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43)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43)화(43/195)
#38
“더 쓰다듬을 수도 있었는데 시간 없다고 가 버렸어요. 우리 해돌이가 낑낑거리며 엄청 아쉬워하더라고요. 만약 얘가 소환사 선택할 수 있었으면 바로 지한이 형 선택했을 기세던데요.”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웠다. 윤서는 혹시 속이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확신의 저울>을 사용해 볼까.
불신과 의심을 감추지도 않는 윤서의 모습에 재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 의외죠? 저도 처음엔 경악했는데 이젠 납득해요. 지한이 형 착하거든요. 싸움광인 것만 빼면 좋은 사람이에요.”
스킬 <확신의 저울>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발언을 판단합니다.
확신 90 : 중도 10 : 의문 0입니다.
윤서는 결국 스킬을 사용했고 재희의 발언이 순순한 진심임을 알자 더 충격에 빠졌다.
사나운 눈초리, 껄렁껄렁한 태도, 양아치 같은 말투에 싸움광…. 사람은 한번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 권지한이 착하다는 평을 받는 건 정말 놀라웠다.
‘권지한이 ‘선택된 자’인 건 가이아 시스템의 에러는 아니었나 보네.’
끼잉.
너무 놀란 나머지 손을 거두려다가 돌이 되어 버린 윤서의 손등에 해치가 커다란 머리를 슬쩍 갖다 댔다. 재희가 ‘얼른 더 쓰다듬어 주세요! 더 만져 주세요, 우리 해돌이!’ 하고 재촉했다. 그러나 정신 차린 윤서는 결국 손을 거뒀다.
“수련하자면서요.”
“힝.”
덩치 큰 놈이 해치랑 똑같이 끼잉 하는 표정을 지었다. 윤서는 이도민을 떠올렸다. 그 녀석도 윤서가 단호하게 나오면 늘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고는 했었다.
‘나도 넋 만지고 싶어어어. 만지게 해 줘.’
‘이렇게 징그럽게 구니까 넋도 널 싫어하는 거야.’
‘네가 다른 사람이 넋 만지는 거 안 좋아하니까 넋도 날 피하는 거라고. 사실은 넋도 내 손길을 좋아한단 말이야아.’
말꼬리를 늘어뜨리면서 귀여운 척하는데 속에 있던 걸 게워 낼 뻔했었다.
‘그놈이라면 해치를 평생 만졌겠지.’
윤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착한 이였다. 윤서가 팔불출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다른 리벤저들도 이도민에 대해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너무 숭고하여 이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윤서는 당시에 그런 표현을 들으면 닭살이 돋아서 그 녀석이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질색했다. 그러면 리벤저들은 아련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일단 100톤 정도로 때려 보라고 할게요. 그 정도 버틸 수 있어요?”
“해 봐야 알겠는데, 잠깐만요.”
윤서는 치밀어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꾹 누르며 대답하고는 <보호하는 베일>을 사용했다.
반투명한 실드가 펼쳐졌다.
“오오.”
재희가 크게 감탄했다.
“이게 <수호의 궤>예요?”
“<보호하는 베일>입니다.”
“에이.”
감탄하던 게 거짓말처럼 바로 실망스럽게 야유했다.
“<보호하는 베일> 정도는 우리 해돌이가 금방 부순다고요. 그거 말고 고유 스킬은 써야죠.”
고유 스킬이라고 일반 스킬보다 더 강력하다는 보장도 없는데, 단지 희귀성 때문에 재희처럼 일반 스킬을 얕보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윤서는 굳이 오늘 처음 만난 이에게 충고해 주고 싶진 않았지만 스무 살밖에 안 됐고 앞으로 위험한 던전에 다녀야 하는 그를 생각한다면 일반 스킬도 위력이 강하다는 걸 알려 줘야 할 것 같았다.
“일단 해 보시죠.”
“바로 부서진다니까 진짜. 내가 한번 보여 줘야겠네. 이쪽으로 오세요. 혹시 실드 부서지면 형 다치잖아요.”
윤서가 순순히 재희의 옆으로 갔다. 재희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해치에게 외쳤다.
“해돌아, 힘껏 때려 부숴.”
크아아앙.
해치가 불같은 갈기가 달린 앞발을 높게 쳐들었다가 보호막을 내리쳤다. 쿵, 하는 타격음이 수련장에 울려 펴졌다. 보호막은 깨지지 않았다.
해치는 이번엔 바닥을 박차고 크게 도약해서 몸통으로 보호막에 박치기했다. 그러나 실드는 어디 균열 간 곳 하나 없이 여전했다.
이쯤 되자 재희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이게 <보호하는 베일> 맞아요?”
“맞습니다.”
“이렇게 강한 <보호하는 베일>은 처음 봐요. 방금 건 300톤이 넘는 위력이었을 텐데. 형, 역시 S급 맞죠?”
“B급이에요.”
“B급은 무슨…. 속이려는 의지도 없는 것 같은데요.”
재희가 허탈하게 웃었다.
물론 이 <보호하는 베일>은 S급이었다.
쾅, 쾅. 해치가 보호막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수십여 분이 지나도 보호막이 흔들리지도 않고 금도 가지 않자 재희는 윤서의 허락을 받고 하나를 더 소환했다.
‘수재희’가 <레메게톤>을 소환합니다.
12마신, 51마신, 72마신이 소환되었습니다.
해치의 옆에 각기 다른 모습을 한 마신 셋이 검은 연기와 함께 소환되었다.
“앗싸, 강한 마신들 소환됐다. 전투 때 이래 주면 좋을 텐데.”
<레메게톤>은 72마신 중 셋을 소환하는 스킬로 소환사 여러 명이 가지고 있는 일반 스킬이었다. 소환되는 마신은 랜덤이었다.
“야, 마신들. 가서 때려, 저 보호막 부숴 버려! 윤서 형한테 본때를 보여 주란 말이야.”
수재희가 꽥꽥 소리치며 날뛰었다. 확실히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애다웠다.
윤서로서도 궁금했다. <레메게톤>의 마신들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다. 과연 <보호하는 베일>이 부서질까?
끝내 부서지긴 하더라도 시간은 오래 걸릴 터이므로 그는 벽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재희는 흥분해서인지 앉지 않고 계속 발을 굴렀다.
“저 포션 좀 먹을게요.”
“네.”
“이거 반칙 아니에요. 포션은 쓰라고 있는 거니까.”
“알아요.”
재희가 인벤토리에서 마력 포션을 꺼내 들이켰다. 윤서에게 형은 포션 안 먹어도 되냐는 듯 하나를 건넸지만 윤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치유 스킬 내성은 마력 포션에도 적용되었으므로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쿵, 쿵. 마신들이 실드를 공격할 때마다 내구도가 1~3%씩 깎였다. 실드를 유지하느라 끊임없이 마력이 빠져나가고, 동시에 빠져나간 만큼 자연 회복되었다. 마력 회복 속도가 보통 각성자의 3배 이상인 윤서는 살면서 마력이 부족했던 적은 대던전에 들어갔을 때 말고는 없었다. 내성 상태인 그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결국 재희는 포션을 다섯 개 소진한 후에야 <보호하는 베일>을 깰 수 있었다. 윤서가 이것이 결투였다면 사실상 윤서의 승리였다. 그것도 압도적인.
윤서는 과거에도 다른 각성자들과 대련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항상 어렵지 않게 제압했다. 그의 방패를 뚫는 창은 존재하지 않았다.
‘권지한은 어떠려나.’
권지한이 던전을 나오면 분명 싸우자고 접근해 올 텐데, 어떻게 거부해야 할지 고민하는 한편 권지한과의 대련을 상상해 보는 윤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