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81)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81)화(81/195)
#74
“<퀘이사>는 지금 레벨이 몇입니까?”
“아직 B등급 레벨 2야.”
“저번에 봤을 땐 레벨 1이었잖아요. 올랐네요.”
“다 형 덕분이지.”
권지한이 씨익 웃었다
“<퀘이사>는 위력이 너무 강해서 자주 쓰지 못하거든. 폭발 하나로 던전이 쑥대밭이 되어 버리니까 나 혼자 던전 갔을 때나 쓰다 보니 레벨 업 못했어. 그래도 이번에 형의 실드 덕분에 사용할 수 있어서 레벨도 오른 거야.”
“제 실드도 결국 무너졌잖아요.”
“형 마력이 없어서 무너진 거잖아.”
“마력이 있어도 그건 못 버텼을 거예요.”
“아니, 버텼어. 동굴이 무너진 건 내가 <퀘이사>를 사용했을 때가 아니라 형의 마력이 전부 소진되었을 때였거든. 그 찰나의 순간에 형의 실드가 <퀘이사>의 위력을 줄이지 않았다면 던전에서 살아 나온 사람은 형이랑 나 둘뿐이었을 거야.”
“…….”
그럴듯한 가정이라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형한테 다른 스킬도 있다는 거 알아. 더 강력한 실드 스킬 갖고 있잖아.”
윤서가 입을 다물었다. 서채윤인 게 들킨 마당에 겸손도 우스웠다. 서채윤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헌터라고 평가받는 것은 강한 공격 스킬을 지녀서가 아니었다. 무엇에도 뚫리지 않는 방패로 모든 걸 지켜 내서 유명해졌다.
“검과 방패, 나랑 형은 합이 맞는 것 같아. 퇴원하고 나면 우리 둘이 같이 낮은 등급 던전에 들어갈래? 그린이나 네이비로.”
“설마 우리 둘만 가자고 얘기하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은 있어 봤자 방해되기만 해. 지키면서 싸워야 하니까. 형도 내 마음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모릅니다. 던전은 그쪽 혼자 가세요.”
윤서는 단칼에 거절하고서 햅쌀이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권지한은 포기하지 않았다.
“형도 궁금하지 않아?”
“뭐가요.”
“형의 실드가 <퀘이사>를 얼마나 버틸지.”
“…….”
권지한이 윤서를 유혹했다. 윤서는 자신의 스킬 몇 개를 떠올렸다. <세이프존>으로는 안 되겠지. <수호의 궤>는 보호하는 면적이 좁고. <딥 필드>라면….
<딥 필드>는 단 한 번도 외부의 충격으로 깨진 적이 없는 실드였다.
그 대던전에서도 <딥 필드> 안은 온전히 안전하여 아예 그 안에서 다 같이 잠을 잔 적도 있었다.
다만 마력 소모가 심하고 쿨 타임도 반나절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우리 같이 던전 들어가서 형의 실드가 이길지 내 스킬이 이길지 내기하자.”
“안 합니다. 그냥 그쪽 레벨 업 하고 싶어서 저 도구로 쓰는 거잖아요.”
“생각해 봐. 나 레벨 업 하면 얼마나 든든해. 지금도 존나 강한데 여기서 더 강해지면 세상이 얼마나 안전해지겠어? 막 위험한 일이 있어도 정체를 숨기고 싶은 S급 헌터가 정체를 드러낼 필요도 없고 말이야.”
정체를 숨기고 싶은 S급 헌터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했다.
“정말 안전을 원하면 혼자 가서 레벨 업 하라니까요.”
“아, 형. 재미없게.”
“재미없으면 재미있는 사람 찾아가세요.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윤서는 이제 이 얘기는 끝났다는 듯 자세를 고쳐 앉고 햅쌀이를 쓰다듬었다. 그동안 햅쌀이도 꽤 커져서 지금은 어른 주먹 두 개만 해졌다.
권지한은 애처럼 떼쓰지 않고,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 알 품은 지 꽤 됐는데 이제 슬슬 깨어날 때 된 거 아냐?”
젠장, 이제 좀 드라마에나 집중하고 싶었던 윤서가 인상을 썼다.
햅쌀이 얘기라면 윤서도 무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햅쌀이는 엄청난 관종이라서…. 누가 자기 얘기를 하면 짹짹거리면서 좋아하는 녀석이다. 지금 권지한의 물음을 무시하면, 나중에 알 깨고 나온 햅쌀이가 윤서에게 보복을 가할지도 몰랐다.
“아직 멀었어요. 일주일은 더 걸릴 거예요.”
“얼마만큼까지 커지는데?”
“크기는 여기서 변화 없을 겁니다. 단지 마력이 부족한 거죠.”
“그 알은 남의 마력은 못 먹여?”
“귀속 아이템이라서 제 마력만 흡수합니다.”
“그럼 일단 형이 회복 다 한 다음에 마력 주는 게 낫지 않겠어? 갑자기 위급 상황 발생할 수도 있잖아.”
“햅쌀이가 마력을 많이 잡아먹진 않습니다. 그럴 때 쓸 마력은 남겨 둘 거고요.”
“햅쌀이, 진짜 들을 때마다 웃기다.”
햅쌀이 이름이 웃기다니? 윤서가 째릿 노려봤다. 권지한은 겁먹기는커녕 귀엽다는 눈빛이었다.
“나도 예전에 강아지 두 마리 키웠는데. 이름이 세바스찬이랑 데이빗이었어. 햅쌀이보다 훨씬 멋있지.”
“종이 뭐였는데요?”
“진돗개.”
“진돗개는 비싸지 않습니까? 예전에 가난했다면서요.”
“형은 얼마나 예전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야… 10년 전?”
“너무 옛날이다. 나는 17살 때 말한 거야.”
윤서는 조금 억울했다. 권지한이 17살 때라면 5년 전이었다. 그게 뭐가 옛날이란 말인가.
“각성하고 나서 존나 부자 됐거든. 마당 넓은 전원주택에서 커다란 개 키우고 뛰어노는 게 꿈이었는데 일찍 꿈을 이뤘지.”
“그럼 지금 그 집에서 살고 있는 겁니까?”
“아니, 지금은 아파트에. 근처에서 던전이 폭발하는 바람에 집도 무너지고 강아지들도 죽었어.”
“…좋은 곳에 갔을 거예요.”
윤서는 진심으로 애도했다. 반려동물이 죽는 건 어떤 기분일까. 윤서는 ‘존재하는 넋’을 영원히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정말 힘들었다.
“그… 상담이나 그런 건 잘 받았습니까?”
“상담?”
“반려동물이 떠났을 때의 상실감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권지한이 윤서를 빤히 바라보다가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난 12년 전에 엄마 돌아가셨을 때도 씩씩하게 잘 이겨 내서 그런지 괜찮았어. 세바스찬이랑 데이빗이랑 엄마가 하늘에서 날 지켜 줄 거라고 생각해.”
“네, 좋은 곳에 갔을 겁니다.”
“형네 가족은…. 물어봐도 돼?”
윤서의 얼굴이 굳었다.
“미안하지만 저는 아직 극복하지 못해서요.”
“형.”
“…….”
“나는 처음부터 가족이 엄마밖에 없어서 집 안이 조용했거든. 우리 엄마도 되게 말 없고 조용한 사람이어서. 그런데 형네 가족은 되게 시끌벅적하더라. 화목한 가족 같았어. 어머니는 성실하시고, 아버지는 가정적이고. 동생은 좀 장난꾸러기인데 나이가 어리니까 뭐. 아, 아버지가 드신 오징어볶음은 조금 매워 보였어. 나는 못 먹을 것 같아. 안 그래도 빨간 음식에 왜 고추장도 비벼서 드시는 거야?”
윤서가 숨을 깊게 들이켰다.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가 꺼졌다. 대번에 코끝과 눈가가 뜨거워졌다.
윤서가 몇 번을 그렇게 심호흡하는 동안 권지한은 조용했다. 그답지 않게 눈치를 보는 듯했다.
윤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유토피아>로 봤군요.”
“응, 내 의사와 상관없이 꿈을 보여주는 스킬이라서.”
권지한이 인정했다.
S급 옐로우 던전의 마지막에 권지한이 사용한 <유토피아>는 정신을 잃은 윤서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여 줬다.
윤서의 가족은 12년 전에 죽었다. 이 세상의 대부분이 그렇듯 아포칼립스 시기에 가족을 잃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떠올리면 상실감이 밀려들어 왔다.
부모님은 20년간 동네에서 자영업을 했다. 가게를 닫는 시간이 9시라서 그 시간이 가족의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윤서는 배고프다고 난리 피우는 동생한테 먼저 밥을 먹이고 엄마와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가 좋아하는 오징어볶음은 윤서가 가장 잘하는 요리였다. 그렇게 해 놓으면 아빠는 항상 고추장을 듬뿍 덜어서 밥과 오징어볶음을 비벼 먹었다. 그렇게 먹다가 위암 걸린다고 타박하고는 했는데 위암이 아니라 난데없는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죽어 버렸다.
<유토피아> 꿈에서 윤서는 정말 행복했다. 오랜만에 가족과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가족끼리 알고 지냈던 친구네 가족과도 함께 웃고 떠드는 행복한 꿈을 꿨다.
가족 얘기는 정말 반칙이다. 12년이 아니라 120년이 지나도 영원히 윤서를 눈물짓게 할 단어였다.
“형, 미안.”
윤서는 뜬금없는 사과에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권지한을 쳐다보자 그는 뭔가 오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사과합니까?”
“몰라.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어.”
“그게 뭐예요.”
“나는 가족이 엄마밖에 없었다고 했잖아…. 엄마가 죽었을 땐 슬프긴 했지만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 그래서 내가 좀 무신경하게 말을 꺼냈던 것 같아.”
담담하게, 어떤 꾸밈없이 사과해오는 권지한을 윤서가 빤히 바라봤다.
“…….”
권지한은 윤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회색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윤서는 그 눈을 보면서 던전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권지한에게 목숨을 구해 줘서 고맙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고맙지 않았으니까. 쓸데없이 축복을 내려서 ‘길드석으로 이동’을 두 명이나 가능하게 한 가이아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권지한이 <유토피아>를 사용해 준 건 고마웠다.
정말 행복한 꿈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가족을 봤고,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다. 너무나 오랜만에….
“권지한 헌터.”
“응.”
“왜 그때 나한테 <유토피아>를 사용했어요? 그런 여유가 있는 순간은 아니었잖아요.”
윤서는 그에게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권지한이 윤서를 빤히 바라봤다. 그의 회색 눈은 윤서의 내면을 샅샅이 파헤치는 것만 같았다.
“몰라, 나도….”
“…….”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어.”
“…….”
“그래야만 했어.”
“…….”
“형이 곧 죽을 생각에 너무 행복해하잖아. 그게 진짜 행복이 아닌데, 가짜 가지고 행복해하니까 진짜를 느껴 보라고 그런 거야.”
처음엔 확신이 없는 듯하더니 마지막에는 강한 확신을 담긴 목소리였다. 시선 또한 윤서를 정확히 직시해 왔다.
둘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외부의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기라도 했는지 햅쌀이가 부르르 표면을 떨었다.
권지한은 자신이 죽음을 기대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그건 행복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가짜 행복과 진짜 행복은 어떻게 구분할까. 그런 건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있는 감정일까?
확실한 건 윤서는 지금, 그때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언을 다 들어주지도 못했는데 죽었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죽었으므로 후회하지도 못했겠지만….
윤서는 어쩐지 허탈해져서 흐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직 저를 주시 중인 권지한에게 잠긴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권지한 헌터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에요.”
“…역시 나한테 화난 거야?”
“화 안 났습니다. 이상하다는 거 칭찬인데요.”
“그렇구나. 형도 되게 이상해.”
“고맙네요.”
윤서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권지한도 안심한 듯 덩달아 씩 미소 지었다.
귀에 피어싱이나 겉모습만 보면 껄렁껄렁한 양아치인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기만의 신념이 있는 청년이라는 걸 알게 된다. 비록 그 신념이 윤서의 가치관과는 정반대에 있지만.
‘난 유언을 다 끝내고 나면 죽을 텐데.’
권지한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강한 헌터로서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끝없는 싸움을 계속해 나가게 될 것이다.
윤서는 곤란했다.
권지한을 그렇게 두고 싶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