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03
도하연은 울적한 기분을 마음속으로 달래며 자고 나면 이 모든 게 끝이 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악몽은 이제 시작이었다.
갑자기 어떤 한 사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옆 피난민 센터가 무너졌다! 옆 피난민 센터도 지금 감염자들로 넘쳐난다고! 우린 다 끝이야. 히히히히!”
미쳐서 날뛰는 한 사내, 이윽고 그는 감염자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도하연이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 뭐라고 한 거죠?”
동현은 창문을 보았지만, 그들이 있는 위치는 반대편.
옆쪽 피난민 센터의 상태를 알 수가 없었다.
“말이 돼? 우리랑 상대편이랑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무너져? 우연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어디 있어?”
하지만 그런 우연이 일어나는 게 현실이었다. 보지 못했기에 불신했지만, 이들은 희망 하나가 지금 비틀거리는 걸 느꼈다.
옆에서 태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만약에 진짜면….”
“에이. 설마. 그냥 지가 죽을 거 같아서 던지고 보는 거겠지.”
동현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이들은 다시 하루를 보내었다. 그리고 새벽, 시끄러운 소리에 도하연은 다시 눈을 떴다.
“음?”
그녀가 창문으로 향하자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사람들이 거리에 뛰쳐나오고 있었다.
“도망쳐!”
“시발, 이쪽도 개판이잖아!”
“살려줘! 제발! 어디로 가야 하는데!”
저들이 이곳 피난민센터 쪽 사람이 아니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이쪽은 이미 대기를 타거나 도망친 지 오래니까. 즉, 옆쪽 피난민센터일 확률이 높다는 거였다.
감염자들이 그 뒤를 쫓고 있었다.
도하연은 그걸 보고 기다림이라는 이 실낱같은 희망을 버렸다.
‘탈출해야 해.’
그들은 떠나야 한다. 머릿속에 그 사실을 집어넣는 도하연이었다.
다음 날, 점심. 동현과 태희도 서서히 이 피난민센터가 끝장났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군대가 오지 않아.”
그의 말대로 진작 전투를 벌이거나 투입됐을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작전회의 중이라도 무언가 연락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동현은 신민기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형씨, 살아 있수?”
“지금, 위층에서 대기 중입니다. 밖에 나오지 마세요.”
“그래요.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옆 동네는 어떻게 된 거요?”
신민기는 섣불리 답을 하지 못했다. 동현은 한숨을 쉬었다.
“옆 건물도 무사하지는 못한 거 같은데….”
“네. 아무래도 고립된 거 같습니다.”
“알아서 탈출 해야겠군.”
동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신민기의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갔다.
“무슨 수단이라도 있나요?”
“별 거 없어. 그냥 창문으로 탈출하든가 해서 가야지.”
“창문이요? 그쪽은 3층이잖아요. 뭐…. 무리하면 될 거 같긴 한데.”
“우리는 밧줄도 있어. 혹시나 싶어서 대비해놨지.”
동현의 말에 신민기가 짧게 신음했다.
“그렇군요. 저희는 더 높은 층이라서 그건 불가능하겠어요. 대신 총이 있으니까 적당할 때 나가야죠.”
“그래.”
통화를 마치고 남은 두 사람과 시선을 교환한 동현이었다.
“그러면 탈출을 해볼까?”
동현은 매니저와 준비한 밧줄을 창문에 던졌다. 그리고 준비한 짐을 하나둘 메었다.
시기만 적당히 골라 탈출하면 된다. 이들은 그렇게 바깥만 유심히 바라볼 때였다.
도하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현이?”
그녀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하연아…. 어떻게 해?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아. 무서워…….”
“아현아….”
도하연은 자신의 친구가 아직 위에 있다는 걸 새삼 상기했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자신의 친구를 버리게 된다. 도하연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때,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진 매니저가 떠올랐다.
‘오빠. 저도 오빠처럼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게요.’
도하연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준비 중인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오빠, 언니. 저를 도와줄 수 있어요?”
“안 돼.”
동현은 딱 잘라 거절했다.
“아현이 때문이지? 위층이라서 구하러 가는데 위험이 너무 커. 마음은 알겠지만, 우리 사는 것도 중요해.”
“알아요. 저도.”
도하연의 얼굴은 이전처럼, 다시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사람도 구하고 감염자들을 탈출로에서 떨어지게 한다면요? 그건 어떠세요?”
“…….확실히 낫지만 그게 과연 되려나?”
“가능해요. 저도 사람을 다 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할 수 있는 만큼,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하는 거예요. 더 높은 층에 간 김에 우리 탈출로에서 감염자를 멀어지게 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면서요.”
도하연의 설득에 동현은 태희와 같이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역시 웃었다.
“역시, 제주도에서부터 저런 성격이라니까.”
“우리 하연이가 이제 좀 돌아왔네.”
태희가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렇다. 이들은 다시 새로운 목적을 구했다.
친구 아현의 구출. 이들이 창문이 아닌 문 쪽으로 향했다.
동현을 필두로 이 3명은 각자 손에 무기를 쥐었다.
그들은 이미 탈출하기 전에 필요한 무기 정도는 이미 갖춘 상태였다.
대표적으로 도하연의 손에 들린 야삽이었다. 가장 구하기가 쉽고 범용적인 무기였다.
“총은 너무 위험하죠?”
“소리 때문에 위험하지.”
동현의 손에는 두꺼운 장갑이 있고, 그 장갑은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이들은 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했다.
동현은 이들은 진두지휘했다.
“천천히. 만약에 문 앞에 서 있으면 위험하니까. 한 명이 문을 열고 내가 돌진한다.”
이중에서 가장 무력이 강한 동현은 선봉의 역할이었다.
문을 여는 건, 도하연이다. 그녀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뒤로 한 채, 문을 열었다.
동현의 눈썹이 움직였다. 천천히 열리는 문. 그 너머에 감염자는 다행히 없었다.
하지만 동현은 이미 여러 번의 수색을 거쳤기에 잘 안다.
바로 옆에 머리를 박고 있는 감염자도 있다.
그는 쇠파이프를 양옆으로 눕히고 앞으로 나갔다.
“기….”
아니나 다를까 감염자 한 마리가 귀신같이 달려드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미 가슴팍에 가로로 조정한 봉에 걸려 허우적대었다.
“이 자식이!”
동현이 우악스럽게 밀어내고 바로 머리통을 가격했다.
도하연은 그때 중간부근에서부터 어슬렁거리는 감염자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복도에만 3마리. 밑에도 많아.’
사실,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감염자를 뚫고 가는 건 굉장한 위험이다.
‘내가 주장해서 가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그 짐을 덜어야 해.’
최대한 안전하게 그러면서 감염자들의 이목을 끌어야 한다.
도하연은 휴대폰을 들었다. 그녀의 휴대폰은 두 대다. 매니저와 자신의 것.
“후.”
그녀는 마지막 유품으로 매니저 휴대폰을 간직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의 휴대폰에 알람을 맞추었다. 무려 1분 뒤로 말이다.
“한 번에 위층까지 끌어들이죠.”
“어떻게?”
도하연은 이미 머릿속으로 계획이 차곡차곡 정립되었다.
“보통 감염자가 소리에 이동하고 다시 돌아오나요?”
이 말 한마디에 태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 번 유도하면 보통 그 근처지.”
도하연은 계단으로 휴대폰을 들고 이동했다. 너무 높이 떨어트리는 건, 안 된다. 어디까지나 위층도 들릴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10초를 남기고 계단 아래쪽으로 휴대폰을 내던졌다.
계단을 타고 굴러다니는 소리에 감염자들이 반응했다.
3명은 그대로 숨을 죽였고 이제 휴대폰이 매섭게 알람을 울렸다.
“키야아아!”
“기이이익!”
위층에서 아래층에서 감염자들이 달려 나왔다. 쿵쿵 거리며 위층에서 쏟아진 감염자만 15마리나 되었다.
동현은 식은땀을 흘렸다.
“저걸 일일이 다 상대할 뻔했네.”
이들은 알람에 감염자들이 정신을 팔린 틈을 타 4층으로 진입했다.
다행히도 저 멀리 두 마리를 빼놓고는 없다. 동현은 들키지 않는 선에서 5층으로 향했다.
하지만 5층에서는 감염자들의 소리가 드문드문 들린다.
동현은 다시 앞으로 나서며 벽에 기대였다.
그의 귀에 감염자의 숨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거리는 6m 정도.”
“그건 어떻게 알아?”
연인인 태희가 혀를 내둘렀다. 동현은 파이프를 내민 채로 고개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그리고 복도를 훑어보았다.
“5마리. 한 마리씩 잡아야 하는데.”
제 아무리 동현이라도 물리면 끝인 감염자들을 일일이 다 상대할 수는 없다. 조심스럽게 한 마리씩 끌어들여야 한다.
도하연은 역시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리고 있었다.
소리를 내면, 여러 마리가 달려올 것이다.
‘한 마리씩은 너무 허울이 좋아. 최소 두 마리를 상정하자.’
동현이 1:1로 질 타입은 전혀 아니기에 태희와 자신이 힘을 내야한다.
‘그래, 한 마리씩은 불가능하니까.’
도하연은 다시 머리를 굴렸다. 알람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는 감염자가 있듯이 저 감염자들도 마찬가지다.
도하연은 동현에게 속삭였다.
“오빠. 이렇게 된 거 두 마리를 한꺼번에 유인하는 게 어떨까요?”
“두 마리를? 혼자선 무리야.”
“같이요.”
그런 도하연의 눈빛에 동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마음 준비 단단히 해. 둘이서 하는 거야.”
동현은 곧, 주먹을 들고 벽에 가져다 대었다.
통. 통.
몇 차례 두들겨지는 벽.
감염자 두 마리가 거기에 반응했다.
도하연은 거기서 두 마리 다 걷는 감염자였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마리 다 뛰는 감염자였다.
“기에에엑!”
“온다.”
동현은 쇠파이프를 들고 나섰다.
포커스가 동현에게 쏠리는 순간, 동현은 한 마리가 자신에게 뛰어드는 걸 바로 피했다.
바닥에 쓰러지는 감염자. 그걸 도하연과 태희가 공격했다.
나머지 한 마리? 동현의 쇠파이프가 직구를 기다리는 타자처럼 준비되었다.
달려오는 감염자가 뛰어들고 동현의 파이프가 움직였다.
깡!
머리가 날아가는 감염자. 그 힘이 얼마나 강한 지, 다른 감염자가 반응하며 올 정도였다.
하지만 동현은 그것보다 태희와 도하연 쪽을 보았다.
물론, 이들도 사지를 경험한 자들답게 이미 모가지가 끊긴 감염자를 계단 아래로 굴리고 있었다.
동현은 그걸 보며, 잠시 생각했다.
‘저걸 감염자가 달려올 때, 걸리라고 던질까? 아니야. 그게 쉬울 리 없지. 게다가 만지는 것도 불쾌해.’
어딘가에는 별거 다 활용해서 잡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우리 쪽은 그냥 힘 중심이니.’
다음 감염자 역시, 동현은 간단하게 제압했다. 물론, 뛰어들기 전에 귀신같이 멱살을 낚아채 패대기치는 괴력은 덤.
이렇게 되자 남은 두 마리 역시 같은 방식이었다.
끌어들이고 동현이 힘을 앞세워 처리한다.
긴장되는 마음을 뒤로하고, 이들은 마지막 감염자의 머리를 날려버리면서 끝을 맺었다.
도하연은 505호로 향했다.
“아현아. 괜찮지?”
안쪽에서는 잠시 말이 없다가 다급히 문이 열렸다.
“하연이?”
울상인 친구를 보자 도하연이 달려들어 서로를 안아주었다.
도하연은 결국, 친구를 만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잠깐의 해후를 하고 이들은 탈출을 위한 다음 계획을 짜야 했다.
도하연은 이곳에 널린 기물들을 만졌다.
“이걸 이용해서…….”
탕!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 총성이 이 건물 전체를 관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