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69)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69)화(69/195)
#62
권지한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 다른 이들과 달리 여유만만이었다.
“열기구 내구도는 얼마나 남았어?”
“1% 남았습니다.”
“그럼 우리 형은 내가 안아 줄까.”
“그쪽은 싸워야죠.”
“형 정도는 안고 싸울 수 있어.”
윤서가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스킬 <염력>을 사용합니다.
그는 열기구 안에서 권지한만 눈치챌 수 있게끔 슬쩍 공중으로 떠올랐다.
권지한은 놀라지도 않고 담담한 눈으로 윤서를 바라봤다.
“그럼 이제 슬슬 나서는 게 어때?”
“…….”
“싸우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사람들 비행이나 어떻게 좀 해 보라는 거야. 숨겨진 스킬을 쓰든가, 숨겨진 아이템을 쓰든가. 이 사람들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아닐 거 아냐.”
주위가 조용해졌다. 길드원들이 둘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멀리서 몬스터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홀로 행군을 저지 중인 알렉이 어떤 스킬을 사용한 건지 펑, 펑 터지는 소리가 났다.
윤서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권지한이 이어서 말했다.
“솔직히 나는 이 던전의 모든 몬스터를 혼자 해치울 수 있어. 하지만 이 사람들은 보호하지 못해. 보스를 찾아 죽이는 사이 사람들이 다 용암에 떨어져 죽어 버리면 아무 의미 없잖아. 나는 살아서 나가겠지만 그런 생존은 정말 비참하겠지.”
“…….”
죽음의 신이 ‘권지한’에게 흥미를 갖습니다.
생명의 신이 슬픔에 잠깁니다.
윤서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동료들이 다 죽어 버린 던전의 클리어가 무슨 의미겠나.
그런 생존은 정말 비참하다는 걸 누구보다 윤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그따위로 생존해 버렸으니까.
윤서는 항상 생각했다. 권지한은 저렇게 보여도 언제나 옳은 말만 한다고.
“그럼 부탁할게, 형.”
권지한은 윤서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뒤돌아서 훌쩍 날아갔다. 몬스터들에게 향하는 것이다. 수재희도 잠깐 윤서를 쳐다본 후 권지한을 따라 날아갔고, 커플도 스킬을 사용해 날아오른 뒤 팀원들의 뒤를 따랐다. 그 외 비행에 여유가 있는 헌터들도 눈치를 보면서 몬스터들에게 향했다.
크아아아악!
A급 몬스터들이 흉포하게 괴성을 내질렀다. 펑, 퍼엉. 폭음과 함께 번쩍번쩍하는 불빛이 보였다.
“아, 씨.”
홍의윤도 가고 싶어 했으나 화심을 안고 있어서 어쩌지 못하고 욕만 내뱉었다. <구운몽>의 선녀들 또한 소환사에게 가고 싶은지 시선은 계속 저쪽에 향해 있었다.
“윤서 씨.”
박수빈이 다가왔다. 박수빈 또한 내구도가 5% 남은 아이템으로 비행 중이었다. 그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한 눈빛이었다.
“저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힐러가 한 명은 있어야 해요. 저는… 윤서 씨가 강한 힘을 숨겼다고 한들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비행할 방법이 있다면 저라도… 저들을 도울 수 있게.”
“아뇨.”
“네?”
“전부 다 가도록 하죠.”
윤서가 눈을 깜빡였다. 그의 갈색 눈에 푸른 빛이 감돌았다.
스킬 <테라포밍>을 사용합니다.
윤서의 주위에서 푸른 마력이 퍼져 나갔다. 그 빛은 순식간에 저 멀리까지 물결치듯 뻗어 간 후 사라졌다. 실드인지, 어떤 종류인지 사람들이 파악도 못 하는 그때 윤서가 열기구 밖으로 뛰어내렸다.
“헉!”
“윤서 씨, 용암이…!”
박수빈이 급히 날아갔으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윤서는 땅 위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그는 대지 위에 서 있었다.
붉은 용암 위에 생긴 그 땅은 처음에는 한 사람만 설 수 있는 작은 넓이였으나 박수빈과 길드원들이 숨을 삼키며 놀라는 그 몇 초 동안 순식간에 범위를 넓혀 갔다. 용암은 굳고 그 굳은 자리를 흙이 덮었다. 풀과 꽃이 돋아났다. 유독 가스로 가득 찬 탓에 정화하면서 나아가야 했던 대기가 이제 먼 곳에서 전투 중인 S급 헌터들이 보일 정도로 맑아졌다.
가이아 시스템이 던전 내 각성자들에게 알립니다.
던전이 <테라포밍> 되고 있습니다.
완료 시 지구와 동일한 환경을 갖습니다.
<테라포밍> 10% · · ·
<테라포밍> 50% · · ·
<테라포밍> 80% · · ·
<테라포밍> 100% · · ·
던전이 지구화되었습니다.
얼마 만에 밟아 보는 땅인가. 맑고 깨끗한 공기에 윤서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양팔로 허리를 짚고 스트레칭을 몇 번 했다. 그는 다음 위를 향해 눈짓했다.
안 내려오고 뭐 해요? 라는 시선이었다.
“하…. 대체….”
너무 놀라서 얼어붙어 있던 박수빈은 허탈한 탄식을 내뱉고는 비행 아이템을 해제했다.
그는 대지 위에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경악에 물들어 있던 길드원들이 하나둘 땅 위로 내려섰다.
“<테라포밍>이란 스킬은 들어 본 적도 없어요….”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다니….”
“야, 너. 씨발. 대체 뭐 한 거야.”
홍의윤이 화심을 던지듯이 내려놓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싸움을 거는 듯한 기세에 박수빈이 얼른 가로막고 섰다.
“어?”
그때 모두가 행동을 멈췄다. 시스템 메시지가 또다시 올라왔기 때문이다.
가이아 시스템이 던전 내 모든 각성자들에게 알려 드립니다.
던전의 <테라포밍>이 완료되어 이제부터 이 던전은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갖습니다.
단, 행성의 토종 자연 환경 보호를 위해 가이아 시스템이 <테라포밍>에 시간 제한을 두고자 하니 각성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테라포밍> 적용 시간 09:59:59
“행성의 토종 자연 환경 보호…?”
“아니, 잠깐. 가이아 시스템이 양해라는 표현을 사용했어?”
윤서는 대던전에서도 <테라포밍>을 사용했기에 이런 메시지가 올라올 거라는 걸 알아서 놀라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다.
생명의 신이 가이아 시스템의 쩨쩨함을 비난합니다.
죽음의 신이 가이아 시스템을 향해 구두쇠 시스템이라고 부릅니다.
생명의 신이 구두쇠 시스템에 대한 소문을 널리 알립니다.
죽음의 신이 구두쇠를 맹렬하게 비난합니다.
가이아를 향한 죽음의 신과 생명의 신의 비난이 쏟아집니다.
가이아가 메시지를 적고 있습니다 · · ·
가이아 시스템 전체 메시지입니다.
가이아 시스템은 쩨쩨한 시스템이 아닙니다.
가이아 시스템이 양해에 대한 고마움으로 ‘던전 클리어 시 얻는 경험치 X 2’ 귀속 아이템을 모두에게 선물합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하세요.
‘와, 가호 신들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네. 옛날에는 아이템 선물 같은 것도 안 해 줬으면서.’
윤서는 인벤토리에 들어온 아이템을 바로 사용했다. 경험치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쓸데없이 아이템을 아낄 이유도 없었다.
“이게 무슨….”
“하아….”
사람들이 하나같이 황홀경에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윤서를 바라봤다. 아득하게 먼 곳에 있는 거룩한 것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지금은 한가롭게 정체에 대해 묻고 답할 때가 아니었다.
“모두 <테라포밍>의 적용 시간을 보셨을 겁니다. 10시간 내에 끝내도록 하죠.”
윤서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렸다.
스킬 <해치의 야성>을 사용합니다.
40km 반경 내의 모든 몬스터가 크게 겁을 먹습니다!
범위 내 몬스터 공격력과 방어력이 대폭 하락합니다!
크아아악!
저 먼 상공에서 몬스터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추락했다. 그 괴성이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사람들은 궁금한 게 많았으나 윤서의 말대로 일단 지금은 전투가 중요했다.
“모두 돌격!”
“네!”
박수빈이 아공간에서 탈것을 꺼냈고, 재빨리 올라탄 헌터들이 교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
윤서는 허리를 두 손으로 짚은 채 가만히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보스까지 죽이고 나면 <거짓 기억>을 사용해야지.’
윤서도 믿는 바가 있어서 힘을 드러낸 것이었다. 윤서는 자신의 스탯 창을 체크했다.
체력 4010/8101
마력 1099/9999
<테라포밍> 때문에 마력이 많이 소모되기는 했으나 모두에게 <거짓 기억>을 사용할 만큼은 남아 있었다.
다만 권지한이 혹시라도 <거짓 기억>을 막아 낸다면….
그때는 그에게 정말 S급이라는 걸 밝혀야 한다. 윤서는 그것까지 각오했다.
이 사람들이 유언을 남기고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리고…….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권지한에게는 들켜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가 알게 되더라도 귀찮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확신의 저울>의 계약과는 별개로 그는 윤서가 원치 않은 상황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다 싶으니까 이렇게 바로 마음의 문을 열어 버리네.’
권지한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마음의 문을 벌컥 열어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 너무 심하게 열어 버린 건가 싶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본래 사람 마음이란 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헌터들이 모두 합세했으니 교전은 곧 끝날 거야.’
그는 목깃의 바디 캠을 떼어 버리고 인벤토리에서 ‘왕 큰 새 알’을 꺼냈다. 마력을 주입하려는 건 아니고, 벌써 일주일이나 쓰다듬어 주지도 못했기에 꺼낸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그간 꺼내지 못했는데, 다들 전투 중이니 이쪽에 신경 쓰지 못할 터였다.
‘여기 나가고 휴가 받으면 마력 마음껏 줄게. 조금만 참아.’
윤서는 햅쌀이를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졌다.
“…….”
윤서는 몰랐으나, 멀리서 전투 중인 헌터 한 명이 윤서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크아악!
서걱, 감히 저에게 덤비는 몬스터의 머리를 대검으로 단번에 잘라 낸 그 헌터는 바로 권지한이었다.
그의 입술은 단단히 닫혀 있었고, 금빛이 넘실거리는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맴돌았다. 궁금해했던 윤서의 본실력이 일부분 드러났는데도 좋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만약 윤서가 정말 서채윤이라면….
‘나는 살아서 나가겠지만 그런 생존은 정말 비참하겠지.’
그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