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21
박준길의 무모한 행동은 이런 면에서는 다행이었다. 시간을 끌어줬으니까.
허순자는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결국, 도로 1차 습격을 당한 곳이다. 여기도 거대 좀비의 영역이라는 걸 생각하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허순자는 앞으로 가다가 차 한 대를 발견했다.
“영주야…….”
허순자가 짧게 말했다. 신영주는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한 곳이다.
“그래도 잘 도망쳤네요.”
설동도 따라내라며 주차된 차량에 갔다. 하지만 허순자는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 여, 영주야!”
기겁하는 허순자의 목소리가 이곳을 울렸다.
순간, 설동의 머릿속에는 혼자 겉돌고 떨어지려 하는 신영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설마설마하는 마음은 곧, 차 안을 보자 깨달았다.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죽은 신영주가 보였다.
“이럴 수가….”
허순자가 슬픔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신설동은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리볼버 하나를 회수했다. 냉정하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
‘내가 그때 도와줬으면 살았을까?’
작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접점도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나머지 4대와 함께 신설동은 화기를 점검했다.
리볼버 3개, 기관단총 1개.
이게 화력 전부였다.
남은 4대에서 내린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제가 느꼈을 때, 코디악 베어나 그거보다 더 질긴 가죽이 아닐까요?”
“뭐, 총알 난사하면 잡을 수 있는 정도군.”
눈물을 훔치던 허순자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확실히 노련하기에 이 중에서 수습이 제일 빨랐다.
“일단, 그놈은 박준길한테 잡혀 있는 걸 보니, 본능적으로 앞서 있는 걸 우선시해요. 그러니까. 제가 일단…….”
“잠깐!”
바로 그때였다. 한 젊은 여성이 끼어들었다.
“설마 저걸 잡겠다고요? 미쳤어요? 도망쳐야 해요!”
여성은 휴대전화를 보여주었다.
“인천 피난민 센터를 지키던 군부대가 성남 쪽에 있다고 문자를 보냈어요. 그쪽으로 가야 해요!”
“흠.”
허순자가 반응했다. 확실히 이들은 그렇다. 인천 쪽에 연고지가 있는 자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신설동은 달랐다.
“할머니, 안전하게 가세요. 전, 서울로 가야 하니까요.”
“뭐라고? 위험하다.”
“하지만 결국, 군대에 가봤자, 서울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잖아요. 거기다가 결국, 저 거대 좀비의 영역인데, 또 가다가 습격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설동은 마음을 정했다. 저 괴물을 쓰러트리기로 말이다.
지금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제가 놈과 싸우면 최소한 할머니나 다른 사람들은 도주할 수 있잖아요?”
“······.”
이렇게 말하자, 허순자를 제외한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연중에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허순자는 달랐다.
“오늘 내가 아끼는 이들이 다 죽었어. 혼자서 상대하기 무리가 있는 거 아니냐?”
그러면서 기관단총을 손에 들었다.
“나도 끼어든다. 나머지는 알아서 다시 군부대 쪽으로 가도록.”
“하아, 이 할머니도 참 무지막지하게 용감하시네.”
설동은 씨익 웃었다.
상대를 유도한다. 설동은 리볼버와 도끼를 손에 들었다.
[지금까지 당했던 원인은 간단해. 놈은 기습을 잘한다. 수많은 사람이 혼란에 빠지면 안정적으로 우리를 죽일 수 있겠지.] [적은 판단력을 지닌 포식자 타입이에요. 기회를 보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그렇다. 이들이 당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했다 한들, 눈앞에서 기습을 당하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상대를 유도한다.
“할머니. 줄을 연결하면 되는 거죠?”
설동은 긴 로프 줄을 가지고 나무에 묶고 있었다.
최소한 나타날 걸 알고 있으면 대처할 수 있다.
피하지 못할 바에는 불러들인다.
허순자는 차량에서 꺼낸 긴 줄을 발목 높이로 설치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빙 두르는 결계와도 같았다.
그 안에 설동이 있다.
설동은 어차피 재생 능력이 탁월하다. 그걸 알고, 미끼가 되어 싸운다.
“할머니, 숨어 계세요.”
허순자는 이 광경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준길이가 있었으면 이렇게 했었을 텐데. 피난민 센터 이후로 조급해졌어.’
그녀의 판단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다수의 인원이 화력을 집중한다면 안전하게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붕괴했다.
현재 싸울 인원은 단 한 명뿐.
두근. 두근.
베테랑인 허순자의 가슴이 떨리고 있었다.
동시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이 떨렸다.
‘이런 나도 늙었구만.’
50대 후반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녀는 피곤함까지 느꼈다.
하지만 특전사까지 했던 감각을 살려 주변에 집중했다.
‘놈은 온다. 이 산과 도로는 자기 구역이니까.’
은폐한 상태로 이제 설동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는 녀석의 구역이다. 무조건 둘러본다. 곰이 자기 영역의 인간을 공격하듯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추운 날씨에도 설동과 허순자의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터벅. 터벅.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이야, 오래 기다리게 하네?”
설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리볼버다.
‘4개 남았군. 신중해야 해.’
이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움직였다.
허순자가 놓아둔 랜턴을 발로 조정했다. 빛이 소리가 난 곳을 비췄다.
거기에는 젊은 여성의 반 토막 난 몸을 손으로 들고 있는 거대 좀비가 보았다.
“저 여자는······.”
설동은 경악했다. 먼저 가겠다고 도망친 여자였다.
허순자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분노로 이를 갈았다.
“역시 처리하고 가는 게 정답이었군.”
그녀의 손에서 기관단총이 상대를 조준했다.
“쿠아아아!”
광포한 포효가 들리고, 거대 좀비가 뛰기 시작했다.
‘걸린다.’
허순자와 설동의 시선이 설치한 발목 높이의 줄을 보았다. 첫 습격 때도 저거에 걸려 넘어졌다.
하지만 그때였다. 이 좀비가 갑자기 줄을 뛰어넘는 게 아닌가.
“어?”
“아니!”
학습. 두 사람의 머릿속에 든 단어는 딱 하나였다.
본능적인 감염자가 한차례의 위험을 예측한 거다.
거대한 주먹이 설동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바닥에 모래 먼지가 일었다.
이건 이들이 모의한 상황과 다르다. 넘어지고 설동이 리볼버를 쏘며, 데미지를 입힌다.
거기에 설동의 회복력을 믿고 기관단총을 난사하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대 좀비는 그걸 뛰어넘었다. 쓰러진 설동을 향해 거친 손가락이 어깨 쪽을 침투했다.
“끄악!”
순식간에 뽑히는 팔. 무지막지한 괴력이었다.
이대로는 허순자가 나서지 못한다. 하지만 설동이 이대로는 위험하다.
“후우.”
허순자는 전면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내 새끼한테 떨어져라. 덩치.”
허순자가 기관단총을 조준했다.
거대 좀비가 일어섰다. 곰 사냥할 때처럼, 잘못 맞추면 사냥꾼이 희생양이 된다.
허순자는 뒤로 물러섰다. 거대 좀비가 뛴다. 50대의 여성 정도는 단숨에 우그러트릴 괴물이다.
당연히 승산은 없다.
기관단총의 파괴력이 좀비를 뚫기 전에 허순자가 먼저 당한다.
“······.”
허순자는 상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총을 난사하면 무시하고 달려든다.
‘내가 공격하면서 이동을 못 할 거로 생각해서?’
하지만 이 노련한 베테랑은 달랐다.
기관단총을 뿜으면서 뒤로 몸을 날렸다.
“쿠와악!”
거대 좀비가 어둠과 함께 달려들었다.
하지만 허순자는 여유롭게 옆으로 피했다.
저것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 허순자의 뒤에는 설치한 줄이 있었다. 본능적인 대상을 포착하면 거기에만 거대 좀비는 신경을 쓴다.
아까는 그게 없었기에 피했다.
지금은?
쿵!
거대 좀비가 그대로 걸려 넘어지는 순간. 허순자가 기관단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캬아아아!”
처음으로 고통의 비명이 울렸다. 하지만 죽지 않는다.
“질긴 놈이네.”
허순자는 예상했지만,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거대 좀비의 손이 휘둘러지자, 이 노파는 내동댕이쳐졌다.
“크윽!”
위기의 순간이다. 하지만 허순자는 웃고 있었다.
“이봐. 내 상대는 네가 아니야. 저기 있다.”
거대 좀비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순간, 리볼버를 가지고 어느새 코앞까지 전진한 설동이 있었다.
탕!
정확히 머리를 맞추었다.
거대 좀비는 의아함을 느꼈다. 눈앞에 이 남자는 이미 10차례 이상 ‘무력화’를 시켰다.
리볼버 하나가 머리에 박혔지만 단단한 몸은 버텼다.
그래서 남자의 복부를 관통시켰다.
그러더니, 노파가 총을 쏴대는 게 아닌가. 쫓아가려 했지만, 남자가 어느새 자신을 붙잡고 늘어졌다.
이미 죽었기에 무시하려는 순간, 등 쪽에 리볼버의 총탄이 박혔다.
“쿠아아!”
분노의 난타로 곤죽을 만들어놓고 다시 할멈을 쫓았다.
근데 또 덤볐다.
이런 전투가 무려 10차례까지 되었다. 당연히 이 포식자는 의아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몸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총알의 효과인지, 온몸에서 위험신호가 감지됐다.
그런데 또 사내가 일어섰다.
“이야, 이거 한 발 남았네. 덤벼.”
다시 멀쩡해지는 신체. 거대 좀비가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갑자기 총을 내던졌다. 그리고 거대 좀비는 들었다.
“뻥이야. 진작 다 썼다.”
그러면서 뒤로 점프했다. 거대 좀비가 흥분하며 달려들었지만 안타깝게도 거기에는 줄이 있었다.
쿵!
무거운 몸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이 좀비의 뒤로 설동의 도끼가 움직였다.
“얼마나 단단한지 보자.”
이미 피가 흐르고 있는 머리를 향해 신설동의 무자비한 난타가 시작되었다.
콱! 콱! 콱!
불쾌한 소리가 나고, 거대 좀비가 다시 한 번 이 남자의 몸을 꿰뚫었다.
“끄윽!”
하지만 사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깨진 거대 좀비의 머리통을 계속해서 가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아아악!”
거대 좀비는 난생처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관통당한 상태로 이 남자가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손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