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13
윤주현은 리볼버 하나를 들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빈성우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어……. 어……. 콜록. 커억! 콜록!”
“주현아!”
“시끄러워! 한백민! 나……. 성우가 좋아. 그런데…. 이렇게 될 수는 없어!”
주현의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거기에 주목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갑자기 아무 말 없이 일어서는 빈성우를 주목하고 있었다.
한꺽정은 애달프게 외쳤다.
“주현아! 제발!”
윤주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시에 설동의 머리에는 허순자가 한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는 언제든 하고 있어야 한다. ‘포기’는 오히려 용감한 자들이 할 수 있는 거니까.]윤주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아니, 그건 설동도 마찬가지다.
‘성우가…….’
그도 감히 같이 싸워온 동료를 망설임 없이 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망설임은 결국, 더 큰 피해를 불러왔다.
빈성우가 윤주현을 덮쳤다.
“꺄아아악!”
빈성우의 이빨이 윤주현을 무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허순자가 정확히 머리통을 노려서 요격한 거다.
빈성우는 한방에 쓰러졌다.
하지만 목 부근에 진하게 남긴 이빨 자국이 있는 윤주현은 몸을 떨었다.
“죽었어! 죽었어. 죽······. 개새끼들아!”
감정의 동요. 급격히 일그러진 윤주현은 푸른 혈관이 빠르게 돋아나고 있었다.
김반이 총을 쐈지만, 빗나갔다. 허순자 역시 총을 쏘려 했지만, 윤주현이 더 빨랐다.
“엎드려!”
허순자의 말에 모두가 엎드렸다. 하지만 윤주현의 리볼버는 설동, 박준길, 이필준을 차례로 맞춰버렸다.
무서울 정도의 적중률이었다. 그나마 소총처럼 난사할 수 없는 게 다행일 정도였다.
“아아악!”
비명의 연속. 한꺽정은 망연자실했고, 허순자가 다시 윤주현의 머리를 노렸다.
탕!
순식간에 윤주현마저 쓰러졌다. 고요해진 병원 옥상에서 거친 숨만이 맴돌았다.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허순자가 소리쳤다.
“누가 맞았나? 무전 쳐! 여기 병원이지? 생리식염수랑 항생제 갖고 와!”
허순자가 날카롭게 외치는 사이, 한꺽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은 두 사람만 보고 있었다.
“주현아……. 성우야…….”
실의에 빠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는 설동도 마음이 찢어지는 거 같았다.
그리고 신영주가 다가오자, 황급히 몸을 돌렸다.
힐링팩터로 바로 총알을 밀어버려 재생한 거다.
누가 봐도 맞았지만 하도 경황이 없어 다들 신경 쓰지 못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김반.
그는 설동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분명히……. 맞았는데?’
의아한 시선이 신설동을 향했다. 하지만 설동은 그보다 친구 두명의 죽음에 정신이 쏠려 있었다.
[멕시코, 국토가 감염자로 물결치다. 사실상 정부가 망명 타진] [미국 핵 여파로 다수의 피폭자 발생하다. 현재 미국 정부는 서부로 이동 중이라고 발표!] [프랑스의 상징 에펠탑에서 목격된 감염자. 프랑스 최후의 마지노선이 뚫리다.]나날이 소식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TV에서 보여주는 내용은 긍정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감염자의 파괴력은 압도적이었다. 전염이 영화에서처럼 물리는 것만이 아니라 바이러스라는 막강한 전파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게 컸다.
그래서 문제인 거다. 일반적인 영화에서나 보는 감염자 대처법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냥 멀쩡했던 사람이 감염자로 변하니까.
사태 발발 후, 벌써 두 달이 넘어섰다. 어느 시점부터 국군과 감염자의 전투는 TV 뉴스에서 조금씩 사라졌다.
그 이유에 대해 모두가 추측만 할 뿐. 감히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끝났어! 끝났다고!”
한 젊은 남성이 밥 먹는 중에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이 남자는 휴대전화를 들고 외쳤다.
“이미 부산부터 대전은 먹혔고 서울도 반 이상 점령당했어! 천만 이상의 좀비가 있다고! 끝이야! 끝이라고!”
“잡아!”
식사하던 군 관계자들이 황급히 남자를 붙잡았지만, 민심이 흉흉해 지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진짜야! 인천 근처에서 도망쳤는데 곰처럼 거대한 감염자를 봤다니까?
-구라치고 있네. 피난민 센터에서 놀고먹으면서 유언비어나 퍼트리네?
-우리 근처 아파트에서는 창문을 기어 다니는 괴상한 것도 있더라? 거미처럼 팔다리가 길어
-여기 허언증 갤러리임? 개새끼들아, 나 풍성충이다.
-그거보다 우리 동네 군부대 하나 주둔했는데 사라짐. 이거 좆된 거임?
살아남은 자들은 온갖 괴소문과 유언비어에 뭐가 진실일지 모를 정도였다.
이런 세계에서 어찌 보면 당연했다. 흉흉한 소문이 안 돌 수가 없었다.
한국은 끝장난다느니, 인류가 멸망한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인터넷을 떠돌았다.
“······아무튼, 그렇대.”
설동은 병실 안에서 휴대전화를 보았다.
하지만 반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분명히 설동의 앞에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다.
“…….”
병실에는 눈에 띄게 초췌해진 한꺽정이 있었다.
건강하고 날렵했던 이 산적은 지금, 거지보다도 못한 꼴로 병실에 누워 있었다.
눈은 하도 울어서인지, 퉁퉁 부어 앞도 보기 힘들 정도였다.
윤주현과 빈성우가 죽고 나서 일주일이 지났다.
한꺽정은 그날 이후 변했다.
활기차던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병실에만 있었다.
설동은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료의 모습에 안타까울 뿐이었다.
‘서울……. 하지만 이대로 버리고 갈 수는 없어.’
설동은 친구를 위해 남았다. 빈성우와 윤주현의 충격적인 죽음은 도저히 떠나고 싶게 만들지 않았다.
적어도 한꺽정이라도 기운을 차리게 한 다음 가고 싶다.
‘가족들도 보고 싶고. 그렇다고 꺽정이를 홀로 놔둘 수도 없고…….’
자칫하면 한꺽정도 잘못된 선택을 할지 모른다.
설동이 옆에 있어줘야 했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유지될 것인가? 설동은 한숨만 내세웠다.
A 구역은 흉흉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김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신설동 그놈 좀 이상해. 할망구.”
김반은 허순자에게 속삭였다. 이 베테랑 노인의 주름이 깊어졌다.
“······으휴. 또 그러는가? 쫌생이처럼 그러지 말고 이제는 받아주지 그래? 가뜩이나 동료가 죽어서 힘들겠구만.”
“아니……. 그게 아니라. 좀……. 뭔가 이상해. 총에 맞았는데도 멀쩡하잖아.”
“본인이 안 맞았다고 하고 상처도 없었지.”
허순자가 해괴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애당초 설동의 신체는 너무나도 멀쩡했기 때문이다.
리볼버에 맞고 그렇게 일어설 사람은 없다.
“자네도 몸에 상처가 없는 걸 봤잖아. 총에 맞았는데 저렇게 돌아다녀?”
“그, 그건 맞는데. 그때 신설동 그놈을 봤다구. 분명히 총에 맞았어! 근데…….”
“자네. 저번 학교에서의 일은 기억해? 반장 직에서 물러나게 했다고 너무 아무렇게나 말하는 게 아니고?”
허순자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김반은 울컥했다.
“아니! 뭐? 내가 헛 걸 봤단 거야? 난 봤어! 내 말이 진짜라고! 그 개자식이랑 붙어먹더니 마음도 줬…….”
철컥.
김반은 순간, 허순자의 손에 리볼버가 움직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아뇨……. 이건 제가 감정적으로 흥분한 거라서……. 죄송해요.”
“말조심해. 벌써 세 번째다. 신설동 이후로 두 번이나 저질렀어. 난, 세 번째까지만 봐준다.”
허순자의 포스에 김반은 황급히 물러섰다.
그는 억울했다. 본 건, 명백히 사실이기 때문이다.
‘뭔가 있어. 뭔가 있다고!’
자신의 위치를 추락케 한 원흉. 신설동에 대한 분노가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사건은 어느 순간, 일어난다.
피난민 센터의 사람들은 느끼고 있었다. 안정적으로 나오던 고기반찬이 어느 순간, 줄어든 걸 말이다.
삼시 세끼 고기가 무조건 포함됐는데, 이제 하루 한 끼로 줄어들었다.
흉흉한 민심은 폭발 직전이었다.
A 구역 내의 안정된 상황과 달리 지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 상태에서 온 신입들은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그냥 순전히 악의였다.
“저것들 또 왔네.”
“어디서 저렇게 오는 거야. 한국이 망해 가는데.”
불평불만이 가득했기에 신입들은 기가 죽은 채, 지내야 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러지 않았다.
“도와주세요! 우리 아이들이 고립됐어요! 연락도 되는데 구해주세요!”
한 아이의 어머니가 애걸복걸하며, 군 관계자를 붙잡고 사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염자들에게 둘러싸인 곳이라 그 누구도 허락을 안 할 뿐.
“부탁이에요! 제발……!”
아이의 어머니가 울고불고 부탁하지만, 냉대가 이어질 때였다.
“자식이란 소중한 존재지.”
허순자. 이 베테랑 노인이 움직였다.
하지만 군 관계자들이 만류했다.
“특별담당관님. 안됩니다. 이미 포기한 지역입니다. 다시 들어갔다가는······.”
“쯧. 그러면 자원자만 해주면 되잖나.”
허순자가 혀를 찰 때, 김반이 나섰다.
“아이고, 우리 허순자 할망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준길이가 다친 상황에서 최강의 전투원인데.”
“내가 자네 같은 줄 아나?”
“할망구. 모두를 위해서야. 이 상황에서 할망구마저 잘못되면 어떻게 하라고?”
김반이 만류할 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이필준이 휠체어를 탄 채로 다급히 몸을 밀어넣었다.
“누구야! 성하 초등학교에서 왔다는 사람이…….”
이필준은 다급하게 울고 있는 어머니를 붙잡았다.
“내 동생, 윤하가 거기에 있어! 헤어졌는데, 거기서 왔다고?”
“윤하요? 그 리본을 매단 아이요? 모, 모르겠어요.”
울던 어머니가 대답하자, 이필준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리고 허순자의 손을 붙잡았다.
“할머님. 부탁드립니다. 제 늦둥이 동생입니다. 제발…….”
“결정 났군.”
허순자가 쳐다보자, 김반은 한숨을 쉬었다.
“아……. 진짜. 미쳤어. 미쳤어. 근데, 그러면 설동도 가나?”
김반은 묘한 표정을 짓더니 손을 들었다.
“나도 가죠.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들은 설동을 호출했다.
성하 초등학교는 부천에 있는 초등학교다. 높낮이가 다른 곳보다 높아서 보통 어린 학생들에게 체력을 길러주기 딱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있을 정도다.
그곳에 지금 감염자들이 도사렸다.
이 학교 별관은 꽁꽁 잠겨 있었다. 감염자를 막기 위해서다.
이곳에 모인 감염자의 수는 무려 600마리.
그중에서 꼬마 감염자들의 비중이 높았다.
어두운 밤이 내려진 이곳에서 5명으로 이루어진 별동대가 움직였다.
“정말로 밤이라면 감염자들이 눈치 채기 힘들다는 거 확실해?”
김반이 앞장서는 설동에게 물었다. 감염자란 군대와 싸우거나 낮에 잘 보이는 곳에서 작전을 벌이는 게 보통이다.
설동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수십 번도 넘게 경험했지.’
한꺽정. 폐인이 된 친구가 알려준 정보였고, 실제로 보았다.
누구보다도 확신이 있었다.
굳이 600마리랑 싸울 필요가 없다.
요는 탈출만 시키면 된다.
허순자가 다시 한 번, 계획을 설명했다.
“그 아이 엄마의 말로는 뒷문 쪽에 상대적으로 감염자의 수가 적다고 했다. 창문을 열고 몇 명만 군대에 알릴 목적으로 탈출한 거라고 하니까.”
허순자는 목표 지점 500M 밖에서 차를 멈췄다.
여기서부터 이제 좀비들이 몰려 있다.
지도로 위치를 확인한 이들은 뒷문을 향해 한창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기랄. 난 무전 담당이니 제일 뒤에서 따라간다.”
김반이 투덜대었다.
밤에 정말로 감염자들이 습격하지 않을까? 모두가 긴장했지만 정말로 감염들은 조심히 이동하는 이들을 보지 않았다.
“말이 돼?”
김반이 당황스러워했다.
허순자는 믿음직한 설동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거 대단한데? 야밤에 좀비들을 벗 삼아 갈 수 있다니?”
“제 친구가 알려준 거죠.”
괜히 슬퍼지는 설동이었다. 아무튼, 이들은 도로와 주택 사이를 지나 드디어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무려, 30분에 걸쳐서 이동했다. 오로지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도둑고양이도 이 정도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뒷문 쪽에 진입했다.
“쿠어어. 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