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71)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71)화(71/195)
#64
가만히 듣던 윤서가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작년이라면 수재희는 열아홉 살이었을 것이다. 시체도 수습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는 오늘의 수재희는 고작 스무 살이었다.
“다 좋은 사람들이었거든요. 민영이 누나는 제가 석영에 막 들어왔을 때부터 밥도 같이 먹고 친했는데. 그 누나, 대격변 때 아버지랑 동생 죽고 어머니랑 둘만 살았단 말이에요. 어머니가 헌터 관두라고, 관두라고 얼굴 볼 때마다 말했는데 누나는 억울한 민간인 희생자를 만들지 않을 책임이 있다면서 꿋꿋이 활동했어요. 형, 자식 잃은 부모의 울음소리 들어 본 적 있어요? 전 그때 처음 들었어요. 울음소리가 아니라 비명 같았어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예요.”
“…….”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어쨌든 형이 나서 줬고 그 덕에 다들 이렇게 살았잖아요. 그래서 고맙다고요. 이건 형을 원망하기보다는 고마워하는 게 맞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수재희가 시원스레 미소 지었다. 윤서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스무 살 아이는 윤서가 서채윤으로서 계속 활동했다면,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을 얘기하면서 고맙다고 웃고 있었다.
윤서는 대던전에서 구역질 나는 정의 같은 건 버리기로 다짐했고, 그렇게 살았다. 그러면서도 10년간 스스로를 포장하려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스스로 비겁하고 저열하다 생각해 왔고, 분명 자신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희생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지금에서야 그 비겁한 잠적의 결과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아이, 씨. 새벽도 아닌데 너무 감성 돋았나. 부끄럽네.”
제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은 수재희는 새삼 부끄러운지 흙바닥을 신발 앞꿈치로 툭툭 찼다.
윤서 또한 부끄러웠다.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는 수재희와는 전혀 다른 이유였다.
“…….”
윤서는 주위를 둘러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어떤 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했고, 어떤 이는 화들짝 놀라며 피했고, 어떤 이는 눈을 부릅뜨며 마주쳐 왔다.
윤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용서를 구해서는 안 된다.
윤서는 이들이 수재희와 달리 마음 놓고 방관자를 원망하기를 바랐다. 정의를 구역질 난다고 외면한 사람에게는 그런 반응이 마땅하니까.
***
수재희와 스쿼트, 스트레칭 등 간단한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캠핑카에서 회의 중이던 이들이 우르르 나왔다.
알렉의 주위로 다섯 개의 드론이 날고 있었다. 윤서는 반사적으로 아이템 상태 창을 열람했다. 이름은 <보스 알람>, 알렉이 <창작> 스킬로 만든 것이었다.
“그럼 보내겠네.”
“네.”
알렉이 스킬을 사용하여 드론을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드론은 육안으로 따라잡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멀리 사라졌다. 동시에 권지한의 회색 눈에도 금빛이 일렁거렸다. 윤서는 <보스 알람>이라는 아이템보다 <가이아의 눈>이 더 신기했다.
‘권지한의 시야에 떠 있는 상태 창은 얼마나 많을까.’
저 드론들만 연다 해도 상태 창 다섯 개가 눈앞에 떠 있는 것이다. 접어 둘 수 있다지만 그래도 거슬릴 텐데 그렇게 잘 싸우는 걸 보면 신기했다.
그들은 아이템 상태에 대해 몇 마디 더 얘기를 나눈 뒤 모임을 해산했다. 곧장 홍의윤이 이쪽을 보면서 콧김을 내뿜었다. 이번에야말로 결판을 내겠다는 표정이었다. 수재희가 저 형 진짜 안 되겠다며 일어나는데 홍의윤보다 먼저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윤서 씨, 포션은 마셨어요?”
윤서를 발견하자마자 빠르게 걸어온 박수빈이 물었다.
“먹었습니다.”
“저 다 세어 볼 거예요.”
“네.”
길드원들이 마구잡이로 아공간에서 마력 포션을 꺼내 먹었기 때문에 아무리 박수빈이라도 포션 개수를 일일이 세지는 못할 것이다. 그걸 알고 윤서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하긴 안 마셨으면 마력 부족으로 멀쩡히 앉아 있지도 못했겠죠. 믿을게요.”
역시 박수빈은 순순히 받아들이고는 의자를 꺼내 옆에 앉았다.
‘마력 부족이라.’
대던전에서 지겨울 정도로 마력 고갈을 겪었던 윤서는 마력 부족이나 마력 고갈이나 별거 아닌 것처럼 취급했지만 사실 이건 굉장히 큰 문제였다.
생존 리벤저 중 윤서에게 유언을 남긴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두 명도 마력 고갈을 앓았다. 당시에는 마력 회복 포션 같은 게 없었기에 오로지 자체 회복력만으로 버텨야 했으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자살에 마력 고갈을 1순위 원인으로 뽑기도 했다.
다행히 마력 포션이 개발된 후에는 포션을 구매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하급 헌터들 외에는 마력 고갈을 겪는 이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윤서 또한 대던전을 나온 후 10년간은 10% 이하로는 떨어진 적 없었다.
그러나 <테라포밍>을 사용한 지금은….
생명의 신이 당신의 치유 내성을 안타까워합니다.
죽음의 신이 당신의 마력 총량을 확인하고 환호합니다.
윤서의 마력 총량은 현재 8% 남았다.
즉 그는 마력 부족도 아니고 완벽하게 ‘마력 고갈’ 상태인 것이다.
10년 전에 지긋지긋하게 시달렸던 두통이 스멀스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여기서 3%만 더 떨어지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그때의 감각은 정말이지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체 회복 속도가 워낙 빨라서 두 시간 후면 10% 이상으로 들어설 터라 윤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윤서 씨, 시간이 늦었는데 잠은 안 자요?”
“잠이 안 오네요. 수빈 씨는요?”
“저도 잠이 안 와서요. 이렇게 된 김에 약초들이나 캐 갈까 해요. 길드에 이쁨받아야죠.”
<테라포밍>으로 던전은 용암석을 수집할 수 없는 환경이 된 대신 이전 환경엔 없던 약초, 열매, 광석 등이 생겼다. 이미 몇몇 길드원들은 귀를 기울이면서도 부산물을 열심히 수집하고 있었다.
“윤서 씨도 같이 캘래요?”
“사양하겠습니다.”
“재희는?”
“형, 그거 다 길드 수입이에요? 혹시 개인이 가져도 돼요?”
“다 석영 줘야지.”
박수빈이 안 된다고 말하자 눈을 초롱초롱 빛냈던 수재희가 확 식은 얼굴을 했다.
“저도 안 캘래요. 귀찮아.”
본래 S급 헌터들은 던전 부산물 채취는 잘 하지 않았다. 그건 던전에 동반 입장한 낮은 등급 헌터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윤서 형 옆에서 형 지켜야 돼요. 형한테 시비 걸려는 사람 때문에.”
수재희가 장난스레 말했다. 그가 보는 곳에서는 박수빈 때문에 잠깐 멈칫했던 홍의윤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야, 너 다른 스킬은 또 뭐 가지고 있어?”
홍의윤은 늘 참지 않았다. 윤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더는 없습니다.”
“또 거짓말이지? 나중에 다른 거 사용하기만 해 봐라.”
“사용하면 어쩔 건데요.”
“힘을 숨겨 놓고 존나 뻔뻔하네. 너 각성은 언제 했어?”
각성 시기는 왜 묻는지 모르겠다. 윤서가 대답을 하지 않자 홍의윤이 이어서 말했다.
“설마 10년 전부터 숨기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테라포밍> 같은 스킬이 있었다면 대던전에서도 그렇게 많이 죽지 않아도 됐을 거야!”
“하….”
윤서는 어이없어서 한숨을 내뱉었다. 그 한숨에 홍의윤이 더 날뛰자 수재희가 말렸다.
“의윤이 형, 그만해요.”
“홍의윤 헌터. 진정하시죠.”
박수빈 또한 윤서에게 진짜 한 대 칠 기세인 홍의윤을 붙잡았다.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이네.’
윤서는 당연히 대던전에서도 <테라포밍>을 사용했다. 마력이 허락하는 한 끊임없이.
옆에서 너 그러다 죽겠다고 말려도 윤서는 스킬을 사용했다.
그래도 전부 다 죽었다.
홍의윤은 정의롭고, 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너무나 이해한다. 대던전에서 죽은 이들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홍의윤은 대던전을 얕보고 있었다. 이런 노랭이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곳인데….
하긴 살아 나온 리벤저들이 대던전에서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둘은 죽었고, 한 명은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한 명은 행방불명 상태니까. 사람들은 대던전이 어떤 곳인지를 모른다.
‘죽기 전에 알려 주긴 해야 할 텐데.’
윤서는 대던전과 같은 검붉은색 포탈 던전은 앞으로 지구상에 영원히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지옥은 다시는 나타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별개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알려주면서 필연적으로 그곳을 떠올리게 될 테니까.
“<테라포밍>은 얻은 지 얼마 안 된 스킬이에요. 저도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넌 거짓말쟁이라서 믿을 수가 없어.”
“어차피 믿지 못할 거면 뭐하러 물어봅니까. 간파 스킬이라도 써 보든가요.”
“야! 누구 간파 스킬 있는 사람?”
홍의윤이 버럭 소리쳤다. 얼결에 지목당한 한 헌터가 윤서에게 간파 스킬을 사용했고, 윤서는 <거짓 기억>을 사용하며 뻔뻔하게 대답했다. 간파 스킬을 사용한 헌터가 삐질삐질 탐을 흘렸다.
“유, 윤서 헌터는 진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뭐? 진짜야?”
“들었으면 좀 진정하시죠, 홍의윤 헌터.”
“너 진짜 얼마나 대단한 S급이길래 간파 스킬도 안 통해? 서채윤 곁에 너 같은 실력자가 있었다면 그분은 많은 동료를 잃지도 않았을 거고, 잠적하지도 않았을 거야!”
“…….”
“무, 물론 나는 서채윤 같은 비겁한 인간은 싫어하지만 아무튼 그랬을 거라고.”
윤서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홍의윤이 눈을 뾰족하게 치켜뜨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쳐다 봐. 씨발, 반성이나 해!”
가만히 구경하던 알렉이 혀를 찼다.
“허어. 그만하게나. 윤서 헌터는 최근에 스킬을 습득했다고 했는데 왜 계속 10년 전 얘기를 꺼내는지 모르겠군. 그 당시 리벤저로 지원하지 않고 밖에 남은 사람으로서 듣기 불편하네. 옆에 있던 개구리가 돌 맞아 죽게 생겼구만.”
홍의윤은 연장자에게는 차마 뭐라 대꾸하지 못하고 얌전해졌다. 그가 얌전해지고 나서야 박수빈과 수재희가 양팔을 놓았다.
생명의 신이 ‘리타 스위치’의 가족에게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러고 보니 생명의 신은 리타 누나의 가호 신이기도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