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05
지아와 최미옥, 육진욱은 신민기를 미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들도 최소한의 생각은 하기에 무작정 뛰지는 못했다.
경보보다는 못하게 그래도 계단을 내려가지만, 곳곳에서 감염자의 소리가 들리기에 그 작업은 더뎠다.
이들은 현관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감염자들 덕에 함부로 움직이지를 못했다.
“조용.”
육진욱은 식은땀을 흘리며, 현관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대기를 타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갑자기 바깥에서 엄청난 굉음이 나는 게 아닌가.
“어?”
지아가 위를 반사적으로 쳐다보았다.
“키야아악!”
감염자들의 발소리가 위층에서부터 들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바깥에 감염자들이 가득하다.
함부로 나갈 수가 없다.
‘소리가 난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
감염자들이 이제 근처까지 오고 이들도 뛰어야 한다. 바깥의 감염자들이 한쪽으로 몰리고 있다.
‘뛰어야 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최미옥도 육진욱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현관을 나섰지만, 곧 절망적인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옆 피난민센터에서도 감염자들이 돌아다니고 있던 거다.
순간, 오싹한 감정이 들었다. 저들은 어떻게 뿌리치고 나간단 말인가.
3명은 어떻게든 진지가 구축된 곳으로 뛰려 했다. 하지만 감염자 하나가 전방에서 달려오는 게 아닌가.
“아….”
지아는 다시 몸을 돌렸다. 현관에는 감염자들이 소리가 난 쪽으로 이동 중이다.
‘우리 쪽만 안 보면 되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보호해줘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사람은 이제 없다. 그때, 육진욱이 꼴사납게 자신에게 달라붙고 있는 게 보였다.
“기에에엑!”
감염자의 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지아는 반사적으로 육진욱을 밀었다.
“이…. 야!”
분노한 육진욱이 소리치려 했지만, 이미 감염자가 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다시 그는 현관문 쪽으로 뛰었다. 달리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밧줄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걸 말이다.
현관 쪽에서도 신민기 일행을 볼 수 있었다.
‘살았어?’
그 순간, 그녀는 최미옥의 표정이 창백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지아는 빠르게 머리가 돌아갔다. 그리고 도하연 쪽으로 달렸다.
“살려 주세요!”
그녀가 도와달라고 청하는 게 꼴사나울 수는 있지만, 상대는 지금 그걸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감염자로 변한 육진욱이 다시 일어서서 달렸기 때문이다.
‘그래, 저것 좀 처리해줘!’
이런 지아의 판단은 정확했다. 동현이 달렸다. 이 거구의 사내는 단숨에 달려오는 감염자에게 무기를 내던져 고꾸라트렸다.
하지만 남은 한 마리가 덤벼든다.
“요새끼 봐라?”
하지만 날아오다가 그대로 멱살을 잡혀 바닥에 패대기쳤다.
‘…….엄청나네.’
지아는 혀를 내둘렀다. 저런 든든한 아군이 도하연의 곁에 있기에 지금까지 살아난 거일 터.
도하연과 지아가 시선을 마주쳤다.
당연히 도하연 쪽에서 심기가 불편했지만, 지금 그럴 여력이 없었다.
여기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신민기 일행이 현관문을 나섰다. 이 세 집단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해묵은 감정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뛰었다. 그저 살기 위해 말이다.
곧, 주변 감염자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수는 10여 마리. 도저히 총을 쓰지 않고서 배길 숫자가 아니다.
신민기는 바로 판단을 내렸다.
“먼저 쏘고 움직인다!”
신민기 부대가 바로 뒤로 돌아서서 일제 사격을 했다.
탕! 탕! 탕!
또다시 감염자의 준동을 이끄는 소리에 멀리 있던 감염자들의 괴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뛰었다. 살기 위해 말이다.
동현을 선두로 이들은 열심히 달렸지만, 이동수단이 없는 이상 멀리 갈 수 없다.
모두의 머릿속에 전멸이라는 두 글자가 생각날 때였다.
“이쪽이에요!”
저 멀리서 한 여성이 손을 흔들었다.
지아는 그게 누군지 알았다.
‘정지희? 늙은 중년한테 붙어서 아양 떠는 년 아니야?’
언제 탈출했는지 빌라 창문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른 게 뭐 있겠는가. 모두 빌라로 돌진했다.
빌라의 문은 열려 있다. 지아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 주위로 짐들이 잔뜩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들이 들어간 다음에 도하연과 동현이 다시 소파나 짐으로 문을 다시 막는 거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저년은 별걸 다 알고 있네.’
일단 감염자를 피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지아에게 드는 순간이었다.
“야.”
도하연이 다가왔다. 그녀가 채 뭐라 하기도 전에 매서운 손이 지아의 뺨을 날렸다.
모두가 일단, 위협을 피했다고 생각할 때였다.
도하연의 손바닥이 지아의 뺨을 날렸다.
“야!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기나 해?”
그녀에게 린치 당했던 도하연이 달려들었다.
모두가 멍하니 그 광경을 보았다. 지아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동현과 태희 밖에 모른다.
“그럴 만하지….”
동현은 말리지 않았다. 연이어 도하연의 주먹이 지아를 때려눕히고 있었다.
“나한테 그딴 짓을 해? 그러고도 도와달라는 말이 나와?”
“하연아. 진정해 봐.”
그녀를 말린 건, 신민기였다. 하지만 그 역시 떳떳하지 않다. 도하연이 매섭게 쳐다보자 절로 눈을 피할 정도로 말이다.
“오빠…. 오빠가 나한테 이래도 돼요? 이 최미옥 일당들하고 같이 어울린 게 누군데.”
“그만해.”
신민기는 울컥했는지, 소리를 높였다. 격앙된 분위기가 이어지려는 찰나, 정지희가 나타났다.
“여기서 싸워주실 거면 나가 주시죠? 생존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웃는 건지, 경고하는지 모를 기묘한 표정. 일단, 이들은 싸움을 멈췄다.
동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염자들은 당분간은 막는다 치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우리 옆에 피난민센터는 뭐하다 무너진 건데?”
“저도 모르겠어요. 저희도 싸우다가 기다리는데, 탈출한다는 연락이…….”
신민기가 고개를 숙였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거였다.
설사 여기가 잘못 돼도 한쪽이 구원할 수 있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곳 다 문제가 생겨버린 게 아닌가. 정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신민기는 최미옥과 눈이 마주쳤다.
그렇다. 이쪽도 굉장히 할 말이 많다.
“최 사장님. 뭐 하고 싶은 말 없어요?”
“뭐가?”
최미옥은 뻔뻔하게 되물었다. 신민기와 그 주변이 들끓을 뻔했다.
신민기가 다시 자제시켰다. 그리고 최미옥에게 경고했다.
“다시 말하는데, 이번처럼 이용했다가는 대가리에 총을 갈길 테니 알아서 하세요. 지금 이 자리에서 사과 한마디는 듣고 싶은데.”
“…….”
최미옥은 자존심을 세우려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눈치는 역시나 빠르다.
사과를 안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미, 미안합니다. 살려고 하다 보니……. 실수를…….”
“그게 사과야?”
다른 이가 흥분하자, 신민기가 다시 진정시켰다.
“여기로 대피시켜준 지희씨의 말은 들어야지. 좋아요. 이걸로 ‘일단은’ 끝내자고요. 중요한 건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문제이니까요.”
이들은 해묵은 감정을 일시적으로 풀고 현실적인 문제에 도달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 안전한 보금자리가 무너지고 근처 집은 식량을 거뒀으니 당연히 아무것도 없다.
당장 휴지조차 없을 정도다.
정지희는 그 40대 신 사장과 같이 나왔다.
“다들 어떻게 살아남으셨네요? 저희야 지금 ‘기다리는’ 중이니까. 일부러 여기에 있었지만. 이거라도 드시죠.”
지희는 군용 식량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휴지를 꺼내주었다.
“최소한의 거는 있어야죠. 안 그래요? 도하연 씨?”
도하연 일행이 가져온 가방에는 식료품과 휴지가 들어 있었다.
도하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죠. 뭐, 당장은 두 개로 충분하겠네요.”
도하연은 휴지를 하나 더 꺼내들었다. 인원은 16명. 그래도 하루 이틀은 버틸 수 있으리라.
신민기가 군용 식량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기다리는 중이라뇨? 이 근처 군부대에서 지원이라도 오는 건가요?”
“아뇨? 그냥 아버지의 힘으로요.”
지희가 슬쩍 웃었다.
옆에 있던 신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난국이지만, 정 시의원님이 지금 우리 지희를 어떻게든 잘 데려가려고 백방으로 노력 중이죠. 우리의 위치를 알리고 최대한 군부대를 보내겠다고 하겠더군요. 아, 물론 나도 힘썼고요.”
신 사장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어 보였다.
“원래 우리 방산 업체들이 군부대랑 또 친하지 않습니까? 납품이니 뭐니 고개를 숙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보급은 필수입니다! 굳이 따지면 유일한 납품 처겠네요. 내 공장은 인원이 3분의 1로 줄어들었지만 돌아가긴 하거든요. 허허허.”
최미옥을 제외하고 모두가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정지희가 신 사장에게 붙었을까? 단순하게 돈이 많다는 이유로? 아니다. 군부대랑 관련해서 힘을 발휘하기 제격이라서 붙은 거였다.
신 사장은 자기 공장 사람들과 통화했다.
“돈? 아, 내 재산 처분해서 팍팍 줄게. 지금 당장 계좌번호나 불러. 일단 선불 금으로 천만 원씩 꽂아줄게. 그래, 잘 버티고 있어. 군부대도 있지? 내가 특별히 부탁한 거다. 그래. 정 시의원님이 동료 의원들이랑 모아서 지금 생존자들 구출도 해주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그는 통화를 마쳤다. 직업 자체가 군부대랑 연관이 있고, 서울 쪽에서 열심히 힘쓰는 시의원의 딸도 있다.
‘어떻게 보면 제일 생존하기 좋은 타입이네.’
도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살고자 한다는 의지만으로 볼 때, 가장 처신이 좋기도 했다.
모두가 정지희와 신 사장에게 기대려 하는 것도 당연했다.
신민기가 나섰다.
“염치불구하고 끼어들어도 되겠습니까?”
정지희는 웃었다.
“구할 수 있으면 구하는 거죠. 최대한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구해드릴게요. 대신 감염자를 부르지 마요. 한곳에 머무르는 이유가 일부러 구조되기 쉽게 하는 거니까요. 이리저리 옮기고 싶지 않거든요.”
“감사합니다.”
신민기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저 발언이 있고서야 이곳은 비로소 안도의 숨이 내쉬어졌다.
소외감. 최미옥과 지아는 이곳에 잇는 그룹들에 명백히 외면 받고 있었다.
외면 받은 이유야 아주 명확하기에 변명도 못 한다.
오히려 자기들이 멀쩡한 거에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미옥은 달랐다.
“망할 것들. 나도 돈 많아. 그런데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뭐, 그런 짓 저런 짓을 하면서 정떨어졌으니까요. 그럴 만도 하죠.”
“뭐?”
최미옥은 지아를 노려보았다.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그녀도 최소한 자기 잘못은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성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특히나 민기 오빠 같은 경우도 말이죠. 자기도 동조하고 같이 얻어먹었으면서, 우리를 무슨 취급하는지……. 서로 이용했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자기들이 피해자인 양 우리한테…. 쯧.”
최미옥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사실상 이전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기껏 열심히 술과 돈으로 자기편으로 만들었더니, 여기서 배반한다?
자기 잘못들은 이미 저 멀리에 던져버린 최미옥이었다.
지아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그래도 돼? 넌, 도하연 같은 년이 널 그렇게 때리는데?”
“하지만 그 중년에게 붙어 있는 시의원 딸이 하지 말라잖아요. 지금 우리를 구조할 가능성인데. 조용히 있다가 구조나 받아야죠.”
“고작해야 시의원 같고 뭘? 우리한테는 4급 서기관도 있었어. 네가 죽여서 그렇지.”
지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내 탓이에요? 자기는 아무것도 못 했으면서! 누구 덕에 산건데요!”
“어서 눈을 부릅떠?”
최미옥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지아는 이제 최미옥이라는 사장의 위세가 없다는 걸 파악했다.
지아는 그녀를 무시했다.
“야, 내 말 안 들려?”
똑. 똑.
바로 그때, 문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정지희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좀 해줄래요? 감염자가 올 수도 있어요.”
“뭐? 이 년이 지금, 뭐라는 거야. 야! 너까지 열 받게 할래? 네가 누군지 알아?”
최미옥은 더욱 거세게 분노하고 있었다. 신 사장도 와서 말렸다.
“아니, 최 사장. 좀 조용히 해요. 당연한 거잖아요. 거, 우리 사이에 이러지 맙시다.”
“아니! 신 사장님. 지금 애를 감싸고 저를 무시하세요? 이게 말이나….”
소란이 커질 무렵. 신민기가 번개같이 달려들어 최미옥을 밀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