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11
빈성우가 짜증을 내었다.
“대체 왜 자꾸 전화하는 거야! 작작해.”
“이 새끼들아 설동이 떠난단다. 마지막 자그마한 파티라도 해줘야지?”
“진짜?”
빈성우의 표정이 달라졌다. 하지만 곧 다시 찌푸렸다.
“그냥 알려만 줘도 되잖아! 갑자기 불러 대서 놀랐네.”
윤주현도 합세했다.
“그럼 파티 한다고 하면 우리가 알아서 준비하지. 괜히 부르고 있어. 요새 왜 그래?”
한꺽정은 두 사람의 공격에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아니…. 난, 그냥 중요한 거니까. 그런 거지. 그리고 너희 요새 너무 나돌아 다녀. 뭉쳐야지.”
윤주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거야 일이 생기면 그러겠지. 우리 휴식이잖아. 이럴 때 노는 거지.”
“아니, 그래도….”
한꺽정이 우물쭈물하며 변명하려 하자, 빈성우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꺽정아. 그만해. 주현이랑 나는 사귀는 사이야. 알고 있잖아. 근데 왜 그러는데? 설마, 질투야?”
“뭐? 내가 질투 때문에 이런다고?”
“그러면 그거 말고 뭐 있는데?”
빈성우와 한꺽정이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설동은 다급히 중재에 나섰다.
“내가 잘못했다. 애들아. 그만하자. 내가 가는 거 축하해준다며? 이런 상태로 축하를 받으라고? 그만하자. 제발….”
예상외의 사태였다. 지금까지 똘똘 뭉쳐 다니던 이들이 작은 분열이 일어난 거다.
설동은 한꺽정을 데리고 나갔다.
“미안하다. 애들아. 준비는 내가 할게. 그냥 오기만 해.”
이 상태로 파티 준비가 될 리가 없다. 설동은 그냥 본인이 준비하고 이들을 부르기로 했다.
‘술이라도 먹여서 속 시원하게 하면 다시 화해하겠지.’
전통적인(?) 화해방식인 술을 매개로 한 대화.
설동은 그걸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설동은 윤주현과 함께 포인트를 이용해 고기와 술을 잔뜩 가지고 야외 바비큐 파티를 준비했다.
윤주현은 그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진짜 네가 있으니 안심이었는데, 든든한 남자는 어디서 구하지?”
“성우한테 부탁해. 하하, 근데 진짜 두 사람이 화해해야 하는데.”
“내말이. 솔직히 연인 사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꺽정이도 나를 좋아했으니까. 나도 그 정도는 알아. 너무 자제 없이 돌아다녀서 그럴 수도….”
윤주현은 살짝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녀가 잘못한 거는 없다.
설동은 웃었다.
“이런 감정싸움은 술 한 잔으로 치유되지. 서로 술 먹으면서 주먹이라도 한 대씩 날리는 거야. 그리고 앙금을 푸는 거지.”
“진짜 남자 놈들이란….”
윤주현이 설동이 말한 방식에 혀를 찼다.
이 두 사람은 특히 한꺽정과 빈성우가 앉을 자리에 술을 잔뜩 세팅했다. 얼마 뒤, 한꺽정과 빈성우가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설동과 윤주현은 일부러 이 두 사람을 같이 붙여놓고 자기들이 그 반대편에 앉았다.
노골적인 포지션. 한꺽정과 빈성우는 술을 잔뜩 마시며 일단은 이들의 기대대로 흘러갔다.
하지만 한꺽정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야, 빈성우. 넌 할 줄 아는 게 뭐냐?”
“뭐?”
“네가 뭘 하는데? 솔직히 나랑 설동이, 주현이가 다하잖아!”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꺽정은 분명히 지금,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감염자 사태 때야 너무나도 위급하고 생존이 먼저였으니까 신경 쓰지 않은 것들이 눈에 보이고 있었다.
윤주현과 빈성우. 한꺽정은 마음속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생존이 먼저지 않는가.
분명 자신의 장기를 살려 친구들을 먹여 살린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한꺽정은 겉으로는 쿨한척을 하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 사이를 잊게 해줄 감염자도 눈앞에 있지 않는가.
하지만 설동이 이곳에 오고, 이들에게는 여유가 생겨났다.
특이체질의 사내를 앞세워 어지간한 곳은 4명의 힘으로 돌파할 정도로 말이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뭘 하든 이 4명은 똘똘 뭉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공을 세우니 당연히 보상도 따라오고 그것이 여유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주현아…….’
하지만 그럴수록 한꺽정의 마음은 격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생존 때는 그래도 자신 덕에 두 사람 모두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우쭐하기 까지 했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가 대놓고 친구와 데이트를 간다.
그 데이트가 한꺽정의 머릿속에서 종처럼 울리고 있었다.
속상하고 열이 받는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욕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속마음을 친구인 빈성우가 아주 정확히 건드렸다.
소위 말하는 발끈한다는 거다. 그 감정이 소용돌이치던 한꺽정은 결국, 폭주하고 말았다.
술자리에서 한꺽정은 술의 힘을 빌려 속에 쌓인 것을 토해내었다.
“넌,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놈이잖아!”
“개자식아!”
빈성우가 시뻘게진 얼굴로 한꺽정을 발로 차버렸다. 비틀거리며 바닥에 구른 이 사내는 살벌한 얼굴로 일어섰다.
“시발, 빌딩에서부터 내가 다했잖아. 맞지? 주현아…….”
윤주현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만해. 이럴 거면 파티는 왜 해? 너무하다.” 그러면서 빈성우에게 달려가는 게 아닌가.
한꺽정은 술에 취한채로 웃었다.
“아, 둘이 잘 붙어 다니시겠다? 그래봤자 나 없으면 뭐가 되나? 지금 세상에서 얼굴만 가지고 뭐가 되겠냐? 아! 여자나 홀려서 기둥서방을 하면 되겠네.”
빈성우와 윤주현의 표정이 험악해졌을 때, 설동이 달렸다. 그의 주먹은 바로 한꺽정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그만 해! 우리가 함께 싸울 때 다 있었어? 성우가 우리 옆에서 열심히 싸운 건 다 잊어버린 거야? 한꺽정. 너, 요새 좀 이상해.”
“…….”
한꺽정은 상체만 세운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 같이 싸워왔는데 뭐가 잘나? 우리가 4명이니까 안심하고 뭉친 거지. 하……. 파티는 나중에나 하자.”
빈성우와 윤주현이 다급히 떠나가고 한꺽정은 별안간 땅을 후려쳤다.
“난……. 난……. 대체…….”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울기 시작했다.
“성우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뒤늦은 후회. 하지만 이미 균열은 일어나고 말았다.
이제 A 구역 내에서 신설동 일행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에도 그 무용은 계속 화제가 되고 있었다.
물론, 김반은 여전히 싫어했다.
“시발, 반장을 그만두라니……. 내가 얼마나…….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그가 이곳에 초창기 때부터 노력했지만, 결국 사태의 책임에 반장직을 벗고 말았다.
“쳇. 빌어먹을! 망할……. 지가 감히…….”
게다가 학교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사람들의 시선에서 신뢰도가 저절로 깎이고 있었다.
‘시발. 시발. 개시발!’
자신의 권위가 무너지고 억울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현실은 이미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인정받고 있었고, 자신은 사고뭉치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단적으로 그가 쓸데없이 트집 잡으면 군말 없이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반기를 들었다.
“김반 씨. 그만 해요. 왜 그냥 멀쩡히 일 잘하는 사람한테 시비를 걸어요?”
“뭐라고? 지금 나한테 그런 거야?”
김반이 화를 냈지만, 시선이 달라졌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어차피 반장도 이제 아니라면서요?”
그의 명령을 듣는 이는 말 그대로 옛 인연들 정도였다. 김반은 이를 악물었다.
‘꼭 복수한다. 신설동. 이 개새끼!’
물론, 신뢰를 받는 그를 건들기는 어려웠다.
심지어 구상준까지 설동을 좋아하고 있었다.
김반은 이런 고평가에 속으로 천불이 났다. 같이 온 박준길이나 허순자면 인정한다. 그런데 신설동은 아니었다.
김반은 반대 의견에 동조해줄 사람을 찾았지만, 이미 권력이 없는 그를 누가 동조해주겠는가.
그는 쉬는 시간에 이필준을 찾아갔다.
“필준이 형. 부탁 좀 해요. 그놈을 아예 위험 지역에 싸우라고 같이 건의하죠. 띄워주면서 말이에요.”
“뭐?”
이필준이 머뭇거렸다.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김반은 그를 압박했다.
“형. 우리 같은 동지잖아요. 이곳에서 가장 먼저 와서 개고생한 사람. 이럴 겁니까?”
“아니, 그게……. 아휴 모르겠다.”
“아, 형!”
이필준은 금세 뒤로 뺐다.
‘저 겁쟁이가!’
이필준은 항상 그랬다. 나서기 싫어하고 두려워서 적당히 한다.
그때, 박준길이 문자를 보내었다.
“B 구역과 C 구역을 다시 탈환하겠다고? 어쩌라고. 난 반장도 아닌데. 하아…….”
김반은 화를 참지 못하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한 남녀를 볼 수 있었다.
윤주현과 빈성우. 이 두 남녀가 서로 껴안고 있었다.
“제기랄. 커플 질이야. 짜증나게.”
김반은 침을 내뱉으며 몰래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다음에 들린 소리가 그의 상상을 자극했다.
윤주현이 남자친구를 토닥거려 주고 있었다.
“성우야. 화내지 마. 꺽정이가 술에 취한 거니까. 넌, 잘하고 있어. 설동이도 그러잖아. 걔가 술 먹고 아무소리나 한 거야.”
“다들 잘하고 있는데, 난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솔직히 말해서 부럽기도 해.”
성우는 한꺽정이 한 소리에 마찬가지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도 나름대로 하지만 괴물 같은 나머지 사람에게 비하면 평범하기 그지 없었다.
윤주현은 남자친구의 볼을 어루만져주었다.
“누가 신경 써?”
“그래도 나도 뭔가를 하고 싶어. 하아……. 그래, 뭔가 좀 잘하고 싶단 말이야. 한꺽정 자식이 저런 소리 못하게.”
한탄하는 성우의 말이 들리는 바로 그때, 김반은 갑자기 머릿속에 전구가 켜진 듯 한 느낌을 받았다.
“혹시……. 저거 이용하면?”
사악한 미소가 흘렀다. 그는 박준길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같은 또래, 같은 무리인데 자기 빼고 다 잘 나간다.
남자들의 경쟁심을 생각하면 분명히 열등감을 느낄 게 분명했다.
심지어 한꺽정과 미묘한 관계로 마찰이 생긴 그로서는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난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군복을 입고 권총 하나만 든 채, 빈성우는 다른 부대원들과 이동하고 있었다.
‘미안해.’
그는 지금 홀로 다른 사람들과 B 구역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루 전, 김반은 한꺽정과 신설동, 윤주현을 찾는 척하면서 빈성우에게 다가왔다.
“아, 그 세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왜 그러시죠?”
“아니, 이번에 좀 위험한 작전이긴 한데, B 구역을 다시 탈환해야 하잖아? 아무래도 깡 쌔고 잘하는 놈을 해야 하는데……. 네 친구들이 잘하잖아.”
김반은 짐짓 빈성우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빈성우의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저도 가능해요.”
“······아! 미안. 무시하는 건 아니야. 근데 솔직히 그 셋은 실적이 있어서……. 이름이 뭐라고?”
“빈성우요. 무조건 지원합니다.”
김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게 그가 이 부대에 지원한 경위였다.
물론, 설동과 윤주현은 반대했다.
“위험해. 휴식이니까 굳이 갈 필요가 없잖아?”
윤주현도 마찬가지다.
“성우야, 안 돼. 지금 거기에 베테랑들이나 좀비랑 교전해본 사람들만 뽑고 있어.”
두 사람이 말리자, 빈성우는 화를 냈다.
“나도 싸워봤어! 나도!”
“······.”
순간, 이곳에 정적이 흘렀다. 저 말이 무슨 의미인 줄 알기에 모두 멈칫한 거다.
빈성우는 곧장 몸을 돌렸다.
“나도 할 수 있어. 부대원들도 있고, 여차하면 중무장한 부대도 투입된 데. 걱정 마. 나도 할 수 있어.”
“아니, 차라리 내가 갈게. 난, 괜찮잖아. 어차피 곧, 갈 사람이기도 하고. 너무 위험해.”
신설동이 나서자, 빈성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야, 신설동. 넌, 내가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로 보여?”
“그런 뜻이 아닌 거 알잖아? 꺽정이 때문에 지금 너무 흥분했다.”
“됐어. 그러면 지켜봐 줘. 어차피 처음에는 안전한 구역부터 가는 거니까.”
빈성우는 그런 두 사람을 만류한 채, B 구역으로 이동했다.
‘나도 할 수 있어! 나도 할 수 있다고!’
가는 도로에 탱크 한 대가 앞장섰다. 감염자로는 탱크를 어떻게 처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웅장한 소리에 꾸물거리는 구더기처럼, 감염자들이 사방에서 기어 나왔다.
탱크는 좀비들을 밟고 황소처럼 간다. 뒤를 이어 소총을 가진 부대가 투입되어 탱크를 지원한다.
빈성우의 투입은 이다음이다. 일단, 눈에 보이는 감염자를 처리했지만, 꼭 숨어있거나 기행을 벌이는 좀비가 있었다.
이들은 주변의 감염자를 찾아 섬멸한다.
“후우. 후우.”
빈성우는 권총을 들고 나섰다. 자기도 한꺽정처럼 날래게 도시를 누비고, 설동처럼 앞장서고 싶었다.
두근.
하지만 긴장감이라는 녀석은 언제나 손쉽게 찾아온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자기도 남들에게 인정받고 잘하고 싶었다.
여자 친구인 윤주현조차 그러지 않았는가. 자신도 보여줘야 할 때였다.
“이쪽 세륜 상가 내에 감염자 열 마리 발견! 지원 바랍니다!”
“후우.”
첫 전투다.
무전기에 따라 이들은 도로 우측에 나 있는 세륜 상가로 잠입을 시도했다.
탕! 탕!
총소리가 난무하는 공간 속에 빈성우는 선두로 진입했다.
“캬아아악!”
달려드는 감염자를 보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여기에는 화살로 오기 전에 요격해주는 윤주현도 앞에서 든든히 버텨주는 설동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