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32
신지석은 그 얼굴을 기억했다.
‘저놈을 공략해야 한다.’
신지석은 박 부장에서부터 살아남은 감각을 앞세워 머릿속에 큰 그림을 그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약탈자 무리의 행동 대장쯤 되는 자였다.
거기다가 민준은 그들을 보자마자 말했다.
[야, 여자네? 괜찮은데?]이 말로 신지석은 자신이 해야 할 걸, 깨달았다.
하지만 당분간은 숙이며 살아야 한다.
이들은 구출, 아니 ‘전리품’으로서 끌려갔다. 신지석은 당연히 잡부 이하로 부림을 받게 되었지만, 그는 이미 이런 구조가 익숙해져 있었다.
‘박 부장 때도 그랬다. 어차피 임시로 뭉친 무리일 뿐이야. 버티고 기회를 엿본다.’
어느 정도 이 약탈자 무리에 익숙해지자, 그는 서서히 행동했다.
‘장미연이 민준을 공략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다.’
그는 장미연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행동대장 격인 민준에게 장미연을 붙였다.
끈적하고 달콤하게 말이다. 민준이 거기에 넘어가기 시작하고 이들은 서서히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행동 대장이자, 실질적 무력을 행사하는 민준이 자기들의 편을 들어준다면?
장미연은 이런 일에 능숙했다.
권력을 약속받고 기꺼이 참가했다. 그녀는 신지석의 계획에 찬동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재미를 느껴보고 싶어.’
장기간의 작업 끝에 민준이 완전히 넘어오고 그때 장미연을 이용해 대장에게 접근시켰다.
마치 삼국지 초선이 하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장미연을 두고 두 사내가 마찰을 빚었다.
그 사이에서 신지석은 어느새 간부 자리까지 올라와 있었다.
여기서 권력 다툼이 일어났다.
신지석은 실질적인 총과 권총을 보유한 민준이 편을 들었다.
대장 일파가 반발했지만, 어느새 이곳의 권력은 그에게로 몰아졌다. 장미연을 부추기고, 장미연이 민준을 부추긴다.
이 구조로 사실상 그가 다시 위로 군림했다.
숙청이 시작되고 신지석은 다시금 왕으로서 이곳에 군림했다.
‘여기서 버티고 살아야 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구조에 지금 금이 가고 말았다.
신지석의 귀에 주하나와 성민우의 탈출 소식이 전해졌다.
신지석은 머리를 감쌌다.
“빌어먹을 이게 말이 돼? 허술한 것도 정도가 있지! 처형할 놈을 놓쳐? 거기다가 차량까지?”
그야말로 큰 손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다. 탈출자야 그렇다 쳐도 무엇보다 차량이 털린 게 컸다.
“어이가 없네. 진짜. 갑자기 왜 이러지?”
신지석은 그 답을 안다.
장미연.
요새 들어 한층 포악해진 그녀가 탈주자들을 늘리게 하고 있었다.
‘박 부장 때를 떠올려봐. 이대로 가면 여기는 무너진다.’
과도한 압박은 결국, 임계점을 넘어 폭발을 일으킨다. 신지석은 그걸 막아야 했다.
다른 게 아니라 장미연을 말이다.
그는 장미연을 찾아 움직였다.
민준은 소총을 든 채로 처형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요새 왜 이리 탈출자가 많아?”
그는 의아해하고 있었다. 애당초 민준은 현재 약탈자 무리 내부 사정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냥 명령이 주어지면 그대로 행할 뿐이다.
민준은 계단을 내려가고 지하로 가려다가 장미연을 만났다.
“미연이 누나, 요새 뜸…. 이 아니라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맞았어. 민준아.”
장미연은 자연스럽게 민준의 품에 안겼다.
“아니, 어떤 놈이?”
“내가 요새 일이 바빠서 애들하고 자주 싸웠어. 근데 그놈들이 날 때리고 도망갔지 뭐야? 복수해줘. 멀리 안 갔을 거야.”
장미연은 그렇게 애교를 부리며 어느새 그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민준이는 도와줄 거지?”
“물론이죠. 누님. 걱정 마세요.”
민준의 손도 똑같이 어루만진다. 장미연은 그러면서 한 가지를 속삭였다.
“요새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처형장 전에 나 좀 스트레스 풀게 해주면 안 돼?”
“그게….”
“민준아. 내가 너 쌓인 거 실컷 풀어줄게. 응?”
장미연의 농염한 유혹에 민준은 침을 삼켰다.
“좋아요. 그러면 먼저 가 있을 테니 따라오세요. 어차피 죽을 놈들인데요.”
민준은 휘파람을 불면서 내려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장미연은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역겨워.”
그녀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두 시간 후, 신지석은 장미연과 독대했다.
“장미연. 요새 좀 심하지 않아?”
“뭐가 어때서?”
장미연은 태연한 태도였다. 신지석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지금, 네 행위로 탈주자가 늘어나고 있어.”
“어머나? 이제 와서? 지금 누구 덕에 그 자리를 올라갔는지 몰라? 이제 와서?”
“그래, 네 덕분이다. 그건 알아.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말로 하잖아.”
“…….”
장미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마음대로 하게 해준다며? 내가 얼마나 몸 바쳐서 일했는데? 네 추악한 권력 욕심에 동조해주면서 말이야.”
“알아.”
“아는 놈이 그래? 내가 얼마나 수모를 겪었는지 모르지? 그 스트레스를 푸는 것뿐이야. 근데 이제 와서 하지 말라고. 너무한 거 아니야? 지금 누구 덕에 이렇게 됐는데?”
장미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신지석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알잖아. 박 부장 때를 생각해 봐. 여기서는 규율이 중요해. 너무 몰아붙이면 그때처럼 무너진다고. 너도 그건 원치 않잖아? 미연아.”
신지석의 손이 미연의 몸에 닿는 순간,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뿌리쳤다.
“만지지 마.”
“…….갑자기 왜? 우리 사이에?”
신지석의 표정이 반대로 구겨졌다. 장미연은 그 표정에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다시금 권력관계를 자각했다.
“지금 그럴 기분도 아니야. 애당초 멋대로 팔아먹은 게 누구인데?”
“…….”
신지석이 미묘하게 표정이 변했다. 이 표정의 의미는 장미연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짜증이 솟구쳤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바깥에서 총성이 울렸다.
신지석이 다급히 창문을 향했다.
그러자 민준이 다급히 빌딩으로 달리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야!”
“감염자요! 감염자 떼가 몰려오고 있어요!”
“뭐라고?”
신지석은 놀란 눈으로 시야를 넓혔다. 그리고 저 끝에서 거대한 먼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저…. 저…. 갑자기 뭐야?”
감염자 떼. 보기에도 흉측한 그것들이 저 멀리서 오고 있었다.
이제까지 없던 비상상황. 신지석의 머리가 패닉에 빠졌다.
‘맞서 싸워? 아니, 총은 몇 개 없고 애당초 저 숫자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
기껏 쌓아올린 약탈자 무리다. 근데 지금, 이번에는 외부요인이 이곳에 있지 못하게 한다.
‘건물에 농성할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지나가지 않을까?’
그렇다. 냉철하게 보자면 저들은 그저 전진하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 건물에 들어와! 절대로 소리 내지 말고!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둬!”
그야말로 현명한 판단이었다. 건물 내부에 숨어서 저들이 지나가게 내버려둔다.
신지석은 창문을 닫았다.
“모두 창문 닫아! 지하까지 입구 막고! 절대로 소리를 내게 하면 안 돼!”
그의 지시가 바르게 아래층에도 전달되고 있었다. 모두가 창문을 닫고 문을 닫았다.
이제 시간만 보내면 된다. 하지만 그때였다.
“개새끼들아! 너희도 다 죽어!”
갑자기 고성이 들리면서 한 무리가 뛰쳐나갔다.
신지석은 바깥을 보기 위해 다시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처형했어야 할 무리가 손이 묶인 채로 밖을 향해 달려갔다.
“아….”
신지석은 그때, 박 부장 때를 떠올렸다.
“잠깐만! 저놈들 손발이 묶여 있어야 하잖아! 근데 왜….”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니, 신지석은 장미연과 민준의 거래를 모른다.
그렇기에 왜 저들이 손과 발에 피를 흘리는지를 몰랐다.
도망치는 이들은 달려오는 감염자들과 마주쳤다.
비명이 들리고 신지석은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시발!”
신지석은 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탈출해야 해! 차량으로 달려!”
감염자가 아직 오기 전, 그는 필사적으로 장미연과 뛰쳐나갔다.
“너무 우연히 겹친 거 아닌가요? 어떻게 내가 있는 곳으로 올 수 있죠?”
이런 기막힌 행운에 설동은 기막혔다.
통조림을 미친 듯이 퍼먹는 이들의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딱 자기가 있는 곳으로 차량을 몰 수 있을까.
주하나는 통조림 하나를 싹싹 비우고 숨을 내쉬었다.
“운이 좋았죠. 민우를 감시하는 사람도 한 명뿐이고. 적당히 유혹하는 척하고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켰으니까요.”
“아….”
대강 뭔 사정인지 파악했다. 아무튼, 이들은 살아남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멍투성이인 성민우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진짜 간부들부터가 이상하니까 거기도 개판이에요. 제가 잘못 판단한 거죠. 그래서 하나랑 희연이 데리고 그냥 탈출한 거죠.”
“아무튼, 살았으니까 됐네요.”
설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외의 만남이지만, 그로서는 반가웠다.
적어도 주하나랑 성민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희연은 확실히 반가웠다.
“대체 거기가 어떤 곳이기에 도망칠 정도 그 정도로 포악하면 잘 굴러가지도 않을 거 같은데.”
하나는 한숨을 쉬었다.
“저도 이번에 처음 가봤는데, 그 이상한 사이코 여자가 있어서…. 진짜 별꼴이었죠.”
그러면서 주하나가 성민우를 노려보았다. 성민우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설동은 그 의미를 모른 체, 고개만 갸웃거렸다.
“도망치는데 전에 당신이 더 안쪽으로 돌아서 간다는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그래서 우리도 그 길을 따라서 온 거에요. 근데도 중간에 감염자가 너무 많아서 죽을 뻔했지만요.”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설동은 감염자 때문에 머물렀고, 이들은 약탈자 무리를 피해 도주해야 했다.
거기다가 지금 상황에서 자동차가 질주하면 누구라도 주목한다. 감염자도, 사람도.
설동이 근처에 있기만 하면 사실상 보게 되는 건 당연했다.
아무튼, 주하나는 새로운 곳으로 갈 거라 말했다.
“라디오에서 김기철 박사라는 사람이 연구소에서 사람들을 보살피고 있데요. 그 머저리 같은 놈들보다야 훨씬 낫겠죠. 그래서 이제 당신은 어디로 가려고요?”
“중랑구 피난민 센터. 우리 가족이 있어.”
“네?”
순간, 주하나와 성민우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게 무슨 말을 의미하는 걸까?
설동은 불안한 마음이 덜컥 들었다.
성민우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기…. 저희 무리에 군인이 있어서 아는데요. 그…. 중랑구 피난민 센터가….”
“거기도 무너졌어요. 꽤 전에요. 저희 무리에서 군대 무전을 도청하는데, 거기서 무너진 센터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주하나가 말을 보탰다.
이 충격적인 말에 설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5. 이겨내야 한다!
사람이 생존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목적이다. 목적 없이 살 수 있는가. 살 수 있다면 죽지 못해 사는 것밖에 없다.
‘중랑구 센터가 무너졌다고?’
설동에게 있어 온갖 고생을 하며 서울로 가는 원동력은 당연히 가족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너졌다. 그러니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거다.
성민우는 옥상 저 끝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설동을 바라보았다.
“힘들겠어. 위로라도 해줘야 하나.”
주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바보야. 저럴 때, 가만히 있게 해주는 게 낫지. 우리는 잘 모르잖아. 일단 기다리자.”
주하나의 말에 이들은 하루 정도 더 체류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설동이 받은 충격은 이들의 예상보다 컸다.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 됐든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에 간신히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는 하루 정도 식음을 전폐했다.
“설동씨. 저희는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중랑구…. 로 갈 건가요? 아니면….”
“…….아무 데나요.”
설동은 힘없이 대답했다.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개고생하면서 오니까 자신의 보금자리가 사라졌다.
“오빠…….”
희연이 옆에서 손을 끌자, 그제야 간신히 설동이 움직였다.
웃었다.
하지만 그건, 소녀에게 안심을 주려는 거지, 마음은 텅 빈 상태였다.
애당초 중랑구가 무너졌으니 갈 데도 없다.
살아있을 수는 있다. 자기도 도망쳐 나왔으니까.
‘그게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인가?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