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51)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51)화(51/195)
#45
“전 정말 괜찮으니 출발하죠. 사람이 더 많아지면 무기 구입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네에…. 서채윤 무기 전시는 저녁 6시부터니까 일단 형이랑 제 무기부터 보러 가요.”
“제 무기는 안 봐도 됩니다. 재희 헌터 것이나 사러 가죠.”
“안 돼요. 형 거 사야 길드장 형이 저한테 쿠폰 준다고 했단 말이에요.”
“저는 필요 없습니다.”
“안 된다니까요.”
윤서는 실랑이하기도 귀찮아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권지한이 말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거 억지로 사 봤자 전투엔 도움 안 돼. 준철이 형한테는 내가 얘기할 테니까 네 거나 사.”
의외의 도움에 윤서가 권지한을 바라봤다. 고맙다고 하려다가 권지한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으쓱대자 말이 쏙 들어갔다.
“석영 실세인 지한이 형이 말해 준다면, 뭐….”
“쿠폰 두 장 다 너 쓰고.”
“진짜요?”
수재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석영 실세인 내가 쓰라는데 누가 어쩌겠어. 얼른 출발하자. 여기 사람 많아서 싫어.”
권지한은 저보다 한 뼘 작은 수재희의 머리를 어린 동생 대하듯 툭툭 쓰다듬었다. 수재희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지한이 형, 지금 존나 멋진 거 알아요? 아, 광채가 쏟아져서 눈을 뜰 수가 없다. 아유, 눈부셔.”
“대신 좋은 아이템 구하면 나랑 한번 싸우자. 네 악마들이나 고양이는 제법 강하니까 때릴 때 손맛이 있어.”
“…….”
수재희가 파스스 바스러졌다. 그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쓰게 웃었다.
“저 그냥 쿠폰 한 장만 쓸게요….”
***
양평 아이템 시장은 엄밀히 말하면 시장이 아니다. 처음엔 시장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각성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르는 명소가 되었다.
면적은 양평군 문용면 전체를 아우르고, 가장 높은 건물은 100층이며, 가장 깊은 지하는 9층에 달한다. C급 이하 아이템은 보통 시장이란 이름에 걸맞은 노점상 형태로 사고팔지만, B급 이상이 되면 아이템 보호를 위해서 건물에 들어가야 했다. 그중에서도 문용면 중심에 있는 알렌트린 쇼핑몰은 A급, S급 아이템만을 취급하는 곳으로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회원권 가격만 1년에 오천만 원을 호가했다.
석영 같은 대형 길드는 아이템 제작 부서가 따로 있기 때문에 소속 헌터가 시장에 나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간혹 알렌트린 경매에 사람은 제작 불가능한 좋은 아이템이 나올 때가 있어서 석영 또한 길드 차원에서 회원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석영 헌터님들이시군요. 어서 오십시오.”
윤서와 권지한, 수재희가 U패드의 석영 회원권을 보여 주자마자 지배인이 달려왔다. 셋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 왔다는 건 A급 이상이라는 뜻이므로 지배인의 환대는 당연했다.
“어떤 아이템을 찾으십니까?”
“S급 무기랑 방어구를 보려고요.”
“S급… 말이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S급 아이템을 찾는다고 해서 그 손님이 정말 S급이 아니라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지배인은 흥분하지 않았다. 게다가 만약 정말 S급이라면 더더욱 호들갑 떨지 않아야 했다. 외국에는 허세 많고 관심 좋아하는 S급도 있다지만 국내에 있는 S급들은 레인보우 부길드장 말고는 조용한 걸 좋아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그는 윤서 일행을 어딘가로 안내했다. 푹신한 소파와 다과가 마련된 프라이빗 룸이었다. 권지한이 먼저 안쪽 소파에 앉고, 그다음 수재희가 앉고 그 옆에 윤서가 앉았다. 곧 담당자가 와서 짧은 인사를 하고 물었다.
“혹시 직업군은 어떤 걸로 찾고 계십니까?”
“소환사인데 소환수랑 시너지 좋은 아이템이나 편한 근접 무기 같은 걸 장만하려고요.”
“…예, 알겠습니다. 총 열 개 나오는군요.”
석영에서 온 S급 아이템을 찾는 헌터가 소환사라면 누구인지는 자명했다.
수재희, 바로 그 해치 소환사.
담당자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카탈로그를 허공에 띄웠다.
‘마지막까지 너의 동반자가 되겠어’
등급: S급
당신이 소환사라면 이 신발은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언제까지 소환수를 타고 다닐 건가요? 소환수와 같은 보폭으로 인생을 걸어 봐요.
내구도 60/100
‘천해’
등급: S급
이 달콤한 과일을 소환수에게 먹이면 잠시 비행할 수 있게 됩니다.
개수 1/5
‘그을린 나뭇가지’
등급: S급
생김새만 보고 무시하지 마세요.
이 검은 상대에게 회복 불가능한 화상을 입힐 것입니다.
내구도 15/100
윤서도 옆에서 살펴봤는데 하나같이 효과는 좋았으나 내구도가 엉망이었다. 석영 아이템들은 100/100이었으니 석영이 얼마나 좋은 길드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했다.
“와, 효과가 전부 엄청 좋네요. 일단 전 무기를 보러 왔기 때문에 ‘그을린 나뭇가지’가 끌리는데 형들은 어때요?”
“내구도가 너무 낮지 않나요?”
“내구도는 복구하면 되잖아요. 부서져도 어쩔 수 없고. 한 번이라도 잘 사용했으면 됐죠.”
몇몇 아이템을 제외하면 아이템 내구도는 인류의 기술과 던전 부산물의 합작인 ‘리커버리 테크놀로지’로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쳐서 복구술을 받아야 하고, 회복 속도도 더뎌서 그 전에 파괴되기 일쑤였다.
아이템 가격이 50억, 할인을 받는다고 해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인데 그걸 수재희는 한 번이라도 잘 사용했으면 됐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으음…. 재희 헌터가 마음에 든다면 사야죠.”
“뭐예요. 애매하게. 한이 형 생각엔 어때요?”
“아이템을 이런 카탈로그만 보고 산다고?”
권지한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는 다리를 꼬고, 양팔은 소파 등받이에 뻗은 여유 넘치는 포즈로 담당자를 쳐다봤다.
“실물을 보고 싶은데.”
“아, 그럼요. 어떤 걸 가지고 올까요? 한 번에 세 개까지 가능합니다.”
수재희는 ‘마지막까지 동반자’, ‘천해’, ‘그을린 나뭇가지’를 선택했다.
잠시 후 담당자와 세 명의 직원이 프라이빗 룸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직원 셋은 각자 한 개씩 투명 보관함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일행 앞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진열했다.
‘마지막까지 동반자’는 튼튼해 보이는 가죽 신발이었고, ‘천해’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작고 붉은 과일, ‘그을린 나뭇가지’는 검은 장검이었다.
“와, 생각보다 엄청 까리하게 생겼네. 이 검은 인벤에 안 넣고 차고 다니고 싶다.”
수재희는 대번에 무기 쪽에 관심을 보였으나 윤서는 ‘천해’에 시선이 박혀 있었다.
처음엔 다섯 개가 달렸을 나뭇가지에는 작고 붉은 과일 하나만 남았다. 자두처럼 생겼는데 자두보다 빨간 열매였다. 마치 물감을 부어 놓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윤서가 그 열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건 그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가이아 시스템의 숨겨진 비밀이 등장했습니다.
스킬 <관측자의 검>이 발동합니다.
<관측자의 검>이 비밀 아이템을 발견했습니다.
‘천해’
등급: S급
이 달콤한 과일을 소환수에게 먹이면 잠시 비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희귀한 식물의 특성 하나. 열매를 소진한 나뭇가지는 가공하여 무기로 만들 수 있답니다.
그 무기는 너무너무 강해서 마지막 관문 클리어에도 큰 도움을 줄 것 같네요.
단, 한 명만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개수 1/5
<관측자의 검>이 발동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윤서가 마지막으로 이 메시지를 봤을 때는 10년 전이었다.
가호 신 중 관측자로부터 선물 받은 유일한 스킬, <관측자의 검>.
윤서가 이 스킬을 사용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였다. 검을 만들어 무기로 사용할 때, 다른 사람들의 스킬 사용 알림을 받고 싶을 때. 그렇게 두 경우로만 사용해 오던 <관측자의 검>은 대던전의 마지막 보스를 죽이고 모두가 출구 포탈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저절로 발동했다.
가이아 시스템의 숨겨진 비밀이 등장했습니다.
스킬 <관측자의 검>이 발동합니다.
<관측자의 검>이 가이아 시스템의 마지막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평화를 위한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가시밭길
독을 품은 비가 머리 위로 내려오고,
굶주림과 추위는 그대를 지치게 하며,
넘어진 동료를 일으켜 줄 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관문이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릴 때까지
가이아가 그대와 함께하니
그대는 두려워하지 않기를 · · ·
두려워하지 않기를, 이라고 끝났으나 오히려 사람을 무섭게 만드는 웅장한 메시지가 지나가고.
모든 빛을 흡수해 버릴 것 같은 칠흑 같은 검은색 포탈이 나타났다.
그것은 누가 봐도 출구가 아니라 던전 포탈이었다.
‘이, 이게 뭐야? 던전…?’
‘던전이 또 나타났다고……?’
살아남은 이들은 열세 번째 보스를 마주했을 때보다 더욱 절망에 빠졌다. 던전 속에 또 다른 던전이 있다니, 게다가 이토록 짙은 암흑과 같은 색이라니. 이걸 우리가 어떻게. 우리는 이미 만신창이인데, 어떻게 저곳에 들어간단 말인가.
모두가 절망하며 울부짖을 때 검은 포탈이 닫히기 시작했다.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자, 잠깐…. 포탈이 사라지고 있어.’
‘들어가려 해도 들어가지지 않아!’
<관측자의 검>이 발동 중입니다.
가이아 시스템의 마지막 던전
※ 입장 불가 – 조건 불일치
가이아 시스템의 마지막 던전이 사라집니다.
검은색 포탈이 일렁거리며 사라져갔다. 그리고 옆에 익숙한 포탈이 하나 생겨났다. 그것은 출구 포탈이었다. 드디어 그들이 지켜낸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출구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우왕좌왕하며 누구 하나 그 포탈로 달려가지 않았다. 생겨났다 사라진 검은색 포탈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생존자들에게 윤서는 제가 본 메시지라도 설명하고 싶었다. 저기서 말하는 조건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조건 불일치로 문이 닫혔다고.
그러나 정신이 가물가물하여 입술만 달싹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