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70)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70)화(70/195)
#63
“야, 너. 뭔데.”
“…….”
“내 말 안 들려? 너 대체 뭐냐고!”
“뭐가 말입니까.”
“그 스킬 말이야. <테라포밍> 씨발, 네 프로필에는 없는 스킬이잖아. 대체 어떻게 속였어? 너 진짜 S급이야?”
“제 각성 등급이 S급인지 아닌지보다는 던전 공략에나 집중하시죠. <테라포밍> 이제 9시간밖에 안 남았습니다만.”
다른 길드원들은 그래도 공략이 우선이라고 윤서에게 당신 정체가 뭐냐, 그건 대체 어떤 스킬이냐 같은 질문을 뒤로 미뤄 뒀는데 홍의윤은 역시나 참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길드원들은 제 할 일을 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이쪽을 힐끔거렸다.
“던전 공략 핑계 대지 마, 이 새끼야.”
홍의윤이 멱살을 잡을 듯 손을 뻗어와서 윤서가 슬쩍 피했다. 그러자 홍의윤이 인상을 확 썼다.
“어차피 지금은 보스 몬스터 발견하기 전까지는 할 것도 없잖아. 빨리 다 안 털어놔?”
“뭘 털어놓으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생각해 보면 그날 전시회장에서도 사실 네가 어떻게 한 거 아니야? 유지 시간이 1만 시간이 넘는 실드도 쓰는데 양평군 면적 정도는 가뿐하겠지. 폭탄이 터지기 전 미리 알고 저 권지한을 애타게 부르짖기도 했고.”
윤서의 얼굴이 구겨졌다.
“애타게 부른 적 없습니다.”
“사실 서채윤이 왔던 게 아니라 네가 실드를 만든 거거나. 아니면….”
홍의윤이 그답지 않게 망설이다가 물었다.
“너 설마 서채윤이야?”
“아닙니다.”
윤서의 확답에 어째서인지 홍의윤의 동공이 파르르 흔들렸다. 그러다 곧 그는 보란 듯이 반항적인 눈매를 했다.
“사람들이 아등바등할 때 두 손 놓고 있다가 뒤늦게야 스킬 사용한 걸 보면 비겁하기로는 서채윤 뺨치는데. 네가 서채윤이 아니라면 너 같은 비겁한 인간이 둘이나 있다는 게 안타까운 사실이네.”
둘의 대치를 불안하게 보던 사람들이 히익 숨을 들이켰다. 이 자리에 서채윤 그루피들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알렉은 회의하러 들어갔고, 커플은 체력과 마력 회복을 위해 포션을 먹고 쉬러 갔다.
“그래서, 그만한 스킬 갖고 있으면서 겁에 질려 덜덜 떠는 약자들 보는 거 재밌었어?”
“별로 재미없었는데요.”
“씨발, 이 뻔뻔한 자식이-.”
안 그래도 붉은 홍의윤의 눈이 더 진해지려는 그때 누군가 다급히 다가왔다.
“의윤이 형, 그만하고 저쪽에 가 봐요. <불의 고리>로 보스 몬스터를 찾을 거래요.”
수재희의 말에 홍의윤이 그를 째릿, 노려봤다.
“보스 몬스터는 알렉이랑 권지한이 찾는다면서.”
“네, 그런데 드론이 보스 몬스터 찾으려면 화염 스킬이 필요한가 봐요. 보스가 화염 특성이잖아요.”
“…윤서 너, 잠깐만 기다려라.”
홍의윤이 윤서에게 눈을 부라리고는 쿵쿵 발소리를 내면서 캠핑카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2팀 팀장과 박수빈, 알렉 그리고 권지한이 회의 중이었다.
그들은 <테라포밍> 시간 내에 보스를 잡기 위해서 회의에 들어간 상태였다. 윤서는 S급 청력으로 회의 내용을 다 듣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 알았다.
먼저 알렉이 <창작>으로 보스 몬스터 감지 아이템 <보스 알람>을 여러 개 만들면 홍의윤이 화염 스킬을 드론에 불어 넣어서 아이템이 ‘화염 내성’을 갖게 한 뒤에 멀리 날려 보낸다. 권지한이 <가이아의 눈>으로 아이템 상태 창을 켜 놓았기 때문에 아이템이 보스를 발견하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용암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보스 알람>을 만들어 봤자 금방 녹아 버리기 때문에 쓰지 못했으나 이제 던전이 지구화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모두 윤서 덕분이었다.
“형, 괜찮아요?”
수재희가 조심스레 물었다. 윤서는 길드 아공간에서 꺼낸 안락의자에 앉았다.
“전 괜찮습니다. 재희 헌터는 어디 다친 곳 없고요?”
“힐러들이 다 치유해 줬어요.”
“그렇군요.”
“…….”
“…….”
수재희는 윤서의 옆에 의자도 꺼내지 않고 털썩 앉았다. 옷이 더러워질 텐데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흙을 손으로 그러모아 쥐어보더니 퍽 허탈하게 웃었다.
“진짜 말도 안 되네요. <테라포밍>이라니…. 다른 사람들 노후에 시골 갈 때 형은 화성이나 달 가서 살아도 되겠어요.”
윤서는 속으로 웃었다.
나에게 노후 같은 건 없을 것이다.
“마력 소모가 심해서 안 될 겁니다.”
“에이, 포션 먹으면 되잖아요. 저 다른 헌터들 스킬 부러워한 적 거의 없는데 형 스킬은 진짜 부럽네요. 혹시 각성 전에 화학자가 꿈이었어요? 전 수의사가 꿈이었거든요.”
“글쎄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이제 형 말은 안 믿을래.”
농담하는 어조여서 윤서는 담담히 미소만 지었다.
“가이아 시스템이 양해를 구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처음 봐요. 뭔가 급 친밀감이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저 선물받은 아이템 바로 사용했잖아요. 경험치 두 배라니 개꿀. 던전 클리어 경험치까지 받으면 VVIP에서 비행 아이템 존나 살 거예요. 소환사가 사용 가능한 비행 스킬도 뜨면 좋을 텐데.”
“수재희 헌터도 VVIP였습니까?”
“그럼요. VVIP 아닌 S급이 드물걸요. 등급에 맞지 않는 무기는 우리 마력 감당 못 하고 깨지니까.”
그런가? 지금까지 하위 등급 아이템도 잘만 사용해 왔던 윤서는 조금 갸웃했다. 아무래도 마력 컨트롤 능력의 차이인 듯했다.
“제 스킬 <레메게톤>도 VVIP 상점에서 산 거예요. <레메게톤> 있는 다른 소환사들 부러웠는데, 마침 떴길래 바로 샀죠. 그거 때문에 경험치 거지 됐었잖아요.”
“누군가 사면 상점에서 없어지나요?”
“아이템이든 스킬이든 누가 사면 없어져요. 상점에 업데이트되는 시간이 완전 랜덤이고, 상점은 던전에서만 열 수 있어서 타이밍 못 맞추면 던전 공략 내내 상점이 비어 있을 때도 있어요. 전 세계로 따지면 하루에만 발생하는 던전이 수백 개에다가 한 던전에 다섯 명씩만 들어간다고 해도 동시 접속자가 수백 명이잖아요. 반면 상점은 한 곳인 상황이라 일반 상점은 경쟁 되게 심해요. VVIP 탭은 좀 살 만하긴 하지만. 아, 그리고 우리 같은 대형 길드 소속은 이런 상점에 얽매일 필요도 없지만요. 아이템 제작 부서에 만들어 달라고 하면 웬만해선 만들어 준대요. 제가 요청한 투명 망토는 아직 못 만들고 있지만.”
호기심이 생긴 윤서가 상점 탭을 열었다.
VIP 탭에 있는 아이템은 대략 열 개가량 되었고, 스킬은 없었다. 이미 많이들 사 간 듯했다.
“보통 VIP 탭에는 아이템이 몇 개 정도 올라옵니까?”
“아이템 30개, 스킬도 많을 땐 3개까지 올라와요. 지금은 새로 업뎃 된 지 얼마 안 돼서 아이템이 10개나 남아 있네요.”
“업뎃이 언제 됐는데요?”
“아까 전투 끝나고 바로요. 길드원들 우르르 들어가서 비행 아이템 샀잖아요. <테라포밍> 끝나도 바로 죽지는 않을 거예요, 형.”
수재희가 씨익 웃었다.
윤서는 시스템 창을 끄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지구와 달리 이곳은 태양도 세 개고, 달도 여러 개 있었다. 한 개일 때도 있고 두 개일 때도 있고. 오늘은 달이 두 개였다.
홍의윤이 사라지고 나니 주위는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다들 윤서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도 접근해 오지 않았다.
윤서는 노란 달을 가만히 바라봤다. 수재희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수재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형, 고마워요.”
“…….”
윤서가 수재희를 돌아봤다. 윤서의 하얀 얼굴은 모든 감정을 달빛에 숨겨 버린 듯 담담했다. 꼭 이 세상에 있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였다.
“뭐가 고맙다는 겁니까?”
“…….”
수재희는 묘한 긴장감에 침을 한번 삼키고 말했다.
“형은 어떤 이유에서건 그 스킬을 계속 숨기려고 했고, 그리고 정말로 계속 숨길 수도 있었는데 결국 길드원들을 구하기 위해 힘을 드러냈잖아요.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네?”
“절 변호할 필요 없다는 말이에요. 홍의윤 헌터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스킬을 더 빨리 사용했으면 아이템도 아낄 수 있었고, 던전 공략도 더 빨리 마칠 수 있었는데 뒷짐 지고 보고만 있었던 게 솔직히 화나겠죠. 강한 힘을 가졌으면서도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건 정의롭지 못하고 비겁한 일이니까.”
윤서는 담담히 말했다. 수재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저 형 편드는데 기운 빠지게 왜 자학해요.”
“절 편드느라 정의롭지 못한 부분까지 포장할 필요는 없어요.”
“…아, 진짜….”
수재희가 뭔가 답답한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머리를 헝클였다. 뭔가 말하고는 싶은데 안에서 정리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몇 분이 지나 수재희가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형, 솔직하게 말할까요. 듣기 좋게 말할까요?”
“솔직하게 말하세요.”
“솔직히 말하면 의윤이 형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또 있을 거예요.”
수재희의 단호한 목소리에 둘의 대화에 신경 쓰지 않는 척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사람들이 움찔움찔했다.
“형 말대로 다들 고생 심하게 했던 건 사실이잖아요. 저야 용암에 빠져 죽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우리 같지 않으니까. 벼랑의 썩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것처럼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고 초조한 심정으로 일주일을 보냈을 거잖아요. 몸도, 정신도 존나 시궁창이었을 텐데 왜 이제야 사용해 줬는지 솔직히 원망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렇죠.”
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재희는 냉큼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형, 다른 말로 하면 그렇게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게 나뭇가지에 매달린 사람들한테 결국 형이 동아줄을 보내준 거잖아요. 결과적으로 형이 모두를 구했다고요.”
“…….”
“그거 알아요? 작년에 S급 레드 던전 공략하다가 사망자가 수십 명이나 발생했던 거. 올해 초에는 S급 옐로우 들어가서 또 세 명 죽었고, 시체도 수습하지 못했죠. 전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절대로 형 원망 못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