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58)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58)화(58/195)
#52
집까지 돌아온 게 기적이었다. 치유 내성 때문에 마력 포션도 소용이 없고 그저 자연 회복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되찾았어.’
윤서의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꺼졌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어느 정도 진정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물을 마시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다음 인벤토리를 열었다.
‘존재하는 넋’을 꺼내 미리 준비해 둔 푹신푹신한 쿠션 위에 올렸다.
넋은 잠들어 있었고, 그 형태는 이제 더 이상 단검이 아니었다.
달걀만 한 크기의 작고 하얀 알이었다.
‘존재하는 넋’
등급: S급
이 강한 무기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
당신이 원하는 형태로 제한 없이 변형할 수 있습니다.
∗ 현재 아이템 / 알 형태
∗ 수면 상태입니다
생명의 신의 도움으로 손에 넣은 이것은 말 그대로 생명력을 지닌 아이템이었다.
대던전에서 이 녀석은 새로 변해서 윤서의 주위를 날다가 정수리 위에 내려앉는다거나, 고양이로 변해서 꼬리를 살랑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그러다가도 결투가 일어나면 무기 형태로 변해 잔인하게 몬스터를 도륙 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아이템인 것이다.
“햅쌀아….”
윤서는 울컥 감정이 북받쳤다. 정말 오랜만에 불러 보는 이름이었다.
“햅쌀아.”
주인의 부름에 알의 표면에 미세한 파동이 일었다.
주인과 떨어진 지 너무 오래 지나 비활성화 상태가 되었는데도 만나자마자 감응해 오고, 이름이 불리자 반응을 한다는 게 기특하고 대견했다.
윤서는 알을 손가락으로 조심히 쓰다듬었다.
“나는 네가 이곳에 살아 있다는 걸 몰랐어. 알았으면 찾았을 거야. 어떻게서든….”
“…….”
“깨어나면 네가 원하는 형태로 있어. 맛있는 것도 많이 줄게. 나 그동안 다른 무기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어….”
알이 또다시 파르르 진동했다. 미약했지만 반가움 마음만은 분명히 전해져서 윤서가 웃음을 머금었다.
매일 품고 다니며 마력을 불어 넣으면 한 달 후에는 완전히 깰 것이다. 비록 내내 마력 부족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상태겠지만, 넋을 깨우는 게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일이었다.
“아.”
윤서는 넋을 쓰다듬다가 멈칫했다. 당장 다음 주에 던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2주는 소요될 예정이라…. 던전 내에서도 알을 품을 기회가 있을까? 우선 남들에게 보일 때를 대비해서 아이템 프로필을 바꿔야 했다.
스킬 <거짓 기억>을 사용합니다.
‘존재하는 넋’의 프로필을 작성합니다.
‘왕 큰 새 알’
등급: C급
짱 귀여운 새가 태어날 것 같은 왕 큰 새 알.
예쁘게 키워 주세요.
“너무 성의 없나.”
윤서는 고심하다가 ‘예쁘게 키워 주세요’ 옆에 ‘당신의 가족이 되어 줄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되도록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곳에 혼자 숨어서 알을 품어야 한다. 특히 윤서도 그 한계치를 짐작할 수 없는 <가이아의 눈>을 가진 권지한을 조심해야 한다. 만약 들키더라도… 제 프로필이 그랬던 것처럼 넋의 프로필도 네모 박스로 보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권지한.”
윤서는 조용히 이름을 읊조렸다.
스물두 살밖에 안 되는 놈이 주저 없이 폭탄을 감싸는 모습은 아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말뿐인 바보가 아니었다니.’
<골든 타임>이라는 스킬은 아마 보호 스킬이었던 모양이지만 그래도 S급 폭탄이었으니 대미지가 컸을 것이다. 본인도 크게 다칠 거라는 걸 알았을 텐데,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생긴 건 사납고 건방진 양아치인데, 알맹이는 영웅 그 자체였다. 리벤저 중에도 생긴 건 양아치인데 쓸데없이 희생정신이 뛰어난 영웅들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죽었다.
윤서는 씁쓸하게 웃었다.
권지한이 이제야 나타나서 다행이다. 그 녀석은 대던전이 있었다면 가장 먼저 들어가서 죽었을 타입이니까….
윤서는 권지한의 유언은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정말… 화가 많이 날 것 같았다.
***
“분명히 일요일까지 전시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내 귀여운 복숭아와 서채윤 님 무기 콘셉트에 맞춘 데이트 룩까지 골라 놨는데!”
“일찍 보고 싶은 거 꾹 참고 일요일로 미룬 거였는데 취소라니요! 내 사랑스러운 아기 바게뜨와 함께 서채윤 무기 구경 브이로그를 찍을 예정이었는데!”
“그 석영을 이끄는 수장의 말을 믿은 대가가 이것이란 말이오? 한국인들은 약속을 중시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세상을 이끄는 자가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나 한국인에게 크게 실망했네.”
월요일, A급 옐로우 던전 진입에 관한 브리핑 시간이 되어 회의실로 들어서자마자 윤서가 본 것은 석영 길드장을 짤짤 흔들며 핍박하는 외국인 헌터들이었다. 서채윤 광팬인 그들은 일요일 전시를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무척 화가 난 모양이었다.
유준철은 도끼눈을 뜬 S급들에게 둘러싸여 두 손을 들고 말했다.
“아니, 그. 다들 기사를 보셨겠지만 테러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서채윤 헌터가 테러를 막아 줬잖아요!”
“그 실드가 꼭 서채윤 헌터의 실드일 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분은 테러로부터 많은 사람을 구했으면서 단검은 안 가지고 갔잖아요. 이건 전시를 허락한다는 뜻이라고요!”
“아니, 꼭 서채윤 헌터였다고는 아무도….”
“석영 길드장, 다른 것도 아니고 서채윤 템으로 사람을 농락한다면 전 세계의 서채윤 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지금도 내 U패드 연락처엔 서채윤 팬클럽 지부장들의 연락처가 가득하지. 나 못지않게 분노한 그들에게 서채윤 템의 소지자가 사실 석영 길드장이었다는 사실을 알린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알렉 헌터, 진정하시고요…. 엄밀히 말하면 서채윤 템 소지자는 저 개인이 아니라 석영 길드로.”
“석영 길드 상대로는 못 덤빌 것 같은가? 종교의 힘을 우습게 생각하는군.”
“종교요? 네? 종교요?”
임시 팀 앞에서는 고압적이던 유준철이지만 S급들 앞에서는 쩔쩔매고 있었다. 이들이 엄청난 서채윤 그루피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서채윤을 끌어내려고 일부러 미끼를 던졌던 모양인데. 너무 얕봤네.’
아이템이 없어진 건 눈치챘을 것이다. 권지한이 <가이아의 눈>으로 보고 있었을 테니까.
이제 와서 아이템이 없어졌다는 말도 못 하고 얼마나 난감할까.
윤서는 딱히 미안하지는 않았다. 그는 잠시 구경하다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회의 시간이 5분이나 남았음에도 자리가 가득 차 있었다. 넓은 테이블의 가장 상석은 비어 있었고, 그 옆에서 퍼펙트 매니저가 심각한 얼굴로 U패드를 보고 있었다. 왼쪽 줄에는 S급 헌터들의 자리인 듯 연달아 비어 있고 수재희 혼자 앉아 있었는데, 그는 맞은편의 홍의윤과 대화 중이었다. 홍의윤 옆으로는 2팀의 리더들이, 그 뒤쪽 의자들에는 2팀 팀원들이 앉아 있었다.
사망자가 적지 않게 발생하는 S급 옐로우 던전의 브리핑…. S급들은 저렇게 서채윤 얘기나 하는 반면 A급으로 이루어진 2팀은 긴장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2팀 앞줄에 박수빈이 있었다. 옆 사람과 뭔가를 얘기하던 박수빈은 윤서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윤서 씨, 왔어요? 여기 앉아요.”
박수빈이 제 앞자리를 가리켰다. 윤서가 그곳으로 걸어가는 동안 유준철을 몰아세우는 서채윤 그루피들을 제외하고 모든 이가 그를 쳐다봤다. 대화 중이던 수재회와 홍의윤도 빤히 윤서를 보고 있었다.
‘다들 왜 이러지. 내가 늦게 와서?’
윤서가 힐끔 회의실 벽시계를 쳐다봤다. 결코 시간에 늦지는 않았다. 아직도 5분이나 남았으니까. 윤서는 절대로 지각은 안 하지만 그렇다고 일찍 도착하는 편도 아니었다. 대던전 공략에 나서는 날에도 공략 예정 시간 5분 전에 도착한 전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은 오히려 일찍 왔다 할 수 있었다.
“제가 제일 늦게 왔습니까?”
“제일 늦진 않아요, 형. 뒤에서 세 번째.”
대답한 사람은 수재희였다. 팀원들과 다르게 서채윤 템을 영접한 그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무기 영접뿐만 아니라 어쩌면 서채윤과 같은 장소에 있었던 걸지도 모르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아마 신나서 자랑했을 테고, 그 때문에 유준철이 더 닦달당하는 것일 터였다.
“지한이 형이랑 화심 헌터가 아직 안 왔어요.”
“그 새끼는 매일 지각이야.”
홍의윤이 뚱하니 내뱉었다. 수재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형. 지금 지한이 형한테 그 새끼라고 한 거야?”
“화심 녀석 말한 거야. 뭔 모임만 있을 때마다 항상 아슬아슬하게 도착한다고.”
“아슬아슬한 게 어디야. 지한이 형은 회의 때마다 당연한 듯 지각하는데. 보자, 지금 5분 전이니까… 한 20분 후에 오겠네.”
“쌍으로 난리네.”
“형, 그 말 지한이 형 앞에서도 하면 내가 진짜 용사로 인정할게.”
“흥, 네 인정 필요 없어. 누구를 골로 보내려고.”
홍의윤과 수재희는 벌써 좀 친해진 모양이었다.
토요일 테러 사건 직후 수재희가 먼저 홍의윤에게 다가갔고, 높은 친화력으로 홍의윤의 시건방짐을 돌파하고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수재희는 그때 홍의윤이 보인 정의로운… 모습에 큰 감명을 받은 듯했다.
윤서는 둘의 친분이 아주 흡족했다. 흐뭇하게 둘의 대화를 듣는데 박수빈이 그를 부르더니 계속 윤서를 힐끔거리고 있던 사람을 소개해 줬다.
“윤서 씨, 이분은 2팀 이인선 팀장님. A급 보조계 헌터고 윤서 씨처럼 보호 스킬 주력이에요. 팀장님, 이쪽은 윤서 씨. 아시죠?”
“그럼요. 안녕하십니까, 윤서 헌터. 처음 뵙습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2팀 팀장이 먼저 손을 내밀었기에 윤서도 악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손이 무척 크면서도 꼭 근접 공격계 헌터의 손처럼 거칠었다. 팀장은 윤서를 향해 눈을 초롱초롱 반짝였다.
“윤서 헌터는 S급 실드 스킬을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S급 실드는 본 적이 없어서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