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94)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94)화(94/195)
#87
– 수빈이 형도 리벤저의 유족들한테서 서채윤에게 말을 좀 전해 달라고 부탁 많이 받았대요. 특히 외국 헌터들, 수빈이 형한테 엄청나게 연락했다던데. 아니다. 그냥 석영 전체가 지금 비상이에요. 전화선 끊어 놓고 싶을 지경이래요. 유족들뿐만 아니라 기자들, 그냥 민간인들까지 전화 폭탄이에요.
윤서는 안타까워졌다. 앞으로 더 비상사태일 것이다. 대던전까지 알려지고 나면….
– 그래서 말인데 출근은 언제 하세요?
“다음 주 수요일에 할 예정입니다.”
-아, 던전 브리핑날 형도 오는 거네요. 형한테 계속 던전 들어가래요?
“제가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퍼펙트 1팀/2팀
차주 수요일 13:00
브리핑 참석 요망
윤서에게도 온 메시지였다.
그날 오후에 세계 헌터 연맹에서 대던전 발생을 직접 예고하기로 했는데, 퍼펙트는 몇 시간 전에 미리 듣게 될 것이다.
윤서도 함께 자리하기로 했다. 유준철이 퍼펙트 팀원을 대던전 공략 참가가 필수인 것처럼 압박할까 봐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윤서는 아직 석영을 불신하고 있었다.
– 괜찮겠어요? 치유 내성 해결하고 가는 게 좋지 않나.
“석영에서 포션을 만들어 본다고는 하더군요.”
– 꼭 만들어지면 좋겠네요. 형 싸우는 거 보면 조마조마할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엄청 구경하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해요.
“…그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 잠깐만요. 잠깐만요. 형.
전화를 끊으려는 윤서를 수재희가 다급히 붙잡았다.
– 혹시 시간 되면 내일 만날래요? 수빈이 형이랑 같이.
“수요일에 보죠.”
– 혀어어엉.
윤서가 냉정하게 거절하자 수재희가 우는소리를 했다.
– 저 너무 슬퍼요. S급 옐로우 던전 공략하고 얼마 안 돼서 바로 S급 범람 처리하러 가고, 그러느라 형 병문안도 못 가고 진짜 이런 인생 살아 뭐 하나 싶고. 지한이 형은 내내 형이랑 붙어 있었다면서요? 에휴, 뭐 형이랑 지한이 형이 워낙 특별한 사이이니 질투하는 건 아니지만.
“특별한 사이라니요?”
– 네…. 형이랑 지한이 형이랑 그, 그것도 하는 사이잖아요. 아, 물론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수빈이 형이랑 홍이 형도 몰라요. 이건 저만 알고 있어요. 저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에요.
그것도 하는 사이라는 건 대체 뭘 말하는 건가. 윤서는 기억을 되짚어 보다가 권지한과 대련하기로 한 걸 수재희가 들었던 게 떠올랐다.
“아, 그거라면 취소되었습니다.”
– 네?
“서로 합의하에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아…. 그, 그렇구나….
수재희가 어째서인지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 분명 사이좋았던 것 같은데 어쩌다 파국으로…. 아, 아니다. 이건 형들만의 스토리니까 얘기 안 해 줘도 돼요….
파국? 윤서는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권지한과 내 사이가 왜 파국이란 말인가. 대련을 취소했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사이를 파국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것까지는 없다.
– 형이랑 지한이 형 사이가 완전히 나빠졌다는 것도 저만 알고 있을게요. 절대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탄 났다는 건 아무도 모를 거예요.
윤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정도로 나쁘진 않습니다.”
– 네, 네. 완전히 절연했지만 절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을게요.
“정말 안 나쁩니다. 내일도 단둘이 같이 밥 먹기로 했어요.”
– 네? 둘만…?
“예.”
– 그렇구나. 어른의 세계는 정말 알 수 없네요…. 완전히 산산조각으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파국이 난 관계도 둘이서만 밥을 먹어야 하는 세계라니….
이 새끼가 말이 심하네.
어이없어진 윤서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내일 수재희 헌터도 오시죠.”
– 저요? 갑자기요?
“오세요. 같이 식사나 하죠.”
– 혹시 형들 사이 완전 말도 안 되게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것 때문에 어색해서 저 끼우려는 거예요?
아니다. 망가지지도 않았고 안 어색하고 사이 원만하니까 직접 눈으로 확인하라고 부르는 거다.
“그냥 보고 싶어서 그래요. 리벤저 유족들이 전해 달라 한 말들도 들어야 하고.”
생각해 보니까 수재희한테 전해 줄 니트도 있었다. 지금 심정으로는 다 찢어 버리고 싶긴 하지만.
–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완전히 파국 맞은 형들의 사이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막중한 임무를 저한테 맡기시니 최선을 다해 살려 볼게요. 수빈이 형도 불러도 돼요? 홍이 형은 안 부를게요. 아, 혹시 그 형한테서 연락받았어요? 사과해야 한다고 요즘 낯빛 퍼래져서 다니던데. 저는 형 번호 절대 안 알려줬어요.
“연락 안 왔습니다. 그냥 내일 둘 다 부르세요.”
– 헐, 진짜 홍이 형 불러도 돼요?
“네.”
– 아싸. 제가 사이 핵핵핵 나쁜 형들 최대한 안 어색하게 열심히 분위기 맞출게요!
수재희가 좋아라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수재희는 곧바로 권지한과 박수빈이 포함된 네 명 단체 방을 만들고 내일 만나자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윤서는 설탕을 넣고 섞은 버터에 달걀노른자를 깨뜨려 넣었다. 주걱을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지만 최대한 살살 섞었다.
내일 확실히 보여 줄 것이다. 권지한과 내 사이가 얼마나 핵핵핵 원만한지. 파국이니 엉망진창이니 같은 표현은 쏙 들어가게끔 말이다.
윤서도 수재희도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
수재희
형들 홍이 형이랑 저는 도착했어요 이미 사람들이 몇명 줄 서고 있길래 저희도 줄섰어요. 천천히 오세요 :D:D:D
박수빈
빨리 갔네. 난 10분 정도 남았어 ^^
수재희
홍이 형이 빨리 가자고 늦으면 안된다고 엄청 재촉해대서ㅡㅡ
홍이 형 단체방 초대하면 안되죠?
박수빈
들어오고 싶대? 윤서 씨한테 허락받아야지
만나기로 한 시간이 아침 6시고, 지금은 5시 30분인데 벌써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윤서는 목 끝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내리며 답장을 보냈다.
초대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줄 서지 마세요. 전부 도착하면 같이 서죠.
수재희
엥 왜요?
일행이 셋이나 나중에 오면 뒷사람들이 짜증 나잖아요.
수재희
헐 그렇구나 그런건 생각 못했는데
박수빈
윤서 씨는 배려심이 깊군요.
권지한
ㅋㅋㅋㅋ 우리 형 줄 서는 거 좋아해서 그래.
윤서가 눈썹을 찌푸렸다.
수재희
줄서는걸 좋아한다고요?
권지한
ㅇㅇ 맛집 줄 서서 기다리는 걸 좋아한대.
수재희
ㅋㅋㅋㅋ그게 머임 그런걸 누가 좋아해요 ㅋㅋㅋ 저 놀리는거죠?
권지한
진짜야. 윤서 형 취미 중 하나래.
윤서 형은 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줄 서기를 위해서 가는 거야.
수재희
아….. 형 취미 존나 많다고 듣긴 했는데..;
권지한
미리 줄 서지 말라는 것도 왜인지 알아? 뒷사람들 짜증 날 거라는 건 핑계고 자기 줄 서는 시간 짧아지는 게 속상해서 그런 거야.
수재희
….진짜요?
박수빈
전 윤서 씨 응원해요. 세상엔 여러 취미가 있는 법이니까.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수재희
;;;저도여 윤서 형;; 그.. 세상엔 여러 취향이 있는 법이니까요! ㅎㅎ 파이팅!
약속 파투 내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몸은 착실하게 나갈 준비를 했다.
슈가 파우더까지 살살 뿌려 완성한 초코크랙쿠키와 햅쌀이를 챙기고 차에 올라탔다. 내비게이션에 맛집 주소를 입력하고 바로 시트를 뒤로 눕혔다. 10분이라도 잘 생각이었다.
“찹쌀아, 나 좀 잘게.”
“조도를 낮출게요. 햅쌀이는 아직 안 일어났나요?”
“며칠 안으로 눈을 뜰 것 같아.”
“기대되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응.”
***
윤서는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그때 네 명은 이미 모여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저 남자들 백 퍼 헌터일 것 같지 않아?”
“무조건이지. 변장 아이템 써도 잘생긴 데다가 키 크고 몸 좋잖아.”
“실수인 척하고 저 모자 한번 벗겨 볼까.”
“장난하냐. 네 기습에 헌터가 당하겠냐.”
“나 생각보다 되게 날쌔. 진짜야.”
줄을 선 사람들이 식당 근처에 모여 있는 미남자 네 명을 향해 수군거렸다. 모자를 쓴 남자 하나, 안경을 쓴 남자 둘, 마스크를 낀 남자 하나. 얼굴 쪽에 뭔가를 장착했다는 건 나 변장한 헌터요, 라고 광고하고 있는 꼴이었다.
“아, 혹시 저 중에 서채윤 님 있는 거 아니야?”
“지랄을 해라. 그보다 조용히 좀 해. 다 들리겠어.”
“이 정도 목소리도 들리나?”
“당연히 들릴 걸?”
윤서는 대화하는 민간인들의 옆을 지나쳐서 일행에게 향했다.
일행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말하는 이는 주로 수재희와 홍의윤이었고, 박수빈은 다정다감하게 리액션했으며 권지한은 심드렁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윤서의 시선은 권지한에게서 오래 머물렀다. 그는 정말로 윤서가 준 아이보리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이 한여름에 말이다. 수정과를 흘린 흔적은 없고 깔끔하기만 했다.
권지한이 시선을 느끼자마자 바로 고개를 돌려 윤서를 쳐다봤다. 심드렁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회색 눈이 휘어지고, 양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다.
윤서도 덩달아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누르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 윤서 씨.”
박수빈이 빙긋 미소지었다. 가장 먼저 윤서를 발견한 이는 권지한이었으나 가장 먼저 인사하는 이는 박수빈이었다. 이어서 수재희도 호들갑 떨면서 다가왔다.
“형, 형, 형. 오랜만이에요! 완전 보고 싶었잖아요. 어떻게 몸은 좀 괜찮아요?”
“네,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다행이다. 엄청 걱정했어요.”
인사를 마친 다섯 명은 바로 맛집 줄 서기에 참여했다. 그들 앞으로 벌써 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맛있는 걸 먹으러 왔다가 변장한 헌터들(일 게 분명한 사람들)을 목격한 민간인들은 계속 그들을 힐끔거렸다. 어떻게 대화 소리를 한마디라도 듣고 싶어서 안달이었으나, 거리도 멀지 않은데 다섯 명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박수빈이 이럴 때를 대비해 마력이 없는 비각성자에게는 대화가 안 들리게 하는 아이템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일행은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다.
“형, 홍이 형이 할 말 있대요.”
수재희가 옆에서 움찔거리기만 하는 홍의윤의 어깨를 툭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