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65)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65)화(65/195)
#59
권지한이 하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욕실과 가장 먼 서재로 들어왔다. 들어온 뒤에야 이 캠핑카에는 서재도 있구나 하고 새삼 놀랐다.
죽음의 신이 ‘권지한’에게 흥미를 갖습니다.
생명의 신이 당신과 ‘권지한’이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죽음의 신이 ‘권지한’과 싸우기를 종용합니다.
가이아 시스템의 발전으로 모든 게 좋아진 건 아니었다. 신들의 메시지를 잠깐 차단하는 방법은 어디 없나. 대충 검은색 셔츠만 입은 윤서가 시스템 창을 뒤적거렸다. 그러나 <염력>을 사용했다는 알림 로그를 발견했다.
‘들켜 버렸네.’
권지한에게 <염력>을 들켰다. 그런데 이상하게 낭패스러운 기분은 안 들었다. 권지한이 다른 이들에게 얘기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그래도 햅쌀이는 꺼내지 말아야지.’
권지한이 잠들면 그때만 꺼내서 부둥부둥 해 줘야겠다. 윤서는 얼른 권지한이 씻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
윤서는 부드러운 타월로 머리칼을 닦으며 걸어 나왔다. 넓고 깔끔한 샤워실에서 따뜻한 물로 개운하게 씻고 나니 여기가 던전인가, 호텔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지한이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답지 않게 신중한 얼굴로 태블릿에 무언가를 그리는 중이었다.
윤서는 지나치려다가 그 앞에 앉았다.
“뭐 하는 겁니까?”
“형.”
권지한이 고개를 들었다.
“취미 중에 그림 그리기도 있는 걸로 아는데 이것 좀 대신 해 주라. 난 너무 어려워.”
“이게 뭔데요?”
“던전 맵을 여기에 똑같이 그리면 돼.”
권지한이 태블릿 화면을 보여 줬다. 시스템 창의 던전 맵에 그려지고 있는 지도가 태블릿 속에도 있었다. 맵은 8% 완성된 상태였다.
“이걸 뭐 하러 그려요? 시스템 창을 보면 되잖아요.”
“시스템 창은 던전을 나가면 사라지잖아.”
“던전 밖에서 던전 지도를 봐서 뭐 합니까.”
“던전 밖에서 보면 던전 지도가 아니라 프록시마 b의 지도지.”
권지한이 손가락을 움직여 화면 크기를 조작했다. 윤서는 눈을 크게 떴다.
지구보다 세 배 크다고 알려진 이 외계 행성이 화면 속에 있었다.
대부분은 비어 있었으나 아주 간간이 지형이 그려진 지역들이 있었다. 행성 전체 크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았으나 분명 지도였다.
던전 포탈이 아니면 오고 갈 수 없는 머나먼 외계 행성. 프록시마 b.
던전으로 규정된 범위 외의 지역은 불투명한 막으로 막혀 있어 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인류는 외계 행성을 그려 내려 하고 있었다.
윤서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림엔 소질이 없어서 사양하겠습니다. 잘못 그려 넣으면 큰일 날 것 같으니까요.”
“그림 그리기가 취미 아니었어?”
아니다.
‘풍경화 120점, 인물화 30점, 정물화 30점 그려 줘’
라는 유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있는 것뿐이다.
“취미는 맞지만 실력은 없습니다. 특히 지도는 그려 본 적도 없고요.”
“너무하네. 격렬한 전투를 끝내고 쉬지도 못하는 S급 헌터가 불쌍하지도 않아?”
“격렬하지도 않았잖아요. 그리고 제가 그 지도에 손대면 더 쉬지 못할걸요. 더 망가트릴 겁니다.”
윤서는 단호히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는 두 개 다 같은 크기였다. 윤서가 오른쪽 침대를 사용하겠다고 하자 권지한이 그러라고 짧게 대답했다.
윤서는 드라이기로 머리칼을 말렸다. 부우우웅, 시끄러운 소리 사이에 캠핑카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서가 전원을 끄자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한이 형, 윤서 형. 저녁 먹어요.”
수재희가 발랄하게 둘을 불렀다.
저녁 먹으라니.
윤서는 실소했다.
샤워실에서 깨끗이 씻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다가 저녁 식사를 한다니, 뭐 이런 던전이 다 있단 말인가.
정말 격세지감이었다.
***
요리 스킬을 가진 헌터가 직접 조리한 스테이크와 각종 채소구이를 먹고 양치질까지 마쳤다.
식사하는 동안 냄새를 맡고 몬스터들이 몰려와서 작은 전투가 있기는 했으나 정말 작은 전투였다.
식후에는 대부분 자러 들어갔고, 몇몇은 근처에서 수련했으며, 몇몇은 불을 피워 놓고 담소를 나눴다.
“아 씨, 빔 프로젝터 챙기는 거 깜빡했어요. 영화 보려고 했는데.”
“S급 체력 너무 믿지 말고 잠이나 푹 자게.”
“저 커플이랑 같은 차라서 오늘 밤새우기로 결심했어요. 아저씨, 나랑 수다나 떨어요.”
“홍의윤 헌터는 어쩌고.”
“그 형 자러 들어갔어요. 졸라 바른 생활 청년인데 졸라 소름 돋아요. 어떻게 그 커플이 있는데도 잘 생각을 하지? 옆에서 그렇게 쪽쪽 해 대는데?”
“그럼 내 책을 좀 빌려줄까.”
“아저씨 책 재미없어요.”
“너무하는군. 나름 가이아 시스템도 인정한 창작물인데.”
툴툴거리던 수재희는 결국 알렉에게서 책을 하나 받아 갔다.
“팀장님, 땅 온도 알고 계시죠? 곧 폭발할 것 같은데요. 여긴 위험해요.”
“그렇다고 공중에서 잘 수는 없잖아. 실드를 믿어 봐야지.”
멀찍이서는 2팀 팀장과 박수빈이 심각한 얼굴로 논의 중이었다.
사방이 용암으로 둘러싸인 데다가 땅 밑에는 마그마가 흐르고 있어서, 굳이 손을 대어 온도를 측정하지 않아도 땅속에서부터 솟는 연기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자칫하면 캠핑카째로 용암에 잠길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보호계 헌터들의 실드를 믿고 머무르기로 했다.
물론 그들이 신뢰하는 건 같은 팀 헌터들보다는 미지에 싸인 윤서였지만.
“아, 윤서 씨.”
마침 보호계 헌터들과 실드를 점검하고 온 윤서가 캠핑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박수빈이 얼른 그에게 달려갔다.
“윤서 씨도 포션 먹어요. 석영은 마력 포션 항상 넉넉히 구비해 두기 때문에 아끼지 않아도 돼요.”
“먹었습니다.”
“안 먹었던데. 팀원들이 사용한 개수 다 세어 보고 경험치도 계산해 봤어요.”
“…안 먹어도 됩니다.”
“아직도 마력이 남는다는 말이에요…?”
길드석에 유지 시간이 만 시간이 넘는 실드를 만들고, 지금 이 땅에도 그와 비슷한 것을 생성하고 온 사람이다. 그럼에도 마력 포션을 먹지 않아도 된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풍족하게 남는 건 아니고요. 부족하다 싶으면 알아서 꺼내 먹겠습니다.”
윤서가 덧붙였다.
솔직히 그의 마력은 심각한 상태였다. 진입 때부터 100%가 아니었고, <수호의 궤>를 사용할 때 빡쳐 있던 나머지 너무 풀 화력으로 돌리는 바람에 마력을 20%나 소모했다. 그럼에도 웬만한 S급 헌터보다는 많은 양이기에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꼭 그래야 해요.”
“네, 수빈 씨도 챙겨 먹으세요.”
“그럼요. 전 이미 마력 빵빵하게 채워 놨어요.”
박수빈이 싱긋 미소 지었다.
“잘 자요, 윤서 씨. 비록 오래는 못 자겠지만.”
“다섯 시간이면 충분히 오래죠. 수빈 씨도 잘 자요.”
“윤서 형, 이제 들어가요? 굿 나잇. 좋은 꿈 꿔용.”
“좋은 꿈 꾸게나.”
윤서가 캠핑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수재희와 알렉도 인사를 건네 왔다. 윤서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재희 씨도 잘 자요. 알렉 헌터도.”
윤서는 모두와 인사를 마치고 캠핑카에 들어갔다. 권지한이 침대에 걸터앉은 채 허공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 중이었다. 아마 시스템 창을 보는 듯했다. 윤서는 바로 침대에 누우려다가 아차, 하고는 침대 옆에 섰다.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무릎을 구부렸다가 다시 허리를 세웠다. 양팔은 앞쪽으로 곧게 뻗은 채였다. 그 동작을 반복하는데 권지한이 그답지 않게 황당한 어조로 물었다.
“형, 뭐 해? 내 관심 끌기?”
“오늘치 스쿼트 합니다.”
“와. 스쿼트. 엄청난 운동을 하네. 혹시 매일매일…?”
“되도록 매일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몸매가 군살 없고 탄탄한 이유가 있었네.”
윤서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완벽한 신체를 지닌 권지한의 칭찬에 윤서는 민망해졌다.
“나도 형 몸매 부러우니까 해야겠다.”
권지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윤서의 옆에서 똑같은 자세로 스쿼트를 했다.
죽음의 신이 ‘권지한’을 칭찬합니다.
조만간 권지한에게 가호 신이 하나 더 생기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칭찬할 만했다. 한두 번 하는 게 아닌지 자세가 스쿼트 교과서에 실려도 될 정도로 곧았다. S급이면 일부러 운동하지 않아도 신체가 가장 컨디션 좋은 상태로 유지되게끔 하는 특성이 있어서 운동에 게으른 S급들도 많은데, 권지한은 역시나 다른 S급들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정의롭고 선한 데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해?’
윤서는 속으로 한탄했다.
이런 점까지 마음에 들어서… 마음에 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