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54
여기저기서 동의의 소리가 들려왔다. 김기철의 말 한마디가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모두 따라주십시오.”
“김기철! 김기철!”
여기저기서 환호가 들리고 있었다. 이대로 집회가 이어지려는 찰나, 갑자기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시발, 이 사기꾼 새끼야!”
환호성이 거짓말처럼 줄어들고 있었다. 모두가 분노의 표정으로 불청객을 보았다.
50대의 중년 남성이 울분에 찬 얼굴로 다가왔다.
“우리 애가 실종됐어. 방에서 자고 있던 애가 말이다! 이게 말이 돼?”
“박도훈씨. 그건 저희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실종 건은 저희가….”
“거짓말 마. 사기꾼아! 난 다 알고 있어! 저번에 탈출한 사람들이 그랬어! 너희가 사람을 납치한다고!”
그 소리가 전해지고 이곳은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1초 만에 거센 반발을 불렀다.
“웃기지 마! 김기철님이 우리를 도와주고 계신다는데!”
“저거 완전히 쓰레기 아니야? 누구 덕에 사는데?”
사람들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하자 50대 남성이 움찔거렸다.
김기철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전에 보이던 인자한 미소는 절대로 아니다.
“잠시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추방당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김기철님. 저런 사람은 그냥 쫓아버려요.”
“아니, 너무 착하신데요?”
김기철의 행동에 모두가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김기철은 자기 사병들로 50대를 구속했다.
“이분은 아무리 봐도 증상이 진행 중인 거 같습니다. 간단한 간이 검사를 해봐야겠군요.”
인자한 미소가 순간, 사악하게 변했다.
50대가 도망치지만 건장한 청년들을 이길 수 없었다.
“자, 그러면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보죠. 저 남자를 특별히 보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한 여성을 또 불러내었다.
“윤숙자 씨. 잠시만 와보실까요?”
“네?”
“‘그 건’ 때문입니다. 또, 당신만이 해야 할 이리 있어요.”
“저만이 해야 할 일이요?”
선택받았다. 윤숙자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네. 물론이죠. 오만석군도 오시죠.”
또 다른 건장한 남자가 일어섰다. 김기철은 이 두 사람과 50대를 끌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 사람이었어.”
도하연은 홀로 멍하니 바깥의 화단을 구경하고 있었다.
마음은 뒤숭숭했다.
‘아현이가 저렇게 마음을 치유 받으면 괜찮아……. 그런데….’
도하연은 전화기 속의 남자를 잊지 못했다. 죽었을 거로 생각하고 이도진에게 대시를 받았을 때도 거부했다.
오랫동안 꿈꿔오던 사람이 결혼하고 애까지 있는 걸 본 충격에 가까웠다.
‘내가 먼저….’
도하연은 부질없는 소리에 고개를 다급히 저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내가 혼자 그런 거지. 게다가 아현이가 저렇게 좋아하잖아.’
씁쓸하고 우울한 아현이 어느새 밝아졌다. 그걸 보면 친구인 도하연도 즐거워할 만큼 말이다.
하필 그 대상자가 도하연이 만나보고 싶던 사람이니까 문제였다.
‘아니, 난 그냥 그 사람한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던 거였어. 사귀는 게 아니야.’
애써 부정하는 그녀였지만, 현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 중이었다.
“하연아.”
그때, 태희와 동현이 뒤에서 나타났다.
두 사람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 둘은 이미 도하연이 전화기 속 사내를 찾고 다닌 걸 잘 알고 있는 동료.
동현은 머리를 긁었다.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그 형씨가 그때 그 남자라니. 근데 친구와…. 그게…. 삼각관계….”
“뭔 헛소리야.”
태희가 횡설수설하는 동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동현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이런 건 처음이라고. 어떻게 위로할지.”
도하연은 이 커플의 위로 아닌 위로에 웃었다.
“아니에요. 어차피 그냥 만나보고 싶던 건데요? 그뿐이에요. 정말 제가 느꼈던 대로 든든하네요. 아현이랑 잘되면 저야 좋죠. 기운을 완전히 차린 것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태희는 도하연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정말로?”
“하아…. 언니. 자꾸 들추지 마요. 그래요. 아쉬워요. 하지만 아현이가 즐거워하니까. 저도…. 아니, 모르겠어요.”
“복잡한 마음인 거 이해해. 근데 아직 사귈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이야기만 나눌 수도 있지.”
“그건 그거대로 아현이한테 안 좋은데. 아, 모르겠어요.”
도하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태희가 그녀를 바로 안아주었다.
“우리 귀여운 하연이가 고생이 많네.”
“하아…. 쉬고 싶어요.”
두 사람은 지친 도하연을 데리고 움직였다. 하지만 아현과 설동을 위해 비켜주느라 갑자기 나왔으니 서로 갈 데가 없다.
마찬가지로 이들은 방황하던 주하나 성민우 커플과 희연을 만날 수 있었다.
주하나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쪽도 지금 뭐할지 모르죠? 다시 매점으로 갈래요? 아까 보니까 두 사람이 매점을 나오던데.”
“그럴까요?”
이들은 다시 매점으로 갔다. 매점으로 하나둘 들어가는 사이, 희연은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으로 향했다.
주하나가 외쳤다.
“거기는 가지 마.”
“언니, 여기는 뭐하는 곳이야?”
“그냥 뭐 매점 물품이나 그런 게 있겠지. 함부로 가면 혼나요.”
하지만 아이의 호기심은 그렇게 말해도 슬쩍 문을 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본 것에 희연은 멍하니 보고 있었다.
“언니, 언니! 저기 엄청 길어요. 그리고 깨끗해요! 엘리베이터도 있어.”
“엘리베이터? 지하 1층이 끝인데 뭔 엘리베이터?”
주하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둘이 되는 건 처음이라 어색하네.”
아현은 설동과 같이 이 치료센터를 돌고 있었다. 사실, 갈 곳도 없었다. 그냥 북악산 경치를 바라보며 걷는 게 유일한 데이트 코스였다.
하지만 아현에게는 이런 것도 괜찮았다. 사랑의 감정이 커지면 뭐든지 다 좋게 보이듯 말이다.
설동은 그에 반해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가 바보도 아니고, 엄연히 여자 친구도 있었던 몸.
아현의 감정이야 확실히 안다. 자기에게 호의를 표하는 여자, 그것도 미녀라면 더더욱.
‘아니, 그런데 이 상황에서 연애해도 괜찮나?’
설동의 근본적인 고민은 아현은 일단, 자신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필시 싸울 때, 언젠가는 알게 된다.
그때도 자신을 좋아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인간관계상 상처받을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다.
하지만 설동의 성격상, 이런 거로 지지부진하게 끌 타입도 아니다.
헤어지기 직전 여자 친구에게 한 것처럼, 아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현아. 나랑 사귈래?”
“…!”
그저 부지를 걸어 다니는 와중에 받은 아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
너무나도 직접적이고 마음의 준비도 못 하게 만든 일직선 공격이다.
“어…. 음….”
“마음이 있다면 솔직히 사귀어도 상관이 없어요.”
설동은 아현의 마음을 격한 풍랑으로 몰아쳤다.
“온갖 못 볼 꼴 다 볼 거야. 여기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서로 감정 상할 수도 있어. 또 사람마다 비밀도 있고.”
“비밀?”
“말 못 할 비밀. 그걸 알고도 사귈 수 있다면 난 환영이야. 언제든지.”
아현은 고개를 숙이고 새빨개진 얼굴을 감췄다.
‘이거…. 그냥 허락이라는 거 아니야? 지금 당장 내가 말하면?’
그렇다. 사랑으로 돌파 가능한 범위다. 아현이 바라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현은 망설였다.
싫은 게 아니다. 단지, 너무 직접적이다. 적당히 간만 보려다가 풀코스 시식을 할 수준이었다.
설동은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너무 직접 이야기했나? 아무튼, 꼭 지금 말할 필요는 없어. 천천히 생각해 봐. 나도 싫지 않으니까.”
“너도 참……. 거침없네요. 그래서 감염자도 잘 잡으려나?”
아현의 두근거림이 이제 한계치였다.
‘그냥 키스하고 시작할까?’
이미 머릿속에는 온갖 망상이 범벅되고 있었다.
그냥 지금 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아현이 마음속의 다짐을 할 때였다.
툭.
갑자기 그들의 앞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소리가 묵직해진 게, 보통 무거운 게 떨어진 게 아니다.
두 사람이 땅을 보았다.
거기에는 50대의 사내가 떨어져 비틀거리고 있었다.
“뭐야?”
설동이 위를 쳐다보자, 건물 창문이 깨져 있었다.
아현은 황급히 달려가서 부축해주었다.
“으…. 아파…. 아파….”
“병원에 바로 데리고 갈게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설동의 번개같이 앞차기로 사내를 걷어찼다.
“물러나! 감염자로 변한다!”
“네?”
아현이 황급히 물러섰다. 그리고 뒤로 쓰러진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
그리고 깨달았다.
목이 꺾인 채로 기괴하게 일어서고 있었다.
“나……. 앞……. 이 안 보여.”
설동은 자신이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감염자랑 1:1 맨손. 제일 피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아니, 굳이 싸워줄 이유는 없다. 여기에 병력이 있으니까.
설동은 다급하게 건물 안쪽으로 아현을 들춰 멨다.
목표는 바로 비상벨.
그는 건물 외벽으로 달려 주먹으로 비상벨의 버저를 박살내듯 눌렀다.
위이이이잉!
순식간에 경보가 울려 퍼졌다. 짧게 두 번. 하지만 곧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대파하기 시작했다.
설동은 그중에서 군인들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쪽! 이쪽이야!”
군인들은 설동과 그에게 향하는 감염자를 보았다.
탕! 탕! 총성이 울려 퍼지고 좀비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 이 광경에 수군대고 있었다.
“김 씨 아저씨인가?”
“말도 안 돼….”
아는 이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중, 한 중년 여성이 뛰쳐나왔다.
“이 개새끼들아! 너희가 옮겼지! 너희 때문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어!”
악질적인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여성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멀쩡하던 이가 감염자로 변한 것도 이놈들이 오고부터야!”
“무슨 헛소리에요!”
아현이 따졌지만, 이런 흉흉한 분위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3. 자극하는 자들
“윤숙자 씨. 아드님은 안타깝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윤숙자는 나이 50대 초반의 주부였다. 감염자사태가 터지자, 방구석 폐인인 아들과 함께 간신히 탈출해서, 치료센터에 도착했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아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확인되었다.
“내 아들이…. 하나뿐인 내 아들이….”
그녀는 음침하게 고개를 숙인 아들을 어루만지며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김기철 앞에서 방어하기 시작했다.
“우리 자식은 절대 못 죽여요! 절대로!”
“호오. 이런 모성애라니….”
별안간 김기철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뭐,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치료센터입니다. 신약을 개발 중인데 사용해보시겠습니까?”
“약이요?”
“네. 사실, 부작용이 어떨지…….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이런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 약을 먹고 멀쩡하면 치료센터에서 안전하게 사실 수 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윤숙자는 아들을 위해, 그 약을 먹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덕에 아들과 자신은 1개월 넘도록 생존할 수 있었다.
[윤숙자 씨. 당신은 이곳에 먼저 들어온 고참 중 하나이니, 사람들을 잘 좀 설득해서 그 무리를 처리 부탁드립니다. 그들이 들어오고 갑자기 주변에 감염자가 나타나고 영향이 커요. 특히나 신설동 씨는 매우 의심되는 사람입니다. 되도록 정밀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본인이 거부해요. 이거, 뭔가 수상하죠? 윤숙자 씨만 믿을 게요.]윤숙자에게 내려진 명. 바로 신설동 무리를 자극하는 거다.
‘아들을 위해서.’
오로지 그뿐이다. 윤숙자는 수많은 사람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감염자가 나타난 게 우리 때문이라고?”
설동은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뜬금없이 자신들을 향해 원흉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억지다. 이건 명백히 억지다.
‘갑자기 왜지? 이상한데?’
설동은 일단 사태를 관망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잠깐이다. 그의 성격상 그리 오래 참지 못한다.
“무시해.”
설동은 아현의 손을 잡고 그들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갑자기 한 남자가 뛰어들었다.
“야! 멈춰!”
그는 대뜸 설동의 멱살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