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10
허순자는 문 앞에서 리볼버를 들었다.
“일단 들어오기 전에 묻지. 자네 감염자들을 어떻게 했나?”
“당연히 다 처리했죠. 체대 출신이고 한두 번 싸워본 게 아니에요!”
“할머님. 왜 막는 거예요. 열어주자고요.”
옆에서 여성이 보채지만, 허순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잠깐만 기다려주게. 어차피 감염자는 다 처리했다니까 그 정도는 가능하지?”
“위험한데 무슨 소리여요. 문 열어줘요.”
거칠게 문이 울린다. 허순자의 눈매는 더욱 예리해졌다.
“그렇게 두들기면 감염자가 올 수도 있어.”
“내가 다 처리했다니까요? 대체 왜 그래요?”
“그러니까 기다리라는 걸세.”
허순자가 시간을 끌자, 여자 쪽에서 화를 내었다.
“저희는 그냥 받아줬잖아요. 왜 우리 구민이는 막는데요.”
“감염자랑 싸웠기 때문이지. 그리고 너희가 문을 두들길 때는 여러 명이었다. 누군가 감염 됐으면 절대로 같이 움직이지 않지. 하지만 구민이라는 놈은 혼자야. 감염자가 없다면 조금 더 기다리는 게 맞다.”
“웃기지 마요!”
바로 그 순간, 여성은 벼락같이 튀어나오겠다. 허순자가 팔목을 잡았지만 이미 문을 살짝 열렸다.
그리고 푸른 혈관이 돋아나고 있는 구민이 이곳으로 침투했다.
“구, 구민아!”
“시발, 나만 싸우다가…. 너네는 하는 게 뭔데. 너도 똑같이 돼보라고!”
“아아악!”
여성을 구민이 덮쳤다. 삽시간에 물어 뜯겨 살점이 뜯기고 사내는 다음 사냥감을 향해 눈을 번뜩였다.
윤주현은 화살을 매만졌지만, 허순자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앞에 있었기에 활을 내려놓았다.
설동이 도끼를 들고 일어섰다.
“제기랄. 아주 이판사판이네.”
감염자의 침입.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비명에 감염자들 두셋이 추가로 올라왔다.
“기에에엑!”
“구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먹이를 보고 달려드는 이들. 이 옥상은 삽시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설동은 그 누구보다도 빨리 달렸다. 가장 먼저, 구민이라는 사내.
이 사내는 몸이 기괴하게 꺾이며 완전한 변신을 하려하고 있었다.
설동이 다가가자, 구민의 시선이 향한다. 설동은 간격을 잊지 않고 있었다.
‘놈의 공격 거리를 유도한다.’
그의 경험은 다시 간격 싸움에서 손쉽게 상대를 눌러버리는 것으로 끝났다.
구민이 달려들기 전, 일부러 한 발짝 물러서서 도끼를 내려찍었다.
타이밍은 완벽했다. 코앞에서 구민의 이빨이 지상으로 다시 떨어졌다.
설동은 다시 남은 세 마리를 보았다. 옥상은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탕.
사람들이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사이에서 설동이 용감하게 소리를 질렀다.
“야! 어디 가!”
그가 주도하며 감염자들의 시선을 끌자, 허순자는 필준에게 소리쳤다.
“반장이라는 놈이 엉덩이만 뺄 거야? 지금 눈앞에 적이 있다!”
이필준은 벌벌 떨면서 일어섰다.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에라이! 대체 왜 또 싸우는데. 이 망할 놈들아!”
자포자기 하듯 달려 나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필준은 쇠파이프를 달려드는 감염자를 향해 내던졌다. 감염자가 맞고 주춤하는 사이 드롭킥으로 통째로 날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쇠파이프를 주운 채, 무차별적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설동은 휘파람을 불었다.
“잘하는데?”
허순자 역시 야삽으로 감염자 하나를 치며 웃었다.
“저놈은 꼭 구석까지 몰려야 잘하지. 진작 저러면 얼마나 좋누.”
두 마리가 끝나고 남은 건, 2마리. 하지만 곧 한 마리로 줄었다. 윤주현이 어느새 달려와서 근거리에서 화살을 때려 박았기 때문이다.
윤주현은 거기에 구민에게 물린 여성이 일어나자마자 머리통을 날렸다.
남은 한 마리. 설동이 다시 전력으로 달렸다.
“키에에엑!”
이번에는 감염자의 다리를 노렸다. 앞으로 향한 두 손. 설동은 축구 태클하듯 다리 하나를 걸고 넘어트렸다.
“기에에엑!”
바동거리는 감염자. 하지만 설동의 매서운 도끼가 그대로 머리에 박혔다.
“끝.”
설동은 옥상 문을 다시 닫았다. 다시 조용해진 옥상, 자연스레 살아남은 이들은 안도했다.
해가 이제 점점 올라오고 헬기도 빠르게 이들에게 오고 있었다.
7. 해후
박준길의 부대가 다시 돌입한 건, 점심때쯤이었다.
설동 일행 역시, 잠깐의 휴식 뒤에 바로 학교 쟁탈전에 참가하여 기어이 자신들의 진지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엄청난 위기였지만, 결국 이겨내었다. A 구역은 당연히 재정비에 들어갔다.
일단은 안정세가 되나 했지만, 더 큰 문제가 터졌다.
바로 옆 B 구역이 무너지고 만 거다.
“C 구역은 연락 두절, B 구역은 궤멸. 최악의 상황이로군요. 여러분들은 최선을 다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차후 더 힘들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실무 책임자인 구상준은 수심 깊은 얼굴로 반장 회의에 나섰다.
반장들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리 쪽이야 몰려든 감염자를 격퇴하긴 했지만, 학교 건 때문에 병력이 분산됐어요. 대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김반은 구상준의 추궁에 살짝 몸을 움츠렸다. 이 모든 게 자신이 벌인 일 하나로 일어났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박준길이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원래 감염자라는 게 갑자기 나타나는 법이라서…. 애매합니다.”
허순자는 약간 놀라는 투로 박준길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끼어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불필요한 희생이 일어났어. 단순하게 말할 수 없잖나.”
“허 담당관님은 뭔가를 아십니까?”
구상준의 물음에 허순자는 김반을 노려보았다.
“김반, 네가 말할까. 내가 말할까? 솔직하게 말하는 게 보기도 좋지 않겠나?”
“…..”
김반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구상준이 시선이 김반에게 쏘아진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설마, 김반 씨가 뭔가 사고를?”
“죄송합니다.”
섣부른 거짓말은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김반은 결국, 모든 사실을 이실직고했다.
“뭐라고요? 지금, 마음에 안 든다고 납치하고 폭력을? 그리고 감염자 사태가 나왔다고?”
구상준의 말투가 바뀌고 김반은 벌벌 떨었다.
신영주는 그때, 침울한 얼굴을 들었다. 그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김반. 정말로 너야?”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영주에게 김반은 침을 삼켰다.
“영주야. 그게…….”
짝!
거칠 거 없는 스윙이 김반의 뺨을 갈겼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 이 개자식아!”
“참아! 영주야.”
이필준이 놀라서 말렸다. 이 사태로 신영주는 가족을 잃었기에 김반에게 원한이 클 수밖에 없다.
박준길과 이필준이 신영주를 달래며, 회의장을 진정시켰다.
구상준은 분을 참으며 머리를 매만졌다.
“일단, 반장 업무는 정지합니다. 나중에 정식 군 회의에서 처벌을 논의할 테니, 벌로 최전선 노역에 ‘일반 대원’으로서 봉사하세요.”
“네.”
김반은 고개를 푹 숙였다. 찜찜하기 그지없는 마무리. 허순자는 회의실 바깥에서 박준길을 불렀다.
“준길이 자네, 왜 그런 건가?”
“네?”
박준길은 허순자의 눈을 순간, 피했다.
“내가 필준이랑 같이 김반이 한 짓거리를 다 말했는데, 대강 뭉개고 가려 하다니….”
“알아요. 저도…. 그런데 감정이 어쩔 수가 없네요. 누가 뭐래도 같이 한 동료 아닙니까. 영주 일도 잇고 완전히 무너질 거 같아요.”
“나도 말하기는 싫네. 하지만 사안이 너무 커. 제재가 없으면 또 뭔 짓을 벌일지 몰라.”
박준길은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튼, 이 사건의 결과로 김반은 반장 직에서 일단은 물러난 모양새로 결론을 냈다.
[삐 소리 후…….]설동의 휴대폰은 기약 없이 상냥한 안내전화만 수십 번째 듣고 있었다.
“왜 연락이 안 되는 거야.”
유상인도, 부모님도 모두 통화가 되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설동 일행은 그동안의 공로로 일주일간의 휴식을 부여받았다.
포인트는 물론, 부상으로 고기까지 받아 피난민 중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여유로웠다.
하지만 설동의 마음은 점점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한꺽정이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고 교실로 들어왔다.
“나 참, 성우랑 주현이 완전히 숨바꼭질 데이트를 하고 다니네. 볼 수가 없어.”
투덜대는 한꺽정의 말도 설동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후우.”
“왜 그래? 친구, 나처럼 여자 문제로 고민이라도?”
“가족이 연락이 안 돼.”
답답해서 결국, 말을 꺼내고 말았다. 한꺽정의 얼굴이 숙연해졌다.
“아니…. 그게…. 그렇구나.”
“아니야. 말 그대로 나처럼 한동안 연락 못 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
한꺽정은 그런 설동을 위로해주었다. 물론, 당장 알 수가 없으니, 스스로 마음속으로 위안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로 가야 해.’
설동의 마음속이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가기 위해서는 부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보내주지 않았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인가…….’
설동은 자기 옆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한꺽정을 보았다.
그가 인천에서부터 오면서 같이 한 동료다.
‘이제는 진짜 가야겠어.’
일단 구상준을 만나서 허락을 맡아야 했다. 허락을 맡지 못하면?
‘그래도 넘어간다.’
가족에 대한 걱정이 점점 커진 상태. 설동이 마음속으로 결심하려는 찰나, 빈성우와 윤주현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여유가 생기고 두 사람만의 시간이 늘어나자, 즐거운 듯했다.
한꺽정의 시선에 질투의 감정이 끼어들었다.
“이 자식들아. 설동이는 부모 걱정인데, 너희는 아주 잘 노네?”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그 저변에 질투심이 표출되었다.
윤주현은 놀라서 설동에게 다가갔다.
“진짜? 설동아….”
“걱정하지 마.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
설동은 괜한 걱정을 끼친 거 같아서 황급히 그들을 만류했다.
교실 안의 분위기는 축 처졌다. 설동은 난감해 하려 할 때였다.
“신설동 씨.”
별안간 교실에서 한 군인이 찾아왔다.
“중대장님이 찾으십니다.”
“중대장이?”
설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일단, 가기는 가야 했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민 센터로 찾아간 설동은 거기서 보고서를 읽은 중대장, 구상준을 만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 어서 오세요. 신설동 씨. 다른 게 아니라 김반에 관해서 알아볼 게 있어서요.”
“아….”
설동은 대강 무슨 일인지 파악했다. 원인 규명을 하려는 거다.
설동은 여기서 거짓을 섞어야 했다.
“다짜고짜 머리를 맞고 깨어나 보니 교무실이었어요. 김반 패거리들이 저를 죽일 거라고 외치더군요. 근데, 도중에 갑자기 한 사람이 저를 때리면서 흥분하기 시작했죠.”
“그런 것치고 몸이 멀쩡하군요.”
쓸데없이 파고든다. 설동의 완전무결한 몸은 부상의 부자도 꺼내기 힘든 수준. 맞은 것치고는 부상 부위도 없다.
설동도 살짝 당황했다.
“원래 운동한 몸이고, 크게 맞기 전 이라 서요.”
“그래요, 도대체 김반하고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첫날에 시비 걸어서 하이 킥으로 기절시켰죠.”
설동의 당당한 대답에 구상준은 잠시 머리를 매만졌다.
“싫어할 만은 하군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납치해서 죽이려는 건, 아니죠.”
“그렇죠. 그건, 절대로 아니죠. 김반에게도 책임을 물을 겁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야기는 대강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설동은 드디어 가슴속에 품은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예전에도 말했는데, 서울로 가고 싶습니다. 보내주세요. 솔직히 여기에서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일도 해결하고 점령도 하고. 할 건, 다 했어요.”
“그건, 정말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이쪽 상황도 여유가 없어서…. 조금 더 해줬으면 하는데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설동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가족들과 연락이 끊겼어요. 전 무조건 갈 겁니다. 허락하지 않아도요.”
“…….”
구상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 설동을 유심히 바라본 그는 한숨을 쉬었다.
“정 그러시다면, 절차를 밟고 내보내 주겠습니다. 며칠 걸릴 테니 기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드디어 모든 것이 결정 났다. 설동은 후련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발…. 다들 무사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으로 피난민센터 정보를 찾으려 했다.
[김기철 연구소는 피난민들을 환영합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 중입니다.]“…….”
설동은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다.
다음날, 데이트하러 나간 윤주현과 빈성우가 없는 교실에서 설동은 자기가 곧 떠난다는 사실을 말했다.
“떠난다고?”
한꺽정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모님이랑 그 형제 걱정도 날 테니….”
설동은 가야만 했다. 수긍하기는 해도 아쉬움이 진한 건, 당연했다.
한꺽정은 바로 윤주현과 빈성우를 부르기 위해 휴대폰을 두들겼다.
“또 안 받네. 아주 그냥 데이트에 미쳤어!”
“한창 좋을 때잖아. 놔둬. 와서 이야기하면 되지.”
설동은 살짝 흥분한 한꺽정을 말렸다.
하지만 한꺽정은 그러거나 말거나 연신 전화기를 두들겨 기어이 두 사람을 소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