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74)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74)화(74/195)
#67
생명의 신이 자신이 가호하는 인간이라고 자랑합니다.
죽음의 신이 당신에게 지지 말라고 외칩니다.
전투 중엔 조용하던 신들이 다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래도 서채… 윤서 님의 실드가 대부분 막아 줬어요. 권지한과 참전하고 이렇게 안 다치기도 처음이에요.”
그동안 다들 윤서에게 당신이 정말 서채윤이냐고 시끄러울 땐 조용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를 알았다.
권지한의 공격 스킬을 막아 내자 비로소 서채윤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박수빈 헌터, 우리는 이제 괜찮으니까 빨간 머리랑 다른 사람들 챙겨 줘.”
“예.”
박수빈이 마력 포션을 마시고 연신 치유 스킬을 사용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홍의윤의 자그만 생채기까지 모두 치유하는 사이 동굴 입구 쪽에서 싸우던 2팀도 다가와 합류했다.
“아무래도 이게 페이즈 전환된 상태인 것 같죠?”
“그런 것 같네. 툰(TUN) 상태인 듯해.”
“툰? 그게 뭔가요?”
“쉽게 말해 일시적으로 생명 유지 활동을 멈췄다고 보면 되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지.”
알렉이 돌멩이를 하나 주워 들어 거대 뱀이었던 것에 던졌다. 실드와 비슷한 배리어가 반짝이면서 돌멩이를 튕겨 냈다.
쾅!
돌멩이가 동굴 벽에 부딪쳐 낸 소리가 어마어마했다. 작은 돌멩이였는데 튕겨 나올 때는 위력이 10배가 된 듯했다.
“무적과 가까운 방어력이군.”
“표피가 딱딱해요. 거대 뱀이 아니라 거대 애벌레였나 보네요.”
그들의 앞에 있는 것은 거대한 번데기였다. 뱀의 형체는 온데간데없고, 갈색 번데기만 남았다. 헌터들이 시험 삼아 가벼운 공격 스킬을 날렸는데 모두 반사되었다. 밖에서 무슨 난리가 났든 배리어 안에서 툰 상태에 들어간 번데기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S+급 배리어로군.”
“역시 계시가 맞았어. 보통 고치를 깨고 나오는 건 나비잖아요. 보스는 비행형 몬스터였던 거예요.”
“날아다니면 골치 아파지니까 동굴 내에서 싸우는 게 좋겠어.”
“역대 나비 형태 몬스터들을 생각해 보면 독 가루나 수면 가루를 뿌릴 수도 있어요. 지금 죽여서 3페이즈 없이 끝낼 방법은 없을까요? 가사 상태에 돌입한 지금이 처리하기에 가장 좋은 찬스인 것 같은데.”
“툰 상태는 가사 상태와는 조금 다르다만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공격 방법은 이제부터 궁리해 봐야지.”
보스 몬스터는 이런 점이 문제였다. 페이즈마다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바뀔 때마다 후퇴해서 작전을 다시 짠 후 재공략해야 한다. 그래서 보스를 상대하는 데만 며칠씩 걸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테라포밍> 적용 시간 01:05:04
한 시간 후면 다시 용암이 차오르고 대기는 황산화된다. 보스 몬스터는 고치 상태이니 용암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고, 그들은 용암에 들어가든가 보스가 번데기를 탈피하고 저절로 3페이즈가 되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까지 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일단 S급 헌터들에게 공격력 강화 버프 스킬을 쏟아부어서 S+급 이상의 공격 스킬을 사용해 보도록 하죠. 자, 공격계 스킬 쿨타임 돌아온 분들 다들 모이세요. 시간이 없으니 얼른 회의합시다.”
S급들과 홍의윤을 비롯해 스킬 사용이 가능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번데기만 보고 있던 권지한도 어울렸는데 한 명이 부족했다.
당연히 함께 공략 회의를 진행해야 마땅한 그 사람은, 힐러들이 모인 자리에 뻔뻔하게 끼어 있었다.
“…….”
힐러들이 울먹울먹한 눈으로 윤서를 쳐다봤다. 울먹울먹하다지만 다들 윤서보다 덩치가 커서 징그러웠다. 2팀 팀장이 조심스레 말했다.
“서채…윤서 님도 이쪽으로 오셔서 함께 회의하시죠….”
“제 스킬들은 다 쿨타임 걸렸고, 지금 유지 중인 실드 때문에 다른 스킬을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아.”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지금까지 스킬 몇 개를 숨겼었는데. 저 새끼는-.”
“으아악!”
수재희가 얼른 홍의윤의 입을 막았다. 홍의윤이 서채윤 광팬들에게 살해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홍의윤은 눈을 홉뜨면서 격렬히 반항했지만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A급과 S급의 격차였다.
“서채…윤서 헌터님, 귀찮으시겠지만 저희를 한 번만 더 도와주시면….”
“안 된다니까요.”
윤서는 곤란함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가 아주 강한 스킬을 갖고 있는 건 맞으나 이제는 정말 마력이 없었다.
지금도 동굴을 유지하느라 상당한 마력이 소모되고 있으니까.
‘서채윤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사람처럼 바라보는 건 10년 만이었다.
‘채윤이한테 모든 걸 맡기지 마.’
‘하지만 채윤이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는 다 죽어!’
‘해 보고 말하라고. 채윤이 매일 정신 놓고 있는 거 보면 아무 생각도 안 들어?’
‘난 살아 나가고 싶어. 가족이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채윤이는 어린애야!’
‘이제 여기에 어린애는 없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다들 현실을 직시해. 우리는 채윤이가 아니면 살아 나갈 수 없어. 다들 동의하잖아!’
지긋지긋한 분쟁이 떠올랐다. 이제 맡기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윤서가 침잠해 가는 그때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형은 놔둬. 왜 피곤한 사람 부르고 그래?”
윤서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말한 이는 권지한이었다.
“아, 권지한 헌터. 하지만 서채…윤서 헌터는.”
“어차피 다들 나한테 버프 스킬 몰아 주고, 내가 가장 파괴력 강한 스킬을 사용하면 끝 아냐? 회의는 쿨타임을 고려한 버프 순서 짜맞추기 위한 거고. 여기 나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
“…….”
“…….”
“…….”
“아무도 없네.”
“네, 죄송합니다. 그럼 공략 회의 진행하겠습니다. 일단 각자 스킬 쿨타임이 얼마나 남았는지와 버프 아이템부터….”
싸늘한 침묵 끝에 2팀 팀장이 땀을 삐질 흘리며 포기했다.
윤서와 권지한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권지한이 씨익 웃었다.
‘…어우, 씨.’
왜 멋있어지려고 하지?
윤서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려다가 포기했다. 가만히만 있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망치로 뚜들겨 맞는 고통이 느껴질 것이다.
얼른 회의가 끝나야 한다.
이제 <테라포밍>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동굴을 유지하는 윤서의 마력 또한.
***
긴급회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확실히 그 정도면 S+급 이상이겠군요.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던 S++급까지 갈지도…. 다만 파괴력이 너무 강한 게 흠이에요. 범위도 넓어서 우리까지 말려들 거예요.”
“동굴은 서채…윤서의 실드가 보호 중입니다만. 설마 권지한의 공격이 서채…윤서의 실드까지 부술 거라는 뜻입니까?”
“권지한의 스킬이 더 강한가, 서채…윤서의 스킬이 더 강한가의 문제인가.”
알렉의 중얼거림에 침묵이 감돌았다.
“하아.”
갑자기 로렌스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허니! 왜 그래?”
“자기, 나 세기의 대결을 볼 생각에 너무 떨려. 팝콘이나 콜라 있어?”
“혹시 팝콘 있으신 분? 우리 허니가 간절히 원하고 있어요.”
커플의 꼴값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서채…윤서 님, 동굴을 보호하는 실드는 얼마나 유지 가능하신가요?”
2팀 팀장이 연배 높은 선배에게 묻듯이 정중한 말투로 물었다. 모두의 시선 속에서 윤서가 입을 열었다.
“10….”
“10시간 말입니까?”
“10분이요.”
“…….”
사람들이 벙찐 눈으로 윤서를 봤다.
“아, 씨발…. 망했네.”
놀랍게도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은 사람은 홍의윤이 아니라 윤서였다. 윤서는 시스템 창을 보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허공을 보더니 이마를 짚었다.
“권지한….”
윤서는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형!”
“윤서 씨!”
“서채윤서 님!”
“야!”
그의 몸이 서서히 옆으로 기울였다. 수재희가 부축하기 위해 손을 뻗고, 박수빈이 달려왔다. 커플이 벌떡 일어났으며 알렉도 바로 <창작>을 사용하려 했고, 홍의윤도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빠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권지한이었다.
“형, 왜 이래?”
권지한은 의아한 말투였는데 손은 착실하게 윤서의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한 팔로 윤서의 허리를 안고, 한 팔로는 등을 단단히 받쳤다. 박수빈이 급히 아공간에서 간이침대를 꺼내 윤서를 눕히라고 했는데 권지한은 윤서를 끌어안은 채 침대에 앉았다. 박수빈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서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윤서 씨, 괜찮아요?”
“형, 멀쩡하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야?”
“으윽….”
윤서가 신음하며 몸을 웅크렸다. 현재 윤서의 마력은 3%.
윤서는 지금 이 붕괴되려는 정신이 마력 고갈 탓인지 권지한의 탄탄한 품에 안긴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어디 아픈 거냐, 무슨 일이냐 등등 윤서의 상태를 걱정한 이들이 한 마디씩 던졌다. 윤서에게는 수십 마디였다.
“아, 젠장…….”
윤서는 미간을 잔뜩 구긴 채 눈을 가늘게 뜨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형?”
“왜 많냐고, 씨발…….”
“형 뭔가 말투가 거칠어졌네.”
권지한이 미소 지었다. 박수빈은 둘을 번갈아 보고는 재빨리 윤서에게 말했다.
“윤서 씨, 무슨 일이에요. 어디 몸이 안 좋아요?”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시간이요? <테라포밍> 말하는 건가요?”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윤서 씨…….”
윤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더니 주먹을 들었다. 그러고는 제 머리를 주저 없이 후려치려는 걸 권지한이 손목을 붙잡아서 겨우 막았다. 권지한쯤 되었기에 막았지 다른 이들은 동체시력이 따라가지도 못해서 권지한이 붙잡은 후에야 알았다.
“이거 놓으세요, 씨. 머리 아프다고요.”
“머리 아프다고 아예 날려 버릴 생각이야?”
“왜. 그럼 안 됩니까? 내 머린데 빌어먹을 내가 마음대로 못 날려요?”
“이 형 진짜 왜 이래?”
윤서가 힘을 쓰자 권지한도 더는 미소를 유지하지 못했다. 권지한이 당황하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알렉이 무릎을 꿇고 윤서의 상태를 살폈다.
“독인가?”
“아니, 실드가 이렇게 굳건한데 독에 당할 리가 없네. 외상도 아닐 테고.”
“머리가 아프고, 자해를 하려고 하는 증상은….”
일행은 일제히 한 가지 증상을 떠올렸다.
두 명의 생존 리벤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증상.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자해를 하게 만드는 그 상태 이상.
마력 고갈.
서채…윤서가 마력 고갈에 걸린 것이다.
하아…….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세상에 나 마력 고갈 걸린 사람 처음 봐.”
“나도, 자기야. 우리 자기가 제일 귀엽지만 우리 서채…윤서 님 진짜 귀여우시다.”
“허니…. 이번만은 인정할게. 마력 고갈에 걸리시다니 너무 귀여워라.”
“아니, 이 새끼는 왜 마력 고갈 따위에 걸리고 지랄이야? 옛날 사람이라는 거 티 내?”
“어허, 서채윤 님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 새끼라는 표현을 쓰지 말게나. 그리고 서채윤 님이 활동하실 때는 마력 포션이 없었으니 사용도 익숙하지 않으실 테고, 걸릴 수도 있지.”
윤서로서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으나 다른 이들은 마력 고갈이면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공간에서 마력 포션 열 병을 꺼낸 박수빈이 윤서의 입가에 가져가 댔다.
“윤서 씨, 아 하세요.”
“안 먹어요.”
“이거 달콤하고 맛있어요. 초콜릿 맛이에요.”
윤수가 포션을 피해 고개를 돌리며 권지한의 품으로 꾸물꾸물 파고들었다. 윤서는 아예 고개를 탄탄한 가슴에 박아 버렸다. 박수빈은 권지한을 넘어뜨리고 그 자리에 제가 있고 싶었다. S급이라도 됐다면 시도라도 해 봤을 것이다.
“형, 떼쓸 시간 없어. 얼른 먹어.”
권지한이 윤서의 고개를 힘으로 돌렸다. 권지한이 윤서의 입을 손가락으로 벌리고 있는 동안 박수빈이 입술 안쪽으로 포션을 흘려보냈다. 몇 방울이 턱으로 흘러내렸다.
“으응, 진짜 제발 나 좀 가만히 둬….”
포션 한 병을 다 비웠는데도 윤서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주절거렸다.
“효과가 없는 것 같은데? 서채윤 님이 맞다면 S급 포션을 사용해야 할 걸세.”
“S급이었습니다.”
“그럼 몇 병 더….”
박수빈이 포션 몇 개를 더 꺼내서 윤서에게 마시게 했다. 그러나 윤서의 상태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런 거였군.”
권지한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윤서가 자해하지 못하도록 양팔을 붙인 채 끌어안고 있는 권지한의 이마에는 힘줄이 돋아 있었다.
“아무래도 형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포션 효과가 없는 것 같아. 안 그랬으면 진즉 먹었겠지.”
“효과가 없다고요? 이건 우리 석영에서 만든 S급 포션인데.”
“시간 없어. 빨리 마력 회복 스킬이나 사용해.”
“아, 네.”
‘박수빈’이 스킬 <빛의 세례>를 사용합니다.
박수빈의 손에서 빛이 쏟아져 윤서의 몸 안으로 사라졌다. 마력 회복을 스킬을 가진 힐러는 극히 드물었는데, 심지어 박수빈의 스킬은 S급이었다. 다들 윤서가 금방 정신 차릴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얼른 깨어나기를 바라는데, 박수빈의 얼굴이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