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67)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67)화(67/195)
#60
“러닝이라. 본래 그렇게 아침 러닝을 하는 편인가?”
“네, 알렉 헌터도 하시죠.”
“사양하도록 하지. S급은 운동할 필요가 딱히 없으니. 내 동생이 살아 있을 적에는 동생의 성화에 억지로 달려야 했지만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내 동생이 자네를 보면 아주 흡족해하겠군.”
“그렇군요. 그럼 이만.”
“…….”
윤서는 그대로 캠핑카 안에 들어갔다. 권지한이 씻고 있어서 기다려야 했다.
씻고 나온 권지한은 머리칼을 말리면서 형은 달릴 때 자세도 좋더라, 엉덩이가 올라붙고 속도도 일정하니 어쩌니, 앞으로는 같이 러닝하자 등등 주절거렸다. 윤서는 일절 반응하지 않고 씻고 나왔다.
의복을 갖추고 캠핑카를 나오는데 앞에 알렉이 있었다. 아까 그 자세 그대로. 표정은 조금 뾰로통했다….
“윤서 군, 물어봐 주게.”
“뭘요?”
“내 동생. 아까 내 동생에 대해 물어볼 타이밍이었잖나. 어떻게 그냥 그렇게 들어가 버릴 수가 있나. 정말 매몰차기 이를 데 없네.”
“…….”
사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 하는 타이밍은 모르세요, 아저씨?
조금도 궁금하지 않은 얘기를 왜 해야 하는가.
한숨 쉬는 윤서 옆에서 권지한이 길드 아공간에 캠핑카를 넣으며 말했다.
“알렉 헌터의 동생은 아주 멋진 사람이지. 나도 존경하고 있어.”
그 가벼운 말에 윤서는 순식간에 호기심이 치솟았다. 터지기 직전의 폭탄을 제 몸으로 감싸 안는 엄청난 인간이 직접 존경한다고 말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명한 사람인가요? 뭐 하는 분인데요?”
알렉을 보며 묻자 그가 대답했다.
“나보다 열 살 어린, 우리 집 늦둥이 막냇동생인데 10년 전 리벤저에도 들어갔지. 운동 마니아라서 각성 전에도 후에도 운동하라고 얼마나 들들 볶던지, 나도 그 애가 옆에 있을 때는 매일 아침 조깅에다가 밤마다 스쿼트도 해야 했네.”
“리벤저….”
생각 못 한 단어에 윤서의 머리가 띵해졌다. 윤서가 중얼거리자 알렉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그래, 그 리벤저. 우리 집안의 자랑이라네. 그 애 이름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군. 이름이-.”
“리타 스위치?”
생명의 신이 익숙한 이름에 그리움에 잠깁니다.
“리타…. 오, 알고 있었나?”
알렉이 반색했다. 한국인은 잘 모르는데 어떻게 아느냐며 신기해했고, 또 반가워했다.
“헐, 아저씨 동생이 리벤저였어요? 대박.”
“뭐? 누구 동생이 리벤저였다고?”
“알렉 스위치 헌터 동생이 리벤저래요.”
“나는 알고 있었는데.”
“저희는 몰랐는데요. 알렉 헌터, 조금 더 자랑하지 그랬어요.”
알렉의 동생이 다름 아닌 그 리벤저였던 소식은 빠르게 퍼져서 출전 준비 중이던 헌터들이 금세 왁자지껄 떠들어 댔다. 알렉은 코가 하늘 높이 솟구친 채로 막냇동생의 자랑을 해 댔다. 각성 전부터 범상치 않은 녀석이었다고, 위인전처럼 이야기를 시작하는 알렉을 윤서가 가슴을 들썩이며 보고 있었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윤서는 리타의 오빠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리타 누나가 그쪽 동생이었어요? 하, 씨. 내가 누나 유언 때문에 10년 동안 얼마나 개고생하고 있는지 압니까? 죽으면서 스쿼트 3백만 회, 러닝 5천 회 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는 미친 인간이 어디 있어. 막내가 운동광이 되어 가는 동안 가족은 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냐고요!’
아직도 눈앞에 선명했다. 그때 리타 스위치는 며칠 굶어 쇠약해진 상태에서 독 몬스터에게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내장을 다 쏟아 낼 듯 토해 낸 피로 범벅이 된 리타는 윤서의 품 안에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채윤아…. 나는 소원이 있어….’
‘여길 나가면 꼭 이루고 싶었는데 이젠 가망이 없는 것 같아. 네가 대신 이뤄 줄래…?’
그렇게 탄생한 유언이 바로 이것이었다.
스쿼트 3,000,000회, 러닝 5,000회.
장난하나? 주위에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서채윤을 콕 집어서 남겼고, 평소에는 한국어가 서툴더니만 그 순간에는 무슨 수없이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유창해서 잘못 들은 척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리타 스위치…. 알렉 스위치. 스위치란 성이 흔한가 했더니만 남매였어.’
윤서는 동생 자랑에 여념 없는 알렉의 등을 바라봤다. 사람이 운동광이 되는 걸 지켜보기만 했냐고 멱살을 잡고 싶었으나, 어째서인지 몹시 작아 보이는 등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살집 있는 중년인인데, 슬픈 분위기는 전혀 없이 기쁘게 자랑 중인데 왜 이렇게 작아 보이는 걸까. 윤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형제가 있어.’
‘남동생이요, 오빠요?’
‘오빠. 그도 S급인데 던전엔 들어오지 않았어. 밖에서 세상을 지킨다고 말했어.’
‘좋은 분이네요.’
‘좋은 분 아니다. 게을러서 운동을 하지 않아. 러닝과 스쿼트는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육체가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해진다. 채윤이, 너도 운동을 해라. 운동을 하다가 죽어라.’
그러고 보니 오빠 얘기도 더러 했었다. 결국 운동 강요로 귀결되어 기억에는 별로 남지 않았지만.
“우리 먼 친척 중에도 리벤저 한 명 있어요. 막내 외삼촌의 처가의 장남의 사돈의 막내아들이 이강훈 헌터래요.”
“이강훈 헌터가 삼촌이라고? 그걸 왜 이제 말해?”
“저도 아는 사람이 리벤저예요. 제 고등학교 선생님인데 심시환이라고 S급 치유계 각성자였어요.”
“뭐야. 여기 리벤저와 친분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어?”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계속 리벤저 얘기였다.
윤서가 마지막 모습을 아는 사람도, 마지막 모습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강훈은 윤서에게 직접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심시환은 윤서와 다른 전장에서 치열하게 전투하다가 사망했는데 그 직전 유언을 남겼다고 했다.
‘채윤아. 시환이 형이 죽기 전에 너한테 전해 달랬어.’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윤서와 다른 곳에서 싸우다가 죽었는데, 유언은 꼭 서채윤에게 남겼다.
둘의 유언은 이러했다.
채윤아, 일기장 최소 다섯 권 채워 줘.
채윤이한테 낙엽 책갈피를 300개 만들라고 전해 줘.
아니, 이런 사소한 내용이면 그냥 아무한테나 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꼭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면서까지 나한테 남겨야 했냐고.
윤서는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일기를 썼고, 낙엽을 줍고 다녔다.
두 사람의 유언은 해결했으나 리타 스위치의 유언은 아직 한참 남았다. 아마 가장 마지막에 끝나지 않을까 싶었다. 알렉에게 당신 동생의 유언을 같이 좀 분담하지 않겠느냐며 짤짤 흔들고 싶은 걸 윤서는 간신히 참았다.
***
식사가 끝나고 출정 준비에 들어갔다. 2팀 팀장이 길드 아공간의 비행 아이템을 점검하는 사이 윤서는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냈다. 두 알을 꿀꺽 삼키자 옆에서 박수빈이 물을 건넸다.
“물이랑 같이 마셔요.”
“감사합니다.”
윤서는 사양하지 않고 물을 들이켰다. 다시 물병을 건네받은 박수빈은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어제랑 오늘 약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네요.”
“B급이 S급 옐로우 던전에 강제로 왔으니 많이 먹을 수밖에요.”
“윤서 씨, B급 아니잖아요….”
“이 새끼는 아직도 B급 타령이야. 그 실드를 보여 놓고 우리가 다 자기처럼 멍청한 줄 아는 건가.”
홍의윤이 툴툴대며 지나갔다. 맞는 말이라 윤서는 아무 대응도 못 했다.
“하늘이시여. 제발 저 험악하고 건방진 자식이 서채윤 님이 아니게 해 주소서….”
옆에서 알렉이 탄식 어린 기도를 했다.
윤서의 시야 구석에 어제보다 한층 더 무거워진 얼굴로 신경 안정제가 분명한 약을 먹는 화심이 들어왔다. 윤서는 뭐라고 말이나 건네 볼까 하다가 지금 얼마나 마음이 안 좋겠나 싶어서 그만뒀다.
준비가 끝나고 다 같이 날아올랐다. 날아오르자마자 실드를 해제하니 용암 위에 떠 있던 섬은 곧바로 가라앉아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쪽으로 곧장 가면 5분 후에 몬스터 무리를 맞닥뜨릴 거예요.”
“가자. 출발!”
한가롭던 얼굴들에 일제히 긴장감이 서렸다. 경험 많은 헌터들이니 만큼 여유 부릴 때와 아닐 때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었다.
“형, 형. 윤서 형.”
여유 부릴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권지한이 등 뒤에 달린 앙증맞은 검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윤서에게 다가왔다. 저 날개는 크게도 만들 수 있고 작게도 만들 수 있는 모양이었다.
“형, 주머니에는 뭐가 들었어? 구경 좀 시켜 줘.”
“지금 말입니까?”
“응.”
“5분 후면 전투라는데요.”
“그게 왜?”
권지한이 회색 눈을 깜빡깜빡했다.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다. 윤서가 어이없어서 쳐다보는데 옆에서 낯선 외국어가 들렸다. 제 남자 친구와 끌어안은 채 열기구 벽에 기대 있던 로렌스 밀레였다.
윤서는 그녀의 말이 끝난 후에 물었다.
“로렌스 헌터, 뭐라고 했습니까?”
“아.”
로렌스가 자동 통역기를 켜고 다시 말했다.
“우리도 궁금했어. 특히 그 상의 앞주머니는 뭐가 들었길래 그렇게 빵빵한 거야?”
리오 델리도 옆에서 궁금하다는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앞주머니 중 어떤 거요?”
“왼쪽 아래.”
“아, 이건 수류탄입니다.”
“미친. 누가 수류탄을 그런 주머니에 넣고 다녀? 우리 다 죽이려고 작정했어?”
“괜찮습니다. 수류탄이 터지려고 하면 권지한 헌터가 번개처럼 등장해서 본인을 희생하고 우리 모두를 구할 테니까요.”
“…….”
저 권지한한테 이딴 드립을 친다고? 커플은 두려움에 질렸는데 정작 권지한은 웃음을 터뜨렸다.
“재밌네. 다른 주머니에는 뭐 있어?”
“정말 귀찮게 하는군요.”
윤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서 장비 리스트를 읊었다.
“손전등, 붕대, 연고, 반창고, 주머니칼, 노트, 펜, 나침반, 얇은 패딩, 우산, 우비, 초콜릿바, 껌, 사탕, 약병 세 개, 스톱워치 기능이 있는 시계가 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