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20
“이봐! 여기에 생필품 그대로 버려졌는데?”
“진짜? 여기서 사고가 일어났나 봐.”
생존자들은 생필품 확보에 여념이 없었다.
이 도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대부분 감염자가 되었다.
그래서 물건 구하기는 쉬웠다.
더불어, 설동에 대한 평가가 수직으로 상승했다.
“아니, 설동 그 사람 말이야. 대단하던데?”
“우리가 오해한 거 아니야? 애당초 김반 그 자식이 열등감이 있어서…….”
손바닥 뒤집듯 평가가 뒤집혔지만, 어찌 되었건 긍정적으로 변했다.
“따지고 보면 재생 체질이니까 감염자에게 멀쩡하잖아. 전투 때 가장 좋네.”
“다행이다.”
이들은 앞장서서 주변을 살피는 설동에 대한 칭찬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박준길은 이 분위기를 읽었다. 리더였기에 주변 상황 파악을 한 것이다.
‘······.’
설동이 잘한다는 건, 피난민센터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피난민 센터에서 확고한 위치를 지닌 자기들이 더 위였기에 저들을 내심 신경 쓰면서도 모른 척 할 구 있었다.
‘난 김반의 행동을 방관했어. 빈성우의 출격을 허가한 것도 나다.’
머릿속에서 죄책감과 김반이 느꼈던 열등감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지금 이곳은 계급이 무너지고 그냥 잘하는 놈이 대접받는다. 박준길은 그러면서도 속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나도 잘한단 말이다.’
원래 그는 리더로서 잘하고 있었다. 다리 부상으로 활약을 못 했을 뿐이다.
‘뭔가를 보여줘야 해. 뭔가를…….’
박준길은 생필품만 뜯고, 도로를 빠져나갈 게 분명한 무리를 보았다.
쩔룩거리는 다리로 뭘 할 수 있을까.
박준길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저 멀리 도로에서 몇몇 감염자들이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다.
‘다행히 소수야. 차로 들이받으면 그만이다.’
그도 일단, 머릿속에 대처법을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외쳤다.
“모두 대피할 준비 하세요! 차에 타요!”
박준길이 소리쳤다. 사람들이 순간 의아해하며 쳐다보았다.
그때, 설동이 끼어들었다.
“뒤쪽에 감염자가 오네요. 차로 밀고 튑시다.”
사람들은 그 말에 바로 움직였다.
‘내가 리더였잖아.’
이게 박준길의 마음을 더욱더 괴롭혔다. 이미 설동에게 사람들의 신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일제히 10여 대의 차량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허순자는 설동의 옆 좌석에 앉았다.
“그래도 다행이구만. 차들이 오래 놔두면 기동을 제대로 안 한다고 들어서.”
“그나마 이거라도 다행이죠. 앞으로 길거리에 버려진 차들도 제대로 활용 못 할 겁니다.”
설동은 도로를 타고 서울로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아빠, 엄마, 상인아.’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어서 빨리 만나고 싶었다. 그는 허순자에게 유상인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번호가 이게 맞나? 연락이 안 되는군.”
허순자가 휴대전화로 유상인의 휴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연락이 되지 않는다.
불안감이 엄습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방에서 차량이 멈췄다.
“박준길?”
설동의 눈앞에서 박준길이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차들이 일제히 멈췄다. 그리고 이들은 보았다.
“저건!”
설동의 두 눈에 전방 도로 부근에 그 거대한 좀비가 서 있었다.
“시발.”
욕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침묵하고 긴장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저 거대 좀비는 산에 있다가 도로에 나왔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
“들키지만 않는다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어요.”
“그래. 다음에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겠어.”
허순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에게 전했다.
“여기서 휴식. 큰 소리 내는 건, 안 된다. 지금 우리의 앞뒤로는 감염자가 있어. 섣불리 움직이면 안 돼.”
합리적인 선택이다. 모두가 그렇게 판단하고 일단은 쉬기로 했다.
이필준은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었다.
“제기랄. 싫어. 이제 싫다고.”
센터에서 초반에는 감염자랑 싸운 공로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이유? 무섭기 때문이다. 그나마 옥상에서 달려든 게 유일한 전투.
‘내 동생은…. 결국, 죽었어. 왜 이런 세상이 된 거지?’
여동생은 결국 구하지 못했다.
이것도 절망적인데, 지금 눈앞에 공포의 거대 좀비가 보였다.
“제기랄……. 여기서 어떻게 버티는데!”
당장이라도 위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앞으로 갔다가는 거대 좀비가 있고 뒤로는 기행종과 몇몇 복귀한 감염자들이 있다.
‘시발놈. 안 온다 하더니 왔잖아!’
감염자들도 모두가 일정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이필준도 알지만, 마음이 조급해진 그는 분노에 차 있었다.
굳이 퇴로라고 할 만한 곳은 도로 옆의 공간. 저 멀리 도심지가 보이기는 해도 걸어서 가면 세월이었다.
“후우. 후우.”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차 안에 있어서 감염자에게 물릴 걱정은 없다. 하지만 불안하다.
“캬아…….”
바로 그때였다. 이필준의 귀로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사람이 내는 게 아니다. 뻔 할 뻔 자 감염자다.
두근.
이필준의 가슴이 울렁거렸다. 평범했던 그때가 그리워지고 있었다.
‘이런 꼴을 우리가 왜 당해야 하는 거지? 이 감염자들은······.’
이필준은 순간, 자신이 차량의 문을 잠갔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가야 해.’
바로 버튼을 눌러,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탁.
그리고 소리가 났다.
“캬아아아!”
감염자가 유리창에 손을 내려치자, 이필준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감염자의 움직임은 점점 거세졌다.
쾅! 쾅!
거세게 두드리는 창문. 유리가 연신 울린다. 깨질 거 같다.
이필준은 리볼버를 찾으며 부산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쾅!
다시 한 번, 유리가 거세게 흔들리자, 겁에 질린 그는 실수로 액셀을 밟고 말았다.
끼이익!
거친 소리와 함께 이필준의 차량이 앞차와 부딪혔다.
이 교통사고는 한순간에 고요했던 이곳을 거세게 울렸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던 거대 좀비의 발걸음이 이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이었다. 중요한 길목을 막고 있는 보스 몬스터.
아마 저 거대 좀비가 그런 경우였다. 이필준의 두려움은 저 보스 몬스터를 불렀다.
“무슨 짓이야!”
“미친놈아!”
흥분한 사람들이 차 안에서 외쳤지만, 감히 나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의사소통 수단이 제한적이다. 그때 선두에서 허순자가 말했다.
“침착해! 일단, 뒤로 후퇴한다!”
하지만 확성기도 무전기도 없다. 한계가 있는 소리에 뒤쪽 차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우왕좌왕.
중간 부분의 차들이 움직이려다 옆 차랑 부딪쳐 소음을 냈다.
설동도 허순자도 지금 이 상황이 위기라고 느꼈다.
“침착해! 도로가 넓잖아! 왜 굳이 서로 부딪치는 방향으로 돌리누!”
허순자가 말했지만, 패닉에 빠진 이들이 그렇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설동은 대지가 울리는 걸, 발견했다.
쿵. 쿵.
조금씩이지만, 커지고 있었다.
“오고 있어.”
설동이 중얼거렸다. 그렇다. 전방에서 공포의 거대 좀비가 뛰어오고 있었다.
굳이 싸워줄 필요가 없었다.
사실, 여기서 베스트 판단은 뛰어오는 사이에 가지고 있는 화기를 총동원하는 거다.
아무리 짐승 수준의 신체라도 화기의 세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니까.
“제기랄 그때 밤에 기습이라서 모두 당황했는데……. 지금도 정비하기 힘들어.”
허순자가 말했다. 그 순간, 설동은 하나를 깨달았다.
야밤, 기습.
곤란할 상황에 상대가 나타난다?
‘감염자가 기습이라고? 애당초 소리만 나서 덤비는 게 아니라 최소한 사리판단이 가능한 건가?’
저 거대 좀비 같은 경우, 말도 못 하고 좀비와 같이 괴성을 지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사람이 곤란하거나 야밤에 기습하는 행동을 보면, 짐승정도의 지능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왕좌왕하는 걸 보고 뛰기 시작했다.
허순자가 다시 소리쳤다.
“일단, 뒤로 가자, 일반 감염자 차라리 나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차 한 대가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저거……. 박준길!”
“멍청이가!”
허순자가 외쳤다. 무슨 생각인지 모른다. 하지만 박준길은 달려오는 거대 좀비랑 정면 승부를 겨루려 하고 있었다.
아무리 곰 같은 좀비라도 맹진하는 차량과 정면으로 승부할 수 있을까? 정면으로 부딪쳐도 차량 쪽이 이득이다.
‘그 판단도 나쁘지 않아. 그런데…….’
판단력은 상대만 있는 게 아닌 거 같다. 설동은 차량을 돌리기 전에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정면으로 부딪치기 직전. 이 거대 좀비가 살짝 뛰었다.
차량에 부딪혔다기보다는 피하면서 전면부 유리랑 부딪치고 굴러서 뒤쪽으로 떨어졌다.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이거로도 크나큰 충격을 받았을 터.
문제는 저 좀비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차량이 멈춘다.’
설동이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가 저 좀비의 상황이라면? 의식 있고,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보통 치이고 나서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
차량은 멈춘다. 내리지는 않더라도 위협스러운 차량이 확인을 위해 멈추는 거다.
박준길의 차가 멈췄다.
그리고 거대 좀비가 벌떡 일어났다.
“도망치죠. 할머니.”
설동은 그 이상을 보지 않았다. 바로 차량을 앞으로 뺐다가 도로를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들려오는 비명. 사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박준길은 지금 도로에 누워 있었다. 상대는 야수다. 대신, 판단력이 있다.
“하하, 평소의 나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사실, 야밤에 기습을 가했을 때부터 느꼈어야 했다.
굳이 야밤에 기습한 이후가 뭘까? 또한, 정찰할 때 특별히 본 사람이 없었다는 건, 모습을 숨겼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이곳을 스스로 찾아왔다.
‘절대로 사람 같은 건, 아니야. 저건, 짐승의 본능에 더 가까워.’
다만, 인간 수준의 지능은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거대 좀비는 흥분한 채 승용차를 두들기고 있었다.
안에서 휴대폰이 울렸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없는 걸 확인하고 갔겠지만, 저 거대 좀비 역시 그 정도의 지능은 없었다.
위험을 감지하는 정도의 판단력과 적을 기습하는 짐승의 본능이 맞는다고 확신했다,
“아……. 대처법을 알겠네. 설동하고 우리 화기로 저거 잡을 수 있었어. 충분히.”
박준길은 허탈하게 웃었다. 지금 자신의 몸을 보았다.
수술이라도 한 것처럼 배가 반으로 갈려져 안의 내장이 보였다.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박준길은 후회했다.
‘내가 조급해하지 않고, 냉정했더라면……. 이런 꼴은 안 당했을 텐데.’
고통? 이미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박준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신영주가 안 보여.”
차로 감염자 하나를 날리는 설동의 거친 운전 앞에서 허순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뒤따라오는 차량은 4대. 형편없이 줄어든 인원이다. 나머지는 도로에 있는 감염자 떼에게 둘러싸이거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들은 예전 그곳으로 다시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혼돈 상황 속에 거대 좀비가 습격한다면 말 그대로 죽은 목숨이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