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80)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80)화(80/195)
#73
“응?”
“상어, 축구하는 어린애, 해바라기 모양 구름을 찾을 거예요.”
강아지와 병아리는 찾았으니 세 개 남았다.
권지한이 한 박자 쉰 다음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 형. 은근히 유치한 데가 있네.”
“…….”
윤서도 동감했다. 얼마나 유치한 유언인가.
이 유치한 유언 때문에 윤서는 죽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있고만 싶은 날에도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봐야만 했다.
파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하얀 구름을 보고 있으면 그러고 싶지 않아도 기분이 나아져서 정말… 짜증 났다.
윤서는 후, 하고 숨을 내뱉곤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알약을 한 개 삼키고 다시 넣었다. 그는 옆에서 저를 바라보는 권지한에게 말했다.
“먼저 찾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상품은 뭔데?”
“박수 쳐 주기 하죠. 그럼 시- 작.”
윤서가 시작, 하자 권지한이 바로 미간을 좁히고 하늘을 쳐다봤다. 말로는 유치하다 하면서도 착실하게 윤서에게 어울려 주고 있었다.
둘은 오전 나절 내내 앉아서 하늘만 쳐다봤다. 상어 구름은 찾았는데 다른 두 개는 찾지 못했다.
대신 고양이, 별, 쓰다듬받고 좋아하는 해돌이, 서로 찰싹 달라붙은 S급 커플 등은 발견했다. 특히 염병 커플이 너무 그럴듯해서 사진으로 찍어 놓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거 수재희한테 보여 줘야겠다.”
생각만 한 윤서와는 달리 권지한은 쿡쿡 웃으며 구름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보니까 형 그 커플이랑 자연스럽게 대화하더라. 형 생긴 걸 보면 커플들이 엄청 경계했을 것 같은데 대체 이상형이 뭐길래 그래?”
그 말을 듣자 윤서는 권지한의 이상형이 웃긴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조금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알 거 없습니다.”
“재희한테 물어보면 바로 답 나오는데 뭐 하러 숨기는 거야. 이상형 뭔지 말해 줘.”
“…모두 다 죽게 생긴 절체절명의 위기에 ‘나에게는 아직 12개의 포션이 남아 있습니다’ 하고 가서 다 때려 부수고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오는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 이상형입니다.”
“…….”
권지한이 윤서를 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짧은 침묵 후 권지한이 기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나잖아.”
“뭐요?”
윤서가 정말 어이없어서 권지한을 노려봤다. 그런데 오히려 윤서보다 권지한이 더 얼빠진 표정이었다. 머리칼까지 사르르 흔들리는 게 정말 놀란 듯했다.
“서채윤의 이상형이 나였다니….”
“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겁니까.”
“하…. 생각해 봐, 형. 절체절명의 위기에 나에게는 아직 너무 강해서 레벨 업도 못 하는 스킬이 남아 있다는 말을 남기고 던전을 클리어한 사람이 누구인지.”
“…….”
“나잖아. 그치?”
윤서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닥치고 구름이나 계속 찾죠.”
“형, 내 이상형은 말이야.”
다시 하늘을 보려던 윤서가 권지한의 능글맞은 목소리에 붙잡혔다.
“내 이상형은… 뭔지 안 궁금해?”
“알고 싶지 않습니다.”
“들어 봐.”
권지한이 윤서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내 이상형은,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숨기고 있던 힘을 드러내고 모두를 구하는 사람이거든.”
“…….”
스킬 <확신의 저울>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발언을 판단합니다.
확신 100 : 중도 0 : 의문 0입니다.
윤서가 아무 말도 못 하자 권지한이 비스듬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 서로가 이상형이었네. 이거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개소리하지 말고 구름이나 찾으세요.”
“형 귀 빨개졌어.”
윤서도 귀에 열이 오른 걸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시하고 홱,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의 구름들이 이상해졌다.
뭉글뭉글 포개지더니 사람 얼굴이 되었다. 느른하게 웃고 있는 남자였다.
윤서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저게 왜 저렇게 되지?
여전히 권지한은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윤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던전엔 못 들어가도 서해 범람은 그쪽이 나서면 오늘 안에 다 끝낼 수 있지 않나요?”
“…응? 갑자기?”
“네, 저 해돌이 닮은 구름을 보니까 재희 헌터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권지한이 윤서가 가리키는 구름을 힐끔 봤다. 처음엔 해돌이를 닮았으나 지금은 뭉개져 있었다.
권지한은 흐음, 턱을 쓸더니 윤서의 화제 전환에 어울려 주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나서면 당연히 오늘 내로 몬스터 전멸이지. 왜, 내가 거기 갔으면 좋겠어?”
“제발요. 혹시 마력 회복이 아직 다 안 됐습니까?”
“회복은 거의 다 됐는데 굳이 내가 가야 하나 싶네.”
“정의롭다면서요. 위기에 빠진 약자를 안 본 척 지나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까, 권지한 헌터?”
도발하듯 말하자 권지한이 피식 웃었다.
“걔네는 위기에 빠진 약자가 아니잖아. 그 인원으로 해결 가능한 일에 굳이 내가 휴가도 포기하고 나선다면 그건 나 자신한테 정의롭지 못한 일이지.”
윤서가 권지한을 쳐다봤다. 갈색 눈에는 외국어라도 들은 듯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타인이 소중한 만큼 나도 소중한데, 굳이 내가 나설 필요 없는 일에까지 날 할애하는 건 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행동이란 말이야.”
“…의미 없는 자기희생은 안 한다는 거군요.”
“맞아.”
권지한이 윤서의 표정을 살피며 대답했다. 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 사과할 기회를 노리고 있던 권지한은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입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안해, 형.”
“뭐가요?”
“나도 그렇고 우리 길드도 서채윤 끌어내겠다고 좀 선 넘은 짓 많이 했잖아. 조용히 살겠다는 사람을 배려 없이 몰아세우고, 자극하고…. 자기희생 싫다는 새끼가 말이야.”
“사과할 일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 찝찝하게 만드니까 사과하지 말고 계속 건방지게 행동하세요.”
“…….”
지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과라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더더욱. 이럴 때는 어떡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며 권지한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가만히 앉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고만 있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아니, 처음인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형, 구름 찾기 재미있네. 가만히 앉아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거 되게 오랜만이야.”
“그래요?”
“응,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엄청 오랜만이야.”
이번엔 윤서가 권지한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선을 느낀 권지한이 고개를 돌리고 눈이 마주쳤다. 밝은 햇살 아래에서 눈에 띄게 예쁜 사람이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이상해?”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오랜만이라는 사실 말이에요.”
이해하지 못한 권지한이 고개를 갸웃하자 윤서가 이어서 말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수도 없이 많을 텐데 왜 당신은 이런 여유도 갖지 못했죠?”
“그야 내가….”
“강하니까?”
“…….”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못하는 건 의미 없는 자기희생 아닙니까?”
윤서가 이 기회만 노렸던 사람처럼 권지한의 가치관을 공격했다.
권지한의 회색 눈이 잠깐 흔들렸다.
“아니…. 그거랑은 다르지.”
“다르지 않습니다. 똑같아요. 궁금한 게 있는데, 만약 내가 치유 내성이 없는 멀쩡한 상태로 잠적한 거였다면 지금 사과하는 게 아니라 날 비난했을 겁니까?”
“…….”
“동료를 1,201명이나 잃은 사람이라도 사지가 멀쩡하면 끊임없이 전투를 해야 비난을 안 받는 거군요. 죽으면 숭고한 영웅이 되고. 살아서 잠적하면 비겁한 사람이 되고.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똑같이 세상을 구했는데 말이에요. 이런 건 의미 있는 자기희생인가요? 이런 게 정의로움이라는 거예요?”
권지한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윤서를 쳐다봤다. 그가 이렇게 말문이 막히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무언가 할 말을 찾는 듯 입술을 뻐끔거렸지만 새어 나오는 음성은 없었다.
윤서는 가만히 그 표정을 들여다보다가 한참 후에 말했다.
“나중에 ‘진심으로’ 사과할 마음이 들면 그때 다시 하세요. 지금은 아닙니다.”
“……응.”
권지한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 후로 그는 말이 없었다.
윤서는 말 몇 마디로 22년간의 가치관이 흔들릴 거라는 기대는 안 했다. 다만 이 대화 이후 권지한이 느물느물 친한 척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큰 착각이었다.
***
병원은 훌륭했다. 의료진은 과하게 친절하고, 한 층에 병실 하나가 끝이니 다른 이를 만날 필요도 없고, 조용하며 쾌적했다.
그러나 그는 몸은 편했으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입원한 지 나흘째. 윤서의 옆에는 여전히 권지한이 있었다.
권지한은 정말로 윤서가 하는 걸 다 함께했다. 윤서가 드라마를 보면 옆에서 같이 드라마를 보고, 그림을 그리면 저도 주섬주섬 노트를 꺼내 낙서하고, 스쿼트를 하면 같이 스쿼트를 해서 또 경쟁심을 부추기고. 그러면서도 자꾸 말을 걸었다. 대답할 때까지 계속 말해서 윤서도 어쩔 수 없이 대꾸해 줬다. 나흘째가 되자 윤서도 권지한에게 익숙해져서 이제 권지한이 아무 말도 안 하면 어색해질 지경이었다.
“이제 뭐 할 거야? 뜨개질?”
“드라마 볼 거예요.”
“‘러브 인 한강’?”
“네.”
윤서가 <염력>으로 TV 옆 협탁의 리모컨을 컨트롤했다. 이제 윤서는 권지한 앞에서는 자유롭게 스킬을 사용했다.
“왜 아깝게 마력 써? 나한테 채널 돌려 달라고 하면 되지.”
“어차피 금방 회복해서 괜찮아요.”
“쿨타임은?”
“전투 중도 아닌데 쿨타임이 어떻든….”
“흠, 그 스킬 쿨타임 짧구나.”
“그쪽도 스킬 쿨타임 짧은 거 다 알거든요. 특히 <명왕의 밤>은 쿨타임이 있긴 합니까?”
“있긴 해. 1초.”
윤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가서 쿨타임 있다고 말하면 처맞을 정도다.
“설마 다 그렇게 짧은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내 스킬 중에 쿨타임 제일 긴 건 하루나 걸려.”
“하루면 긴 것도 아닙니다. 어떤 스킬은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잖아요.”
“형 스킬 중엔 몇 개월 걸리는 거 있어?”
“전 없지만….”
윤서의 스킬 중 쿨타임이 가장 긴 건 12시간이었다.
다만 마력 제한 때문에 자유롭게 쓰지는 못했다.
“그 하루 걸린다는 건 <퀘이사>인가요?”
“응, 그건 마력도 꽤 잡아먹고 쿨타임도 하루나 돼.”
“다른 스킬들은 쿨타임이 얼마나 돼요?”
“다른 건 그냥 계속 쓸 수 있어. 처음엔 쿨타임 길었는데 레벨 업 하니까 줄어들더라. 아, <유토피아>도 열 시간은 걸리네. 근데 뭐 그건 딱히 쓸데가 없어서.”
윤서는 <퀘이사>와 <유토피아>를 떠올렸다. 가이아 시스템의 스킬명은 이렇게 기존 고유 명사를 가져온 것들이 많은데, 이런 것들은 어떤 스킬인지 추측하기도 편했다. 모르는 용어는 검색해 보면 되니까. 윤서는 깨어난 후 ‘퀘이사’에 대해 검색했었다.
퀘이사. 우주에서 가장 밝고,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는 천체.
그 중심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는 최소 백만 광년 이상 뻗어 나가며 그 한계는 아직 측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퀘이사는 너무 밝아 많은 학자가 우리 은하 내에 있다고 예상했지만 사실은 수십억 광년 이상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게 알려져 학계를 놀라게 했다고.
무려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는단다. 다른 사람들이 화산이나 태풍 따위에서 따온 스킬을 가지고 열심히 작전을 짜는 게 권지한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천체에서 따 온 스킬을 가진 그에겐 어린애들 놀음으로 보였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