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59)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59)화(59/195)
#53
“오해입니다. 고작 B등급이에요.”
“형, 아직도 등급을 속이려고 해요? 진짜 끈질기다.”
수재희가 냉큼 끼어들었다. 그는 2팀 팀장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손사래를 쳤다.
“이 형 말은 듣지 마세요. 이미 다 까발려졌는데도 아직도 등급을 포기 못 하는 안쓰러운 사람이니까. 글쎄, <보호하는 베일>로 해돌이 공격을 막더라니까요. 어딜 봐도 A급이나 S급이죠.”
“<보호하는 베일>로 재희 헌터의 해치를…?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더라고요. 저도 놀랐어요.”
“흥, 해치 따위라면 나도 <불의 고리>로 간단히 막을 수 있어.”
“형,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지? 한번 싸워 봐?”
“얼마든지.”
홍의윤이 벌떡 일어났다. 상대는 S급인데 말이다. 정말 호전적인 성격이었다. 수재희는 눈을 부라리며 전투태세에 돌입한 빨간 머리 남자를 향해 귀여운 초등학생 본다는 듯 피식 웃었다. 빨간 머리는 더더욱 전투를 향한 의지로 불타올랐다. 수재희는 그를 무시하고서 윤서와 2팀 팀장에게 말했다.
“그런데 사실 윤서 형도 서채윤 앞에서는 그냥 평범한 보조계 헌터일 뿐이죠.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라 진짜. 와, 토요일에 제가 바로 그 현장에 있었잖아요. 정확한 스킬 이름은 뭔지는 모르지만 분명 멋진 이름의 고유 스킬이겠지. ‘절대 영웅의 막강 실드’나 ‘기적의 미라클 엔젤 파워 실드’ 이런 이름 아닐까요?”
그런 이름이었다면 윤서는 그냥 다 함께 죽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그 기적의 영웅 미라클 엔젤 파워 실드가 우릴 살린 거예요. 범위가 양평군 전체에 달했다던데 어떻게 그 강도로 면적까지 넓지? 미쳤어, 미쳤어.”
“서채윤 생존 알림에 걸맞은 스킬이었죠. 현장에서 그 실드를 체험하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아아, 갈까 말까 하다가 안 갔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너무 아쉬워. 윤서 씨도 토요일 현장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맞죠?”
박수빈이 윤서에게 물었다. 윤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소 급하게 말했다.
“저 말고 홍의윤 헌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회탈 괴도로 변장한 박강도 있었지만 이곳 사람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몰라서 얘기는 못 했다.
“전 티켓을 못 받아서 고민하다가 안 갔는데, 한번 가 보기라도 할 걸 그랬어요. 양평군 내에만 있었으면 그 서채윤의 실드를 느껴 볼 수 있었던 거잖아. 살면서 또 언제 경험해 보겠어요? 너무 아쉬워요.”
“이래서 행동하는 덕후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수빈이 형. 그래야 계를 타죠.”
수재희가 턱을 치켜들며 으스대더니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저기 있는 가여운 사람들 좀 봐요. 행동하지 못해서 서채윤 템도 못 보고, 서채윤 님과의 같은 공간에도 있지 못하고 죄 없는 길드장 형만 쥐잡듯이 잡고 있는 불쌍한 그루피들…. 저 사람들의 인생은 이제 끝난 것이나 다름없죠…. 길드장 형의 인생도요.”
수재희가 저쪽에서 유준철을 쥐 잡듯이 잡고 있는 S급들에게 측은하다는 시선을 던졌다. 아무리 작은 목소리여도 이 정도 거리면 들릴 텐데, 저들은 유준철을 짤짤 흔드느라 이쪽에 집중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직접 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분이 잘 생존해 계신다는 걸 알았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살다 보면 언젠간 우리도 은혜를 받을 날이 올 거라고 믿어.”
박수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쉬움과 후회가 뚝뚝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윤서는 이럴 때마다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전 세계 사람 대부분은 서채윤의 광팬까지는 아니어도, ‘광ㅍ’까지는 되었다. 자취를 감춘 영웅이 주는 미스테리함에 매료된 이들이 많았는데, 낙엽 길드에서도 경영 팀 중에 서채윤 광팬이 한 명 있어서 틈만 나면 서채윤 얘기를 꺼내 윤서를 난감하게 했다. 그래도 그 길드원은 자주 만날 일 없는 사람이라 모른 척하면 끝이었지만 이젠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여기 윤서 씨와 흥의윤 씨도 서채윤 님 후보 리스트에 올라와 있잖아요. 현장에도 계셨으니 두 분의 혐의는 점점 더 짙어지는걸요. 안 그래요, 서채윤 후보 1번 윤서 씨?”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윤서에게 박수빈이 씩 웃으며 물었다. 임시 팀이 사실은 서채윤 후보 리스트라는 건 이제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윤서는 눈꺼풀도 움찔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는 아닙니다. 하지만 홍의윤 헌터일 가능성은 있겠군요. 미리 사인을 받아 두고 싶습니다만.”
“씨발, 기분 나쁘니까 그딴 개소리 하지 마.”
“씨발이라니?”
“기분 나쁘다니요?”
“개소리라뇨?”
서채윤 팬 세 명이 줄지어 물었다.
“위험한 몬스터나 던전이 나타났을 땐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자기 무기 전시한다니까 머리 들이민 새끼 뭐가 좋다고 이 난리야? 난 서채윤 그 겁쟁이 놈이 절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딴 리스트인 줄 알았으면 임시 팀에 발 들이지도 않았어.”
감히 서채윤의 무기를 훔쳐 가려고 하냐며 사냥꾼들에게 용감하게 덤볐던 홍의윤이 이번엔 서채윤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윤서는 홍의윤이 이렇게 반응할 걸 예상하고 일부러 화살을 돌렸고, 성공했다.
수재희가 눈을 끔뻑하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형 혹시 서채윤 싫어해?”
“당연하지. 그런 겁쟁이는 비난받아야 해.”
“…….”
수재희와 박수빈, 2팀 팀장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유준철을 닦달 중인 외국인 서채윤 그루피 세 명을 쳐다봤다가 다시 홍의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저 사람들이 길드장 형 잡고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형 지금 목 썰렸을지도 몰라. 우리야 취향 존중해 주겠는데 저 광팬들 앞에선 말조심해.”
“어이, 거기.”
수재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광팬들 중 금발의 여자가 이쪽을 향해 험악하게 눈을 번뜩였다. 살기가 피어올랐다.
“방금 거기서 서채윤 님을 안 좋게 얘기하는 듯한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착각이에요, 누나. 길드장 형이나 더 잡으세요.”
“흐음.”
“서채윤 님을 비난하는 멍청이가 있다면 제 손으로 죽일 거예요.”
“…….”
로렌스 밀레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수재희의 말을 믿었는지 다시 유준철에게로 고개를 돌리고는 닥치고 서채윤 템 내놓으라며 닦달했다. 수재희는 거보라는 듯이 홍의윤에게 눈짓했다. 홍의윤은 잠깐 사이에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겁 없는 성격이라도 S급의 살기를 직격으로 맡고 나니 입술이 안 떨어지는 것이다. 그들의 뒤쪽에서 죄 없는 2팀 헌터들도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렇게 서채윤 얘기를 하고 있을 때 화심이 도착했다. 서채윤 후보 3의 도착에 수재희가 얼른 손을 흔들었다.
“화심 헌터,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세요.”
“…….”
오늘따라 더 무뚝뚝한 얼굴의 화심이 윤서 옆에 앉았다. 키가 윤서보다 한참은 더 크고 몸도 좋은 사내인데, 윤서는 화심이 마냥 측은했다. 우수에 잠긴 눈빛 하며 근심 어린 미간하며….
“저는 수재희예요. S급 소환사.”
“안다.”
화심은 무뚝뚝했는데, 그를 바라보는 재희의 눈빛은 초롱초롱하기만 했다. 윤서는 재희가 ‘화심이 서채윤이다’ 쪽에 돈을 걸었다는 게 기억났다.
“화심 헌터도 토요일 템 시장에 있었어요?”
화심이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화심 형의 실드 덕분에 우리 모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왜 아니라고 말 안 해요? 부정 안 하니까 더 수상한데.”
“난… 아니다.”
“반박이 늦는 게 이상한데요.”
화심이 들어온 뒤로 내부가 미묘하게 조용해졌기 때문에 수재희의 목소리는 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윤서는 머리가 아파지려고 했다.
아니, 화심은 전시회장에도 안 왔다잖아. 왜 이렇게 화심을 의심해 대는 거야. 저 사람은 진짜 평범한 C급 헌터란 말이야. 그리고 화심 저 인간은 왜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거야?
“화심 헌터가 왔군.”
재희와 마찬가지로 화심에게 돈을 걸었던 알렉이 길드장 닦달을 그만두고 테이블로 왔다. 알렉이 떠나니 커플도 재미가 없어졌는지 자리로 돌아오고 드디어 유준철이 자유롭게 풀려났다. 커플과 알렉은 화심의 맞은편에서 오로지 화심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제 보니 1팀 기존 헌터들은 죄다 화심에게 돈을 걸었던 모양이다. 수재희는 계속 화심을 몰아세웠고 화심은 무뚝뚝하게 ‘난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저러다 병 얻겠다.’
윤서는 화심이 걱정스러웠지만 속으로만 걱정했다. 그 정의로운 홍의윤도 땀을 삐질 흘리면서 외면하고 있었다.
옆에서 박수빈과 2팀 팀장의 대화가 들렸다.
“화심 헌터는 서채윤 님이라기엔 말수가 너무 적지 않나요?”
“본인이 서채윤이라서 여유로운 걸지도 모르지.”
“팀장님은 누구한테 걸었다고 하셨죠?”
“박강.”
“아아, 확실히 그분도 현장에….”
‘역시 석영도 박강이 하회탈 괴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구나.’
하긴 생각해 보면 하회탈 괴도이기 때문에 박강도 후보에 오른 것일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자, 이제 슬슬 회의 시작하죠.”
“권지한 헌터가 아직입니다.”
“그 녀석이야 회의에는 늘 늦잖아. 그냥 먼저 시작해.”
유준철이 넥타이를 바로 잡으며 테이블의 가장 상석에 앉았다. 머리가 여전히 헝클어져 있었는데 아무도 지적해 주지 않았다. 회의를 시작한다는 소리에 화심을 압박하느라 시끄럽던 1팀 팀원들도 입을 다물고 집중했다.
U패드를 들여다보며 내내 조용히 앉아 있던 매니저가 일어났다.
“금주 금요일에 있을 S급 옐로우 던전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
“우선 이번 던전의 계시를 받은 분은 미국의 마리엘 예언자이며 가호 신은 불꽃의 신입니다. 이번 S급 옐로우 던전 보스 몬스터는 비행이 가능하고 불과 물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화염과 빙결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일정 시간마다 몬스터들을 소환하는데 이들 몬스터의 등급도 A급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수는 계시를 받지 못했으나 지금까지의 통계상 다섯 마리 이상이 한 번에 소환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계시는 1페이즈까지라 다음 단계는 헌터분들이 공략법을 찾으셔야 합니다. 다음은 지금까지 S급 던전에 출몰한 비슷한 유형의 보스 몬스터들입니다.”
테이블 중간에 S급 던전 보스 몬스터들의 모습과 특징이 떠올랐다. 그 자료는 헌터들의 U패드로 자동 전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