데, 본 실력을 제대로 발휘 안 했다고 착각한 권지한이 계속 괴롭히는 거거든요. 내 달콤한 생크림은 그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였는데. 사람이 약한 건 죄가 아니잖아요?”
옆에서 그녀의 사랑스러운 애플파이가 흡, 큽 하면서 상처받는 게 보이지도 않는 건지 로렌스가 팩트 폭격을 날렸다.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이되, 압도적으로 지는 게 가장 깔끔한 방법인 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윤서로서는 압도적으로 이기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가 최선을 다한다면 권지한이 죽을지도 몰랐다. 바로 얼마 전에도 <스파크> 조절에 실패하지 않았나.
“퍼펙트 1팀의 숨겨진 조건이 지한이 형이랑 싸워서 진 사람인가 봐요. 사실 우리 전부 싸움에서 져서 석영에 들어온 거거든요. 본래 전 범인 길드였고, 누나랑 형은 러브 앤 피스 길드, 알렉 아저씨는 엔트로피 길드였어요. 이건 비밀이니까 형만 알고 있어요.”
“네.”
윤서는 태재식에게 들어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모르는 척 대답했다.
“참, 지한이 형 조만간 또 외국 S급 헌터랑 싸울 예정이라고 하던데.”
“그래? 누구라던가?”
“외국에 무슨 원소 다루는 헌터래요. 특성은 마법사, 연금술사. 러시아였나 미국이었나. 길드장 형이 엄청 극비로 했는데 제 선녀들이 알려 줬어요. 윤서 형은 모르겠구나. 선녀들은 제 스킬 <구운몽>의 소환수들이에요. 아무튼 이것도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외국 S급까지 쓸어 모으고 나니까 더는 권지한과 싸우려는 S급이 없더라고.’
태재식은 그렇게 말했지만 아직 권지한과 싸우겠다는 S급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S급의 호승심이란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석영이 정말로 전세계 S급들을 전부 끌어모으려는 속셈인가 보군.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분명 말이 나올 텐데.”
알렉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강해지면 좋은 거 아니에요? 어차피 우리랑 같은 팀이 될 거고.”
“힘의 균형은 세계 평화에 중요한 부분이네. 저울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면 평화의 유지도 깨지고 말 것이네.”
“그런 말 하기엔 이미 벌써 기울어진 저울이라고 봐요, 아저씨. 그리고 길드장 형도 알고 있을 거예요. 알면서도 강자를 모으는 건 어떤 이유가 있겠죠. 어쩌면 서채윤 님을 찾으려는 것도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하긴. 이렇게 S급들을 쓸어 모으고 있는데 에우로페나 S에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보면 모종의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군. 한번 알아봐야 하나.”
가만히 듣던 윤서가 물었다.
“길드 영입 내기 대련이라면, 권지한이 지면 그 외국 S급 헌터의 길드로 가는 겁니까?”
“네, 질 일이 없지만요. 지한이 형 진짜 강하거든요.”
“치게 떨리게 강하지.”
“너무 강해서 짜증 나.”
“짜증 날 만큼 강해.”
네 명이 연달아 말하자 윤서는 질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해졌다.
만약 서채윤이란 걸 들키지 않고, 앞으로 피곤해지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전심전력으로 싸워 보고 싶기는 했다. 상대가 죽을까 봐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는 싸움이라면 윤서도 하고 싶었다.
윤서가 아무리 매사 심드렁하게 굴어도 그 또한 호승심 넘치는 S급인 것이다.
“근데 윤서 형, 지한이 형이 싸우자고 한 걸 보면 역시 강하긴 한가 보네요.”
수재희가 윤서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윤서는 일시에 몰린 시선에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저 엄청나게 약한데 권지한과 길드장님이 착각해서 퍼펙트에 들인 겁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드 트랩 설치나 하는 사무직이었어요.”
“흐으으으음.”
수재희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대체 무슨 아이템을 갖고 있길래 우리의 간파 스킬로도 프로필에 B급으로 나와요? 그리고 S급인 거 어떻게 지금까지 안 들키고 살았어요? 왜 숨긴 거예요? 몬스터랑 싸우기 싫어서? 아, 혹시 공격계 스킬이 아니에요? 왜, 막 유럽의 예언자처럼 전투계는 아니라든가.”
윤서는 쏟아지는 질문 중에서 제게 유리한 질문만 골라 대답을 정리했다.
“저는 실드 스킬만 세 개 가진 B급 각성자입니다, 공격 스킬은 없고, 그나마 <스파크>로 정전기만 조금 일으킬 뿐이죠.”
“형 실드 한번 보고 싶네요. 제 공격 막을 수 있을지 궁금해요. 미르 길드장 조미르 헌터랑 미국 S급 저랑 동갑인 애랑도 대련해 봤는데 다 우리 해돌이 공격도 못 막더라고요. 아, 해돌이는 제 소환수 <해치>의 이름이에요. 엄청 귀여워요.”
재희의 밝은 갈색 머리카락이 살랑 흔들렸다. 눈빛에 호승심과 흥미가 서리는 걸 보고 윤서는 역시 S급들은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재희는 권지한처럼 대뜸 싸우자는 말은 해 오지 않았다.
“수재희 헌터는 상당히 강한 각성자인가 보군요. 실드 주력 헌터들의 실드도 뚫을 정도라면.”
“저 존나 강하죠! 사실 제가 강하다기보다는 소환수가 강한 거지만 그게 그거잖아요? 석영 들어오기 전까지는 던전 최대 공로자도 두 번이나 먹었다고요.”
“정말 대단하네요. 나이도 어린데, 스무 살 중에서는 최강이겠는데요.”
“스무 살 중에서라뇨, 형. 제 나이대 중에선 지한이 형 말고는 제가 제일 세다구요. 무적이나 마찬가지인 S급 고유 스킬도 가지고 있고. 이게 너무 강해서 지금까지 사용한 적도 몇 번 없어요. 너무 무적이다 보니까 오히려 쓰지 못하는 기분이 어떤지 형은 알아요?”
수재희가 우쭐거렸다. 윤서가 일부러 칭찬하며 추켜세우자 아직 나이가 어리다 보니 바로 화제 전환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그 뒤로 재희의 자랑이 이어졌고, 커플은 중간에 통역 아이템을 꺼 버렸지만 알렉은 재희의 자랑을 귀엽다는 듯 들어 줬다. 재희는 최연소 S급 각성자는 아니지만, 현 S급 중에서는 가장 어린 나이였다. 작년에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쉰이 넘은 알렉 입장에서는 아기나 마찬가지였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생각보다 사이가 좋네.’
서로에게 목숨을 맡기고 적과 싸우다 보면 철천지원수도 사이좋아지는 법이지만, 이들은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윤서는 큰 점수를 주고 싶었다.
***
30여 분 정도 더 대화하다가 먼저 일어난 이는 알렉이었다.
“인사도 마쳤고, 자네가 서채윤 님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으니 난 이만 가 보겠네. 길드장이 휴가를 줬으니 꽉 채우고 와야지.”
알렉이 책을 가방에 챙기자 기다렸다는 듯 커플도 벌떡 일어났다.
“우리도 이만 갈게요.”
“다음 주에 봐요.”
“다음 주에 봐요. 아저씨, 형, 누나.”
재희가 발랄하게 손을 흔들었다. 알렉은 재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윤서에게는 눈인사를 하고 나갔다. 커플은 그냥 쌩하니 가 버렸다. 세 명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멀어지자 재희가 윤서에게 감탄을 담아 말했다.
“형, 진짜 대단하네요. 저 염천 커플 때문에 다들 괴로워하는데 형은 되게 잘 참고.”
“토 좀 나올 것 같고 위 아픈 거 빼면 괜찮던데요.”
“위가 아프다니 그거 엄청 안 괜찮은 거 아니에요?”
재희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었으나 윤서는 별거 아니라며 넘겼다.
“수재희 헌터는 집에 안 갑니까?”
윤서가 묻자 재희는 알렉이 앉아 있던 소파로 건너와서 기지개를 켜는 듯 팔다리를 쭉 폈다.
“전 집에만 있으면 좀이 쑤셔서요. 여기 수련장에서 실컷 뛰놀다 가려고요.”
“일주일이나 걸려서 S급 초랭이를 클리어했다면서 안 피곤해요?”
푸핫, 하고 재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무덤덤한 얼굴로 초랭이라고 하니까 웃기네요, 형.”
윤서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버릇이었다. 노랑은 노랭이, 파랑은 파랭이, 초록은 초랭이라고…. 친구의 말버릇이 옮아서 10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전 안 피곤해요. 아직 스무 살밖에 안 됐는데 이런 걸로는 피곤하지 않다고요. 그보다, 형. 여기 수련장 가 본 적 있어요?”
“간 적 있습니다.”
“지하 말고 고층 수련장이에요. S급들만을 위한 트레이닝 룸이죠. 우리 같이 가요.”
재희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윤서는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틀었다.
“형, 어디 봐요. 왜 눈길 피해요?”
“초면부터 수련장에 함께 가자 하다니 너무 이르지 않나 싶은데.”
“얼마나 강한 실드 스킬 가졌을지 궁금하단 말이에요. 어차피 우리 서로 전력 파악하긴 해야 하잖아요. 같이 가요. 네?”
윤서보다 10cm는 커다란 놈이 혀엉, 하면서 안겨 왔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꼭 몇 년 이상 만난 것처럼 굴었다.
윤서는 가만히 생각했다.
앞으로 A급도 아니고 S급 던전 공략을 함께할 테니 팀원의 스킬 파악은 필수이긴 했다. 팀원이 주로 사용하는 스킬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알아야 그에 맞게 보호막의 강도도 조절할 수 있으니까. S급 던전은 B급 던전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니 호명산 던전 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는 없었다. 특히 치유 스킬도, 포션도 통하지 않는 윤서로서는 더더욱.
“혀엉, 가요. 어차피 형도 여기서 수련 말곤 할 것도 없잖아요.”
“…알았습니다. 안내하시죠.”
“와, 네! 아싸.”
재희가 호들갑 떨며 일어났다. 윤서는 덩치 큰 개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