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7)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7)화(7/195)
#06
삐걱거리는 철문을 열고 나오자 이 구역의 마지막 실드 트랩을 설치 중인 두 사람이 보였다. 땀 흘리면서 열심히 트랩에 마력을 불어 넣고 있었다. 오늘은 주말이고, 벌써 해가 지고 있는데 불만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윤서는 돈도 안 되는 일에 열심인 바보들에게 다가갔다.
“어? 오빠. 쉬라니까요.”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드라마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윤서가 트랩에 손을 얹었다.
스킬 <수호의 궤>를 사용합니다.
실드 트랩에 <수호의 궤>를 저장합니다.
이 공간을 아주 강한 충격으로부터 보호합니다.
그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윤서가 가진 스킬 중에는 사용할 때 눈이 푸른 빛을 띠는 것들이 있는데 <수호의 궤>도 그중 하나였다. 윤서는 일부러 눈꺼풀을 내리깔아서 박영범과 고희원은 보지 못했다.
“우와아….”
“역시 윤서 씨, 우리 길드 에이스.”
둘은 쪽방촌 일대를 순식간에 덮는 규모에 연신 감탄했다.
정부와 계약한 등급은 B급 방어였으나 이제 이 쪽방촌은 S급 실드 트랩을 갖게 되었다. 일이 터졌을 때 쪽방촌이 도로 건너 있는 높은 건물들보다 온전하면 의심받겠지만….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어.’
윤서는 10년간 이런 일을 몇 번이나 저질렀지만 들키지 않았다.
“이거 고유 스킬 맞죠? 무슨 스킬이에요?”
“그냥 방어막 생성 스킬이에요.”
“역시 힘을 숨긴 헌터…. 방어막 고유 스킬을 가진 B급 헌터에 마력도 넘칠 만큼 많다니. 우리 길드장님은 어디서 이런 인재를 영입했을까. 혹시 윤서 씨도 막 연봉이 몇백억이고 이런 건 아니지?”
“유감이지만 아닙니다. 그러는 팀장님 연봉이야말로-.”
“또 내 얘기로 돌리려고 하네. 이제 윤서 씨의 그런 방식은 안 통해.”
“…….”
“희원 씨, 우리 합병식 날 누가 시비 털면 윤서 씨의 엄청난 방어막 스킬을 보여 주자.”
“좋아요! 윤서 오빠랑 수빈 오빠만 있으면 우리도 합병식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죠. 아무도 우릴 얕보지 못할 거예요.”
“그렇겠지. 우린 윤서 씨 옆에만 붙어 있자.”
“제 의견은요?”
“맞아요. 찰싹 달라붙어 있어요.”
“제 의견은?”
윤서의 말은 처참하게 무시당했다. 박영범과 고희원은 신체 나이는 스무 살 차이인데 정신 연령은 비슷한 것 같았다.
***
서울시 강남구, 석영 길드 길드장실. 한여름이란 계절이 무색하게 서늘한 공기 속에서 심각한 얼굴로 업무 중이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창백한 미간에 주름이 만들어진 이유는 조금도 배려 없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영 길드장 집무실에 이렇게 당당하게 접근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유준철이 안경을 벗는 것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고, 그곳에는 역시나 예상했던 남자가 서 있었다.
넓은 어깨에 탄탄한 체격, 새카만 머리와 회색 눈, 양쪽 귀에는 피어스를 한 이십 대 초반의 어린 남자. S급 헌터 권지한이었다. 분명 잘생긴 외모지만 삐뚜름한 입꼬리나 서늘한 눈매, 껄렁껄렁한 태도 등에서 사납고 반항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합병할 길드 선택 끝났다며?”
권지한은 제집 안방에 들어가듯 성큼성큼 들어와 가죽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제발 인사부터 하자, 좀. 한 달 만에 봤잖아.”
“리스트 줘 봐.”
스물둘밖에 안 된 놈이 대통령마저도 한 수 접고 가는 세계 1위 길드의 길드장에게 반말을 날리며 턱을 까딱했다. 안 그래도 창백한 유준철의 낯빛이 더욱 희게 질렸다.
하긴 이 녀석은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에도 이랬다. 어린 것이 얼마나 되바라졌는지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깡패들한테도 바락바락 대들어서 많이도 얻어맞았다. 성질 좀 죽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수그러드는 일이 없었다. 만약 각성하지 않았다면 동네 깡패들한테 맞아 죽었을 것이다.
유준철은 이마를 잠깐 짚었다가 이 녀석이 집무실을 엉망으로 만들기 전에 보고 있던 태블릿을 던졌다.
“자, 실컷 봐라.”
권지한이 가볍게 잡아챘다.
“어디 보자. 서채윤은 어디 숨었나.”
씨익 웃으며 화면에 손가락을 갖다 대는 모습이 소악마 그 자체였다.
유준철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 권지한의 맞은편에 앉았다.
“같이 봐.”
“귀찮게.”
“그거 다 내가 조사한 거다, 이 녀석아.”
권지한이 못마땅한 듯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손가락을 휙 올렸다. 태블릿 화면이 그들 사이에 3D 화면처럼 펼쳐졌다. 한때 영화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던 이것은 던전 부산물과 인류의 과학 기술이 이루어 낸 성과였다.
두 사람은 함께 리스트를 훑었다.
No.1
박강 (29세/180cm/80kg)
등급: A급
헌터 네임: 암향
소속: 무향
No.2
이정인 (28세/176cm/66kg)
등급: B급
헌터 네임: 페이지
소속: 세정
No.3
화심 (28세/190cm/89kg)
등급: C급
헌터 네임: 화심
소속: 화심
No.4
윤서 (29세/175cm/60kg)
등급: B급
헌터 네임: 없음
소속: 낙엽
No.5
홍의윤 (27세/178cm/65kg)
등급: A급
헌터 네임: 헬파이어
소속: 엔드파이어
No.6
김진해 (27세/172cm/60kg)
등급: C급
헌터 네임: 없음
소속: 멸하는 자
No.7
남궁심해 (29세/189cm/82kg)
등급: A급
헌터 네임: 딥블루
소속: 딥블루
“총 일곱 명이야?”
“다 추리니까 일곱 명 남더라.”
“꽤 많네.”
“본래 백 명 넘었는데 이 정도로 줄인 거야.”
석영 길드는 재작년부터 모종의 이유로 서채윤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수색 관련 스킬을 가진 헌터들에게 협조를 받았는데, 서채윤이 대체 어떤 방법으로 방어하는지는 몰라도 S급 스킬에도 탐지되지 않아 실패했다. 다음 수단은 아이템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석영은 다수의 공략 팀을 S급 던전에 보내 힘겹게 S급 수색 아이템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서채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유준철이 고안해 낸 마지막 방법은 바로 막노동이었다.
유준철은 서채윤 추적 팀을 만들고, 그에 대해 유일하게 알려진 정보인 활동 시기 나이 ‘10대 후반’이라는 점을 이용해 후보를 모았다. 스물일곱, 스물여덟, 스물아홉 살 남성 헌터가 백 명이 넘었다. 이들 중 서채윤 활동 시기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는 자들은 제외했는데, 아포칼립스 이전의 자료는 대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에 삼십 명이나 남았다. 여기서 또 빅 데이터로 분석한 서채윤의 성격과 크게 어긋나는 자들을 제외하자 열두 명이 남았다.
추적 팀은 열두 명에게 전담 마크를 붙였다. 한 명당 한 명씩, 후보자가 소속된 길드에 입사시켜 뒷조사하고, 후보자가 1인 길드인 경우에는 옆집에 잠입시켰다. 그렇게 1년간의 조사를 토대로 등록된 등급보다 높은 능력을 보이는 이들만 남겼으니 바로 이 일곱 명이었다.
“이 정도로 줄이느라 힘들었어. 찾긴 찾아야 하는데, 라 비지나 헌터도 그렇고 우리 길드에서 유일하게 서채윤을 아는 인간도 무슨 계약서 때문에 절대로 발설하면 안 된다기에 고생 꽤 했다. 하필 우리 길드가 세계 1위 길드라 이 고생이냐고. 왜 우리보다 더 강한 길드는 없냔 말이야.”
유준철이 한탄했지만 권지한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사진을 구경했다.
“키랑 몸무게는 뭐 하러 표기해 놨어?”
“10년 전 서채윤이 나온 영상을 분석했을 때 175cm, 58kg 정도로 나와서 참고 겸 표기한 거야.”
“어떻게 참고가 돼. 변장 아이템이랑 스킬이 얼마나 많은데. 나도 하나 갖고 있잖아.”
권지한이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얼굴이 많이 알려진 권지한은 변장 아이템을 이용해 모습을 바꾸고 바깥을 돌아다니곤 했지만 체형은 속이지 않았다. 반면 어떤 헌터는 항상 키를 키우고 활동해서 대중은 그 키가 진짜 키인 줄 알았다.
유준철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마주하듯 혀를 찼다.
“또 여기서 세대 차이 나네. 10년 전에는 변장 아이템이나 스킬, 전파 방해 장치 같은 게 없었어. 수제작한 가면으로 얼굴만 간신히 가렸지. 그것도 전투하다가 깨질 때도 있어서 안에다 커다란 마스크까지 하고 다녔단 말이야.”
“와, 난 조선 시대에나 그런 줄 알았는데.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어?”
“넌 진짜 좋은 세상에서 사는 줄 알아. 나 때는 인벤토리도 없어서 하나하나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녔고, 던전에서는 탈 것도 없어서 두 발로 뛰어다녔어. 간파 스킬 이딴 것도 없으니까 요만한 몬스터 하나 상대할 때도 전력을 다해야 했는데… 내 말 듣고 있냐?”
“아니.”
유준철은 권지한이 손가락으로 귀를 후벼 파는 걸 보고 말을 멈췄다.
모두가 세상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던 게 고작 10년 전이었는데, 가이아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인류 문명의 급격한 성장으로 이제는 그때가 마치 100년 전 같았다. 그 당시 고작 열 살이었던 권지한으로서는 다 재미없는 얘기로만 들릴 터였다.
“하여튼 요즘 것들이란.”
“나이는 어떻게 조사했어? 시스템 프로필 나이를 속이면 어떡하려고.”
“마침 적절한 아이템이 하나 나왔잖아.”
유준철이 인벤토리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겉으로는 무테안경으로밖에 안 보이는 이것은 작년에 권지한이 S급 던전에서 습득한 아이템이었다.
‘너와 나는 몇 살 차이?’
등급: C급
오직 당신만을 위해 가이아 시스템이 준비한 따끈따끈한 신상.
상대의 나이가 궁금하다면 이 안경을 쓰고 보세요.
(시스템 알림) 10/10 허용 횟수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등급은 낮지만 설명에 ‘오직 당신만을 위해’가 붙어 있어. 세상에 하나뿐인 유니크 아이템이란 뜻이지. 그리고 ‘따끈따끈한 신상’이니까 서채윤은 이 아이템 방어 능력이 없을 거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아이템이 나와 줬지.”
“어쩐지 이거 보고 눈을 번뜩이더라니.”
권지한도 기억이 났다. 던전 습득물을 보고하면서 이 아이템을 내던지자 유준철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C급이고 딱히 필요도 없는 아이템이라 줬는데 그걸 서채윤 찾기에 이용했던 것이다.
“잘 썼어. 너 다시 줄까?”
“갖다 버려.”
유준철이 피식 웃으며 손아귀에 힘을 줬다. 안경이 파스스 부서졌다. 이미 제한 횟수를 모두 사용했기에 더는 필요 없는 아이템이었고, 유준철은 이미 애용하는 안경이 있었다.
권지한은 다시금 리스트를 훑었다.
“일단 프로필상 체형으로 봐서는 이정인이나 윤서라는 사람이 제일 가능성 있네. 스킬로 보면 공격계 스킬 가진 네 명이 가능성 있고. 형이 생각하는 확률 높은 후보는 누구야?”
유준철이 한 명을 가리켰다. 까만 곱슬머리에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을 가진 남자였다. 사진으로만 봐도 무뚝뚝한 성격인 게 느껴졌다.
“화심. 등록은 B급 보조계로 되어 있는데, 화염 스킬을 가진 걸 우리 쪽 헌터가 확인했어. 말수는 적은 편. 서채윤이 사라지고 딱 한 달 후 등장했지.”
“불이라. 그거 좋지.”
“홍의윤도 요주의 후보야. 전격과 화염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공격력이 강해. 혼자서 B급 던전을 클리어했으니까 A급 헌터 중에서도 굉장히 상위권으로 볼 수 있지. 성격은 조금 다혈질이라 우리가 아는 서채윤이랑은 다르지만 10년이나 지났으니까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잖아. 일단 빅 데이터로 성격이 걸러지지 않았고.”
“전격과 화염. 기대되네.”
권지한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후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