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57)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57)화(57/195)
#51
유준철과 도등수는 본래 윤서에게는 흥미가 없었으나 최대 공로자 사건 이후로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반면 헌터 협회장과 부회장은 여전히 윤서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이들과는 반대로 처음부터 윤서에게 흥미를 보였던 권지한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무것도 없었어.”
단검을 본 순간 윤서는 순간 울컥한 표정을 짓더니 손으로 눈가를 가렸고, 그때 아이템의 기운이 무언가에 감응하듯이 묘한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권지한은 그 사실을 이들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협회장과 부회장이 자리해서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없었더라도 권지한은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 윤서의 드문 표정을 본 게 자신뿐이라는 게 어째서인지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
앞으로 서채윤을 어떻게 끌어낼지, 서채윤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할지에 대해 좀 더 대화하다가 어느새 밤이 깊어 자리를 파할 때가 되었다.
응접실에서 대화하던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1층 거실을 지났다. 그때 앞장서 걸어가던 권지한이 문뜩 멈춰 서더니 유준철을 돌아봤다.
“금고 확인해 봐.”
“어?”
“금고에 서채윤 무기 멀쩡히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지금? 지금 확인하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멍청해졌어?”
권지한의 시크한 표정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 같았다. 유준철과 도등수, 회장과 부회장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의 눈동자는 불길함과 불안함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왜 지금 갑자기 확인하라는 거야. 불안하게.”
“<가이아의 눈>에 ‘존재하는 넋’이 안 보여.”
“…뭐?”
그 말에 모두가 놀라서 펄쩍 뛰었다. 이제 보니 권지한의 회색 눈에 금빛이 감돌고 있었다. 스킬 사용 중이라는 뜻이었다.
그들도 권지한이 무려 가이아라는 이름을 단 L급 스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이아의 눈>, 그 어떤 것도 간파해 내는 스킬.
이 스킬은 각성자의 시스템 프로필, 아이템 설명 창, 던전 내의 숨겨진 함정과 보물 상자…. 사소하게는 이 열매에 독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조차 간파해 낸다.
한 마디로 <가이아의 눈>은 세상 모든 시스템 창을 본다.
L급 스킬이기 때문에 한 등급 아래인 S급까지는 완전하게 보이고, S+급부터는 윤서의 프로필을 봤을 때처럼 글자가 깨져 보이지만, 만약 권지한이 등급 업 아이템을 갖추면 정말 세상에서 보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단 아직까지 L급 스킬을 등급 업 해 주는 아이템은 없었다.
이 스킬의 더 엄청난 점은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것의 시스템 창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저 멀리 아프리카에 있는 금고 속 아이템이라든가.
권지한은 ‘존재하는 넋’을 처음 본 순간부터 계속 눈앞의 화면에 아이템의 시스템 창을 켜 놓은 상태였다. 대화하면서도 <가이아의 눈>으로 ‘존재하는 넋’의 시스템 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멀쩡히 잘 있었는데 방금 갑자기 닫혔네.”
“자, 잠깐만, 권지한 헌터. 아이템 프로필이 닫혔다는 건….”
“프로필이 변경됐다거나 인벤토리에 들어갔다는 뜻이죠.”
“제대로 본 거 맞습니까? 그, 막 다른 창에 가려졌다거나 한 거 아니고? 권지한 헌터는 늘 켜 놓고 있는 창 많잖습니까. 잘 찾아봐요.”
“켜져 있던 창 다 껐는데 없어요.”
권지한은 심드렁하게 말했으나 다른 이들은 기절 직전이었다. 특히 석영의 길드장과 부길드장은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서채윤이 그걸 되찾아 갔다는 걸까? 하지만 어떻게 알고? 그곳의 위치을 아는 사람은 여기 세 명뿐인데, 대체 어떻게?
“길드장님, 제가 가 볼까요?”
“그래, 얼른 가 봐.”
도등수가 팟, 하며 사라졌다. 권지한은 문가에 기대서서, 유준철은 다리에 힘이 풀려 쭈그려 앉은 채 초조하게 도등수의 연락을 기다렸다. 협회장과 부회장은 유준철의 눈치를 봤다.
몇 분 후 도등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 ‘존재하는 넋’이… 사라졌습니다.
“빌어먹을!”
유준철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감쌌다.
협회장과 부회장은 눈앞에서 석영이 한 방 먹는 모습을 목격했지만 좋아할 수가 없었다.
300억이 아무 소용 없게 된 건 두 번째 문제였다. 서채윤을 끌어낼 유일한 수단이 사라져 버린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걸로 어떻게든 서채윤을 붙잡으려 했는데 오히려 도둑맞다니.”
“엄밀히 말하면 주인이 자기 걸 되찾아 간 거지.”
“지한아, 넌 어떻게 이렇게 심드렁할 수 있냐? 응? 아, 혹시 너…! 서채윤이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면 그때도 프로필 창을 볼 수 있는 거야? 맞지? 그렇지?”
“그 형태 그대로라면 가능하지만 서채윤이 형태를 바꿀 게 분명하잖아. 그럼 원격으로는 더는 못 봐.”
‘존재하는 넋’의 프로필에는 ‘당신이 원하는 형태로 제한 없이 변형할 수 있습니다’라는 설명이 있었다. ‘단검 형태’라는 문구가 붙어 있기도 했고. 서채윤이 손에 넣는다면 분명 형태를 바꿀 것이다.
으아아아, 유준철이 괴성을 내지르며 머리칼을 헤집었다. 도등수도 전화 건너편에서 한국까지 또 어떻게 돌아가냐며 절규했다. 헌터 협회장과 부회장이 헛기침하며 우리에겐 아직 방문자 리스트가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권지한은 성큼성큼 저택을 나왔다.
흥미로운 일이었다.
서채윤은 무슨 수로 아이템의 위치를 알아냈을까. 권지한이 알고 있는 모든 스킬과 아이템을 조합해도 그 장소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그렇다는 건 관련된 고유 스킬이 있다는 뜻인데, 권지한은 그 스킬이 가이아 스킬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그도 ‘선택된 자’인가.’
선하고 정의로운 그대여
가이아 시스템은 권지한을 선택하면서 그렇게 표현했다. 선하고 정의로운 그대여, 라고.
가이아 시스템이 범죄 전적이 있는 자는 각성시키지 않는다는 건 이미 기정사실화된 정론이었다.
‘윤서.’
한여름 밤, 선명한 노란 달빛을 받으며 권지한이 미소 지었다.
오늘 그는 윤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첫째로 윤서는 ‘천해’를 보고 놀랐다. 마치 숨겨진 설명 창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걸 사게 하라고 계속 눈빛으로 말해 왔고,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둘째로 윤서는 분명 서채윤의 무기와 감응했다. ‘존재하는 넋’은 윤서의 시선을 받고 아주 약하게 진동했다.
그리고 세 번째, 아마 아무도 몰랐겠지만….
양평군 전체를 덮었던 실드가 사라졌을 때 윤서의 눈은 완전한 푸른색이었다가 서서히 갈색으로 돌아왔다.
이것들이 뜻하는 건 결국 하나다.
‘네가 서채윤이야?’
권지한은 윤서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사실 이런 건 대놓고 묻는 성격이지만, 이번에는 꾹 참기로 했다. 이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유준철과 도등수에게도 윤서의 수상한 점들을 얘기하지 않았다.
‘서채윤이든 아니든 우리 편으로 포섭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어.’
정의라는 건 강자에게 불공평한 책무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가상의 단어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가이아 시스템으로부터 선하고 정의로운 자라고 선택을 받았지만 지금 윤서는 정의를 경멸하고 있었다.
그 말을 하는 윤서의 갈색 눈은 슬픔과 회한에 젖어 있었다.
무심하고 덤덤한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후회와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더욱 흥미가 생겼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더는 희생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그런 사무치는 표정을 했던 걸까.
왜… 정의를 옳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물론 정의롭지 않은 것을 악하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도 없고, 정의로운 자를 선하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다만 권지한은 윤서가 지금도 악한 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알았다. 수재희의 <해치>도 윤서에게 더 쓰다듬받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고 하질 않았던가.
선한 사람이 정의를 외면하게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권지한은 윤서가 서채윤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단지 그게 알고 싶을 뿐이었다.
***
이 스킬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오기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스킬 <가이아의 대지>를 사용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윤서는 가만히 눈을 감고 ‘존재하는 넋’이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감지했다.
가이아 시스템에 대한 반감으로 그동안 이 스킬을 없는 것 취급하며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도움 없이는 넋을 되찾으러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L급 스킬의 능력은 여러 개가 있는데 지금 윤서가 사용한 건 ‘감지’와 ‘이동’ 능력이었다.
대지와 닿아 있다면 어떤 아이템이든 감지할 수 있고, 대지의 어느 곳으로든 이동할 수 있다.
그는 <가이아의 대지>로 도등수가 ‘존재하는 넋’을 가지고서 한국과 순식간에 멀어지는 걸 감지했다. 어디까지 멀어지나 싶었는데 아프리카 대륙 어느 곳에 도착했다. 그러고서 도등수는 혼자 다시 한국과 가까워졌고, ‘존재하는 넋’은 그대로 아프리카 대륙에 남았다.
윤서는 당장 넋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으나 신중하게 행동했다. 넋 주위에 사람이 얼마나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건물의 구조는 어떠한지…. 혹시 몰라 권지한의 위치까지 확인한 후에야 스킬을 사용했고, 넋을 발견하자마자 후다닥 인벤토리에 넣었다.
스킬 <가이아의 대지>를 사용합니다.
다시 스킬을 사용하여 안락한 보금자리로 돌아온 윤서는 거실 한가운데에 드러누운 채 숨을 몰아쉬었다.
“와… 힘들다.”
심장이 몹시 헐떡거렸다.
“하아…. 죽겠네, 진짜….”
전시회장 테러 사건이 일단락된 후부터 넋을 되찾아오기까지 무려 다섯 시간이나 L급 스킬을 한 번도 끊지 않고 사용했더니 그 윤서조차 마력 부족이 찾아왔다. 대던전 이후로 오랜만에 맞은 마력 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