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07
“그래, 분란이 생기기 전에 차라리 흩어져서 있는 게 낫지.”
동현을 앞세워 이들은 2층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하지만 중앙 계단을 감히 지나칠 엄두는 안 나기에 바로 반대편 방과 건너편 방에 바로 짐을 꾸렸다. 곧이어 다른 한쪽도 바로 옆방으로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걸로 완벽하게 분리가 된 셈이다.
“이걸로 탈출할 때 우리끼리 갈 수 있겠네요.”
도하연은 그제야 지희의 계획을 모두에게 말해주었다.
모두가 경악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 여자 장난 아니네?”
“와….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야?”
조아현과 어성준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다시 도하연에게 시선을 보내었다.
그렇다. 다른 탈출구인 이도진의 지원. 그걸 할 사람은 도하연 밖에 없었다.
“후우…. 좋아요. 그러고 보니 요즈음 서로 연락이 끊겼기는 하는데.”
서로 피차 바쁠 터이다. 도하연이 휴대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고 있었다.
얼마 안가 이도진이 전화를 받았다.
“도진 씨. 안녕…….”
“하연 씨. 아무래도 거기까지 못 갈 거 같아요. 우리 쪽도 난리가 났거든요. 역시, 인원만 너무 많으면 문제가 생겨요.”
이도진은 다급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괜찮아요. 이쪽도 문제가 생겨서 안 오시는 게 나을 거 같네요.”
“그래요? 그쪽도 일이 생겼나 봐요?”
이도진의 헛 웃음이 들린다. 서로 비슷한 상황이라 자연스레 나오는 헛 웃음.
도하연은 적당히 안부를 전하고 통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거 같네요.”
제 1플랜이 실패했다. 하지만 도하연은 다른 방법을 이미 머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이도진 씨의 지원이 없어진 이상, 해야 할 건, 두 가지죠.”
도하연은 자기 일행 앞에서 v자를 그렸다.
“하나는 다시 지희 씨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 실패할 가능성이 커요. 자기들만 탈출하겠다고 했으니까.”
조아현은 난감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나머지는?”
“…….이건 좀 힘들긴 한 건데. 차량을 얻는 수밖에. 혹시 여기 올 때, 차량을 가지고 온 사람?”
“…….”
아무도 대답이 없다. 사실상 조아현과 어성준을 보고한 이야기였지만, 그들도 고개를 저었다.
“촬영할 때, 개판이 돼서 그냥 도망쳤어. 군인의 인도로 말이야. 어휴….”
“저도 근처에서 구경하던 사람이라서….”
서로 머리를 긁는 커플. 도하연은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면 새로운 인원을 데리고 와야 한다.
똑. 똑.
그때였다. 그들의 문을 누군가 두들겼다. 아주 작게, 1층에 들리지 않게 할 정도의 소리.
도하연이 문을 열자, 거기에 신민기 일행 중 한 사람이 나왔다.
“죄송한데. 식량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뭐?”
동현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제 정말 버텨야 하는데, 함부로 줄 수 없는 노릇.
“지금, 우리 먹기도 힘들어.”
“어떻게 안 될까요? 구조가 오기 전까지….”
“아까 먹었잖아. 그리고 우리도 이제 함부로 주기 힘들어.”
동현이 냉정하게 거절하려고 할 때, 도하연이 나섰다.
“오늘은 밤이니까 참으시고 내일 오면 드릴게요.”
갑작스러운 도하연의 말에 식량을 얻으러 온 남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네. 그런데 그쪽 중에 혹시 피난민센터에 올 때, 차량을 가지신 분이 있나요?”
“몇 명 있죠.”
“그렇군요. 알겠어요. 성함이?”
“김윤철이요.”
그는 도하연이 화사하게 웃으며 대하자, 저절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돌아가고 동현은 의아해했다.
“갑자기 왜? 무슨 생각이 있어?”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지아 씨가 그냥가면 저들과 협력이라도 해야 해요. 우선은 선심을 쓰고, 그다음부터 요구하죠.”
“그럴 바에 바로 달라고 하지.”
“그랬다가는 지아 씨만 따로 나가는 게 아려질 수도 있잖아요. 지금 모두가 지아 씨의 구조대로 살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 그렇지. 확실히 그래.”
동현은 그제야 도하연의 뜻을 파악했다. 이들은 이제 시간을 보냈다.
이불도 없고, 그냥 맨바닥. 보일러가 된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다가 태희가 중얼거렸다.
“전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스 쓰는 보일러는 공급이 없을 거 아니야? 전기보다도 빨리 사라지겠네.”
그렇다. 대한민국은 지금 멈춰 있었다. 어서 빨리 이 난을 해결해야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들은 잠을 자며 다음날, 식량을 빌리러 온 윤철에 의해 기상했다.
“아…. 피곤해.”
도하연은 식량을 주섬주섬 건네주었다.
“별일 없죠?”
도하연은 흔한 안부를 전했지만, 윤철의 얼굴은 어느새 새빨개지고 있었다.
“네…. 네…. 그렇죠. 하하, 역시 아침에도 예쁘시네요.”
“감사 합니다~”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하자, 윤철은 얼굴이 한계까지 달아올랐다.
그리고 어색하게 몸을 돌려 나섰다.
도하연이 몸을 돌리자, 조아현이 피식 웃었다.
“우리 하연이가 남자 홀리는데 제일이네. 벌써 자식까지 생각한 거 아니야?”
“그래?”
도하연은 의식 없이 행한 행동. 아무튼, 이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가 됐을 때쯤, 헬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왔군.”
동현이 창문을 보자, 그들 쪽으로 헬기가 밧줄 사다리를 내리는 게 아닌가.
“저렇게 가는 건가?”
이제 신 사장을 비롯해 지아가 그 밧줄을 탔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와…. 진짜로 그냥 가네?”
“어차피 처음부터 기대하기 힘들었으니까요. 오빠, 그러면 이제 다른 협력자랑 같이 이동해야겠어요.”
도하연은 정지희 일행이 떠나자 행동을 개시했다.
그녀는 신민기 일행이 가득한 곳으로 문을 두들겼다.
따지고 보면, 정말 대인스럽게 행동한 거다. 저 중에는 신민기라는 원흉도 있었으니까.
문을 열자, 윤철이 그녀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오셨네요. 그런데 어떻게 된 거죠? 추가적인 구조가….”
“아마 안 올 거예요.”
도하연은 이들에게 다시 현실을 직시시켰다.
“두 사람만 타고 그냥 가버렸어요. 사실상 포기해야 할 듯하고 다른 방법을 찾을까 해요.”
“우리를 버렸어!”
하지만 신민기 일행은 격분하고 있었다. 그 뒤 소리가 들릴까 다급히 입을 막는 촌극까지 벌였다.
흥분은 곧, 진정되었다.
도하연은 그 속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신민기를 보았다.
신민기는 일전에 보여준 리더로서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냥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차량을 가지신 분 차 키 좀 꺼내주실까요?”
도하연의 말에 3명 정도가 차 키를 꺼내 들었다.
“주차장. 거기까지 다시 가는 수밖에요.”
“미친 거지.”
신민기가 그때 입을 열었다. 반쯤 자포자기한 얼굴로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감염자는 도처에 있고, 그년은 우리를 버렸어. 차? 어떻게 거기까지 가는데?”
절망적인 어투로 이곳의 분위기는 침울해졌다. 하지만 도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헬기 소리로 감염자들이 이동했어요. 그리고 피난민센터의 감염자들도 우리 때문에 이리저리 흩어진 상태고요. 해볼 만해요.”
그녀는 차분하게 왜 이 작전이 되는지를 일설했다.
“무엇보다 여기에만 있으면 누가 구조해주러 오나요? 민기 오빠. 갑자기 그러지 마세요. 민기 오빠가 할 이야기 아니었어요? 아직 희망이 있다고요.”
“시끄러!”
민기가 갑자기 소리쳤다. 도하연은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감염자들이 헬기 따라 움직인 게 다행이라고 할 수준.
그녀는 떠나면서 말했다.
“그러면 우리끼리라도 갈 거예요. 오실 분들은 우리 방으로 오세요.”
도하연은 그렇게 나갔다.
“어떻게 하죠?”
윤철은 친한 형인 유상도에게 넌지시 운을 띄었다.
말 그대로 가자는 거다. 신민기 일행 중 반수는 여기서 어떻게든 나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리더인 신민기는 왜 그런지, 의기소침해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는 일. 오히려 가려는 이들을 노려보았다.
“그게 될 거 같아? 언제 사방에서 감염자들이 몰려올지 모르는데?”
“하지만 여기에서 죽을 수는 없잖아요!”
“나도 알아. 하지만 다시 피난민 센터로? 힘들어.”
이상할 정도로 부정적이다. 신민기가 암울해 할 때,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윤철이 나가서 열자, 이번에는 지아가 서 있었다.
“최미옥 씨 일은 잊죠. 민기 씨. 우리 이야기 좀 할까요?”
그녀가 신민기를 불렀다. 윤철은 배신당한 분노로 거절하려 했지만, 민기가 일어섰다.
“그래. 뭐라도 해보지.”
이 두 사람은 자연스레 원래 호실로 이동했다. 남은 자들은 리더가 없어지자 논의가 활발해졌다.
“민기 형을 배신할 거냐?”
“배신이라뇨. 설득해서 가자고 하죠. 형도 여기에 있을 거예요?”
현실적으로 이곳에 남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굶어 죽든가, 감염자 밥이 되든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한 시간 정도의 토론.
윤철이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도하연에게 작전을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때, 신민기가 상기된 얼굴로 지아의 호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윤철은 왠지 모를 공포감을 느꼈다.
“오호라. 윤철이가 우리를 버리려고?”
“아, 아니에요.”
살기 가득한 눈. 신민기는 갑자기 헛구토 하듯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후우…. 후우…. 그래. 참을 수 있어. 참아야지….”
“미, 민기형?”
윤철이 침을 삼키며 다가가자, 신민기는 갑자기 벽을 쳤다.
“후우…. 후우….! 그래, 움직이자. 이대로 끝내기는 싫으니까.
이성을 찾았는지, 그는 도하연의 작전에 동참했다.
하지만 윤철은 신민기가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그렇게 윤철이 다시 도하연 쪽으로 전하고 이들의 작전개시일은 새벽으로 결정되었다.
그날 밤, 신민기는 지아 쪽 호실에서 잠을 청했다.
새벽. 어스름한 기운이 가득할 때, 동현을 앞세워 이들은 조심스럽게 무너진 현관으로 향했다.
밟혀 죽은 감염자의 사체와 유리조각이 엉망이 된 곳. 다행히 감염자는 보이지 않았다.
10여명은 조심스럽게 빌라를 나와 피난민센터로 향했다.
감염자들은 역시나 띄엄띄엄 널려 있었다.
동현도 숨을 죽였지만, 다행히 이들은 공격해 오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어둠이 가시지 않아서일까? 동현은 하나씩 야삽으로 후려갈기며, 전진하고 있었다.
신민기는 지아를 뒤에 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사람은 다시 붙었다. 다만, 지아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탈출뿐.
쌓은 진지를 다시 넘고 이들은 안쪽에서 움직이는 감염자들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도하연의 예상대로 수가 적었다. 정말로 주차장까지 드문드문했다.
즉, 탈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보였다.
이들은 주차장까지 진입하는데, 감염자들이 여럿 보였다.
동현은 일행들을 멈추고 여기서 한바탕 해야 할 걸 깨달았다.
“모두 자기 차량 위치 파악해둬.”
그가 지시를 내리고 차 키를 가진 이들은 자기 차량 위치를 파악하느라 분주해졌다.
대략 차량 위치를 파악한 순간, 동현은 조를 나누어 진입시켰다.
윤철이 도하연쪽에 붙었다. 이들은 중간쯤 위치한 SUV 차량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이때만큼, 긴장된 순간이 없었다. 동현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걸, 느낄 때였다.
“윽!”
짧은 비명이 귓속을 메아리쳤다.
모두가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차 아래서 기어오는 감염자가 보였다.
“기이?”
다른 감염자들이 반응한다. 조금씩 신민기 쪽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동현은 그들을 보면서 두 손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
침착하게.
수신호는 그거였다. 하지만 그때, 신민기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총을 갈겼다.
탕!
어스름한 새벽을 깨우는 총성. 동현이 표정이 흙빛으로 변했고, 그와 동시에 신민기는 웃기 시작했다.
“콜록…. 시발! 놀랐잖아…. 콜록! 시발, 너희 때문이야!”
신민기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이미 감정적으로 터질 대로 터진 그는 별안간 총을 주변에서 난사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신민기는 말 그대로 미쳐서 동현 쪽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나를 배신하려고. 콜록! 시발…. 너희도 죽……. 아아악!”
하지만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른 감염자에게 물리고 말았다.
기침 소리가 들리고 감염자들이 준동한다.
동현은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윤철에게 뛰라고 명했다.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