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56)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56)화(56/195)
7. S급 옐로우 던전
#50
사냥꾼 리더의 자폭 아이템은 전시회장 건물뿐만 아니라 양평군 일대를 지도에서 지워 버릴 만한 위력을 가진 S급 폭탄이었다. 서채윤의 무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여차했으면 수만 명의 희생이 생겼을 뻔했다.
그러나 첫째로 권지한이 그 폭탄을 온몸으로 덮었기 때문에 피해는 권지한만 고스란히 받거나 VVIP 홀 한정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폭탄이 터지기 직전 절체절명의 순간, 정체 모를 각성자가 실드를 펼친 덕분에 품 안에서 폭탄이 폭발했는데도 권지한은 생채기 하나 입지 않았다.
그 실드의 범위는 무려 양평군 전체였으며 그것보다 놀라운 것은 실드의 등급이었다.
S++급.
역사상 S++급의 실드를 만들어 낸 이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서채윤.
과거 그는 어떤 고유 스킬로 S급 던전의 폭발에서 한 도시를 지켜 낸 바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서채윤이 그곳에 있었다.
10년 동안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던 사람이 제 무기를 보러 전시회장에 온 것이다.
유준철은 급히 인원을 소집했다. 장소는 석영 본사가 아닌 그의 자택이었다. 그는 평소에는 석영 사택에서 머무르지만, 외부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기밀 사항을 논의할 때는 항상 서울에서 한참 벗어난 깊은 산속에 있는 자택을 장소로 잡았다.
온갖 방음 아이템과 실드 트랩, 보안 시설이 설치된 저택에 모인 이들은 다섯 명, 석영 길드장 유준철, 부길드장 도등수, 현재 세계 최강의 헌터 권지한 그리고 한국 헌터 협회장과 부회장이었다.
“단검을 미끼로 사용하길 잘했습니다. 분명 서채윤이 보러 올 거라고 생각했죠.”
“미끼를 문 게 서채윤만은 아니잖아. 테러 단체까지 쳐들어와서 희생자가 발생할 뻔했어.”
권지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무랐다. 안 그래도 자폭 폭탄이 있었단 얘기를 듣고 기겁했던 유준철은 권지한에게 사과했다.
“그건 미안하게 됐다.”
“오늘 서채윤이 안 왔다면 나도 지금 여기에 없었을 거야. 그 폭탄은 진짜 강한 아이템이었으니까 한 달은 요양해야 했을걸.”
S급 폭탄이 품 안에서 터졌는데 한 달 요양으로 끝나는 것도 괴물이긴 했다.
“난 서채윤이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애지중지한 무기라잖아….”
“맞습니다. 라 비지나 헌터 말로는 서채윤은 단검을 대던전에서 잃어버린 줄 알고 있을 거라더군요. 그래서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으면 반드시 올 거라고 했습니다.”
“던전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다고?”
도등수의 말에 권지한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예, 던전에 두고 나왔다고 생각할 거라고 했습니다.”
“…….”
오늘 전시회장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던 권지한이 흐음, 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권지한 헌터, 뭔가 이상한 거라도 있소?”
“…아니, 없습니다.”
헌터 협회장의 질문에 권지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유준철은 분명 뭔가 있다고 확신하고서 눈을 가늘게 뜬 채 권지한을 살폈다.
‘헌터 협회장과 부회장이 있는 자리에서는 못 할 말인가?’
유준철은 허공에 화상을 띄웠다.
“왼쪽은 오늘 건물 내에 있었던 사람들 명단, 오른쪽은 건물 밖에서 전시회장 영상을 보고 있었던 사람들 명단. 합해서 3,101명입니다. 이중에서 여성과 외국인, 나이에서 크게 벗어난 이들을 빼면 589명이고.”
“꽤 많이 빠지는군요.”
“외국인이 엄청 많았으니까요.”
전시회 측은 공식 발표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떤 길드에서 서채윤의 단검을 수집해서 이틀간만 공개한다고 했으나 암암리에 ‘어떤 길드’가 석영 길드라는 얘기가 퍼졌다. 그동안 서채윤 무기라고 나온 아이템들은 죄다 가짜였지만, 출처가 석영이라면 신뢰도 높으니 외국에서도 많이 보러 온 것이다.
“석영이 위에서부터 200명 맡죠.”
“저희가 나머지 조사하겠습니다.”
도등수와 협회 부회장이 589명 명단을 자신의 U패드로 다운받았다. 이제 또다시 뒷조사의 시작이었다. 본래 서채윤을 찾는 일은 석영 담당, 대던전 공략에 필요한 무기와 아이템 등을 모으는 건 협회 담당이었으나 이번만은 두 단체가 함께하기로 했다. 같은 목표를 위해서였다.
“조사는 되도록 빨리 마칩시다. 단검은 어디 있소?”
“길드 금고에 넣어 놨습니다. 어차피 내일 전시는 취소됐으니까.”
“결국 취소군.”
“에휴, 그것 때문에 여기저기서 날 물고 뜯고 난리입니다.”
내일 아이템을 영접할 계획이던 많은 이가 극구 반대했으나 이 난리가 났으니 취소하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오늘 서채윤이 나타났다는 걸 알았으니 석영으로서도 단검을 밖에다 내놓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금고는 안전할까요? 상대가 일개 괴도나 사냥꾼도 아니고 서채윤인데….”
귀속 아이템이라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어서 석영 길드 금고에 넣은 것인데, 그 석영이니 S급 레드 던전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도 안전하겠으나 협회 부회장은 상대가 서채윤이다 보니 걱정됐다. 유준철은 이 부분은 걱정 없다는 듯 산뜻하게 웃었다.
“서채윤은 일단 금고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장소를 알아도 가기 힘든 곳이니 협회 회장님과 부회장님은 마음 놓으십시오.”
“대체 그곳이 어디란 말이오?”
“비밀입니다.”
그 장소는 바로 아프리카의 지하 벙커였다.
오늘 그 일이 있고, 도등수는 <텔레포트>로 아프리카의 지하 벙커 금고에 단검을 보관했다. 그리고 S급 포탈 스톤을 무려 여섯 번이나 사용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포탈 스톤은 C급 오백만 원에서 등급이 높을수록 0이 하나 더 붙는다. B급은 오천만 원, A급은 오억 원… S급은 오십억이었다. 오는 데 300억 원을 사용한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있었다. 서채윤 외에도 무기를 노리는 자들은 많다. 모두가 무기의 행방에 이목을 집중하는 지금, 긴 이동 석영 부길드장이나 되는 자가 긴 동선으로 나 어디로 가는 중이요 하고 알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또한 <텔레포트>는 짧은 거리는 쿨타임이 짧지만, 아프리카 정도의 먼 대륙으로는 50시간이나 되기 때문에 장소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만약 서채윤이 금고 장소를 알아냈더라도, 수백억대를 자유롭게 쓰는 자산가가 아니라면 비행기나 배를 이용해 장시간 가야 하는데 그럼 당연히 석영의 레이더망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뭐, 석영이니 어련히 하셨겠지요.”
부회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나라에나 헌터 협회나 연맹은 존재하고, 대부분 정보와 동등한 수준의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데 한국만은 달랐다. 석영이라는 절대적인 길드의 존재 탓에 국내 헌터 협회는 위상이 그리 크지 않았다.
12년간 석영을 견제하고자 노력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몇 번이나 시도해 봤으나 석영은 점점 손댈 수 없을 만큼 크고 견고해지기만 할 뿐이었고 지금으로선 감히 경쟁 의식을 느끼지도 않았다. 다른 세계였으니까.
지금도 회의를 이끄는 이들은 유준철과 도등수였고, 헌터협회 회장과 부회장은 주로 듣는 쪽이었다.
“지한아.”
게다가 지금의 석영에는 길드장과 친밀한 관계인 권지한도 있고 말이다.
“오늘 전시회장 내부에 있었던 후보자는 홍의윤과 윤서 두 명이었어. 네가 마크해 줘야 한다.”
“한 명 더 있었잖아.”
“누구? …아.”
유준철이 그제야 한 명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회탈 괴도도 있었지.”
“그 괴도도 서채윤 후보였습니까? 누군데요?”
부회장이 물었다. 유준철이 대답했다.
“박강. 3년 전부터 하회탈 괴도로 활동했더군요.”
“박강…. 아아, 그 소심하고 말 더듬는 사람 말이군요. 그런 성격으로는 안 보였는데…. 특성과 스킬을 생각해 보면 어울리긴 합니다.”
부회장이 박강의 얼굴을 떠올렸으나 희미했다. 덩치에 비해 소심하고 말수도 적어서 존재감이 흐릿한 사람이었다.
“박강도 우리가 정체를 안다는 걸 알 텐데 서채윤 무기를 훔치겠다고 굳이 나타난 게 이상하지 않소?”
“우리를 얕본 거 아니겠습니까. 자기 정체를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게 아니라면 자기 무기를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든 걸지도 모르고.”
“심문하실 겁니까?”
“예, 이미 월요일로 날짜를 잡아 놨습니다.”
“서채윤이 박강일 확률이 상당히 높아졌군요. 박강한테 건 사람 누구더라.”
“협회 쪽에서는 박강한테 건 사람은 없소, 허허. 대부분 화심에게 걸었다오.”
“저희 쪽에서는… 기 팀장이 걸었군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기 팀장이 돈 버는 건 싫은데.”
“아, 기 팀장은 싫은데. 홍의윤일 확률도 아직 살아 있는 거죠?”
‘홍의윤이 서채윤이다’에 큰돈을 건 도등수가 물었다. 협회 부회장도 홍의윤에게 걸었기에 간절하게 유준철은 바라봤다. 유준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홍의윤도 가능성 높습니다. 정말 수상한 점이, 제가 티켓 줬을 때는 분명 일요일에 가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보란 듯이 오늘 나타났더군요. 정말 서채윤이라면 자기 무기를 빨리 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으음, 돈 더 걸까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김진해와 남궁심해, 이정인도 오늘 왔었습니다.”
“네? 그 둘도 말입니까?”
“전시회장 밖에서 전광판을 보고 있었어요. 김진해와 남궁심해는 함께 왔고 이정인은 동료들과 함께. 아마 명단 뒤쪽에 있을 겁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서채윤 후보 여섯 명이 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었다니 무슨 이런 공교로운 일이….”
부회장이 허탈한 탄성을 내질렀다. 후보가 좁혀지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는 듯했다.
“화심은요?”
“후보 중에 유일하게 화심만 안 왔더라고요.”
“어떤 의미로는 더 수상하네요.”
화심은 어떻게든 수상하게 보일 운명이었다.
“지한아, 윤서는 어땠냐? ‘존재하는 넋’이 공개되는 순간 이상한 점 없었어?”
“이상한 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