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62)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62)화(62/195)
#56
홍의윤이 턱짓했다. 화심이 던전 포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늘 저처럼 아슬아슬하게 오던 인간이 오늘은 일찍 왔다.
“아까부터 저러고 있어. 존나 여유 부려.”
저게 여유로워 보이나? 윤서에게는 죽음을 앞두고 해탈한 사람으로 보였다. 분명 죽게 될 곳에 가기 위해 시간 맞춰서 오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저 화심도 오늘은 한 시간 전에 왔는데 너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늦냐고. 주목받고 있다고 건방 떨지 마라.”
“제가 제일 늦지는 않았겠죠. 권지한도 아직이잖아요.”
“형, 오자마자 나 찾는 거야?”
뒤에서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 윤서가 흠칫 놀랐다. 그가 이렇게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놀라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돌아보기도 전에 권지한이 까꿍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새카만 머리, 잿빛 눈의 남자가 눈매를 접으며 미소지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오자마자 찾고.”
“지금 도착했죠?”
“나는 도착한 지 꽤 됐지. 아무리 그래도 S급 옐로우 공략을 앞두고 지각을 하진 않아. 나 되게 성실한 사람이야.”
“거짓말하지 마세요.”
“진짠데. 야, 빨간 머리. 네가 말해 줘.”
지목당한 빨간 머리가 화들짝 놀랐다.
“지, 진짜야. 권지한 헌터는 3, 30분 전에 왔어.”
“협박이라도 당했습니까?”
“씨발, 나는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협박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는 않아…!”
홍의윤이 소리쳤다. 그 기세에 윤서도 조금 눌렸다. 이게 이렇게 결연하게 외칠 내용인가…?
“맞아요. 의윤이 형은 항상 진실만 말한다고요. 지한이 형 일찍 왔어요.”
“권지한 헌터는 30분 전에 와서 리오를 엄청나게 괴롭혔네. 가엾은 리오는 지금 여자 친구 품 안에서 울고 있지.”
수재희와 알렉도 다가와 거들었다. 권지한이 거 보라며 거들먹거렸다.
“앗, 윤서 씨. 오늘은 그래도 S급 던전 레이드라고 일찍 오셨네요. 낙엽에서는 모임만 있으면 정각에 도착하던 사람이.”
박수빈이 불필요한 설명을 하면서 다가왔다. 박수빈과 대화를 나누던 2팀 팀장도 함께였다. 잔뜩 긴장한 얼굴의 2팀 A급 헌터들 24명이 저마다 도착 시간을 얘기했다.
결국 화제의 중심이 되어 버린 윤서는 결심했다. 앞으로는 무조건 30분 전에 오겠다고.
***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 현재 인원 33명 : 폭발까지 499시간
더 이상 던전에 진입할 인원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던전 포탈이 닫힙니다.
생명의 신이 당신을 환영합니다.
죽음의 신이 당신의 진입 소식에 달려오고 있습니다.
용암의 거센 열기로 인해 당신을 보호하던 스킬 <직접 만든 에그 타르트>가 사라졌습니다!
스킬 <방역> 내구도 21/100
스킬 <보호하는 베일> 내구도 80/100
실드 내구도 하락 속도가 빨라집니다!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알림이 쏟아졌다. 공기 중에 가득한 유해 가스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자 2팀 팀장이 스킬을 사용해 바람을 일으켜서 시야를 환히 밝혔다.
“와…. 장난 아니네요.”
“실드 없었으면 그냥 다 한 방에 죽었겠군.”
알렉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브리핑에서 들었던 것처럼 포탈은 공중으로 이어졌고, 아래는 붉은 용암이 거대한 구렁이처럼 꾸물꾸물 흐르고 있었다. 멀리서 벼락이 내리꽂는 소리가 요란했고, 대기 중에는 유독 가스로 이루어진 황색 구름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용암의 열기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3중첩 실드 중 2팀 헌터 한 명의 실드는 진입하자마자 깨졌으며, 나머지 두 개도 내구도가 빠르게 하락했다. 남은 실드의 내구도가 100%가 아니다 보니 실드 안으로도 열기가 들어왔다. 화염 저항이 있는 홍의윤조차 땀을 훔칠 정도라 가장 등급이 낮은 화심은 당장 숨쉬기도 어려운지 가슴을 움켜쥐면서 상체를 숙였다.
‘이진비’가 스킬 <유기농 자색고구마>를 사용합니다.
용암의 열기가 한풀 꺾입니다.
‘설미나’가 스킬 <백사 방역>을 사용합니다.
보호계 헌터 두 명이 급히 스킬을 사용해 실드를 보강했다.
‘예측과 분석이 없었다면 진입하면서 절반은 죽었겠어.’
대던전에 진입했을 때가 떠올랐다. 전 세계에서 국고를 털어서 보내온 화기와 각자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리벤저에 지원한 이들 수십 명이 진입하자마자 허무하게 용암으로 빠졌던 첫날.
윤서는 굳은 얼굴로 실드를 강화했다.
스킬 <보호하는 베일>을 사용합니다.
화심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다.
“이렇게 열기가 강할 줄은 몰랐어요. 조는 나누지 않는 게 좋겠는데요.”
“일단 조금 더 위로 가서 대화하죠.”
헌터들이 조금 더 높은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윤서도 입을 다문 채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은 미리 추락에 대비하라 들었기에 던전 진입 전부터 비행 중인 상태였다. 어떤 헌터는 아이템으로, 어떤 헌터는 스킬로.
권지한의 경우는 <타락한 영웅의 날개>로 등 뒤에 검은 날개를 달았고, 수재희는 <구운몽>의 선녀에게 안긴 채였다.
윤서는 석영 소유의 비행 아이템인 ‘주홍 열기구’에 탑승 중이었다. 3인용이라서 닭살 커플도 함께였는데, 그들은 자기들끼리 한 몸처럼 끌어안은 채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이 높이에서도 열기가 느껴지네요. 더 올라가면 던전 결계이니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얘기해야겠어요.”
박수빈이 이마의 땀을 소매로 훔쳤다.
“일단 조는 나누지 않았으면 하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동의합니다. 현 상황에서 보호계 헌터들을 나누는 건 위험 부담이 커요.”
“네, 치유 스킬 필요한 사람 있으면 바로 말씀하세요. 비행 스킬 사용하는 분은 마력 항상 확인하고. 포션은 많아요.”
“혜진아, 가장 가까운 몬스터와의 거리는 어떻게 돼?”
“4.14km 밖에서 맴돌고 있어요. 비행형인 것 같네요.”
“잘 지켜보고 있어. 길드석은 어디에 세우지? 땅 전부가 용암인데. 길드석 위치로 돌아와 봤자 타 죽게 생겼어.”
대화를 주로 이끄는 이는 2팀 팀장과 박수빈이었는데, 길드석 얘기가 나오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그들은 길드석을 설치할 땅을 찾아서 온 사방을 훑었으나 보이는 건 용암의 물결뿐이었다.
석영은 당장 올해 초 S급 옐로우 던전에 들어갔다가 길드원을 셋이나 잃고 돌아온 경험이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이상 다들 죽을 각오는 했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길드석이 존재해야 했다. 길드석이란 여벌의 목숨이니까. 팀장이 미간을 좁힌 채 보호계 헌터들에게 물었다.
“용암 위에 길드석을 세우고 그 근처에 한 사람 분량의 실드를 만들면?”
“가능한데 유지 시간이 짧아요. 용암 때문에 내구도가 계속 깎여서 제 스킬로는 최대 세 시간이에요….”
“제 스킬로도 최대 다섯 시간입니다.”
“큰일 났네.”
“내가 도움이 될 것 같군.”
고민에 빠진 A급 헌터들에게 구원자가 나타났다.
아이템 ‘헤르메스의 신발’을 신은 채 뾰로롱 날아온 이는 본래 미국 길드 소속이던 S급 헌터 알렉 스위치였다. 알렉의 눈에 붉은빛이 감돌았다.
‘알렉 스위치’가 스킬 <창작>을 사용합니다.
쿠구구궁,
뭔가 아주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들 근처에 1평 남짓한 땅이 생겼다.
<천공의 섬>이 나타났습니다.
용암을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네요.
허공에 떠 있는 땅은 천공의 섬이라는 웅장한 이름과는 다르게 협소한 크기였지만, 그것도 나름 땅이라고 싱그러운 풀도 자랐고 흰 들꽃도 피었다.
“와, 알렉 헌터의 창조 스킬은… 언제 봐도 놀랍네요.”
“창조가 아니라 창작이라 했네.”
“그게 그거 아닌가요?”
“다르지. 많이 다르지.”
알렉이 끌끌 혀를 차며 길드 아공간에서 마력 포션을 꺼내 먹었다.
“권지한 헌터, 길드석 부탁합니다.”
“흐음.”
권지한은 심드렁한 얼굴로 날아와 1평 섬 위에 두 발로 섰다. 뭔가를 가늠하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권지한이 중얼거렸다.
“안 되겠는데.”
“네?”
“여기도 열기가 닿잖아. 벌써 이파리도 타들어 가고 있어.”
알렉이 깜짝 놀라 다가왔다. 권지한의 말대로 풀 이파리 끝이 까맣게 타 있었다. 알렉은 낭패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런. 이대로면 땅이 없어지고 말 걸세.”
그의 스킬 <창작>은 창조와 다르기 때문에 한번 만들어지면 끝이고 그 안에서 생명이 순환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흙이 만들어지고 풀이 자라는 시스템이 아니라 불에 타면 그대로 끝인 것이다.
“일단 가진 것 중 가장 방어력이 뛰어난 스킬을 걸어 보겠지만 쿨타임 때문에 다시 사용하려면 하루는 걸립니다.”
“쿨타임 리셋 아이템을 사용해. 아공간에 다섯 개 있어.”
“네.”
2팀 보호계 헌터들이 보유 중인 모든 실드 스킬을 사용했다. 길드 아공간에 챙겨 둔 쿨타임 리셋 아이템까지 사용해서 스킬을 퍼부은 덕분에 유지 시간은 61시간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예상 던전 공략 시간을 생각해 보면 적어도 350시간 이상은 되어야 했다.
“다들 비켜 봐.”
말한 이는 홍의윤이었다.
‘홍의윤’이 스킬 <불의 고리>를 사용합니다.
두 개의 불의 고리가 작은 땅과 실드를 감쌌다. 언뜻 땅을 불태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반대로, 화염 내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실드 유지 시간이 늘어나긴 했는데… 아직 120시간이에요.”
“젠장….”
“벌써 9분 지났어. 일단 설치해야겠군.”
던전을 진행하다 보면 더 안전한 곳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길드석은 진입 후 10분까지만 설치할 수 있었다. 1분 남짓 남은 상황이라 권지한은 어쩔 수 없이 불안한 땅 위에 길드석을 설치했다.
길드석 설치 : -100,000,000
현재 길드 경험치 10,029,199,000
길드석이 설치됐다는 메시지가 떠오르고, 땅 위에 은빛 돌탑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