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44
꽤 뒤끝은 없어 보였다. 이제 조회가 끝나고 이들은 아침 프로그램을 기다렸다.
곧, 강사 한 명이 나와서 즐거운 동요를 틀어주었다.
‘동요로 마음의 안정을 취한다고?’
아침 프로그램은 간단하다. 감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즐거운 프로그램을 보거나 따라 하는 거다.
‘레크레이션 시간이라 보면 되는데….’
그렇다. 학창시절이나 어디 놀러 가면 보이는 레크레이션 강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동요가 나오고 가벼운 장난이 주가 되는 시간이라서 딱히 부담은 없다.
‘유치하기는 하지만 뭐 이런 것도 괜찮지.’
취지도 이해하고 오후 일과처럼 긴장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아침 피로를 해소하고 쉬게 하는 시간이다.
‘이상적이긴 하네.’
확실히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안정된 곳에서 발생하는 특유의 뭔가는 없었다.
다들 감염이 되기 쉬운 게 감정적인 행동이라고 여겨서인지, 어지간해서는 큰 소리도 내지 않는다.
레크레이션 강사는 가벼운 율동을 모두에게 시켰다. 설동도 학교에 가기 전 아동 프로그램을 본 추억을 떠올리며 나름으로 열심히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때, 어느 새인가 동현이 옆으로 다가왔다.
“형씨, 힘 좀 쓰던데? 배운 거 있어?”
“복싱하고 몇 가지.”
설동은 이 근육 덩어리를 유심히 보았다.
“그러는 댁도 보통이 아니던데.”
“나야 당연히 여러 가지로 했지. 근데 댁은 혼자 온 거야?”
“아니, 우리 일행이랑. 커플 하나에 여자 쪽 동생.”
“커플? 그러면 남녀 분리가 됐겠네? 나도 여자 친구랑 왔는데 남자 새끼들이랑 같이 지내게 됐다고.”
동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설동은 의아해했다.
“우리는 온 그대로 혼거 수용했는데?”
“뭐? 그게 진짜야?”
동현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자, 주변의 시선이 쏟아졌다.
동현은 머쓱하게 주변인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 왜? 내 여자 친구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나저나 아침은 굉장히 편하네. 이런 거만 계속하면.”
“딱히 편하지도 않아. 나도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갑갑하거든. 덕분에 한 번에 폭발하는 사람들이 있어.”
동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원이 여기 다 모인 게 아니고, 징벌실이라고 있어. 문제아들을 보내는 거지. 최근에 간 게 이영선이었나? 자기 방 애 하나를 따돌리고 그러더라고. 게다가 저번에는 한 형씨가 갑자기 미쳐서 바깥으로 몸을 던지더라.”
“여기 정도면 괜찮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말했듯이 좀 갑갑한 것도 많고 그래. 분위기도 약간….”
바로 그때였다. 레크레이션 강사는 모두에게 구호를 외치게 했다.
“모두 좋은 기운을 받으세요! 외칩시다. 행복! 행복!”
“행복!”
“행복!”
여기저기서 행복의 단어가 떠돌아다녔다. 설동은 피식 웃었다.
“내 친구가 다단계 들어갔었는데, 그놈이 사람들 세뇌하면서 열심히 구호를 외치게 하던데.”
그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그냥 그렇다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레크레이션 강사는 출입문을 가리키며 외쳤다.
“우리 연구소의 소장! 우리를 보듬어 주시는 희망이 지금 나타나셨습니다.”
“…….”
오그라드는 대사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김기철이 인자한 얼굴로 수행원들과 함께 들어왔다.
‘아이돌 콘서트 현장도 아니고….’
설동의 눈에서 그에게 손을 뻗는 애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소장님!”
“소장님밖에 없습니다.”
“치료약도 개발이 됩니까?”
“김기철!”
여기저기서 들리는 흠모의 목소리. 마치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같았다.
김기철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단상 위로 올라섰다.
“오늘도 노고가 많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힘든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그는 나긋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현재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거대하고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도 지속해서 오고 있고요. 하지만 인원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속해서 주변을 탐색하고 물품들을 수거해서 안정을 꾀하는 겁니다.”
“김기철! 김기철!”
“김기철!”
그가 말을 마칠 때마다 여기저기서 광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큼 이 남자에 대한 신뢰는 두터웠다.
김기철은 교장님처럼 훈화 말씀을 한 뒤에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듯 놀라운 발언을 계속했다.
“치료약에 관해서는 엄청난 노고가 들지만, 조금씩 효능을 보고 있습니다. 그 대상자를 모시죠. 함용준 씨.”
설동의 눈앞에서 익숙한 매점 주인 얼굴이 보였다.
“함용준 씨는 일주일 전, 기침 증상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살도 생각할 정도로 고민이 많았죠. 그런데 지금 상태가 어떻죠?”
함용준은 마이크를 잡고 웃었다.
“김기철 소장님의 약을 먹었더니 기침 증세가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김기철은 그들을 진정시켰다.
“아직 약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정말 극초기 증상은 치료할 수 있지만……. 임상실험이 문제입니다. 위험한 수준까지 이른 사람들에게 그걸 투약하기 힘든 편이니까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힘내서 이 종말 사태에 힘을 써주십시오.”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설동은 머리를 긁었다.
“섣불리 믿기 힘든데. 저 남자가 기침을 한 걸 아나?”
“좋은 게 좋다는 거 아니겠어?”
동현도 어깨를 으쓱했다.
오후 일과가 시작되기 전. 도하연은 점심을 들고 아현에게 다가갔다.
“아현아. 점심 먹자. 오늘은 밥이 잘 나왔다. 맨날 오래된 쌀이었는데, 이번에는 괜찮은 걸 구했나 봐.”
도하연은 자신의 친구 조아현을 다시 보았다. 피난민센터에서 보았던 활기찬 그녀는 이제 없다.
의지하던 연인의 죽임이 이렇게 만든 거다.
“하아.”
도하연은 조아현의 상태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적어도 그때, 그 여자를 처리만 했어도.’
인천에서 배를 타고 탈출할 때, 지아만 어떻게든 처리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녀가 사람에게는 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그녀의 잘못이 아니건만, 심한 죄책감이 들고 있었다.
“천천히 먹어. 놔두고 갈게.”
도하연은 그렇게 음울한 친구를 놔두고 바깥으로 나왔다.
“아…. 힘들어.”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도하연은 친구 조아현 때문에 보통 모든 프로그램에 빠져 있었다.
‘나도 웃고 싶어.’
친구의 고통. 그리고 자신의 고통. 편해야 하는 이곳의 생활이 어려웠다.
그때였다.
“하연아.”
도하연은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언니!”
바로 태희가 봉지에 무언가를 바리바리 들고 동현과 같이 오고 있었다.
도하연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와줘서 고마워요.”
태희는 도하연과 포옹하면서 그녀의 방 쪽을 쳐다보았다.
“어때? 안쪽은?”
“힘들어요. 점점 아현이가 어두워지고 있어요.”
“상태를 봐볼게.”
태희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고, 바깥에서 동현과 도하연은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쉽게 회복되기는 힘들 거야.”
동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멘탈이 저렇게 무너졌는데 감염자가 안 된 게 다행일 정도였다.
도하연도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진짜 아현이가 괜찮아졌으면 좋겠어요.”
“힘내. 제주도에서 여기까지 아등바등 왔잖아. 여기도 이겨내야지. 최소한 훨씬 안정되어 있으니까.”
“그래야죠. 후….”
도하연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던 동현은 설동을 떠올렸다.
“근데 하연아.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랑 이야기를 해봤거든? 근데 그 사람도 제주도에서 왔대.”
“진짜요?”
제주도. 이 세 글자에 도하연의 얼굴에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처럼 마지막 비행기로 탈출했다더라? 근데 우리랑 만나지 않은 걸 보니 다른 비행기를 탔나봐.”
“어디서 탈출했대요?”
혹시나 하는 호기심이 도하연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제는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남자.
‘아니, 말도 안 되지.’
상식적으로 그런 우연의 일치가 일어날 리는 없다. 도하연은 고개를 돌렸다.
가장 중요한 어디서 탈출했냐는 질문에 동현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는 물어보지 않았어.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 거 같아서. 다음에나 물어볼게.”
“네.”
살짝 도하연의 가슴이 뛰었다.
‘내가 왜 이러지. 아닐 건데.’
흥미가 동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게 싱숭생숭한 가운데, 태희가 나왔다.
“영양실조…까지는 아닌데, 조금만 더 굶으면 위험해져. 내가 최대한 설득해서 밥은 먹였는데, 앞으로 삼시세끼. 무조건 먹여. 조금이라도.”
“네.”
태희의 경고에 도하연은 아까보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하나와 성민우는 방에서 서로 이불을 덮고 있었다.
알몸인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주하나는 남자친구의 품에 안겼다.
“진짜, 설동 씨가 눈치가 빨라. 점심시간에 희연이랑 놀아주고.”
“다 알고 그러는 거 아닐까? 우리 둘이 있을 시간도 주고.”
성민우도 그런 연인의 몸을 감쌌다. 한창 때의 나이다 보니, 이 두 사람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쫓기는 중에는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했다.
주기적으로 희연과 설동이 외출을 나가기 때문이다.
최소 1시간. 이 두 사람이 즐길 시간은 충분했다.
주하나는 휴대폰을 보았다.
이제 15분 정도 후에 나가야 했다.
“준비 할까?”
“그러게.”
성민우는 아쉬운 듯 혀를 쩝쩝거렸다. 그는 옷을 입으면서 테이프와 뽁뽁이로 밀봉된 설동의 도끼를 보았다.
“설동 씨는 그러고 보니, 감염자랑 무지 잘 싸우네.”
“그렇지. 덕분에 우리도 편하고.”
“나도 뭔가를 하면 좋겠는데.”
성민우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주하나는 그런 그의 등을 쳤다.
“아니, 그동안 잘만 했으면서 왜. 그 사람이 특출난 거지. 자기가 못한 게 아니잖아.”
“그래도 너무 도움이 안 되는 거 같기도 해. 뭔가 좀 나도 열심히 하고 싶은데.”
성민우는 작은 고민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
이 두 사람은 옷을 챙겨 입고 바깥으로 나갔다.
김기철 박사는 입맛을 다셨다. 과학자로서 신설동 같은 특이 케이스는 분명 탐이 난다.
대체 왜 혼자 보균자가 되지 않았던 걸까? 저건 조사해야 한다.
탐구해야 한다.
‘미개하다. 미개해. 너무 미개해서 관심이 가는군.’
자신의 방 안에서 실패로 끝난 설동의 조사 건을 아쉬워했다.
다른 사안은 절대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보균자가 아닌 유이한 예외적 존재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아이의 마음처럼 치솟았다.
‘무조건 실험해야한다. 왜 받아들이지 않는지 알아내야 해.’
그래서 핑계를 대고 신설동을 연구해보고 싶었지만, 하필 방해자가 나타나서 실패하고 말았다.
“시간은 많아. 아직은. 기다리는 자가 승리자야.”
조급해하는 자는 일을 그르친다. 수많은 역사에도 나온 결과
아직, 대한민국의 정보감시 시스템은 돌아간다.
거기서 그는 다른 감염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는 무너졌군. 군인들은 탈출하고 있어. 하지만 현실은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일 뿐이야. 나는 달라. 이 현실에 순응하고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
화면이 바뀌고 사진으로 찍힌 ‘기괴한 것’들이 나타났다.
“후후…….”
한탄의 웃음일까, 기쁨의 웃음일까. 김기철은 컴퓨터를 꺼버렸다.
“당신들이 가져온 식량을 헌납해서 얻은 포인트가 3만 포인트입니다. 벌점을 보충하기 위해 2만 포인트를 지불하면 됩니다.”
성민우와 주하나는 무표정한 군인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벌점을 없애주세요.”
이곳에서는 포인트 제도가 있다. 식량이나 과자, 기타 잡 물품을 구할 수 있고, 벌점 같이 페널티를 없앨 수도 있다.
이들은 새로 얻은 포인트로 설동의 벌점을 없애버렸다.
설동은 머리를 긁었다.
“그냥 벌점을 부과해도 괜찮은데.”
“그러니까. 이제 싸울 일도 없잖아.”
설동의 뒤에서 마찬가지로 포인트로 벌점을 없애버린 동현이 웃고 있었다.
설동은 그 주변을 보았다. 단아한 인상의 여성이 그의 볼을 꼬집고 있다.
‘연인 같네.’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간 여자 친구라고 확신한 설동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도하연이 축하해주고 있었다.
‘도하연이라……. 저 남자랑 같이 온 건가?’
싸워 본 입장에서 동현은 정말 강하다. 안전하게 온 이유가 있는 거다.
설동은 그러던 순간, 도하연과 시선이 마주쳤다.
“…….”
“…….”
약속한 것처럼 아무 말도 없는 두 사람. 설동은 머리를 긁다가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