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29
설동은 계기판을 보았다.
‘기름은 별로 없네. 그래도 중랑구까지는 가겠지.’
3분의 1보다 더 적게 기름이 있다.
하지만 여차하면 주유소를 들르면 된다.
‘이럴 때 주유소가 작동 하지 않으면 기름 탱크에 저장된 걸 꺼내라고 했지?’
예전에 배운 지식을 간신히 떠올렸다.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안 보이던 감염자가 한두 마리씩 보였다. 도로는 엉망진창이지만, 어차피 도로 교통을 지킬 이유가 없다.
도로의 화단을 부수고 그냥 편한 대로 돌진했다.
게다가 트럭이니까 감염자를 날려버리기 훨씬 편하다.
‘힘의 차이인가.’
“카아악!”
그대로 트럭에 부딪혀 박살나는 감염자를 보고 설동은 안심했다.
공사용 대형 트럭은 아니지만, 감염자 여럿을 단숨에 날릴 수 있다는 게 주요했다.
하지만 도로를 무시하고 달린다 해도 꼭 모든 길이 순탄한 건, 아니었다.
구로구를 벗어나려는 찰나, 인위적으로 막힌 도로를 보았다.
차량 두 대로 진입로를 막았다. 누가 봐도 일부로처럼.
설동은 반사적으로 양옆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죽창과 칼을 빼든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
설동은 차량을 뒤로 뺐다. 꼭 이 길로 갈 필요도 없고 미쳤다고 저들에게 당하기도 싫었다.
‘뒤에 주차하려고?’
설동은 차량이 재빨리 뒤를 막으려는 걸 보았다.
“······.”
그 순간, 트럭이 굉음과 함께 급격한 후진을 했다.
뒤를 막으려는 차량의 앞부분을 그대로 후려치고, 말이다.
쿵!
큰 충격이 트럭에 울렸다.
하지만 설동은 멈추지 않았다.
“잡아!”
“시발! 도망치려 해!”
약탈자들은 여기저기 있었다. 설동은 그야말로 광란의 드리프트를 하면서, 여기저기 부딪혔다.
간신히 트럭을 돌리고, 설동은 황급히 이곳을 빠져나갔다.
경기도에서 안정적일 때 보지 못한 것들. 인구 밀집도가 높은 만큼, 이런 경우가 많다.
‘쉽지 않겠어.’
가능 가는 길도 험난하다. 설동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성민우. 그는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 근방을 꽉 잡은 생존자 무리에 들어가서 살 수 있었으니까.
더더군다나, 여자 친구까지 만들었다. 그가 여자 친구의 동생도 데리고 오겠다고 하자, 대장이라는 자는 흔쾌히 보내주었다.
모든 게 잘되고 있었다.
군대가 왜 후퇴했는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감염자는 구로구에서는 흔한 존재는 아니었다.
대장의 지시 아래 60명이 넘는 무리가 이 근처 마트와 편의점을 장악했다.
“우리 무리에 오면 물이나 식량도 마음대로니까? 당분간은 걱정 없어.”
여자 친구인 주하나 앞에서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생존자 무리에도 여자가 좀 있지만, 대부분 간부나 대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애당초 ‘그들’이 오고 생긴 계급제도다.
“원래 지금 대장이 한 달 전쯤에 들어왔는데, 예전 대장하고 권력다툼을 해서 이겼어. 되게 체계화를 잘해. 게다가 폭력도 적절히……. 아, 이건 아이한테 들려줄 건 아니네.”
가는 길에 아직 생소한 두 자매에게 자기 집단을 설명해주었다.
‘그놈들이 여자를 차지하고. 진짜! 근데 나한테도 이런 행운이 왔어.’
그렇기에 손가락만 빨다가 이제 사랑을 만난 거다.
“걱정 마. 우리가 좋은 게 엽총도 있고, 탈주한 군인도 있어서 무전기로 대강 군 상황도 수신이 가능해.”
“진짜?”
주하나가 놀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성민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하지! 오빠만 믿어라.”
그는 한강 밤섬이 보이는 영등포구까지 차량을 이동했다.
도시는 삭막했지만, 성민우는 즐거웠다.
‘생존해야 해. 감염자를 피해서.’
인연도 만났고, 동생도 구출하며 점수도 땄다. 무리에서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받으면 그만.
이제 영등포구에 도착하자, 총을 든 군인 하나가 나왔다.
“뭐야. 여자들을 데리고 왔어?”
“내 애인이다! 부럽냐?”
“쳇. 나도 여자 빨리 하사받아야 하는데.”
군인의 투덜거림을 뒤로 하고 성민우는 반쯤 부서진 빌딩으로 이동했다.
“대장! 저 왔어요. 말한 대로 여동생도 데리고 왔습니다.”
“들어와.”
이제 성민우는 주희와 하나를 데리고 그나마 멀쩡한 문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여자 둘을 양쪽에 끼고 있는 깔끔한 인상의 남자가 있었다.
“어리네?”
대기업 간부라는 느낌이었다. 이 남자는 주희와 하나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정도는 쉬게 하고 할멈한테 여기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규칙을 배우게 해.”
“네. 하나야. 이리로 와.”
성민우는 그렇게 싱글벙글하며 나갔다. 대장이라 불린 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래서 구로구 쪽으로 탐색 나간 애들이 행방불명이라고?”
“그래. 기윤이가 그러더라.”
옆에서 정장을 입고 머리를 짧게 친 여성, 장미연이 다가왔다.
“근데, 하나라는 여자애. 마음에 드는데? 신지석 대장님. 나한테 한 명 주시죠?”
“또또 괴롭히려고? 너, 그때 이후로 아주 성격이 악독해졌어.”
“우린 한 배를 탄 사이잖아. 자기도 실컷 즐기면서.”
장미연은 신지석 주변에 있는 여자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얘 빌려도 돼?”
“안 돼. 규칙이니까. 엄수해라. 우리는 운 좋게 살았어. 민준이가 아니었다면 죽었겠지. 너무 과도하게 밀어붙이면 집단이 무너진다. 거기서 경험했잖아?”
신지석은 박 부장과 있을 때를 떠올렸다.
“쳇. 아쉽지만, 하기야. 그 년이 감염자로 변해서 덤벼들 줄 누가 알았겠어?”
장미연은 아쉬워하며 물러갔다. 신지석. 이 도망자는 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왁자지껄.
이런 세계에서 보기 드문 즐거운 분위기다.
“아이고, 우리 애들이 이곳 무리의 간부여서 풍족해. 걱정 말어.”
60대 노인 박춘복의 술잔에 설동은 당황했다. 현관문이 부서지기는 했어도 내부 가구는 쓸 만한 주택에서 난데없는 술자리가 펼쳐졌다.
우회해서 도망치는 가운데 설동은 한 무리를 만났다.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이들은 되레 설동에게 술을 권했다.
“진짜, 요새 세상이 흉흉하니까. 걱정 마. 우리가 사람 하나 대접하는 데 문제는 없어.”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이 설동의 위장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만난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들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10여 명 남짓하지만, 쌀 포대가 수북이 주택 방 한 칸에 쌓여있었다.
약탈자들이라기에는 너무 식량이 여유롭다.
노인은 10여 명의 남녀와 같이 술잔을 기울였다.
“우리 아들이 얼마나 용감한데. 혼자 수색하러 가서 쌀도 구해오고, 간부까지 올라갔잖아.”
뭐가 그리 즐거운지, 노인은 술 한 잔 들어가자마자 자식 자랑에 빠졌다.
‘우리 아빠도 내가 잘하면 저럴까?’
그리운 마음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삼겹살과 상추를 목구멍 안에 넣었다.
상추의 아삭함과 고기의 뜨거운 열기가 몸 전신에 지나갔다.
맛있다.
설동은 먹어서 감동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사람이 여유가 있으니 이렇게 잘 대해주는 구나.’
식량이 여유가 있다. 그 여유에 설동도 취하고픈 기분이었다.
거기다가 이방인인 신설동에 대한 의심도 없었다.
“그래서, 중랑구로 간다고요? 아휴, 감염자들이 많을 텐데.”
“가족이 있어서요.”
한 중년 여인은 신설동을 위쪽으로 해주고 있었다.
“걱정 마. 자네도 이렇게 살아오는데. 부모도 살아있겠지. 오늘은 배불리 먹고 빠져나가. 우리가 무전으로 들었는데. 서울 용산 쪽이 지금 개판이라 하거든? 더 크게 돌아가야 할 거야.”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정보까지 얻었다. 설동은 이런 호의에 웃을 뿐이었다.
그 가족처럼 자살하기 위한 호의도 아니다. 배불리 고기를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을 때였다.
“형님. 본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 무리 중에 제일 젊은 남자가 휴대폰을 들고 왔다.
무리들은 일제히 그쪽으로 몰려갔다.
설동은 상관도 없었기에 고기나 계속 먹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이…….”
바깥에서 곡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아들이 당한 것 같다.
‘감염자 세상이니까.’
설동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랑 상관없다.
그렇지만 갑자기 말소리가 줄어들었다.
“?”
설동은 다른 건, 몰라도 이 분위기는 무시할 수 없었다.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뭔지 알 수 없었다. 기묘한 분위기가 몇 분이 지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하나같이 쇠 지렛대와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
호의가 악의로 변했다. 설동은 도끼를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트럭······. 어디에서 났나?”
친절하게 대해주던 노인이 화를 참으며 말했다. 설동은 가슴이 아팠다.
아무래도 자신이 죽인 자들 중에 자식이 있는 게 분명하다.
“어째서……. 어째서…….”
노인이 울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설동은 어차피 안 통할 진실을 들려주었다.
“운이 안 좋았어. 내 식량을 약탈하려 하고 여자아이를 덮치려 했거든.”
“지랄마라! 육시럴 새끼야아아!”
사람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1대 다수를 이기다. 영화에서나 보는 거로 생각했다.
설동도 불과 하루 전에 한 적 있긴 했지만, 그때랑 지금이랑은 달랐다.
더 수가 많고 공간이 협소했다.
설동이 해봤자, 네다섯 명 처리하는 게 다였다. 그리고 결국, 두들겨 맞고 뻗었다.
“시발……. 졸라 질기네.”
장정들이 피가 묻은 몽둥이를 들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다행히 타박상이 대부분이기에 치료되는 과정은 이들도 신경 쓰지 않았다.
피범벅이 된 것이 오히려 그의 능력을 위장시켜준 거다.
복수심에 찬 이들은 씩씩대며 처리에 대해 강구하고 있었다.
“이 새끼 어떻게 하죠? 숨은 붙어 있는 거 같은데.”
“이대로 죽이기 너무 아쉽잖아.”
“어차피 놔두면 뒤지겠지만, 그래서는 분이 안 풀린다. 이 새끼 실어.”
남자들은 신설동을 그대로 트럭에 실었다.
“어디, 감염자 소굴에서 뒤져라.”
이들은 설동을 트럭 뒤 칸에 버려둔 채, 차를 이동시켰다.
간부회의.
성민우는 난데없이 간부 회의에 부름을 받았다.
‘나도 간부로 시켜주려고?’
성민우는 망상을 했다. 아무 실적도 없는데, 간부가 될 수는 없었다.
아무튼, 들어가자 장미연을 비롯한 4명의 간부가 있었다.
“어……. 원래는 다섯 명 아닌가요?”
성민우가 조심스레 말했다. 장미연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부로 4명이야. 죽었거든.”
“네?”
“그 죽인 놈을 처리했다고 전화 왔더라? 뒤지게 패고 감염자 소굴에 버리고 왔다고.”
장미연은 웃었다가 다시 표정을 바꿨다.
“그래서 우리가 왜 부른 거 같아?”
“잘……. 모르겠습니다.”
“별거 아니야. 간부 하나가 비었으니, 자리를 채워야 하지 않겠어?”
장미연은 다른 간부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성민우는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 이건, 간부에 들어가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거지.”
장미연은 음흉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난 말이지. 예전에 경리였다. 그래서 별 이상한 것들까지 날 무시하고 괴롭혔어. 그동안 숨겨진 취미 같은 게 발현했지 뭐야?”
“네?”
“간단히 말해서 누군가를 되게 괴롭혀주고 싶거든? 마음이 그래야 평온해질 거 같아.”
성민우의 눈썹이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저 말의 의미는 간단했다.
주하나를 넘기라는 거다.
“아니면 그 여동생도 괜찮고 하하. 참고로 난 괴롭히지는 않아. 장미연 씨가 이상한 거지.”
다른 남자 간부가 탐욕스럽게 혀를 내질렀다. 장미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머, 날 너무 이상하게 만드네. 오히려 그쪽이 더 이상하지.”
성민우는 간담이 서늘했다. 저 괴롭힘이라는 게 어느 정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