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id it alone in a closed beta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그와의 대면 그리고. (완결)
갑자기 울린 뿌리의 삭제 메시지.
물론 그 메시지에 이어 곧장 녀석의 용암 주먹이 나를 강타했다.
당연히 채 1%도 남지 않은 생명력으로는 녀석의 용암 주먹을 버티는 것은 무리였고.
그런데.
[…….]
그 용암 주먹이 나에게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 전에 추가적으로 울린 메시지가 있었으니까.
[뿌리가 그간 달성한 뛰어난 업적 목록입니다.
1. 소멸 후 업그레이드되어 재탄생 하였습니다.
2. 기생충의 일부분을 흡수하였습니다.
3. 몬스터를 다루는 고대의 기운을 흡수하였습니다.
4. 100% 현실 구현률 달성자의 표식을 흡수하였습니다.
5. 근원의 조각Ⅲ을 흡수하였습니다.
6. 데나얀의 나무 조각을 흡수하였습니다.]
[뿌리가 소멸함으로써 그간 획득한 뛰어난 업적을 포함해 모든 것과 뿌리 스스로 한 차원 위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파괴함으로써 아래의 것을 획득합니다.
-힘 175,000이 증가합니다.
-민첩 133,000이 증가합니다.
-체력 300,000이 증가합니다.
-정신력 249,000이 증가합니다.
-지력 750,000이 증가합니다.
-생명력 10,000,000이 증가합니다.
-마나 5,000,000이 증가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모든 스킬의 쿨타임이 삭제됩니다.
-호칭 ‘전설적인 사기꾼’을 획득합니다.]
“…….”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
하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900레벨 마지막 한정 퀘스트 당시 뿌리가 스스로 몸을 태우며 나 대신 시작 지점에 도착하면서 연결 고리가 끊어졌을 때 느꼈던 그 감각이 그대로 전해져 왔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에 적혀 있는 ‘전설적인 사기꾼’이라는 호칭.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왠지 뿌리가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나 한 차원 위로 성장할 발판을 마치 내가 그렇게 유도함으로써 획득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으니까.
여하튼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스탯포인트의 상승.
그래서 녀석의 공격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천만이 넘는 생명력도 한몫을 했고.
퍽. 퍽. 쾅. 쾅.
그 뒤로도 계속 내 몸에 박혀드는 다른 공격들도 전부.
그제야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듯한 적.
[뭐지?]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사용. 특출나게.”
쿨타임이 사라진 특출나게를 다시 사용했다.
[현재 lumen, 아시란테님이 보유한 힘, 민첩, 체력, 정신력, 지력 중에서 가장 특출난 스탯은 지력입니다.
-현재 보유한 지력 수치: 914,751
-30분간 지력 수치가 1,829,502으로 변경됩니다.
-특출나게의 유지 시간이 종료되면 10일의 쿨타임이 발생합니다.]
그리고는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당연히 5중첩을 하고서.
“아이스 브레스.”
콰아아아앙!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엄청난 굉음.
물론 굉음뿐만이 아니었다.
분명 지금까지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던 1번 로얄 구역의 주인을 그대로 짓뭉개는 것을 넘어 뒤로 한참을 날려버렸다.
비틀비틀.
몸을 비틀거리면서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1번 로얄 구역의 주인.
우선 블링크로 녀석 근처로 다가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방금 엄청 후회할 뻔했어. 그래서 고마워. 한 번에 죽지 않아줘서.”
실수할 뻔했다.
자근자근 씹어 먹어도 부족할 녀석을 곱게 죽여줄 뻔 했으니까.
[뭐… 뭐지? 이건… 불가능해.]
“아이스볼. 아이스 볼트.”
퍽. 퍽.
녀석을 향해 대답 대신 가장 낮은 레벨의 공격을 사용했다.
대답을 해줄 의무가 나에게는 없으니까.
우선 그 뒤로도 계속 녀석의 몸에 박혀드는 공격들.
물론 녀석도 반항을 했다.
하지만 생명력도 생명력이지만 30만이나 증가한 체력과 25만이 증가한 정신력은 전과 확연히 다른 방어력을 갖게 해줬다.
그러다.
“…징벌 아이스!”
콰아앙!
[크억!] 털썩.
괴롭히면 복수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오히려 기분만 더 나빠졌다.
그래서 9레벨의 징벌 아이스를 곧장 녀석을 향해 날렸고 거의 무적에 가까운 신위를 뽐내던 녀석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가슴팍이 관통된 채로 죽자 한동안 가만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허무하고 너무 허무해서.
물론 그 와중에 이 힘을 조금만 더 일찍 얻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러나.
절레절레.
곧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결국 이 힘은 뿌리가 한 차원 위로 진화할 발판을 스스로 파괴하고 소멸함으로써 얻은 힘이니까.
털썩.
나도 모르게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물론 멀찍이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자들이 무수히 많기는 했다.
바로 지구에 속한 자들과 쿠하나에서 온 자들로.
하지만 내버려뒀다.
지금 당장은 거기까지 신경을 쏟을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갑자기 울리는 메시지가 있었다.
[쿠하나와 지구의 대결의 승자가 결정되었습니다.
-승자 : 지구.
-현 시간부로 쿠하나에 속한 모든 것은 소멸되고 그 모든 힘은 지구가 흡수합니다.]
[절망의 대지와 절망의 기운이 사라집니다.]
그 메시지가 울림과 동시에 온통 붉고 검었던 대지가 원래의 색으로 변해갔다.
멀찍이서 동그랗게 눈만 껌뻑이고 있던 쿠하나에 속한 자들도 순식간에 연기로 변해 사라졌고.
동시에.
“솔직히 0.00001%? 아니, 0.00000001%. 그 정도의 확률로 봤어.”
바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곧장 고개를 옆으로 돌렸고 곧 한명의 남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긴 창을 들고 있는 자를.
“이…지원?”
당연히 처음 보는 남자.
하지만 이자가 바로 이지원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질문에.
끄덕끄덕.
그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아. 내가 바로 이지원이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것이 당신이고?”
“그렇다.”
내 모든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는 남자.
우선 그 모습에.
“죽어! 서릿빛 혹한의 창!”
결국 이 모든 일의 장본인.
물론 한때는 누군지 모르지만 이 ‘Revival Legend’를 만든 자에게 엄청 고마움을 느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명백히 지금은 아니었다.
오히려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누나의 말대로 눈치만 보며 발톱도 세울 줄을 몰라 구석에 숨기 급급했던 비루한 아기 고양이 같던 과거가 그리울 정도로.
그런데.
[공격이 불가능한 대상입니다.]
“…….”
확실히 이 ‘Revival Legend’를 만들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억울했다.
그리고 그런 내 행동에.
“이봐. 진정해.”
“씨팔! 이 개새끼야! 이 상황에 진정이… 진정이 될 것 같아!”
무수히 많은 자들이 죽었다.
멸망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전혀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물론 그 무수히 많이 죽은 자들 속에 내 가족만 없었더라면 상관없을 거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죽었다.
그것도 나를 위해서.
“후. 안되겠군. 콜”
슝. 슝. 슝. 슝.
콜이라는 말과 함께 녀석이 손가락을 튕겼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아빠, 엄마, 형, 누나 거기에 연보라 등이.
그러나 시체처럼 두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는 상황.
그래서 녀석을 향해 소리를 칠 찰나 나보다 녀석의 말이 더 빨랐다.
“걱정 마. 안 죽었으니까. 그럼 이제 대화를 나눠도 되겠지?”
“…좋아.”
우선 흥분을 가라앉혔다.
나 혼자 흥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곧장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의 정체는 뭐지? 신 인가?”
“신? 음… 될 뻔 했지. 하지만 지금은 지구의 주인 정도? 그래. 지금은 딱 그 정도야. 그래서 쿠하나 그놈들에게 지구를 건 확률 0.00000001%의 도박을 제안한 거고. 그렇게까지 안 해주면 그놈들이 안 받아 들이더군.”
“그게 무슨 말이지?”
“후… 이야기를 하자면 길지만. 좋아. 홍주영 너에게는 특별히 말해주지. 결국 네가 확률 0.00000001%의 도박을 승리로 이끌었으니까. 그러니까 지구는 과거 테스트가 끝남과 동시에 오토본 단계라는 것에 돌입했다. 오토본 단계가 뭐냐고? 간단해. 네가 했었던 ‘Forgotten Legend’와
‘Revival Legend’가 오토본 단계를 참고해서 만든 거거든. 어쨌든 그 오토본 단계에서 나는 지구 전체를 장악했다. 7대제라 불리는 자들은 물론이고 거대한 세력과 단체도 결국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지. 지금의 너처럼. 아니, 너 이상으로. 그리고 곧 심판자의 대륙이라는 곳으로 이동해 지
구와 마찬가지로 오토본 단계를 거친 자들과 결투를 벌였고 또한 그곳에서 승리를 차지했다.”
생뚱맞다 못해 황당한 말.
하지만 그간 그것보다 더 심한 일을 겪었고 눈앞에 그 증거가 있기에 그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이지원이라는 자의 말을 경청할 뿐.
“그러니까 간단해. 오토본 단계는 ‘Revival Legend’ 현실로 모습을 드러낸 단계라 볼 수 있고 심판자의 대륙이라 불리는 단계는 쿠하나와 지구가 생존을 건 전투를 벌이는 단계라고 할 수 있지. 여하튼 그렇게 심판자의 대륙에서 승리를 거두자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심판자라는 자가
등장을 해서 이런 말을 하더군. 승리를 축하한다고. 더욱이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을 달성한 대가로 특별한 보상이 주어졌다고. 바로 마몽이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지 아니면 지구를 오토본 이전의 단계로 롤백해줌과 동시에 더 이상 오토본 단계에 들지 않게 해준다는 것으로.”
“…그래서 선택은?”
“후자. 그때 나는 살짝 지치기도 했거든. 심판자의 대륙에서 마지막으로 상대했던 자는 정말 강력했고 그로인해 아끼던 많은 자들이 죽기도 했고.”
“그런데 왜 이 난리는 핀 거지? 해피엔딩이 아닌가?”
“해피엔딩이라… 물론 그랬지. 분명 해피엔딩이었지. 내 힘은 그대로였고 내가 아끼던 자들도 전부 다시 살아 돌아왔으니까. 오토본 단계가 시작되기 직전으로. 그런데 말이야. 내가 아무리 지구의 주인이어도 일반 사람을 500년 이상 살게 만들 수는 없더라고. 더욱이 내 입으로 이런 말
을 하기는 뭐한데 오토본 단계에 진입하며 더 이상 종족번식이 불가능하다는 울림이 있었는데 나는 롤백을 해도 그게 적용이 됐더라고. 뭐, 고자라는 뜻이지. 더 정확히는 씨가 없는. 물론 그래도 상관없었어. 하지만 내가 아끼던 자들이 자손이 그리고 그 자손의 자손마저 계속 죽고 결국
나와 인연이 있는 자가 아무도 없게 되자 허무함이 느껴지더군.”
“…….”
“더욱이 그때 알겠더라고. 신들이 왜 떠났는지. 분명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개입할 생각도 아예 없었고.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간 인간의 눈부신 발전이 5천년 동안 제자리에서 멈춰져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가?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는
데 5천년 동안 여전치 자동차는 땅을 기어 다니고 인간 수명은 200년, 300년이라도 될 것 같았는데 여전히 100년이 되지 못했지. 정복할 줄 알았던 질병들도 여전히 정복을 하지 못했고.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들은 그걸 모르더라고. 거기서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어. 그래서 결정을 했
지. 다시 한 번 오토본 단계로 진입을 하기로. 내가 아끼던 자들도 전부 죽은 마당에 변화 없이 쳇바퀴만 도는 지구에 질렸거든.”
“…….”
쏜살같이 말을 내뱉는 이지원의 입을 막지 못했다.
그저 계속 듣기만 할 뿐.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어. 왜냐하면 내가 선택을 했으니까. 더 이상 오토본 단계에 들지 않는 것을. 그래서? 제안을 했지. 오토본 단계를 넘어 심판자의 단계를 앞둔 쿠하나라는 곳에. 솔깃했을 거야.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놈들은 오토본 단계를 비롯해 모든 단계를 조율하는 심
판자조차 두려워했던 내 힘이 탐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확실히 조심성이 너무 많더군. 나의 개입을 철저히 막고자 했지. 그래서 만들었어. 바로 ‘Forgotten Legend’와 ‘Revival Legend’를. 정확히 내가 겪었던 오토본 단계를 참고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입만 뻐끔뻐끔 할뿐.
“여하튼 홍주영 네가 지구를 승리로 이끌었고 지구는 쿠하나를 잡아먹음으로써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다. 새롭게 오토본 단계에 진입할 기회를. 물론 당장 할 생각은 없어. 승리자의 영광을 누려야지. 그러니 나는 기다릴 거야. 홍주영 네가 나와 같은 허무함을 느낄 때까지. 백년? 천년?
만년? 상관없어. 그때는 무의미한 기다림이었지만 이제는 유의미한 기다림이니까. 그럼 이제 내 이야기는 다 했고… 언젠가 다시 보자고. 그리고 그때 외쳐. ‘오토본 단계를 시작한다.’라고. 혹은 나를 찾거나.”
슝.
그 말과 동시에 한참동안 말을 쏟아냈던 이지원의 모습이 사라졌다.
동시에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고.
털썩.
나도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분명 정신을 부여잡으려 했지만 헛수고였고.
***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사방을 살폈다.
그러자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여긴… 내 방이잖아?”
청담동 본가.
우선 침대에 일어나 곧장 거울 앞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현재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내가.
마치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아니, 정확히 그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옆에 걸린 달력에는 2021년 7월 21일로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를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여름방학의 시작과 동시에 아무리 공부를 해도 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며 가상현실 접속기를 통해 게임을 찾던 시기이기도 했고.
그와 동시에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아이스.”
파사삭.
정확히 내 오른손 위에 얼음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때.
“홍주영! 밥 먹어!”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바로 누나의.
우선 그 목소리에 조심스럽게 밖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식탁에 앉아있는 분명 마지막에 봤을 때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형과 누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서 와서 앉아라.”
나에게 마지막까지 꼭 살아남으라고 했던 아빠.
“뭘 그렇게 겁먹은 고양이처럼 눈을 크게 끔뻑끔뻑 뜨고 있어?”
겉으로는 걸걸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누나.
찰싹.
“아야. 엄마 왜 때려.”
“너는 주영이가 그 말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내 걱정을 했던 엄마.
마지막으로.
“얼른 와.”
굳건히 자리를 지켜준 형까지.
모두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가족을 보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네. 오늘은… 왠지 배가 많이 고프네요.”
***
그날 저녁.
침대에 가지런히 누었다.
머리에는 3세대 가상현실 접속기를 착용하고.
그 후.
“검색. Revival Legend.”
[검색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 검색. Forgotten Legend.”
이때는 아직 ‘Revival Legend’가 아닌 ‘Forgotten Legend’라는 클로즈베타로 존재할 시기였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다시 메시지 하나가 울렸다.
[검색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
다음날.
홍주영은 바삐 집을 나섰다.
만날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홍주영이 정원을 가로 질러 움직이는 사이.
쑤욱.
정확히 홍주영이 발을 디뎠다 뗀 곳에서 살짝 모습을 드는 것이 있었다.
물론 홍주영은 그걸 확인치는 못했다.
살짝 모습을 드러낸 그것도 곧장 다시 모습을 감추었고.
끝
후기.
안녕하세요. basso77입니다.
이렇게 2번째 완결작으로 인사를 드릴 줄이야…
감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이런 인사를 드리게 만든 것은 전부 독자님들 덕분이니까요.
우선 [나 혼자 클로즈베타]를 쓰면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분명 전작보다 더 과분한 사랑도 받았고 또한 그만큼의 질타도 받았습니다.
당연히 주신 사랑과 질타는 잊지 않고 전부 저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무척이나 많았는데 정작 쓰자니 넋두리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작가로서의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발전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그럼 [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와의 여행을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PS.
1. 외전 혹은 에필로그 성격의 글을 짤막하게 적을 생각입니다.
-당연히 그 주인공은 홍주영과 이지원이고요.
2. [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는 처음부터 전작 [자고나니 세상이 게임으로 바뀌었다!]와 연계를 그려놓고 시작한 글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처음에 저는 그 구상을 하는 순간 ‘탁!’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가 알게 됐습니다. ‘아! 전작을 모르면…’ 그렇습니다. 너무 늦게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처음 전작의 주인공인 이지원의 등장 때 독자님들이 ‘헉! 여기서 이지원이?’ 라고 놀라는 것을 바랐지만… 네. 그렇더라고요.
3. 그러나 도중에 결과를 비틀 역량이 저에게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쭉 밀고 갔습니다. 그게 저에게는 최선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처음 계획한대로 완결을 냈습니다.
-외전 및 에필로그 성격의 글 몇 편은 그걸 보충하기 위한 목적도 존재합니다.
-솔직히 변한 홍주영의 모습을 최소한 어느 정도는 보여드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꼈고요.
4. 마지막으로 정말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절대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더 발전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5.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더 좋은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의 여행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외전 1. 이지원.
혹자는 아니, 거의 대부분은 지옥이라 했던 오토본 단계와 심판자의 대륙.
하지만 이지원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회귀 전 밑바닥을 전전했던 이지원이었기에 다시 마주한 오토본 단계는 새로운 기회의 장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실제로 회귀 전의 기억으로 승승장구했고.
물론 그런 이지원에게도 중간중간 고난과 역경이 있기는 했었다.
아무리 회귀 전의 기억과 경험이 있다 해도 워낙 비주류였고 어딜 가나 규격 외라는 것은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결국 그 고난과 역경을 모두 뚫고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기에 이지원에게는 그 고난과 역경마저도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여하튼.
[마몽 단계로 가자. 이지원 너는 나는 물론이고 그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 설 수 있다! 너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오토본 단계에 이어 심판자의 대륙에서 승리를 거두자 등장한 심판자라는 자의 언급.
솔직히 이지원도 조금 혹하기는 했다.
과연 이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더불어 자신이 과연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알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절레절레.
이지원은 마몽으로 넘어가는 선택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에 이지원은 심판자에게 한마디 말을 더 들을 수 있었다.
[물은 흘러야 한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다. 그래도 처음으로 돌아갈 것인가? 다시 돌아간 그곳은 더 이상 오토본 단계로 진입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내 선택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 그대의 선택이 꼭 옳은 선택이길 빈다. 회귀자 이지원이여.]
그렇게 오토본 단계로 진입하기 직전의 지구로 되돌아온 이지원.
그 후 이지원은 바쁘게 움직였다.
당연히 오토본 단계와 심판자의 대륙에서 함께한 자들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고.
가히 신이라 불러도 무방한 힘을 여전히 갖고 있었으니까.
또한 지구의 주인이라는 타이틀도.
우선 그렇게 이지원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살아있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던 엄마에게 제대로 아들 노릇을 했고 또한 분명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했던 송해인과도 연인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분명 그 행복은 10년, 20년, 30년을 넘어서까지 계속 유지가 됐다.
그러다 정확히 100년이 약간 흐르자.
“아들. 엄마가 미안해… 이렇게 아들만 두고 가서 정말 미안해.”
이지원은 자신의 힘으로 주변 인물에게 젊음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 젊음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기본적으로 노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건넨 젊음은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연인에서 이제는 아내가 된 송해인의 할아버지인 송대창 회장 등은 진즉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엄마마저도.
이지원은 그렇게 천천히 눈을 감는 엄마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신이라 불러도 무방한 힘을 갖긴 했지만 분명 그 힘에는 생과 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이지원은 견딜 수 있었다.
바로 아내인 송해인.
그 후 다시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
500년 뒤
“오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네가 뭐가 미안해.”
“오빠만 이렇게 남겨두고 가서… 정말 미안해.”
“미안하긴. 오히려 내가 고마워. 그간 내 곁을 지켜줘서.”
이지원은 그렇게 마지막 남은 인연인 송해인마저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지원은 느꼈다.
무척이나 쓸쓸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론 여전히 남아 있는 인연이 있긴 했다.
자식은 못 봤지만 그럼에도 딸 같은 샤만코가.
그러나 샤만코가 모습을 감춘 지 벌써 200년.
이지원도 그 이유를 모르지 않기에 내버려뒀다.
말인즉슨 샤만코는 엄청난 욕심쟁이였고 그런 샤만코가 욕심을 낼 것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나 지구 자체가 이지원 것이었기에 더더욱.
여하튼 이지원은 송해인의 죽음 뒤로 은둔 더 정확히는 잠에 들었다.
자신의 핏줄도 없었고 신경을 쓸 자들도 이제 거의 남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지원이 다시 잠에서 깬 것이 정확히 3000년 뒤.
“…….”
이지원은 잠에서 깨고 3000년이 흐른 지구를 확인하자 허무함 아니,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지구는 자신이 잠에 들기 전과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인간들은 그것에 대해 전혀 이상함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고.
그리고 그제서야 이지원은 심판자라 불리는 자가 했던 말 뜻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물은 흘러야 한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다.]
물론 이지원은 자신의 그때 그 선택이 마냥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분명 오토본 단계로 들어서기 전의 지구로 돌아와서 엄마를 만났고 또한 사랑도 마음껏 해봤으니까.
그거면 마몽이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은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됐고.
하지만 더 이상 변화도 그렇다고 진화도 없이 아예 제자리에서 멈춰버린 지구는 이지원에게 일종의 감옥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지원은 꾹 참고 또 참았다.
이것은 이지원 본인의 선택이었으니까.
그로인해 발생하는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고.
우선 그렇게 이지원은 또다시 잠에 들었다.
그것 빼고는 할 것이 없었으니까.
***
에둘러 잠이라 칭했지만 더 정확히는 의도적인 의식 차단.
그렇기에 직전 3000년간의 동면 아닌 동면을 하면서 일체 꿈같은 것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오빠. 사랑해.”
이지원은 아주 오랜만에 송해인을 만날 수 있었다.
“아들. 힘내!”
엄마도.
그 뒤로도 이지원은 한참을 더 인연이 있었던 수많은 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떻게 바리움 주제에… 바리움 주제에 이런 힘이 가능하냐고!”
“아냐! 이건 절대 불가능해!”
:
:
“불어라! 피의 폭풍!”
“모든 것을 먹어 치워주마! 포식!”
“시간아! 멈춰라! 타임 스톱!”
퍽. 퍽. 쾅. 쾅.
이지원은 지구 내에서 7대제라 불리는 자들은 물론이고 심판자의 대륙에서 마주한 앙헬이나 클라우디아 그리고 마지막 적이었던 괴물 아도라라 불리는 자들과의 전투를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듯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부들부들.
이지원의 몸이 살짝 떨렸다.
물론 두려움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기쁨. 한 발짝 더 나아가 희열, 환희.
이지원은 그때 확실히 느꼈다.
마몽이라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지켜야 할 자들도 그렇다고 사랑하는 자들도 없는 지구는 더 이상 머물 의미가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오빠.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
“아들아. 난 항상 너를 응원하마.”
“도련님. 파이팅입니다!”
“지원군 그동안 고마웠네. 그러니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네. 변화가 없이 멈춰있다는 것은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는 거니까.”
마치 자신의 의견을 적극 지지하는 듯한 모습들.
물론 이지원은 그 모습들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여기는 꿈이고 스스로 이게 옳은 선택이라고도 주입하기 위한 혹은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번쩍.
이지원은 그대로 눈을 떴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때는 분명 그 선택이 옳았다. 그러나 지금은 마몽이라는 단계로 가고 싶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흐리멍덩해졌던 이지원의 두 눈.
그런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두 눈이 밝게 빛났다.
여하튼 그렇게 결정을 내린 이지원은 바쁘게 움직였다.
어떻게 해야 다시 마몽이라는 단계로 갈 수 있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그 말인즉슨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뜻이고.
***
1000년 뒤.
쿠하나.
[호오.] [그 이름… 분명이 들어봤어.] [나도.] [그 누구보다 압도적인 강함을 보유했음에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거부한 자.] [온 몸에 털이 바짝 서게 만들 찌릿찌릿함이라니. 결국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뜻이잖아.]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결국 이지원은 방법을 찾았다.
그래서 이지원은 쿠하나를 찾아왔다.
오토본 단계를 거치고 심판자의 대륙으로 나아가기 직전의 쿠하나를.
우선 짤막하게 자기소개를 끝낸 이지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모든 힘을 걸겠다. 여기 있는 9명? 단언컨대 각자 내 힘의 10% 이상씩만 나눠도 심판자의 대륙은 물론이고 마몽이라 불리는 단계에서도 너희들은 쿠하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다.”
[알지. 하지만 우리가 굳이 그런 도박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나?] [맞아. 맞아.]
“걱정마라. 내가 직접 개입하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을 테니까.”
[뭐?] [이지원 그대로 나서지 않겠다고?] [진짜로?]
“그렇다. 나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 힘으로 오토본 단계의 그것을 현실로 구현할 것이다. 너희들이 상대할 자는 너희보다 무려 5년이나 뒤쳐진 자들과의 대결이다. 일종의 심판자의 대륙에서 펼쳐질 전투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내가 방문했던 178곳의 지배자들처럼.”
그랬다.
이지원은 이미 178곳을 다녔고 이번에 방문한 쿠하나가 179번째였다.
그만큼 이번을 포함하면 무려 179번째 제안.
[좋아. 나는 찬성.]
[나도… 찬성이다.]
[이지원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두렵지만… 나는 저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신 그만큼 확실히 이지원이 절대 개입치 못하게 해야 한다.]
“걱정마라. 현재 구상중인 것의 설계만 끝나면 나 스스로 너희들 앞에서 봉인을 선택할 테니까.”
당연히 구상중인 것은 ‘Forgotten Legend’라 불리는 클로즈베타와 ‘Revival Legend’라는 오픈베타.
여하튼 이지원은 그렇게 쿠하나의 9명의 지배자들과 계약을 진행했다.
물론 이지원도 이 도박이 성공할거라고 확신하지는 못했다.
아니, 확신이 아니라 실패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진행을 했다.
그리고 정확히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미국에 ‘브텐’이라는 자신이 없어도 모든 것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쿠하나의 지배자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스스로 봉인을 선택했다.
***
그로부터 10년 뒤.
서울 청담동.
띠링.
의자에 앉아서 공부를 하던 앳된 모습의 소년이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메시지에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솔직히 벌써 의자에 앉은지 1시간이 훌쩍 넘어 갔지만 머릿속에 들어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다.
“오호!”
소년은 작게 기쁨의 소리를 내뱉었다.
왜냐하면.
[축하합니다. ‘Forgotten Legend’의 1차 클로즈베타에 당첨되셨습니다.
-최소 2세대 이상의 가상현실 접속기를 활용하여 ‘Forgotten Legend’에 접속 후 프로그램 다운로드 이후에 이용이 가능합니다.]
물론 앳된 소년은 ‘Forgotten Legend’라는 것에 처음부터 목매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MMORPG라는 것 외에는.
다만 최대한 빠르게 자신을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이 공부라는 지옥에서 꺼내줄 게임을 찾고 있었기에 그렇게 기쁨을 토해냈다.
여하튼 그렇게 소년은 ‘Forgotten Legend’에 곧장 접속을 시도했다.
끝
외전 2. 홍주영 (1).
청담동 본가.
“…….”
고민이 아니, 더 정확히는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원래의 내가 알던 세계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겪었던 모든 일을 그러려니 하고 어물쩍 넘길 성질의 일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하루 대부분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나날을 보내길 며칠.
결국 결정을 내렸다.
당연히 그 결정에는 앞으로의 내 행보에 대한 것도 포함이 되어 있었고.
우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저녁 식사 후에 거실에 모인 아빠, 엄마, 형, 누나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를 담기에는 명진이 너무 좁은 것 같아요.”
“?”
“??”
“???”
내 말이 워낙 뜬금없었는지 가족 모두가 당황하다 못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그러니 모든 것을 형과 누나에게 주세요. 저는 뭐… 제가 알아서 명진보다 더 큰 곳을 만들면 되니까요. 물론 그때 돼서 명진을 모른 척 하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고요.”
내가 했던 많은 생각 중에는 가족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도 분명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럴 의향도 있었고.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왜냐하면 그건 우물 안 개구리가 드디어 우물 안을 벗어나 우물 밖을 보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종말론과 같은 것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시점에 지구가 멸망 비슷한 것을 당하니 더 이상 열심히 살 필요도 없고 미래를 대비한 돈을 모을 필요도 없으며 법과 규칙을 지킬 필요도 없다는 것을 뜻하는 그런 종말.
분명 내가 겪은 것은 그랬다.
이지원이라는 자가 한 말도 그랬고.
그래서 가족들에게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여하튼 그런 내 말에.
“쿨럭!”
“크크크.”
“푸하하하.”
평소 근엄함을 유지했던 아빠는 입에 머금고 있는 커피를 내뿜었고 아빠를 닮아 과묵한 형마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토해냈으며 누나는 아예 소파에 등을 기대며 자지러졌다.
더욱이.
“히끅. 히끅. 배가… 너무 웃었더니 배가 아파. 크크크.”
물론 엄마도 웃긴 웃었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 형은 웃던 표정을 재빠르게 원래의 표정으로 바꿨지만 여전히 누나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러다 당연히.
찰싹.
엄마한테 등짝을 한 대 맞았고.
그러나 여전히 그치지 않는 누나의 웃음.
“크크크. 아빠랑 엄마, 오빠도 웃기잖아. 괜히 참지 말라고. 참으면 병 생겨. 병!”
여하튼 그날의 내 선언이 딱히 제대로 전달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큰 웃음을 줬다는데 의의를 뒀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을 하기도 했고.
***
그날 저녁.
안방.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운 홍상만 회장은 그대로 잠에 들기보다 애들 엄마인 이혜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주영이가… 많이 변했더군.”
“그러니까요. 그런데 저는 지금이 훨씬 좋아요.”
“…….”
홍상만 회장은 그 말에 딱히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홍상만 회장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렇기에 평소 하던 공부에 대한 언급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고.
즉, 홍상만 회장은 명진의 미래에 관해서는 첫째와 둘째면 충분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주영이가 공부가 아닌 다른 방향 예를 들어 배우나 가수 등의 예술 분야를 하고 싶다면 밀어줄 의향도 있었다.
귀여운 막내기에 더더욱.
그러나 여타 다른 재벌의 자제처럼 오만하기는커녕 모든 것에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고 항상 위축되어 있으며 극히 소심한 모습에 홍상만 회장은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공부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제 밥벌이를 위해 계열사 한두 개는 떼어줘야 하고 최소한 그것을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은 만들어 줘야 했으니까.
그게 아비로서 해야 할 일이었고.
여하튼.
씨익.
홍상만 회장은 오늘 저녁에 있었던 자신의 막내아들의 선포를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잠에 빠져들었다.
솔직히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남에게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최대의 바람이었으니까.
***
다음날.
석인수 실장은 일본에서 날아온 긴급을 요하는 결제 서류로 인해 주말 아침임에도 홍상만 회장이 거주하는 청담동에 들렀다.
그리고 집사를 통해 도착을 알리고 잠시 거실에서 대기하는 와중 이 집의 막내도련님인 홍주영이 2층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석인수 실장은 홍주영을 향해 이채를 띈 눈빛을 보냈다.
이곳에는 홍상만 회장 일가를 비롯해 집사와 입주 도우미, 입주 운전 기사 그 외에도 상당수의 경호원들이 상주하는 곳이었고 며칠간 그들의 입에서 새어나온 말은 꽤나 의미심장했으니까.
바로 이집의 막내도련님이 달라졌다고.
그 후 석인수 실장을 직접 그 달라진 모습을 목도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도 말을 건네는 것조차도 우물쭈물 거렸던 홍주영이 심드렁한 눈빛으로 말을 건넴으로써.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네. 좋은 아침입니다. 막내도련님.”
“에이. 저야 좋은 아침이지 주말에도 일하는 아저씨는… 그러보면 아빠는 썩 좋은 오너는 아닌가 봐요. 부하 직원을 주말에는 쉬게 해줘야지.”
“…….”
석인수 실장은 조금 아니, 꽤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전의 홍주영이라면 저런 농담을 절대 할 수조차 없었으니까.
더욱이.
“그나저나 세진이형은 잘 있죠?”
“네.”
“괜히 밖에 돌리지 말고 대충 명진에 입사시켜요. 아니, 명진의 회장을 최측근에서 모시는 자리에 있으면서 세진이 형도 그런 아빠 덕 좀 봐야할 것 아니에요.”
“하하하.”
석인수 실장은 그냥 웃음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너무 청렴결백할 필요는 없어요. 명진에 그간 충성을 한 것이 십년? 아니, 이십년에 가까워지는데. 그 정도 짬이면 콩고물 좀 떼먹어도 아무도 뭐라 안 해요.”
“그 말씀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석인수 실장은 그 말에 반박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물론 그 말을 내뱉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옆을 털레털레 걸어가는 홍주영을 향한 시선은 떼지 않았고.
그리고 그때 석인수 실장은 홍주영의 목소리를 또다시 들을 수 있었다.
“아참, 좀 괜찮은 사람 있으면 저한테 좀 보내주세요. 빠릿빠릿하고 입이 좀 무거웠으면 좋겠어요. 뭐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요.”
“알겠습니다.”
석인수 실장은 무슨 이유냐고 묻지 않았다.
그 뒤 집사를 따라 홍상만 회장의 서재실로 이동을 했고 주말임에도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는 홍상만 회장에게 손에든 서류철을 건넸다.
동시에.
“1시간 전에 미세토 정밀 기계에서 다음 달 명진의 수출 물량을 맞추기 어렵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1시간 전에? 그것도 주말에?”
“네.”
“아주 이것들이!”
홍상만 회장은 그게 무슨 뜻인지를 알기에 작게 이를 갈았다.
바로 리베이트.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세토 정밀 기계는 동네 구멍가게가 아닌 일본 내에서 정밀 기계 분야에서는 세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회사였다.
그렇기에 매년 초에 그 한해 생산량과 발주량의 합의를 하는 마당에 당장 다음 달 수출 물량을 맞추기 어렵다는 말은 거짓말일 수밖에 없었고.
“우선 넌지시 물어봐서 협상을 해봐. 하지만 최대 마지노선은 2%야. 그 이상은 절대 안 돼!”
“알겠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끌려 다닐 수는 없으니까 네덜란드 쪽에 신경을 써봐. 국내에도 신경을 쓰고.”
“네.”
기초 설계 부분에 관해서는 철저한 을일 수밖에 홍상만 회장은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
하루 이틀 내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고.
그 후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석인수 실장에게 나가보라는 손짓을 했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 석인수 실장을 향해 시선을 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석인수 실장도 곧장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주영군이 쓸 만한 자를 소개시켜달라는 말을 했습니다.”
“주영이가?”
“네. 그래서 알았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흠… 알아서 해.”
과거라면 어림도 없겠지만 요 근래 홍주영의 달라진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홍상만 회장은 그렇게 말을 건네고 눈앞의 서류에 사인을 할 찰나 곧이어 터진 석인수 실장의 말에 그 사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주영군에게 오태석을 보낼 생각입니다.”
수십만의 직원을 보유한 명진의 회장.
당연히 홍상만 회장이 모든 직원들의 이름을 아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몇몇 이름을 아는 직원은 있었다.
가령 사장단이나 전무 이상 혹은 외국에 나가 있는 지사들.
물론 오태석은 그 급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알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석인수 실장이 다음 세대를 위해 공을 들여 키우는 직원이었으니까.
자신보다 기영이를 위한 준비물이었지만 그렇기에 홍상만 회장 본인도 꽤 관심을 가졌고.
그런데 그런 기재를 주영이에게 보낸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석인수 실장.
“…….”
홍상만 회장은 말 대신 그런 석인수 실장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다.
“그렇게 해.”
“네. 알겠습니다.”
홍상만 회장은 딱히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석인수 실장이 이유 없이 그런 행동을 할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더욱이 주영이도 자신의 아들이었고.
***
몇 시간 뒤.
뒹굴뒹굴.
그냥 뒹굴뒹굴 거렸다.
지금 당장 할 것이 그것뿐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간 한껏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데까지 피우고 싶다는 생각도 존재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똑. 똑.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
“들어오세요.”
당연히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가 차를 타고 방금 전에 이 집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이 내 기감에 걸려들었으니까.
그 후 그런 내 말에 한명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석인수 실장에게 막내 도련님에게 가보라는 말을 전해들은 오태석이라고 합니다.”
“네. 반가워요. 석인수 실장이 생각보다 괜찮은 자를 보내줬네요.”
“네?”
내 말에 반문하는 그를 향해 딱히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뒹굴 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한쪽에 마련된 소파로 가 앉았다.
“이쪽에 앉으세요.”
“네.”
우선 열흘 넘게 이어진 고민과 생각들.
그로인한 결과는 가족들에게 모든 것을 밝히지 말자는 것이었다.
동시에 지구를 내 손안에 집어 넣을 수 있음에도 장악하거나 지배하지 않겠다는 뜻이었고.
왜냐하면 장악하고 지배를 한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내가 그것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신경을 쓴다는 뜻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차지했음에도 수수방관하고 방치하면 오히려 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모르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관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나 스스로 염세주의자도 아닐뿐더러 여전히 욕심이 있었으니까.
분명 모두에게 내 이름을, 나란 존재를 똑똑히 각인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면 모를까 결정을 내린 마당에 하지 못할 일은 나에게 없기에 오태석이라는 자에게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
오태석은 스스로 굉장히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수재나 기재라는 말은 물론이고 남들은 낑낑대며 어려워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한 번에 명진이라는 대기업에 입사한 것은 물론이고 대리 딱지도 달기 전에 전략기획실로 자리를 옮긴 것이고.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맡은 임무와 사수에게 배우는 것을 통해 어렵지 않게 자신의 쓰임새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실세 중의 실세인 석인수 실장의 보조.
그 말인즉슨 출셋길은 보장이 되어 있다는 뜻이고.
하지만 뜬금없는 호출과 동시에 명진 내부적으로도 하자로 판명난 막내 도련님에게 가보라는 말에는 오태석도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오태석도 그것까지는 별 개의치 않았다.
아무리 명진 내부적 뿐만 아니라 재벌가 사이에도 하자 있는 존재로 소문난 홍주영일지라도 어쨌든 명진의 직계였으니까.
그런데 뒤이어 새어나온 말에는 진심으로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시에라리온에 대해서 아시나요?”
국제적으로 유명하진 않지만 아프리카 대륙 서부 대서양 해안에 위치한 나라.
아니, 한편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분명 그곳에 관한 영화가 존재하기도 했으니까.
무척이나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기도 했고.
우선 시에라리온이라는 언급에 생뚱맞긴 했지만 아직까지 오태석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쪽이 꽤나 문제가 많더라고요. 일반인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는 물론이고 자신의 야욕과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라는 이유 하나로 그런 일반인들을 죽이는 반군들은 물론이고 그 반군들과 결탁한 썩은 대로 썩은 자본가들까지도요.”
“?”
오태석은 도통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시에라리온과 반군 거기에 그 반군과 결탁한 썩은 자본가들아니.
그러다.
‘혹시나 그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은 건가?’
오태석은 자신에게 그에 대한 정보 수집을 요청하기 위한 말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렇지 않으면 딱 하나였으니까.
바로 명진의 막내아들이 미쳤다는 것.
그리고 그건 최악 중의 최악이었고.
끝
외전 3. 홍주영 (2).
굳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미 ‘Revival Legend’가 현실로 구현된 마당에 과거의 일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됐으니까.
하지만 일부러 귀를 활짝 열어놓고 있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들려오는 이야기가 꽤나 많았다.
홍주영이라는 내 본래의 이름이 알려지기 전에도 아시란테라는 이름으로 일찍부터 모두의 주목을 받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 하나가 바로 시에라리온에 관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그곳을 지배하던 반군에 대한 이야기.
그때는 당연히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지원이라는 자가 말했던 승리자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 만큼 누리라는 말이 없더라도 나 스스로 은둔자 혹은 방관자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그만큼 가족들은 물론이 나를 아는 모두가 입을 쩍 벌릴 만큼 놀라는 모습을 만들고 싶었다.
여하튼 그렇게 계속 말을 건넸다.
“반군들을 정리하고 그들이 차지한 곳을 접수할 생각이에요. 당연히 그 반군들과 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당 이득을 취했던 자들에게도 쓴맛을 보여줄 생각이고요.”
“…….”
내 말에 오태석이 눈만 깜빡깜빡 거렸지만 얼추 예상한 반응이기에 딱히 질책이나 면박을 주지는 않았다.
대신.
“우선 대놓고 지구를 장악할 생각은 없어요. 귀찮을 뿐이니까. 다만 가족들이나 저를 아는 모두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에요. 그 와중에 겸사겸사 쓰레기 정리도 하고요. 그러니까 앞으로 오태석씨가 할 일은 제가 시에라리온이 반군들을 정리하고 차지할 그곳의 향후 관리입니
다. 아예 손을 안 댔으면 모를까 손을 댔으면 최소한 사후 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 제 입장이거든요. 물론 얼추 정리를 하고 넘길 테니까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여전히 대답이 없는 오태석.
개의치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당분간은 비밀입니다. 날파리가 끼는 것은 당연한데 그 날파리를 다 쳐 죽이자니 한두 명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거든요. 아시겠죠? 아, 혹시나 시간이 남으면 시에라리온 이후에 제가 목표로 했으면 하는 것이 있나 한번 찾아보세요. 가급적 더럽고 지저분한 쪽으로요. 성인군자
가 될 생각도 또한 그런 행동이 성인군자다운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뭐 당하는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그나마 제가 나을 거예요. 저는 생각보다 욕심이 별로 없거든요.”
정말로 큰 욕심은 없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것 이상 아니, 지구 전체를 차지할 수 있으니까.
우선 그렇게 말을 끝내고 여전히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는 오태석에게 나가보라고 했다.
지금은 이해를 못 할 테지만 어차피 곧 움직일 테고 그로인한 결과가 금방 드러날 테니까.
그러다.
“아, 마지막으로 연락처 하나 남겨놓고 가세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말을 놓겠습니다. 월급도 제가 챙겨 드릴 테고 사무실도 곧 만들어 드릴 테니까요. 아마 후회하지는 않을 겁니다.”
***
3일 뒤.
중국과 인도 거기에 아프리카 대륙을 지나 대서양을 가로질러 목표로 한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바로 브라질의 상파울로.
왜냐하면 시에라리온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반군은 꽤 흥미 있는 이야기였지만 결국 내 귀를 스쳐가는 이야기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즉, 자세한 위치는 물론이고 그 내막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곳을 찾았다.
괜히 ‘Revival Legend’가 현실로 구현됐을 당시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가 지구 내에서 원탑의 정보 길드가 아니었으니까.
우선 그렇게 도착한 브라질 상파울로의 으슥한 골목길에서 두 눈을 질끈 감고 두 귀를 양손으로 막고 있는 문양이 그려니 술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똑같은 문양이 그려진 한쪽에 설치된 작은 문에 다가가.
똑똑. 똑똑. 똑똑똑.
정확히 두 번, 두 번, 세 번을 끊어서 노크를 하자 닫힌 문이 자연스럽게 열렸고 그 열린 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모습을 드러낸 미로 같은 작은 길 하나.
그 길을 따라 움직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좁은 방에 도달할 수 있었다.
스윽.
우선 그 방을 살짝 둘러봤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에 의자에 걸터앉아 있던 한 남자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예의가 없군. 이곳을 이용할 때는 모자나 마스크 같은 것을 착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을 모르나?”
“좀 봐줘. 아직 내가 제대로 된 수하들이 없어서 직접 움직여야 하거든. 그리고 모자와 마스크의 착용을 나를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야. 너희들을 위해서지. 괜히 내 뒤를 파겠다고 알짱알짱 거리다가 내 손에 죽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그런 배려.”
“미친놈이군.”
“됐고. 너희 대장 좀 보자.”
시에라리온에 대한 정보보다 이들의 대장부터 찾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 번도 이곳을 이용한 적이 없는 자가 와서 뜬금없이 시에라리온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반군에 이어 그 반군과 결탁한 자본가들의 정보를 요청한다?
당연히 정보를 내줄 리가 없다.
내가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정체를 드러낸다 하더라도.
그래서 다짜고짜 우두머리부터 찾았다.
그게 더 수월한 대화를 진행하는데 유리하니까.
물론.
“허허허. 제대로 미친놈이군. 감히 어디서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고객들 단속을 해야겠어.”
“괜히 이상한 곳 들쑤시지 말고. 너희 대장 있잖아. 올리베이라. 그 인간 좀 불러줘.”
“올리베이라? 그게 누군데? 오호라. 이곳에 관한 정보를 흘린 놈인가?”
전과 같은 미친놈 보듯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
왠지 그게 거짓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말인즉슨.
“뭐야? 니들의 본거지를 맡고 있으면서 너희들 대장 이름도 모르는 거야? 그럼 브란돈은?”
“!!!”
올리베이라를 언급할 때는 표정 변화가 없던 자가 이번에는 기겁하며 두 눈을 부릅떴다.
“다행히 브란돈은 아는가 보네. 그럼 걔 좀 불러줘. 어차피 이곳은 너네 본거지와 멀지 않으니까 근처에 있을 것 아냐.”
“너… 너는 누구냐!”
“멍청아. 내 정체를 밝힐 생각이면 이렇게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왔겠냐?”
“…….”
우선 그렇게 말을 끝내고 손님용으로 마련된 의자에 앉아 책상에 두 다리를 그대로 걸치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손님 대접이 영 꽝이네. 의자부터 불편해. 그나저나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어서 좀 불러와.”
물론 눈앞의 남자가 부르지 않아도 곧 달려올 것이다.
여기서 나눈 대화는 물론이고 영상 전부가 이들의 본거지에서 그대로 플레이되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저벅저벅.
저벅저벅.
꽤나 많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쾅. 쾅. 쾅.
미로 같은 좁은 벽과 좁은 방.
그런데 그 좁은 벽과 좁은 방을 만든 벽들이 무너지며 널찍한 공터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자들의 모습도.
그때.
“나를 찾았다고?”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무리 속에는 익히 내가 알던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내 손에 죽은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의 초대 길드장인 올리베이라와 올리베이라 뒤를 이어 길드장이 된 브란돈이.
우선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 후 가장 앞장서서 나에게 자신을 찾았냐고 말을 내뱉었던 자를 무시하고 브란돈마저 지나쳐 맨 마지막에 서있던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남자 앞에 멈춰 서서 입을 열었다.
“가면은 아닌데… 설마 이름도 감추고 쫄따구 행세를 하고 있었던 거야?”
“…….”
“이야. 이정도면 인정. 치밀해. 어째서 그 자리까지 올랐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아. 확실히 정보를 다루는 자라면 이정도 치밀함은 있어야지.”
“너는… 누구지? 어떻게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지?”
“나? 그러니까 나는… 음… 너의 친한 친구?”
내 손에 죽었던 자.
그만큼 친한 친구라 보기에는 어려웠지만 현재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기에 에둘러 그렇게 표현했다.
물론 올리베이라는 그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곧장 뒤로 물러서며 외쳤으니까.
“죽여!”
탕. 탕. 탕. 탕.
타다다탕. 탕.
총이 등장할 것은 충분히 예상했다.
다만.
“크억!”
“컥!”
“제…장!”
털썩.
털썩.
털썩.
나에게 쏟아지는 총알은 단 한발도 없었다.
그렇다면 자중지란?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로 인해 자신의 정체가 들통 나자 그걸 몰랐던 자들을 정리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이 맞았는지 올리베이라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두 번은 없다. 어떻게 나에 대해서 알고 있지?”
“이런 나 때문에 불쌍하고 죄 없는 자들이 죽었군. 아, 불쌍하고 죄 없는 자들은 아닌가? 어쨌든 그래도 조금 미안하긴 하네.”
“원하던 대답이 아니군. 죽여!”
탕. 탕. 탕. 탕.
타당탕탕. 탕. 탕.
순식간에 수많은 총부리가 나를 향했고 곧장 불길을 뿜어냈다.
하지만.
팅. 팅. 팅. 팅. 팅.
사방에서 나를 향해 쏟아지는 총알을 양손을 움직여 막아냈다.
분명 원래라면 아무리 내 민첩이 높아도 이런 움직임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뿌리가 마지막으로 소멸하면서 주어진 스탯포인트가 어마어마했으니까.
그게 현재 나에게 전부 적용이 된 상태고.
후두두둑.
우선 양손에 잡힌 총알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트렸다.
물론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몸으로 때워도 충분했다.
총알 따위는 내 몸에 티클 만큼의 피해는커녕 흔적도 주지 못하니까.
하지만 현재 내가 걸친 양복은 꽤 비싼 것이었다.
여하튼 양손으로 그 모든 총알을 막아내자.
“…….”
“…….”
“…….”
사방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 모습에.
“걱정 마. 나중에 또 한 번 기회를 줄게. 아직 탱크와 헬기 같은 것이 남았잖아? 준비되면 불러. 언제든지 그 함정에 빠져줄 테니까. 그전에.”
탁. 탁.
내 옆자리를 가리키며 올리베이를 가리켰다.
“이리 와서 이야기 좀 하자고. 걱정 마. 나도 볼일이 있어서 온 거지 너희들을 죄다 죽이러 온 것은 아니니까.”
부들부들.
우선 그런 내 행동에 올리베이라가 몸을 떨긴 했지만 그래도 내 곁으로는 다가왔다.
수하들이 지켜보고 있어서인지 눈에 힘을 꽉 주고서.
그 모습에 살짝 우습긴 했지만 웃음을 토해내지는 않았다.
어쨌든 거창하게 용기라 표할 것은 아니지만 배짱 있는 행동인건 확실했으니까.
“좋아. 이제 좀 대화할 환경이 됐군.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 바로 시에라리온에 대한 건데 그곳의 다이아몬드 광산과 그곳을 차지한 반군들에 대해 알고 싶어. 물론 세세하게는 필요 없어. 내가 직접 가서 보고 쓰레기는 치워버릴 생각이거든. 아, 그리고 그 반군들과 결탁한 곳
도 있잖아. 드비어스인가? 그쪽에 관련된 정보도 좀 줘.”
“…….”
내 말에 대답이 없는 올리베이라.
그를 향해 씨익 입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줄 거지? 아, 대가는 조만간에 부패한 반군들과 결탁한 썩은 자본가들이 너희 쪽으로도 연락이 올 것 아냐? 그때 말해줘. 내 이름은 lumen이라는 것과 음… 극도로 추운 극한의 지옥에서 온 사자라고. 대충 내 능력이 이런 거거든.”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녀석의 눈앞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내 오른손바닥 위에 적은 엄지손가락만한 얼음이 맺혔다.
그리고 그 엄지 손가락만한 얼음을 공중으로 던지자.
파사사삭.
이곳 지하 공터의 윗부분이 그대로 얼어버렸다.
물론 저것을 땅바닥에 던졌으면 이곳에 있는 자들 전부를 순식간에 얼려버릴 수 있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에 그 정도 선에서 끝냈다.
여하튼 그렇게 약 10분 정도가 흐르자.
“여기 있습니다. 현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 위치와 그곳을 차지하고는 3개의 반군 세력. 거기에 그 반군 세력과 결탁한 자들에 관한 모든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크으. 역시 일처리가 빠르네. 좋아. 그럼 또 보자고.”
원하는 바를 얻었기에 곧장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발걸음을 대서양으로 돌렸다.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대서양만 건너면 곧장 아프리카 대륙이고 시에라리온은 그 대서양과 딱 맞닿아 있는 국가니까.
***
그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앨링턴에 위치한 펜타곤.
“또! 또 미확인 비행물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움직임을 봤을 때 대서양을 가로지르려 하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 정확히 32초 만에 대서양을 가로질러 남미 대륙에서 아프리카 대륙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도착 위치는 아프리카 서부의 해안가. 정확한 위치는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미국 펜타곤에서 미확인 비행물체를 파악한 것은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요즘 인공위성으로 24시간 밀착 감시를 하고 있는 곳이 마찰을 빚고 있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과 이스라엘 이었으니까.
그 중 이스라엘에 떠 있는 위성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무언가를 감지했고 그 즉시 펜타곤은 그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통 그 무언가를 찾지 못해 포기할 찰나 이스라엘을 벗어나 지중해 전체를 감시하는 인공위성을 통해 아주 티끌 같은 움직임 하나를 잡아냈고 그 움직임이 이스라엘에 떠 있는 위성이 감지해낸 움직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적지는 남미 대륙.
그러나 순간 완전히 사라져버린 미확인 비행물체로 인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남미 대륙에서 대서양을 건너는 말도 안 되는, 정말 빛과 같은 속도로 보이는 그 무언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결국 오류가 아니라는 것이었으니까.
더욱이 이번에는 사전에 어느 정도 감지를 한 상황.
그래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가령.
“임의적으로 미확인 비행물체라 표현했지만 정확히 비행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미확인 비행 아니, 저 미확인 물체는 속도라는 개념보다 마치 공간을 넘나는 개념으로 움직였으니까요.”
“…….”
“…….”
“…….”
우선 그렇게 지구의 경찰을 자부하는 미국이 발칵 뒤집어 졌다.
끝
외전 4. 홍주영 (3).
기니와 라이베리아와 맞닿아 있는 시에라리온의 캉그마 지역.
아프리카 대륙이라고 덥고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을 거라는 고정관념을 파괴하듯이 울창한 밀림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나저나 이놈도 그렇고 저놈도 그렇고 어떻게 쓸 만한 녀석이 하나도 없냐.”
당연히 올리베이라가 건네준 정보를 100% 신뢰할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추 들어맞긴 할 것이다.
어떻게든 내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릴 시간이 필요할 테고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것이 올리베이라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일 테니까.
그런데 올리베이라가 준 정보에 의하면 시에라리온에는 자잘한 세력을 빼고 3개의 큰 반군 세력이 존재하는데 하나같이 인간 말종들뿐이었다.
그만큼 강제로 어린아이부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작위로 사람들을 납치해 노동력 착취는 기본이었고 정부군뿐만 아니라 상대 반군 세력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여댔다.
거기에 그 3개의 세력은 마치 서로 누가 더 나쁜놈인지 경쟁이라도 하듯이 갈수록 더 악랄한 짓을 벌여갔고.
“흠. 봐서 그나마 괜찮겠다 싶은 놈들은 살려서 일을 맡기려고 했는데 이정도면…”
아무리 봐도 재활용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살짝 섬뜩함을 느꼈다.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분명 그들이 상대적으로 악한 자들인 것은 맞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서슴없이 그 악한 자들을 지우자는 생각을 했으니까.
과거의 나라면 절대 생각지 못할 수준.
하지만.
“…….”
이미 많이 죽였다.
많이 죽는 것도 봤고.
거의 인류의 멸망이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흐흐흐.”
그래서 그런지 순간 웃음이 새어나왔다.
동시에.
“살인마가 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살인마가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 결정적으로 살인마 따위가 될 생각도 없고.”
여하튼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플라이를 해제 후 밀림 속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약 5분 정도 천천히 그 밀림을 헤치고 움직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고 그만큼 전 세계 어디에서나 가장 애용하는 무기인 AK-47 소총을 들고 있는 자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일부러 그들에게 다가간 거지만.
“넌 누구냐!”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정체를 밝혀라!”
하긴 저들도 황당할 것이다.
이 우거진 밀림 속에서 멋들어진 정장을 빼입고 백인까지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하얀 피부를 가진 자가 산책하듯 거닐고 있었으니까.
우선.
쓰윽.
항복 또는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두 손을 들어올렸다.
올리베이라가 건네준 정보들이 틀리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최소한 확인은 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나의 행동에 저들은 총부리를 여전히 나에게 겨눈 채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죽이지 말고 기지로 데려가야겠지?”
“응. 딱 봐도 외지인이잖아. 어쩌면 몸값을 두둑이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맞아. 옷차림새로 봐서 다른 곳에서 관리하는 VIP같아.”
툭. 툭.
그들은 희희낙락거리면서 말을 끝냄과 동시에 내 뒤로 돌아서서는 앞으로 가라는 듯이 총부리로 내 등을 툭툭 건드렸다.
그 행동에 나도 자연스럽게 앞으로 움직였다.
이러려고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였으니까.
***
잠시 후.
쾅. 쾅. 쾅. 쾅.
굳이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탄은 아닐지라도 땅을 파고 돌을 깨는데 특화된 크레인이나 굴착기 같은 것을 주변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면서 그런 기계들은 단 한 대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끝이 뭉툭한 곡괭이를 시작으로 열악한 장비들로 그 모든 것을 처리하고 있었다.
물론 이곳은 상대적으로 모든 것이 부족한 아프리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씁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총을 든 반군들의 감시하에 제대로 허리조차 펴지 못한 채 넓게 펼쳐져 일만 하고 있었으니까.
우선 그렇게 노동자들 사이를 지나쳐 나무로 둘러쳐 엉성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요새라 부를 정도는 되는 그런 구역 안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중앙의 가장 큰 건물로 이동하자.
“뭐야? 못 보던 놈인데?”
큰 건물을 지키고 있던 자들 중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자가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내 뒤에서 흘러나왔다.
“외곽 지역을 순찰하다가 저희들이 발견했습니다.”
“생긴 것과 걸치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예사롭지 않은 놈인 것 같아 저희가 데려왔습니다.”
내 뒤에 있는 자들은 ‘저희들’이라는 표현을 강조해가며 입을 열었다.
마치 자신들의 공을 잊지 말라는 듯이.
그리고 그들의 말에 큰 건물을 지키고 있는 자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 죽이지 않은 것은 잘한 것 같군. 그래. 너희들의 공은 잊지 않을 테니 가봐. 나중에 다시 부를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날 이곳까지 안내한 자들의 희희낙락거리며 돌아갔고 다시 나는 다른 자들의 안내로 큰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밖은 엄청 후덥지근했다.
하지만 안에는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고 있었고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카펫이 사방에 쫙 깔아져 있었다.
벽에도 고급스러운 장식품들이 주르륵 달려 있었고.
그리고 그때.
“대장. 밑에 애들이 정찰 중에 이상한 놈을 발견해 데리고 왔습니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자의 말에 두툼한 시가를 물고 있는 자가 슬쩍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이 지역 놈은 아닌 것 같군.”
“네. 어떻게 이 주변을 헤매게 된 건지 몰라도 꽤 쏠쏠하게 몸값 좀 건질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벙어리야? 아니면 영어를 못 알아듣는 건가?”
“이자를 이곳에 데려온 애들 말로는 영어를 못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오는 와중에 한마디 말도 안했다고 하더라고요.”
이곳 시에라리온의 공용 언어는 영어였다.
즉, 당연히 이들의 대화는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만 일부러 말하지 않았을 뿐.
그런데 이제는 굳이 침묵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상황.
그래서 시가를 입에 물고 있는 이곳의 대장이라는 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가 탄바 반란군의 수괴 레케냐?”
“…아무래도 길을 잃은 이방인이 아닌 것 같군.”
아무래도 레케가 맞는 것 같았다.
그것을 반증하듯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레케 뒤에 있던 4명이 총부리를 나에게 겨눴고.
이 방으로 나를 이끌고 온 검은 선글라스를 낀 자도.
하지만 개의치 않고 올리베이라가 건네준 자료를 꺼내 들며 계속 입을 열었다.
“혹시나 틀린 것 있으면 말해. 최소한 억울한 일은 없어야하니까. 우선 콰이트 노천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그곳에 거주하던 500명이 넘는 부족민을 전부 살해했고 다이아몬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서 작년에만 죽인 자들이 4000명이 넘었네? 그 외 ······ 했고. 그나저나 무
기를 구입 후 테스트를 한다고 얼씨구… 또 마을 3개를 박살냈군. 참 많이도 죽였네. 그럼 대충 이정도고 혹시 뭐 잘못된 부분 있어? 그러니까 하지 않았는데 했다고 된 부분 말이야.”
“…미친놈이군.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봐.”
“뭐 표정을 보아하니 틀린 내용은 없나 보군. 좋아. 그럼 너는…”
죽음이라는 선고를 내래려고 했다.
긴 고통 없이 한순간에 죽는 죽음이 어쩌면 그에게 너무 과분할지는 몰라도 굳이 질질 끌 생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녀석의 입이 더 빨랐다.
“죽여!”
탕. 탕. 탕. 탕.
순식간에 그의 뒤에 있던 보디가드 같은 4명과 나를 이곳까지 안내한 검은 선글라스 사내까지 총 5명이 나를 향해 총을 갈겼다.
그러나 총은 나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힐 수가 없었다.
이미 그것은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확인을 끝냈고.
대신 정확히 새끼손가락 한마디 보다 작은 얼음 5개를 소환해 나를 향해 총을 쏘는 그 5명을 향해 날렸다.
퍽. 퍽. 퍽. 퍽. 퍽.
파사사삭.
“크억!”
“컥!”
아이스 볼? 아이스 볼트?
그건 너무 과했다.
이제는 나에게 가장 약한 공격 수단인 아이스 볼 한방이면 꽤 큼지막한 이 건물을 다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이니까.
그래서 정말 작은 얼음 5개를 날렸고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총을 갈기던 5명을 전부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당연히 그들의 가슴팍을 작은 얼음이 관통함과 동시에 그 몸이 얼어버렸으니 죽은 것은 당연했고.
“!!!”
총이 통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내 손짓 한번에 5명의 냉동인간이 생겨난 상황.
방금 전까지 무척이나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던 녀석이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우당탕탕!
무려 5개의 소총이 불을 내뿜은 상황.
그래서 출입문을 통해 탄바 반란군에 속한 자들이 들이닥쳤다.
“뭐… 뭐야?”
“어…얼음?”
“저게 뭐야?”
어안이 벙벙한 자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이곳의 수장인 레케가 입을 열었다.
“이놈을 당장 죽여!”
이미 소총으로는 나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난 상황.
하지만 한번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탕. 탕. 탕. 탕.
우선 레케의 명령에 반군들이 나를 향해 그대로 총을 갈겼다.
그 모습에 그들을 쭉 훑어봤다.
30대 이상도 보였지만 분명 10대로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더욱이 분명 살기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탄바 반란군에 가담한 자들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아이스 볼.’
쾅!
파사사삭.
일일이 그 죄질을 파악해가며 벌을 줄 생각은 없었다.
아니, 지금의 내 행동은 벌을 주는 것과는 차원이 멀었다.
나는 판사도 그렇다고 검사도 아니고 그 누구도 내게 인간에게 벌을 내릴 권한 같을 것을 주지 않았으니까.
즉, 지금의 내 행동은 강자가 약자의 것을 빼앗는 아주 흔하디흔한 그런 행동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차이점이 존재했지만.
여하튼 이미 마음먹은 행동이기에 거침없이 행동했다.
그 후 내 아이스 공격에 당하지 않았음에도 얼어버린 듯 완전히 몸이 굳은 레케를 이끌고 건물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 그를 향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이봐.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잖아. 나는 한명이고 너는 수많은 부하들을 거느린 반란군의 수괴잖아. 그러니까 부하들을 불러 모아봐.”
“…….”
“뭐야? 설마 이대로 죽고 싶어? 어떻게든 살아야 할 것 아냐. 혹시 알아? 다른 녀석을 상대하다가 몇 명을 놓쳤는데 그 중에 네가 껴 있을지. 쉽게 목숨을 포기하지 말라고.”
일일이 반란군을 쫓아다니며 상대할 생각은 없기에 레케에게 그렇게 말을 했다.
그러자 레케의 눈에 욕망이 감돌았고 곧장 부하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외곽을 순찰하는 자들은 물론이고 다이아몬드 원석을 채취하는 자들을 감시하는 자들까지 무장을 한 채 전부.
우선 그들의 모습에 레케를 그들의 속으로 내던졌다.
당연히 내 손을 벗어난 레케는 곧장 외쳤고.
바로.
“노… 놈을 죽여!”
레케의 모이라는 명령 외에도 처음 보는 자가 자신의 대장의 목 뒷덜미를 잡고 있기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자들.
그들이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총을 겨누며 그대로 발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차피 그 행동은 무의미한 행동일 수밖에 없기에 죄다 무시하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살얼음.”
파사사삭.
아이스 필드를 사용하면 이 광산뿐만 아니라 광산 밖에까지 얼음의 대지로 만들 것이 뻔하기에 약하디 약한 살얼음을 사용했다.
그러나 700명이 훌쩍 넘는 반란군 전부를 얼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당연히 멀리서 반란군에 잡혀와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자들은 그 모습을 보더니 서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몸을 조아렸고.
더러는 신을 부르짖는 자들도 있었다.
우선 그렇게 한곳을 정리하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오늘 하루 정리해야할 반란군 세력은 총 3개였고 이제 겨우 1개를 정리했으니까.
***
한때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유통을 함으로써 말 그대로 지구상의 모든 다이아몬드를 손아귀에 쥐었던 회사가 바로 드비어스였다.
물론 지금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전 세계의 다이아몬드 원석 점유율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것에는 몇몇만 아는 비밀이 있었다.
바로 조작.
말인즉슨 드비어스는 일부러 글로벌 금융 위기 때 회사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외부에서 봤을 때 “어? 어?” 하도록.
이미 1차적으로 불법적으로 다이아몬드를 독점하고 가격을 높게 유지되도록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3억불이 넘는 합의금을 내라는 판결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드비어스는 그 금융 위기를 기회 삼아 확보했던 다이아몬드의 점유율을 떨어트렸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돈을 융통한다는 목적으로 다이아몬드 광산 및 확보한 점유율을 판매함으로써.
하지만 드비어스가 판매한 다이아몬드 광산과 점유율을 사들인 회사는 드비어스가 뒤에서 조종하는 회사.
즉, 외부에 봤을 때 드비어스가 쪼그라든 것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인 점유율의 변화는 없었다.
여하튼 그런 드비어스에게 시에라리온은 꽤나 중요한 곳이었다.
기본적으로 꽤 많은 다이아몬드 원석이 나오는 곳이기도 했지만 세네갈, 기니, 라이베리아 등 반군들을 이용해 다이아몬드를 밀수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으니까.
그래서 드비어스는 시에라리온에 드비어스라는 이름을 사용치는 못하지만 꽤 큰 출장소를 만들었고 직접 3곳의 반군과 위성전화로 지속적인 연락을 유지했다.
그런데.
-탄바 반란군.
[…….]
-카발라 반란군.
[…….]
-포투라 반란군.
[…….]
외부의 시선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드비어스 소속이라고는 밝히지 못하지만 그대로 드비어스 내에서는 이사 대우를 받는 출장소의 소장 데릭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하 직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현재 탄바, 카발라, 포투라 반란군이 차지한 지역에서 정부군과 전투가 있다는 말이 있었나?”
“없었습니다.”
“그럼 그 3곳끼리 전투를 벌였나?”
“그 3곳이요? 에이. 서로 사이가 나쁘지만 그놈들이 서로 싸울 놈들이 아니잖아요. 남 좋은 일 시킬 정도로 멍청한 놈들도 아니고요.”
“그렇지…”
데릭은 부하 직원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시에 3곳이 연락을 받지 않는 상황.
그래서 나지막하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지?”
동시에 데릭은 곧장 드비어스 본사로 연락을 취했다.
차후 별일이 아니었다는 말이 나올지라도 어쨌든 이번 일이 결코 사소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끝
외전 5. 홍주영 (4).
시에라리온.
“…….”
“…….”
“…….”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산다는 말.
반군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다이아몬드를 채굴, 채취하는 자들에게 딱 부합하는 말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반군들이 있다는 말은 정부군도 있다는 말.
하지만 반군들에 끌려온 시에라리온의 국민들 그 누구도 정부군에 희망을 걸지 않았다.
부패하기로는 반군과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정찰병에 이끌려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끔한 옷차림과 외모를 가진 자의 등장.
특히나 어려도 너무 어려 보였다.
그래서 반군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자들 모두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그 소년을 바라봤다.
욕심 많은 반군들 입장에서 돈 냄새를 짙게 풍기는 그 남자애를 순순히 풀어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자신들도 끌려온 신세.
즉,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기에 그저 눈을 질끈 감고 못 본 척을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탕. 탕. 탕. 탕.
이곳 반군들을 이끄는 대장이 기거하는 건물에서 들려온 총성 소리.
그 총성 소리에 모두들 돈 냄새를 풀풀 풍겼던 그 소년이 생긴 것과 달리 인질로서 가치가 없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곧장 죽임을 당할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 총성 소리가 끝나고.
쾅.
건물의 입구를 박살내며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무언가.
모두는 당연히 소년의 시체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년의 시체라 보기에는 얼핏봐도 무척이나 큰 몸뚱이.
거기에 죽지 않았는지 내동댕이쳐지고도 한참을 계속 꿈틀꿈틀 대는 모습에 모두들 시선을 그쪽으로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고… 공격! 모두 저놈을 죽여!”
내동댕이쳐진 그 무언가의 외침.
아니, 더 정확히는 이곳 반군을 이끄는 대장의 명령.
탕. 탕. 탕. 탕. 탕.
그 명령에 맞춰 1~2백 명이 아니라 그 이상의 반군들이 건물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어린 소년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총알에 의해 온몸이 벌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육체의 흔적이라도 남을지 의문이 될 정도의 공격들.
그런데.
팅. 팅. 팅. 팅.
분명 그 무수히 많은 총알들이 소년을 향해 쏘아졌고 그만큼 상대적으로 왜소한 몸에 닿았음에도 관통은커녕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그저 강력한 무언가에 부딪친 듯 튕겨져 나갈 뿐.
더욱이 어린 소년이 반군들을 향해 손을 내밀자.
파사사삭.
“크억!”
“컥!”
“이…이건… 말이…”
반군들에 의해 잡혀온 자들 대부분이 쭉 아프리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지만 평생 얼음 한번 안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는 수백 명을 한 번에 얼려버릴 정도의 거대한 얼음은 처음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등장한 반군들을 향해 소년이 손짓을 할 때마다.
파사사삭. 파사사삭.
총을 들고 공격을 하는 모습, 못 볼 것을 봤다는 듯이 경악한 모습 그 외 도망치는 모습 그대로 얼어버렸다.
마치 신 혹은 신의 사자와도 같은 모습.
그렇기에 이어진 어린 소년의 말에 반군들에 의해 강제로 이곳에 끌려온 시에라리온의 국민들 모두는 자연스럽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신이든 신의 사자든 어쨌든 신의 명령인 것은 매한가지였으니까.
***
이곳 대장이라는 자의 건물에 들어섰을 때부터 한쪽에 위치한 거대한 금고는 확인을 했다.
물론 더 있을 것이다.
가령 스위스 같은 곳에 마련한 비밀 계좌 같은 것으로.
하지만 굳이 알아낼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그것까지 일일이 챙기는 것은 귀찮았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그것 이상 아니, 백배 천배 이상의 것을 가질 능력도 됐고.
여하튼 반군들을 모두 정리하고 두 눈을 부릅뜬 채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시에라리온의 국민들을 바라봤다.
동시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두 여기로 모여보세요.”
분명 나지막한 목소리.
하지만 모든 반군들은 얼어버린 상태였고 그로인해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모두에게 내 말이 전달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실제로 곧장 모두가 내 쪽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우선 대충 그들을 확인하고 내 뒤쪽의 완전히 박살이 난 건물 안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한쪽에 존재하는 거대한 금고를 그대로 갖고 나왔다
끼기긱. 끼기기긱.
거대한 만큼 문짝을 포함해 엄청난 양의 쇳덩이로 만들어진 금고.
그만큼 튼튼해보였다.
하지만 그래봤자 나에게는 진흙으로 만든 모형과 별 차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손으로 금고의 일부분을 움켜쥐며 뜯어냈고 그럴 때마다 기괴한 소리와 함께 금고를 구성하던 쇳덩이가 뜯겨져 나왔다.
털컹.
4번 만에 완벽하게 뜯겨진 문짝.
“호오.”
대충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나 금고 안에는 상당량의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여러 귀금속과 달러 뭉치들이 무더기로 존재했다.
시에라리온에 통용되는 화폐인 리온 다발까지도.
우선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귀금속은 내버려두고 달러와 리온을 꺼내들었다.
그 후 강제로 반군들에 잡혀온 시에라리온 국민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이곳 다이아몬드 광산은 제가 관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은 정당한 대가를 받는 노동자가 되는 것이고요. 우선 정리가 더 필요하니 3주일간의 유급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물론 다른 일거리가 있다면 굳이 3주 뒤에 안와도 상관없습니다.”
그 말과 함께 5백 명이 훌쩍 넘는 시에라리온의 국민들을 한 줄로 세웠고 그들 손에 달러와 리온을 건넸다.
개인당 5천 달러와 50만 리온.
물론 그런 내 행동에.
“가… 감사합니다.”
“저희를 위해 이렇게 하늘에서 내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꼭 오겠습니다!”
확실히 총알을 막아내고 손에서 얼음을 내뿜는 모습이 평범하지는 않았기에 모두를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우선 그렇게 가장 강력한 3개의 반군 세력을 돌아다니며 모든 반군들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강제로 일하던 자들에게 일정량의 돈을 주고 모두 풀어줬다.
똑같이 3주 뒤에 일할 생각이 있는 자들은 다시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
브라질 상파울로.
“…….”
“…….”
“…….”
총이 통하지 않던 상대.
더욱이 아쉬우면 다음에는 함정에 빠져줄 테니 탱크와 헬기 등 모든 것이 준비되면 부르라던 상대.
그렇기에 올리베이라는 시에라리온의 반군 세력에 관한 정보를 건넴과 동시에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에 시에라리온을 살폈다.
시에라리온에 관한 정보를 가져간 만큼 시에라리온에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것은 3살짜리 아이도 추측이 가능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시에라리온에 모습을 드러낸 의문의 존재.
굳이 위성이 아니더라도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살필 도구는 꽤 많았기에 그 의문의 존재를 확인한 올리베이라와 부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탱크와 헬기 한발 더 나아가 미사일 같은 것으로도 통할 것 같지 않았으니까.
더욱이 맨손으로 족히 수백 킬로그램은 나갈 것 같은 금고를 한손으로 손쉽게 들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는 그 금고를 뜯어낼 때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물론 손에서 얼음을 뿜어내고 그 얼음으로 수백 명에 달하는 반군들을 얼려버리는 것도 어마어마했고.
여하튼 영상 확인을 끝낸 올리베이라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저자에 대한 조사는… 현 시간부로 종료한다.”
올리베이라는 아는 것이 곧 힘이고 권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고.
그리고 정보룰 수집하기에 남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것도 있었다.
바로 감당치 못할 정보는 오히려 자신의 목을 옥죄어온다는 것을.
***
영국 드비어스 본사.
과거 위성은 오로지 국가 수준에서 다뤄졌다면 현재는 민간 기업에서도 다루는 수준이 된지 오래.
즉, 드비어스도 위성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시에라리온의 출장소에서 연락이 온 직후 곧장 위성을 통해 반군들이 자리 잡은 곳을 살폈다.
반군들은 시에라리온에서 나오는 다이아몬드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아프리카 지역에서 나오는 다이아몬드를 필두로 여러 귀금속을 밀수입하기위해 최적의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저렇게 박살이 난거지? 분명 마지막 보고를 받았던 1주일 전에는 저렇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분명 그러려니 하고 넘길 일은 아닌 상황.
그래서 드비어스의 코넨티 회장은 직접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반군들이 자리 잡은 곳이 완전 박살이 난 모습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시에라리온에서 삽시간에 저 정도의 능력을 보일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정부군조차도.
더욱이 3개의 반군 세력의 다툼이라고 보기에는 그 3개의 반군 세력이 전부 궤멸을 했고.
즉, 아무리 그 이유를 찾으려 해도 도저히 그 이유가 보이지 않기에 코넨티 회장의 질문에 드비어스 본사에 모인 임원 모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우선 그 모습에 코넨티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 가장 뛰어난 사냥꾼 집단이 어디지?”
코넨티 회장이 말한 사냥꾼 집단은 일명 PMC(민간 군사 기업)라 불리는 용병 집단.
그걸 모르지 않기에 대외 이사중의 한명인 플로이드가 곧장 입을 열었다.
“현재 용병계에서는 붉은 늑대를 가장 높게 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델타포스와 데브그루 그 외 SEAL에서 활동한 인원들이 주축이다 보니 미국 내에서 꽤나 든든한 줄을 보유한 상태입니다. 그만큼 보유한 무기도 최신식이고요. 그래서 다른 용병보다 비싸지만 확실한 일처리를 위해
서는 그들이 제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흠… 좋아. 그들과 계약을 하지. 그리고 곧장 파견을 해. 시에라리온은 절대 놓쳐서도 뺏겨서도 안 되는 곳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전 세계의 다이아몬드 유통과 공급을 위해서 시에라리온은 무척이나 중요한 곳이기에 코넨티 회장은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
시에라리온 이곳저곳에 하나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바로.
[신의 사자가 등장했다!] [신의 사자가 반군들을 전부 멸했다!] [신의 사자에게는 그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으며 그의 손짓 한번에 모든 것을 얼려버린다!]
당연히 믿기 힘든 이야기.
하지만 문제는 그 소문을 퍼트리는 자들이 바로 반군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자들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반군들이 갑자기 자신들이 납치한 자들을 풀어준다?
그것도 돈까지 쥐어가며?
그만큼 소문은 신빙성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런 소문이 났음에도 탄바, 카빌라, 포투라 반군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황.
그래서 위험하다는 것을 앎에도 호기심에 반군들이 차지한 세력권에 몇몇 사람들이 움직였고 실제로 반군들이 전부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가장 먼저 움직인 자들이 있었다.
바로 정부군.
정부군이라고 다이아몬드 광산이 탐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반군들과의 전투에 이길 자신이 없기에 포기를 할 뿐.
하지만.
[그동안 수수방관해놓고 이제와 탐을 내는 것은 과한 욕심이지.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자리 잡은 반군들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다.]
정부군은 신의 사자라 불렸던 자가 바로 저자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믿기 힘든 소문.
그래서 정부군은 공격을 감행했다.
혹시 몰라 구식이긴 했지만 그래도 탱크 7대와 휴대용 로켓 발사기도 챙겨왔으니까.
우선 그렇게 발생한 전투.
그런데.
[한번은 그냥 넘어갈 수 있어.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 절대 믿지 않는 존재가 인간이니까. 하지만 두 번은 없어. 그리고 이건 내 경고야.]
신의 사자라 불리는 자의 손짓.
그리고 그 순간 터져 나가는 7대의 탱크.
단순히 터져 나가는 수준이 아니라 그대로 얼어버리기까지 했다.
당연히 정부군은 그 모습에 줄행랑을 쳤다.
정말로 신의 사자였으니까.
소총은 물론이고 탱크와 휴대용 로켓 발사기도 통하지 않는 그런 신의 사자.
우선 그렇게 정부군도 두려움에 떨며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그 반군들의 지역에는 아무도 발을 내딛지 않았다.
물론 발을 내딛기 위해 기다리는 자들도 있었다.
분명 신의 사자가 3주 뒤에 일하고 싶은 자는 오라고 했으니까.
여하튼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정확히 3주가 되기 전에 일단의 무리가 그 반군들이 차지했던 지역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하려는 듯이 시에라리온의 정부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최신식 무기는 물론이고 탱크와 헬기까지 구비하고서.
끝
외전 6. 홍주영 (5).
시에라리온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포투라 반군이 장악했던 지역.
그곳에서 지루했지만 참고 계속 기다렸다.
이곳과 연결된 자들에게서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꽤 많은 숫자의 인원이 멀리서 이동하는 소리를 냄으로써.
물론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진즉에 헬기 그것도 공격헬기 몇 대가 정찰하듯이 이곳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당연히 나를 확인했음에도 공격을 퍼붓지는 않았고.
그래서 나도 내버려뒀다.
분명 나는 아직 대화의 여지를 남겨놓은 상태니까.
그렇기에 반군들이 사라진 구역을 날름 집어삼키기 위해 달려온 정부군도 살려 보낸 것이고.
‘흠… 그래도 솔직히 이놈들이 더 나쁜 놈들이긴 한데.’
반군들을 뒤에서 부추긴 것은 물론이고 다이아몬드를 값싸게 후려침과 동시에 그 대금으로 무기를 지원한 것이 바로 지금 모습을 드러낼 자들이었다.
즉, 반군들에 비해 더 악랄했으면 악랄했지 절대 못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솔직히 꼭 대화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내 손에 먼저 죽어간 반군들하고 형평성에 맞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가 무슨 지구의 수호자나 심판관도 아니고. 굳이 형평성을 따질 필요는 없지.’
우선 그렇게 잠시 더 기다렸고 곧 수백 명의 완전 무장한 인원뿐만 아니라 탱크까지 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후 완전 무장을 한 다른 자들과 달리 말끔하게 양복을 빼입은 남자가 몇 발자국 걸어 나왔다.
동시에.
“어린애로 장난은 그만치고 이제 그만 모습을 드러내지.”
구석진 이곳에 처박혀 있다지만 밖에서 나도는 이야기 정도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신의 사자의 등장.
그리고 악한 자들에게 내려진 신의 징벌.
하지만 이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던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고.
여하튼 나를 몰라봤다고 투정을 부릴 일은 아니기에 그 말에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쪽 소개부터 했으면 좋겠는데?”
“설마 모르고 이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이곳이 누구의 영역인지.”
“그래도 확실한 것이 좋으니까.”
물론 드비어스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기에 그렇게 되물었다.
그러자.
“나는 드비어스에서 나왔다. 그럼 네 뒤에는 누가 있지?”
“나? 내 뒤에는…”
그 말과 동시에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앞쪽으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
내 말에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지는 남자.
“좋아. 아무래도 우리를 자신들이 최고인줄 아는 반군 멍청이들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 같은데. 한번 보자고. 그 웃기지도 않은 신의 사자라는 능력을. 그럼 우선 너부터 죽이면 되겠지?”
“아니. 그전에 아직 내말은 다 끝나지 않았거든.”
실제로 내 뒤에는 아무도 없기에 사실대로 없다고 말을 했을 뿐인데 그것을 오해한 것 같았다.
물론 오해를 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전에 아직 할 말은 더 남았기에 그렇게 말을 했고 그런 내 말에.
“…어디 한번 들어보지.”
***
드비어스사를 대표해서 파견된 에일리오는 무려 300명에 달하는 최정예 용병들과 17대의 신형 탱크 거기에 수십 개의 휴대용 로켓 발사기와 4대의 공격 헬기까지 동원을 해서 이곳에 왔다.
그리고 그 뜻은 그만큼 상대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특히나 지켜본 자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총알을 손으로 막아내고 금고를 흙 주무르듯이 쥐어뜯으며 엄청난 얼음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것은 아무리 과장이 어느 정도 섞여있다 하더라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드비어스가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놓고 공격을 감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에일리오는 사전에 코넨티 회장으로부터 언질을 받았다.
대화가 가능하다면 우선 대화를 하라고.
결코 만만하게 볼 적은 아니니까.
그렇기에 에일리오는 아직 말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상대방의 행동에 공격 명령을 내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한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뒤로 물러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의 말은 절대 들어줄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바로.
[첫째, 드비어스는 앞으로 시에라리온의 모든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둘째, 앞으로의 다이아몬드 거래는 값을 후려치는 것이 아닌 정상적인 가격으로 거래를 한다.] [셋째, 그간 시에라리온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를 불법적으로 싼값에 거래함으로 취한 부당이득의 10%를 반환한다.]
물론 에일리오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착용한 렌즈를 통해 현재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에일리오는 귀에 착용한 소형 이어폰을 통해 하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드비어스의 현 회장인 코넨티의 목소리를.
[죽여!]
그 순간 에일리오는 크게 외쳤다.
“적을 죽여라!”
탕. 탕. 탕. 탕.
쾅. 쾅. 쾅.
에일리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계 최고의 PMC기업이자 용병 기업답게 붉은 늑대에 속한 자들은 눈앞의 한명을 향해 곧장 공격을 퍼부었다.
당연히 휴대용 로켓 발사기는 물론이고 탱크까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대기중이던 공격 헬기들까지 모습을 드러내 똑같이 하나의 타깃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신이든 신의 사자든 혹은 그 무엇이라도 죽일 듯이.
***
나를 향해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공격들.
순간 내 요구조건이 과한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과하지 않았다.
물론 그 와중에 세 번째 요구가 조금 부담스럽긴 할 것이다.
그들이 그간 시에라리온에서 가져간 것들이 절대 적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도 그걸 감안해서 10%를 제시 했다.
50%도, 30%도 아닌 10%를.
그런데 그것마저 내놓는 것을 거부한 자들.
“하긴 가진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 특히나 많이 가진 자일수록 더더욱.”
10% 말고 한 5%로 줄여서 말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 1%라 해도 들어줄 자들이 아니라는 생각에 살짝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날려버렸다.
대신.
“아이스 쉴드.”
굳이 아이스 쉴드를 쓸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안 쓸 필요도 없기에 사용을 했다.
그러자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얼음이 내 주위를 감쌌다.
정면뿐만 아니라 사방 전부를.
당연히 뿌리의 소멸로 인한 지력 70만의 증가의 위력.
그래서 그런지 자동소총뿐만 아니라 탱크와 휴대용 로켓 발사기 거기에 공격용 헬기에서 쏘아대는 미사일까지 아이스 쉴드에는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우선 그 상태에서 잠시 대기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의 파상적인 공격이 멈추자 나 스스로 아이스 쉴드를 해제하고서 살짝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
“…….”
“…….”
멍한 표적의 적들.
그 모습에 손에 주먹만 한 얼음을 소환해 하늘에서 크나큰 소음을 내뿜는 공격용 헬기를 향해 내던졌다.
정확히 4개를.
쾅. 쾅. 쾅. 쾅.
처음에는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곧장 다른 소리로 이어졌다.
바로.
파사사삭. 파사사삭.
헬기를 그대로 얼려버린 내 얼음들.
당연히 열심히 돌며 크나큰 소음을 내뿜던 프로펠러까지 얼려버렸고 프로펠러가 움직임을 멈추자 헬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추락.
쿵! 쿵! 쿵! 쿵!
4번의 크나큰 소리가 끝나자 드디어 좌중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 졌다.
“흠. 이제야 좀 조용하네. 현대 무기는 다 좋은데 이게 문제야. 너무 시끄럽다는 것.”
그 말과 동시에 멍한 눈으로 쳐다보는 자들을 한 번씩 쭉 훑어봤다.
동시에.
“흠. 반군들에게는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지만 정부군에게는 기회를 줬단 말이야. 그럼 너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살짝 고민이 됐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하는 와중.
쾅!
침묵을 깨고 탱크 한 대가 불을 뿜었다.
그 순간 나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탱크에서 발사된 탄환.
물론 일반적이라면 피하지도 그렇다고 막지도 못할 것이다.
거리가 가깝기도 했고 사람의 눈으로 쫓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니까.
하지만.
턱.
정확히 나와 10센티미터를 남겨두고 탄환의 옆면을 붙잡아 정지시켰다.
동시에 그것을 되돌려줬다.
정확히 나를 향해 탄환을 날린 탱크에게.
쾅!
그대로 터져 나가는 탱크.
부들부들.
부들두블.
방금 전까지는 반신반의하던 자들.
하지만 지금의 공격으로 대다수가 사정없이 몸을 떨어댔다.
아무래도 첫 번째는 의구심이 들었을 테지만 이번이 두 번째니까.
우선 그 모습에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을 하지는 마. 이런 공격에 기분이 상할 정도로 다혈질은 아니니까. 그나저나 너희들 전부가 다비어스 소속인가?”
“아… 아닙니다!”
“저희는 붉은 늑대에 소속된 용병으로 드비어스사와 계약으로 이곳에 파견됐을 뿐입니다.”
“사… 살려만 주신다면 더 이상 이곳에 찾아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당장 드비어스와 계약을 해지하겠습니다.”
“저는 용병을 때려치우겠습니다!”
내 말에 거의 대부분이 손에 든 자동소총을 땅바닥에 내던지고 무릎을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탱크에 탑승해 있던 자들은 스스로 해치를 열고 밖으로 뛰쳐나왔고.
“흠… 용병이라.”
물론 용병이기에 어쩌면 더 악랄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아. 내가 조만간에 찾아가지. 그때 하는 행동을 보고 붉은 늑대의 처우를 결정할게. 그만 돌아가 봐. 대신 너는 좀 남고. 아, 그리고 몸을 숨길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 나를 더 화나게 하면… 그 뒷감당은 나조차도 가늠이 안되거든.”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자를 빼고 나머지는 전부 풀어주는 선택을 내렸다.
우선 그렇게 드비어스에서 온 자와 1대1 면담을 진행했다.
***
몇 시간 뒤.
영국 런던.
드비어스 본사는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적이 일반인이 아니라 초월적 존재 혹은 슈퍼 히어로라 불러도 무방한 자였으니까.
물론.
“조작 가능성은? 그러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도저히 믿기 힘든 모습에 코넨티 회장은 혹여나 숨겨진 트릭이 있는지 임원들을 닦달했다.
하지만.
“…….”
“…….”
“…….”
조용한 회의실.
그 모습에 코넨티 회장도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고 그것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이가 아니니까.
특히나 그 현장을 촬영하는 소형 카메라가 한두 개도 아니었고.
그리고 그때.
쾅!
누군가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소리에 코넨티 회장뿐만 아니라 임원 모두 화들짝 놀랐다.
혹여나 그놈이 이곳으로 쳐들어온 것이 아니가 하고.
하지만 부하 직원인 것을 확인하고 놀란 가슴을 쓰다듬을 때 부하 직원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1번, 2번, 3번 금고가… 다이아몬드 금고가… 전부 털렸습니다!]
쿵!
코넨티 회장은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보관된 다이아몬드의 양은 단순히 돈으로 셀 수 있는 그런 양이 아니었으니까.
***
잠시 후.
드비어스 본사의 지하 7층.
코넨티 회장은 이곳으로 오면서 폭탄도 아닌 마치 종잇장처럼 찢겨진 수 미터의 두께를 가진 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으로.
“폭탄은 물론이고 그 어떤 무기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 손으로 찢어발기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저 철문을…”
두께 2미터가 훌쩍 넘는 철문.
그 철문 또한 너덜너덜하게 찢겨져 있었다.
동시에 태블릿이 코넨티 회장 앞으로 대령이 됐고 하나의 영상이 돌아갔다.
쩌저적. 쩌저적.
분명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철문.
그런데 누군가 양손으로 가볍게 철문을 할퀼 때마다 철문이 그대로 뜯기고 파여 갔다.
그리고 총 3개의 문을 더 그런 식으로 통과하고서.
“마법사인가?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저 작은 주머니에 전부 들어가는데?”
코넨티 회장은 뭉텅이로 존재하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상의 주머니에 들이붓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라면 그 작은 주머니에 다이아몬드 원석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는 것.
그 후 1번, 2번, 3번 금고의 모든 다이아몬드 원석을 털고 유유히 사라지는 존재.
“정확히 3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허…”
부하 직원의 말에 코넨티 회장은 헛기침을 토해냈다.
자신이 오판을 해도 큰 오판을 했다는 것이 드러났으니까.
우선 그렇게 코넨티 회장은 종잇장처럼 뜯겨진 철문 앞에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당연히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고.
끝
외전 7. 홍주영 (6).
당연하지만 많을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같이 온 용병들이 전부 도망가고 홀로남아 인질 아닌 인질이 된 에일리오도 직접 엄청난 양이라고 말을 했고.
하지만 내 생각보다 드비어스 본사 지하에 잠들어 있던 다이아몬드의 양은 더 많았다.
1번, 2번, 3번 금고에 어지간한 사과박스 같은 크기의 박스가 수백 개가 있었고 그 수백 개 전부에 다이아몬드가 꽉꽉 채워져 있었으니까.
그것 말고도 따로 보관된 크고 특별한 색상을 가진 다이아몬드까지도.
그래서 그런지 루머 아닌 루머가 떠올랐다.
바로 드비어스사가 보관중인 다이아몬드를 다 풀면 한순간에 다이아몬드라는 보석이 금보다 더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고.
그만큼 이번 디비어스 본사에서 가져온 다이아몬드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여하튼 이번 내 움직임이 확실히 충격을 줬는지.
스윽.
인질로 잡혀 있던 에일리오가 나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회장님의 아니, 드비어스의 코넨티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곧장 에일리오가 건넨 휴대폰을 쥐어들었다.
기다리고 있던 전화였으니까.
그리고.
“정확히 12시간을 주지. 그 시간 내에 직접 오지 않으면 다이아몬드에 이어 드비어스라는 기업은 사라지는 거야. 당연히 당신도.”
그 말과 함께 곧장 통화 종료버튼을 눌렀다.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에는 휴대폰보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니까.
***
7시간 뒤.
코넨티 회장에게 12시간을 줬지만 그는 7시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에게 적대할 생각은 없는지 딱 2명의 수행원만 데리고서.
우선.
까딱. 까딱.
헬기에 내리고서도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그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리고 그런 내 손짓에 그가 다가오더니 쭈뼛대던 처음 모습과 달리 내 눈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손을 내밀었다.
당연히 그 행동은 악수를 뜻하지만 단순히 악수를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말인즉슨 나와 동등한 입장이라는 간접적인 표현.
또한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는 표현.
물론 그런 행동을 한순간에 짓뭉갤 능력이 나에게는 있었다.
가령 코넨티 회장이 타고 온 헬기를 손짓 한 번에 고철덩어리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이곳 주변을 전부 얼음의 대지로 만듦으로써.
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띠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분명 내가 원하는 것은 파괴도 약탈도 혼란도 아니니까.
우선 그렇게 악수를 받아주자 코넨티 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드비어스를 책임지고 있는 코넨티입니다.”
“루멘(lumen). 내 이름은 루멘이다.”
이미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올리베이라에게 내 이름을 루멘으로 소개를 했기에 코넨티 회장에게도 똑같이 루멘이라고 밝혔다.
“루멘이라… 좋은 이름이시군요. 그나저나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오해는 풀어야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오해는 빠르게 풀어야지. 그렇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면 그게 화가 돼서 돌아오는 법이니까? 그렇지?”
“…….”
직접적으로 그 화가 어디로 향할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눈치가 없지는 않은지 코넨티 회장도 얼추 아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얼굴이 굳었지만 그 굳은 얼굴을 풀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네. 괜한 오해는 불신을 낳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이번 오해를 만든 것은 명백히 제가 아닙니다. 저는… 피해자입니다.”
하긴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황당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관리하고 잘 유지하던 곳에 내가 나타나 모든 것을 박살내버렸으니까.
거기에 자신들의 본사도 털어버려 모든 다이아몬드까지 사라졌고.
그러나 나도 할 말은 있었다.
“에이. 피해자는 아니지. 어차피 전부 불법이잖아. 진짜 피해자를 따지자면 반군만큼 부패하긴 했지만 어쨌든 정당성은 갖춘 시에라리온 정부고 시에라리온 국민들이지. 요새는 불법에도 소유권을 인정해주나?”
“…….”
순간 말이 없는 코넨티 회장.
하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내뱉었다.
“밀수, 납치, 무기 제공, 살인 교사, 살인 방조, 반군을 이용한 타국의 내란 음모 등등 어휴… 많다. 뭐 그래도 정 억울하면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너희들 거라는 정식 계약서나 증명된 서류를 가져와봐.”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
명백히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은 정부 소유인데 반군들이 불법적으로 그곳을 점거하여 강탈한 거니까.
드비어스는 그 반군들과 거래를 한 것이고.
반군들에게 계속 그곳을 차지하라고 정부군에 관한 정보나 무기 등을 다이아몬드에 대한 대가로 제공하면서.
우선 여전히 대답을 하지 못하는 코넨티 회장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쐐기를 박는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정 이곳을 갖고 싶어? 그럼 뺐어봐. 내가 쓰레기 같은 반군들을 정리하고 뺏었던 것처럼. 아, 너희들도 잘하는 방법 아닌가?”
“…….”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상의 주머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원석을 한 움큼 움켜쥐고 밖으로 빼내 코넨티 회장이 볼 수 있도록 앞쪽 테이블에 내려놨다.
“그나저나 이렇게 많은데 보석중의 보석이라며 너무 비싸게 받는 것 아냐? 아, 이건 욕이 아니라 칭찬이야. 진심으로. 장사를 하려면 그렇게 해야지. 그런데…”
테이블에 놓인 다이아몬드 원석 4개 정도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어 살짝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끄극. 끄그극.
바스슥. 바스슥.
처음에는 절로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 다음으로는 엄지와 검지를 비비자 다이아몬드가 가루가 됨과 동시에 천천히 바람에 날아가기 시작했고.
“다이아몬드가 영원 혹은 불변의 사랑을 뜻하던가? 그런데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아?”
탁. 탁.
우선 가루가 된 다이아몬드를 바람에 다 흘려보내고 털어내듯이 양손을 부딪치고 시선을 코넨티 회장에게 돌렸다.
“이제 내가 할 말은 끝. 이제 다시 한 번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 아, 그전에 이것은 알아둬. 내가 생각보다 많은 말을 했다는 것을.”
“…….”
그렇게 내 말이 끝났음에도 코넨티 회장의 입이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촉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범람을 하고 있을 테니까.
어째서 이런 개 같은 상황이 생겼는지 하늘에 대한 원망도.
그리고 약 10분 정도가 흐르자.
“포… 포기 하겠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하신 조건을 전부 수용하겠습니다.”
물론 이런 대답이 나올 거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했다.
하지만.
절레절레.
그 대답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왜냐하면.
“그 조건은 처음에 했던 조건이지. 이번은 두 번째 자리잖아? 설마 장사 좀 한다는 장사치가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같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
그 말을 하면서 나 스스로 매몰차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명백하게 이들은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이고 빼앗고 강탈했던 반군들에 비해 더 나쁘면 나빴지 착한 놈은 절대 아니었다.
뒤에서 무기를 대주고 그렇게 하라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한 놈들이 이놈들이니까.
그런데도 반군들과 달리 살려준 상태였다.
즉, 그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선심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눈앞에 있는 코넨티 회장이 그것을 알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그런 내 말에 얼굴이 붉어진 코넨티 회장을 뒤로하고 계속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너무 실망은 하지 마. 분명 너희들에게 이점도 줄 생각이니까. 그러니까 시에라리온에 완벽히 손을 터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자들에게 값싸게 다이아몬드를 후려치는 것은 상관없어. 그러니까 내가 가진 광산에서 나오는 다이아몬드만 제값을 쳐주며 굳이 그 이상의 개입은 하
지 않을 생각이야. 물론 좀 적당히 해. 눈살 찌푸리게 하지는 말란 거지. 그리고… 50%. 마음 같아서는 이번 드비어스 본사에서 획득한 모든 다이아몬드를 꿀꺽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너희도 문제가 커지겠지? 그러니까 50%만 갖겠어.”
“그건!”
내 말에 대뜸 입을 여는 코넨티 회장.
하지만 그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전과 달리 무표정한 얼굴로.
“아까 말했잖아. 내가 생각보다 말을 많이 했다고. 난 반군들에게 그 어떠한 질문도 대화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은 많이 했지. 그러니 신중하게 말해. 신. 중. 하. 게.”
“…….”
우선 그렇게 다시 한 번 대화가 지연이 됐지만 재촉하지 않았다.
아직 서울은 방학이고 그만큼 시간은 꽤나 남아 있으니까.
***
몇 시간 뒤.
서울 청담동.
“아들! 방학이라지만 요즘 너무 밖으로 나도는 것 아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향해 엄마가 한마디 했다.
하긴 그럴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요즘 외출이 잦긴 했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바로.
“언제는 주영이가 집에만 있지 않고 밖으로 외출을 한다면서 좋아했잖아. 용돈까지 쥐여줬으면서는.”
누나의 목소리.
“그건!”
누나의 말에 엄마가 반박을 할 찰나 내가 먼저 더 빠른 행동을 보였다.
엄마를 껴안음으로써.
동시에.
“헤헤. 이제는 외출 자제하려고. 볼 일도 다 봤고 개학도 얼마 남았는데 이제는 준비해야지.”
과거라면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리낌 없이 했다.
분명 고등학생 1학년이 하기에는 부끄러울지 모르지만 그전에 나는 하지 않았으니까.
우선 그렇게 얼렁뚱땅 상황을 넘기고 2층의 내 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누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음… 외계인이면 얼른 정체를 밝혀라. 그리고 내 동생은 살아 있는 거냐?”
“…….”
요새 누나에게 종종 듣는 소리였다.
그래서.
절레절레.
고개만 좌우로 젓고는 응대를 안 해줬다.
한번 해줬다가는 한도 끝도 없었으니까.
과거를 묻는 것부터 내 볼살을 꼬집고 머리카락까지 완전 헤집어 놓음으로써.
당연히 내가 홍주영이 아닌 증거를 밝히겠다고.
물론 장난.
아니, 솔직히 진실 반, 장난 반일 것이다.
그만큼 나는 완벽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천천히 변할 생각이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너무 힘들고 귀찮았다.
가령 눈치를 보지 않음에도 눈치를 보는 척.
이제는 분명 우유부단하지 않음에도 우유부단 한 척.
즉, 이래저래 못난 척을 하는 것이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그냥 될 대로 돼라 하고 행동했다.
여하튼 그런 장난을 치는 누나를 손을 휘적휘적 흔듦으로써 나가라고 눈치를 줬고 그런 내 행동에.
“역시 외계인이야. 모든 일이 끝나면 내 동생을 돌려주고 떠나.”
누나는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내 방 밖으로 빠져 나갔다.
우선 그렇게 누나를 보내고 이번 시에라리온에서 내가 벌인 일을 다시 한 번 되짚어봤다.
“…….”
확실히 과격했다.
자제한다고 했지만 죽은 사람도 반군을 포함하면 천 단위가 훌쩍 넘어갔고.
하지만 이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람 목숨이 진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시간대에서 살다왔다.
그걸 떠나 내 손에 죽은 자들도 천 단위는 애들 장난인 수준이었고.
‘그래. 무덤덤해지는 것을 넘어 거기에 잡아먹히지만 않으면 되니까.’
우선 그렇게 모든 생각을 정리할 즈음.
똑. 똑.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누나는 아니었다.
엄마도 아니었고.
바로 처음에 석인수 실장에게 사람 하나만 보내 달라했고 그때 왔었던 오태석.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이쪽으로 오지.”
내방이지만 꽤 넓었고 한쪽에 소파도 마련되어 있었기에 오태석을 이끌고 그쪽으로 이동해 앉았다.
전에 말했던 대로 두 번째 만남이기에 말을 놓았고.
그리고 오태석이 자리에 앉자 곧장 입을 열었다.
“내일 시에라리온으로 가. 우선 유럽을 경유해 시에라리온의 수도인 프리타운에 도착하면 마중 나와 있는 자들이 있을 거야. 드비어스라고 알지?”
“…다이아몬드에 관해서는 거의 독점적 지위에 있는 곳 아니겠습니까?”
“맞아. 그쪽에서 사람이 나와 있을 거야. 아무리 다이아몬드 광산을 확보했다지만 혼자서 하기는 힘들 테니 내가 미리 말을 해놨어.”
“다이아몬드 광산을 확보했다고요?”
오태석은 내가 다이아몬드 광산을 확보했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응. 꽤 좋아. 드비어스에서 관리를 했고 신경을 쏟던 곳이니까. 물론 그곳 치안이 불안해서 내가 꽤나 능력 있는 PMC(민간 군사 기업)에 용병들을 요청해 놓은 상태니까 그곳에 가서도 안전에 문제는 없을 거야. 하여튼 준비는 다 해놨으니까 내일 시에라리온으로 가. 물론 그곳에서 짱
박혀 있으라는 것은 아냐. 앞으로 나를 대신에 할 일이 많으니까 정확히 6개월 내로 오태석 당신이 없어도 완벽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놔. 믿을 만한 자가 있으면 그를 키우는 것도 오태석 당신이 해야 할 일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 카드를 사용하고. 무제한이니까.”
“…….”
떨떠름한 아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오태석.
하지만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직접 가서 보면 알 테니까.
끝
외전 8. 홍주영 (7).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오태석은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경유하고서 목적지였던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은 꽤 걸렸지만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던 시에라리온.
하지만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황당한 아니, 허황돼도 너무 허황된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심증만으로 자신의 어린 상관의 명령을 무시할 수 없기에 오태석은 결국 시에라리온에 발을 내딛었다.
물론 오직 명령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그 두 눈…’
확신에 찬 눈동자.
오태석은 어린 상관인 홍주영의 두 눈에서 그것을 봤다.
여하튼 그렇게 프리타운 공항의 출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 나가는 와중.
[환영(welcome)! 오태석!]
오태석은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플랜카드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의 어린 상관인 홍주영의 능력이라면 저 정도까지는 충분히 연출이 가능하긴 했다.
분명 대한민국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룹이 명진 그룹이니까.
어린 상관인 홍주영은 어쨌든 그 명진의 직계였고.
그런데 그 플랜카드 뒤쪽으로 상당량의 인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복장.
오태석 자신도 직장인이었고 명진 그룹 내 회장님의 최측근인 석인수 실장의 눈에 띠어 일찍부터 이런저런 것을 많이 봐왔기에 저 양복이 얼마나 비싼지 알고 있었다.
한 벌에 거의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을 호가한다는 것을.
그런 양복을 걸친 자들이 열 명 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프리카 한복판에 어울리지 않게 전부 서양인들로.
우선 오태석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이 말을 내뱉기도 전에 먼저 환영의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신이 오태석이군요. 반갑습니다. 에일리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오태석이라고 합니다.”
“동양인이 없어서 쉽게 확인이 가능하니 좋군요. 우선 나갑시다.”
“네.”
당연하지만 원래의 오태석이라면 순순히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는 분명 아프리카 그것도 여전히 내전이 진행중인 시에라리온이니까.
하지만 자신의 어린 상관인 홍주영이 내뱉은 마중 나온 자들이 있을 거라는 언급.
그리고 실제 마중 나온 자들.
오태석은 살짝 벙찐 상태로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오태석은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지금보다 더 벙찔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았다는 것을.
가령.
“네?”
오태석은 반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차를 타러 주차장 쪽으로 움직일 줄 알았는데 도착한 곳에는 자동차가 없었으니까.
대신 헬기만 5대가 있을 뿐.
그리고 가운데에 있는 헬기에 타라고 손짓하는 에일리오.
당연히 오태석은 반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목적지까지는 멉니다. 또한 이곳은 수도인 프리타운 밖으로는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고요.”
“…….”
그 말에 오태석은 헬기에 발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양쪽에 있는 총 4대의 헬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것들도 같이 움직이는 겁니까?”
오태석이 그렇게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중앙에 있는 헬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4대의 헬기에는 조종사 외의 인물이 하나씩 타고 있었다.
그것도 헬기에 장착된 기관총을 잡고서.
즉, 말 그대로 공격용 헬기.
그리고 오태석의 질문에.
“만에 하나라는 일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오태석은 에일리오의 답변을 듣고 얼떨떨한 상태로 중앙에 있는 헬기에 올랐다.
머릿속으로는 자신의 어린 상관인 홍주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면서.
잠시 후.
“저기가 카나투 광산입니다. 시에라리온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손에 꼽는 다이아몬드 광산이며 5천만 달러에 거래된 100캐럿 블루 다이아몬드가 나온 곳이기도 하죠.”
“…….”
오태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5천만 달러는 한국 돈으로 500억이 훌쩍 넘는 액수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오태석의 심정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헬기는 계속 비행을 했다.
“이번에 보시는 곳이 필루 광산입니다. 직전에 보신 광산처럼 특별한 다이아몬드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생산량만큼은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광산입니다. 더욱이 여전히 많은 다이아몬드가 묻혀 있는 곳이고요.”
“…….”
여전히 오태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 세 번째 광산을 돌때까지.
***
그 후 도착한 시에라리온 북부의 가장 큰 도시 라복.
“생활을 하는 데는 수도인 프리타운이 가장 좋겠지만 아무래도 다이아몬드 광산과의 거리가 있기에 이곳에 머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
“…….”
오태석은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영화에 나올법한 거대한 저택도 저택이지만 헬기 5대가 넉넉하게 내려앉을 공터가 집 안에 있었고 얼핏 봤을 때 테니스장과 수영장까지 딸려 있었으니까.
더욱이.
“붉은 늑대라는 이 분야에서는 첫손에 꼽는 PMC(민간 군사 기업)와 계약을 통해 이곳에는 항상 100여 명의 용병들이 상주할 것입니다. 또한 사전에 정부군과 이 근처를 장악한 반군과 협상을 통해 이 저택을 포함해 이 주변 일대 전부에 자치권을 인정받았습니다. 음… 일종의 외교 특
권이나 치외법권을 인정받는 대사관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오태석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이해 수준이 아니라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벌써 허벅지만 수십 번을 꼬집어 봤다.
“그럼 들어가시죠. 고용인을 포함해 필요한 것은 전부 준비를 해놨습니다. 혹여나 모자란 부분이나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당분간 제가 이곳에 머물면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그렇게 오태석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수많은 고용인들 사이로.
그리고 몇 시간 뒤에는 드비어스에 나온 자들과 면담을 진행했고 그들과 다이아몬드 거래에 대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오태석 스스로 다이아몬드 거래에 무지한 상황.
하지만 초보자인 오태석도 알 수 있었다.
전 세계의 모든 다이아몬드에 대하여 공급과 유통을 맡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드비어스가 엄청나게 양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여하튼 오태석은 그렇게 조금씩 적응해 갔다.
분명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만 눈앞에는 그 말이 안 되는 일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또한.
‘당신은… 도대체 어떤 분인가요?’
오태석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극진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자신 때문도 그렇다고 명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어린 상관인 홍주영.
오직 홍주영 때문이라는 것을.
***
그 시각 미국 워싱턴.
남미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존재하는 광활한 대서양.
그 광활한 대서양을 고작 32초 만에 건넌 미확인 물체 혹은 존재를 확인한 미국은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당장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위성을 동원해 도착지점으로 예상되는 아프리카를 샅샅이 훑었다.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구역부터.
그렇기에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초인을.
혹은 슈퍼 히어로 무비에 나오는 그런 슈퍼 히어로 급의 능력을 가진 자를.
“아이스 능력을 기본적으로 장착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능력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직전에 확인했듯이 공간을 뚫는 빠른 이동과 소총은 물론이고 탱크와 공격용 헬기 등의 무기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방어력과 내구성을 갖췄습니다. 거기에 수백 킬로그램이
넘는 물체를 한손으로 손쉽게 들어 올릴 정도의 힘도요.”
“…….”
“…….”
“…….”
대통령을 비롯해 백악관 지하 벙커에 모인 자들은 미국 국가 정보국(DNI)소속 블레어 대령의 설명에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말 그대로 슈퍼 히어로 무비에 나오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그러다 윌리엄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능력도 능력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누구냐는 거니까.
만약 적대국에 속한 자거나 혹은 미국의 사상과 반대되는 국가에 속한 자라면 사상 최대의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었고.
“정체는… 파악했나?”
“네. 그간 이곳저곳을 다녔고 가장 많이 이동한 곳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바로 이곳입니다.”
블레어 대령의 말이 끝냄과 동시에 스크린에서는 지도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소한 지도.
하지만 이곳에 있는 자들 대부분이 고등교육은 물론이고 석, 박사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리키는 지도인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바로 아시아의 한반도.
그래서 몇몇은 눈에 띠게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의 북쪽에는 솔직히 적대국이라 봐도 무방한 중국, 러시아 그리고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북한이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스윽. 스윽.
한반도를 가리키던 지도가 점차 좁혀들더니 정확히 자신들의 동맹국인 대한민국으로 영역을 좁히자 그제야 인상을 찌푸린 몇몇이 얼굴을 펼 수 있었다.
그자가 위대한 아메리카인이 아니라는 것은 무척이나 아쉽지만 어쨌든 최악은 면했으니까.
그때.
“싸우스(south) 코리아. 그것도 싸우스 코리아 내에서 유명한 기업 중의 하나인 명진이라는 곳의 자재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명진?”
우선 명진이라는 말에 상무부 소속의 장관이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이 미국의 우방국인 것은 맞지만 경제 분야로는 우방국 이상으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이니까.
“네. 그 명진이 맞습니다.”
“허…”
여하튼 그 뒤로도 백악관에 위치한 지하 벙커에서 회의는 한참 동안 계속 진행이 됐다.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에는 초인의 등장은 절대 가볍지 않았으니까.
그것도 ‘오!’ 하는 수준이 아니라 ‘헉!’할 정도의 수준의 초인은 더더욱.
***
며칠 뒤 서울 청담동.
아침부터 조금 분주하게 움직였다.
직장인인 형이나 대학생인 누나와 달리 나는 아직 고등학생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부터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는 날이고.
더욱이 기분이 더 좋을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다.
바로.
[뿌리가 소유자의 영향을 받아 한 단계 성장을 완료하였습니다.
-여전히 소유자의 힘이 강력합니다.
-뿌리가 천천히 성장을 계속합니다.]
정확히 어제 새벽에 내 귓가에 들린 소리.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뿌리는 소멸을 했었으니까.
동시에 나에게 어마어마한 힘을 줬고.
우선 그 소리에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활용해 집밖을 빠져나와 등산로로 활용되는 뒤쪽의 산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곧장 입을 열었다.
“뿌리야?”
[…….]
내 다급한 외침에 아무런 변화도 그렇다고 모습을 드러낸 것도 없었다.
하지만 곧장 다시 뿌리를 외쳤다.
원래도 불러도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뿌리였으니까.
“뿌리야? 뿌리야!”
그리고 그때.
빼꼼.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새벽.
더욱이 그 어둠이 가장 깊게 자리 숲속.
그러나 확인할 수 있었다.
고맙고 미안하고 그리웠던 뿌리를.
물론 거의 아름드리나무만큼의 크기를 자랑했던 때와 비교하면 엄청 얇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쨌든 뿌리가 다시 돌아왔으니까.
더욱이 분명 성장을 계속 한다는 울림도 있었고.
“흐흐흐.”
그래서 절로 입가에 미소가 새어나왔다.
분명 뿌리가 반갑기도 했지만 아무리 내 손으로 얼음을 내뿜고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사용하며 수백 킬로그램 되는 물건을 손쉽게 들어 올린다 해도 종종 내가 겪었던 일이 진짜였으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산증인인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겪었던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꿈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
그렇기에 복합적인 의미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어제의 그 기쁨을 잠시 만끽 할 때.
“주영아! 일어났지? 씻고 밥 먹으려면 얼른 일어나.”
엄마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응. 지금 일어났어.”
대답과 동시에 샤워를 위해 욕실로 이동했다.
그때는 학교 가는 것이 고역이었지만 솔직히 지금은 설레었으니까.
더욱이 학교에는 그간 연락을 할까 무진장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 연보라가 존재했고.
가족들과 함께 죽을 것을 알면서 나를 스쳐 적을 향해 달려들었던 그 연보라가.
끝
외전 9. 홍주영 (8).
경문고등학교.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강남의 한가운데 위치한 사립 고등학교로 그만큼 고등학교 주제에 학비가 어마어마했다.
솔직히 공부보다 인맥 쌓기 위해 다니는 학교라는 말이 더 많았고.
물론 그렇다고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분명 상대적으로 뒤쳐진 학생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우수한 인재가 더 많았다.
몇몇 개천에서 용이 나는 케이스를 빼면 분명 요즘은 공부도 돈으로 처바르는 세상이니까.
나를 빼고.
여하튼 재벌 혹은 재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그런 기업의 직계 그리고 고위직 정관계 인사의 자재 거기에 로펌이나 큰 대형병원 같은 곳의 자재들이 다니는 대한민국 내에서 첫손에 꼽히는 고등학교가 바로 경문고등학교였다.
형과 누나가 졸업을 했던 곳이기도 했고.
우선 그렇게 경문고등학교가 멀찍이서 보이는 곳에 이르자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고 있는 운전기사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도련님 평소처럼 정차할까요?”
“아뇨. 안까지 가죠. 내일모레면 9월 달인데 아직도 덥네요.”
“…네. 알겠습니다.”
실제로 더워서 한말은 아니었다.
더워도 타지 않고.
다만 운전기사의 말로 잊고 있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상류층을 넘어 대한민국 내에서 만큼은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로얄 중의 로얄층인 내가 그 티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말인즉슨 한배에서 난 잘난 형과 잘난 누나에게 비교 당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당연히 남들이 나를 향해 명진의 유일한 하자로 부른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고.
그래서 나란 존재를 아무도 몰랐으면 했다.
모르면 비교 당할 일도 뒤에서 수군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일도 없을 테니까.
즉, 분명 차를 타고 경문고등학교 안까지 이동 후에 내릴 수 있음에도 조금이라도 눈에 띠지 않기 위해서 멀찍이서 내려 등교를 했었다.
방금 운전기사는 그것을 언급한 것이고.
씨익.
순간 웃음이 나왔다.
뭘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눈치를 보며 살았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웃겨서.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땐 몰랐지만 지금 와서 보니 생각보다 내 자존심이 엄청 강했던 것 같았다.
결국 어떻게든 자존심에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나 스스로 벽을 친 거니까.
물론 그럼에도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고.
그리고 그때 운전석에 앉아 있는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도련님 그거 아시나요?”
“뭘요?”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항상 고개를 들고 다닌다는걸요. 도련님을 모신지 몇 년 됐지만 도련님이 그렇게 잘생긴지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가요?”
“네. 더욱이 방학동안 키도 많이 크셨습니다. 어깨는 물론이고 몸도 커졌고요.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어제 도련님이 거실을 걷는 모습을 보고 집사님이 살짝 놀라시기에 제가 여쭤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도련님을 상대로 전대 회장님으로 부를 뻔 했다고 했습니다. 아주 빼다 닮았다면서
요.”
“후후. 그렇군요.”
우선 그렇게 웃음으로 대답을 했고 그 사이 자동차는 매끄럽게 움직여 학교 정문을 지나쳤다.
그리고 한쪽에 마련된 간이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도련님 그럼 하교 시간에 뵙겠습니다.”
“그러세요.”
대답과 동시에 주변을 살짝 살폈다.
당연히 나처럼 비싼 외제차에서 내리는 학생들이 엄청 많았다.
하긴 오히려 이게 더 자연스러워보였다.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일반 고등학교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때는 항상 내 몸을 숨길 쥐구멍을 찾을 때였고 그만큼 시야가 좁았기에 이런 간단한 것도 알지 못했었다.
여하튼 그들을 지나쳐 자연스럽게 교내를 걸었다.
진즉에 집으로 날아온 가정통신문으로 내 반이 어딘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쟤 홍주영이지?”
“응. 맞네.”
“어쩐 일이래? 쟤 항상 멀찍이서 차에서 내려 걸어왔었잖아?”
“그러니까. 혼자 튀려고 서민 코스프레하는 것에 이제는 지친 건가?”
“아니야. 그거 코스프레가 아니고 원래 엄청 소심하잖아. 그러니까 잘나가는 명진의 직계면서 저렇게 왕따지. 왕따.”
“야! 들리겠다. 좀 작게 말해. 어쨌든 명진이야. 명진!”
“아… 알았어.”
과거라면 안 들렸겠지만 지금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귀에 속속 박혀 들어왔다.
더욱이 그 대화에 살짝 씁씁한 웃음이 새어나왔고.
내 나름대로 고심을 하고 했던 행동이 고작 서민 코스프레로 비춰졌다는 것은 지금 처음 알았으니까.
우선 여기서 그 행동은 서민 코스프레가 아니라고 외칠 것은 아니기에 그냥 계속 움직였고 새롭게 2학기를 시작할 반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내 시선이 향한 곳은 창가지만 가장 앞쪽.
분명 창가인 것은 가장 메리트가 있는 자리인 것은 맞지만 가장 앞쪽은 선호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앉았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공부에 미련을 두고 있을 때였으니까.
그러나.
저벅저벅.
이번에는 달랐다.
똑같은 창가지만 맨 끝 쪽으로 이동했다.
당연히 가장 인기 있는 자리기에 이미 주인이 있었고.
우선 그렇게 이동하자 먼저 자리를 선점하고 있던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동급생이 나를 슬쩍 쳐다봤다.
그 모습에.
“내가 이 자리에 앉고 싶은데 양보 가능할까?”
“…….”
살짝 얼굴이 찌푸려짐과 동시에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변한 동급생.
하긴 오만가지 생각이 들것이다.
나 자체로는 분명 별 볼일 없지만 내 뒤에 있는 곳이 다름 아닌 명진이니까.
그리고 약 30초 뒤.
그그극.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책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즉, 양보.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은 분명 최후의 반항이긴 할 것이다.
마치 홍주영이란 이름을 가진 나에게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명진에 양보한다는 뜻.
그래도 우선 자리를 양보 받았기에 별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광경에 반의 동급생 모두의 시선을 받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앞으로 그 시선을 더 많이 받을 테니까.
어쨌든 그렇게 2학기를 시작했다.
2학기의 시작이라 그런지 본격적인 수업보다 앞으로의 수업 진행 방식과 방향 등을 설명하는 시간을 보냈다.
잠시 후.
점심시간.
1, 2, 3, 4교시 내내 나에게 말을 거는 동급생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쓸쓸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나 스스로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벽을 쳤으니까.
그렇기에 학교 내에 존재하기에는 너무 화려한 급식실에 도착하고서도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개의치 않고 뷔페식으로 준비된 음식들 중 먹음 짓한 것을 골라 빈자리 중 하나로 이동에 앉았다.
그 후 나 혼자 밥을 먹을 찰나.
털썩.
누군가 내 앞에 앉았다.
물론 진즉에 누군가 내 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내 앞에 앉을 줄은 몰랐지만.
“2학기 첫날부터 혼자 밥 먹으면 쓸쓸하잖아. 안 그래?”
“김…철민이던가? 대성 맞지?”
“…….”
대한민국에 손에 꼽는 그룹이 다섯 개가 있었다.
첫 번째는 부동의 원탑인 미래.
그 다음이 명진과 대성, 구산이 차지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오대 그룹에 겨우 턱걸이 하고 있는 대유가 존재했고.
하지만 정확히 파고들면 3대 그룹으로 하기에는 미래를 제외하고 명진과 대성, 구산이 너무 막상막하였고 그렇다고 4대 그룹으로 하기에는 어감이 좋지 않아 결국 5대그룹으로 해서 대유까지 포함된 이름이었다.
내 앞에 앉은 김철민이 바로 그 대성의 직계이고.
친구이자 라이벌.
물론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이벌로는 더더욱 아니고.
그리고 그런 내 물음에.
“새…끼. 방학 동안 잘 처먹어서인지 키랑 덩치 좀 커졌다고 간덩이도 같이 커져나 보네.”
당연하지만 아무리 내가 명진의 수치이자 하자로 소문이 났어도 아무도 나에게 시비를 걸거나 대놓고 모욕감을 주지는 않았다.
명진의 수치이자 하자인 것은 맞을지라도 그 명진에서 나를 내놓지 않았으니까.
즉, 여전히 명진의 울타리 안에 있는 나.
하지만 눈앞의 있는 대성의 직계라면 저런 말을 할 정도는 됐다.
대성이 결코 명진에 밀리는 곳은 아니니까.
“흐흐흐.”
순간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시에라리온의 반군들과 처음 드비어스 사에서 파견된 자들에게 저것보다 더 심한 욕을 듣긴 했지만 그것은 처음 보는 남들이었고 지금은 예전부터 아는 자들에게 듣는 말이었으니까.
“갑자기 왜 웃는 건데?”
아무래도 자신의 밑으로 생각했던 내가 전과 달리 행동하자 꽤나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모습까지도 웃겼다.
그래서.
“웃는 이유는 딱 하나 아니야? 당연히 웃겨서 웃는 거지. 아주 오랜만이거든. 안면이 있는 자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과거의 나를 부를 때 영웅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지구의 희망 아니, 거기에서 한술 더 떠 신으로까지 불린 것이 나였다.
그만큼 ‘Revival Legend’가 현실로 구현되기 직전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었던 자라도 내 앞에서는 고개를 조아렸었다.
때로는 살려달라고 손이 달도록 빌기도 했고.
물론.
쾅!
“이 새끼가 실성을 했나!”
그건 아무도 모르기에 김철민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꽝 내리치며 나를 노려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나와 김철민에게 쏠렸고.
아마 김철민은 일부러 그랬을 것이다.
모두의 주목을 받는 것만큼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원래의 나라면 당장 빳빳이 세운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쥐구멍을 찾듯 안절부절못했을 것이고.
하지만.
찰싹.
최대한 손에서 힘을 빼고 김철민의 뺨에 싸대기를 날렸다.
정말 힘을 실어 때리면 뺨이 뜯겨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360도 이상 목이 돌아갈 테니까.
동시에.
“밥 먹을 때는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 배웠냐?”
“…….”
순간 황당한 표정을 짓는 김철민.
그러나 무시하고 포크로 접시에 당긴 샐러드를 찍어 입으러 가져갔다.
“이… 미친 새끼가!”
쾅.
이번에는 다른 뺨을 행해 조금 더 힘을 줘 싸대기를 날렸다.
하지만 살짝 더 힘을 줬음에도 옆으로 그대로 몸이 쓰러졌다.
뺨은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그리고 그 모습에.
“쉿! 나도 밥 먹을 때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대화를 해야 한다는 주의지만 너는 너무 시끄럽잖아. 예의 좀 지키자고.”
푹.
그 말과 동시에 다시 포크를 사용해 음식물을 집어 삼켰다.
동시에 시선을 위로 들어 올리다 누군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씨익.
살짝 웃어줬다.
시선이 마주친 대상이 바로 연보라였으니까.
***
그날 밤.
서울 청담동.
아빠, 엄마, 형, 누나와 둘러앉아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날 무렵.
“싸웠다고?”
아빠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뭐? 주영이가 학교에서 싸웠다고요? 설마…”
누나가 화들짝 놀랐다.
당연히 엄마도.
하긴 그럴 것이다.
그간 싸움은커녕 누군가 말다툼조차 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끄덕끄덕.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동시에.
“그게 아빠 귀에 들어갔어요? 참… 별로 대단치도 않은 일 같은데.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정말 말 그대로 시답잖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잘했다.”
아빠는 잘했다는 말 한마디를 건넸다.
물론 그 뒤로 엄마와 누나가 자초지종을 말하라고 했지만 딱히 입을 열지는 않았다.
굳이 다시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
그 시각 대성 김정환 회장의 저택.
“으드득! 그걸 참으면 어떻게 해! 너도 똑같이 쥐어박아야 할 것 아냐!”
“할아버지가 그랬잖아요. 강자의 아량을 보여야 한다고요.”
“이 멍청아. 그건 네가 우위에 있을 때 이야기지. 당하고 온 주제에 무슨 강자의 아량이야!”
“하지만… 만에 하나 명진이랑 사이가 나빠지면…”
“이 멍청아! 네놈들의 싸움으로 대성과 명진의 사이가 나빠질 것 같아? 고작 애들 싸움으로?”
“…….”
김철민은 할아버지의 말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고개를 숙였다.
억울했으니까.
그러다 고개를 치켜들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내일 학교에 가서 제대로 홍주영 그 자식을…”
“늦었어. 이놈아. 내일 손을 쓰면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거야. 어제! 어제 끝냈어야지. 쯧쯧. 나름 기대한 놈인데 이놈도 결국 애인가.”
“…….”
김철민은 자신을 향해 혀를 차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홍주영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겪고 싶지 않은 일을 겪게 만든 주범이 홍주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들린 할아버지의 목소리.
“연보라와의 사이는 어떠냐?”
“보라요? 좋죠. 엄청 많이요.”
“그래. 잘해라. 만약 네가 연보라면 엮어온다면 대성은 네 것이다. 당연히 대성과 한 몸이 될 미래도. 그리고 그렇게 되면 넌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전 세계적인 기업을 이끄는 수장이 될 수 있다.”
“네! 걱정 마세요. 할아버지! 제가 꼭 대성을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끝
외전 10. 홍주영 (9).
다음날.
경문고등학교.
힐끔힐끔.
수군수군.
웅성웅성.
분명 별일 아닌 걸로 보면 한없이 별일 아닌 것이 어제의 일이었다.
실제로 큰 싸움으로 번진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그 대상이 명진과 대성이라면 별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차에서 내리는 나를 향해 수많은 시선들이 쏟아졌다.
더군다나 1학기 때의 내 모습을 감안하면 어제의 그 일은 의외여도 너무 의외였을 테고.
그러나 전부 무시했다.
어제 아빠와 엄마, 형, 누나에게 말했던 대로 아주 사소한 일이었으니까.
우선 그렇게 나를 힐끔힐끔 거리는 자들을 지나쳐 교실로 이동을 했고 무척이나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
잠시 후.
점심시간.
솔직히 김철민이 1교시 전이든 아니면 1교시가 끝나거든 한번쯤은 올 거라고 예상했다.
내가 기억하는 김철민 성격상 그런 수치를 당하고도 그냥 넘어갈 성격은 아니니까.
하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김철민.
‘아무래도 한소리 들었나보군.’
대충 짐작이 갔다.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넘길 녀석은 아니니까.
그런데 그때 또다시 누군가 어제처럼 내 앞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리던 김철민?
아니, 연보라가.
털썩.
자연스럽게 식판을 내려놓으면 내 앞에 앉는 연보라.
동시에 의자에 앉자마자 연보라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뭐가?”
대뜸 무슨 일이냐 묻는 연보라.
그런 연보라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살짝 으쓱거리며 되물었다.
그러자.
“어제 일.”
“아… 그거? 그냥 친구끼리의 사소한 트러블?”
“…….”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아무래도 연보라가 원한 대답은 아닌 것 같았다.
여전히 굳은 얼굴이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예전 아니, 원래의 너는 그렇지 않았잖아.”
“음… 확실히 그랬지.”
누나가 말했던 발톱을 드러낼 줄도 몰랐던 아기 고양이.
어디를 가든 숨을 곳부터 먼저 찾았던 작은 생쥐.
실제로 내가 그랬었기에 딱히 반박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수긍만 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곧장 다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젠 좀 바뀌어보려고.”
“바뀌어?”
“응.”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연보라의 표정은 처음과 똑같았다.
그러나 눈동자에는 전과 달리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듯이.
그 모습에 입가에 큼지막한 미소를 띠며 다시 입을 열었다.
“조용히 살려고 했어. 이 대한민국은 아니, 이 지구는 나를 담기에는 너무나 작거든. 내가 살짝 기지개만 켜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그런데… 뭐 경기 좀 나면 어때. 내가 살아보니까 다 적응이 되고 남들도 다 적응을 하더라고.”
“…….”
드디어 연보라의 얼굴에 표정변화가 발생했다.
그 모습에 뭔가 뿌듯함을 느꼈다.
물론.
“농담이… 많이 늘었네?”
“흐흐흐.”
연보라의 말에 그냥 웃음을 보여줬다.
그러다 연보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릴 때 기억나?”
“뭐가?”
“둘이 결혼하자고 한 것. 내가 너에게 멋진 보석으로 멋진 프러포즈를 한다고 했었잖아.”
“…….”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를 스쳐지나가며 했었던 연보라의 말.
솔직히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기억하지 못했었다.
잊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잊었는지도 몰랐다.
그 당시 연보라에 비해 나는 너무 모자란 부분이 많았으니까.
일종의 자격지심 일 테지만 못 오를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런 내 말에.
“기억은 나.”
기억난다는 연보라의 말에 곧장 입을 열었다.
“그것 해보려고.”
“…누가 받아준데?”
“흐흐흐. 걱정 마. 절대 거절하지 못하도록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갈 테니까. 말했잖아. 이젠 조용히 살지 않겠다고.”
“…….”
우선 그렇게 연보라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
아무래도 현재 나의 신분은 고등학생.
그렇기에 평범한 나날이 이어졌다.
물론 그 평범한 나날을 누군가는 따분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미 살기 위해서 죽을 둥 말 둥 최선을 다해 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 평범한 나날이 좋았다.
최소한 당분간은.
더욱이 과거와 달리 학교 내에서도 더 이상 쥐구멍에 숨는 생쥐가 아니었고 집에서는 아빠, 엄마, 형, 누나를 항상 볼 수 있었으니까.
여하튼 그렇게 한 달반이 훌쩍 지났고 곧 중간고사를 맞이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름 : 홍주영.
2학기 중간고사.
1학년 3반.
-국어 : 100점.
-수학 : 100점.
-영어 : 100점.
-한국사 : 100점.
-사회탐구 : 100점.
:
:
-반 석차 : 1등.
-학년 석차 : 1등.]
전과목 100점.
나에게 당연하다면 너무 당연했다.
과거의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 강제된 족쇄 혹은 굴레인지는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완벽히 달라졌다는 것을.
물론 남들에게는 전혀 당연한 일이 될 수가 없었다.
1학기 때도 중간고사과 기말고사를 봤고 그때는 맨 뒤에서 꼴지를 놔두고 엎치락뒤치락은 했으니까.
그래서.
“전과목 만점?”
“그게 말이 돼?”
“수업시간에도 딱히…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웅성웅성.
와글와글.
당연히 꽤 큰 소란이 일었다.
분명 내가 다니는 경문고등학교가 정상적인 학창 생활보다 인맥을 쌓기 위한 학교라는 인식이 더 강할지라도 어쨌든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한 최상위권에게는 성적이란 매우 예민할 수밖에 없으니까.
어쨌든 중간고사 결과가 발표된 날의 점심시간.
“…….”
자리에 앉고서 밥을 먹기보다 물끄러미 나를 주시하는 눈동자가 있었다.
바로 연보라.
물론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개의치 않고 식사를 계속 진행했다.
그러다.
“좋아. 인정. 이번 일은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겠다는 너의 확실한 결과물이긴 해. 그런데 전과목 만점이라… 물론 홍주영 네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아무리 바보 멍청이라도 그런 일을 벌여놓고 조용히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씨익.
연보라의 그 말에 별다른 대답 대신 그저 미소를 보여줬다.
나도 앞으로 벌어질 일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으니까.
당연히 그걸 앎에도 했고.
왜냐하면 연보라에게 했던 아니, 그 전에 가족들에게 했던 앞으로 달라질 거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
그 시각 경문고등학교 교무실.
“홍주영 학생은 1학기만 해도 뒤에서 3번째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보시면 알겠지만 중학교 시절도 3년 내내 꼴찌 아니면 꼴지 앞이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전과목 만점이요?”
“…….”
“…….”
“…….”
교무부장의 말에 1학년을 담당하는 선생님들 모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교무부장이 언급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확인을 했었으니까.
그리고 계속 이어진 교무부장의 말.
“물론 방학기간에 열심히 할 수도 있겠죠. 명진이라면 전과목을 1타 강사로 과외를 시킬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전과목 만점이 말이 됩니까?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성적이 수직하락 한 것이 아니라 중학교 내내 꼴찌를 한 학생이요?”
당연히 그 말에도 꾸중 아닌 꾸중을 듣고 있는 선생님들 모두 입을 열지 못했다.
잘하다가 갑자기 못했던 학생이 마음을 독하게 먹었으면 가능할지라도 홍주영은 고등학교 들어오기 전부터 그러니까 중학생 때도 꼴찌였으니까.
그 말인즉슨 기본 밑바탕이 되어주는 지식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고.
“지금 다른 학부모에게 들어온 항의가 수십 개입니다. 수십 개! 더욱이 그 항의하는 학부모 중에는 내일 당장 경문고등학교의 성적 조작으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게 만들 자들도 수두룩하고요!”
우선 그렇게 교무부장의 질타가 계속 쏟아졌고 그때 1학년 수학 과목을 담당하는 이지영 선생이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억울하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하지만 교무부장님. 사전에 저희 1학년 담당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혹여나 답안지를 빼돌려 주영군에게 준 사람이 있으면 미리 말을 하자고요. 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혹여나 줬어도 만점짜리는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전과목 만점입니다. 설마 교무부장님이 여기 있는 저희들이 모두 주영군 아니, 명진에 매수됐다고 생각하세요?”
웅성웅성.
와글와글.
1학년 담당 선생님이 이때다 싶어 한마디씩 하자 이번엔 교무부장이 찔끔했다.
솔직히 자신도 그게 가장 의문이었으니까.
물론 명진이라면 그럴 능력은 됐다.
각 교과목 담당 선생들에게 10억씩을 준다면 욕심은 날 테니까.
하지만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인 명진이 그런 티나는 짓을 벌인다?
절레절레.
교무부장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답안지를 안줬다고 보기에는 말이 안 되는 일.
그래서 추궁 아닌 추궁을 이어갔다.
현재로선 그것밖에는 해결책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한쪽에 앉아 계속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선춘 교장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재시험. 재시험을 보면 어떨까요? 홍주영 그 학생만 따로요. 더군다나 이번 시험 출제는 2학년 혹은 3학년 선생님들이 하는 겁니다. 아무리 2, 3학년을 맡고 있다지만 1학년 수준의 시험 출제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
“…….”
“…….”
잠시 침묵이 자리한 교무실.
그러나 장선춘 교장은 개의치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재시험도 모두가 지켜보는 공개 장소에서 하는 것이 어떨까요? 더 이상 어떤 말도 나오지 않게요. 아, 학부모 참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교무부장을 비롯해 1학년 담당 선생니들 모두가 하고 싶었던 말.
하지만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상대가 무려 명진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재시험을 본다는 것은 결국 그 학생을 의심 아니, 의심을 넘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확신을 하고 있다는 뜻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교무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괜찮겠습니까?”
“허허허. 괜찮고 말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재시험을 봐서 만약 또다시 만점을 받는다면 제가 주영군과 주영군 학부모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면 될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찾아서 일벌백계를 내리면 되겠죠. 물론 저는 전자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로인해 제가 교장 자
리를 짤리더라도요. 허허허.”
우선 그렇게 경문고등학교는 장선춘 교장의 말대로 진행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실제로 다음날 교무실이 시끄러울 정도로 항의 전화가 계속 걸려오기도 했고.
***
다음날.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담임의 조심스런 재시험 언급에 무덤덤하게 수락을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고.
그리고 그 소문은 재빠르게 퍼져갔다.
당연히.
“쯧쯧쯧. 그러게 적당히 하지.”
“맞아. 전과목 만점은 너무 했잖아.”
“그런데 홍주영에게 답안지를 넘긴 선생도 당연히 잡아내겠지?”
“당연하지! 학부모 회의에서는 이 문제를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고 검찰 고발까지 준비 중이랬어.”
“그런데… 명진인데 괜찮을까?”
“오히려 이게 기회지! 원래 재벌들끼리 앞에서는 서로 친한 척 희희낙락거리지만 뒤로는 칼을 가는 사이라고. 분명 명진이 삐끗한다고 좋아할 걸.”
“그건 맞지.”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자들이 꽤나 많았다.
물론 딱히 그들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니까.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
재시험 당일.
경문고등학교 교무실.
“1학년 선생님들은 전부 배제를 했고 2학년, 3학년 선생님들로 하여금 100문제씩 부탁드렸습니다. 즉, 한정된 분량으로 많은 문제를 만들다 보니 난이도가 더 높으면 높았지 절대 낮지는 않습니다.”
장선춘 교장은 자신의 두 눈으로 부정행위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겠다고 학교까지 찾아온 몇몇 학부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후.
“여기서 무작위로 25문제씩 뽑을 것이고 순서도 무작위로 출제를 할 것입니다. 그럼 직접 학교를 방문하신 학부모님도 뽑아보시죠.”
부정행위를 밝혀내겠다고 학교를 방문한 몇몇 학부모들은 정선춘 교장의 그 말에 입맛만 다실 뿐 어떠한 의견제시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보도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했으니까.
여하튼 그렇게 학부모를 포함해 몇몇 선생님들이 무작위로 문제를 뽑았고 역시나 문제 순서도 뒤죽박죽 무작위로 제출했다.
그만큼 설사 답안지가 사전에 유출이 됐다 하더라도 100문제 전부와 그 답을 알지 못한다면 절대 풀 수가 없는 수준.
더군다나 한 과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고사 때 봤던 국, 영, 수를 비롯해 무려 11과목인 것을 감안하면 1100문제 일 수밖에 없었고.
우선 그렇게 5명의 선생님들이 시험지를 챙겨 재시험을 준비 중인 한명의 학생이 있는 교실로 이동했다.
당연히 나머지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교무실에서 CCTV를 통해 그 장면을 유심히 관찰을 했고.
끝
외전 11. 홍주영 (10).
고작 폭 50킬로미터의 좁디좁은 호르무즈 해협.
하지만 이곳은 지리학적으로 무척이나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이란 거기에 위 3개 국가에 밀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 남부럽지 않은 산유국인 바레인과 카타르, 두바이까지 세계 원유의 30% 이상이 이곳을 통해 공급이 됐으니까.
즉,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다면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는 이란은 종종 이곳 호르무즈 해협을 두고 목숨을 건 도박을 했다.
지금처럼.
“우리는 스페인 국적의 유조선으로 쿠웨이트 석유공사와 원유 계약을 통해 원유를 싣고 스페인 발렌시아의 코르바 항구로 이동중이다.”
스페인 국적의 유조선 코나에 탑승중인 멜도바 선장은 호르무즈 해협을 막아선 이란의 구축함을 향해 이쪽의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코나호는 이란 국적의 어선과 충돌 후 구조행위를 하지 않고 도주하려한 정황이 포착됐다. 코나호는 즉시 엔진을 끄고 그 자리에서 멈추기 바란다.]
“아니! 그게 무슨!”
멜도바 선장은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이란 측의 억지에 다시 한 번 부당함을 내비치려 했지만 그런 멜도바 선장을 제지하는 손길이 있었다.
바로 부선장 하비에르.
“선장님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저놈들은 영국 국적의 유조선도 저런 방식으로 60일간 억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끄응…”
멜도바 선장도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긴 했다.
이곳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하는 유조선치고 이란의 해군과 마찰 한번 겪지 않은 배는 단 한 척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멜도바 선장은 단 하루 아니, 몇 시간이라도 이렇게 배가 묶여 있는 것 자체로 극심한 금전적 손해가 발생하기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뻔히 앎에도.
여하튼 그렇게 스페인 국적의 코나호는 구축함의 지시를 받으며 이란 남동부의 반다르압바스 항구로 이동했다.
물론 그 일은 스페인 국적의 코나호에게만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아시아 국적의 유조선.
특히 한국과 일본의 유조선들이 코나호에 이어 이란의 전함과 구축함에 나포 아닌 나포를 당해 반다르압바스 항구로 이동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석유라 할 수 있는 미국 텍사스산 원유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비롯한 아메리카에 북해 브랜트유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유는 중동과 아시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원유였으니까.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나지 않는 한국과 일본은 더더욱.
***
그로부터 며칠 뒤.
사우디아라비아 북동부에 위치한 모야디 유전.
콰아아앙!
사우디아라비아 내에서도 손에 꼽는 거대 유전인 모야디 유전에 크나큰 굉음과 함께 거대한 불길이 솟구쳤다.
도저히 손을 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불길을 뿜어내는 모야디 유전.
그런데 그 모야디 유전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알라페 대단지 석유 단지에도 검은 연기가 치솟더니.
콰아아앙!
모야디 유전과 비교해 전혀 뒤처지지 않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불길이 솟구쳤다.
유전과 동시에 대단지 석유 시설에까지 치솟은 불길.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곧장 수백 대의 소방 차량과 수십 대의 소방 헬기가 투입이 됐고.
하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는 불길.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알라페 석유 단지에 보관중인 석유 전부를 밖으로 빼내 그냥 맨땅에 흘려보냈다.
석유는 다시 파내면 되지만 석유 저장 시설과 정제 시설이 파괴되면 그만큼 복구하는데 시간과 돈이 더 많이 소요가 되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쾅! 쾅! 쾅!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난 모야디 유전.
결국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는 결정을 내렸다.
돈을 들여 기껏 뚫어놓은 시추 구멍을 막는 것으로.
그래야 더 이상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
여하튼 사우디아라비아는 동시에 거대 유전과 대단지 석유 시설에 발생한 폭발과 화재로 엄청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금전적 손해도 손해지만 다시 복구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기에 더더욱.
거기에 문제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이 폭발과 화재를 예멘 후티 반군의 짓으로 명명하고 테러로 규정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복구는 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했고.
중동의 패자를 자부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 테러를 당하고도 그냥 넘긴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우선 그렇게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와 더불어 동시답라적으로 발생한 사우디아라비아의 테러로 세계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물론 가장 큰 혼란은 아시아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의 국가 대부분이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이 바로 석유였으니까.
특히나 중동유를.
***
경문고등학교 재시험장.
굳이 재시험장이라고 할 것 까지도 없었다.
재시험을 보는 자가 나밖에 없었으니까.
대신 감독관은 무려 5명이나 됐고.
물론.
쓱쓱. 쓱쓱.
나름대로 혼란을 주기 위해 비비꼰 문제도 여럿 있었지만 전혀 혼란을 발생시키기 못했다.
정답이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쉬웠으니까.
우선 그렇게 시험을 계속 풀어나갔다.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단축해서.
***
3학년을 담당하는 수학 선생 고독수.
그는 당연히 무언가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만년 꼴찌였던 학생의 이번 성적은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했으니까.
그런데.
쓱쓱. 쓱쓱.
“…….”
고독수는 자신의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정확히 문제를 읽는데 5초.
그 후 단 1초의 막힘도 없이 거침없이 풀이를 적는 모습.
그리고 10초 만에 나온 정답.
고독수는 그 행동에 느꼈다.
풀이 따위가 필요치 않은 그러니까 암산으로 풀 수 있음에도 직접 일일이 풀이를 씀으로써 너희의 의심을 내가 해소시켜주겠다.
한 문제당 20~30초도 걸리지 않는 모습에, 손길에 고독수는 그것을 느꼈다.
결국 10분도 되지 않아 깔끔하게 100점 만점으로 풀어낸 수학 시험지.
더욱이 고독수는 1학년 수준이 아니라 조금 난이도를 더 높였다.
한정된 분량으로 100문제나 뽑는다는 것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니까.
여하튼 고독수뿐만 아니라 시험 감독관으로 참여한 모두는 인정했다.
명진의 하자로 혹은 바보 멍청이로 알려진 홍주영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
재시험이 끝나고 이틀 뒤 주말.
서울 청담동 집.
사전에 약속된 방문자가 있었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아빠와 엄마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로 장선춘 교장.
우선 장선춘 교장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먼저 머리를 숙였다.
동시에 믿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 뒤로 학부모인 아빠와 엄마에게 교육자로서 못난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고 말을 건넸고.
그리고 그 모습에 아빠와 엄마가.
“괜찮습니다.”
“그 심정 이해합니다.”
당연히 모든 과목 만점으로 난리가 난 것은 학교뿐만이 아니었다.
집에서도 난리가 났다.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빠도 변한 내 모습에 더 이상 공부를 강요하지도 않았고.
그런데 대뜸 모든 과목 만점에 반에서도 학년에서도 1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온 상황.
학교보다 더하면 더했지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여하튼.
“정말 장한 아들을 두셨습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재시험을 치룬 선생님들 말로는 그간 일부러 자신을 숨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아니, 분명 그게 확실하다고 자부하는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진짜로 모자랐었다.
몇 시간을 의자에 앉아 외우고 외웠던 영어 단어가 정말 책장을 덮자마자 백지장처럼 하얘질 정도였으니까.
그렇기에 그나마 내가 했던 것이 남아있고 그로인해 레벨업이든 아니면 잡템이든 어쨌든 보상이 차곡차곡 주어졌던 롤플레잉 게임을 찾았던 것이고.
우선 그 뒤로도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나는 그냥 가만히 듣기만 했다.
장선춘 교장이 한마디 할 때마다 흐뭇해하는 아빠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족했으니까.
***
그날 저녁.
똑똑.
누군가 내 문을 두들기고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누나.
그리고.
“이 외계인! 나는 이제 확신을 내렸어. 그나저나 그렇게 잘난 척을 하면 나중에 돌아올 내 동생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갑자기 멍청해질 내 동생을 생각해봐!”
“후우…”
쥬스와 과일이든 쟁반을 손에 든 누나는 문을 열자마자 그 소리부터 외쳤다.
아마 엄마가 보냈을 것이다.
장선춘 교장의 방문 이후로 엄마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으니까.
우선 그런 누나에게.
까딱까딱.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인간. 입조심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 동생의 목숨은 없다!”
처음에는 발뺌.
그 다음에는 무시.
이제는 맞장구로 발전을 했다.
물론 그런 내 맞장구에.
“이게! 누나를 놀리고 있어!”
쥬스와 과일이든 쟁반을 옆에 내려놓은 누나가 한마디를 했다.
가볍게 내 머리를 헝클었고.
우선 그런 누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또?”
“응.”
내 대답에 손을 활짝 펴서 내민 누나.
그리고 그 누나의 손 위에.
좌르륵.
무언가를 쏟아냈다.
바로 다이아몬드 원석들.
하지만.
“아니, 무슨 큐빅을 또 주는데?”
아마 한두 개씩만 줬다면 다이아몬드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뭉텅이로 주다보니 누나는 처음부터 큐빅으로 받아들였다.
나도 굳이 다이아몬드라고 정정을 하지 않았고.
“저번에 준 것도 버리지 않았지?”
“어떻게 버려. 동생이 처음으로 준 건데.”
“잘 갖고 있어.”
“알았다. 알았어.”
물론 진짜는 따로 있었다.
말인즉슨 지금 드비어스에서 제일 잘나가고 유명한 세공사가 여럿 붙어 정성들여 만들고 있는 보속들이 있었다.
엄마는 목걸이, 누나는 귀걸이 그리고 아빠와 형은 넥타이핀으로.
여하튼 그렇게 누나를 내보내고 시에라리온에서 오태석이 보낸 서류를 꺼내 확인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짙은 어둠이 자리한 새벽.
눈을 떠 쿨타임 제로 블링크로 집밖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집에서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곳에 주차된 봉고차 크기의 검은색 차량 지붕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그러자 검은색 차량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차문은 물론이고 창문마저 완벽하게 닫혀져 있지만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지루해 죽겠군.”
“어쩌겠어. 상부에서 까라면 까야지.”
“그나저나 이유라도 말을 해줘야지… 그냥 지켜만 보라니. 이쪽 바닥에 몸 담은지 벌써 10년이 넘어가지만 이런 개 같은 명령은 처음이군.”
“나도 마찬가지야.”
영어로 나누는 대화.
아무래도 한국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곧장 손을 일명 루프라 불리는 자동차 지붕에 쑤셔 넣었다.
동시에.
끄그극. 끄그극.
그대로 쫙 양쪽으로 잡아 당겼다.
마치 종이 찢어지듯 양쪽으로 갈라진 자동차 지붕.
그러자 한눈에 정상적인 차량이 아닌 듯 이상한 장비들이 가득 들어있는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놀라다 못해 창백해진 표정을 짓고 있는 2명의 남자도.
우선 그들을 향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무슨 볼일이 있기에 알짱거리는 거야?”
“…….”
“…….”
하지만 대답이 없는 자들.
물론 딱히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얼어붙어 대답할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고.
그런데 그때 여전히 어버버하고 있는 두 남자가 아닌 한쪽에 마련된 기계 내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반갑습니다. 홍주영님. 저희는 절대 나쁜 의도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조만간에 찾아뵐 예정이었습니다. 그전에 조금이라도 상황 파악을 위한 관찰일 뿐 절대 위해를 가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에 대한 소개가 없는 상황.
가장 먼저 선행될 것이 그것이기에 곧장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정체는?”
[저는 미국 국가정보국 국장 앤더슨이라고 합니다.]
“음… 좋아. 그럼 내일 정확히 이 시간에 보도록 하지. 가급적 당신이 직접 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를 좋아하지 않아.”
[네. 알겠습니다.]
우선 그렇게 대화를 종료했다.
솔직히 미국이든 혹은 중동에 속한 나라든 조만간 찾아갈 생각이었으니까.
끝
외전 12. 홍주영 (11).
대한민국 내에서 한손에 꼽는 대기업인 명진.
그만큼 명진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계열사를 보유했고 그중에는 명진 정유라는 정유회사도 존재했다.
그리고 요즘 홍상만 회장을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이 바로 그 명진 정유였다.
명진 그룹 본사 회의실.
“그러니까 억류된 유조선 9척이 언제 풀려날지 기약이 없다고요?”
홍상만 회장의 물음에 명진 정유를 맡고 있는 양정철 사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물론 본사 차원에서 이란 정부에 다각도로 이의 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래와 대성 그 외 한일 에너지와 마석 칼텍스까지 한목소리로 정부와 청와대에 해결책 모색을 위한 촉구활동을 벌이고 있고요.”
원유를 정제하면 LPG, 휘발유, 등유, 경유, 윤활유는 물론이고 비료, 세제, 플라스틱, 아스팔트 등 수백 가지의 화학제품으로 만들 수 있기에 원유 수입은 단지 일개 회사의 이익을 넘어 국가, 사회의 유지를 위한 필수일 수밖에 없다.
즉, 넓게 보면 기간산업의 일종.
더욱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자연 재해도 그렇다고 기업 간의 이권 다툼도 아닌 이란이라는 거대 국가의 개입.
그렇기에 양정철 사장은 다른 정유회사들과 손을 붙잡고 정부와 함께 해결책을 찾고 있다는 언급을 했지만 홍상만 회장으로서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일 수밖에 없었다.
그 대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쓴소리를 내뱉지는 않았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그전부터 여러 번 있어왔고 그때마다 결국 해결책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세계가 아니, 정확히는 미국의 압력에 이란이 슬쩍 두 손을 드는 것을 빼고는.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더 뼈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는요?”
“현재 원유 하루 생산량이 직전의 70% 아래로 뚝 떨어진 상태입니다. 더욱이 또 다른 테러를 우려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서 다른 유전과 석유 시설에 군부대 투입 및 시설 점검을 하고 있기에… 당분간은 70%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복구는요?”
“그게 중동의 패자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이기에 시설 복구보다 복수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복구 시점은… 현재로선 가늠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젠장!”
평소 부하 직원들 앞에서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는 홍상만 회장이었지만 이번에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만큼 상황이 꼬여도 너무 꼬였으니까.
그러다.
“현재 명진 정유에서 보관중인 원유의 양은 어떻게 되나요?”
“지금처럼 원유를 돌린다면… 보름. 보름 뒤면 저장된 원유 전부가 바닥날 것으로 보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사우디아라비아지만 그전 이란에 나포된 9척의 유조선이 뼈아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유를 내려놓고 다시 실으러 가야할 배들이 저렇게 묶여 있으니…”
“…….”
양정철 사장에 이어 이홍산 부사장까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지만 어쨌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최악인 상황.
홍상만 회장은 그렇게 잠시 침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정리를 하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급은 현재 막힌 상태고 유일한 대안책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당분간 한국에 원유 수출을 할 수 없다는 거잖아요? 맞죠?”
“…….”
“…….”
“…….”
홍상만 회장의 질문에 임원들 전부 ‘네.’라는 대답 외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명진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원유 수입의 80% 이상이 중동산 원유였으니까.
우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북쪽이 막힌 이상 원유 수입을 위해서는 한 번에 대용량을 옮길 수 있는 배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렇다보니 가장 가깝고 원하는 만큼 수급이 가능한 중동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중동유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있을 일에 대비해 공급처를 다변화 하려 해도 추가될 운송비용은 물론이고 이미 각각의 원유 공급자가 정해졌기에 새로 입찰 경쟁을 위해 출혈이 필요했고.
더군다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그간 수십 년간 안정적이고 원활한 원유 거래를 해왔는데 필요한 원유양이 증가했다면 우리에게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오? 설마 우리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오?]
자신들에게 더더욱 종속되라는 협박 아닌 협박.
거기에 혹여나 다른 원유 공급처를 구하는 순간 원유 공급을 끊을 수 있다는 노골적인 협박에 홍상만 회장도 명진 정유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공급을 끊으면 그 많은 공급량을 새로 구할 곳은 전혀 없었으니까.
설사 새로운 원유 공급처를 구했다 해도 사우디아라비아 원유를 받는 다른 정유사를 이겨낼 방법이 없었고.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중동유는 가격이 쌌다.
가장 대표적인 원유인 미국 텍사스산 원유나 북해 브랜트유보다 질이 살짝 떨어졌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만큼 원유 정제 능력을 따졌을 때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곳이 바로 명진을 비롯한 한국의 정유회사들 이었다.
문제는 아무리 뛰어난 정제 능력을 갖췄다 해도 정제할 원유가 없다면 말짱 꽝이라는 것이지만.
여하튼 명진 그룹 본사에서 진행된 긴급 회외는 그렇게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진행이 됐다.
물론 이 일이 오직 명진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내에 존재하는 정유 회사가 명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인즉슨.
미래 그룹 본사.
“방법이 없다고?”
“네. 아무리 뚫으려 해도 뚫리지가 않았습니다. 더욱이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이번 혼란을 기회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호르무즈 해협에 추가적인 해군 전력을 투입해 전보다 더 완벽한 봉쇄를 시도 하고 있고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 남겨둔 끈을 통해 겨우 무함다드 반 살만 왕세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예멘의 후티 반군을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 이란이고 수니파의 수장격인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서는 시아파의 수장격인 이란의 이번 행동을 절대 가만히 넘기지 않을 기세입니다.”
결국 답이 없는 상황.
물론 명진, 대성, 구산을 제치고 어째서 대한민국 내에서 압도적인 1등 기업인지를 보여주듯 미래는 다른 곳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새롭게 유조선을 대여하기 하즈칼 선사와 트렌스 오션 선사에 문의한 결과 전보다 3배 이상의 가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 러시아, 유럽 등지에 원유를 구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이미 3달 전부터 원유 계약이 꽉 찬 상태라 단 한 방울의 원유도 구입할 수 없었습니다.”
“암거래 시장에서 나도는 원유는 직전에 비해 5배 이상 가격이 급등해 구입을 한다 하더라도 도저히 수익성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물량도 많지 않았고요.”
우선 그렇게 명진, 미래. 대성 그 외 한일 에너지와 마석 칼텍스 그리고 한국 정부가 분주히 움직였지만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
그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이란이 어서 빨리 봉쇄를 풀기를 바랄 뿐.
물론 한국과 비슷한 상황인 일본도 마찬가지긴 했다.
***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저벅저벅.
낮이면 비자 발급을 위해 시끌벅적했을 테지만 새벽이라 그런지 무척 조용한 주한 미국대사관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완전히 잠긴 철문 앞에 서자.
끼이익.
곧장 철문이 열렸고 자연스럽게 그 열린 철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이곳으로 나를 초대를 한 것은 미국이었으니까.
우선 그렇게 주한 미국대사관 안으로 들어서자 안내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자의 뒤를 따라 지하 1층, 2층, 3층까지 내려갔다.
그러자 일단의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가운데 있는 사람이 몇 발짝 걸어 나와 나에게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미국 국가정보국 국장 앤더슨입니다.”
“홍주영. 홍주영이다.”
아마 제대로 된 첫 만남을 가졌다면 나도 예의를 갖췄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과의 첫 만남은 야심한 새벽에 이뤄졌었다.
그것도 허락 없이 나와 내 주변을 정찰하는 것으로.
그래서 일부러 예의를 따지지 않았다.
미국 국가정보국 국장 앤더슨이라는 자도 그런 내 모습에 딱히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이들도 나에게 볼일이 있겠지만 나도 할 말이 있기에 앤더슨 국장의 뒤를 따라 또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한눈에 봐도 튼튼해 보이는 지하벙커로 보이는 공간으로 들어섰고 그제야 앤더슨 국장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을 수 있었다.
우선 그 상황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위성인가?”
꽁꽁 감출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드러낼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를 확인했다면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위성.
그리고 그런 내 질문에.
“맞습니다. 물론 그 움직임을 포착한 것은 아주 우연이었고요.”
“그렇군.”
앤더슨 국장의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대충 예상한 답변이기에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고.
그 후 앤더슨 국장이라는 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도중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 입장에서 가장 궁금해 할 것은 나란 존재, 나의 능력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나를 감시한 거고.
그런데 그에 관해서는 일절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만큼 시답잖은 것들로 이야기가 진행이 됐다.
물론 상대방이 그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는데 굳이 내가 먼저 말을 할 필요는 없기에 나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요새 명진 그룹 더 나아가 한국이 꽤나 골치가 아플 것 같습니다.”
“그런가?”
우선 두루뭉술하게 답변을 했다.
그러자.
“한국의 원유는 중동유가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저런 테러를 당했으니…”
우선 나도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집에 오면 아빠와 형이 항상 고민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수시로 외부와 연락을 취했고.
물론 미국은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하지만 전과 다른 예외라면 나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직접 중동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푸는 거니까.
그렇게 되면 굳이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라 최소한 쿠웨이트, 바레인, 카틀, 아랍에미리트를 통해 원유 공급을 할 수 있고.
그런데 뜬금없이 등장한 미국.
당연히 그것까지는 상관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이 지금 오판을 한다는 것이었다.
탕. 탕.
우선 발을 들어 내가 밟고 있는 바닥을 내리쳤다.
길게 울리는 소리.
그것을 확인하고 곧장 앤더슨 국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마 아닐 거야? 이런 사방이 완전히 막힌 공간에 국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는 자가 올 리가 없지. 어떻게 확신 하냐고? 지금껏 내가 봐왔던 자들이 다 그랬거든.”
“…….”
말이 없는 자신을 앤더슨 국장이라고 소개한 자.
“폭탄? 아, 미국이라면 핵폭탄도 가능하겠군. 뭐…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냐. 뜬금없이 등장한 내 존재가 썩 달갑지는 않을 테니까.”
우선 그 말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완벽히 막힌 벽쪽에 다가가 그 벽을 향해 손을 집어넣었다.
찢어발길 요량으로.
하지만.
출렁.
벽에 내 손이 박혀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내 손이 닿은 지점을 시작으로 벽 전체가 살짝 밀려날 뿐.
“호오? 이건 뭐야? 그냥 벽이 아닌데?”
“…절대 뚫리지 않을 것이다. 이 안에서 핵이 터지더라도.”
쾅! 쾅!
그 말에 이번에는 주먹을 쥐어 벽을 후려쳤다.
하지만 전보다 큰 물결이 일며 출렁출렁 거릴 뿐 역시나 흠집도 나지 않았다.
“와… 이건 인정. 솔직히 미국. 미국 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이런 것을 만들 정도라면 인정을 할 수밖에 없지.”
결코 장난으로 벽을 후려친 것이 아니었다.
진심을 다해 후려쳤다.
주먹으로 치다가 파괴력을 한곳에 몰아주기 위해 손가락을 쫙 펴서 그대로 내질러도 봤고.
그리고 그때.
“미국에 협조해라. 미국에 협조하면 이곳을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홍주영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주겠다. 미국은 그럴 힘이 있다!”
“그렇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면 가능하겠지. 그런데 말이야… 설마 고작 이런 걸로 나를 정말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스으윽.
그 말과 동시에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바로 붉은색 아지랑이를 뿜어대는 15강화 얼음황제 수호검.
“…….”
상대는 갑자기 내가 검을 꺼내들자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무시하고 다시 벽을 향해 돌아서서 그대로 15강화 얼음황제 수호검을 내질렀다.
그러자.
쑤욱.
그대로 파고든 15강화 얼음황제 수호검.
동시에.
파사사삭.
그대로 벽면 일부를 얼려버렸다.
우선 개의치 않고 검을 휘둘러 큼지막한 사각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각형을 발로 차자.
쿵.
그대로 입구가 만들어졌다.
동시에 다시 뒤돌아서서 그를 향해 살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뚫렸네?”
끝
외전 13. 홍주영 (12).
주한 미국대사관.
굳이 뻥 뚫린 지하벙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분명 나도 할 말이 있어서 여기까지 따라왔고 아직 그 말을 단 1도 꺼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걱정 마. 참을성은 꽤 많으니까. 이래 봬도 내가 산전수전은 다 겪어본 몸이거든.”
부들부들.
나름대로 앤더슨 국장 아니, 앤더슨 국장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자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딱히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지는 못한 것 같았다.
여전히 두려움을 한껏 집어삼킴 표정은 물론이고 부들부들 떠는 몸은 변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워싱턴에 위치한 백악관이나 펜타곤 같은 곳에서 지금 이 장면을 보고 있겠지? 윌리엄 대통령이든 아니면 미국을 대표하는 권력자들이 말이야.”
“…….”
내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그건 당연해도 너무 당연한 일이기에 딱히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하게 말을 이을 뿐.
“우선 이해해. 원래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것에서 강력한 두려움을 느끼는 법이니까. 그래서 내가 보여줄게. 앎으로 인한 두려움이 모름으로 인한 두려움보다 얼마나 더 강력한지 말이야.”
분명 경고를 내 눈앞에 있는 앤더슨 국장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자에게 하고 있지만 지금 이 장면을 보고 있는 자들은 전부 알 것이다.
내가 누구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지.
그래서.
“북극. 난 지금 당장 북극으로 갈 거야. 그러니까 잘 봐둬. 못 봐서 지금처럼 또다시 잘못된 선택을 하면 그때는… 어쩌면 더 이상 미국이라는 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국가가 될지 모르니까. 아니, 존재하지 않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
우선 그렇게 말을 내뱉고 지하 벙커를 빠져 나왔다.
괜히 여기서 지지부진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확실하게 누가 갑의 위치에 있는지 보여주고 나누는 대화가 더 유익할 테니까.
당연히 유익한 쪽은 나고.
***
그 시각 미국 백악관 지하 벙커.
“핵폭탄은 물론이고 지구를 멸망으로 치닫게 할 소행성이 들이닥쳐도 멀쩡할 거라던 신소재가 칼질 몇 번에 종잇장처럼 찢겨져 버렸군요.”
“…….”
“…….”
“…….”
윌리엄 대통령의 말에 백악관 지하 벙커에 자리한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특히나 이 계획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진행한 진짜 미국 국가정보국 앤더슨 국장은 더더욱.
그리고 그 침묵이 감도는 와중에 윌리엄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북극을 비추는 위성은 확인을 끝냈겠죠?”
“네? 네네! 홍주영이 북극을 언급한 순간 주변 위성 27개를 북극 이곳저곳에 펼쳐놨습니다. 홍주영이 무슨 짓을 해도 곧장 파악이 가능합니다.”
“좋아요. 그럼 지켜보도록 하죠. 여차하면 미국을 지구 내에서 지워버린다고 말한 자의 능력을요.”
우선 그렇게 윌리엄 대통령의 말에 따라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스크린에서 북극이 통째로 모습을 드러냈고 지하 벙커에 자리 잡은 모두는 레이저를 쏘듯 뚫어지게 그 스크린을 쳐다봤다.
브라질에서 시에라리온까지 거대한 대서양을 30초 안쪽으로 건너는 홍주영의 능력이라면 대한민국 서울에서 북극까지도 몇 십초가 걸리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때.
쿠우우웅.
어떤 확실한 지명이 아닌 말 그대로 지구의 북극점 근처를 일컫는 북극.
그래서 시기에 따라 그리고 개인에 따라 그 범위를 제각각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북극해를 포함해 러시아의 일부분, 시베리아, 알레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꽤 넓은 범위를 북극이라 불렀다.
물론 그 와중에도 북극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어지간한 대륙 크기의 빙하였고.
하지만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빙하.
그만큼 더 이상 쇄빙선이 없어도, 굳이 여름 절기가 아니어도 수시로 북극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변한 것이 지금의 북극이었다.
그리고 그 빙하 중에 과거에는 북극에 존재하는 빙하 중에 가장 거대했지만 지금은 거의 녹아 유명무실해진 빅토리아 빙하지대라 불리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그 빅토리아 빙하 지대가 점차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쿠구국. 쿠구국.
빅토리아 빙하지대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빙하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더러는 빅토리아 빙하를 들어 올리며 그 밑에 거대한 빙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지금 제 눈에 캘리포니아주 만한 크기의 빙하가 새로 생겨나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저만 그렇게 보이나요?”
“…….”
“…….”
“…….”
윌리엄 대통령의 말에 또다시 백악관 지하 벙커는 침묵에 쌓였다.
그들도 눈이 있기에 마치 신이 지구에 새로운 빙하기를 만들고자 하는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빅토리아 빙하 지대 주변을 갑자기 생성된 빙하의 두께가 처음에는 100미터로 관측되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그 두께가 증가하고 있고 방금 전에는 150미터를 돌파했습니다.”
넓이도 아닌 두께.
아니, 넓이는 이미 캘리포니아주 이상.
그래서 모두들 몸을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다.
저것이 북극이 아닌 만약 미국 상공에서 그러니까 워싱턴이나 뉴욕, 시카고, 텍사스 같은 주에 떨어진다면 말 그대로 재앙일 것이 분명하니까.
태풍도 지진도 해일도 토네이도도 아닌 그전에 접하지 못했던 완전 새로운 재앙.
그렇기에 침묵도 잠시.
백악관 지하 벙커는 재빨리 움직였다.
그 위력을 눈으로 목격했고 그만큼 대응 전략도 수정을 해야 했으니까.
***
서울 청담동 집.
“후. 괜히 사서 고생을 했네.”
북극에 어마어마한 빙하를 되돌려 준 것.
솔직히 손가락 까딱하는 것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고생을 했다.
대놓고 아이스 필드나 블리자드 같은 것을 사용하면 손쉽겠지만 그 순간 북극에 자리 잡은 모든 것이 얼어버리고 말테니까.
북극곰을 비롯해 북극 여우, 순록 거기에 몇몇 북극에 자리 잡은 과학 단지에 있는 사람들까지 전부.
그만큼 여차저차 북극에 북극다움을 선사하기 위한 행동이 북극을 생명체가 전부 사라진 곳으로 만들 생각은 없기에 정말로 고생을 했다.
“그럼 이제… 하루 정도 시간을 줘야겠지?”
분명 오만가지 생각이 들것이다.
미국이라면 그 어마어마한 양의 빙하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 않을 테니까.
우선 그렇게 결정하고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직 아침 해가 모습을 드러내려면 시간이 꽤 남았으니까.
***
다음날 아침.
홍상만 회장은 신문을 들쳐보며 텔레비전에 흘러나오는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테러는 요즘 모든 뉴스에서 원픽을 다루는 내용이니까.
물론 홍상만 회장으로써는 이미 전부 아는 내용.
그만큼 뉴스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밖에 없는 위치가 바로 홍상만 회장이 자리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뉴스에 나오는 내용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분명 생각지도 못한 단서를 얻는 곳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때.
스윽.
홍상만 회장은 신문에서 눈을 떼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텔레비전에는 예상했던 내용이 아니라 전혀 다른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보이십니까? 이곳은 북극의 거대 빙하 단지 중의 하나인 빅토리아 빙하 단지입니다. 물론 북극이고 그만큼 거대 빙하가 많이 존재하기에 이게 왜 놀랄 일이냐 싶겠지만 지금 화면 오른쪽의 사진을 보시면…]
홍상만 회장은 앵커의 말대로 오른쪽에 생성된 사진을 봤다.
아주 적은 양의 빙하.
거의 대부분이 푸른 바다였다.
딱히 북극이라는 설명이 없더라면 북극인지도 모를 수준.
그리고 그때.
[오른쪽에 보이시는 사진이 바로 이곳 빅토리아 빙하 단지입니다. 즉, 지금 보시는 곳과 같은 위치입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어제 찍힌 것이고요. 그러니까 정확히 하룻밤사이에 이곳 북극에 한반도보다 더 큰 빙하가 생성이 됐습니다.]
“음…”
홍상만 회장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오늘이 만우절인가 싶은 생각도 했고.
그만큼 두 곳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룻밤에 변했다고 보기에는 말 그대로 얼토당토않은 수준.
[현재 여러 기상학자들은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이라는 말 외에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 있는 중입니다. 그만큼 외계인의 짓이라든지 혹은 지구의 분노라든지 여러 말이 나오고 있지만 답은 오리무중인 상태입니다.]
홍상만 회장은 차라리 지구의 분노가 더 확률이 높다는 생각을 하며 시선을 다시 신문으로 돌렸다.
분명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원유 수급이니까.
‘청와대에서도 원유 수급만 해오면 일정부분 보조를 해준다고 하는데… 구할 곳이 없으니. 이것 참.’
원유가 없으면 명진 정유가 가동을 멈추는 것은 당연했지만 대한민국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당장 자동차부터.
여하튼 오늘도 홍상만 회장은 원유 걱정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제 남은 원유가 열흘치도 안됐으니까.
***
텔레비전에서 북극에 갑작스레 생겨난 엄청난 빙하도 그 외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 값으로 차량 운행을 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떠들썩하게 터져 나왔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내 신분은 고등학생이기에 학교에 갔다.
그리고 정확히 1교시가 끝날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번호 없는 전화.
하지만 상관없기에 그 전화를 받았고 그러자 곧장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그것도 영어로.
[홍주영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윌리엄 대통령 특별 보좌관으로…] “어제와 같은 시간에 대사관으로 가겠다. 그리고 실수를 눈감아 주는 것은 딱 한번 뿐이야. 두 번은 없어.”
상대방의 말을 자르고 내 할 말만 하고 그렇게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고작 전화통화를 하려고 어제 그 수고를 한 것은 아니니까.
우선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어제와 같은 새벽에 조심스럽게 집을 나섰다.
도중에.
“그럼 집을 부탁해.”
꿈틀꿈틀.
전보다 조금 더 살이 오른 뿌리.
이 뿌리 덕분에 조금 더 과감하게 움직일 자신이 생겼다.
뿌리라면 그 어떤 위험에서도 내 가족을 지킬 능력은 됐으니까.
여하튼 그렇게 집을 나서 종로구에 위치한 주한 미국대사관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철문 앞에 이르자.
끼이익.
어제처럼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런데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입구부터 나를 맞이하는 자들이 꽤나 많았다.
동시에 그 일단의 무리에서 한명이 걸어 나오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홍주영님. 국가정보국 앤더슨 국장입니다.”
“호오. 그대가 앤더슨 국장이군. 이번에는 진짜였으면 좋겠어. 난 가짜를 썩 좋아하지 않거든.”
“물론입니다. 결례는 한번이면 족하니까요.”
“그렇지. 실수는 한번이면 족하지. 그래서 실수인거고.”
내가 했던 말을 받아친 앤더슨 국장을 향해 그대로 되받아 치고 곧장 주한 미국 대사관 안으로 이동했다.
역시나 그때와 다른 점이었다면 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올라갔다는 점.
그리고 2층에 마련된 접견실 안으로 움직이자.
“반갑습니다. 홍주영님.”
드디어 얼굴을 아는 자를 만났다.
바로 미국의 윌리엄 대통령.
그가 2층 접결신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그 모습에.
“그래. 반갑군. 솔직히 안 왔으면 섭섭할 뻔 했거든.”
“하하하. 저희의 무례함을 넓은 아량으로 넘겨주셨는데 와야지요.”
“좋은 자세군.”
어쨌든 그렇게 악수를 나누고 이들이 마련한 자리에 앉았다.
***
대화는 대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이 됐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대화는 회사로 치면 부장과 그 부하직원의 대화로 정의할 수 있었다.
부장이 뭔 소리만 하면 부하 직원은 빵빵 웃고 리액션을 해주는 그런 대화.
당연히 부장은 나고.
하지만 이런 시답잖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니기에 곧장 본론을 꺼냈다.
어제 만남에서 이들도 직접 그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고.
바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풀 수 있지? 물론 나도 할 수는 있는데… 이게 귀찮거든.”
당연히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있는 이란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시에라리온이나 지금처럼 무력시위를 또 해야 한다는 거고.
죄다 다 죽일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내 말에.
“가능하긴 합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사전에 저희와 이란이 입을 맞추고 벌이는 짓이니까요.”
“호오.”
이란이 말하는 것은 한결 같았다.
바로 악의 축이자 깡패 같은 미국 때문에 이란의 경제가 무너졌다고.
이란은 그런 악의 축이자 깡패인 미국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것도.
그런데 사전에 서로 입을 맞춘다는 윌리엄 대통령.
그리고 그 말인즉슨.
“그럼 더 쉽겠군.”
전 세계를 상대로 그런 쇼를 벌인다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원래 그런 거니까.
하지만 그 뒤에 들린 대답에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분명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푸는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풀 수가 없습니다.”
끝
외전 14. 홍주영 (13).
분명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푸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문제라면 가능은 한데 이번에는 풀어줄 수 없다는 말이 뒤따랐다는 것이고.
즉, 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
“…….”
순간 내 경고가 약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말을 할 수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스으윽.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거대한 빙하가 모습을 드러내야 할 곳은 북극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물론 그전에 이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는 것?
당연히 하긴 할 것이다.
다만 지금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충분히 후회를 하고 난 다음에.
그런데 그때.
“싸우스(south) 코리아에는 이런 말이 있더군요. 한국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라고요. 물론 저는 한국 사람이 아니지만 홍주영님은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자주 들어봤을 한국 사람 아니겠습니까?”
“크크크.”
윌리엄 대통령의 그 말에 웃음을 토해냈다.
분명 그런 말이 있는 것은 알지만 나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었으니까.
그만큼 어렸을 때는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쥐구멍에 숨어 살았고 그다음에는 내 앞에서 자신의 할 말을 끝까지 하는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자가 한 국가의 대통령일지라도.
하지만.
“좋아. 방금 미국이라는 국가의 존망을 걸고 한 농담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지 않으면 그 농담이 평생의 마지막 농담이 될 테니까.”
우선 그렇게 자리에 다시 앉았고 내 마지막 농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잘 통했는지 윌리엄 대통령이 곧장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이란은 꽤 특수한 국가입니다. 최고지도자라는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존재가 있죠. 물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있습니다. 이란은 분명 대통령제를 갖고 있는 나라니까요. 하지만 그 선출된 대통령에게 인준권과 해임권마저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최고지도자라는 자입니
다. 그만큼 몇몇 국가에 존재하는 왕족이나 황족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권한을 가졌다고 봐도 무방하고요. 최고지도자는 자리는 종신직이기도 하니까요.”
“…….”
왜 이리 사설이 기냐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인상을 살짝 찌푸릴 뿐.
그러자.
“흠. 흠. 그 최고지도자와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는 이란의 열악한 경제 사정보다 내부 단속을 더 우선시하고 싶었습니다. 즉, 외부에 강력한 적을 만들고 싶어 했고 저희 미국이 그것을 만들어줬습니다.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는 공동의 강력한 적만큼 훌륭한 소재도
없으니까요.”
“그럼 너희는?”
“저희는… 중국의 압박입니다. 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가 그렇듯이 중국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상당량의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니까요.”
“쯧쯧쯧.”
짧게 혀를 찼다.
물론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분명 나도 명진의 직계이고 명진이 대한민국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기업이 되기까지의 행동 전부가 정의롭지 않다는 것도 또한 법과 규칙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도 아니까.
하지만.
“대충 상황은 알겠는데 설마 내가 거기에 납득을 하고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
미국과 이란의 사정?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물론입니다. 그래서 준비도 해놨고요.”
***
며칠 뒤.
대성 그룹 본사.
“회장님. 말씀하신대로 일주일 뒤 유조선 3척 분량의 원유 선물 상품을 구입하긴 했는데… 아무리 청와대가 일정부분 보조를 해준다지만 기존 가격의 5배를 주고 사는 것은 손실이 극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 원유를 구할 데가 없자 대성이 눈을 돌린 것은 원유 선물 거래 시장이었다.
하지만 문제라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여러 사건들로 인해 직전보다 가격이 곱절의 곱절로 폭등했다는 것.
더욱이 인도일이 가까운 원유일수록 그 가격은 곱절의 곱절보다 더 뛰었다.
그래서 대성 내부적으로도 반대 의견이 많았고.
그러나.
“미래와 명진은?”
딱히 질문의 요점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김정한 회장의 그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기에 장인수 비서실장이 곧장 입을 열었다.
“선물 시장에 미래와 명진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일 에너지와 마석 칼텍스가 기웃기웃 거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씩이지만 원유 선물 상품을 구입도 하는 것 같았고요.”
“음…”
장인수 비서실장의 말에 김정한 회장이 잠시 손에 턱을 기대며 침음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보름 내에 존재하는 거래 가능한 원유 선물은 전부 매입을 한다.”
“네?”
“회장님!”
“자칫 엄청난 손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맞습니다. 더욱이 이번에 구입한 원유 선물들은 저희가 직접 원유를 받으러 유럽으로 가야 합니다. 그만큼 운송비용도 비용이지만 현재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조선을 보유한 선사들이 배짱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걸 감안한다면 손해는 단순히 원유 가격 그 이상이 될 수밖
에 없습니다.”
김정한 회장의 말에 회의에 참역한 중역들은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분명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미래, 대성, 명진, 한일 에너지, 마석 칼텍스라는 5개의 정유 회사 내에서 대성만 원유를 확보한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자 국민 모두에게 대성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킬 기회이기는 했지만 들어가는 비용이 많아도 너무 많았으니까.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재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김정한 회장의 질문.
“…….”
“…….”
“…….”
그러나 회의에 중역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몰라서?
아니, 모르지 않았다.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이 중역 회의 전에 직접 사우디에 파견된 직원으로부터 김정한 회장과 함께 보고를 받기도 했고.
그만큼 여태 복구에는 단 1도 손을 대지 않은 상황.
즉, 언제 다시 사우디아라비아가 그전의 원유 생산량을 복구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때 김정한 회장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란의 호즈무즈 해협 봉쇄는?”
“…….”
“…….”
“…….”
역시나 이 질문에도 중역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이것도 사전에 김정한 회장과 같이 보고를 받았으니까.
이란은 전보다 더 많은 함대와 해군을 동원했고 그것을 억제할 유일한 국가인 미국이 뒷짐을 지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원유 실물 가격은 어떻게 되고 있지?”
김정한 회장의 3번째 질문.
다행이 3번째 질문에는 답을 하는 자가 있었다.
대성 정유의 김만수 사장이.
“가파르게 상승중에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테러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직전과 비교하면 벌써 2배 가까이 상승을 했고… 여전히 더 상승중입니다.”
“좋아. 나는 지금 배팅을 하는 거야. 앞으로 지금의 상황이 더 장기화 된다는 쪽으로. 혹여나 반대로 상황이 급반전 될 거라고 생각되는 자가 있으면 손을 들어봐.”
“…….”
“…….”
“…….”
김정한 회장의 말에 손을 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귀가 있고 눈이 있기에 듣고 볼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아무도 손을 드는 자가 없는 것을 확인한 김정한 회장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빠르게 움직이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성 그룹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원유 확보에 들어갔다.
분명 이런저런 이유를 대도 지금의 가격으로 원유를 사들이는 것은 말 그대로 미친 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원유를 확보함으로써 미래, 명진, 한일 에너지, 마석 칼텍스를 제치고 싶어 하는 김정한 회장의 의중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
그 시각 미래 그룹 본사.
“그러니까… 명진의 막내아들이 너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네.”
“그 애 이름이…”
“홍주영요.”
연정환 회장은 연보라의 그 말에 드디어 홍주영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해도 무척이나 조용했던 아이.
그러다.
“갑자기 모든 과목 만점을 받았다는 녀석이지?”
“네. 맞아요.”
“허허.”
연정환 회장은 잠시 허탈한 웃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손녀인 연보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홍주영이라는 그 아이가 곧 대한민국에 어마어마한 원유가 들어올 것이고 미래에도 그 원유를 정상적인 가격에 공급을 해줄 것이니 괜히 헛돈을 쓰지 말라고 했다고?”
“네.”
“…….”
연정환 회장은 혹여나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지만 똑같은 대답이 들려오자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연정환 회장은 자신의 손녀인 연보라를 향해 호통을 치지는 않았다.
손녀딸인 연보라가 얼마나 영특한 아이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때 연보라가 연정환 회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물론 믿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요. 아니, 이건 믿고 안 믿고의 수준이 아니라 허황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저도 고민을 했고요. 하지만…”
“알았다.”
“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았다. 어차피 대성처럼 헛돈을 쓸 생각은 없다.”
당연하지만 연정환 회장은 현 대성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솔직히 대성보다 먼저 선물 시장 쪽에 손을 뻗었고.
하지만 대성이 한 선택을 미래는 하지 않았다.
거기는 말 그대로 날강도들뿐이었으니까.
더욱이.
‘이때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숨통을 틔워줄만한 대비책은 마련을 해놨고.’
우선 그렇게 연정환 회장은 연보라를 내보냈다.
그리고 홍주영에 대한 곱씹었다.
***
이틀 뒤.
청와대 외교 안보 수석실.
“그러니까 미국 상무부 장관과 내무부의 차관 거기에 윌리엄 대통령 특별 상임 보좌관이 대한민국에 들어온다고요?”
“네! 방금 외교부를 통해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어… 언제요?”
“내일 당장요!”
쾅.
대통령비서실 소속의 외교 안보 수석은 휘하 사무관이 내뱉은 말에 처음에는 놀랐고 마지막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 일어났고 그 순간 앉고 있던 의자가 뒤로 쫙 밀려서 벽에 강하게 부딪쳤고.
그만큼 미국 상무부 장관과 내무부 차관은 절대 낮은 자리가 아니었고 특히나 윌리엄 대통령의 특별 상임 보좌관이라고 하면 현재 백악관 내에서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가진 토마스 타일러란 자로 윌리엄 대통령의 복심을 떠나 분신이라 불리는 자였다.
그자의 방문 자체가 윌리엄 대통령의 방문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왜… 왜?”
그런 자들이 곧장 내일 대한민국에 들어온다는 말에 이명산 외교 안보 수석이 자신도 모르게 떠듬떠듬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게… 외교부 측에서도 자세한 설명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음…”
이명산 외교 안보 수석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대통령에게 미국 상무부 장관과 재무부 차관 거기에 토마스 타일러라는 윌리엄 대통령 특별 상임 보좌관이 내일 당장 대한민국에 방문을 하는데 왜 방문을 하는지 모른다고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 이명산 외교 안보 수석은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분명 상무부 장관은 미국의 국제 무역과 경제 성장을 맡는 위치이고 내무부는 에너지부와 살짝 겹치긴 하지만 목재와 석유 생산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자원을 관리하는 부서니까.
그리고 그 둘이 합쳐지면 현재 대한민국의 발등에 떨어진 불인 원유 수출이라는 것이 자동으로 연상이 됐고.
거기에 토마스 타일러 특별 상임 보좌관까지 연결시키면 이번의 움직임이 윌리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거라는 뜻.
“비… 비켜!”
이명산 외교 안보 수석은 곧장 움직였다.
분명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미국이 싼 가격에 원유를 내놓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회를 틈탄 날강도 같은 놈들보다는 나을 테니까.
물론.
‘그나저나 그렇게 연락을 취하고 별 난리를 쳐도 꿈쩍도 하지 않던 미국이 어째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거지?’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포지션을 바꾼 미국.
그래서 청와대도 무진장 애를 썼다.
당장 휘발유 가격의 급등은 국민들의 원성을 불러 일으켰고 청와대로는 엄청난 압박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다만 미국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뿐.
더욱이 미국에 매달리는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곳이 있었다.
바로 일본.
그래서 청와대로서는 더욱더 긴장을 했다.
만약 일본이 미국에서 원유를 가져오는데 성공하고 대한민국이 실패를 한다면 그것만큼 국민들에게 현 정부가 무능한 정부라고 낙인찍힐 확실한 명분을 주게 되는 것은 없었으니까.
그로인한 지지율 하락은 말할 것도 없었고.
여하튼 청와대는 이명산 외교 안보 수석이 가져온 내용으로 발칵 뒤집혔다.
당연히 곧장 매스컴에도 흘렸다.
이것만큼 지지율을 상승시킬 소스는 없었으니까.
그 후 그 내용이 뉴스를 타면서 대한민국의 5대 정유 회사라 할 수 있는 미래, 명진, 대성, 한일 에너지, 마석 칼텍스는 긴장 아닌 긴장을 했다.
특히나 대성은 더더욱.
이미 엄청난 돈을 들여 최소 5배 이상 뻥튀기된 가격의 원유 선물을 구입한 상태였으니까.
그것을 대한민국으로 들여올 것을 감안하면 비용은 더더욱 증가할 테고.
우선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미국 측 경제 사절단이 모습을 드러낼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끝
외전 15. 홍주영 (14).
인천 국제공항.
팡. 팡. 팡. 팡.
엄청난 플레쉬가 터졌다.
언론에 알려진 대로 미국 상무부 장관과 내무부 차관 거기에 토마스 타일러라는 미국 대통령 특별 상임 보좌관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그리고 그때 그들에 이어 모습을 드러낸 자들.
기자 한명이 그들을 알아보고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저자는… 엑슨모빌(Exxon Mobil) 이안 부사장이잖아?”
“옆에는 누구더라… 그 셰브런(Chevron)의…”
로치 더 셸, 토탈, BP 등과 함께 세계 최고의 정유회사로 손꼽히는 엑슨모빌.
거기에 정유 업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셰일 혁명을 감안하면 조만간 다섯 손가락 안에 진입할 것이 유력한 셰브런측의 인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기자들은 웅성웅성 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충 예상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확실치 않았던 대한민국의 입국 목적이 이로써 확실해졌으니까.
그리고 그때 모습을 드러낸 자들이 있었다.
바로 외교부에 속한 자들.
“환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에스코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국가의 원수도 아니고 사전에 의견 조율도 없이 일방적으로 방문을 통보했기에 성대한 환영식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청와대와 국회는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였다.
그만큼 원유 수급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으니까.
하지만.
“죄송합니다. 우선 먼저 선약이 된 곳이 있기에 청와대는 후에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임상수 외교부 장관은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과거 스쳐지나가면서 마주한 적이 있던 해리슨 상무부 장관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백악관과 상무부, 내무부 거기에 미국을 넘어 세계에서 손에 꼽는 정유회사 인사들이 함께 와놓고서 청와대보다 먼저 방문할 곳이 있다는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임상수 외교부 장관은 더 캐묻지 않았다.
혹여나 여기서 꼬치꼬치 캐묻다 불쾌감을 준다면 청와대와 국회를 떠나 국민들의 원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여하튼 임상수 외교부 장관을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미국의 사절단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당장 청와대에 연락해. 그리고 저들이 어디로 움직이는 분마다 아니, 초마다 보고를 하고!”
“네. 알겠습니다.”
물론 임상수 외교부 장관의 고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임상수 장관님. 어째서 미국의 경제 사절단과 함께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까?”
“청와대로 같이 이동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미국 경제 사절단이 우선 호텔로 이동하는 겁니까?”
“역시 원유 해결을 위해 한국에 방문한 겁니까?”
“그간 미국과 엄청 가깝게 지낸 일본이 해내지 못한 일을 현 대한민국 정권이 해냈다고 네티즌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지지율까지 상승중이고요. 그에 대해 정부는 어떤 입장인가요?”
“원유는 충분히 들여올 수 있는 겁니까? 당장 2배 가까이 오른 휘발유 가격이 상승세를 멈춘다고 봐도 됩니까?”
임상수 외교부 장관은 자신을 향해 온갖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혹여 미국의 경제 사절단과 함께 움직였다면 그들을 등에 업고 뭐라도 하겠지만 현재는 그들마저 놓친 상태니까.
그래서.
“현 정부는 이번 석유파동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번 미국 경제 사절단의 방문 또한 그런 노력의 일환이고요. 아직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상수 외교부 장관은 그 말을 끝으로 얼른 공항을 빠져나왔다.
괜히 더 자리를 지켜봤자 곤혹스런 일만 더 늘어날 테니까.
***
명진 그룹 본사.
“…….”
홍상만 회장은 자신의 막내아들을 무섭게 노려봤다.
아마 처음.
하지만.
홀짝. 홀짝.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편하게 소파에 등을 기대며 차를 들이키는 막내아들을 보며 표정을 풀었다.
통하지 않는 대상에게 기운을 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다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저들이 지금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고?”
저들이라 하면 당연히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케이블까지 연신 떠들어 대고 있는 미국의 경제 사절단.
그리고 홍상만 회장은 자신의 막내아들에게 똑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네.”
“왜?”
“제가 불렀으니까요.”
“…….”
홍상만 회장은 또다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와중에 낭랑한 자신의 막내아들 목소리를 계속 들을 수는 있었다.
“일찍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제가 재촉을 하긴 했는데 아시다시피 미국이라는 국가는 덩치가 어마어마하잖아요. 그만큼 거쳐야 하는 단계도 많고요. 더욱이 새롭게 거래되는 원유가 1배럴, 2배럴도 아니고 유조선 수십 척 분량이다 보니까 시간이 좀 걸렸고 저도 얼추 정리가 되
면 말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됐네요.”
“…….”
“우선 급하게 실무자를 준비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들이 가져오는 제안을 검토하고 답변은 곧 준다고 하면 되니까요. 물론 명진에 해가 되는 제안은 아니니까 그대로 수락을 해도 되지만 혹시 모르니까 실무자들에게 검토를 시켜봐 주세요. 변경할 부분이 있으면 가감 없이 미국 측에 말
을 하고요. 읏차.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아빠.”
“…….”
홍상만 회장은 그 말을 끝으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회장실을 빠져 나가는 자신의 막내아들을 붙잡지 못했다.
그러다 아까부터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석인수 실장을 향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오태석이… 지금 어디에 있다고 했지?”
당연히 홍상만 회장도 오태석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진즉에 보고를 받았으니까.
다음 세대의 명진을 위한 엘리트 코스를 밟던 직원이기도 했고.
“시에라리온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그 친구가 명진 비서실의 엘리트 직원 7명을 빼내가기도 했고요. 물론 막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영군의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이는 자로 변했으니까요.”
“거기서 뭐하는데?”
“꽤 여러 가지를 하고 있는데… 듣기로는 드비어스에서 엄청 신경을 쏟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드이버스면 다이아몬드?”
“네.”
“…….”
그 말에 홍상만 회장은 거실에 새로 놓인 큼지막한 어항이 떠올랐다.
집사 말로는 막내아들이 들여놓았다는 어항.
그런데 그 어항 바닥에 모래 대신 깔린 것이 있었다.
바로 무수히 많은 반짝이는 것들.
홍상만 회장은 순간 그것이 다이아몬드인가? 라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절레절레.
곧장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족히 수백억 어쩌면 그 이상 될 양이었으니까.
그 정도의 다이아몬드를 단지 어항을 꾸미기 위해 바닥에 까는 무식한 자는 있을 리가 없고.
하지만.
‘정말로 저 미국 경제 사절단이 명진에 온다면…’
우선 생각을 거기까지 정리한 홍상만 회장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저들을 맞이할 준비해.”
“…네.”
그렇게 홍상만 회장은 여전히 반신반의했지만 미국의 경제 사절단이 이쪽으로 오는 것을 상정하고 대비를 했다.
***
그 시각 청와대.
“도대체 어디로 움직이는 거야? 저 방향에는 뭐가 있는데?”
“현재 영종대교로 인천 국제공항을 빠져나가는 중이라 정확한 목적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서울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젠장! 끝까지 주시해.”
“네. 알겠습니다.”
그 시각 미래 그룹.
“청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네. 청와대에서 임상수 외교부 장관을 파견했는데 미국 측이 에스코트를 거부하고 따로 움직였습니다.”
“그럼 목적지가 어딘데? 굳이 청와대가 아니라 호텔이더라도 에스코트를 거부할 이유는 없잖아?”
“그게… 현재 영종대교도 빠져나오지 않은 상태라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음. 청와대가 아니라면…”
유성엽 실장은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무려 상무부 장관과 내무부 차관 거기에 윌리엄 대통령의 분신이라 불리는 자가 방문했다.
거기에 세계 정유 업계에서 손에 꼽는 두 곳의 대표까지.
어마어마한 덩치.
유성엽 실장이 봤을 때 그런 덩치를 대한민국에 불러들일 능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청와대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청와대의 에스코트를 거부한다?
그 뜻은 딱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사전에 청와대와 교감이 없었다는 것.
‘그럼 누구지? 누가 저들을 대한민국에 불러들인 거지? 그게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에 있다고?’
미래조차 불가능한 일.
그래서 그런 일을 한곳이 대한민국 내에 있다는 사실에 유성엽 실장은 살짝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 대성 그룹.
“젠장! 어째서 미국이 움직인 건데!”
이미 어마어마한 양의 원유 선물을 사들인 대성.
거기에 무려 평소 가격의 5배의 웃돈을 주고 대여한 유조선까지.
즉, 대성 입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시설 테러와 이란의 호무르주 해협 봉쇄는 더더욱 장기화 되어야 했다.
그런 상황을 상정하고 엄청난 배팅을 했으니까.
하지만.
“젠장! 청와대의 끈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든 알아냈어야지! 그러라고 돈을 쳐먹인 것 아냐!”
“그게… 청와대도 어제 늦게 보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급작스런 방문이었고요.”
물론 그 답변에도 김정한 회장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대성 정유뿐만 아니라 대성 자체가 휘청거릴지도 몰랐으니까.
그만큼 엄청난 자금이 투입이 된 상태고.
“좋아. 그런데 미국 놈들이 청와대와 왜 따로 움직이는 건데?”
“그게…”
쾅!
“젠장!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사업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김정환 회장은 우물쭈물하는 직원의 말에 책상을 강하게 후려치며 분노를 토해냈다.
그리고 그때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자가 있었다.
바로 대성 정유의 김만수 사장.
“저… 회장님 만에 하나 대한민국으로 미국산 원유가 들어온다면 현재 구입한 원유 선물들이 폭락을 할 것입니다. 이미 하락장으로 변경되기 시작했고요. 그전에 정리를 해야 합니다. 일본이라면 분명 구입을 할 것입니다.”
“얼마에?”
“…….”
대성 정유의 김만수 사장은 김정한 회장의 얼마에 되팔 거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이미 한국의 상황을 알고 있을 일본 입장에서 어지간한 가격으로는 사지 않을 것이 분명 했으니까.
“하지만… 정말 원유가 미국에서 대량으로 들어온다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무려 엑슨모빌과 셰브런입니다. 그 둘의 능력이라면 단 며칠 만에 대한민국이 몇 달은 쓸 수 있는 원유를 들여올 수 있습니다. 즉, 지금이라도 손실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김만수 대성 정유 사장은 최악 중에 그나마 차선책이라도 선택을 해야 한다며 호소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엑슨모빌과 셰브런은 그만큼 엄청난 정유 회사였으니까.
그러나.
“이미 늦었다. 유조선도 엄청난 비용으로 대여를 했고 지금 원유 선물을 팔기에도 손해가 극심하다. 차라리 결렬. 이번 미국 측의 경제 사절단과 원유 거래가 결렬되는 쪽에 모든 것을 걸겠다.”
“…….”
“…….”
“…….”
그렇게 대성 그룹 회의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자리했다.
***
우선 경제 활동을 하거나 경제에 단 1이라도 관심이 있는 자는 아침부터 텔레비전을 주시했다.
아니, 자동차 하다못해 스쿠터를 보유한 자들 모두가 텔레비전을 지켜봤다.
2주 만에 거의 2배 이상 급등한 기름값은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미국의 경제 사절단이 서울의 거대한 빌딩 앞에 멈추자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청와대도 그렇다고 호텔도 아닌 생각지도 못한 한 기업의 본사 앞이었으니까.
바로 명진.
더욱이 미국의 경제 사절단이 서자마자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본사에서 우르르 뛰쳐나오는 자들.
그것을 보고 대부분의 자들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미국 상무부 장관과 내무부 차관 거기에 세계적인 정유 업계의 인사를 대한민국으로 불러들인 곳이 명진이라는 것을.
그래서 놀라는 자들은 꽤 많았다.
“청와대도 아니고 명진이?”
“그것도 그거지만 미래가 아니라 명진이라고?”
“명진이 저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어?”
“물론 명진이 국내 오대 기업에 속하는 곳은 맞지만… 상대는 미국이라고. 미국! 더욱이 윌리엄 대통령의 심복인 토마스 타일러 상임 보좌관까지 온!”
미국측 인사들이 명진의 안내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명진 그룹 본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국민들보다 더 충격을 받은 자들이 있었다.
바로 미래 그룹을 시작해 명진과 2등을 놓고 겨루던 대성과 구산 그룹이.
그 외에도.
한일 에너지.
“며… 명진 정유에 연결된 끈 아직 있지?”
“있습니다!”
“연락해! 어떻게 해서든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아!”
“네! 알겠습니다.”
마석 칼텍스.
“젠장! 명진보다 대성과 손을 잡자고 한 새끼들 다 올라와서 대가리 박아!”
“…….”
“…….”
“…….”
우선 그렇게 정유 업계는 특히나 더 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끝
외전 16. 홍주영 (15).
명진 그룹 본사.
“후우…”
손님을 맞이하기에 앞서 홍상만 회장은 길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간 일국의 대통령은 물론이고 총리나 기타 고위직 관계자를 안 만나 본 것은 아니지만 그게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거기에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해도 만날 수 없었던 엑슨모빌과 셰브런이 끼어 있기에 더더욱.
그리고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기다리던 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홍상만 회장은 그들을 향해 차례대로 손을 내밀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명진을 대표하는 홍상만입니다.”
스스로를 높이지도 그렇다고 낮추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의 인사.
그러자.
“반갑습니다. 미국 상무부 장관직을 맡고 있는 해리슨입니다.”
“반갑습니다. 미국 내무부 차관 왈튼입니다.”
“반갑습니다. 백악관 특별 상임 보좌관 토마스 타일러입니다.”
굳이 정치인이나 고위직 관계자로 한정짓지 않더라도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나볼 수밖에 없었던 홍상만 회장.
그래서 대충 그 사람의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어떤 마음과 심정으로 사람을 대하는지 정도는 순식간에 알정도의 눈썰미를 갖췄다고 자부하는 홍상만 회장 이었다.
그리고 그런 눈썰미에 비춰보면.
[조심스러움. 공손함.]
홍상만 회장은 솔직히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장관과 차관 거기에 윌리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면 어디를 가도 어깨를 쫙 펴고 기고만장해도 될 위치니까.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상황.
더욱이.
“반갑습니다. 엑슨 모빌의 이안 부사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셰브런의 아시아를 담당하고 있는 베이컨입니다.”
정유라는 하나의 업종만으로 이미 명진 이상의 기업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 받는 엑슨모빌과 셰브런.
물론 기업 가치가 더 높다고 그것만으로 갑을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명백히 지금은 명진이 을일 수밖에 없었다.
원유 수급은 명진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입장에서 최우선 과제였으니까.
그렇기에 이들의 방문에 청와대는 외교부 장관까지 파견한 것이고.
하지만 그 두 곳마저도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에 홍상만 회장의 당황스러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홍상만 회장은 그 티를 내지는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 조심스런 행동을 취하냐는 질문을 던질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으니까.
우선 그렇게 홍상만 회장은 명백히 자신을 조심스러워 손님들을 이끌고 회의실로 이동했다.
***
그 시각 대한민국 주식 시장.
아직 장이 마감되기 전이기에 활발하게 시장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급등세를 보이기 시작하는 종목이 있었다.
바로 명진과 명진 정유 그 외 명진의 계열사들.
특히나 직전까지 다른 정유 종목들과 함께 짙은 파란색을 띠던 명진 정유는 붉은색으로 변한 것은 물론이고 단 10분 만에 하루 상한가의 마지노선인 30%를 달성해 버렸다.
물론 그 상태에서도 거래는 활발했다.
몇날며칠이고 하한가를 기록하던 종목이 상한가인 30%를 달성했고 그만큼 애가 탔던 자들은 현금화를 진행했으니까.
그 외 수많은 자들이 명진 정유와 명진을 놓고 설전 아닌 설전을 벌였다.
“우리도 팔아야지 않아?”
“야! 엑슨모빌과 셰브렌이 명진 본사에 들어갔어!”
“하지만 그게… 대한민국에 정유를 들여온다는 보장은 아니잖아? 분명 협상을 하겠지. 그리고 미국이 어떤 놈들인데. 싸게 주겠어? 분명 시간을 질질 끌면서 지들 유리한 쪽으로 결론을 짓겠지.”
“그래도 어쨌든 원유를 수급할 길은 생겼잖아. 더욱이 청와대도 수입한 원유에 대해 일정부분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했으니까 엄청난 호재인 것은 맞아.”
“후… 그래도 나는 불안해.”
“기다려. 분명 더 오를 거야. 아니, 나 같으면 더 사들이겠어. 굳이 명진 정유뿐만 아니라 명진의 다른 계열사들 전부를.”
“헐. 미친놈!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는데?”
“못 봤어? 상무부 장관과 내무부 차관이야! 거기에 미국의 윌리엄 대통령의 그림자라는 자까지 왔고! 원유 거래 한번으로 끝날 것 같아?”
“…그래도 그건 너무 무모해.”
“그래. 굳이 나를 따라오라고 말은 하지 않을게. 하지만 두고 봐. 곧 나는 엄청난 부자가 될 테니까. 그래서 이미 미래를 포함해 갖고 있던 모든 주식을 처분했고.”
분명 미국의 경제 사절단이 명진을 방문했다는 것은 명진으로서 엄청난 호재.
그래서 명진 관련 주식이 대체적으로 상승세로 변하긴 했다.
물론 반신반의가 더 많았지만.
그래서 명진 정유가 상한가 30%를 찍고도 그 가격선에서 여전히 거래가 활발한 것이고.
여하튼 대한민국의 주식 시장이 명진으로 인해 들썩들썩 거리기 시작했다.
***
명진 그룹 회의실.
“그럼 우선 가장 급한 것은 원유일 테니 이쪽 엑슨모빌과 셰브런측의 이야기를 먼저 해도 되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바라던 바였기에 홍상만 회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저희 엑슨모빌은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 17척이 대기중이고 지금이라도 당장 대한민국으로 운송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셰브렌 또한 로스앤젤레스에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 12척이 대기중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장 대한민국으로 운송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이고요.”
“…….”
원유를 가득 실은 수십 척의 유조선.
그리고 하필이면 로스앤젤레스에 대기중인 상황.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어수룩한 홍상만 회장은 아니었다.
이미 이들은 대한민국에 원유를 나를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그 후 홍상만 회장이 예상했던 그대로의 답변이 이안 부사장과 베이컨 지부장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저희 엑슨모빌은 대한민국과 명진이 겪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악의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원유의 가격은… 정확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전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 테러 이전의 가격으로 책정한 상태입니다.”
“저희 셰브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영원히 그 가격으로 동결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현재의 상황이 절대 정상적이지 않은 만큼 이 사태가 온전히 해결될 때까지는 현재 책정된 가격으로 거래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게 저희 셰브렌측의 계약서입니다.”
“이건 엑슨모블의 계약서입니다.”
“…….”
홍상만 회장은 자신 앞으로 내밀어진 두 장의 계약서를 눈만 뻐끔뻐끔하며 쳐다봤다.
지금 이들은 원유를 거저 준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과 진배없으니까.
우선 그 후로도 약 30분 가까이 상무부 장관과 내무부 차관 그 외 토마스 타일러 특별 상임 보좌관까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고 홍상만 회장은 그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당연히 계약서에 관한 답변은 빠르게 준다는 언급과 함께.
잠시 후.
미국의 경제 사절단이 명진 그룹 본사를 빠져 나간 사이.
홍상만 회장은 미래전략실의 직원들과 명진 정유의 사장과 임원 그 외 몇몇 해외 원유 거래 전문가들을 불러들였다.
그 후 엑슨모빌과 셰브런에 주고 간 계약서를 건넸다.
검토를 해보라고.
물론 홍상만 회장도 미리 살짝 훑어보기는 했다.
그리고 전부 읽고 나서 멍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말 그대로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거저 주겠다는 계약이었으니까.
당연히 거저 받는 쪽은 명진이었고.
우선 그렇게 약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이게… 정말로 엑슨모빌과 셰브런이 건넨 계약서 입니까?”
끄덕끄덕.
당황하다 못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건네는 명진 정유의 양정철 사장의 물음에 홍상만 회장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지 아니까.
“혹시 엑슨모빌과 셰브런이 회장님께 책잡힌 일이라도 있던 겁니까? 그러니까…”
“아니, 아무리 책잡힐 일이라도 이건 과해도 너무 과합니다. 현재도 원유 가격은 급상승중입니다. 배럴당 100불도 머지않았다는 시각이 우세하고요. 그런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사우디아라비아 테러 이전의 가격이라니요. 그럼 배럴당 40달러 선입니다. 40달러!”
“맞습니다. 더군다나 1차로 유조선 총 29대 분량에 이어 언제든지 추가 물량을 보내 줄 수 있다니 그것도 배럴당 40불로…”
“더욱이 3쪽을 보시면 이번 사태가 호전된 후에도 양사는 계속적인 거래를 유지하며 원유 공급자인 엑슨모빌과 셰브런은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가격 변동폭을 3달 전 가격의 10% 이상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즉, 이와 같은 사태가 또 벌어진다 해도 비싼 가격
에 원유를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됩니다!”
“거기에 이번 계약은 10년 만기이며 10년차에 양측이 합의하여 한쪽이라도 계약 연장을 원할시 무조건 10년의 기간이 연장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말은 결국 종신계약 이라는 뜻이고요.”
웅성웅성.
와글와글.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된 회의실.
하지만 홍상만 회장은 말리지 않았다.
홍상만 회장도 그간 수천수만 번의 계약서를 작성해봤지만 그중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계약서는 처음이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떠들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기에 홍상만 회장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검토. 제가 여러분을 여기로 부른 이유가 바로 이 계약서를 검토를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혹여나 명진에 해가 될 부분이 있나 하고요. 우선 그러니 빠른 검토부터 합시다. 그래야 로스앤젤레스에 정박 중인 29척의 유조선이 대한민국 아니, 명진 정유로 출발을 할 테니까요.”
“…….”
“…….”
“…….”
홍상만 회장의 그 말에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자들이 시선을 계약서로 돌렸다.
29척의 유조선이 원유를 가득 싣고 대한민국에 들어서는 순간 명진 정유는 미래, 대성, 한일 에너지, 마석 칼텍스를 누르고 대한민국 최고의 정유 회사가 되는 순간이니까.
그리고 채 10분도 되지 않아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당장, 무조건 이 계약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우선 그 뒤로 홍상만 회장은 직접 미국 상무부 장관이 해리슨이 주고 간 명함을 통해 전화를 걸었고 계약서에 싸인을 하는 것으로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자.
[곧 부산의 명진 정유에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이 도착할 것입니다.]
홍상만 회장은 그 말을 확인하고 전화기를 내려놨다.
***
다음날.
청와대는 분주했다.
미국의 장관이 포함된 경제 사절단이 대한민국에 발을 내딛고 가장 먼저 청와대를 방문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다음날은 청와대가 준비한 만찬에 참여하기로 한 상황.
그래서 김기정 대통령은 나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혹여나 미국의 경제 사절단이 청와대를 방문하지 않고 그대로 대한민국을 떠난다면 무능한 정부라는 손가락질을 피할 길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맞이한 미국의 경제 사절단.
물론 곧장 만찬장으로 이동하지는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까.
바로 원유 수입.
그러자.
[미국은 이 자리에 참석한 엑슨모빌과 셰브런을 비롯해 미국 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우방국인 대한민국에 충분한 양의 원유를 수출할 것입니다.]
김기정 대통령은 미국 상무부 장관 해리슨의 그 말에 활짝 웃음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 분위기는 만찬 내내 이어졌고.
그 후 만찬이 끝나갈 무렵 모든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기정 대통령은 해리슨 장관의 말을 전달했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써 치솟는 기름값으로 국민들이 느낄 부담감에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빠른 해결로 국민들의 불편함과 부담감을 없애야겠다는 일념으로 움직였고 드디어 이렇게 원유를 수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기정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공적으로 포장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그게 바로 김기정 대통령이 생각하는 정치였으니까.
우선 김기정 대통령은 그렇게 충분히 생색을 내고 마이크를 미국 상무부 장관 해리슨에게 넘겨줬다.
그러자.
“저희 미국은 강력한 우방국인 대한민국이 현재 겪고 있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쁩니다. 그래서 현재 총 29척의 원유를 가득 싫은 유조선이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했으며 부산에 있는 명진 정유로 향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수많은 기자들이 해리슨 장관의 말을 받아 적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몇몇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29척의 유조선이 대한민국을 향해 출발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지만 그 목적지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부산의 명진 정유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성질 급한 몇몇 기자들은 손을 들었다.
하지만 아직 질문 시간이 아니기에 해리슨 장관은 손을 든 기자들을 무시하고 말을 계속 했다.
“또한 이번 거래는 단발성 거래가 아니라 명진과 엑슨 모빌, 셰브렌 측의 중장기적인 계약 체결로 한반도 내에서 쓰는 원유에 한해서는 명진이 원할시 언제든지 원유를 수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선 그 뒤로도 해리슨 장관의 말을 계속 됐고 그 말을 듣던 기자들 전부는 아니, 텔레비전을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모두는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결국 미국에서 원유를 들여오는 것은 명진이라고.
더욱이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자.
“미국의 엑슨모빌과 셰브렌이 원유를 수출하는 대상은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겁니까?”
“네. 아닙니다. 정확히 계약을 체결한 명진입니다.”
“그럼 다른 곳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까 언급을 했듯이 명진이 한반도 내에서 쓰는 것에 한해서는 원하는 만큼의 원유를 엑슨모빌과 셰브런이 수출을 하기로 계약을 작성했습니다. 즉, 다른 곳은 명진을 통해 원유를 받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명진을 통한 2차 계약이 아니라 그냥 명진에 원유를 넘겨만 주고 그 계약은 종료가 되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저희는 명진에 원유를 수출할 뿐이고 그 수입한 원유를 명진이 어떻게 쓰는지는 저희의 소관 밖입니다.”
“…….”
“…….”
“…….”
기자들은 물론이고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자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특히나 미래, 대성, 한일 에너지, 마석 칼텍스 관계자들은 입을 쫘악 벌리고 멍하니 화면을 쳐다봤다.
결국 한반도 내에서 명진만 원유를 확보했다는 뜻이니까.
더욱이.
“거래되는 원유 가격은 대외비입니까? 또한 중장기적인 계약이라는데 계약 기간을 알 수 있습니까?”
“원유 가격은 대외비라 밝힐 수 없습니다. 다만 명진과 협상을 통해 원유 가격을 결정할 것이며 누군가의 독단적인 의견이 반영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계약 기간은 10년이지만 양측 중에 한쪽이라도 계약 연장을 원할시 또다시 10년의 계약 기간이 계속 갱신될 것입니다.”
또다시 만찬 이후에 진행된 기자회견장이 침묵으로 감돌았다.
물론 그 와중에.
‘도대체 명진이 뭔 마법을 부린 거야?’
‘이게 가능해?’
‘미국이… 미친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자들이 많았다.
여하튼 경악으로 점철된 기자회견은 계속 됐다.
끝
외전 17. 홍주영 (16).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와중.
미래 그룹 본사.
“그러니까 한반도 내에서는 소모 되는 원유에 한해서는 엑슨모빌과 샤브렌이 명진이 원하는 만큼 언제든 무한대로 공급을 하겠다는 건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
“…….”
“…….”
연정환 회장의 물음에 함께 기자회견장을 바라보는 임원과 중역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솔직히 황당해도 너무 황당했으니까.
특히나 더 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이곳에 자리한 모두는 확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그 계약으로 이득을 보는 자가 누구인지를.
바로 명진.
물론 엑슨모빌과 셰브렌도 이득을 보긴 할 것이다.
손해보고 원유를 팔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엑슨모빌과 셰브런에 얻는 이득은 명진이 얻는 이득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아니,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도대체 엑슨모빌과 셰브렌이 왜 저렇게까지 명진에 납작 기는 거지? 뭐 때문에?”
“…….”
“…….”
“…….”
정말 말 그대로 납작 긴다고 표현할 수준.
당연히 연정환 회장의 이번 질문에도 중역들 내에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생각해도 도저히 납득이 안 갔으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 납득이 가는 것도 있었다.
바로.
“허… 앞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두바이가 아니라 명진에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인가?”
우선 그렇게 연정환 회장의 허탈한 목소리와 함께 미래 그룹 본사는 침묵에 빠져 들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젠 대한민국의 정유 업계는 명진의 독무대, 독차지라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나머지 정유 업계는 명진의 눈치만 슬슬 봐야 했고.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비단 미래뿐만이 아니었다.
미래보다 더 심각하게 충격을 받은 곳이 있었다.
바로 5배나 웃돈을 주고 원유 선물을 대량으로 구입한 대성.
대성 그룹 본사.
“…….”
“…….”
“…….”
그나마 미래 그룹은 분석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대성은 김정한 회장은 물론이고 임직원들과 중역 모두가 허망한 시선으로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기자회견만 바라 봤다.
말 그대로 엿 됐다는 것 외에는 딱히 이 상황을 설명할 말이 없었으니까.
문제는 해결할 방법도 없다는 것이었고.
이제와 비싸게 산 원유 선물을 물릴 수는 없으니까.
마찬가지로 비싼 비용을 들여 대여한 유조선도.
여하튼 대성 본사는 미래 본사 보다 더 무거운 침묵이 자리했고 그 침묵은 도저히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청담동 본가 지하 서재실.
아빠의 집무실이기도 한 지하 서재실에 아빠와 형, 누나 그리고 나와 석인수 실장이 자리했고 그 4명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물론 왜 나를 바라보는지 그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이번 미국의 경제 사절단은 내 생각보다 더 일처리를 말끔하게 해줬으니까.
그리고 그때 아빠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내 막내들이 맞긴 한 거냐?”
“당연하죠. 제가 홍주영이 아니면 누가 홍주영이겠어요.”
“변해도 너무 변했으니까 그렇지. 아니, 사람이 아무리 변해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런데 주영이 너는…”
말문이 막힌 듯 잠시 멈칫한 아빠.
그런 아빠의 모습에 내가 곧장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가 그랬다면서요. 제가 아주 큰 인물이 될 거라고요. 물론 처음에는 할아버지한테 죄송하지만 큰 인물이 될 생각은 없었는데 저번 꿈에 나와서 저한테 호통을 치시더라고요.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거냐면서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능력 좀 발휘 했죠. 손자가 되가지고 할
아버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도 없고요.”
“…….”
“…….”
“…….”
내 말에 아빠, 형, 누나, 석인수 실장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알게 되도 천천히 알았으면 했고.
그 후로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빠를 향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성이나 한일 에너지, 마석 칼텍스는 뭐… 알아서 적당히 원유를 판매하면 될 것 같고요. 갑질도 한번 하고요. 대신 미래만… 좀 신경을 써주세요. 제가 보라한테 큰소리 탕탕 친 게 있거든요.”
우선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할 것은 다 했고 굳이 더 이상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아빠와 형, 누나, 석인수 실장은 그런 나를 붙잡았다.
이만한 판을 벌여놓고 여기서 손을 떼는 법이 어디 있냐면서.
하지만.
“처음에 말했잖아요. 저를 담기에는 명진이 너무 작다고요. 즉, 명진 일은 아빠, 형, 누나, 석인수 실장이 해야죠.”
그 말을 끝으로 지하 서재실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거실에 있는 엄마 뒤에 몰래 다가가 한번 놀래켜 주고 그대로 내 방으로 이동했다.
***
다음날 이른 아침.
무척이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곳이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주식 시장.
물론 아직 오전 9시가 되기 직전.
하지만 어제의 엄청난 사건으로 인해 장이 개시되기 직전부터 무척이나 바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장이 시작되기 전에도 거래 할 수 있는 ‘장전 시간 외’ 거래와 ‘동시 호가’가 있으니까.
그러나.
“젠장! 명진 정유가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어제 분명 장 마감 전에 매도 물량이 있었잖아!”
“그게 여전히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어제 기자 회견이 끝나자마자 매도 물량은 싹 다 빠졌고 매수 물량만 수백만 주가 몰렸습니다! 그 말인즉슨 9시에 땡하고 장이 시작하면 명진 정유는 30% 상한가 찍고 거래는 단 한 건도 없을 거라는 뜻이고요. 아무리 멍청이라 해도 명진 정유가 앞
으로 최소 상한가 5번 아니, 10번 이상은 찍을 거라는 것은 알 테니까요.”
“끙…”
“젠장! 어제 샀었어야 했는데! 어제 분명 살 기회가 있었는데!”
“씨팔. 나는 어제 갖고 있던 명진 정유를 전부 현금화 했다고!”
“이 멍청아! 그걸 왜 팔아. 완전 노다지인데!”
“젠장. 이럴 줄 알았나. 맨날 하한가를 찍다가 30% 상한가를 찍으니 눈이 뒤집힌 거지.”
그렇게 주식 시장이 열리기 직전부터 명진 정유를 둘러싸고 증권사와 주식 매니저 그 외 개인 투자자와 브로커들이 큰 목소리를 냈다.
물론 아쉬운 목소리가 더 컸다.
아무리 사고 싶어도 파는 사람이 없는 이상 명진 정유 주식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명진 정유를 사지 못한다는 아쉬운 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런데 명진 정유가 아니더라도 더 있지 않을까? 지금 액슨모빌과 샤브렌에 시선이 집중돼서 그렇지 그들과 같이 온 자들을 보라고. 무려 미국 상무부 장관과 내무부 차관 거기에 현 미국 대통령의 심복 중의 심복이라고!”
“그… 그렇긴 하지.”
“확실히 원유가 작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유 하나만으로 움직였다 보기에는 같은 온 자들의 면면이 꽤나 화려하긴 해.”
“내 말이! 혹시 더 있지 않을까? 이번 계약만 봐도 엑슨모빌이나 샤브렌이 얻는 이득보다 명진 정유가 얻는 이득이 엄청나잖아. 만약에 그런 비슷한 계약을 또 체결을 한다면?”
“음… 정말 그 말대로 어쩌면 원유는 시작일지 몰라.”
“그나저나 명진 정유도 어쨌든 명진의 계열사잖아. 계열사 하나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 본사는 물론이고 여타 다른 계열사에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렇지.”
“명진! 지금 당장 명진을 사둬야 해! 어차피 명진 정유는 늦었다. 그렇다면 명진 건설이나 명진 전자 그 외 명진 물산을 노려야 해!”
“나… 나도! 지금은 명진에 관련된 주식은 뭐든 상관없이 긁어모을 때야! 누구보다 빠르게!”
우선 그렇게 정확히 9시에 장이 열렸고 누구의 말대로 명진 정유는 시작하자마자 1초도 되지 않아 30% 상한가를 찍고 더 이상 거래가 없었다.
30% 상한가에 걸려 있는 매수 주문만 수천, 수만 건이었지만 매도 주문은 단 한 건도 없었으니까.
그 외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명진 건설과 명진 전자, 명진 물산 등 명진 계열사의 주식들도 빨간색 불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반대로 시작하자마자 곧장 하한가를 찍은 종목도 있었다.
바로 대성 정유.
그만큼 주식 투자자 치고 모르는 자들은 없었다.
대성 정유가 원유 선물 시장에서 정상가보다 무려 5배 이상의 가격으로 원유를 대량으로 사들였다는 것을.
당연히 그 원유를 실고 오기 위해 대형 선사들에 엄청난 비용을 주고 유조선을 대여 했다는 것도.
여하튼 대한민국 주식 시장은 명진이라는 이름 하나로 들썩였다.
***
경문고등학교.
어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
분명 나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 명진이 잡은 황금 동아줄이면 1강 3중 1약으로 평가되는 재벌가가 재편되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하지. 어쨌든 아직까진 석유만큼 가장 강력한 에너지 자원도 없으니까. 우리나라는 그 석유를 전량 수입하는 국가고.”
“진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도 아니고 명진이 그걸 해냈다는 것이… 우리 아빠도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니까.”
“야. 우리 아빠도 마찬가지야. 아니, 아무도 명진이 그런 일을 해낼 거라고 예상치 못했을 걸. 분명 명진의 역량을 벗어난 일이니까.”
웅성웅성.
와글와글.
아무래도 평범한 고등학교가 아닌 경제계, 정관계 그 외 1%의 상류층이 다니는 학교다보니 모습을 드러낸 나를 보고 한마디씩을 했다.
물론 전부 무시했다.
솔직히 나도 명진에 속했기에 기분이 살짝 좋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좋아할 수준은 아니니까.
특히나 아직 명진은 제대로 날갯짓을 시작도 하지 않았고.
우선 그렇게 교실로 이동했고 곧 수업이 시작됐다.
그 상황에 나는 느긋하게 의자 등걸이에 몸을 맡기고 살랑이는 바람을 즐겼다.
당연히 처음에는 그런 내 모습에 지적도 많았다.
모든 과목 100점을 맞고 나서는 더더욱.
하지만 내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나서는 그런 지적도 쏙 들어갔다.
이미 전부 알고 있었으니까.
그 후 곧 4교시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느긋한 걸음걸이로 급식실로 이동을 했다.
요즘 항상 점심을 같이 먹는 연보라와 함께.
우선 그렇게 같이 이동하는 와중.
“고마워.”
“뭐가?”
물론 대충 짐작 가는 것은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낸 것은 바로 어제 저녁이었다.
미래와 대화를 포함해 무언가를 하기에는 무척 이른 시간.
그러나.
“명진에서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고 하더라고. 원유 거래를 하자고. 다급한 것은 이쪽인데 명진에서 먼저 손을 내민 거지. 내가 예상하고 있는 누구 때문에.”
“음… 이건 내가 명진의 직계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미래는 좀 조심해야겠는데? 일처리가 내 생각보다 빠르네. 이러다가는 최고라는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겠어.”
“이번 일만 봤을 때는 솔직히… 인정. 하지만 아직 시기상조 아니야?”
“글쎄. 흐흐흐.”
확답보다 웃음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굳이 여기서 그걸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더군다나 미래도 내 구상에 포함이 되는 곳이었고.
여하튼 그날은 전과 완벽히 달라진 내 모습과 역시나 나처럼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명진의 후광을 뒤에 업고 연보라와 같이 급식실로 이동했다.
전에는 분명.
“아무리 요새 홍주영이 달라졌다지만 그래도 연보라에 비하면 좀 쳐지는 것 아냐?”
“그렇긴 하지. 더군다나 연보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래 그룹을 이을 후계자고 홍주영은 위에 형과 누나가 있잖아. 더군다나 형은 서울대까지 나온 인재고.”
“맞아. 명진의 미래가 밝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현재 본부장을 맡고 있는 기영이형 때문이잖아.”
“뭐… 그래도 그것 때문에 더 맞지 않아? 딱 좋잖아. 미래의 데릴사위로 들어가기에는.”
“에이. 아무리 그대로 데릴사위는 아니지. 명진이 무슨 자식을 팔아 장사하는 곳도 아니고.”
분명 전에는 위와 같은 시선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바뀌었다.
잘 어울린다는 시선으로.
끝
외전 18. 홍주영 (17).
경문고등학교 점심시간.
“퉷!”
급식실로 향하던 3학년 무리 중에 누군가 바닥에 침을 내뱉었다.
동시에 침을 뱉은 그 누군가가 무척이나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옆의 동급생을 향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찐따 였던 새끼가 갑자기 주인공이라고 된 것 마냥 나대는 꼴 하고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뭐가?”
“씨팔. 뭐가 뭐야! 너도 눈까리가 있으니까 보일 것 아냐! 저게 엿 같아? 안 엿 같아?”
“…엿 같아.”
김수철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한민국 사채 시장의 대부이자 지하 경제를 주름잡는 할아버지를 둔 이경영에게 반항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이경영이 재수 없다고 말한 명진의 홍주영도 결코 만만한 수준은 아니기에 김수철은 어쩔 수 없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걸 눈치 챘다는 듯이.
“쯧쯧. 겁쟁이 같은 새끼.”
“…….”
김수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한때는 대기업의 1차 협력사로 잘나갔지만 지금은 어려워진 회사의 사정으로 이경영의 할아버지에게 거액의 빚을 진 순간 자신은 이경영의 노예 아닌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다만 위안이라면 이제 고3 2학기이고 얼마 안 있으면 졸업을 함으로써 헤어질 수 있다는 것.
김수철은 그것만을 고대하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이경영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
말 그대로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경영.
특히나 지하 경제를 주름잡고 어지간한 재벌보다 현금을 더 많이 쌓아놨다는 평가를 받는 할아버지를 뒀기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처럼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진짜 재벌들에게 싸움을 걸지는 않았다.
그들은 양지에 있었고 자신은 분명 음지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경영은 딱히 그것이 불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았다.
그들은 드러난 곳에 있기에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했지만 자신은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문제가 생기면 손쉽게 돈으로 무마가 가능했고.
여하튼 그렇게 별다른 욕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이경영이 처음으로 욕심을 가진 것은 경문고등학교에 입학하고서 3학년이 됐을 때였다.
바로 신입생으로 입학한 연보라를 본 것.
물론 3류 소설에나 등장하는 것처럼 한눈에 반했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이경영은 이미 연보라 보다 예쁜 말 그대로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수준의 여자들은 수두룩하게 안아 봤으니까.
다만 연보라가 가진 배경.
그간 굳이 욕심낼 필요도 없었고 욕심도 나지 않았던 그 배경이 갑작스레 너무 탐이 났다.
‘미래 입장에서 다른 집안으로 연보라를 시집보내지는 않겠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럼 남는 것은 데릴사위인데…’
미래 그룹의 하나 뿐인 정통 직계.
물론 친가나 외가 쪽으로 가면 연보라 또래는 물론이고 무수히 많은 혈연이 있겠지만 현 미래의 연정환 회장이 연보라를 차기 후계자로 점찍었다는 것은 이 바닥 사람 치고 모르는 자들은 없었다.
이미 후계자 수업이 진행 됐다는 말도 있었고.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이야. 더욱이 아무리 연보라가 뛰어나도 결국 여자. 임신만 시켜서 애를 낳게 하면 지가 어쩌겠어. 애새끼 하나로 안 되면 둘, 셋도 낳게 하면 되지.’
이경영은 미래 그룹의 회장이 되어있을 자신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었다.
연 가에서 이 가로 변할 미래 그룹도.
더욱이 지하 경제를 주름잡는 할아버지의 도움이면 현재의 원탑인 미래 그룹을 명진, 대성, 구산보다 더 치고 나가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래. 더욱이 연보라가 못난이도 아니고. 데리고 놀기에는 나쁘지 않지. 그런데… 저런 병신 새끼가 갑자기 치고 올라오다니!’
우선 학년이 다르다는 엄청난 걸림돌.
거기에 분명 스스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자부하지만 그게 미래에 비교할 금수저는 아니었다.
어지간한 재벌이 보유한 현금보다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하긴 했지만 그 어지간한 재벌에는 미래가 포함되지 않았으니까.
여하튼 쉽게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고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명진의 하자인 홍주영.
이경영으로서는 마음에 안 들 수밖에 없었다.
평소 자신보다 못난 놈이라고 생각했던 놈이 설치는 꼴이기에 더더욱.
‘그래. 뒷배경이 되는 명진이 잘나간다 이거지. 찐따 였던 새끼가 그 뒷배경을 믿고 저렇게 나대는 거고.’
이경영은 그렇게 자신보다 못났다고 여겼던 병신이 자신이 점찍었던 연보라와 친근하게 지내자 분노가 싸여갔다.
그 분노는 점차 커져 속으로만 삼키던 것이 점차 밖으로 표출이 됐고.
물론 이경영도 처음에는 아차 싶었다.
명진도 그저 그런 재벌이 아니었으니까.
특히나 요 근래에는 더더욱.
하지만 분명 들었음에도 딱히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는 홍주영.
그 후로 이경영은 좀 더 노골적으로 움직였다.
그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조금이나마 삭힐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스스로 자신의 목을 옥죈다는 것도 모르고.
***
“흐음…”
당연히 모르지는 않았다.
아무리 내 뒤에서 그리고 살짝 떨어진 곳에서 한다지만 그것을 모르기에는 내가 결코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무시했다.
이런 사소한 시기와 질투에 일일이 반응하기에는 그간 ‘Revival Legend’가 현실로 구현됐을 당시 내가 받았던 관심과 비교하면 사소해도 너무 사소한 거였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너무 관심은 안 보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적정선을 넘기 시작했고.
가령.
“이주영 이 병신 같은 새끼야. 그것도 못하냐?”
“미…미안해.”
“씨팔. 이름도 거지같아 서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물론 나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 이름은 홍주영이니까.
하지만 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은 이주영이었지만 어제는 김주영이었고 엊그제는 박주영 이었다.
분명 ‘주영’이라는 이름이 흔한 축에 속하기는 하지만 마치 나에게 들으라고 하는 듯한 소리.
더욱이 흔하다고 하지만 실제 그 이름이 맞는지도 의문이었고.
그래서.
저벅저벅.
몸을 돌려 뒤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정확히 주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에게 욕설을 내뱉은 자 앞에 멈춰 섰다.
“뭐… 뭐야?”
설마 내가 올 줄은 몰랐는지 약간 당황한 기색.
그러나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자꾸 뒤에서 떽떽거리길래. 그리고 나 부른 것 아냐? 계속 주영. 주영. 노래를 불렀잖아.”
“…난 3학년 선배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선배 대접을 해달라고?”
“아무리 요즘 명진이 잘나가도 나한테 이러는 것은 안 될 텐데.”
“네가 누군데?”
“나를… 모른다고?”
“내가 쓰레기 따위도 알아야 하나?”
으드득.
다른 것보다 내가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분한 듯싶었다.
하지만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고 설사 정말로 내가 꼭 기억해야 할 정도의 인물이라도 상관없었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고 현재는 상대방이 나를 기억해야 하니까.
여하튼 그런 내 행동에.
“홍주영 너 이 새끼. 요즘 명진이 잘나간다고 그걸 믿고 설치나 본데 그게 영원할 것 같아? 어차피…”
짝.
자연스럽게 모든 힘을 빼고 녀석의 뺨에 싸대기를 날렸다.
참을 만큼 참았으니까.
아니, 솔직히 참은 것은 없었다.
시기와 질투에 점철된 뒷담화 따위는 나에게 그 어떠한 감정도 이끌어 내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분노도.
그럼 지금 이 행동은?
분노는 아니었다.
귀찮음 이었지.
그만큼 귀엽다 귀엽다 했더니 주인의 손을 꽉 깨운 개에게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훈계를 하는 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죽어! 이 개새끼야!”
아무래도 성깔이 있는 녀석 같았다.
싸대기 한방에 눈이 벌게져서 나를 향해 달려들었으니까.
과거의 나라면 처음 겪었을 일.
즉, 어버버 하고 저 주먹을 허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먹은 그간 나에게 날아온 온갖 무기와 마법 공격들에 비춰보면 점잖아도 너무 점잖았다.
당연히 너무 느렸고.
그래서 살짝 피함과 동시에 다시.
짝.
철푸덕.
싸대기를 날렸다.
전보다 아주 살짝 더 강한 힘을 줘서.
그러나 아주 살짝 준 힘에도 녀석은 개구리 마냥 그대로 땅바닥에 허물어져 내렸다.
우선 그 모습에.
저벅저벅.
다시 뒤로 발걸음을 돌렸다.
굳이 내가 챙겨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녀석에 대한 정체는 교실에서 알 수 있었다.
“이경영?”
“응. 그 형 집안이 사채 시장은 물론이고 지하 경제에도 꽤나 영향력이 커.”
“뭐야. 결국 양아치라는 거잖아.”
“뭐. 포괄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닌데. 하여튼 어지간한 재벌도 한수 접어주는 편이라고 하더라고. 물론 명진이 어지간한 재벌은 아니지만…”
“그래. 고맙다. 궁금한 것을 알려줘서.”
“아니야. 뭘.”
우선 그렇게 대충 이름을 파악하고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럴 가치가 있는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딜 가나 오늘 아침의 일로 웅성웅성 거리를 소리를 들음으로써.
연보라한테도.
“그 선배 소문이 안 좋아. 물론 어쩌지는 못할 거야. 요즘 명진은 위세는 미래를 앞지를 정도니까.”
“걱정 마. 이래 봬도 내가 완벽한 마무리를 짓지 않을 거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라는 말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거든.”
단지 ‘이주영’, ‘김주영’, ‘박주영’이라는 이름 단 하나로 오늘 같은 일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그전부터 있었다.
가령 연보라와 있을 때.
특히나 그때는 나를 향한 분노에 찬 눈빛은 물론이고 연보라에 대한 탐욕스런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물론 거기까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속에 품고 있는 욕심과 욕망에까지 터치할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속으로만 품어야할 욕심과 욕망을 결국 겉으로 드러냈다.
그럼 남은 것은 결국 응분의 대가이고.
***
그날 저녁.
아빠가 퇴근할 때 집까지 같이 온 석인수 실장을 따로 불렀다.
그러자.
“부르셨습니다. 막내 도련님.”
무척이나 공손하게 나를 대하는 석인수 실장.
당연히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기에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이채산이라고 아시나요?”
이경영 그놈의 할아버지가 바로 이채산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지하 경제의 거물로 불리는 자입니다. 사채 시장에서도 거액의 돈을 굴리고 있고요.”
“그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조금 자세히요.”
“…알겠습니다. 이틀까지 자료로 정리해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쉬엄쉬엄 해요. 특히나 요새 많이 바쁘잖아요.”
“요즘같이 즐거운 바쁨은 백백, 천 번이고 환영입니다. 회장님도 요즘 일할 맛이 난다면서 즐거워하시고요.”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저는 괜히 많은 일을 만들어서 번거롭게 한 것이 아닌가 걱정을 했거든요.”
“하하. 절대 아닙니다.”
우선 그 뒤로 석인수 실장과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고 그를 내보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니까.
끝
외전 19. 홍주영 (18).
서울 명동.
땅값 비싸기로는 강남 못지않은 명동 한복판에 마치 조선시대 양반집을 연상케 할 정도의 으리으리한 한옥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 한옥집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한옥집을 포함해 주변의 넓은 대지가 전부 개인 사유지였고 그 사유지 전체에 높은 담벼락과 CCTV로 둘러쳐져 있었으니까.
거기에 상주하는 경비원들도 꽤나 많았고.
물론 일반인들은 한옥집은 물론이고 명동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만 알만한 자들은 그 한옥집이 누구의 소유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지하 경제의 거물이자 대한민국 사채시장의 큰손 이채산의 집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채산은 자신의 장손이 내뱉은 말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홍주영 그 새끼가 먼저 저에게 주먹을 날렸다니까요! 저는 피해자라고요. 피해자!”
평소의 이채산이라면 장손의 그 말에 호통을 쳤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의 하나인 명진과 껄끄러운 일을 만들어서?
당연히 아니었다.
이채산에게 아무리 명진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일 가지고 껄끄러운 일이 될 수는 없었으니까.
명진도 명진이지만 본인 스스로 지하 경제의 거물이자 대한민국 사채 시장을 한손에 움켜쥐고 있다는 평가를 괜히 받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즉, 호통을 쳤다면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3학년이면서 고작 1학년에게 그것도 지금은 평가가 다르지만 직전까지는 재벌가 사이에서도 하자로 소문난 홍주영에게 쥐어 터져서 온 것.
이채산은 그것에 관해서 호통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호통을 치지 못했다.
듣고도 믿지 못할 소식을 접한 것이 얼마 전이었으니까.
말인즉슨 하는 일의 특성상 합법보다 불법이 많은 이채산.
그만큼 이채산은 남들이 쉽사리 접하지 못할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꽤 많았다.
사채 시장도 시장이지만 대한민국 지하 경제도 남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수준 낮은 곳이 절대 아니기도 했고.
더욱이 이채산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곳이 있었다.
바로 일본.
자신이 굴리는 돈의 일부도 일본에서 흘러온 자금이기도 했고.
그래서 이채산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을 통해 아주 어렵게 하나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바로 미국 정치권에 끈끈한 줄을 대고 있던 일본쪽 로비스트가 싹 다 잘려 나갔다는 것.
거의 피의 숙청이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의 비정한 칼날.
당연히 화들짝 놀란 일본이 곧장 움직였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
‘흠. 그 당시 일본쪽 로비스트들이 작업을 한 것은 원유에 관한 거였단 말이지…’
한국과 엇비슷한 경제 구조를 가진 일본.
아니, 내수시장을 제외하면 쌍둥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비슷한 경제 구조를 가진 것이 한국과 일본이었다.
그 말인즉슨 일본도 원유가 절실하다는 뜻이기도 했고.
일본이라고 자체적으로 원유를 생산하지 못하는 이상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뚫을 기막힌 묘수도 그렇다고 테러로 인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생산 감축을 막을 방법이 없었으니까.
즉, 남은 것은 미국.
그리고 그때 일본쪽 로비스트들에게 흘러나온 소문 하나가 있었다.
[대한민국. 미국의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직에 있는 정치인들이 모조리 일본을 버리고 친한으로 돌아섰다!]
그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이채산은 당연히 믿지 못했다.
말로는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미국에 무척 중요한 우방국이라고 떠들지만 그래도 더 가까운 것은 일본이었으니까.
실제로 보여주는 행동도 그랬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온 소식.
[미국 상무부 장관과 내무부 차관 그 외 윌리엄 대통령의 최측근인 토마스 타일러 특별 보좌관이 대한민국에 입국 하다!]
[엑슨모빌의 이안 부사장과 셰브렌의 극동 아시아 담당 베이컨 지부장도 함께 입국 하다!]
일본을 향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향한 미국.
이채산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입안의 혀처럼 굴던 일본을 버리고 미국을 친한으로 돌아서게 만들 수 있는 자가 누구인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으니까.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채산은 미국을 그렇게 만든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명진.
그러자 이채산은 지하 경제 쪽에서 흘러나왔지만 허황돼도 너무 허황돼 피식 웃고 넘겼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드비어스 본사가 털렸다!]
[드비어스가 보관 중이던 다이아몬드를 죄다 잃어 버렸다!]
[그 다이아몬드를 전부 털어간 자가 동양인이다!]
[드비어스 코넨티 회장이 그 동양인과 협상을 위해 시에라리온으로 움직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채산은 지하에서 은밀히 나도는 그 소문을 꽤나 흥미롭게 바라봤다.
특히나 범인이 동양인이라는 말 때문에 더더욱.
그러나 그다음에 들린 소문에 이채산은 코웃음을 흘렸다.
왜냐하면.
[코넨티 회장이 결국 그 동양인에게 굴복을 했고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를 그에게 선물했다.] [그 동양인은 드비어스가 차지하던 시에라리온의 고급 광산들을 꿀꺽했고 그 동양인이 모습을 감추자 그 부하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코리안(korean)이었다.] [동양인의 부하로 보이는 코리안은 직전 명진이라는 곳에 속한 자였다.]
명진에 속했던 자.
이채산은 거기서 웃음을 토해냈다.
곧장 관심도 끊었고.
분명 그 바닥이 누구나 ‘헉!’하고 놀랄 정도의 특급 정보가 움직이는 곳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3류 찌라시에도 들지 못하는 거짓된 정보가 도는 곳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석유 파동으로 원유 수급이 급박한 명진에 유리한 위치에서 원유를 판매하는 것이 아닌 마치 상납하는 모양새를 취한 미국의 모습에 이채산은 어쩌면 그게 영 거짓말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안하면 지금 명진은.
‘용이지. 용. 결국 미국이 일본이라는 국가를 버리고 명진이라는 대한민국에 속한 일개 기업을 선택하게 만들었으니까.’
더욱이 이채산이 봤을 때 원유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고작 원유 하나였다면 엑슨모빌과 샤브렌만 와도 상관없었으니까.
그게 더 상식적인 움직임이고.
하지만 엉덩이가 무거운 미국 상무부 장관, 내무부 차관 거기에 현 윌리엄 대통령의 가장 최측근까지 함께 움직인 상황.
“…….”
즉, 그 누구보다 뛰어난 감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이채산이 봤을 때 명진과 트러블을 만드는 것은 최악이었다.
그만큼 지금은 명진에 납작 엎드리는 것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그 명진의 직계와 다툼을 벌이고 온 장손.
당연히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장 홍주영 그놈에게 사과해라!”
“네? 할아버지! 어떻게 제가 그딴 놈한테 사과를 해요! 그놈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신 소리를 듣던 놈이라고요!”
이채산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소리치는 이경영.
하지만 이채산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사과를 하지 않을 거면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 없는 손자로 칠 테니까!”
“…….”
이경영은 할아버지가 절대 빈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즉, 지금 하는 말도 진짜.
물론 그래서 이경영의 속에서는 홍주영에 대한 원망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네. 알겠습니다.”
그 대답에 이채산은 쫓아내듯 이경영을 밖으로 내보냈다.
동시에.
“들어오게나.”
스으윽.
벽이라 생각했던 공간.
그 벽이 살짝 밀리면서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고 그 공간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그 누군가는 곧장 이채산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고.
이채산은 그 모습에 자주 있었던 일이라는 듯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이경영 저놈은 아마 사과를 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억울하다 생각하겠지. 그러니 자네가 넌지시 명진에 자리 좀 만들어봐.”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비밀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다시 그 비밀 공간을 이용해 모습을 감추었다.
그 후로도 이채산은 담배를 입에 물고 한동안 그 자리를 지키다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좋은 기회 일지도 모르겠군.”
한순간에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훨훨 날아갈 것 같은 명진.
이채산은 차라리 이번 기회에 명진과 좋은 관계를 만들면 오히려 남는 장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경영 그놈은 당분간 묶어둬야겠지만.”
이채산은 자신의 장손인 이경영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았다.
자신을 빼닮았으니까.
그래서 손자, 손녀 중에서 가장 아끼던 녀석이었고.
***
다음날.
명진 그룹 본사 회장실.
“회장님. 오후 3시에 한국경제인연합회의 오청기 회장이 만남을 요청하였습니다.”
비서의 말에 홍상만 회장은 보던 서류를 내려놓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네.”
“별다른 말은?”
“딱히 없었습니다.”
“흠… 알았다고 전해.”
“네. 알겠습니다.”
허울뿐인 한국경제인연합회.
그러나 홍상만 회장도 한국경제인연합회에 속해있긴 했다.
회원이라는 이유로 연회비도 꼬박꼬박 내고 있었고.
하지만 홍상만 회장은 딱히 회원으로서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이었고 결정적으로 별다른 힘도 강제성도 없는 곳이었으니까.
이미 변질될 대로 변질되기도 했고.
물론 과거에는 정말 힘이 컸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업과 경영인을 단순히 돈을 뽑아 먹는 수단으로만 봤던 독재 정치인들에게 자신과 기업을 지키고 대항하기 위해서는 하나로 뭉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위치가 역전 된지 오래 됐다.
누구 말대로 정치인은 임기가 존재하는 파리 목숨이지만 재벌은 망해도 3대를 갔으니까.
그래서 현재는 한국경제인연합회가 허울뿐인 것이고.
여하튼 홍상만 회장은 곧 거기에 신경을 끄고 하던 업무에 집중했다.
요즘은 만날 사람도 많고 쉴 틈도 없이 바빴으니까.
오후 3시가 되기 직전.
홍상만 회장의 최측근인 석인수 실장은 이미 비서실로부터 오후 3시에 한국경제인연합회의 오청기 회장이 명진을 방문 한다는 것을 보고 받았다.
그래서 오청기 회장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을 찰라 오청기 회장이 누군가를 대동하고 명진 로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물론 수행비서나 경호원 한두 명쯤 따라 붙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모습.
하지만 오청기 회장 옆에 있는 자는 석인수 실장이 익히 알던 자였다.
요즘에는 더더욱.
바로 지하 경제의 거물이자 대한민국 사채 시장을 한손에 움켜쥐고 있는 이채산 이었으니까.
그래서 석인수 실장은 재빠르게 비서실로 명령을 내렸다.
“회장실과 다이렉트로 연결된 엘리베이터가 수리 상태라고 말하고 잠시 오청기 회장 일행을 묶어둔다.”
“네!”
“알겠습니다!”
명진 비서실에 속한 자들은 석인수 실장의 말에 별다른 의구심을 담지 않고 명령대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당연히 석인수 실장도.
잠시 후.
홍상만 회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회장실.
“그러니까 오청기 회장이 이채산이라는 자와 함께 오고 있다고?”
“네.”
“흠…”
석인수 실장의 보고에 홍상만 회장이 잠시 침음을 내뱉었다.
그 와중에 석인수 실장의 말이 이어졌고.
“어제 주영군이 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이채산에 대해 자세히 좀 알아봐 달라고요.”
“이유는?”
“알아본 결과 고등학교에서 이채산이 애지중지하는 손자인 이경영이라는 학생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그 마찰로 이경영이라는 학생이 기절해서 실려 갔고요.”
“설마 고작 그 일로 명진을 찾아온다고?”
“겸사겸사 아니겠습니까? 꽤나 발이 넓다고 알려진 자입니다. 욕심도 많고요. 그만큼 명진을 보고 가만히 있기에는 애가 탔을 것입니다.”
“욕심이라…”
홍상만 회장은 후자가 더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주영이의 부탁은?”
“모든 조사는 끝났습니다. 서류로 정리해 내일 주영군에게 건넬 생각입니다.”
“그래. 그렇게 해.”
“그럼 이채산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들여보내. 무슨 말을 할지도 궁금하고.”
“네. 알겠습니다.”
홍상만 회장은 그 말을 하면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솔직히 이제는 자신의 막내아들의 능력이 가늠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괜히 이채산에 대한 조사를 하지도 않았을 테고.
‘그럼 나는 그냥 지켜만 보면 되는 건가?’
우선 홍상만 회장은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진짜 손님인 이채산을 기다렸다.
끝
외전 20. 홍주영 (19).
명진 그룹 회장실.
“오랜만입니다. 오청기 회장님.”
“아이고. 홍회장. 너무 얼굴 보기가 힘든 것 아니오? 저번 총회에도 나오지 않고.”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바빠서…”
“하하하. 이해해요. 이해해. 요즘 명진이 바쁘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소.”
아흔을 내다보는 고령 중의 고령.
그만큼 선대 회장이자 자신의 아버지보다 윗대인 오청기 회장이기에 홍상만 회장은 존댓말을 사용했다.
오청기 회장이 명예 회장으로 있는 오산 중기가 명진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이지만 대한민국에서 나이만큼 강력한 무기가 없기도 했고.
우선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어진 대화.
그러다 오청기 회장이 자신의 옆에 있는 자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홍회장. 그러니까 옆에 있는 이 사람은…”
하지만 오청기 회장은 끝까지 말을 내뱉을 필요가 없어졌다.
홍상만 회장의 입에서 먼저 흘러나온 말이 있었으니까.
“이채산 회장님 아니겠습니까?”
“허허. 홍회장도 알고 있었소?”
“여러모로 사업하는 사람치고 모를 수가 없죠.”
“하하하. 그렇지. 대한민국에서 사업하는 사람 치고 이채산 회장을 모를 수가 없지.”
오청기 회장은 홍상만 회장이 자신과 함께 온 이채산을 안다는 말에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요즘 한국경제인연합회에 가장 많은 회비를 납부하는 자가 이채산이었고 한국경제인연합회가 자리하고 있는 빌딩을 무상으로 대여해주고 있는 자도 이채산이었으니까.
물론 그 와중에 제대로 웃지 못하는 자도 있었다.
바로 대화의 장본인인 이채산.
왜냐하면 이채산은 홍상만 회장의 ‘여러모로 사업하는 사람치고 모를 수가 없죠.’라는 말 중에서 여러모로 라는 말이 굉장히 거슬렸다.
분명 그 여러모로에는 말 그대로 여러 의미가 담겨져 있었으니까.
당연히 나쁜 의미도.
하지만.
“하하하. 명진의 홍상만 회장님께서 저를 이렇게 알아봐 주시고. 참으로 영광입니다.”
이채산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선 그렇게 오청기 회장과 홍상만 회장에 이어 이채산까지 합세한 대화는 꽤 오래 됐다.
잠시 후.
“오회장님 약속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갑자기 새어나온 이채산의 말.
그러자.
“아참! 나이가 나이인지라 깜빡 했군요. 그럼 홍회장 이 늙은이는 먼저 일어나겠소.”
마치 연극이라도 하듯이 이채산의 말에 오청기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장실을 빠져 나갔다.
그렇게 홍상만 회장과 이채산 둘만 남은 회장실.
그 상태에서 이채산이 전과 달리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홍상만 회장이 이제 어느 정도 인사치레는 끝났으니 본격적인 대화를 나눠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요?”
“네. 우선 그 전에 아이들이 서로 주먹다짐을 한 것 같은데…”
“어차피 애들 싸움 아니겠습니까? 설마 그게 본격적인 대화는 아니겠지요?”
“하하하. 물론입니다.”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데는 아이들만큼 좋은 소재가 없는데 그걸 초반부터 차단하고 들어온 홍상만 회장의 말에 이채산은 살짝 불쾌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웃으며 에둘려 표현할 뿐.
그리고는.
“요새 명진이 무척 바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함께할 좋은 동료가 필요 하다는 것도요. 앞으로 훨훨 날아갈 명진인 만큼 전과 다른 강력한 경쟁자를 마주하게 될 테니까요.”
“…….”
별 말이 없는 홍상만 회장.
그 모습에 이채산이 곧장 말을 이었다.
애초부터 상대방이 생각할 타이밍을 줄 생각은 없으니까.
“저는 명진과 발맞춰 움직일 능력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혹여나 명진이 원하는 자금? 당연히 은행 이자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빌려줄 수 있습니다. 아,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이래 봬도 수중에 가진 자금은 무척이나 넉넉합니다.”
“좋군요.”
“하하하. 역시 홍상만 회장님은 사업가적 자질이 뛰어나신 분이군요.”
이채산은 홍상만 회장의 그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호탕한 웃음을 곧 지울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홍상만 회장의 말은 직전 내뱉은 좋다는 말고 배치되는 말이었으니까.
“좋습니다. 다 좋아요. 그런데… 여기서 더 진전 있는 대화는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곳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무의미한 일 아니겠습니까?”
“…….”
이채산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곳이라니.
물론 중의적인 표현이긴 했다.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는.
하지만 이채산이 봤을 때 결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언급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채산은 표정을 굳힌 상태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홍상만 회장님 제가 여기까지 오는데 결코 평탄했던 길만 걸었던 것이 아닙니다. 많은 난관도 마주했고 결코 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벽도 마주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모든 것을 뚫고 결국 이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알거라 봅니다.”
“알고 있습니다. 주로 평탄할 리가 없는 일을 하셨던 분이니까요.”
“…….”
대놓고 무시 하지 않지만 이채산은 오히려 더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애초부터 이 만남 자체는 불필요한 만남 이었다는 것도 느꼈고.
그렇다는 것은.
스윽.
이채산은 자리에서 곧장 일어났다.
그와 함께 몸을 돌려 움직일 찰나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멀리서나마 명진의 무궁한 성장을 기원하겠습니다. 부디 별 탈 없이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별 탈 없이를 또박또박 강조해서 말한 이채산은 그렇게 회장실 밖으로 움직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못 알아들을 홍상만 회장도 아니고.
우선 그렇게 이채산이 나갔음에도 홍상만 회장은 자리를 지키고 앉았다가 아직 반쯤 남은 차를 들이키며 말을 내뱉었다.
“괜히 손을 잡는 악수를 둘 필요가 없는 자니까. 더욱이 주영이 그놈이 과연 어떤 것을 보여줄지 궁금하고.”
애초부터 홍상만 회장은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거리를 두기로.
아니, 거리를 넘어 아예 접전 자체를 만들지 않기로.
정말 그의 도움이 필요 없었으니까.
더욱이 홍상만 회장은 윌리엄 대통령의 특별 상임 보좌관인 토마스 타일러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나눈 대화가 있었다.
바로.
[조만간에 더 크고 화려한 자리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만큼 윌리엄 대통령께서도 앞으로 명진과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기는 바라고 있고요.]
씨익.
홍상만 회장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요즘은 일 할 맛이 났으니까.
***
다음날.
청담동 본가.
똑똑.
누군가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자 석인수 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내 도련님. 여기 있습니다.”
“칼 같으시네요. 천천히 해도 상관없는데.”
“하하. 누구 명령인데 설렁설렁 하겠습니까?”
“요새 아부도 느신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네요. 다만 막내 도련님은 아부를 좋아하는 분이 아니셨으면 좋겠습니다.”
“에이. 아부는 귀가 따갑게 들어서 그다지 감흥도 없어요.”
정말 귀가 따갑게 들었다.
아부를 넘어 신이라고 추앙까지 받기도 했고.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다행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어제 이채산이 회장님을 찾아왔습니다.”
“아빠한테요?”
“네.”
“왜요?”
“아무래도 겸사겸사 찾아 온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는 손을 잡자고 제안까지 했고요.”
“그래서요?”
“회장님께서… 거절을 했습니다. 지금의 명진은 굳이 더러운 손을 잡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니, 과거의 명진일지라도요.”
“다행이네요. 제가 봤을 때 이채산은 곧 거렁뱅이가 되어 길거리에 나앉을 자로 보이거든요.”
“아? 그런가요?”
“네.”
그 말을 끝으로 석인수 실장을 내보냈고 석인수 실장이 갖고 온 서류를 뒤적거렸다.
잠시 후.
“흠… 나쁜 짓을 많이 하긴 했네.”
애초부터 이채산이 부자는 아니었다.
즉, 자수성가라면 자수성가.
하지만 문제라면 그 자수성가의 기본 뼈대가 되는 자금이 일본에서 왔다는 것이었다.
그 반대급부로 일부러 저축은행 하나를 부도내 일본에 넘겨주기까지 했고.
그 외 자잘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채산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쓰레기.
분명 현재 쌓은 부의 태반이 불법이었으니까.
물론 그래서 지하 경제의 거물이자 사채 시장의 큰 손이라 불리는 거겠지만.
여하튼 대충 이채산에 대한 정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냐?
아직 시간은 밤 9시도 되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룰 생각은 없었다.
나 혼자만 생존했다고 봐도 무방한 그곳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 내 것은 절대 남에게 빼앗기지도 양보하지도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
그 내 것의 영역에는 분명 연보라도 포함이 되어 있었고.
우선 그렇게 명동으로 이동을 했다.
***
잠시 후.
명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중.
“이야. 대궐이네. 대궐.”
정말 말 그대로 대궐에 가까웠다.
특히나 명동 한복판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궐 그 이상이라 봐도 무방했고.
그래서 절로 감탄이 새어나왔지만 곧 그 감탄을 거둬들이고 머리에 눌러쓴 모자와 선글라스 거기에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확인하고 곧장 플라이를 해제했다.
추락하듯 뚝 떨어져 내리는 몸.
그리고 얼추 지면과 가까워지자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로 대궐 같은 건물의 짙은 어둠이 깔린 처마 밑으로 이동했다.
분명 은밀한 움직임.
하지만.
애애애애앵! 애애애애앵!
갑작스레 사방에 싸이렌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대낮을 방불케 할 정도의 환한 빛을 내뿜는 조명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이야… 얼마나 숨길게 많은 거야?”
CCTV?
당연히 아니었다.
말 그대로 짙은 어둠속에서 움직였으니까.
다만 내가 한 거라고는 건물 벽면에 손을 댔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경고음이 울렸고.
물론 그래서 조금 기대가 되기는 했다.
왜냐하면 합법보다 불법적인 일을 더 많이 한 이채산.
당연히 재산을 은행에 맡기지 못했을 것이다.
은행에 재산을 맡긴 순간 보유한 재산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
그 말인즉슨 따로 보관을 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이렇게 철두철미한 보안을 생각하면 재산을 이 집 안에도 보관을 했을 것 같았다.
여하튼 이미 걸린 마당이기에.
쾅!
주먹을 건물 외벽을 향해 그대로 휘둘렀다.
그러자.
퍽!
무언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구멍이 발생했고 느긋하게 그 구멍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놀래켜주고 싶었지만 이미 들킨 마당이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으니까.
만에 하나를 위해서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도 착용을 했고.
우선 그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침대와 약간의 가구들 이었다.
침대에는 아무도 없었는지 가지런히 정리된 상태였고 아무리 봐도 이채산의 침실로 보이지는 않았다.
가구들이 초라했고 방 자체가 썩 크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서자.
“누구냐!”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는 순간 쏘겠다. 여기는 폭탄이 터져도 절대 경찰이 오지 않는 곳이다!”
이미 문 밖에는 일단의 인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나를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었고.
“이야. 역시 괜히 지하 경제의 거물이 아니네.”
직전의 시에라리온은 물론이고 ‘Revival Legend’가 현실로 구현된 그곳에서 대전차 로켓포는 물론이고 탱크, 헬기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함 등을 수두룩하게 봤지만 그건 그때의 이야기고 지금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물론.
저벅저벅.
권총으로는 나에게 어떠한 피해도 줄 수 없기에 자연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이들에게 물어볼 것도 있었고.
그리고 그런 나의 행동에.
“쏴!”
탕. 탕. 탕. 탕.
자연스럽게 권총을 들이미는 모습에 한두 번 사용해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사람을 향해 총을 쏘는데 아무런 동요도 없는 것을 보고 알 것 같았다.
사람을 향해서도 많이 쏴 본 솜씨라는 것을.
물론 그 와중에 내 손은 나를 향해 날아오는 총알을 잡기 위해 조금 빠르게 움직였다.
팍. 팍. 팍. 팍.
묘기라기 하기에도 민망한 손놀림.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자들에게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
“…….”
“…….”
총을 쏘던 자세 그대로 입만 떠억 벌리고 멍하니 있음으로써.
우선 그들의 모습에.
후두두둑.
총알을 그대로 바닥에 쏟아내고는 좀 더 그들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다리를 슬쩍 들어 그들의 발등을 향해 한 번씩 내리 찍었다.
당연히 그들의 발등은 순두부처럼 짓뭉개졌고.
“크억!”
“내… 내 다리!”
“크악!”
신음과 함께 쓰러진 자들.
하지만 개의치 않고 그들을 향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쉿. 반대편 발등이라도 살리고 싶으면 조용하는 것이 좋을 거야. 난 시끄러운 것은 썩 좋아하지 않으니까.”
“읍…”
“읍. 읍.”
내 말이 끝나자마자 쓰러진 자들 전원이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기 시작했다.
여전히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들은 옆에 있는 자들이 대신 막아줬고.
“그래. 좋은 자세야. 우선 내가 질문을 할 텐데 빠르게 대답을 한 녀석은 그대로 살려줄 거야. 발등? 걱정 마. 수술하면 뛰지는 못해도 걸을 수는 있을 테니까. 하지만 대답이 늦거나 거짓된 대답을 하는 놈은… 평생 걷지도 못하고 밥숟가락도 들지 못하게 될 거야. 알겠지?”
끄덕끄덕.
끄덕끄덕.
내 말에 발등을 부여잡고 쓰러진 자들 전원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곧장 질문을 던졌다.
“이채산이 있는 곳의 위치는?”
“지… 지하 1층에 이채산 회장의 거처가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항상 지하 1층의 서재실에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한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물론 거짓말이어도 상관없긴 했다.
가서 확인해 보고 없으면 다시 오면 되니까.
“좋아. 그럼 제대로 대답을 한 것 같으니까 전원 살려주도록 할게. 그러니 앞으로 착하게 살자고. 착하게. 이런 총 같은 무서운 것은 멀리하고. 니들이 경찰이나 군인은 아니잖아?”
“네!”
“아…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겠습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살려주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이 있었다.
바로 죽이는 것.
하지만 살려주는 선택을 내렸다.
굳이 죽일 필요는 없으니까.
우선 그렇게 그들을 지나쳐 복도를 계속 걸었다.
끝
외전 21. 홍주영 (20).
영화 같은 것에서 종종 본적이 있었다.
배에 갑작스런 충격으로 파손이나 구멍 등이 생겨 물이 차기 시작하면 그 물이 찬 구역을 중심으로 셔터나 차단막이 내려와 다른 구역으로 물이 침범하지 못하게 막는 것을.
딱히 영화가 아니더라도 화재에 대비한 거대한 건물 등에도 그런 비슷한 장치가 존재했고.
그런데 그와 유사한 일이 이곳에서도 발생했다.
쾅. 쾅. 쾅. 쾅.
즉, 한눈에 봐도 두꺼워 보이는 철판들이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대로 내 앞길을 막기 시작했다.
더욱이 앞길만 막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밀폐된 공간에 가둘 요량인지 뒤쪽에서도 옆쪽에서도 두꺼운 철판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리 꽂혔다.
“이야… 철두철미하네.”
외곽에서 봤을 때는 분명 으리으리한 대궐이었지만 결국 한옥 저택이었다.
그만큼 내부에 이런 장치가 설치되어 있을 거라고는 단 1도 생각지 못했다.
물론 이 정도까지 대비를 해놨다는 것은 딱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도대체 뒤가 얼마나 구린 거야.”
뒤가 구리다는 것.
그만큼 켕기는 행동을 많이 했다는 것.
이정도로 공을 들여 자신만의 성을 구축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만.
쾅!
가볍게 휘두른 주먹 한방에 그대로 박살이 나버린 차단막.
즉, 아무리 두텁고 통짜 쇠로 이뤄졌다지만 나를 막기에는 너무나 모자랐다.
물론 주먹 한방으로 내가 이동할 만큼의 공간이 생겨나지는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손가락으로 비비는 것만으로도 다이아몬드를 가루로 만드는 나에게 살짝 과장하자면 철은 찰흙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말인즉슨.
쩌저적. 쩌저적.
손을 뻗어 마치 찰흙을 가지고 놀 듯 통짜 쇠로 이뤄진 차단막을 뜯으며 앞으로 계속 움직였다.
***
이채산의 저택 상황실.
“…….”
“…….”
“…….”
상황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자리했다.
특히나 군인으로 대령까지 달았던 경호팀 팀장 한규철은 도저히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수하들의 발등을 짓밟아 뭉개트리는 것은 최소한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바로 앞에서 발사되는 총알을 손으로 잡아낸다는 것은 도저히 그러려니 하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 와중에 경험만큼은 그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한규철이기에 얼른 모든 구역을 나누는 차단막을 내렸다.
처음에는 스카우트되어 이곳에 왔을 때 한규철 스스로도 왜 설치되어 있었는지 의문을 가졌던 통짜 쇠로 만들어진 차단막들.
그런데.
쩌저적. 쩌저적.
종잇장처럼 찢겨지는 차단막의 모습에 한규철은 입만 쩌억 벌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나 보고 텔레비전에서만 들었던 초인이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그것도 하필이면 침입자로.
그리고 그때.
“티… 팀장님… 어떻게 합니까?”
“겨… 경찰이라고 부를까요? 아니, 군부대에 연락을 합니까?”
“…….”
두려움이 연신 묻어나는 수하들의 외침.
그 외침에 한규철은 수하들의 두려움을 해소시켜 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두려움만큼 최악의 적은 없으니까.
군대에서 그렇게 배워왔고.
하지만 한규철은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본인부터 두려움에 사로 잡혔으니까.
물론.
절레절레.
한규철은 빠르게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두려움을 털어냈다.
그리고 수하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이미 권총으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파악 했으니까.
하지만 곧 그 의견을 스스로 기각시켰다.
그간 이채산이 불법으로 자행한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곳에 경찰과 군부대를 부른다는 것은 말 자체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럼 남는 대비책은…’
한규철은 차단막을 수수깡 부수듯 박살내며 움직이는 침입자의 모습에 결국 대비책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바로 피신.
그래서 곧장 입을 열었다.
“회장님은 지금 어디 있지?”
“현재 지하 1층 서재실에 있습니다!”
“회장님도 현재 상황을 알고 있나?”
“단순한 침입자가 발생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회장님부터 밖으로 피신시키고 본다. 너희들은…”
습관적으로 적의 발을 묶어두라는 명령을 내리려던 한규철은 뒷말을 삼켰다.
그건 씨알도 먹히지 않을 명령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결국 돈으로 맺어진 사이기도 했고.
대신.
“침입자의 움직임을 1분마다 보고 해라. 그 외 전과 확연히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때도 즉시 보고 한다.”
“네!”
“알겠습니다!”
한규철은 그 명령을 내리고 그나마 가장 믿음직한 수하 5명을 이끌고 이채산 회장이 있는 지하 1층 서재실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
이채산 저택의 복도.
쾅. 쾅. 쾅. 쾅.
앞을 가로막는 차단막들을 부수며 앞으로 계속 움직였다.
그리고 현재 내 모습을 CCTV 등으로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자들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바로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물론 방향을 잃지는 않았다.
잃은 척 할 뿐.
왜냐하면 이곳은 한옥이지만 대궐같이 으리으리한 저택이고 그만큼 넓었다.
대충 봤을 때 지하도 1층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움직였다.
생각이 있는 자라면 나라는 침입자를 보고 막으려하기 보다는 이채산을 대피부터 시키려 할 테니까.
그 와중에 꽤나 분주할 것은 당연했고.
그리고 그때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몇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기감에 걸려들었다.
혹여나 나를 향해 달려드는 자들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대신 빠르게 아래로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엘리베이터라도 탄 듯.
그 말인즉슨.
“이채산에게 가는 거였으면 좋겠는데…”
물론 이채산에게 가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독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왠지 이채산에게 갈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곧장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이 멈추고 나서 움직여도 충분했으니까.
이 쇠로 된 차단막 따위는 나에게 전혀 걸림돌이 되지 못했고.
잠시 후.
쾅!
오른쪽 발을 들어 올려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리 찍었다.
앞과 양옆, 뒤를 막았던 통짜 쇠로 이뤄진 차단막처럼 일반 시멘트가 아닌지 크게 울리는 바닥.
하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우선 그렇게 구멍이 뚫린 밑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재빠르게 예의주시하고 있던 기감이 멈춘 곳으로 내달렸다.
***
이채산의 지하 서재실.
[티… 팀장님! 침입자가 바닥을 박살내고 곧장 지하 1층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뭐… 뭔 소리야!”
이채산과 함께 움직일 준비를 하던 한규철은 귀에 착용한 이어폰에서 울린 소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침입자는 그간 바닥과 천장을 박살내지 않고 앞에 펼쳐진 차단막만 박살내면서 움직였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달라진 움직임.
한규철로서는 당황을 넘어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자신들이 있는 곳이 바로 지하 1층이기에 더더욱.
그리고 한규철은 그 꺼림칙함을 이어폰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팀장님! 현재 침입자가 팀장님과 회장님이 있는 쪽으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꽝!
이어폰을 통해 수하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울린 굉음 소리.
그와 함께 한규철은 정상적인 문이 아닌 튼튼한 벽을 마치 수수깡처럼 파괴하며 등장하는 침입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
동시에 왠지 침입자의 노림수에 속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번뜩 들었다.
자신이 수하들을 데리고 이동하자마자 마치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 듯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그리고 그때 침입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
“찾았네?”
한규철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 목소리에서 앳된 소년을 떠올렸다.
물론 그 생각을 하면서도 손에 들린 권총을 그 침입자에게 겨누는 것은 잊지 않았다.
이미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
우선 그렇게 한규철은 이 엿같은 상황을 저주하면서 절규했다.
***
두터운 벽을 박살내고 드러난 공간에서 드디어 석인수 실장이 건네준 서류 속의 인물과 똑같이 생긴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이채산.
그리고 그 이채산을 향해 곧장 입을 열었다.
“이 밤중에 급하게 어딜 가는 길이었나 봐?”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능청스런 말투.
그런 나의 말에 이채산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이었군. 드비어스 본사가 동양인 한명에게 털렸다고 소문이 났을 때는 믿지 않았는데… 허. 도대체 너는 누구지? 아니, 명진과 무슨 관계지?”
“이야. 그게 소문이 났어?”
저벅저벅.
대답과 동시에 이채산에게 다가갔다.
단둘이 오붓하게 나눌 말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나를 막는 외침이 있었다.
“멈춰라!”
물론 외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채산을 둘러싼 경호원들로 보이는 자들 전부가 나에게 당장 발포라도 할 듯이 권총을 겨누었다.
“아니, 사채 시장의 큰 손이며 지하 경제의 거물인 것은 알겠는데. 무기 밀매업도 하는 거야?”
그만큼 여기까지 오는데 마주한 자들 전원이 권총이라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권총으로는 아니, 권총이 아니라 그 어떠한 무기도 나를 막을 수 없기에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쏴!”
탕. 탕. 탕. 탕.
아마 CCTV 같은 것으로 봤다면 알 것이다.
나에게 권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즉, 그럼에도 공격을 했다는 것은 모른다는 뜻.
하지만 왠지 아는 것 같았다.
나에게 총을 발사하는 와중에도 마치 통하지 않을 것을 앎에도 어쩔 수 없이 공격을 하는 양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우선 그 모습에.
휘적. 휘적.
마치 달라붙는 파리 떼를 쫓아내듯 오른 손을 들어 휘적휘적 거렸다.
물론 그 대충 휘적거리는 손짓만으로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들을 막는 것은 충분했다.
“…….”
“…….”
“…….”
멍한 표정을 짓는 자들.
그 자들을 향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대충 예상한 그림 아냐? 설마 아까 통하지 않은 것이 지금 통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그럼에도 여전히 대답이 없는 자들.
딱히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그들을 향해 발을 놀리면서 말을 내뱉었다.
“뭐… 한편으로는 이해해. 아무리 나쁜놈이라지만 경호 대상일 테니까. 하지만 권총을 들고 다니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아. 여기가 미국은 아니잖아? 그리고 앞에서 만났던 놈들은 죄다 다리가 박살이 났는데 너희들만 박살나지 않으면 앞에 있던 놈들이 억울하지 않겠어?”
그 말과 동시에 권총을 들고 있는 놈들의 발등을 그래도 짓밟았다.
당연히 한 놈도 빠짐없이.
“크억!”
“컥!”
“제… 젠장! 내… 내 발!”
순식간에 방안에 고통에 찬 신음이 가득 찼지만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 내뱉었다.
이것보다 더 한 것을 겪은 것이 나였으니까.
“쉿. 난 시끄러운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이제부터 우두머리인지 고용주인지는 모르지만 이채산과 대화를 나눌 텐데 시끄러워서 되겠어? 더욱이 다른 쪽 발은 지켜야지.”
“읍…”
“읍읍!”
내 말이 끝나자 순식간에 고통에 찬 신음은 사라졌다.
우선 그 상태로 이채산에게 다가갔다.
부들부들.
사정없이 몸을 떠는 이채산.
솔직히 처음에는 이 정도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나와의 트러블은 이채산이 아닌 그의 손자 이경영과 발생한 것이고.
하지만 결국 이경영이 저렇게까지 과한 욕심을 부리고 나대는 것은 이채산이라는 자의 존재 덕분.
그래서 그 근거를 부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있었다.
바로 이채산이 내 생각보다 더 쓰레기라는 점.
우선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내친걸음이기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이채산에게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재산이 좀 된다면서? 대한민국의 지하 경제의 거물이자 사채 시장의 어마어마한 큰 손이라고 소문이 쫙 나있더라고.”
“…….”
말이 없는 이채산.
하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당연히 은행에 맡기지는 않았을 것 아냐? 그리고 집에 이정도로 엄청난 투자를 할 정도라면… 굳이 다른 곳에 숨기지도 않았을 테고.”
“…….”
이채산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굳이 재촉하지는 않았다.
이채산이 내 손에 있는 이상 그는 결국 모든 것을 토해내게 될 테니까.
내가 그렇게 만들 자신도 있고.
우선 그런 이채산을 내버려 두고 이곳 서재실의 한쪽 벽면으로 다가섰다.
말 그대로 벽면.
하지만.
“이야. 진짜 감쪽같네. 안에 사람이 없었더라면 나도 몰랐을 거야.”
내 기감이 레이더는 아니기에 감춰진 공간을 감지해 내는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존재는 충분히 파악이 가능했다.
그래서.
쾅!
벽면을 향해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고 그러자 곧 새로운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쥐새끼마냥 숨어 있던 자도.
끝
외전 22. 홍주영 (21).
이채산의 서재실에 있던 비밀 공간.
그리고 그 비밀 공간에 숨어 있었던 자.
그 자가 나에게 발각되자마자 고개를 조아리며 속사포 같이 말을 쏟아냈다.
“압니다! 저는 이채산 회장님을 아니, 이채산 저 자를 10년 가까이 보필하며 그간 범죄 자금을 비롯한 비자금과 은닉 자산을 관리해 왔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살려만… 살려면 주시면 모든 것을 털어 놓겠습니다!”
“호오.”
이채산을 정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당연히 죽이는 거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분명 그렇게 해왔고.
하지만 이번에는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권총을 들고 달려드는 자들의 다리 한쪽을 망가트리는 수준에서 멈춘 것이고.
대신 가진 모든 것을 탈탈 털어 완벽한 거렁뱅이로 만들자는 선택을 내렸다.
현재 그 선택에 가장 부합되는 자가 등장을 한 것이고.
그래서 그자를 일으켜 새우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 나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니까. 대화가 통하는 자를 좋아하고.”
동시에 내 뒤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뒤를 바 봐. 조용하라고 했더니 다들 조용했고 결국 다리 한쪽만 박살났지 생명에는 지장이 없잖아. 나는 그렇게 무식한 자가 아니야. 물론 종종 무식하게 변하기도 하지. 그리고 그럴 때는…”
말끝을 흐림과 동시에 오른손을 들어 올려 정확히 반대편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순간 내 검지에서 얼음이 생성되더니 그대로 반대편 벽을 향해 날아갔다.
쾅!
우선 이 서재실은 굉장히 컸다.
책장마다 사다리가 존재하는 거의 3층 높이에 맞먹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거대한 한쪽 벽이 완벽하게 박살이 남과 동시에.
파사사삭.
엄청난 얼음이 생겨났다.
부서지고 찢겨진 어마어마한 양의 책장과 책들을 그대로 껴안은 얼음들이.
그 후 시선을 내 왼손에 붙잡힌 자에게 돌리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처음부터 안했으면 모를까 도중에 딴 마음을 품는 자는 나는 질색하거든.”
“무…물론입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을 털어 놓겠습니다!”
“오케이. 좋아. 그럼 시작해 보자고.”
“현재… 이 비밀 공간의 길을 따라 움직이면 더 지하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그 지하에 비밀 창고가 존재합니다!”
우선 그 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오른손을 들어 외부와 이곳 서재실로 이어진 문을 가리켰다.
그러자 직전보다 아주 작은 얼음 알갱이가 발사되었고 그 얼음 알갱이가 문에 부딪치자마자.
파사사삭.
그 문을 박살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 부분을 완벽하게 뒤덮는 얼음이 생겨났다.
즉, 밀폐된 공간으로 변한 지하 서재실.
동시에.
따닥. 따닥.
덜덜덜덜.
분명 직접적으로 얼음과 맞닿지는 않은 상황.
하지만 내 손에 붙들린 자는 물론이고 서재실 가운데에 있던 경호원들과 이채산까지 이빨을 부딪치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당연히 추위 때문에.
우선 그 모습에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걱정 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혹여나 해서 하는 말인데 괜히 저 얼음들 근처로 다가가 손댈 생각은 하지 마. 그 즉시 냉동인간이 될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내 왼손에 붙잡힌 자의 안내를 받으며 비밀 공간을 따라 지하로 움직였다.
잠시 후.
비밀 공간을 따라 지하로 더 내려갈수록 복도라 칭할 수 있는 길은 더 커졌고 곧 엄청난 크기의 지하 공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얼핏 봐도 지상에 드러난 공간보다 지하의 공간이 더 큰 상황.
그래서 절로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도대체 얼마를 해먹었기에 이런 공간을 만든 거야?”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대한민국의 지하 경제는 절대 작지 않습니다. 한해 굴러가는 자금만 수십조 원이 훌쩍 넘어갈 정도로요. 이채산은 그 지하 경제를 10년 이상 손에 틀어쥐고 있던 자입니다. 더욱이 사채 시장까지 감안하면 어쩌면 이채산은 비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돈이 많은 자일지도 모릅
니다.”
“역시 어딜 가나 합법보다 불법이 돈이 되긴 되나봐.”
“…….”
이채산 밑에서 10년 가까이 집사 노릇을 했던 자는 나의 그 말에는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도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고.
어쨌든 그렇게 조금 더 이동을 하자.
“바로 이곳이 1번 창고로 이채산이 그간 모든 골동품과 그림, 도자기 같은 것을 모아둔 곳입니다.”
“그렇지. 아무래도 불법적인 재산 형성에 예술품이 빠질 수가 없지.”
작은 부피에 비해 엄청난 가치를 지닌 예술품들.
당연히 불법적인 거래에 선호되는 아이템일 수밖에 없었다.
주는 자나 받는 자나.
그래서 대충 예상했고.
우선 그런 내 말이 끝나자마자.
삑. 삑. 삑. 삑.
나를 여기까지 안내했던 자가 창고에 다가가 비밀 번호를 누르자 곧 거대한 철문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물론 필요 없는 행동이긴 했다.
주먹 한방으로 뚫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수많은 예술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많이도 모아 놨네.”
절로 감탄이 새어나왔다.
박물관이 눈앞에 펼쳐졌으니까.
“그런데… 이것들을 어떻게 밖으로 가지고…”
하긴 딱 봐도 사람 갖고 나가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더욱이 나는 한 명이었고.
그러나.
“특별히 신기한 것을 보여줄게. 잘 봐. 어디서도 못 볼 장면일 테니까.”
굳이 예술 작품 하나 하나 손댈 생각은 없었다.
귀찮을 뿐이니까.
그래서 1번 창고를 통째로 내 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거대한 1번 창고.
“!!!”
옆의 이채산의 집사가 그 모습에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익히 예상한 모습이기에 무시했다.
그저 다른 곳으로 움직이자고 독촉 할 뿐.
우선 그렇게 1번 창고에 비하면 작지만 금을 비롯한 온갖 보석이 들어 있는 2번 창고와 달러를 비롯해 엔화와 원화 등이 한가득 들어있는 3번 창고까지 통째로 전부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 후 마지막 창고 앞에 서자.
“이곳 창고의 비밀 번호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이채산이 직접 관리를 하는 유일한 창고이고요. 다만 그간의 거래 장부와 대출 장부 등 이채산에게 무척이나 귀중한 자료가 있는 것으로 알고만 있습니다.”
“그래? 그럼 꼭 갖고 가야지.”
그 말과 동시에 다른 곳보다 유독 두꺼워 보이는 창고 아니, 금고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그때.
“안 돼! 내… 내거야! 전부 내거라고!”
물론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유일하게 다리가 박살나지 않은 자이기도 했고.
말인즉슨 이채산.
그자 고함을 내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내 예술품! 내 보석! 내 돈! 그간 모은 내 것을 전부 내놔! 내가… 내가 어떻게 모은 건데!”
목숨을 거둬들이는 것보다 거렁뱅이로 만들겠다는 선택.
아무래도 그 선택은 옳았던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 내 앞에서 겁에 질린 상태로 몸을 사정없이 떨어대던 이채산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이 벌게져서 호기롭게 외쳤으니까.
우선 이채산의 그 모습에 그가 들을 수 있도록 또랑또랑하게 입을 열었다.
“걱정 마. 예술품과 보석, 돈만 가져갈 생각은 아니니까.”
동시에 곧장 거대한 금고에 주먹을 날렸다.
쾅!
크나큰 굉음.
당연히 굉음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아무리 튼튼한 금고라도 내 주먹을 견디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그 후 구멍이 난 금고에 손을 집어넣어.
쩌저적. 쩌저적.
마치 김밥을 말 듯 통짜 쇠를 외곽으로 말며 커다란 입구를 만들었다.
“워… 뭔 놈의 서류가 이렇게 많아?”
안에는 확연히 그 가치가 겉으로 드러나는 예술품도 보석도 돈도 없었다.
그저 서류 뭉치만 한 가득 이었지.
하지만 이것들이 진짜배기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채산이 직접 관리한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이.
“안 돼! 그것들에는 손대지 마!”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찬 고함 소리.
하지만 무시하고 다른 창고들과 달리 통째로 벽에 박혀 있는 그 금고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우지직. 우지직.
힘을 주어 금고를 벽에서 떼어냈다.
당연히 떼어낸 금고는 그대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고.
털썩.
“아… 안 돼! 절대로.. 안 돼!”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절규하는 이채산.
하지만 무시하고 여기까지 나를 안내한 이채산의 집사에게 입을 열었다.
“보자… 그럼 더 있나?”
“아닙니다. 이채산은 다른 사람을 절대 믿는 않는 자입니다. 모든 재물도 자신의 손에 쥐고 있어야 만족을 하는 자였고요. 그래서 저마저도 외부로 나갈 때는 모든 옷을 벗고 X-ray를 통과해서 품에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 후에야 나가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야. 성격 한번 화끈하네. 그래서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지만.”
완벽한 거렁뱅이로 만들기 위해서 굳이 발품을 더 팔지 않아도 되는 상황.
당연히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한 움큼 꺼내들었다.
다이아몬드를.
그리고 그걸 이곳까지 나를 안내하며 이것저것을 설명해준 집사에게 건넸다.
나지막한 말과 함께.
“이건 선물이야. 나로 인해 직장도 잘렸는데 은퇴 자금은 두둑이 챙겨야지.”
“가… 감사합니다.”
“뭘 그것 가지고. 나도 알고 보면 경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거든. 그럼 가봐. 막아놨던 얼음은 전부 사라진 상태니까.”
이채산이 스스로 이곳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순간.
막아놨던 얼음 전부를 해제시켰다.
더 이상 막을 필요는 없으니까.
“저… 정말로 감사합니다!”
우선 그렇게 이채산의 집사를 보내줬다.
그리고 단 둘이 남은 지하 공간.
이채산은 직전의 분기탱천한 모습은 사라지고 마치 얼이 빠진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간 평생을 모아왔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렸으니까.
더욱이 문제라면 내 능력을 본 순간 되찾을 가능성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테고.
툭. 툭.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해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고.
그래서 쓰러져 있는 그의 등을 마치 힘내라고 격려하듯이 살짝 두드리고 발걸음을 그래도 출구로 돌렸다.
우선 그렇게 다시 서재실로 발을 내딛자 이미 전원이 사라진 상태였다.
당연히 알고 있었기에 개의치 않았고.
그런데 그때.
“할아버지? 거기 할아버지에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바로 상상으로만 끝내야 할 욕심을 외부로 표출하여 이 모든 일의 시발점 이였던 이경영.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충분히 쓸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블링크.’
굳이 이경영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이채산의 저택을 빠져 나왔다.
물론 꽤나 많은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미 드비어스의 본사를 털었던 일이나 미국이라는 국가를 하나의 기업에 애걸복걸하게 만든 이상 티가 날 수밖에 없으니까.
대신 모자를 착용하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씀으로써 최소한의 대비를 하기도 했고.
***
다음날.
청담동 본가.
똑. 똑. 똑.
노크하는 소리에 들어오라는 말을 했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석인수 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쩐 일인가요?”
“아무래도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뭘요?”
“암암리에 도는 소문인데 어젯밤에 대한민국을 주름잡던 지하 경제의 거물이자 사채 시장의 큰손이었던 이채산이라는 자의 집이 몽땅 털렸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네. 물론 검찰이나 경찰에서 수사를 하지는 않을 거라고 합니다. 피해를 당한 자가 신고를 할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쯧쯧쯧. 그래도 신고를 해야지. 그간 모은 재물이 한두 푼이 아닐 텐데 억울하겠네요.”
“그러니까요. 비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내에서 제일 부자라는 소문이 돌던 자였으니… 도둑만 횡재한 것 같습니다.”
“그렇겠네요.”
“그럼 막내 도련님.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석인수 실장에게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석인수 실장도 나에게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고.
잠시 후.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 일이 좀 적응이 됐나?”
[네! 이제 흐름을 파악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다른 일을 맡길 생각이었거든.”
[네? 다른 일이요?]
“어. 이번에 서류 뭉치를 한가득 가져왔는데 이걸 좀 확인 해줘야겠어. 내가 할 수는 없잖아.”
[무… 물론이죠. 그럼 곧 귀국 하겠습니다.]
“그래. 아참, 그리고 이번에 명진에서도 또 사람을 빼갔다며? 눈치가 장난 아냐. 고급 인재를 너무 빼간다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제는 외부에서 직접 스카우트를 할 기반을 다졌습니다.]
“다행이네. 그럼 들어와서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홍주영 회장님.]
그렇게 시에라리온에 있는 오태석과의 통화를 끝냈다.
이번에 가져온 것의 분석을 석인수 실장에게 맡길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는 아빠를 보필하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바빴으니까.
그리고 이럴 때 써먹으려고 오태석에게 엄청난 연봉을 주는 것이었고.
우선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더 이상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끝
외전 23. 홍주영 (22).
이채산의 저택을 탈탈 털어온 뒤로는 평범한 아니,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물론 이 일의 시발점인 이경영?
전학 수속을 밟고 다른 일반 고등학교로 전학 갔다는 말 이후로 딱히 전해들은 것은 없었다.
굳이 일부러 찾아서 들을 생각도 없었고.
그것을 빼면 특별한 일은 없었다.
아,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바로 시에라리온에서 복귀한 오태석.
[이… 이… 장부는 대한민국에 진출을 한 일본 스미모토 캐피탈에 581억 엔을 빌려줬다는 증서입니다!]
[이건 한마음 저축은행에 1,900억 원을 빌려줬다는 증서이고요!]
[이건 테헤란로에 있는 평가액 1조 5,700억 짜리 71층 골든크로스 타워의 차명 등기 입니다! 그러니까 서류상 주인은 따로 있지만 진짜 주인은 이 차명 등기의 주인으로 상당한 벌금이 부과 되겠지만 언제든지 골든크로스 타워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것은!]
물론 이채산의 저택에서 가져온 서류 전부가 위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의미 없는 혹은 기한이 지나 효용 가치가 사라진 서류도 꽤 많았다.
저택을 어지간한 요새 부럽지 않은 수준으로 꾸밀 만큼 꽤나 철두철미한 성격 덕분인지 연도별로 거래 장부를 세심히 정리해 놨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제외 하더라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더욱이.
[전부 채권 형식의 증서입니다. 그것도 국체에 가까운 채권요. 즉, 굳이 이채산이 아니더라도 이 증서만 갖고 있는 자가 돈을 달라고 하면 무조건 내줘야 합니다. 그들은 이 증서 앞에 약해질 수밖에 없는 채무자이니까요. 하지만…]
잠시 말을 멈추고 뜸 들이는 오태석.
물론 왜 그런지 모르지는 않았다.
이 증서를 발부한 자들도 이채산이 탈탈 털렸다는 것을 알 테고 그 말인즉슨 생 깔 확률이 무척이나 높다는 뜻이니까.
아니, 무조건 모른 척을 할 것이다.
이 채권으로 봐도 무방한 증서들에는 분명 주인에 상관없이 현재 소지한 자에게 보장된 금액을 무조건 줘야한다는 법적 근거가 있지만 그들은 이 증서를 대한민국의 지하 경제를 10년 이상 장악한 힘 있는 이채산을 보고 발부한 거니까.
그 말인즉슨 증서를 가져온 자가 과거 이채산보다 힘이 약하거나 혹은 영향력이 없다면 아예 무시해버릴 것이고.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공론화해서 논란을 일으킬 것이다.
그게 전액을 지급하는 것보다 싸게 먹힐 테니까.
지금 오태석이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걱정 마. 그들은 전투 토해놓게 될 테니까.”
[혹여 명진의 이름으로 나서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잘 걸렸다고 할 겁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인 명진이 음성적인 뒷거래를 했다는 꼬투리를 잡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오태석의 걱정이 가득 담긴 말.
그 말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재 오태석 네가 앉아 있는 그 자리가 명진의 힘으로 앉은 자리일 것 같아?”
[…….]
대답이 없는 오태석.
하지만 딱히 대답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정도로 이해 못할 오태석이 아니니까.
여하튼 그렇게 그날을 정리했다.
***
그 시각 테헤란로 대로변에 위치한 71층 골든크로스 타워 최상층.
어지간한 대기업 회장실 부럽지 않게 꾸며진 공간에서 누군가 휴대폰을 든 채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서 크나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네! 그렇다니까요! 이채산은 재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당연히 뭘 해볼 의지조차 없었고요!]
“그 도둑놈 아니, 도둑님은?”
[현재 이채산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도둑…님을 목격했다는 자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이채산의 장부들이 묻힐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물론입니다! 99% 아니, 100% 묻힐 겁니다. 대한민국의 지하 경제를 10년 이상 손에 꽉 쥐고 있던 이채산이니까 상대방이 그런 서류를 써준 거지 다른 자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말인즉슨 그걸 가져간 자가 그 서류를 기초로 해서 돈을 받으러 온다 해도 아무도 돈을 내주지
않을 거라는 뜻이고요. 그자는 이채산이 아니니까요. 그럼 현재 회장님이 차명으로 갖고 있던 골든크로스 타워는… 이제 회장님 것이 된 겁니다!]
“크크크. 수고했어. 정말 수고했어. 내가 이검사는 절대 잊지 않을게. 언제 한번 찾아와. 거하게 쏠 테니까.”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회장님!]
“그래.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은 한용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테헤란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창가로 다가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크하하하. 평생을 이채산 그자의 똥구멍을 핥으면서 살았는데 드디어… 드디어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무려 평가액이 1조가 훌쩍 넘는 테헤란로에서도 알아주는 건물인 골든크로스 타워의 등기상 주인인 한용태.
그만큼 겉으로 드러난 외관만 봤을 때 한용태는 대한민국 내에서도 1% 아니, 0.001%에 해당하는 부자였다.
하지만 등기상 주인일 뿐 진짜 주인은 따로 있는 상황.
그래서 한용태는 정말 조용히 살았다.
건물주로 뉴스 혹은 신문에 한 줄이라도 기사가 나서 골든크로스 타워에 이목이 쏠리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언감생심 골든크로스 타워를 실제로 갖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고.
그 주인이 다름 아닌 이채산이었으니까.
그런데 넝쿨째 골든크로스 타워가 굴러 들어온 상황.
“됐어! 이제 나도 진짜 부자야! 부자라고!”
그렇게 골든크로스 타워 최상층에는 한동안 기쁨에 찬 함성이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다.
***
며칠 뒤.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본원.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을 당한다지만 국정원은 당연히 이채산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10년 전부터 대한민국 지하 경제를 한손에 쥐고 있었으며 사채 시장의 큰 손이었으니까.
그만큼 굴리는 자금도 어마어마했고.
하지만 이채산에 대해 앎에도, 그가 불법적인 일을 많이 자행한다는 것을 앎에도 국정원은 나서지 않았다.
물론 나서지 않는 이유도 당연히 있었다.
바로 그의 돈을 받아먹는 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
국정원장마저도.
둘째로 그의 존재가 국정원 입장에서 그다지 손해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산에 성체가 아니더라도 여러 마리의 호랑이가 날뛰면 관리 자체가 힘들 수밖에 없었으니까.
혹여나 호랑이들끼리 영역 다툼이라도 벌이면 이래저래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런데 호랑이가 한 마리다? 더욱이 대화가 통화는 호랑이다?
국정원 입장에서 편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낮고 설사 문제가 생기더라도 빠른 수습이 가능하니까.
물론 국정원 내부에서도 결국 쓰레기에게 개처럼 길들여지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심심찮게 나왔지만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우선 국정원장을 비롯해 윗물들에게 이채산의 돈이 꼬박꼬박 꽂혔으니까.
여하튼 그런 국정원에게 이채산의 몰락은 크나큰 화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더더욱.
하지만 가장 큰 문제라면 역시 돈을 받아먹었다는 것이 기록된 장부.
철두철미한 이채산의 성격에 꼬박꼬박 정리를 해놨다는 것을 모를 국정원 아니, 국정원장과 과장, 차장들이 아니었기에 수뇌부들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국정원은 철저하게 조사에 들어갔다.
물론 굳이 뇌물 장부가 아니더라도 이채산의 몰락은 꼭 조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리고 오늘이 바로 국정원 자체 1차 결과 발표날.
국정원장을 비롯해 국내 문제가 아님에도 제 2차장까지 참석한 상태에서 발표가 진행됐다.
“우선 이채산의 저택에 설치된 총 517개의 CCTV 영상을 전부 수거하였습니다. 물론 몇 개는 파손 등으로 식별이 불가능했지만 워낙 CCTV가 많아 의문의 존재 ‘X’를 확인하는 데는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그럼 517개의 CCTV를 통해 시간 순으로 정리한 화면을 보시겠습니다.”
국정원 내의 특수 분석팀을 이끌고 있는 조영수 팀장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 한명의 모습이 드러났다.
동시에.
쾅!
국정원 내에서 ‘X’라 칭한 존재의 주먹 한방.
그 한방에 튼튼한 외벽에 큼지막한 구멍이 생겨나는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 발생했지만 아무도 조영수 팀장의 말을 끊지 않았다.
질문은 나중에 해도 충분하니까.
그 후로 총알을 손으로 막는 모습이며 발을 살짝 내리 찍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다리를 박살내는 영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물론 여전히 소회의실에는 침묵이 자리했다.
그리고 그때 스크린 속에서 새어나오는 소리 하나.
아무래도 조영수 팀장이 일부러 조작을 했는지 그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큰 소리로 새어나왔기에 소회의실에 참여한 모두가 듣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바로.
[사실이었군. 드비어스 본사가 동양인 한명에게 털렸다고 소문이 났을 때는 믿지 않았는데… 허. 도대체 너는 누구지? 아니, 명진과 무슨 관계지?]
[이야. 그게 소문이 났어?]
“명진?”
“방금 이채산 회장이 명진이라고 언급한 겁니까?”
‘X’가 눈앞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손으로 잡을 때도 침묵했던 국정원 간부들이 앞 다퉈 입을 열었다.
영상속의 이채산 회장이 정확히 명진을 언급 했고 ‘X’로 명명한 의문의 존재가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오히려 긍정이라 봐야하는 상황.
그리고 그때.
“네. 맞습니다. 이채산 회장은 정확히 의문의 존재 ‘X’에게 명진을 언급했고 ‘X’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명진이라면…”
“이번에 엑슨모빌과 샤브렌을 통해 원유를 가져왔지.”
“아니지. 원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그들과 같이 온 자들을 떠올려봐.”
“…미국 상부주 장관과 내무부 차관 그리고 현 윌리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말도 부족한 그림자에 가까운 토마스 타일러까지 왔지.”
“맞아. 그리고 그들이 가장 먼저 만난 곳이 명진이었고.”
웅성웅성.
와글와글.
순식간에 국정원 소회의실이 도떼기시장 저리가라 할 정도로 시끄러워졌다.
그러자.
탕!
가장 상석에 앉아있던 국정원장이 테이블을 내려침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모두 조용히 하세요! 논의는 영상을 끝까지 보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호통으로 장내를 정리한 국정원장.
그 후 시선을 곧장 이 모든 것을 준비한 조영수 팀장에게 줬다.
그 시선을 받은 조영수 팀장이 다시 스크린에 비추는 영상을 플레이 시켰고.
쾅! 쾅!
우선 그 뒤로도 모두들 처음보다 더 경악스런 표정으로 영상을 지켜봤다.
사람 손에 얼음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 작디작은 얼음이 어지간한 미사일 이상의 파괴력을 가졌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사람이 수백 명 이상 너끈히 들어갈 것 같은 창고도 순식간에 ‘X’의 품에 들어가는 것도.
“…….”
“…….”
“…….”
영상이 끝났지만 아무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나지막한 소리 하나가 소회의실을 감돌았다.
“갑작스럽지만 북극에 생겨난 어마어마한 빙하가 생각나네요. 한반도보다 무려 2배 이상 큰 빙하였죠?”
소회의실에 참여한 모두는 맨 파워가 압도적인 국정원 내부에서 유일하게 우먼 파워를 선보이며 3개의 국외 파트 중에 하나를 담당하고 있는 한소정 차장의 말이 어떤 말인지 모르지 않았다.
결국 ‘X’도 얼음을 사용했으니까.
그리고 한소정 차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미국이라는 최강국이 명진이라는 대한민국 내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분명 별 볼일 없는 기업에 엄청난 선물을 안겨주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제 알 것 같네요. 미국은 알았던 거죠. 혹은 그자 ‘X’에게 된통 혼쭐이 났거나요. 저는 왠지 후자
로 여겨지네요. 북극의 어마어마한 빙하도 결국 ‘X’의 무력시위 같고요.”
한소정 차장의 말에 아무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분명 끈도 중요했지만 본인의 실력이 없다면 절대 오르지 못할 자리인 것도 맞았으니까.
그러다 국정원장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그 ‘X’가 명진에 속한 자라는 건가?”
그 말에 한소정 차장이 곧장 입을 열었다.
“아뇨. 단순히 속한 자가 아니라 명진의 직계일 것입니다. 제가 봤을 때는 홍기영, 홍수영, 홍주영 셋 중에 하나일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의 대응 반향은?”
“따로 있겠습니까? 최강대국인 미국도 굴복시켰습니다. 그런 자를 상대로 설마 저희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
한소정 차장의 말에 국정원장은 딱히 입을 열지 않았다.
너무나 직설적이지만 정답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한소정 차장의 말이 더 이어졌다.
“축복으로 받아들여야지 않을까요? 저런 자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에요. 제가 대통령이라면 만세를 부를 것 같습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국정원장의 그 대답을 끝으로 국정원 소회의실에 진행된 회의는 종료됐다.
국정원장은 곧장 청와대로 이동했고.
끝
외전 24. 홍주영 (23).
일본 도쿄.
미국에는 CIA가 있고 한국에는 국정원이 있다면 일본에는 일명 내각정보실이라 불리는 총리 직속 기관이 존재했다.
그리고 총리 직속 기관인 만큼 당연하다면 너무 당연하겠지만 내각정보실의 파워는 엄청났다.
높은 자리에 앉은 자치고 정보를 선점하고 통제하는 것을 싫어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실제로 새로이 총리에 취임하고 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내각정보실에 자신의 사람들로 꽂는 것이었고.
물론 한때는 내각정보실의 파워가 약했던 적도 있었다.
분명 한번 총리로 선출되면 임기가 4년이긴 했지만 총선을 통해 집권당이 패배하게 되거나 내각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2년 혹은 1년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총리도 꽤 있었고.
하지만 그건 극우 성향의 현 아베조 총리와는 전혀 딴 세상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벌써 3번째 연임에 성공했고 곧 4번째 연임에 성공할 거라는 것에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즉, 현재의 내각정보실은 그 어떤 시기의 내각정보실보다 강력한 파워를 보유했고 더불어 아베조 총리의 완벽한 손과 발이 된 상태였다.
10년이 넘도록 새로운 신임 총리가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내각정보실의 맨 위에서부터 가장 말단까지 완벽하게 아베조 총리의 사람들로 꽉꽉 채워진지 오래였으니까.
여하튼 아베조 총리는 오늘도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아니, 신뢰 했었던 내각정보실의 스치하라 국장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스치하라 국장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한국! 한국! 한국! 요즘 내 귀에 항상 한국만 들려!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것이 뭐냐고!”
“…….”
스치하라 국장은 아베조 총리의 호통에 침묵을 지켰다.
이미 몇 번 내각정보실의 의견을 타진한 적이 있지만 죄다 돌아온 답변은 질책뿐이었으니까.
물론 그 와중에 정정해 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한국이 아니라 명진이라는 것을.
그만큼 이미 미국이 한국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그 한국이라는 국가에 속한 명진을 살뜰히 챙긴다는 것은 세 살배기 아이도 알 정도로 소문이 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스치하라 국장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스치하라 국장의 행동에.
“주둥이를 다물고 있지 말고 무슨 말을 하라고! 미국 정치권에 대고 있던 줄이 죄다 끊어져 나갔는데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돼! 당신이 그러고도 내각정보실 국장이야? 어? 아니, 그래. 그것은 그렇다고 쳐! 그런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류 국가이자 1류 국민이 버티고
있는 일본보다 왜 2류 국가이자 2류 국민으로 이뤄진 한국에 미국이 손을 내밀었냐고!”
“…….”
아베조 총리의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호통.
하지만 스치하라 국장도 억울했다.
이미 보고를 했으니까.
그것도 상세하게.
[-미국 정치권에 연결된 로비스트들이 전부 끈 떨어진 신세가 된 것은 한국 더 정확히는 한국에 속한 명진이라는 기업과 연관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우리쪽 로비스트들이 전부 잘려나간 후에 보인 미국의 움직임이 전부 명진을 향해 있습니다.]
[-드비어스 본사가 동양인에 완전히 털리고 그 동양인 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자가 명진에 적을 두었던 자였습니다. 아래의 사진을 첨부합니다.]
이 바닥에 오랫동안 몸을 담갔던 스치하라 국장은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두 번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즉, 명진에 미국마저도 굴복 혹은 구애를 할 수밖에 없는 뭔가가 있다는 보고를 했지만 아베조 총리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일본에 없는 것을 한국 같은 곳은 절대 가질 수 없다면서.
그래서 스치하라 국장은 직전에 내각정보실로 들어온 정보도 아베조 총리 앞에서 털어 놓지 못했다.
바로.
[대한민국의 지하 경제를 장악한 이채산이라는 자가 몰락을 했습니다. 몰락할거라는 사전 기미가 전혀 포착된 바 없기에 집중 조사에 들어가겠습니다.]
[보고 1.
-공권력의 개입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채산의 몰락에 그쪽에서 더 당황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보고 2.
-특이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초인. 그러니까 손으로 총알을 막고 손에서 얼음을 내뿜으며 거대한 철판마저도 종잇장처럼 찢어 갈길 수 있는 그런 초인이 등장해 이채산의 모든 것을 가져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보고 3.
-보고 2에 언급한 이야기의 신빙성이 의심되지만 그로 인해 한 가지 추론이 가능했습니다. 바로 북극에 갑자기 등장한 엄청난 양의 빙하. 그리고 갑작스레 변한 미국의 움직임. 즉, 어쩌면… 정말로 대한민국에 초인이 등장을 하지 않았나라는 추측을 하였습니다. 더욱이 그 초인이 실존
한다면 대한민국의 명진이라는 기업과 연관된 자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내각정보실 입장에서 이채산의 몰락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그런 일이 절대 아니었다.
이채산 그는 대한민국의 지하 경제를 한 손에 움켜쥔 자였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데 내각정보실 더 나아가 일본 정부 차원에서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고.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그렇듯 경제라는 것도 음지가 커질수록 양지는 줄어들게 되고 그로인해 경제가 파탄 나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흐림일 수밖에 없었다.
필리핀이나 이탈리아처럼.
당연히 내각정보실은 대한민국이 그렇게 됐으면 하는 심정으로 이채산을 도왔고.
그런데 하루아침에 상당한 공을 들였던 이채산이 몰락한 상황.
즉, 조사는 필연적이었고 내각정보실은 거기에서 또다시 명진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명진에 정말로 뭔가 숨겨진 것이 있다는 보는 것이 100%인 상황.
하지만 스치하라 국장은 이와 관련해서 아베조 총리에게 입을 열지 않았다.
통하지 않을거라는 것이 너무나도 확실했으니까.
그래서 스치하라 국장은 평소에 그랬듯 묵묵히 아베조 총리의 분노를 몸으로 받아들였다.
***
그 시각 청담동.
“흠. 저렇게 자신을 봐달라고 노력을 하는데… 가 줘야지. 별거 아닌데 미국에 맡기기도 뭐 했고.”
내 주변을 감시하다가 걸려 된통 당했던 미국.
그런데 그 미국의 행동을 답습하는 곳이 있었다.
물론 어렵지 않게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정체를 숨기려했던 미국과 달리 지금 나를 감시하는 자들을 딱히 정체를 감출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아니, 감출 생각을 떠나 제발 여기 좀 봐달라고 애걸복걸한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그래서 쿨타임 제로 블링크로 방을 빠져나와 한 블록 떨어진 곳에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난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작은 종에서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장사는 잘 되지 않는지 빈 테이블만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에게 손님이 없다는 것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차피 원하는 손님은 딱 한명일 테니까.
바로 나.
그리고 이들은 커피숍을 운영함으로써 굳이 돈을 벌 필요가 없는 국정원에 속한 자들이었고.
그르륵.
우선 한가운데에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곳의 주인으로 보이자는 자가 내 쪽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손님.”
얼핏 보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모습.
하지만.
“옛날 다방도 아니고 요즘에 누가 이런 식으로 주문을 받아?”
“…….”
내 말에 대답이 없는 주인.
그러나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어차피 진짜 커피를 마시려고 온 것은 아니니까.
“됐고. 이제 그만 나오라고 해. 나를 보고 싶다고 그렇게 애걸복걸했잖아. 아, 그리고 간판도 커피숍이고 주문도 받으려고 했으니 커피는 있겠지? 시원한 것으로 한잔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주문을 끝내고 채 1분이 흐르기 전에 직전 주인으로 보이는 자가 아닌 약 50대로 보이는 여자가 커피를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그리고 함께 주문하신 홍주영님을 꼭 만나고 싶은 자도요.”
“그런가? 그럼 앉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와주셔서요. 솔직히 고민 좀 했습니다. 직접 찾아뵙고 싶었으니 그게 홍주영님이 원치 않는 행동일 수도 있으니까요.”
“뭐… 조심스런 행동이 나쁘지는 않았어. 나는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을 썩 반기지 않는 편이거든. 그런 손님치고 좋은 손님이 없었고.”
분명 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휴… 다행이네요. 위에 있는 양반들은 참을성이 부족한 양반들이어서 달랑달랑 했으니까요.”
좋아. 그럼 나를 찾은 이유부터 들어보지.”
“아, 제가 정신이 없었네요. 흠. 그럼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국정원 소속으로 국외담당 3차장으로 있는 한소정이라고합니다.”
“홍주영.”
이미 알 테지만 짤막하게 내 이름을 언급했다.
그러자.
“그 이름을 좀 더 일찍 알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우선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고 국정원 입장에서 무척이나 감사드립니다.”
“왜?”
“명진이라는 기업이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원유를 누구처럼 덤탱이를 쓰지 않고 들여옴으로써 석유 가격을 안정화 시켰으니까. 동시에 미래 정유와 대성 정유 거기에 한일 에너지와 마석 칼텍스도 살렸고요.”
한소정 차장이 말한 누구처럼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미 대성이 원유 선물을 평소의 5배 가격을 주고 샀다는 것은 소문이 날 만큼 났으니까.
더욱이 한소정 차장의 말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거기에 이번에는 이채산이라는 쓰레기도 치워주시지 않았습니까? 치우려고 해도 워낙에 이곳저곳에 돈을 뿌려놔서 쉽지가 않았습니다. 더욱이 돈을 위해서라면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던 자고요. 그래서 그런지 이채산의 몰락한 모습을 지켜보는데 앓던 이가
빠지는 것 마냥 무척이나 후련했습니다.”
“흠… 뭐 그쪽 좋으라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나쁜 것보다는 낫겠지. 그나저나 설마 그런 공치사를 하려고 나를 부른 것은 아니겠지?”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홍주영님을 도와 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도움도… 받고요. 아, 그리고 먼저 밝히자면 절대 사적이거나 특수한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도움 요청은 절대 아닙니다.”
“들어는 보지.”
굳이 이야기도 듣기 전에 거절을 할 필요는 없기에 차가운 아이스 커피를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소정 차장이 곧장 입을 열었다.
“우선 정부차원에서 홍주영님이 이번 이채산의 집을 털면서 아니, 쓰레기 이채산을 정리하는 와중 의도치 않게 획득한 모든 것은 홍주영님의 것으로 인정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한소정 차장이 재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이채산의 재산 형성 과정에는 불법적인 일이 태반이었습니다. 즉, 상당수가 범죄 자금이고 범죄 자금은 국고 환수가 원칙입니다. 물론 홍주영님에게 법의 잣대를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법에는 항상 융통성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저는 그 융통성이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어야 한다
는 입장이고요. 다만 홍주영님이 장부차원의 배려를 조금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한 언급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좋아. 다음은.”
상대방이 그 문제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 생각이 없고 그저 생색을 내는 수준으로 받아달라고 했기에 더 이상 따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꽤 많은 서류 혹은 장부를 얻었을 것입니다. 정부차원에서 그 서류 혹은 장부에 적힌 것의 효력을 인정하고 제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돈을 대신 받아 오겠다?”
결국 여러 수식어를 붙여도 딱 그것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대신 수금을 해주겠다는 것.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네. 국정원에서 책임지고 받아와 홍주영님 앞으로 가져다 놓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통령님은 정부 차원에서 홍주영님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한다고 하셨습니다. 별다른 천연자원이 없는 이 대한민국에 훌륭한 인적 자원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요.”
“흠… 굳이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 할 정도로 내가 못나지는 않은 데 말이야. 아, 걱정 마. 딱히 빈정 상한 것은 아니니까. 그 정도로 속이 좁지도 않고.”
내 말에 점점 얼굴이 굳어지는 한소정을 향해 걱정 말라는 듯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끝냈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그렇다 쳐도 두 번째는 확실히 구미에 당겼으니까.
그만큼 처음에는 미국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일에 더군다나 대한민국 내의 일을 미국에 맡긴다는 것이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아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국정원 아니, 대한민국.
딱히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좋아. 어떤 부탁인지 한번 들어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에 한소정 차장이 드디어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고 일본과 연관된 그 본론은 생각보다 꽤 길었다.
끝
외전 25. 홍주영 (24).
백번을 설명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우리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땅(대지)은 무척이나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집을 짓고 곡물을 수확하며 인간이 최소한의 삶의 유지를 위한 거의 대부분의 의식주를 해결 하는 곳이 바로 땅 위였으니까.
그래서 국가의 3요소에 국민, 주권 다음으로 영토가 포함이 되어있는 것이고.
하지만 요즘에 영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었다.
바로 바다.
왜냐하면 지구의 71%가 바다였다.
그 71%에 둘러싸여 채 30%도 차지하지 못하는 곳이 땅이었고.
거기에 경제가 발전하면서 국가 간의 거래가 활발해지는 상황에 아무리 트럭이나 기차, 비행기를 통한 운송 수단이 존재한다지만 배에 비할 바는 못 됐다.
그래서 전 세계적인 운송 물량의 80% 이상이 배를 통한 운송이었고.
더욱이 바다에서 잡히는 해산물의 양도 옛날에야 해안가 근처에서만 깔짝깔짝 대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대양을 활보함으로써 엄청난 해산물을 잡아들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더 있었다.
바로 바다 속에 잠들어 있는 어마어마한 자원들.
철이나 니켈 그 외 아주 값비싼 희토류를 물론이고 어마어마한 양의 천연가스와 원유가 잠들어 있는 것이 바다 속이었다.
물론 과거에는 기술력의 한계로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자원들이긴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기술은 점차 발전했고 지금은 그 깊은 곳에서 여러 자원들을 끄집어 올리는 것이 가능해진 상황.
그래서 북해 유전을 시작으로 멕시코 만의 유전, 페르시아 만의 유전까지 해저에서 뽑아내는 원유가 지구 전체 원유 생산량의 30%를 훌쩍 넘어선 지는 꽤 오래 된 상태였다.
앞으로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 더 깊은 곳에서 시추가 가능함으로써 그 비율은 계속 증가할 것은 뻔해도 너무 뻔했고.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도 해양 유전으로 주시하는 곳이 있었다.
아니, 주시뿐만 아니라 실제로 조사를 진행한 곳이 있었다.
바로 제주도가 포함된 5광구 밑에 위치한 7광구.
지금 국정원 소속의 한소정 차장이 언급하는 것이 바로 그곳에 관한 거였다.
“1970년에 [해저 광물 자원 개발법] 규정을 바탕으로 국내 대륙붕에 일곱 개 광구를 설정하고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범위는 일본 오키나와 해구 근처까지 달했습니다. 특히 일곱 개 광구 중에 7광구가 그랬습니다. 가장 거대한 광구였고요. 물론 그때만 해도 그 규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것저것 내 편의를 봐준다는 언급 뒤에 나에게 내심 어떤 부탁을 할지 궁금하기는 했다.
물론 대충 짐작 가는 것은 있었다.
한소정 차장이 이채산을 언급할 때 분명 일본의 앞잡이, 매국노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니까.
쓰레기라는 표현 외에 이채산을 향한 유일한 표현.
더욱이 그때 한소정의 억양은 분명 다른 때보다 더 억셌다.
마치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듯이.
단, 7광구가 언급될지는 몰랐지만.
우선 잠시 말을 끊고 내 눈치를 보는 한소정 차장에게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 내 행동에 한소정 차장이 곧장 다시 입을 열었고.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국제사법재판소에서는 대륙붕의 [자연적 연장 원칙]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즉, 우리나라의 남해안 대륙붕이 일본 오키나와 부근까지 이르고 있는 만큼 분명 오키나와 부근이 우리의 영해는 아니지만 바다 속의 대륙붕만큼은 우리의 권리가 보장되는 영역
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우리의 움직임에 일본은 화들짝 놀랐고 강력한 반발을 했습니다. 하지만 방금 언급했듯이 국제사법재판소는 대륙붕의 한계선을 인정하는 [자연적 연장 원칙]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기에 일본은 다른 패를 꺼내 들었습니다. 바로 50 대 50의 지분율로 1978년부터 2028
년까지 50년 동안 7광구를 공동으로 개발을 하기로요.”
“그래서?”
“그 당시 정부는 일본 측의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분명 과학 기술력으로 보나 자본 상태를 보나 일본이 월등히 앞섰으니까요. 거기에 분명 대한민국의 대륙붕이 일본 오키나와까지 뻗어 있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었고요. 하지만 곧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무슨 문제?”
“바로 바다의 헌법으로 봐도 무방한 [유엔 해양법 협약]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즉, 일본과 공동개발 협정을 체결했을 당시와는 달리 [유엔 해양법 협약]이 발효되면서 대륙붕 경계 확정이 지형보다 거리에 기초한 상호 협의를 중시하게 됐습니다. 그즈음 국제사법재판소의 대륙
붕 경계 확정에 있어 [자연적 연장 원칙]이 힘을 잃었고요. 물론 그렇다고 대륙붕 경계 확정이 갑작스레 [유엔 해양법 협약]을 기초로 한 거리로 결정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유엔 휘하에 대륙붕 한계 위원회(CLCS)라는 조직이 존재하고요. 하지만 분명 처음에 언
급했듯이 바다의 헌법으로 봐도 무방한 [유엔 해양법 협약]은 각국의 그 어떠한 해양법보다 강력한 힘을 갖췄고 그 힘은 일본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공동개발을 위한 과학 기술력과 자본을 갖췄기에 빨리 7광구를 공동개발하자는 우리 측의 요구를 일본이 묵
살하는 중이고요. 2028년이 되면 공동개발 협정이 만료되고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른 지형보다 거리에 의한 대륙붕 한계선이 정해지면 오키나와에 근접한 7광구의 거의 대부분이 일본 수중으로 들어가게 될 테니까요.”
한소정의 긴말.
그 긴 말이 끝나자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가? 하지만 내가 일본이라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 같은데? 이제 몇 년 안 남았잖아. 몇 년 만 참으면 [유엔 해양법 협약]에 의거하여 대한민국을 배제하고 사우디아라비에서 묻힌 매장량만큼의 원유와 천연가스를 홀로 얻을 수 있는데 굳이 이제와 같이 할 필요는 없겠지. 일본이
멍청이도 아니고 말야.”
일본의 행동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따졌을 때를 언급한 것이었다.
힘없는 국가의 비애이기도 했고.
더욱이 이제와 느낀 건데 내 눈앞의 한소정 차장은 생각보다 연기가 뛰어났다.
그만큼 나도 모르게 살짝 한소정 차장의 말에 동화가 됐다.
분명 앞에서 이채산을 언급하며 내뱉은 일본의 앞잡이, 매국노도 그리고 그 언급을 하며 높은 억양을 보인 것도 철저히 계산된 행동일 테고.
우선 그런 내 말에.
“맞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일본의 그 행동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고 그렇기에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옳은 행동입니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옳은 행동이 아닐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기술도 자본도 100% 이쪽에서 부담을 할 테니 같이 공동개발을 하자는 제
의를 벌써 수십 차례 뿌리치고 7광구를 꿀꺽 하려고 하고 있으니까요. 더욱이 침을 먼저 발라놓은 쪽은 명백히 이쪽이고요.”
“흐흐흐.”
나에게 애국심을 통한 연극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한소정 차장은 그 전의 가면을 벗고서 허심탄회하게 말을 내뱉었다.
동시에 품에서 무언가를 하나 꺼내 들었다.
바로 꽤 낡은 사진.
“홍주영님도 보셨을 것 같습니다. 아니, 분명 봤을 겁니다. 이 사진의 원본이 걸린 곳이 바로 명진 정유 본사니까요.”
“…….”
솔직히 한소정 차장이 내뱉은 말은 이미 전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특히나 더 알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7광구에 밧줄을 내린 사람이 바로 내 할아버지였으니까.
말인즉슨 그 당시 정부의 7광구에 대한 조사 요청에 최초로 수락을 한 곳이 명진 정유였다.
그 당시 할아버지는 대한민국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고 가장 먼저 7광구에 왔었고.
지금 한소정 차장이 내민 낡은 사진에 찍혀 있는 것이 바로 명진 정유에서 가장 먼저 7광구를 조사할 당시를 찍은 사진이었다.
중앙에는 부푼 기대를 한껏 끌어안고 있는 할아버지가 자리했고.
“[대한민국도 산유국이 되기를…] 이 문구가 명진 정유 본사에 걸린 이 사진 밑에 있는 글귀 아니겠습니까? 명진의 선대 회장님의 꿈이기도 하셨고요.”
한소정 차장의 그 말에 몸을 의자에 푹 기대고 입을 열었다.
“이야… 나름대로 조사를 많이 했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제는 정말 몇 년 남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그 몇 년 뒤 대한민국을 산유국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7광구 거의 대부분을 일본에 빼앗길 확률이 99.9%고요.”
끄덕끄덕.
한소정 차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 충분히 납득도 가고. 그런데 말이야. 혹시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 대한민국이 나설 필요 없이 명진이 혼자 알아서 7광구를 꿀꺽하는 상황을. 나름 내 꿈이 효자가 되는 거거든. 물론 돌아가신 분이지만 그게 못 들어줄 이유는 아니고.”
“…….”
내 말에 말문이 막힌 듯 아무런 대답이 없는 한소정 차장.
그러다.
씨익.
한소정 차장이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저는 홍주영님의 능력이면 7광구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북극에 갑자기 생성된 한반도 2배 만한 빙하가 일본 도쿄 앞바다에 생성된다면 제아무리 일본이라 해도 버틸 재간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공동개발 협약의 주체는 대한민국과 일본입니다. 만약 그곳을 명진 혼자서
개발한다면… 살짝 시끄러워질 것입니다. 이채산의 집을 털 때도 굳이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를 착용한 홍주영님이라면 시끄러운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성격인 것 같고요.”
“글쎄. 일본 도쿄 앞바다에 한반도 2배만한 빙하를 언급한 사람이 시끄러움을 지적한다? 앞뒤가 안 맞는데?”
“모든 시끄러움은 대한민국이 짊어지겠습니다. 대신 달콤한 과실은 명진 그리고 홍주영님과 나누겠습니다. 말인즉슨 7광구를 돌려받으면 대한민국 정부는 가장 먼저 3년간 단독 개발을 할 권리를 명진에 부여할 것입니다. 차후 7광구에 대한 지분 50%는 항상 명진에 줄 것이고요. 대한
민국이 나서고 명진이 그 뒤에 선다면 시끄러움은 대한민국 그리고 갑자기 엄청난 빙하를 맞닥뜨린 일본의 몫 아니겠습니까?”
“흠… 생각보다 너무 많이 퍼주는데?”
3년 독점과 50%의 지분.
절대 적은 양이 아니었다.
7광구에 매장되어 있을 원유와 천연가스의 양은 사우디바아라비아에 맞먹는 수준이었으니까.
만약에 그 정도를 확보한다면 명진 정유가 엑슨모빌, 로치 더 셸, 토탈, BP 등과 맞먹는 세계적인 정유회사가 되는 것이고.
하물며 3년간의 단독 개발은 그만큼 거대한 7광구 내에서 어디에서 원유를 뽑아 올리는 것이 최고의 자리인지 충분히 조사가 끝날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명진은 대한민국 기업 아니겠습니까? 기업이 커지면 직원도 많이 뽑을 것이고 돈도 많이 벌면 세금도 많이 납부하겠지요. 그게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고요. 저는 아니, 대한민국은 명진 더 나아가 홍주영님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입장입니다. 그럴수록 대한민국은 더
더욱 발전을 할 테니까요. 거기에 지금의 명진을 보면 굳이 탈세도 할 것 같지 않고요. 아, 그리고 저는 독립유공자 집안의 자손입니다.”
“…….”
살짝 한방 먹었다는 느낌?
정확히 그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말문이 막힌 와중 한소정 차장의 입은 계속 말을 쏟아냈다.
“굳이 답변을 지금 당장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그래도 몇 년은 남았으니까요. 홍주영님의 능력이면 단 며칠이면 이 문제를 충분히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아직 시간은 많다는 한소정 차장의 말.
그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입을 열었다.
“아니, 그 제안 받아들이지.”
할아버지의 꿈.
그리고 명진 정유의 꿈.
그래서 애초부터 생각을 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때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할 수 있는 능력도 보유했고.
다만 그것을 가로막는 일본의 행동.
충분히 그 가로막은 것을 뚫을 수 있기에 뚫을 생각이었다.
동시에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바로 오석태의 명함.
“내일 이 번호로 전화를 하면 한 남자가 받을 거야. 이채산의 집에서 가져온 서류를 가지고 있으니 말을 하면 서류 전부를 건네줄 거야.”
“시에라리온에서 반군들도 한수 접어준다는 그 자군요. 부럽네요. 제 꿈이 호가호위하는 거였거든요.”
“그런가? 언제가 기회가 있겠지. 아직 내 손발이 되어줄 자가 부족하거든.”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
외전 26. 홍주영 (25).
국정원 소속의 한소정 차장을 만나고 나서 다음날 곧장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분명 아직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상태였으니까.
물론 그 와중에 사소한 일이 있기는 했다.
가령.
청담동 본가 거실.
거실에 수백억 원에 달하는 다이아몬드가 깔린 어항에 이어 새로운 그림을 하나 걸어 놨다.
바로 피카소의 그림.
“…이거 진품이지?”
이미 어항 속의 반짝이는 것들은 물론이고 그간 내가 준 것들이 큐빅이 아니라 진짜 다이아몬드라는 것을 안 누나는 피카소의 그 그림을 보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누나의 그 질문에 나는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고.
“응.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나는 아무리 봐도 저 그림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어.”
“…원래 그런 거야. 때론 작품의 내용보다 그 작품을 누가 만들었는지 혹은 누가 소장했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지. 거기에서 값어치가 달라지는 거고. 물론 그렇다고 피카소의 작품이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누나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피카소의 작품들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것은 그만큼 그 작품에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비롯한 여러 가치가 있다는 것은 확실했지만 피카소라는 이름의 후광효과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치 못할 사실이었으니까.
우선 그렇게 거실의 피카소 그림을 시작으로 아빠의 서재실에는 조선시대의 청화백자를 그 외 집안 곳곳에 예술 작품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직접 내 돈 주고 구입한 것은 아니지만 내 소유라는 것은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았으니까.
물론 굳이 정부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그렇게 며칠 시간을 보내고 금요일 밤.
“블링크.”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로 내 방을 빠져 나왔다.
당연히 목적지는 아주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이었고.
***
대한해협 상공.
플라이를 사용하며 일본 도쿄로 이동하는 와중 국정원에서 건네준 자료들을 떠올렸다.
‘결국 키포인트는 아베조 총리란 말이지.’
무려 3연속 연임에 성공한데 이어 4연속 연임까지 성공할 확률이 99%라고 아니, 100%라도 여겨지는 현 일본의 총리.
그만큼 일본 내에서 아베조 총리가 갖고 있는 영향력은 역대 총리 중에 최고라고 했다.
이번 7광구에 얽힌 문제 해결도 일왕을 비롯해 참의원이나 중의원 거기에 일본 내각을 구성하는 여러 대신들이나 장관들을 아무리 많이 포섭해도 결국 아베조 총리 한명의 입김보다 못하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고.
즉, 이번에 가서 만날 사람은 아베조 총리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일본 도쿄 지요다구 총리 관저 앞.
“…….”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총리 관저 주변은 꽤나 경계가 삼엄했다.
청와대나 백악관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이곳 총리 관저였으니까.
하지만.
“블링크.”
슝.
내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대놓고 찾아갈까라는 고민도 살짝 했다.
드비어스 사에 이어 미국, 국정원을 비롯한 대한민국 정부 거기에 이채산마저 얼추 나에 대해 알았던 만큼 일본도 알고 있을 확률이 꽤 높았으니까.
그러나 나의 방문이 좋은 의도의 방문이라기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
아니, 명백히 일본 측에서는 악재일 수밖에 없다.
그간 열심히 공들여 왔던 것을 전부 토해내게 생겼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몰래 방문을 선택했다.
우선 그렇게 블링크로 5층에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총리 관저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는.
저벅저벅.
마치 이곳에서 몇 년이나 업무를 봤던 자처럼 자연스럽게 발을 옮겼다.
바로 5층에 있는 총리 집무실로.
국정원에서 가지고 온 자료에는 이 시간엔 항상 집무실에 있다고 했으니까.
똑똑똑.
노크를 했다.
그러자.
“누구야? 이 시간에는 아무도 총리님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베조 총리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물론 개의치 않고.
똑똑똑.
다시 노크를 했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전보다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내뱉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방해하지…”
이번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지만 그럼에도 검은 모자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모습.
그런 내 모습을 확인한 경호원이 순간적으로 말을 끊음과 동시에 오른손을 왼쪽 상의로 가져다 댔다.
일반적인 범주에서 봤을 때는 무척이나 재빠른 행동.
하지만 내 앞에서는 너무 굼뜬 행동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를 살짝 밀쳤다.
우당탕탕.
분명 아주 살짝 밀친 상황.
하지만 그는 그대로 뒤로 밀려남과 동시에 바닥에 몇 바퀴나 구른 채 한쪽 구석에 처박혔다.
우선 그 모습에 발을 총리 집무실 안쪽으로 내딛고.
딸깍.
문을 그대로 닫고 집무실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야. 분명 이 시간에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국정원이 준 서류에는 기껏해야 아베조 총리와 경호원들 몇 명이 있을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총리 집무실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자를 제외해도 총 9명으로 보이는 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언가 회의라도 하고 있었는지 넓은 테이블에 빙 둘러 앉아서.
물론 그 테이블 상석에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아베조 총리가 자리하고 있어서 별 상관없기는 했지만.
그리고 그때.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쏜다!”
“밖에 있는 병신 새끼들은 도대체 뭐 한 거야!”
집무실 안에 있던 경호원들이 그대로 나에게 총을 겨누며 한마디씩 했다.
그리고 그 행동으로 알 것 같았다.
이들은 나에게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것을.
그만큼 총을 집어든 그들의 얼굴에는 이 상황을 자신들의 선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한가득 담겨져 있었다.
“내가 일본을 너무 과대평가 했나?”
아무리 대한민국의 지하 경제를 한 손에 움켜쥐었다지만 그래도 일개국가에 비하면 한참 급이 낮은 이채산마저 나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이 모른다?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때 그런 공호원들을 막아서는 목소리가 울렸다.
“총을 다 집어넣어라. 밖에 정리도 하고.”
아베조 총리?
아니었다.
아베조 총리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자.
그자의 목소리였다.
물론.
“하지만 침입자를 이대로…”
“무려 총리 관저에 난입한 자입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내각정보실의 국장님이라 하셔도 이건 총리님을 향한 테러입니다!”
여전히 나에게 총을 겨눈 경호원들이 한마디씩 했지만 내각정보실의 국장이라 불린 그 남자는 경호원을 무시하고서 입을 열었다.
내가 아닌 상석에 앉은 아베조 총리에게.
“방금 말씀드리려고 했던 자가 바로 저자입니다. 이렇게 빨리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해 대비에 미흡한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총을 든 경호원으로는 막는 것이 불가능하니 경호원들을 물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자도 딱히 물리적인 행사를 하러 온 것 같지 않
고요. 아, 그리고 저자의 정체는 총리님도 아시는 대한민국의 명진 기업의 셋째인 홍주영이라고 합니다.”
정확히 언급된 내 이름에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게 더 자연스러웠으니까.
그래서 그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입을 열었다.
“좋아. 대충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갈게. 좋은 목적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살갑게 이야기 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그런 내 말이 끝나자 상석에 앉아 있던 아베조 총리가 맨 끝에 위치한 빈자리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들어보도록 하지.”
가족을 제외하고 내 정체를 알고 나서도 계속 반말을 한 자는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 점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고작 반말을 했다고 해코지를 할 정도로 속이 좁지는 않았으니까.
우선 아베조 총리가 가리킨 테이블 끝으로 이동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장 입을 열었다.
“7광구. 그걸 일본이 포기 했으면 좋겠어.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정확히 포기야. 포기. 공동개발이 아니라 일본의 포.기.”
곧장 본론에 들어가자고 했지만 아무런 예고 없이 내뱉은 7광구.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아베조 총리를 포함한 테이블에 앉아 있는 9명의 표정만으로 7광구가 어디에 있는지 전부 알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 가치도.
그래서 그런지.
“7광구는 앞으로 일본의 산업을 이끌 무척이나 중요한 곳입니다!”
“7광구는 일본의 영해 안에 존재하는 일본의 것입니다!”
“한국과 맺은 공동개발 협약이 이제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그 몇 년만 지나면 7광구는 온전히 일본의 것이 됩니다!”
한눈에 봐도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이 아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내각의 각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각료들 대부분이 결사반대를 내뱉었다.
당연히 아베조 총리도.
“거기는 일본의 영해다. 개발할 권리도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모든 것들의 소유권도 일본에 있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분명 각국의 해양법보다 더 우위에 있는 바다의 헌법이라 봐도 무방한 [유엔 해양법 협약]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도 할 말은 많았다.
그전까지 A라는 법이 합법적인 상황에 갑자기 어느 순간 A라는 법이 틀리고 B라는 법이 맞다는 판결이 난다고 과거 A라는 법으로 집행한 것들이 부정되거나 불법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당연히 국가 간에 맺은 협약도.
“그러니까 다시 공동개발을 하자고 10년이 넘게 수십 차례나 제안을 했잖아. 그것도 대한민국 측에서 모든 비용을 들여서. 그런데 전부 거절한 것은 일본이고. 그 정도면 포기 의사로 봐도 무방한 것 아냐?”
“포기의사라니! 우리는 그런 적 없다! 분명 그때 맺은 협약 어디에도 거절이 7광구에 대한포기라는 내용도 없고!”
“맞다!”
물론 이 상황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도 그랬으니까.
아니,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가 나를 평생 지하 감옥 같은 곳에 가둬놓을 수작마저 부렸었다.
더욱이 실제로 내 능력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한 일본 입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만큼의 원유과 천연가스가 묻힌 곳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한 선택일 것이 뻔했고.
그래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말로 통하지 않는다면 실력 행사밖에 없으니까.
“정확히 내일 북태평양 한가운데에 소형 폭풍이 발생할거야. 물론 처음에는 무시할 정도일거야. 말 그대로 소형 폭풍이니까. 하지만 그 소형 폭풍이 점차 일본으로 움직이면서 살을 급격히 찌울 거야. 그러다 결국에는 엄청난 크기의 태풍이 되겠지. 아마 그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태
풍일거야. 모든 것을 잡아당기는 성난 돌풍은 물론이고 비가 아닌 강력한 눈보라와 눈폭풍을 동반할 테니까. 아, 사람 몸통만한 우박도.”
“…….”
“…….”
“…….”
국정원의 한소정 차장은 도쿄 앞바다에 북극에 모습을 드러냈던 한반도의 두 배만 한 빙하를 언급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빙하를 선택하지 않았다.
나에게 빙하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여하튼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정원에서 건네준 자료에 적혀 있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값어치를 지닌 7광구는 대화로 받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
그 뒤로 아베조 총리를 포함해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들을 뒤로하고 총리 관저를 빠져 나왔다.
***
다음날.
북태평양 한 가운데.
“아이스 토네이도.”
휘이이잉!
최대한 작게 만들어낸 바람.
물론 한순간에 태평양 전체를 뒤덮는 돌풍을 만들어낼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내뱉은 말이 있기에 그렇게 작은 돌풍을 만들고 몸을 돌렸다.
이 작은 돌풍은 곧 엄청난 몸집을 키우며 일본을 향할 테니까.
그 돌풍 안에는 비가 아닌 얼음을 뿌리며.
잠시 뒤.
휴대폰을 집어 들어 번호를 눌렀다.
그러자 채 한 번의 신호음이 울리기 전에 하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백악관 기밀 회선입니다. 귀하의 신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홍주영.”
[고… 곧바로 대통령께 연결 하겠습니다!]
현 미국의 윌리엄 대통령에게 직접 받은 전화번호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마주한 적이 있던 윌리엄 대통령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하하하. 통 연락이 없어서 혹여나 이 번호를 잊어버린 것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꽤나 넉살이 느껴지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종종 생각이 나긴 했어. 귀찮은 일이 끊이질 않더라고.”
이번의 7광구?
미국도 떠올렸다.
미국이 나서면 아무리 일본이라도 포기하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까.
하지만 그 생각을 접었다.
7광구는 결코 작은 사안이 아니기에 아무리 일본이 미국에 숙이더라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 이래저래 생길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여하튼 본론은 그게 아니기에 곧장 말을 이었다.
“이번에 태평양에 태풍 하나가 생길거야. 그 전과 위력도 모양새도 완벽히 다른 태풍이. 물론 걱정은 마. 일본 쪽으로 갈 테니까.”
넓디넓은 태평양.
당연히 무수히 많은 배가 태평양 내에서 움직였기에 미리 미국을 이용해 경고를 했다.
굳이 태평양 내에 있는 배들을 침몰시킬 생각은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일본으로 향하는 태풍이라… 알겠습니다. 곧장 태풍 발령이 내려질 것이고 일본으로 향하는 길목 사이에 있는 배들은 전부 철수를 시키겠습니다.]
윌리엄 대통령의 그 말을 끝으로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누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물론 나와 7광구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던 국정원 소속의 한소정 차장에게도 전화를 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적의 배도 태평양에 무수히 많이 존재했으니까.
끝
외전 27. 홍주영 (26).
일본 도쿄의 한 가정집.
와이프와 아들, 딸을 하나씩 둔 평범한 직장인 시부로는 퇴근 후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다.
평소처럼 뉴스를 틀어놓고.
그리고 뉴스 말미에 앵커 입에서 흘러나오는 긴급 속보 소식.
시부로뿐만 아니라 시부로의 아내와 아들, 딸도 그 긴급 속보 소식에 시선을 텔레비전으로 돌렸다.
“긴급 속보로 알려드립니다. 현재 북태평양 한 가운데에 소형 태풍이 발생을 하였습니다.”
소형 태풍이 발생했다는 긴급 속보.
그래서 시부로 식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그간 일본에 산다는 이유 하나로 엄청난 자연재해를 수시로 당한 만큼 소형 태풍이라고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소형 태풍이 긴급 속보로 언급되기에는 긴급 속보라는 단어가 너무 강렬했으니까.
더욱이 일본 지근거리도 아닌 북태평양 한 가운데에 생성된 것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시부로 식구 모두는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때지는 않았다.
그간 겪어온 자연재해가 너무나 많았고 더러는 몸서리칠 정도로 무시무시했으니까.
“물론 이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국민 분들께서는 소형 태풍의 생성을 긴급 속보로 보내는 현재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저희 호지TV 방송국이 단독으로 보도하겠습니다. 우선 전 기상청 소속의 후지무라 교수님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안
녕하세요. 교수님.”
-네. 안녕하세요.
“교수님. 이 소형 태풍이… 현재는 무척 소형이잖습니까? 아직 어디로 움직일지 제대로 된 방향도 잡히지 않은 상태고요. 그런데 무척 이례적인 태풍이라는 언급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예… 아시다시피 태풍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주로 태양의 고도가 높고 낮이 긴 적도 지방에서 많이 생성이 되는데… 그리고 지구는 태양열을 불균형하게 받기 때문에 극지방과의 온도차를 줄이기 위해서 따뜻한 공기가 바다를 지나게 되면서 수
증기를…
“교수님! 교수님! 그러니까 이번 소형 태풍의 생성이 이례적인 이유가 무엇이죠?”
후지무라 교수의 말을 끊고 들어간 앵커.
그 앵커의 말이 끝나자마자 후지무라 교수가 헛기침을 두 번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예.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열과 수증기로 태풍이 생겨납니다. 즉, 태풍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생성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생성된 수증기가 상승기류를 타고 상승으로 올라가 식어져서 다시 물방울이 되는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져야 그때 태풍이 발생하는 것이죠. 그런
데 이번에 생성된 태풍에는 그런 전조증상 자체가 없었습니다.
“전조증상이 전혀 없었다라… 교수님. 그게 과학적으로 가능한가요?”
-방금 언급했듯이 불가능합니다. 크고 작건 간에 에너지라는 것은 절대 교환이나 대가없이 갑작스럽게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군요. 그런데 교수님 이번 소형 태풍이 특별한 이유가 또 하나 있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저도 처음 이것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앵커의 말이 끝나자마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말하는 후지무라 교수.
그 모습을 확인한 앵커가 시선을 후지무라 교수에서 카메라가 있는 전방으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후지무라 교수님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그것. 시청자 여러분도 함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앵커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무전기 같은 것을 통해 들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아. 미국 국가 기상관측센터에서 알린다. 현재 북태평양 30°35’11.8″N 178°03’33.9″W에 소형 태풍이 발생하였으며 앞으로 급격히 몸짓을 부풀려 일본 쪽으로 향할 것이다. 태풍의 진원지부터 일본 사이에 위치한 모든 선박은 대피를 할 것이며 태풍의 영향권에 들지 않도록 모든 선
박들은 철저히 대비를 하기 바란다.]
약간 치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울린 목소리.
그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앵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무전은 실제 미국 국가 기상관측센터에서 북태평양 인근에 위치한 모든 선박에게 교신을 통해 알린 내용입니다. 교수님. 이게 가능합니까? 미국 국가 기상관측센터에서 북태평양에 위치한 모든 선박에 이 교신을 할 동안 우리 기상청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음… 우선 한때 기상청에 몸을 담갔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우리의 기상관측 능력도 절대 미국에 뒤처지는 수준이 아닙니다. 당연히 소형 태풍의 발생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말을 제가 기상청 직원으로부터 직접 들었고요. 그런데 이제 겨우 발생한 태풍에 대해 이렇게 확정지으면서
말하는 것은…
잠시 말을 더듬는 후지무라 교수.
그 후지무라 교수를 향해 앵커가 재촉하듯이 말을 건넸다.
“그럼 미국 기상청이 말한 앞으로 엄청난 대형 태풍을 발전을 한다는 것과 일본 쪽으로 움직일 거라는 것이 틀렸다는 말인가요? 교수님?”
-그게… 태풍의 강도를 말할 때는 일명 CI수(Current Intensity Number)라는 것으로 설명을 하는데 이게 바로 중심 기압과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을 근거로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 소형 태풍의 경우 겨우 태풍의 눈이라는 씨앗이 발아한 수준이라 그게 무척이나 미비하고 특히 주변
으로 태풍의 몸짓을 더 키워줄 뜨거운 열기가 없는 상황이기에 벌써부터 태풍의 크기와 진로 방향을 확장 짓는다는 것은…
“그럼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미국이 성급하다는 건가요?”
-성급하다기 보다는… 무척 이례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태풍의 진로 방향이라든지 강도라든지 이런 것들은 항상 유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기상 관측을 함에 있어서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는 것은 금물이고요. 잘못된 기상 정보는 도리어 크나큰 피해를 야
기하는 법이니까요.
“그렇군요. 그런데 미국은 마치 확실하다는 듯이 이 소형 태풍이 거대한 태풍으로 발전을 할 것이며 진로 방향은 일본이라고 못을 밖은 상황입니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글쎄요.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물론 그 태풍이 소형이든 대형이든, 일본으로 오든 안 오든 대비는 해야 합니다. 그건 무척이나 당연한 것이고요. 하지만 이버 같은 경우에는…
제대로 말을 끝내지 못하는 후지무라 교수.
그 모습에 앵커가 곧장 시선을 전방의 카메라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후지무라 교수님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당황하신 것 같습니다. 네. 우선 이러한 이유들로 저희 호지TV 방송국은 이번 소형 태풍에 대해 긴급 속보를 내보내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조만간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곧장 방송을 통해 다시 한 번 태풍에 대해 보도하도록 하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뉴스 말미에 이어진 긴급 속보가 끝나고 광고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뉴스 속보를 끝까지 지켜본 시부로는 한마디 말을 꺼냈다.
“그래서 대비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
“…….”
“…….”
시부로의 그 말에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부로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대비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도통 분간이 가지 않았으니까.
우선 그렇게 일본 전역에 북태평양에 소형 태풍이 발생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물론 아직까지 대부분 그 소형 태풍에 크나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지만.
***
며칠 뒤.
늦은 밤 일본 총리 관저.
[현재 북태평양에서 발생했던 일명 ‘오니’로 명명된 C급 소형 태풍이 초A급의 초대형 태풍으로 몸짓을 키워서 도쿄로 이동 중에 있습니다. 중심기압이 890hPa 이하이고 최대 풍속은 75㎧ 이상으로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뽑혔던 파사이보다 최소 2배 이상 강력한 태풍
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
“…….”
“…….”
며칠 전 홍주영의 비밀 방문 당시 아베조 총리를 비롯해 그곳에 있었던 모두가 이번에도 똑같이 자리했다.
그때와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분위기가 침울하다는 것?
그리고 그때 상석에 앉아있던 아베조 총리가 내각정보실의 스치하라 국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해상자위대 1함대, 3함대의 현재 위치는?”
“도쿄 앞바다에 대기 중입니다. 또한 3시간 전에 하타가제급 구축한 3척이 추가적으로 합류함으로써 이지스함 3척, 이지스급 군함 7척, 새로 추가된 3척에 이어 타카나미급과 무라사메급 구축함까지 총 27척의 전투함이 대기 중입니다.”
“해상자위대 전력의 50% 정도 되나?”
“얼추 그정도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만약 현재 대기 중인 1함대, 3함대가 전부 박살이 난다면… 앞으로 최소 20년간은 그전의 전력으로 복구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살이 날거라 보나?”
아베조 총리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흘러나온 질문.
그 질문에 전처럼 스치하라 국장이 막힘없이 입을 열었다.
“보고 드렸다시피 현재 일본으로 북상중인 저 ‘오니’ 태풍 속에는 비가 아닌 사람 머리통만한 아니, 사람 몸통만한 얼음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홍주영에게 사전에 언질을 받았는지 미국도 그것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고요. 만약 그 태풍이 도쿄 앞바다에 떠있는 함대와 맞닥뜨리
는 순간… 아무리 이지스함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여기서 겁먹은 개처럼 꼬랑지를 말자고? 과거 발톱에 낀 때만도 못했던 한국 놈들에게?”
“저는 앞으로 드러날 결과만 말씀 드릴뿐 총리님의 선택을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쾅!
“젠장!”
아베조 총리는 내각정보실의 스치하라 국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동시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이래서는 안 되니까.
‘정말… 놈이 신이라도 되는 거라고? 그 신이 하필이면 한국에서 태어났고?’
아베조 총리로서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선택받은 1류 국가이자 1류 국민이 존재하는 일본이 아닌 2류 국가이자 2류 국민이 존재하는 한국에는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절대 안 되니까.
그리고 그때 아베조 총리에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강력한 태풍의 영향권으로 끊어졌던 선을 복구하였습니다.]
그 말과 함께 아베조 총리는 집무실 한쪽에 자리한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바다에 떠있는 위풍당당한 모습의 자위대 함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펄럭. 펄럭.
바람에 나부끼는 욱일기.
그 욱일기를 확인하자 아베조 총리는 결정을 내렸다.
동시에 그 결정을 모두에게 통보하듯이 알렸다.
“해상자위대는 모두 현재 자리를 고수한다!”
아베조 총리가 무려 50%에 가까운 해상 자위대 전력을 도쿄 앞바다에 집결시킨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홍주영이 북극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빙하.
만약 그 빙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빙하를 박살낼 생각이었다.
물론 그 선택의 배경에는 한 가지 노림수가 자리했다.
바로.
‘이채산을 몰락시키면서 결국 한명도 죽이지 않았단 말이야. 드비어스 본사랑 미국에 실력발휘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고. 시에라리온에서는 좀 죽인 것 같지만 결국 쓰레기 같은 놈들. 어쩌면… 어쩌면 이게 홍주영 그놈의 약점 일지도 몰라.’
아베조 총리는 홍주영이 신이라면 더더욱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신에게 한번 물러서면 계속 물러서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일본은 영영히 한국에 뒤처지게 되는 거고.
우선 그렇게 아베조 총리는 결정을 내리고 스크린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
도쿄 앞바다.
“그래. 그런 선택을 한단 말이지.”
도쿄 앞바다에 현재보다 더 강력한 태풍을 한순간에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강력한 돌풍을 동반하는 아이스 토네이도를 전력을 다해 사용하면 그 정도의 위력은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일부러 작게 그것도 북태평양 한가운데에 만듦으로써 꽤나 많은 시간을 줬다.
그게 일본을 향한 최소한의 배려였고.
분명 개인적으로 일본을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본을 멸망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내 최소한의 배려가 통하지 않은 상황.
당연히 더 이상의 배려를 할 생각은 없었다.
이 이상의 배려는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큰 오판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 했으니까.
가령 내가 겁쟁이 라는 식으로.
그래서 가만히 비 대신 사람 몸통만한 우박을 동반한 태풍이 점차 일본의 자위대 함대로 이동하는 것을 지켜만 봤다.
그런데 자위대 함대는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었는지.
쾅! 쾅! 쾅! 쾅!
퍽! 퍽! 퍽! 퍽!
연신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태풍을 향해 불을 뿜었다.
우선 그 모습을 가만히 주시했다.
끝
외전 28. 홍주영 (27).
일본 도쿄 앞바다.
“…….”
일본 해상자위대 1번 함대 소속으로 아타고급 이지스함의 지휘관 이츠키 해장을 벌써 10년째 보좌해온 소우타 일등해좌는 처음부터 이번 임무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른 것을 다 떠나 태풍이 그것도 요 근래 본적 없는 강력한 위력의 태풍이 일본을 향해 몰아치는데 그 길목 한 가운데 대기를 하라니.
상식적으로 그 명령이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자위대가 정식적인 군대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명백히 군대의 역할을 수행하는 집단이고 그만큼 여타 다른 군대처럼 아니, 일본 특유의 조직 문화를 감안하면 그 이상으로 복종을 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소우타 일등해좌는 어쩔 수 없이 그 명령에 따랐다.
스윽.
소우타 일등해좌는 찝찝한 마음을 채 지우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상황실 밖의 바다를 살폈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전함들.
이지스급 프리깃함은 물론이고 각 함대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구축함과 순양함, 전투함들의 모습에 소우타 일등해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무려 일본 해상자위대의 총 전력의 50% 이상이 이곳에 모였으니까.
그만큼 소우타 일등해좌가 봤을 때 어지간한 전쟁이 나도 이만큼의 전력이 한곳에 집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이 이곳에 벌어졌고.
‘도대체 상부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아무리 강력한 태풍이라도 5000톤급에서 1만 톤급 이상의 전함들이 쉽사리 쓰러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절대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야. 혹여 파손이라도 발생하면… 언론에서 물어뜯을 것이 분명하고.’
물론 소우타 일등해좌도 진즉에 직속상관인 이츠키 해장에게 이게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인지에 대해 보고는 했다.
그게 자신의 역할이니까.
하지만 해상자위대를 이끄는 야마모토 해상막료장의 현 위치 고수 명령.
‘모르겠군. 도저히 모르겠어.’
우선 그렇게 소우타 일등해좌는 생각을 접고 레이더를 주시했다.
강력한 태풍이 이제는 정말 지근거리까지 도달했으니까.
잠시 후.
소우타 일등해좌는 이츠키 해장과 함께 상황실에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상황실에 상주하던 모두는 무전을 통해 하나의 명령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나 야마모토 해상막료장이다. 지금부터 전방의 폭풍을 향해 중지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함 내에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공격을 퍼부어라!]
“…….”
“…….”
“…….”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소우타 일등해좌는 야마모토 해상막료장의 명령에 절로 그 구절이 떠올랐다.
결국 거대한 풍차와 싸웠던 돈키호테처럼 자연과 전투를 벌이라는 명령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그 명령을 내린 자가 무려 해상자위대의 일인자인 야마모토 해상막료장의 명령이었다.
특히나 섬나라인 일본.
그래서 분명 군대를 구성하는 3요소라 불리는 육군, 해군, 공군처럼 자위대도 육상 자위대, 해상 자위대, 항공 자위대를 보유했지만 명백히 가장 강력한 자위대가 있었다.
바로 해상 자위대.
그만큼 육군과 항공 자위대가 합쳐서 1년 쓰는 비용보다 무려 5배 이상을 홀로 쓰는 곳이 해상자위대였다.
즉, 해상막료장은 아무나 될 수 없는 그런 지고한 자리였다.
속된말로 일본의 총리가 되는 것보다 해상막료장이 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도 있었고.
그리고 그런 해상막료장의 명령이기에 소우타 일등해좌는 시선을 곧장 옆의 이츠키 해장에게 돌렸다.
그러자.
끄덕끄덕.
이츠키 해장의 끄덕이는 고개를 확인한 소우타 일등해좌는 곧장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함 내에는 한발에 몇억 엔이 훌쩍 넘는 미사일이 수두룩했고 한 번의 전투로 아니, 한 번의 미친 짓으로 수백억 엔이 증발하는 사태가 발생할지라도 야마모토 해상막료장으로부터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해 공격을 퍼부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니까.
“목표는 전방의 태풍! 즉시 발사 각도를 조정하고 공격을 퍼부어라!”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츠키 해장의 승인하에 아타고급 이지스함 나카노는 공격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펑! 펑! 펑! 펑!
아타고급 이지스함 나카노는 왜 자신이 일본을 대표하는 전투함인지를 증명하듯 어마어마한 불을 뿜어냈다.
물론 공격은 이츠키 해장과 소우타 일등해좌가 타고 있는 이지스함만 한 것은 아니었다.
펑! 펑! 펑! 펑!
쾅! 쾅! 쾅! 쾅!
굳이 거대 전함뿐만 아니라 소형 전함을 비롯해 해안 경비정까지 포함하면 수백 대가 훌쩍 넘어가는 배들.
그 모든 배에서 불길을 뿜어냈다.
자신을 향해 움직이는 태풍을 향해.
***
일본 도쿄 총리 관저.
아베조 총리를 비롯해 각 내각의 대사들이 스크린을 주시했다.
펑! 펑! 펑! 펑!
쾅! 쾅! 쾅! 쾅!
장관.
아베조 총리는 수백 척의 배에서 쏟아내는 화염들을 보며 장관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만큼 위협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베조 총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수많은 자금과 시간을 들여 만든 일본의 자랑스러운 함대들이 상대하는 것은 일반적인 피조물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무려 엄청난 얼음과 바람을 동반한 태풍이라는 자연 재해.
인간이 정복한적 없는 그런 자연 재해와 싸우는 선택을 내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아베조 총리는 함대들이 쏟아내는 수많은 공격들을 보면서 드디어 깨달을 수 있었다.
수많은 전함들이 뿜어내는 공격들은 태풍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으니까.
‘내가… 내가 이렇게 어리석었다고? 그렇게 수많은 자연재해를 겪었으면서?’
당연히 일본에 사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베조 총리도 수많은 자연재해를 겪어왔다.
때로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지정학적 위치에 절망하기도 했고.
그래서 그럴 때마다 아베조 총리는 A급 전범재판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마지막 유언도.
[조선을 절대 포기 하지 마라. 연합군에게 모든 것을 내주더라도 조선은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일본이 산다. 그만큼 조선과 일본은 상극이다. 일본이 성장하면 조선은 하락한다. 반대로 조선이 성장하면 일본은 하락한다. 즉, 영원히 품에 안고 감시하며 억압해서 조선의 성장을 억제
해야 한다. 그러다 완전히 일본에 동화시켜야 한다. 그게 바로 일본의 살길이다.]
하지만 결국 패전의 책임을 물어 조선 더 정확히는 대한민국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 뒤로 아베조 총리는 할아버지의 그 유언을 절대 잊지 않았다.
실제로 6.25 등으로 한국이 급하락을 하자 일본이 급성장을 했고 반대로 한국이 성장을 하자 일본은 하락을 했으니까.
그래서 아베조 총리는 전쟁도 할 수 없고 군대도 보유할 수 없는 현 평화 헌법을 뜯어 고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분명 한국은 여전히 가장 높은 등급의 전쟁 위험 국가군에 속했고 그로인해 혹여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발생한다면 곧장 관여를 해야 했으니까.
그게 다시 한 번 한국을 대일본의 영역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는 기회이고.
‘그런데 내가… 내가 너무 편협했어. 상대가 한국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베조 총리라고 외부에서 자신을 미국에 꼬리만 흔드는 개라는 표현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앎에도 미국에 항상 꼬리를 흔들었다.
미국이 일본과 한국 둘 중에 하나의 손만 잡아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일본의 손을 잡게끔 만들어야 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공을 들였음에도 한순간에 일본을 내치더니 결국 한국의 손을 잡은 미국.
거기에 자신의 계획은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 한국인 초인의 등장.
“내가…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베조 총리는 그렇게 허탈함을 토해냈다.
동시에.
“당장 방위성의 야마모토 해상막료장에게 전해! 모든 함대를 뒤로 물리라고! 아니, 철수하라고!”
엄청난 자금은 물론이고 시간을 들여 만든 현재의 해군 함대.
한척이라도 절대 잃을 수는 없었다.
그건 말 그대로 귀한 시간과 돈을 쓰레기통에 내던지는 꼴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우선 그렇게 아베조 총리의 명령에 고노 관방장관이 직접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 밀집된 지형에 수많은 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즉각적인 선회에는 힘들다는 보고입니다. 물론 현 시간부터 빠른 후퇴에 돌입한다고 합니다.”
“…최대한 빨리 서두르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수많은 배들이 뭉쳐 있는 상황에 후퇴라는 것이 마냥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아베조 총리는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멈출 수 있겠지?”
분명 되뇌듯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한쪽 구석에서 흘러나왔다.
바로.
“아니. 그건 불가능해.”
***
도쿄 앞바다에서 총리 관저까지는 꽤 거리가 있지만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확인키 위해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로 총리 관저로 이동했다.
그리고 실제로 도착하자마 후퇴 명령을 내린다고 분주한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아베조 총리의 모습도.
하지만 분명 늦었다.
멈추려면 진즉에 멈춰야 했다.
그래서 친절히 아베조 총리의 그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아니. 그건 불가능해.”
“!!!”
“!!!”
“!!!”
내 대답에 아베조 총리뿐만 아니라 총리 집무실 안에 자리한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무시하고 계속 입을 열었다.
“설마 여기가 심판이 존재하는 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 뭐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은 없어. 심판의 명령 따위는 나에게 하등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까.”
우선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한쪽에 설치된 스크린 속의 얼음과 돌풍을 동반한 내 태풍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나름대로 이래저래 분주히 움직이는 일본 함대들도 내 태풍의 사정권에 들었고.
그 모습에.
“와… 저게 다 얼마야?”
못해도 수십조 엔이 훌쩍 넘어가긴 할 것이다.
출렁출렁.
그런 엄청난 배들이 전보다 크게 들썩들썩 거렸고.
그리고 그때 아베조 총리의 다급한 외침이 있었다.
“항복! 항복하겠다!”
“…….”
아베조 총리의 항복이라는 언급에 곧장 입을 열지는 않았다.
왜냐?
아베조 총리는 끝까지 자신이 할 것을 다 하고 결국 안 되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항복이었다.
그리고 그런 항복은 항상 문제를 만들었다.
더욱이 내가 여기서 이대로 물러난다?
분명 아베조 총리의 성격이라면 나를 심약한 자로 판단을 할 것이다.
그 잘못된 판단은 차후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고.
가령 나로 하여금 일본의 반을 침몰시키게 만들 정도로.
그래서 아베조 총리의 그 말에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이미 늦었어.”
그러자.
“저 배에는 수많은 일본인들이 타고 있다! 무고한 자들이다! 설마… 그 무고한 자들을 전부 수장시킬 생각인 거냐?”
“그걸 아는 자가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내 능력을 똑똑히 봤으면서? 더욱이 북태평양에 생성된 거대한 태풍이 일본 앞바다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약 1주일. 나는 충분히 시간을 줬어. 그런 나의 최소한의 배려를 거절한 것이 너고!”
“…….”
내 말에 말문이 막힌 듯 대답이 없는 아베조 총리.
그리고 그때 이곳 총리 집무실 한켠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아베조 총리 입장에서 끔찍한 장면이 연출됐다.
퍽! 퍽! 퍽! 퍽!
사람 몸통만한 얼음들.
그 얼음들이 거대한 전함을 두들겼다.
물론 일반적으로 쇠와 얼음의 대결은 당연히 쇠의 승리.
하지만 내 얼음을 그냥 얼음이 아니었다.
우지직! 쾅! 쾅!
전함의 갑판이 얼음에 그대로 구멍이 났다.
갑판에 설치된 미사일 발사대도 얼음에 그대로 부서져 내렸고.
하지만 차라리 그것은 나았다.
태풍의 돌풍으로 내 얼음들이 위에서 아래로만 떨어져 내린 것은 아니니까.
말인즉슨 옆으로 휘날리는 얼음들.
그 얼음들이 배의 옆면을 타격하면서 거대한 구멍들이 생겨났고 당연히 그 구멍들로 수 미터 이상 넘실넘실 거리는 바닷물들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한 척, 두 척 침몰하기 시작했고.
아비규환.
그 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끝
외전 29. 홍주영 (28).
일본 총리 관저 집무실.
묵묵히 일본의 함대가 박살나고 부서져 내리며 결국 어두운 바닷속으로 침몰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와중 아베조 총리의 크나큰 고함 소리가 들렸다.
“명진도! 명진도 이만큼 성장하는데 일본의 도움이 컸어! 명진이라고 다를 것 같아?”
뜬금없다면 뜬금없는 소리.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에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알아. 그래서 뭐?”
말인즉슨 무려 35년간의 일제 강점기.
그 후 얼마 안 있어 발생한 6·25전쟁.
즉, 연달아 터진 국가적인 비극으로 말 그대로 한반도는 쑥대밭이 되었다.
미래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던 암울한 상황.
물론 당시 일본으로부터 일정부분 피해 보상금을 받기는 했지만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도 경제지만 국가의 기틀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고 그 무너진 국가의 기틀을 다시 세우는 데에만도 엄청난 자금이 필요했으니까.
그렇다고 경제를 포기할 수도 없었고.
하지만 돈이 없는 상황.
당연히 마냥 지폐를 찍어 낼 수는 없었다.
그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불러올게 뻔했고 결국 경제 파탄의 지름길 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때 정부는 몇몇 기업에 특혜를 줬다.
바로 외국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올 수 있게 한 것.
말인즉슨 외국으로 돈을 빌려 올 수 있게 만들어 줬다.
돈이 있어야 공장을 짓고 제품을 만들며 그 제품을 만들 직원을 뽑을 수 있으니까.
대략 5%~10% 대의 차관.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 수준이지만 이게 얼마나 큰 특혜였냐면 그 당시 은행의 대출 이자가 기본적으로 연 40%를 훌쩍 넘는 것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상관없었다.
이자가 40%를 훌쩍 넘어도 은행이 보유한 돈보다 그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훨씬 많았으니까.
속된말로 외국에 5%~10%에 돈을 빌려와 은행에만 넣어둬도 연 40%에 가까운 수익을 거두는 것이 가능했고.
물론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은 기업 중에 그런 멍청한 짓을 하는 곳은 없었다.
은행에 맡기지 않고 땅을 사 건물과 공장을 짓고 제품만 찍어내도 그 이상을 벌던 때였으니까.
즉, 현재 대기업이라 부를 수 있는 기업은 대부분 그런 특혜를 받고 성장한 곳이었다.
5% 대에 돈을 가져다 쓴 곳과 40% 대에 그것도 많지도 않은 금액을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가져다 쓴 곳은 출발선 자체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분명 현 미래와 대성, 구산, 대유와 같은 5대 그룹 중에 하나인 명진도 그 특혜를 받은 기업에 속했고.
그리고 그 차관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들여왔다.
독립이 됐다지만 무려 35년에 달하는 일제강점기 기간은 독립 후에도 여러 좋지 않은 줄과 선을 한반도에 남겨놨으니까.
여하튼 아베조 총리가 언급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명진도 그 굴레에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곳이라고.
하지만 그게 나로 하여금 여기서 멈추게 만드는 근거가 되지는 못했다.
설혹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면 처음부터 공정치 않은 경쟁을 했고 그 공정치 않은 경쟁으로 다른 대기업처럼 명진도 대기업을 이룩한 만큼 대한민국 내에서 사회적 역할을 다 했는지에 대한 미안함.
그것밖에 없었다.
어차피 일본이 공짜로 돈을 준 것도 빌려준 것도 아니니까.
차후 전부다 갚기도 했고.
우선 그런 와중에도.
우지직. 우지직.
퍽! 퍽! 쾅! 쾅!
총리 집무실 한쪽에 마련된 스크린 속의 일본의 함대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우박이라 보기에는 너무 거대한 얼음 덩어리들에 의해 부서지고 침몰해 갔다.
당연히 일본 해상 자위대 소속의 수많은 직업 군인들도 아니, 직업 공무원들도 차가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그리고 그때.
털썩.
“일본은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겠습니다. 7광구에 대한 모든 권한을 포기함과 동시에 앞으로 7광구에 대한 그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직전에도 아베조 총리는 항복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때는 여전히 반말이었다.
기세도 등등해 보였고.
그런데 지금은 존댓말로 바뀌었다.
꼿꼿했던 무릎과 고개는 완전히 숙여졌고.
그 모습에 대답보다 스크린 쪽으로 시선을 줬다.
약 30%에 달하는 함대가 바닷속으로 사라진 상황.
그것 외에도 20% 정도는 반파가 된 상황이었다.
거의 50%에 달하는 피해.
더욱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전함들을 끄집어내더라도 재활용은 불가능할 것이다.
말 그대로 넝마가 됐으니까.
부서지고 반파된 것들은 수리를 한다 해도 엄청난 금액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즉, 어마어마한 피해일 수밖에 없었다.
“흠…”
절로 나오는 침음.
그만큼 내 경고에도 불구하고 마치 간을 보듯 최후의 마지노선까지 버티고 버티던 아베조 총리를 보며 나도 나름 고민을 했다.
과연 어디까지 가야 할까 하고.
내가 만들어낸 태풍이 도쿄 앞바다를 지나 결국 도쿄에 상륙하면 지금껏 본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는 그런 재앙이 도래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일본의 수도 도쿄임을 감안하면 그로 인해 죽는 자들의 숫자도 수백만 명을 상회할 것이 분명했고.
당연히 나도 그 상황 까지는 원치 않았다.
분명 일본에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확실했지만 그렇다고 일본을 멸망에 구렁텅이에 빠트릴 생각은 없으니까.
더욱이 도쿄가 폐허가 되면 일본은 재건은 꿈도 못 꿀 것이다.
시간도 자금도 부족할뿐더러 폐허가 된 곳이 도쿄라면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마저도 꺾일 테니까.
그렇게 되면 아베조 총리는 최악의 선택을 할 것이고.
바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선택.
물론 그렇게 되도 상관은 없었다.
결국 죽는 쪽은 일본일 테니까.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어차피 이번 목표도 7광구 하나였고.’
지구의 지배자가 될 생각은 없다.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Revival Legend’가 현실이 된 세상에서 지배자 노릇을 한번 해봤으니까.
생각보다 그리 큰 만족감 같은 것은 없었고.
‘그래. 극단적인 상황까지 만들 필요는 없지.
우선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서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린 상황에 오른손을 들어 올려 엄지와 검지를 동시에 맞부딪쳤다.
딱!
크지 않은 소리.
아니, 분명 작은 소리.
하지만 그 작은 소리는 꽤 많은 인원이 자리한 이곳 총리 집무실을 집어삼켰고 그로인한 변화는 스크린 속에서 일어났다.
휘이이잉!
방금 전까지 엄청난 돌풍은 물론이고 거대한 얼음을 쏟아내던 태풍.
물론 여전히 엄청난 돌풍은 동반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전까지 일본 함대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던 거대한 얼음들이 마치 허상이었다는 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만으로 더 이상 일본 함대들은 차가운 바닷속으로 끌려들어가지 않았고.
우선 상황을 그렇게 만들고 아베조 총리에게 시선을 돌리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 항복이 진심이었으면 좋겠어. 이건 진짜야. 만약 진심이 아니고 그로인해 차후 허튼 수작을 하게 되면 그때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마지막 날이 될 테니까.”
아베조 총리를 비롯해 아예 일본이라는 국가를 끝장내지 않을 거라면 여기서 멈추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솔직히 7광구에 대한 일본의 행동을 이해 못한 것도 아니고.
말인즉슨 분명 나라도 똑같이 행동 했을 것이다.
몇 년 만 지나면 대한민국과 맺은 7광구 공동개발 협정이 끝나고 그렇게 되면 바다의 헌법인 [유엔 해양법 협약]이라는 것으로 합법적으로 7광구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으니까.
그냥 그런 광구도 아닌 무려 사우디아라비아에 맞먹는 수준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잠들어 있는 7광구를.
여하튼 그런 내 말에.
“물론입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진심!”
납작 엎드린 것이 무언지 제대로 보여줄 요량인지 아베조 총리는 직접 납작 엎드린 자세 그대로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에서 다른 것에 대해 꺼내도 수락을 할 것 같았다.
가령 독도 문제라든지 위안부 문제 거기에 일제강점기 시절에 대한 사과 같은 것을.
하지만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는 알 테니까.
더 이상 한국에 그런 도발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 말인즉슨 멀지 않은 시점에 자연스럽게 그 문제들이 일본의 사과와 배상으로 해결이 될 것이고.
우선 아베조 그 말에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지켜보도록 하지. 그럼 조만간에 사람이 갈 거야. 내 역할을 딱 여기까지 거든. 그리고 태풍은… 일본의 옆으로 이동하다 소멸할거야.”
그 말을 끝으로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이용해 총리실을 빠져 나왔다.
정말로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으니까.
***
그 시각 대한민국.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본원.
“…….”
“…….”
“…….”
홍주영에게 직접 7광구에 대한 제안을 한 입장.
그렇기에 국정원은 쭉 홍주영을 주시했다.
그리고 오늘 홍주영이 만든 어마어마한 태풍의 위력을 실감하자 입만 벌리고 화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국정원장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얼음만 다루는 것이 아니었나? 저 엄청난 돌풍을 동반한 태풍은 뭔데? 더욱이 몇 조가 넘는 전함들이 저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니… 이건 도저히 할 말이 없군. 할 말이.”
당연히 국정원장의 그 질문에 답하는 자는 없었다.
나름대로 그간 홍주영과 이래저래 연락을 취해 온 한소정 차장마저도.
그만큼 돌풍을 동반한 태풍도 그 태풍 속에 깃든 얼음의 위력도 예측 범위를 한창 벗어났으니까.
그리고 그때.
띠리링. 띠리리링.
침묵에 쌓인 국정원 소회의실에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원래라면 질책이 터져 나올 상황.
무척이나 중요한 회의 중이었기에 더더욱.
하지만 그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 진원지가 한소정 차장이었기에 국정원장조차도 질책을 하지 못했다.
현재 홍주영과 다이렉트로 연락을 취하고 있는 자가 한소정 차장이었으니까.
그리고 휴대폰 화면을 확인한 한소정 차장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몇몇 차장들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기까지 했다.
우선 그렇게 한소정 차장은 그 자리에서 곧장 전화를 받았다.
바로 홍주영의 전화를.
[아베조 총리로부터 7광구에 대한 완전 포기를 약속 받았다. 사람을 보내서 새롭게 계약만 체결하면 되는 상황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마무리는 저희 쪽에서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한소정 차장은 그런 대답을 하면서 ‘하나의 국가를 멸망시킬 수 있는 그런 힘을 보여줬는데 두말을 할 리가 없죠.’라는 말은 속은 삼켰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으니까.
그 뒤 홍주영과 통화를 끝낸 한소정 차장은 곧장 국정원장을 바라봤다.
물론 국정원장도 귀가 있기에 통화 내용을 확인 했기에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내일 청와대에 들어가도록 하지. 아마 외교부에서 사람이 나올 텐데. 음… 그래. 한소정 차장이 아니, 한소정 제 3국장이 함께 움직이도록 하지.”
어쨌든 홍주영과 협상을 이끌어 냈고 그로인해 다이렉트로 연락까지 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한 한소정 차장.
그렇기에 국정원장은 한소정 차장을 제 3국장으로 승진시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언급을 했다.
당연히 제 1, 2국장은 물론이고 여러 차장들도 반박을 하지 않았고.
그러기에는 홍주영이 이번 일본을 상대로 보인 위력이 눈에 선했으니까.
우선 그렇게 국정원의 회의는 종료가 됐다.
***
며칠 뒤.
모든 뉴스와 신문의 헤드라인에는 한 가지에 대해 언급을 했다.
바로 7광구.
[7광구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오다!] [일본으로부터 7광구 반환?] [7광구는 어떻게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왔나?] [일본의 포기를 이끌어낸 주역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밑으로 7광구의 잠재적 가치에 관련된 내용이 줄을 이었다.
한국도 드디어 산유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는 핑크빛 미래에 관한 내용도 많았고.
하지만 정작 화제를 이끌어낸 언급은 며칠 뒤 대통령 회담에 밝혀졌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무척이나 좋은 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어 저 스스로도 굉장한 기쁨을 느낍니다. 그만큼 정부는 그간 7광구에 대한 소유권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했고 결국 그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로지 정부의 힘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
다. 다양한 계층에서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 국민 여러분들의 염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우선 저는 대통령특별법으로 당장 내일부터 7광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사의 선두주자는 명진 그룹이 될 것입니다. 약 40년전 처음으로 7광구
에 대한 조사를 시작 했을 때 자비를 들여서 최초 조사에 참여한 기업이 바로 명진이었으니까요. 동시에 7광구를 돌려받는데 큰 보탬이 된 곳이 명진이고요. 다시 한 번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써 7광구 회복에 많은 힘을 쓴 명진에 감사함을 표합니다.”
그 뒤로도 대통령의 말이 쭉 이어졌지만 모두의 관심사는 한곳으로 향했다.
바로 명진 그룹.
대통령은 대통령특별법을 제정해 곧장 7광구 개발에 들어갈 것이고 그 선두주자로 명진을 뽑았으니까.
더욱이 정유회사도 보유한 명진.
저렇게 여러 번 명진을 언급해놓고 정작 원유 추출에 명진을 배재한다?
가장 먼저 7광구에 대한 연구를 대통령특별법으로 보장해주고?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명진! 당장 명진에 관련한 주식을 사들여!”
“명진 정유의 상한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명진 정유! 명진 건설! 명진 전자! 명진 물산 등 명진에 들어간 것은 무조건 사야 돼!”
명진이 미국의 액슨모빌과 셰브렌으로부터 원유를 들여오고 한차례 불어 닥쳤던 명진 열풍이 다시 한 번 불어 닥쳤다.
끝
외전 30. 홍주영 (29).
서울 청담동 본가.
“······해서 그렇게 됐어요. 아마 조만간에 정부로부터 연락이 올 거예요.”
지하 서재실에서 아빠와 형, 누나 거기에 석인수 실장과 안동영 비서 실장, 명진 정유의 양정철 사장이 자리한 와중에 최대한 간추려서 그간의 일을 털어놨다.
명백히 7광구에 관한 것은 액슨모빌과 샤브렌이 어마어마한 양의 원유를 실고 한국에 들어오는 것보다 더 준비한 것이 많은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내 말에.
“…….”
“…….”
“…….”
서재실에는 침묵이 자리했다.
당연히 ‘거짓말 하지 마!’, ‘도저히 믿지 못하겠어.’라는 말은 없었다.
그간 내가 보여준 것이 있었으니까.
물론 그 침묵은 길지 않았다.
가장 상석에 앉은 아빠가 입을 엶으로써.
“주영이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나가있어.”
아빠의 목소리에는 말의 고저가 없는 일관된 음을 띠었다.
그래서 더 위압적이었고.
우선 그렇게 아빠의 말에 나를 제외하고는 서재실 밖으로 전부 빠져 나갔다.
그 뒤로도 아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주영아.”
“네.”
“이 아빠는 알 수 있다. 남들은 바뀐 네 모습에 뒤에서 수군수군 거려도 주영이 네가 내 아들 이라는 것을.”
“…알아요.”
내가 시에라리온의 반군을 처리하고 드비어스 사로부터 다이아몬드와 다이아만드 광산을 가져오고 최강대국인 미국을 무력으로 압박하며 이채산을 몰락시키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렇게 해도 나를 믿어줄 가족이 있다는 것.
물론 그것에 이어 과거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나 스스로 피곤할 정도로 그것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하찮은 일인지 지금은 알고 있다는 것도 한몫하긴 했다.
이번 일본의 일을 수락한 것도 그것들에 의한 발로였고.
여하튼 그런 내 대답에 아빠는 전과 달리 온화한 표정은 물론이고 목소리에도 애정을 듬뿍 담아 다시 입을 열었다.
“가진 능력을 봉인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남들과 다른 능력과 특출난 재능을 가졌으면 뽐내고 적극적으로 활용을 해야지. 그게 바로 사람이고. 하지만… 그 능력으로 모든 일을 손쉽게 풀어 나가다 보면 결국 모든 일을 그 능력으로 해결하게 될 것이다. 그 능력이 필요 없는 일에서 조
차도. 그리고 그것은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
아빠의 말에 딱히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빠도 딱히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는지 계속 말을 이어갔고.
“이 아빠는 주영이 네가 지금도 앞으로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네 엄마도 네 형과 누나도 그것을 바랄 것이고.”
겉으로 드러난 내 나이는 17살.
하지만 속까지 17살 일수가 없었다.
‘Revival Legend’가 현실이 된 세상에서 겪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은 그 누구도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시간이니까.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정말 외롭고 쓸쓸하고 슬프기까지 했고.
즉, 현재 아빠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씨익.
그래서 아빠를 향해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려고요. 현재의 제 목표는 행복이거든요.”
그런 내 말에 잠시 아빠는 말이 없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래. 그러면 됐다.”
우선 그렇게 아빠와의 짧지만 굵은 대화를 종료했다.
그 후 밖에 내보냈던 형과 누나, 석인수 실장, 안동영 비서 실장, 양정철 명진 정유 사장을 불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고.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은 가만히 지켜만 봤다.
선대 회장의 유지를 드디어 이을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는 아빠와 형, 누나와 앞으로 명진의 성장에 대해 찬란한 장밋빛 미래를 언급하는 석인수 실장, 안동영 비서 실장, 양정철 명진 정유 사장을 지켜보는 것이 현재의 내 행복이었으니까.
‘Revival Legend’가 현실이 된 그 세상에서 죽음이라는 막다른 길목 앞에 두려움에 벌벌 떨던 나를 대신하여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들던 가족들, 석인수 실장 등의 모습에 현재의 모습을 꿈꿨었고.
***
다음날.
경문고등학교.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텔레비전에서 그리고 요 근래에는 대통령의 입에서 조차도 명진이라는 이름이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기에 나에 대한 시선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바로 그 명진의 직계였으니까.
더욱이 모든 과목 만점에 이어 추가 시험과 쪽지 시험까지 퍼펙트로 클리어 함으로써 더 이상 명진의 하자로 불리지도 않았고.
물론 그런 변화가 나의 행동에까지 변화를 주지는 못했다.
당연히 들뜨지도 않았고.
인류의 희망이자 지구 최후의 보루라고까지 불려봤던 것이 나였으니까.
결정적으로 지금 당장이라도 현재 이상의 것을 얻어낼 능력도 있었고.
여하튼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평소처럼 행동했다.
연보라와의 점심시간까지도.
점심시간.
“있잖아… 할아버지가 너 좀 보자고 하셨어.”
친가, 외가 그 외 혈연을 쭉 타고 올라가면 할아버지라고 부를 사람들은 많겠지만 지금 연보라고 언급하는 할아버지는 딱 한명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현 미래 그룹의 연정환 회장.
그래서 연보라의 그 말에 놀랍다는 듯이 살짝 호들갑을 떨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손녀사위를 볼 마음이…”
하지만 그 말을 끝까지 내뱉지는 못했다.
연보라가 눈을 샐쭉하게 뜨고 나를 쳐다봤으니까.
물론 무섭기는커녕 귀여웠지만.
그러나 무척 무섭다는 듯이 살짝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시간만 말해. 나는 언제든지 괜찮으니까.”
“그럼 이번 주 금요일 어때?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하셨거든.”
“좋아.”
과거라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명진이 어마어마하게 가치가 급등하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대한민국 재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미래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무덤덤하게 대답했고.
그러다 연보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정식으로 사귀기로 한 것이 벌써 두 달이 넘어가잖아.”
“그렇지.”
“그럼 진도 좀 빼야 하는 것 아냐? 손밖에 못 잡았잖아.”
“…….”
전보다 더 샐쭉한 표정으로 지으면 나를 쳐다보는 연보라.
그러나 개의치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이건 너한테 손해가 절대 아냐. 이래봬도 난 지금껏 엄마와 누나 빼고는 그 어떤 여자와도 뽀뽀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키스나 포옹은 물론이고.”
당당하게 말했다.
말 그대로 현재 내 몸은 완전 순수하고 깨끗한 몸이었으니까.
하지만.
“누군 아닌 줄 알아?”
짝!
연보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는 것이 얼마나 좋아. 완전 천생연분이네!”
나름 회심의 일격.
그러나 연보라에게는 회심의 일격이 아닌 것 같았다.
한마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안 돼! 그리고 우리 아직 고등학생 그것도 1학년이거든!”
그 말을 내뱉고 이동하는 연보라를 굳이 붙잡지는 않았다.
사심이 절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농담식으로 했던 말이었으니까.
물론.
“흠… 역시 책으로 배운 것은 안 통하네. 이렇게 다시 돌아올 줄 알았으면 그때 연애라도 해볼 것을.”
수많은 경험 중에서 딱 하나 해보지 못한 경험이 연애라는 것이 지금은 못내 아쉬웠다.
***
며칠 뒤.
금요일 늦은 오후 연정환 회장 저택 앞.
분명 대단치 않은 일이었다.
내 한마디면 미국의 대통령도 당장 달려오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니까.
하지만 지나가는 투로 금요일 연정환 회장의 초대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는 내 말에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이것저것을 챙겨줬다.
집에 옷이 한가득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끌고 백화점으로 가서 새로 옷을 맞추기도 했고.
여하튼 그로인해 깔끔한 옷에 한손에는 엄마가 구해온 진짜 100% 홍삼이라는 선물을 들고 연정환 회장 저택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연보라가 직접 밖으로 마중을 나왔고 내 모습을 보자마자 한마디 말을 꺼냈다.
“힘을… 꽉 줬는데?”
“도저히 엄마를 이길 수가 없더라고. 어쩌겠어. 효자인데 엄마 말에 따라야지.”
“들어와.”
“어.”
우선 그렇게 연보라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 후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미래 그룹의 연정환 회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할아버지.”
친구의 할아버지.
그래서 할아버지라는 내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지금껏 그렇게 부른 적은 없었다.
회장님이라고 불렀지.
“허허. 그래. 반갑구나. 자주 좀 들리지 그랬어. 옛날에는 보라랑 너랑 저 밖에서 뛰어 놀고 그랬는데 기억은 할지 모르겠구나.”
“기억납니다. 그때 보라가 저에게 한 말도요.”
원래는 잊고 있었다.
하지만 ‘Revival Legend’가 현실로 구현이 되고 마지막의 마지막 때 나를 대신해 죽음의 불구덩이에 뛰어들며 했었던 연보라의 말로 마치 상자 속에 가둬져 있던 것들이 한 번에 뛰쳐나오듯 모든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래? 그때 보라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으마. 둘의 추억일 테니. 그나저나 아직 저녁 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것 같고…”
잠시 말을 흐리는 연정환 회장.
그 모습에 거실 테이블 한쪽에 비치된 바둑알과 바둑판을 보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바둑을 두시는 것은 어떨까요?”
“바둑?”
내 말에 반색을 하며 말하는 연정환 회장.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연정환 회장이 바둑광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연정환 회장에 관한 신문이나 뉴스 기사에도 종종 등장을 했고.
“네.”
“하하하. 좋다. 좋아. 그럼 바둑을 둬서 주영이 네가 이기면 원하는 소원 하나를 들어주마.”
“괜찮으시겠어요? 남들은 할아버지를 불도저 같은 성격에 결단력 있고 추진력 있는 사업가라고 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신중한 사업가이시잖아요.”
“…남들은 모르는 것을 주영이 너는 잘 아는구나.”
“뭐. 눈에 훤히 보이니까요.”
“하하. 그래. 하지만 때론 이성보다 감성이 앞설 때도 있는 법이지.”
“네. 알겠어요.”
우선 그렇게 연정환 회장과 소원을 건 바둑을 뒀다.
***
대한민국을 때론 이렇게 부르기도 했다.
바로 미래 공화국.
그만큼 그 미래의 가장 상단에 있는 연정환 회장은 남들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홍주영에 대해서도.
우선 그렇게 처음 홍주영에 대해 접한 연정환 회장은 걱정부터 했다.
사람이란 아니, 굳이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이 뭉친 집단이라도 힘을 가졌으면 밖으로 그 힘을 발산하고 싶어 하니까.
특히나 성숙되지 않은 자라면 더더욱.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는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연정환 회장은 홍주영을 직접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 후 이어진 짧은 대화와 바둑 한판.
연정환 회장은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바둑에서는 서두르지 않고 공고히 자신의 세력을 다지며 끝까지 그 세력을 유지하며 결국 불계승을 거두는 홍주영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흔들리지 않고 차분한 모습에서 홍주영의 본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그 뒤 이어진 홍주영의 소원.
[보라와 진지하게 교제를 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는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지만 보라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연정환 회장은 두말할 것 없이 홍주영의 그 소원을 수락을 했다.
그런 소원은 오히려 연정환 회장이 바라던 바였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저녁 식사 시간에 본격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연정환 회장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곧 있으면 18살이 되지만 아직까지는 17살의 고등학교 1학년생.
그런데 그 생각이 깊이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을 뜻하는 중용도 알고 있었고.
결국 연정환 회장은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다고 판단을 내렸다.
더욱이 홍주영과 명진도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고.
***
일주일 뒤.
청담동 집에 있을 때 나대신 무척이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오석태를 맞이할 수 있었다.
손에는 무언가를 주렁주렁 들고 있었고.
“회장님. 드비어스 본사로부터 주문하신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이야… 오래도 걸렸네.”
주문을 한지 거의 3달 이상이 흘렀기에 절로 그런 말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최고의 세공사들이 달라붙어서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드비어스의 코넨티 회장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자신만만하게 건네기도 했고요.”
“그래? 그럼 한번 열어봐.”
엄마는 목걸이 누나는 귀걸이 아빠와 형은 넥타이핀으로 부탁했다.
추가적으로 연보라와 나의 반지도 부탁했고.
곧 내 말에 오석태가 드비어스 사가 보낸 보석들을 열어 젖혔고 왜 3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는지 알 것 같았다.
드비어스 사라 그런지 다른 보석은 일체 곁들이지 않고 다이아몬드와 그 다이아몬드와 조화를 이루는 핑크 다이아몬드, 블루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세공품들은 말 그대로 예술 작품이었으니까.
우선 그렇게 오석태로부터 보석들을 건네받았다.
***
일주일 뒤.
언제부터였는지는 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의 주도하에 정확히 몇몇 기업들이 만찬 자리를 가졌다.
물론 단골손님은 미래, 명진, 대성, 구산이었고 가끔 대유나 기타 다른 기업이 자리를 빛냈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진짜 굵직한 기업들의 만찬.
그런데 그 만찬을 이번에는 미래의 양보로 명진에서 주최했다.
그리고 그 만찬 자리에 앞서 가족들에게 드비어스 사로부터 받은 세공품을 건넸다.
엄마는 목걸이, 누나는 귀걸이, 아빠와 형은 넥타이 핀으로.
당연히 그것을 받자마자.
“와…”
“이건…”
“고맙다. 주영아.”
세공품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은 내가 봤을 때도 엄청났다.
그래서 그런지 그 세공품을 받은 가족들은 모두들 감탄을 자아냈다.
엄마는 눈물을 똑똑 흘렸고.
그러다 누나가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주영이 너는?”
“나? 나도 당연히 있지. 반지로. 쌍으로 맞췄거든.”
“쌍으로?”
“응.”
“누구랑 하게?”
“흐흐흐.”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웃음으로 얼추 누나는 물론이고 가족들 전부다 감을 잡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누나를 향해 얄궂은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누나도 시집은 가야지? 누나의 결혼식 때 내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보석을 마련할 테니까 이번에는 꼭 가자고.”
“뭐… 뭐! 설마 지금 이 누나가 노처녀가 될까봐 하는 말이냐!”
“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지.”
‘Revival Legend’가 현실이 된 세상에서는 진짜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살짝 걱정이 돼서 말을 건넸다.
나는 누나가 어떤 남자를 데려와도 무조건 오케이였으니까.
물론 누나를 진심으로 사랑을 한다는 가정하에.
어쨌든 그렇게 나와 가족들은 명진 주도하에 마련한 만찬장에 내가 선물한 보석을 착용하고 입장을 했다.
당연히 그 보석을 확인한 다른 재벌가들도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랬고.
그전에 보지 못했던 보석들일테니까.
그리고 나는 한쪽에 조용히 있던 연보라에게 다가갔다.
동시에 조그마한 상자를 건넸다.
“뭐야?”
“선물.”
그런 내 말에 연보라고 상자를 받고 열어젖혔다.
그러자 나와 똑같은 푸른 다이아몬드가 가운데 조각된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고.
“이게 커플링이라는건데. 한 번 해보고 싶었어.”
“커플링치고는… 너무 화려한 것 아냐?”
“에이. 뭐 어때.”
“…예쁘네.”
연보라의 그 말에 직접 푸른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내들어 연보라의 손에 끼워줬다.
“잘 어울리네.”
확실히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그런 내 칭찬에 연보라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그런가?”
“응.”
우선 그렇게 연보라와 만찬장 한쪽 구석에서 꽁냥꽁냥 시간을 보냈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형과 누나를 확인하며.
이게 그곳에서 살아돌아오고 나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었으니까.
-끝-
끝
외전이 이렇게 길거라고는 저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항상 격려를 해주신 모든 독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잠깐의 휴식 이후에 더 좋은 작품을 가지고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의 주인공 홍주영과 전작 [자고나니 세상이 게임으로 바뀌었다!]의 주인공 이지원의 콜라보를 원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이건… 언젠가는 가능 하겠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