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51
“무전으로 데리러 온다는데, 잘 보이는 곳에 대기하라는데요?”
주하나가 산 초입에서 무전기를 들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 괴상한 감염자와는 거리가 멀어져 시야에도 안 보였지만, 아무튼 올라오면 만날 확률이 높았다.
“꾸준히 오고 있다면.”
설동이 말했다.
그는 거대 좀비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일반 좀비와는 다르고, 훨씬 끈질기다.
분명히 올 것이다.
설동은 성민우에게 다가가 보급 받은 총탄을 확인했다.
“도망치면서 다 썼더군요.”
물론, 없다. 달리는 감염자에게 다 써버렸다.
안전한 데는 대가가 필요하지 않는가.
“어쩔 수 없죠.”
총알은 그 대가. 설동은 허리춤에 벨트로 맨 도끼를 만졌다.
동현이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형씨. 그놈……. 특이해 보이던데. 저번에 무슨 이상한 감염자를 봤다며.”
“비슷해. 다만, 저렇게 네발로 기지 않고, 두 발로 걸어 다녔지. 팔도 없어 보였고.”
“진화형인가.”
동현은 산 아래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감염자들이 진화한다?
무거운 분위기가 이곳에 몰아쳤다.
“말도 안 돼요.”
주하나가 부정했다.
“생물학적으로 무슨 진화를 단시간에······. 그런 생물은 없어요.”
“감염자도 원래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이에요.”
설동은 거대 좀비를 떠올렸다.
“이곳에 오기 전 인천 쪽에 있었는데, 거기서 다른 감염자보다 더 강하고 단단한 감염자랑 싸웠어요.”
“······.”
거짓말 같다. 한순간,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지만, 설동 성격상 농담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진실일 수도 있다.
“인천 피난민 센터가 무너지면서, 생존자들이 갈팡질팡하고 있었죠. 그때 만난 거예요.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 때부터 재수가 없으려니. 가는 데마다 멀쩡한 데가 없어.”
그때 도하연이 눈빛을 빛냈다.
“게스트 하우스요?”
“거기서도 별일이 있었는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러다가 그 거대한 좀비를 만났어요. 자동차 차 문짝을 뜯어내고 핸들 채로 뽑는 괴력을 지닌 놈을 말이야.”
“그 엄청난 힘을 가진 감염자를 당신이 죽였다고요?”
도하연이 물었다.
설동은 고개를 저었다.
“동료 한 분이랑. 나이가 50대 중반인데, 손자를 찾는……. 이건 쓸데없는 말이고 아무튼, 그 할머니랑 둘이서 총기로 난사하며 죽였죠. 어떻게든 총은 통해요.”
“다른 사람들은······.”
“생각해 봐요. 왜 특전사였다지만 50대인 여자 분이랑 짰을지.”
설동의 한마디에 다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동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믿기 힘든데. 형씨 말대로라면 일반 감염자보다 더 강한 좀비와 싸워? 형씨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은데 너무 허무맹랑한데?”
“그 할머니가 어지간한 남자보다 더 강해······. 만나보면 알 거야.”
“그래서 요점이 뭐죠?”
도하연이 다시 물었다.
설동은 주변을 경계했다.
“끈질겨요. 처음 만났을 때, 차 문짝을 뜯어내고 계속 도망가는 날 추적했으니까. 그런 진화된 감염자라면 당연히 산 초입에 있는 우리를 추격하고 있을 걸요?”
태희가 나섰다.
“설동 씨. ‘첫 만남’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두 번째 세 번째도 만났다는 거네요? 어떻게 살아있는 거예요?”
태희는 당연한 의문을 가졌다. 설동은 여기서 침묵했다.
자신의 신체 능력. 현재 여기 와서는 대부분 모른다.
희연만이 직접 봤지만, 그때 상황 상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터.
즉,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근데, 이걸 이야기하면 어떻게 될까?
설동은 두려웠다. 괴물, 그리고 무너지는 피난민센터를 생각하면 절대로 진실을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몰라. 운이 좋았을 뿐.”
“뭔가 숨기는 거 같은데.”
태희가 살짝 의심했지만, 이내 손을 털며 일어섰다.
“아무튼, 그래도 당신이 꽤 믿음직하니까 믿어볼게요.”
“그거 감사하네요.” 설동은 어깨를 으쓱했다. 도하연이 일어섰다.
“좋아요. 뭐가 됐든 결론은 여기에 대놓고 있는 건 위험하단 거죠?”
그녀는 모두에게 동의를 구하듯 안쪽을 가리켰다.
“그러면 움직이죠?”
“우, 움직이다뇨? 군대가…….”
성민우가 우물쭈물 물어보자, 도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어느 쪽이 먼저 올까 내기하고 싶지는 않네요. 최대한 여기서는 벗어나는 게 맞을 거 같아요. 적어도 저 사람이 거짓을 고할 사람은 아니니까요.”
도하연은 아현과 함께 일어섰다. 그녀의 용단에 모두가 움직였다.
이야기가 허황한 것 같아도 설동을 믿고 움직였다.
이들은 다시 안쪽으로 움직였다. 그들이 떠난 지, 10분. 기묘한 발소리가 이곳에 들렸다.
“구조 요청이 왔습니다.”
연구소 내의 상황통제실. 정만호 대위는 김기철에게 무전을 알려주었다.
“그들인가?”
“네. 북악산 초입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근처의 대원들을 보내면 20분 안으로 도착할 겁니다.”
“그렇군.”
김기철은 상황통제실에서 설치한 카메라를 훑어보라고 했다. 바보도 아니고, 북악산 입구에 카메라 정도는 설치해 놓았다.
“소장님! 지금 저거 보십시오!”
그리고 한 말단 군인 하나가 기겁하며 일어섰다. 김기철이 눈을 돌리자, 거기에는 기괴한] 각다귀 같은 팔과 함께 혹으로 뒤덮인 기묘한 좀비가 지나가고 있었다.
“······.”
김기철은 그게 누군지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저 형태는 익숙하기 때문이다.
‘팔이 생겼군. 흥미로워.’
카메라를 지나쳐가는 상황. 간부들과 김기철을 제외한 병사들은 경악하며 외쳤다.
“어떻게 하죠?”
“기다려.”
김기철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저런 괴생명체는 함부로 건들 수 없다. 산 초입이라 전투가 벌어지면 감염자들이 몰려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경계태세만 강화해.”
“소장님. 그렇다면……. 저들은…….”
“안타깝지만 살아 돌아오길 빌어야지.”
말과는 다르게 김기철의 가슴은 격렬하게 띄고 있었다.
괴생명체가 카메라를 지나가서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흥미로운 장면을 직접 못 보는 게 아쉽지만, 저런 게 나왔다는 게 중요하다.
‘조금씩 진보하고 있어.’
김기철은 조용히 들뜬 속마음을 감추고 있었다.
주하나는 앞장서서 휴대폰으로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밤길 조심해요.”
야간산행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로만 들었다. 하지만 감염자에게 쫓기는 상황과 싸늘한 밤이 결합하자, 그야말로 실시간 공포체험이 되었다.
“후우……. 후우…….”
다들 말이 없었다. 발걸음은 빨랐지만, 보폭이 좁다.
“갑갑하네. 다들 조심해요. 갑자기 구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동현은 너스레를 떨었다. 야간 산행은 시야가 필연적으로 좁아지기에 까딱하다가는 굴러 떨어질 수 있다.
이 야밤에 작게만 굴러도 타격은 크다.
동현은 이런 산이 익숙하다.
‘특전사 시절에도 많이 했으니까.’
그 자체는 솔직히 뛰어도 된다. 단지, 다른 이들이 그러지 못할 뿐이다.
‘저 형씨도 여기서는 조심히 가네.’
설동 역시, 다른 이들과 밤 산행은 마찬가지로 초보다.
“고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발에 족쇄 차고 걷는 수준.
깜깜한 밤. 야생 생물들의 작은 소리도 극도로 민감한 이들에게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가야 한다. 정말로 그 괴물이 쫓아오면 위험하니까.
아현은 설동의 옆에 붙었다.
“근데, 정말로 오는 거 맞아?”
“안 올 리가 없어. 쇠심줄보다도 질긴 놈인데. 안쪽으로 가서 군인들하고 싸움을 붙이면 돼.”
“흐음. 그것도 좋네.”
아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도하연은 그 광경을 보고, 복잡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은 거긴 한데…….’
신경 쓰이고 마음이 아프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저 이제 처음 만난 사이지 않은가. 괜한 감정이다.
그런 도하연의 복잡한 마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 괴이한 귀에 들렸다.
“어?”
타타탁.
갑자기 이 고요한 밤을 울리는 이상한 소리가 모두의 뇌리에 들렸다.
태희가 황급히 동현에게 안겼다.
“동현아.”
“뭐야. 이 개 같은 소리는?”
설동은 예상보다 빠르다는 거에 주목했다.
“왔군.”
아무리 자기들이 천천히 걸었다고는 해도 그 각다귀 같은 팔로 이렇게 빨리 오는 건, 확실히 의외였다.
타타타탁.
바퀴벌레가 바로 옆에서 지나가도 이보다는 덜 끔찍할 거다.
기묘한 소리가 산을 울리고 있었다. 설동은 모두를 정지시켰다.
‘감염자가 시야가 제한적이고 소리에 의지하니까.’
이미 깨달은 상식이었다. 적도 시야에 문제가 있고, 이쪽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모두를 멈추게 했다.
“쉿.”
하지만 성민우는 크게 당황한 듯했다.
그는 오히려 긴장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감염자가 근처에 있는데 가만히 있는 건…….”
성민우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제일 앞에 나설 때였다.
“가가가가…….”
기묘한 울음소리와 함께 그들의 위쪽 언덕에서 기괴한 괴물이 나타났다.
마치 해일이 몰아치듯 사람의 세배는 될법한 몸체로 아래로 떨어졌다.
“으아아악!”
성민우가 비명을 내지르고, 여기에 혼돈이 닥쳐왔다. 이 기괴한 감염자가 땅바닥에서 지렁이처럼 꿈틀대었다.
“물러나! 물러나!”
삽시간에 사람들이 엎어지고 쓰러지고 난리가 났다.
설동의 회색 뇌세포는 바쁘게 움직였다.
도망칠 수 있는가.
저 괴물을 따돌릴 수 있는가.
희생자를 낼 가능성이 있는가.
각다귀 같은 팔이 자신의 앞을 무섭게 지나갔다.
‘위험했어.’
빠르고, 민첩하다.
설동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여기서 잡고 가야 한다는 걸 말이다.
바퀴벌레처럼 소리를 내며 한층 빨라진 움직임이 보였다.
‘아까 쫓길 때보다 훨씬 빨라.’
주하나가 비추는 휴대폰 불빛에 보였다 사라지는 모습이 신기루 수준이었다.
‘익숙해진 거 같아.’
상대는 자신의 신체에 적응한 게 분명했다.
“으아아아!”
탕!
성민우가 총을 쐈다.
하지만 이 야밤에 이리저리 뱀처럼 몸을 꿈틀거리는 이를 맞출 수 있을까?
동현이 그를 말렸다.
“멈춰! 우리까지 맞아!”
거기다가 조준을 잘못하면 아군도 다친다.
이 야밤에 이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
이건 위기 상황이었다.
설동은 그때 성큼성큼 앞으로 갔다.
“야!”
그리고 소리를 질러 이 난동을 부리는 감염자를 자신에게 오게 하였다.
“모두 물러나요!”
“설동아?”
아현이 놀라서 말하는 순간, 이 기괴한 감염자가 설동에게 덤벼들었다.
설동은 재빨리 비탈길 근처에서 몸을 숙였다.
이 감염자가 그대로 설동의 위를 지나가며 저 아래로 구를 것이다.
“가가가가가.”
곧, 설동의 위로 듣기 싫은 웃음이 지나갔다. 그거로도 소름이 끼치고 있었다.
“어?”
각다귀 같은 손이 설동의 어깨를 낚아챘다. 두 개체는 비탈길 아래로 굴렀다.
머리가 아프다. 온몸이 끊어질 거 같다. 설동은 괴물과 엉켜 비탈길을 굴렀다.
그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며 신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