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76)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76)화(76/195)
9. 문병
#69
퍼펙트가 S급 옐로우 던전을 155시간 만에 클리어하고 나왔다. 총인원은 33명, 희생자는 없다. 굉장히 성공적인 기록이었다.
석영은 희생자 없이 모두 무사히 나왔다는 소식과 함께 획득한 부산물 리스트를 발표했다. 그 부산물이 얼마나 화려한지 어지간한 나라의 반년 치 예산에 맞먹는 규모였다.
언론에 발표한 건 자산이 더욱 탄탄해졌다는 것, 딱 그 부분까지만이었는데 그날 밤부터 인터넷에 소문이 떠돌았다. 석영의 길드 경험치가 1억 이하로 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보스를 처치한 권지한이 동굴이 무너지는 그때 윤서를 안은 채 ‘길드석으로 이동’을 사용하는 바람에 경험치가 대폭 깎인 것이다. 한 명 경험치도 막대한데 두 명이었으니…. 지금까지 길드석 이동은 두 명이 신체를 접촉하고 있어도 ‘길드석으로 이동’을 사용한 당사자 한 명만 이동되었기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현재 길드 경험치 87,051,000
던전 클리어로 얻은 경험치까지 합하여 고작 8천7백만 경험치밖에 남지 않았다. 본래 100억이 넘었는데….
말 그대로 석영이 10년간 모은 경험치가 싹 사라진 것이다….
합병하기 전 낙엽 길드 경험치가 8천4백만이었으니 단번에 낙엽 같은 약소 길드만 한 경험치가 되어 버렸다. 앞으로 A급, S급 던전 좀 돌다 보면 수년 내로 회복하겠지만 현재로선 엄연히 손실이었다.
“뭐. 그래서 나 혼내려고?”
석영 간부들 앞에서 권지한이 다리를 꼰 채 방만한 자세로 앉아 뻔뻔하게 물었다.
유준철은 이마를 짚고, 도등수는 뺨을 씰룩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다른 이들은 한숨을 쉬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중에는 태재식도 있었다. 가운데에 앉아서 심문당하는 이는 권지한이었는데, 태재식이 더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이었다. 그는 이 자리가 단지 길드 경험치 건 때문에 모인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므로 당연한 불안함이었다.
“권지한 헌터, 그래도 공적인 자리에 너무 방만한 태도는 좀.”
“어차피 경험치 때문에 나 부른 거 아니잖아.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지? 우리 형 병문안 가야 돼.”
“야, 지한아.”
“길드장님, 권지한 헌터의 말이 맞습니다. 어차피 소모된 경험치는 어쩔 수 없고 사람이 살았으니 된 거 아니겠습니까? 그 덕분에 우리가 얻은 정보는 고작 100억 경험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치를 가졌고요.”
도등수가 이 긴급회의의 본 주제를 꺼냈다.
“윤서 헌터가 서채윤이었습니다.”
“…….”
“…….”
석영의 수뇌부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 진실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곳에 모인 중진들은 모두 12년 전 대격변 때부터 활동해 온 A급 헌터들이었다. 누군가는 가면을 쓴 서채윤과 함께 몬스터와 싸우기도 했다. 모두 대혼돈의 시기부터 세상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이들이었고, 현재 중요한 건 100억의 경험치 소멸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서채윤을 발견했다.
새 길드장이 추적팀까지 만들면서 그렇게 애쓰더니 결국 서채윤 후보 중에서 정말로 서채윤이 나타났다.
대던전 발생을 앞둔 이 시기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간부들의 시선이 이 중에서 유일하게 낭패스러운 얼굴을 한 이에게로 향했다.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태재식이었다.
“태재식 이사, 할 말 있는가?”
“나는 할 말 없소.”
서채윤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태재식과 라 비지나밖에 없고, 둘은 ‘계약서’ 때문에 서채윤에 대한 언급을 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서채윤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더라도 서채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태재식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 처지였다.
“게다가 우리의 수확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도등수가 자신만만한 어조로 이어서 말했다.
“본래 ‘길드석으로 이동’은 한 던전에 한 명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윤서 헌터와 권지한 헌터는 동시에 이동했죠. 바로 가이아의 가호로 인해서…. 가이아의 가호를 받았다는 것은 즉 가이아 스킬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윤서 헌터가 서채윤이고, 서채윤이 바로 우리가 애타게 찾던 가이아 스킬 보유자인 겁니다. 대던전 발생을 앞둔 이 시점에 우리가 아는 가이아 스킬 보유자가 두 명이 되었다는 게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도등수의 음성은 나중으로 갈수록 격정적이었다.
가이아 스킬.
선택된 자.
그리고 우주의 개척자.
가이아 시스템이 당신에게 스킬을 선물합니다.
가이아 시스템이 당신을 우주의 개척자로 선택합니다.
권지한은 가이아 스킬을 2년 전 입수했다. 그레이스 엘리시아가 대던전을 예언하고 딱 하루 후의 일이었다. 그는 입수 직후 떠오른 메시지를 숨기지 않고 유준철에게 말했고, 유준철의 판단으로 대중에는 알리지 않았다.
그 후 석영은 물밑으로 가이아 스킬 보유자를 찾아다녔으나 발견하지 못했고, 라 비지나로부터도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달.
‘대던전 보스를 처리하자 검은 포탈이 하나 나타났고… 그리고…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졌네.’
‘나는 보지 못했으나 사라지기 전 어떤 메시지가 떴다고 했지…. 어떤… 조건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그 이상은 기억나지 않아.’
라 비지나가 그렇게 증언한 후로 그들은 검은 포탈 진입 조건이란 게 가이아 스킬과 관련된 게 아닐까 추론했다. 대던전 계시 직후 선택된 자 특성을 받은 각성자가 있으며 그 특성 입수 메시지에는 우주의 개척자로 선택했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그 사실을 고려했을 때 합당한 추론이었다.
‘젠장, 이놈의 길드는 이런 중요한 걸 왜 이제야 얘기하는 거야?’
태재식은 답답해서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다.
그동안 서채윤을 추적한 이유가 이런 대의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면 진즉 윤서에게 ‘야, 세상에 대던전이 발생한다는 계시가 있었단다. 서채윤 등장 타임이다.’라고 말했을 텐데. 그럼 깔끔하게 끝날 일 아닌가. 덤으로 미리 주식도 현금화하고, 가족들이 들어갈 벙커도 짓고, 친분 있고 믿을 만한 인터넷 친구들에게도 정보를 공유해 미리 대비하도록 하고 말이다.
물론 바로 그게 석영이 지금껏 태재식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지 않은 이유라는 걸 태재식은 몰랐다.
“윤서 헌터는 어제 클리어한 후로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력 총량이 얼마만큼인지는 모르나 통상 S급 헌터의 마력 총량과 자연 회복력으로 추측했을 때 오늘 오후쯤에는 마력 고갈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기억에 혼선이 있을까 우려되는데 이 중에 마력 고갈 겪어 본 분 있으십니까?”
“내가 예전에 겪어 본 적 있는데, 후유증에 기억 혼선 같은 건 없으니 걱정 마세요. 그냥 좀 짜증이 솟구치고 기분이 더러울 뿐입니다.”
석영 중진이 12년 전부터 활동한 이들이라 이럴 땐 도움이 되었다.
“태재식 상무 이사도 조언해 주시죠. 윤서 헌터를 오래 알고 지냈으니. 서채윤이 아니라 윤서에 대해서라면 말할 수 있겠지요?”
“크흠. 뭐, 말할 수 있는 데까지는.”
태재식이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 녀석이 깨어났을 때 너무 득달같이 달려들지 말게. 내가 알기로 그 녀석은 S급 이상의 공간 이동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 진심으로 숨고자 하면 우리는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걸세. 워낙 세심한 녀석이니 옆에서 아기 새 돌보듯 케어해 주는 게 먼저네.”
“S급 이상의 공간 이동 스킬…?”
“그래, 그게 가이아 스킬이네.”
가이아 스킬…!
세상에….
역시 선택된 자였어….
정말 입 가벼운….
간부들이 웅성거렸다.
태재식은 묵직한 정보를 가볍게 나불거려 놓고 거드름을 피웠다.
“감사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그 외 또 정보가 있습니까?”
태재식이 고개를 저었다.
“한껏 예민해진 상태일 테니 정말 잘 구슬려야 한다는 것 말고는 더 해 줄 말이 없네.”
“걱정하지 마. 형은 내가 직접 케어해 줄 테니까.”
권지한이 윤서의 멘탈을 바사삭 부러뜨릴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태재식이 식은땀을 흘렸다.
“윤서 군이 나한테 의지를 많이 하니 내가 옆을 지키는 게 좋겠는데.”
“자, 다들 들었지? 빨리 회의 끝내. 나 형 보러 가야 한단 말이야.”
“크흠, 권지한 헌터. 윤서 군에게는 내가 필요한….”
“근데 이런 회의에 나를 잡아 둘 필요가 있긴 해? 어차피 나도 검은 포탈 던전에 대해서 모르는 건 당신들이랑 똑같고, 윤서 형이 눈 뜨기만을 기다리는 형편이야.”
권지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미 자신이 알고 있던 걸 모두 밝혔기 때문에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 형 엄청난 공간 이동 가이아 스킬도 있다면서 일어났다가 바로 도망쳐 버리면 어떡해? 그걸 막을 사람은 나밖에 없어.”
“권지한 헌터에게 그런 스킬이 있었습니까? 스킬 발동을 가로막는….”
누군가 묻자 권지한이 뻔뻔하게 미소 지었다.
“아니.”
“네?”
“애교와 애원으로 막을 거야.”
“…….”
권지한은 능글맞게 대답하고는 성큼성큼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나가는 그를 아무도 막지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에게 겪은 적 없는 황당함을 퍼뜨린 권지한이 회의실을 나갔다.
한참 후에야 유준철이 자, 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회의를 계속 진행하죠. 우선 쉬운 것부터 먼저. 언론 노출은 어디까지 할까요?”
“…….”
서채윤, 대던전.
그중에서 가장 발표하기 쉬운 게 어떤 것인지는 뻔했다.
***
● 서채윤 10년 만의 복귀.. 석영 길드 공식 발표
● “생존 리벤저” 서채윤은 누구? 최연소 S급 헌터, 최강의 방패….
● 석영 측근, ‘존재하는 넋’이 석영과 서채윤을 연결했을 것
● 최근 석영의 수상한 행보들, 서채윤 영입을 위해서였다
● 서채윤, 아직 묵묵부답….
● 서채윤 복귀, “생존 리벤저” 라 비지나의 반응은….
● “서채윤 보러 가자” 석영 길드 본사, 인파 몰려
● 서채윤 효과? 한국행 항공권 매진, 세계 영웅 보러 전 세계가 온다
U패드에 떠 있는 뉴스 헤드라인들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기사가 ‘서채윤’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
윤서는 벽에 머리를 박고 다시 기절할까 싶어서 하얀 벽을 슬쩍 쳐다봤는데, 옆에서 함께 U패드를 보던 권지한이 말했다.
“왜 벽 봐? 설마 벽에 머리 박고 다시 기절하고 싶어서 그래? 아직도 자해 충동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