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53
그녀는 이틀 동안 부지런히 먹었다. 안 먹어 마른 몸을 다시 살찌우기 위해서다.
도하연은 그런 친구의 반응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다행이야. 의욕이 생겨서.”
“응. 발차기 한 방에. 아직도 아픈 거 같아.”
아현은 신설동을 떠올리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녀에게 강제적으로 삶의 활력을 주입했다.
“뭐, 얼굴도 그럭저럭 괜찮고. 감염자 상대로도 잘 싸우잖아?”
“하긴, 남친 삼으면 안심되겠다.”
“아하하.”
아현의 기분 좋은 얼굴에 도하연도 웃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말해야 했다.
“이제 좀 나와! 한 시간 동안 보고 있으면 어쩌자고….”
“그, 그치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설동이가 날 봐주지 않을 거 같단 말이야.”
“어휴, 기집애가 별걱정이야. 충분하니까 이만 나오세요.”
도하연은 1시간 만에 간신히 거울 앞에서 기초화장을 할 수 있었다.
딱히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기에 할 이유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는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아현이를 마음에 들어 했나?’
하지만 왠지 마음속에는 설동이 떠오르고 있었다.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 모든 것이 그녀의 신경을 쓰게 하고 있었다.
화장도 그래서 하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주책이다. 도하연은 친구를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엄연히 자기 친구가 좋아한다고 티를 내는데, 갑자기 왜 신설동을 생각하는가.
‘좀비 영화에서 흔한 상황인가? 친한 친구와 사이가 나빠지고 결국 그거 때문에 무너지는….’
도하연은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지금 망상이 폭주할 지경이다. 대체 왜? 그냥 남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되고 있다.
‘그럴 일 없어. 그럴 일 없어.’
연신 세뇌하듯 되새긴 도하연이 기초화장을 마치고 일어섰다.
사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이날은 웬일로 치료 센터 전체가 휴무였다.
[큰 수색 후에 당연히 휴식을 해야죠. 군대를 다녀와 보면 알 겁니다. 당신들은 하루 동안 병원에 있었으니 소장님 재량으로 하루 더 쉴 수 있습니다.]군대랑 거리가 먼 두 여인이야 잘 모르지만, 휴무다.
일과도 없고 주변에 사람들도 없다.
중요한 건, 같이 싸워온 설동이 쉬고 있다는 거다.
“지금 아니면 언제 기회겠어?”
아현은 적극적이었다. 도하연은 마른 그녀가 연인을 잃어서 자살하려던 걸 떠올렸다.
‘뭐, 의욕이 있다는 건 좋은 거지.’
새로운 사랑으로 친구가 생존 욕구를 되살렸으면 좋은 거다.
하지만 웃으려고 해도 속마음은 풍랑을 만난 것처럼 요동쳤다.
‘제주도에 게스트 하우스가 얼마나 많은데. 아니야. 도하연. 아현이가 지금 잘 되려 하고 있잖아.’
그녀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갈무리 중이었다. 아현은 그런 도하연의 속마음도 모르고 들뜬 상태였다.
“그, 근데. 어떻게 이야기하지? 바로 찾아가서 놀자고 할까? 단둘이서?”
“하여간 급하기만 하다니까.”
도하연은 여기서 친구를 위해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휴대폰을 누르더니, 반갑게 웃었다.
“아, 네. 하나 씨. 어차피 저희끼리 쉬는데, 매점에서 만나서 놀까요?”
“어? 언제?”
“네가 설동씨 보고 웃을 때부터. 병원에서 번호를 교환했지.”
도하연이 혀를 내밀자, 아현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동현은 매점에서 태희와 헛개수 차를 마시고 있었다.
“피곤하다.”
도하연은 그런 동현을 보고 의아해했다.
“쉬는 날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더 힘들지.”
동현이 눈을 찡긋하자, 도하연은 다시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자, 성민우가 껄껄대며 끼어들었다.
“연인은 쉬는 날이 더 힘들죠. 하핫.”
“주책이야.”
하나가 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휴식 날 이들은 만났다. 친목도모가 일단은 주요 목적이지만, 그 안에 아현과 설동을 만나게 하는 데 핵심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조용하다.
“…….”
설동은 매점에서 과자를 입에 물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족은 살아있을까. 아니, 헛된 희망이려나.’
본디, 열심히 말하고 적극적으로 끼어드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그는 말이 없었다. 푹 쉬니까 가족 생각이 떠오른 거다.
이미 반쯤 포기하고 주변인들을 살리는 데 주력하지만, 그래도 그리움은 씻을 수 없었다.
성민우가 옆에서 포테토칩 하나를 깨작거렸다.
“그래도 식량을 싣고 와서 포인트가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매장 테이블 3개를 합쳐서 이들은 원형으로 둘러앉았다.
하나와 도하연의 배려로 아현은 설동의 옆에 앉는 기회를 얻었다.
어떻게든 대화하고 싶어 하지만 하필 설동이 가족 생각에 말이 없었다.
도하연은 어떻게든 어시를(?)해주기 위해 이야깃거리를 꺼냈다.
아니, 그녀 자신이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에 가까웠다.
“진짜, 다들 힘들게 왔는데, 여기 오기 전까지 어떻게 살았어요? 특히나 설동 씨는 말하는 거 보면, 되게 여러 경험을 했을 텐데.”
“역시….”
아현은 도하연이 자연스레 설동의 입을 열 주제를 가지고 오자, 몰래 엄지를 치켜들었다.
설동은 과자를 입에 물면서 옛 생각을 떠올렸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
“음. 계엄령 때 여자 친구가 친구랑 붙어먹었고.”
“어머나…….”
아현이 바로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아무튼, 설동은 대강 줄여서 파란만장한 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제주도에 와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탈출했는데, 도로에서 군인들이 총을 갈기더라고요. 감염자는 사방에서 생기지. 뛰어서 언덕 쪽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어요. 거기서 위쪽 사람들이랑….”
“아!”
바로 그때였다. 도하연이 소리를 크게 내었다.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도하연의 얼굴은 벌게지고 손을 떨고 있었다.
“그, 그, 암석 게스트 하우스 아닌가요?”
떨리는 목소리에 동현이 반응했다.
“형씨, 설마 우리 밑에 쪽 게스트 하우스 사람 아니야? 전화로만 만났는데?”
“어? 전화기를 잡은 게 나이기는 한데.”
이번에는 설동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니, 설마 위쪽 사람들이 당신들이에요? 헬기….”
“맞아. 헬기를 불러서 검역소 거치고!”
동현이 맞장구를 치자, 설동의 얼굴에서 기묘한 동질감이 나타났다.
“이런 우연이 어디 있어!”
두 사람은 바로 남자의 악수로 서로를 반겼다.
아는 사람. 친구와 지인들이 죽은 설동에게 이것만큼 반가운 것이 없었다.
기뻐하는 그들만이 아니다.
그 순간, 도하연의 마음은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저 사람…. 정말로…. 맞았어.’
그가 의지하고 도움을 주던 목소리. 만나고 싶던 사람.
그 존재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역시……. 살아 있었어.’
도하연은 기뻐서 몸을 반쯤 일으키려다 멈칫했다.
‘아현이!’
아현이 의아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아현의 마음을 알기에 그녀는 일단 마음을 침착하게 했다.
하지만 정면으로 보는 설동의 얼굴에 그녀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러지 마. 제발….’
감정은 요동쳤다. 포기했다고 생각한 존재가 지금, 눈앞에 나타난 거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
“그, 그, 그….”
말이 헛 나오는 상황. 태희가 나섰다.
“그쪽 분을 도하연이 한 번, 보고 싶어 했어요. 그때, 전화로 도움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전화요? 아! 그때, 그 목소리가 어디서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도하연 씨였구나?”
설동도 생각이 난 듯 기뻐하자, 도하연의 표정도 밝아졌다.
“그때,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덕분에 지금까지 잘…….”
하지만 그녀는 순간, 아현 쪽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지는 걸, 깨달았다.
‘이게 아닌데.’
아현이 대놓고 좋아한다. 도하연은 기쁨은 잠시 접고, 다른 이야기로 나섰다.
“인천에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부모님하고 제 친구가 피난민 센터에 있었으니까 가려 했는데….”
“그렇군요.”
“뭐, 그렇게 된 거죠. 근데 연락도 안 되고 무너졌다고 하니까.”
설동은 다시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야기가 끊기자, 아현은 이번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의지가 보였다.
“저도 하연이랑 같이 피난민 센터에 있었는데, 옆 피난민 센터가 무너지면서 이쪽도 갑자기 무너졌어요.”
“아현이는 영화 촬영하러 중랑구에 있었거든요. 거기가 괜찮다고 들었는데….”
도하연이 말을 잇는 순간이었다. 설동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중랑구 피난민 센터?”
“네. 두 개 있었죠. 우리 쪽도 무너졌는데, 다른 쪽도 무너졌…. 죠.”
“중랑구 피난민센터에 우리 가족이 있었어!”
설동의 표정이 급변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살았어? 우리 부모님은? 상인이는?”
설동은 다급하게 아현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아현은 연약한 몸은 금세 비명을 내질렀다.
“아, 아파요.”
설동은 깜짝 놀라 손을 뗐다. 가슴이 격하게 요동쳤다. 포기했던 부모님의 행방을 알 기회다.
‘제발. 제발.’
가슴속으로는 희망적인 관측을 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현은 놀란 나머지 기침을 했다.
“어…. 죄송한데.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저희도 갑자기 사태가 일어나서….”
“아…….”
설동은 급격하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처음과 같이 변한 게 없었다.
부모의 생사를 모른다. 어두운 가운데, 도하연이 한 가지를 떠올렸다.
“제가 피난민 센터에 있을 때, 얼굴이 희고 고운 남자 분 하나를 봤거든요. 그 사람도 제주도에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설동의 눈이 커졌다. 자기 친구 유상인이 그런 타입이지 않은가.
하지만 다시 침울해졌다. 결과적으로 생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도하연이 새침한 눈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기껏 물어봐 놓고, 너무 자기 생각만 하네요. 하지만 확실한 건, 탈출한 사람들도 많아요. 당장 우리도 그렇고, 반대편도 마찬가지예요.”
“…….”
“적어도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으면 고마워서라도 하는 게 어때요?”
설동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현에게 다가가 한마디를 던졌다.
“미안, 내가 잠깐, 정신 팔렸네. 아무튼, 고마워.”
“아니에요.”
아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설동은 미안해서인지, 매점 직원에게 커피 두 잔을 시켰다.
“이야, 저거 영화배우 아현씨 아니에요?”
직원인 함용준은 설동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연예인한테 관심 받아서 좋지 않아요?”
“아니, 그냥 대화만 몇 번 한 경우라서….”
설동은 대강 얼버무리고는 캔 커피를 하나 건넸다.
그러자, 아현이 다시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일단 사소한 거지만 그녀는 지금 기쁜 것이었다.
도하연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희연아. 언니가 우리 건물 소개해줄까?”
“맛있는 거 있어요?”
“많아. 한 번 둘러볼래?”
그러면서 주하나와 성민우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다 데이트라도 즐기시는 게 어때요? 모처럼 휴일인데.”
“영화에서보다 더 능동적이군요.”
주하나가 바로 눈치를 채고 성민우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태희가 동현을 건드렸다.
“하하하! 이거 내 똘마니들이 잘 지내나 봐야겠네. 태희야 가자.”
어색한 대화 후 이들은 하나둘 떠났다.
그렇다. 윈윈.
남은 두 사람은 어색하게 있다가 한마디 했다.
“움직일까?”
“그러자.”
이제 두 사람도 어디론가 움직였다.
김기철은 이곳에서 신을 방불케 한다. 오래 이곳에 머문 자일수록 더더욱 말이다.
“김기철님! 저희 방에 찾아오셨군요.”
“김기철님!”
김기철은 ‘순례’차 간혹 피난민들이 있는 곳을 들르는 경우가 있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기철님! 저희 애가 상태가 이상해요!”
마치 종교단체의 지도자처럼 그에게 의지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기철은 미소를 머금고 성인처럼 그 중년 여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가 여러분들을 구할 겁니다. 약이야 얼마든지 있으니 병원 쪽으로 내원하시죠.”
“감사합니다. 김기철님.”
“여러분이 있어야 제가 있으니까요. 전, 지도자로서 여러분들을 불편함이 없게 해야 하니까요.”
김기철은 흡족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거기에 맞춰 변화해야 합니다. 뒤처지거나 도태되어서는 안 됩니다.”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