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77)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77)화(77/195)
#70
“…아닙니다.”
“기절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내가 아프지 않게 잘 도와줄 테니까.”
“정말 절 도와주고 싶으면 여기서 좀 꺼져 주면 안 될까요?”
“그건 안 돼. 형, 공간 이동 스킬도 있다면서. 내가 감시해야지.”
윤서가 윽,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습니까?”
“우리 길드 높은 인간 중에 예전에 형이랑 동료였던 인간들 많아. 태재식도 있고.”
“…그 빌어먹을 입 싼 아저씨.”
“진짜 심각하게 가볍긴 하더라.”
“그런데 감시해서 어쩔 건데요. 날 막을 수 있어요?”
“응, 스킬 발동 막을 수 있으니까 괜히 헛짓거리하지 마.”
스킬 발동을 막는 스킬도 있다고?
윤서가 눈을 가늘게 뜨며 권지한의 표정을 살폈다. 권지한은 느른하게 미소 짓고 있었는데 퍽 여유로워 보였다.
권지한에게 그런 스킬이 있는 건 사실일지 모르나 어차피 윤서의 <가이아의 대지>는 L급 스킬이므로 막지는 못할 터였다.
윤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저는 복귀한다고 한 적 없는데 이미 세상은 서채윤 복귀가 기정사실화되었다. 단 하루 기절해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차라리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그는 한 시간 전 정신을 차렸고, 그의 옆에는 권지한이 있었다. 권지한은 윤서가 눈을 뜨자마자 오늘 날짜와 시간을 알려 주고, 바로 의사와 힐러를 불렀다. 엄청나게 긴장한 얼굴로 병실에 들어온 의료진은 윤서를 진찰하는 내내 ‘서채…윤서’라고 불렀다. 간호사가 수액을 놓고는 ‘서채…윤서 님, 혹시 사인이라도.’라고 말을 꺼냈다가 의사에게 제지당했다. 의사는 ‘서채…윤서 님, 혹시 사진이라도.’라고 말을 꺼냈다가 간호사에게 끌려갔다.
그들이 나가고 세상 망한 얼굴로 수액을 맞고 있는 윤서에게 권지한이 말했다.
‘그렇게 세상 무너진 얼굴 하지 마. 형이 서채윤이라는 건 아직 비밀이니까. 퍼펙트랑 길드 수뇌부들만 알고 있어.’
‘그럼 저 의사랑 간호사는 왜 저러는 겁니까?’
‘왜? 형을 서채윤서라고 알고 있잖아. 성은 서. 이름은 채윤서.’
‘장난치지 말고요.’
‘의료진한테야 당연히 진실을 알렸지. 치유 내성을 포함해 몸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진찰을 할 거 아냐. 다들 스킬로 함구령 걸어서 외부엔 발설 못 하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 거라면 다행이네요.’
‘응, 아직 세상 사람들이 아는 건 서채윤이 석영 길드로 복귀했다는 것밖에 없으니까 다행이지.’
‘…네?’
권지한은 싱긋 웃으며 윤서에게 U패드를 켜서 뉴스를 보여 줬다. 그리고 윤서가 본 헤드라인은 온통 서채윤 얘기뿐이었다.
‘하. 진짜 도망갈까. 마력도 거의 회복됐겠다. <가이아의 대지>로….’
정말 도망칠 생각은 없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 와중에도 뉴스 기사는 끝없이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 ‘서채윤은 평범한 사람’ 홍의윤 SNS로 서채윤과의 친분 과시….
이건 또 뭐야?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헤드라인에 윤서가 처음으로 기사를 읽었다.
HELLHONNG
내가 본 서채윤은-
관심은 부담스러워하고,
남들처럼 드라마를 좋아하는,
평범한,
그런 사람….
사진은 셀카였다. 창밖을 바라보는 빨간 머리 남자의 눈빛은 우수에 젖어 있었다.
이 새끼는 진짜 뭐 하는 놈이야?
● 서채윤 목소리 들을 수 있을까… 시민들 기대감 상승
● 평소 대중과 친밀한 석영, 서채윤 모습 드러낼까
● 서채윤 기자 회견 이뤄지나. 해외 팬클럽 대거 한국행
서채윤이 직접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기대하는 뉴스도 많았다. 윤서는 권지한에게 단호히 말했다.
“저 대중 앞에는 절대 안 나섭니다. 전파 방해 장치 있어도, 가면 있어도, 목소리만이라도. 절대, 절대, 절대로 밖에 모습 안 드러낼 거예요.”
권지한이 작게 웃었다.
“형 원하는 대로 될 거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그냥 기자들이랑 대중이 난리인 거야. 말하면 이뤄지는 줄 아는 사람들이잖아.”
“그쪽 말은 이제 못 믿겠군요.”
“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 중에 거짓말 있었어?”
“…….”
생각해 보니 없었다.
할 말이 없어진 윤서는 U패드를 끄고 대신 TV를 켰다. 다소 흥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석영이 생존 리벤저 서채윤 헌터의 복귀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10년간 어떤 일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사망설도 돌았던 서채윤 헌터의 복귀 소식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는데요. 현재 대한민국 정부, 헌터 협회, 석영 유준철 길드장을 비롯한 석영 중진들이 정부 청사에서 회의 중입니다. 이 회의가 끝나면 후속 발표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민 기자입니다.”
“…….”
윤서는 TV를 껐다.
이제 핸드폰에 들어가자 난리 난 단톡방이 보였다.
박영범
대박이다 진짜 이게 무슨 일이야. 혹시 윤서 씨도 서채윤 본 적 있어?
고희원
아 진자 부러워요ㅠ 저도 석영에 픽업될걸 ㅜㅜㅜㅜ
같은 석영인데 왜 난 본사 출근이 아닌가ㅠㅠㅠㅠ
경영 팀 최우리
윤서 씨도 서채윤 봤어요? 진짜 궁금한데
경영 팀 김대리
서채윤 되게 수줍음 많다는데 진짜예요?
기저씨
서채윤 어려 보인다는데 ㄹㅇ?
고희원
서채윤 엄청 착하다는데 진짜예요?
박영범
서채윤 생각보다 털털하다는데 맞아요?
공략 팀 수유
서채윤 엄청 잘생겼다는데 진짜예요?
고희원
아니 근데 윤서 오빠 왜 하루나 답장이 없어요 사람 애타게
박영범
우리 염장 지르는 거야 젠장 반응해 주지 마
300개 이상이 쌓여서 다 읽지도 못했다.
네. 잘생겼습니다.
윤서는 답하고 싶은 것에만 답하고서 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수재희
형… 형 일어나면 문병 가도 돼요?
스파이
윤서 씨, 재희랑 같이 병문안 가려고 하는데 괜찮아요? 메시지 보면 천천히 답장 주세요.
전부 어제 온 메시지였다.
‘병문안까지 올 일은 아닌데. 입원할 일도 아니고….’
윤서는 일단 박수빈의 이름을 ‘스파이’에서 ‘박수빈’으로 다시 저장했다. 마력 고갈 상태일 때의 일은 다 기억하고 있다. 박수빈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걱정해 줬고 그건 고마운 일이 맞았다. 양심상 이름 석 자는 돌려줘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병실을 둘러봤다. 집에 있는 것보다 더 큰 벽걸이형 TV에 빵빵한 에어컨, 가죽 소파와 안락의자. 저쪽에는 주방 시설도 딸려 있고, 흰 벽에는 명화 액자 몇 점이 걸려 있었다. 특실임이 분명했다.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든 윤서가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이 병원비는 당연히 석영 돈이겠죠?”
“업무상 재해니까 완치될 때까지 모든 치료 비용은 석영에서 부담할 거야.”
윤서가 눈에 힘을 풀었다. 역시 석영이 괜히 세계 최고 길드가 된 게 아니었다.
“그럼 완치라고 하면…. 그 완치 기준이?”
“형의 마력이 전부 회복될 때까지지.”
윤서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마력 고갈로 쓰러진 지 30시간이 지났고, 윤서의 마력은 76%까지 회복된 상태였다. 앞으로 넉넉잡아 하루만 지나면 100%가 되는데 그러면 퇴원한다는 소리 아닌가.
윤서는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고는 싶었으나 업무에 복귀할 시 어떤 골치 아픈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최대한 늦게 퇴원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각성자들 평균 마력 회복 속도보다 3배는 빠르니까 이걸 계산하면….’
윤서의 눈동자가 도로록 굴러갔다.
“아아, 아직 마력이 회복이 안 되어서 어지럽네요.”
윤서가 이마를 손등으로 짚으며 누웠다.
내 마력은 지금 32%다.
32%야.
속으로는 그렇게 세뇌하고 있었다.
옆에서 권지한은 윤서의 행태를 보면서 쿡쿡, 낮게 웃었다.
“형 휴가 보름 남았으니까 복귀는 아직 걱정하지 마.”
“보름이라고요?”
“본래 S급 클리어하고 나면 공략에 걸린 날짜만큼 휴가받거든. 여기에 형한테는 회복하라고 넉넉하게 시간 더 준 거지.”
그냥 넉넉한 수준이 아닌데.
윤서는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석영의 높은 복지에 감탄했다.
양심이 찔리기도 했다.
사실 그는 아주 조금… 자책하고 있었다. 만약 제가 S급 옐로우 던전에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떤 수를 써서라도 퍼펙트에서 빠졌다면.
퍼펙트는 결코 전원이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S급 던전은 수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모든 곳을 무사히 클리어하지는 못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밥 먹고 떠들던 동료를 오늘은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곳이 던전이다.
윤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그거 알아요? 작년에 S급 레드 던전 공략하다가 사망자가 수십 명이나 발생했던 거. 올해 초에는 S급 옐로우 들어가서 또 세 명 죽었고, 시체도 수습하지 못했죠.”
이번엔 누가 죽었을까? 어쩌면 박수빈의 저장 명을 ‘스파이’에서 ‘박수빈’으로 바꿀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홍의윤은 SNS에 서채윤과의 친분을 과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S급 던전을 겪고 보니 실감이 났다.
내가 나섰다면 죽지 않았을 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내가 있었음에도 다친 사람들도 있었잖아.’
윤서는 입 안쪽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가 물었다.
“화심 헌터는 어떻게 됐습니까?”
“화심? 건강하던데.”
“서채윤도 아니고 힘을 숨기지도 않았다는 게 밝혀졌으니 이젠 팀에서 내보냈겠죠?”
“아직 절차는 못 밟았어. 오늘 아침에 또 던전 들어가서.”
“네?”
윤서가 기겁해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왜 화심 헌터는 휴가를 받지 못했습니까?”
“화심뿐만이 아니야.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범람 타입 A급 그린 던전이 발생한 데다가 서해 쪽에서 던전 범람이 발생하는 바람에 퍼펙트가 총출동한 상태야. 재희랑 커플은 범람, 알렉과 2팀은 A급 그린 던전 공략.”
“미친….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