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56
김기철은 윤숙자에게 약을 처방한 다음, 고개를 저었다.
원래대로라면 서로 싸움을 일으켜서 징벌실 겸 해서 설동을 정밀 검사에 밀어 넣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설동은 그 예상보다 더 기민했다.
‘행동력 하나는 확실하다는 건가?’
순식간에 분란 거리를 제압했다.
김기철이 고민하고 옆에 있던, 대위 계급을 단 박헌수가 의아해했다.
“그냥 잡아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저희가 도와드릴까요?”
“아니. 그랬다간 동요가 일어나. 아직은 아니야. 그런 식으로 자극하는 건, 당장은 아니야.”
“음. 갑자기 마구잡이로 덤벼들 거로 생각해서요?”
“그래. 리스크는 줄이자고. 여기 인원이 혼란에 빠지면 통제할 수 없다. 게다가 ‘그것’들도 아직 완전치 못해.”
김기철은 새로운 보고서를 보았다.
[신설동 패거리]-처음 같이 온 4인뿐이었지만, 어느새 도하연과 조아현, 강동현과 천태희와 친하게 지낸 것이 보고됨.
-강동현은 자기 휘하로 3명을 부하로 둘 정도임, 군 조회상 특전사 출신임을 확인. 유용한 전력으로 보임
이들은 숙소도 제각기 달라서 정보를 모으기 용이하다.
“원인은 명확하군. 일단, 탈무드를 시행해볼까?
하지만 굴러들어온 실험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 계획은 준비돼가고 있어. 하지만 왜 신설동만 보균자가 아닌 거지? 이건 알아내야 해. 계획이 실행되면 나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전에 저런 ‘저주받은’ 신체를 조사해야만 한다.
김기철은 다시 다른 수단을 강구했다.
주하나와 희연은 1층 식당가로 움직였다.
점심시간이니,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이 움직이지만, 이들은 좀 빠른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은 수업시간이 어른보다 15분 이상 빠르기 때문이다.
“보호자에 한해서는 같이 식사할 수 있게 하고 참 좋단 말이야.”
“언니! 밥! 밥! 밥!”
주하나는 보호자의 자격으로 동생 희연을 데리고 먼저 식사에 나섰다.
‘민우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쩌겠어.’
희연과 함께 식판을 들고 대기 중인 상황이었다. 그때, 한 남성이 다가왔다.
“야!”
“네?”
난데없는 반말에 주하나가 고개를 돌리자, 안경을 쓴 사내가 험악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시끄럽잖아! 조용히 좀 하라고.”
“아…. 네.”
희연이 시끄러웠나 싶어서 하나는 입단속을 했지만,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뭐지?’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공공장소에서 민폐 부려서 욕먹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다음 행동은 명백히 상식에 벗어나 있었다.
“거, 빨리빨리 좀 퍼요!”
“저기요. 여기에 몇 사람 있다고 보채요?”
이상할 정도로 시비를 걸자, 주하나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굼벵이처럼 느리잖아.”
“굼벵이? 지금, 우리한테 한 이야기에요?”
“너네한테 누구한테 하는데?”
“미쳤어요? 사람한테 막말 그렇게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에요.”
주하나가 열 받아 소리치는 순간 사내의 손바닥이 주하나의 뺨을 강타했다.
“아악!”
맞고 나가떨어진 하나를 보며 남자는 무섭게 다가갔다.
“언니, 괴롭히지 마요!”
“꺼져.”
사내는 희연을 제치고 자기 아이를 앞세웠다. 주하나가 힘겹게 몸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그녀는 들고 있던 식판을 노려보았다. 당장 저 사내의 머리를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안 돼. 희연이 까지 위험해.’
한 대 치고 그다음은? 분노한 남자가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주하나는 일단 참으면서 뒤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희연은 그녀의 허리춤을 잡았다.
“말려줄 사람이 없어….”
“그러게….”
하지만 하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곳에 군인이 없는 게 아니었다.
“잠시 만요?”
주하나는 멀쩡히 지키던 군인에게 따졌다.
“지금 저 남자가 저를 폭행했잖아요. 왜 가만히 있죠?”
“제가 확인을 못 해서요. 잠시 만요.”
뒤늦게 군인이 달려간다. 곧, 남자와 아이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물러갔다.
‘저게 끝이야?’
하나는 기가 막혔지만, 정말로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은 결코 가만히 있지 못한다. 다시 정식으로 따졌다.
‘아니, 규칙이라면서?’
증인도 있겠다, 주하나는 바로 재차 항의하고 돌아왔다.
성민우는 연인의 상태에 의문을 표했다.
“왜 그래? 심통 난 얼굴로?”
“아니, 그게….”
주하나는 말할까 했지만, 성민우의 성격을 떠올렸다.
‘바로 달려들 텐데. 더 큰 싸움이 나는지 모르겠어.’
어차피 처벌받을 거니까 그냥 묻어두겠다고 생각한 하나였다.
‘진짜 별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주하나는 머리가 아파오는걸 느꼈다.
도하연은 눈앞에서 자기의 귀가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아니, 여기가 제 집 안방이야? 외부자를 부르지 말라고!”
숏컷 수준으로 짧게 머리를 치고 안경을 쓴 여성, 김유진연.
같은 여자 동에 사는 이 여성은 도하연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금 우리 동에 자꾸 남자를 들이잖아요? 그만두지 못해요?”
“그건 죄송하지만, 잠깐이라면 상관없어요. 어차피 다들 그러기도 하고….”
“여자가 위험해진다고요!”
진연은 거세게 화를 내고 있었다. 도하연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혼거라서 여기도 여자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번에 웬 한남 새끼가 스토커 질을 했다면서요? 여자들이 위험하다고요.”
“모든 남자가 딱히 위험하지는 않은데요. 범죄자만이 그런 거죠. 그리고 그 말투….”
“내 말투가 어때서요? 흉자년이 착한 척 하는 거 봐. 우리가 뭐 어때서? 남자가 그리 좋아? 남자 밑에서 아양 떠나 봐?”
“…….”
도하연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거 중증이다.’
진연은 극한 혐오감정을 내뱉고 뻔뻔하게 있었다.
“반말하지 마세요. 역겨우니까요. 그리고 남자는 그쪽 같으신데…. 그렇게 남자가 부러워요?”
“시발, 역시 흉자년이 개소리야! 강간당해라 미친년! 역겨워!”
진연은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도하연은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난감했다.
“본인이 하신 말이 더 역겨운데 자각은 있어요?”
“네가 남자 가랑이 사이에서 노는 것 보는 낫다. 저런 게 여자 인권을 후퇴시키지.”
“인권이란 말의 뜻은 알고 하는 소리에요?”
“후욱…. 후욱!”
진연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도하연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주, 옷 봐봐. 치마를 입고 다녀? 흉자년이 남자 놈한테 바로 달려들어서 박히고 싶은 거야. 역겨운 년. 남자한테 덮쳐달라고 하는 거지? 연예인이니까 구멍동서로 여기저기 벌리고 다녔을 거 아니야. 똑같이 하면 되겠네?”
“성범죄자 같은 말은 그만해줄래요? 참는데도….”
도하연도 이미 생존주의로 마음가짐을 바꾼 이후로 딱히 연예인 이미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가령 개소리하는 지금 이 진연도 그냥 갈겨버리면 그만.
하지만 무언가 낌새가 이상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당장 김재연 건이 윤숙자의 주도로 이루어진 게 최근이다.
그런 상황에서 윤숙자가 조용해지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진연이 시비를 건다.
‘애당초 지금도 상관도 없는 위층 사람 아닌가? 여자동이 5층 정도고, 상관도 없는데.’
저 똥을 싸는 입을 후려치려다가 도하연은 멈칫거렸다.
지금은 참는 게 좋다.
“알겠으니까? 자제할게요. 그럼 이만.”
그녀의 시야가 넓어졌다. 지금 당장은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도하연의 생각은 꽤 중요하게 작용했다.
“너희 애들 관리 좀 잘해라.”
설동은 점심 휴식시간, 별안간 자기에게 시비를 거는 이들을 만났다.
“뭐야?”
세 명 정도의 사내가 그의 앞에 시비 걸 듯 기다리고 있었다.
설동은 대강 본능적으로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
“싸우자는 거지?”
“뭐?”
시비건 이들이 당황할 정도로 빠른 결론.
설동은 웃옷을 벗어 던졌다.
“3 명 다 덤빌 거야?”
“미친놈인가? 왜 갑자기….”
“관리는 무슨…. 난 딱히 누굴 관리하지 않거든. 개소리할 거면 꺼지고.”
“시발 놈이 어디서 욕질이야.”
설동의 눈치는 빠르다. 저런 타입은 오히려 강경하게 나가면 당황하는 타입이다. 즉, 압박감을 주면 끝.
근데 설동은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세 명이서 뭐하는데? 재수 없으면 한판 붙든가. 나도 뜬금없이 시비 거는 댁들이 개 같거든? 어떨 건데?”
오히려 시비를 거는 설동의 모습에 남자들은 저마다 쳐다보았다.
3:1.
쫄 필요 없다. 남자들이 다가왔다.
“좆같은 새끼가,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아.”
“댁들은 뭐가 돼서 이러나? 주제 파악이나 하지?”
한 마디를 안지고 설동이 앞으로 나서고, 이제 싸움의 분위기가 흐르는 상황이었다.
동시에 이들의 머릿속에는 김기철의 명령이 떠올랐다.
[신설동이나 주변인들을 어떻게든 건수를 만들어서 벌을 받게 하세요.]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완수하려고 할 때였다.
“잠시 만요!”
일촉즉발의 상황. 갑자기 도하연이 달려왔다.
그녀는 숨을 헉헉대며 이들의 사이로 껴들었다.
“죄송합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설동의 팔짱을 끼고 움직이는 게 아닌가.
설동은 눈치를 보다가 무언가를 알았는지, 바로 도하연을 따라 떠났다.
4. 실종
도하연은 제주도 이래로 처음이었다. 지금, 눈앞에 남자와 단둘만 남은 경우가 말이다.
‘드디어 만났잖아.’
그토록 듣고 싶었고, 보고 싶었던 목소리. 지금 눈앞에 존재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도하연의 머리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데리고 온 목적을 간신히 떠올렸다.
“시비 거는 거에 넘어가지 마요.”
“역시, 일부러 시비 거는 건가 보네요?”
설동은 역시나 그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왜인지 모르겠네요. 윤숙자 건도 그렇고, 여기가 사조직이 이리 많았나….”
“저도 저희 여자 동에서 엄청난 여자를 만났는데…. 아무리 봐도 급작스러워요.”
“누구의 명령을 받은 것 처럼요?”
설동은 금방 답을 유추해내었다. 사실, 이영선 때부터 해서 자꾸 무언가 어긋났다.
도하연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설동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김기철…. 그 사람하고 연관돼서부터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확신은 못 하지만, 만약 그런다면 우리를 눈엣가시라고 여기는 건데 대체 왜 그럴까요?”
이유는 전혀 모른다. 설동의 몸 자체가 문제라는 건, 김기철 만이 알고 있다.
도하연은 그렇게 경고해주며, 싸움을 일으키지 말걸 당부했다.
‘…….이걸로 끝이기는 한데.’
직접 만나서 설동에게 경고해준 거로 그녀의 임무는 다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기 싫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말로 그녀는 의지를 북돋아 난국을 타개했다.
그 대상자가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는가.
“그때 생각나요?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 때, 설동 씨가 막 전화한 거?”
그녀의 머릿속에 원점, 그녀가 호감을 느끼게 된 그때 일을 떠올렸다.
설동도 그때를 떠올렸다.
“고민이 많아 보이던데. 그냥 말한 거예요.”
“정말 고마웠어요. 그때, 설동 씨 조언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되지 못했을 거예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그래서 계속 만나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만나니 좋네요.”
도하연의 마음속에 그동안 간직했던 응어리가 풀린 기분이었다.
설동은 흐뭇하게 웃었다.
“이것도 진짜 연이죠. 연. 제주도에서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잘 살아야죠.”
“맞아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행복하다.
도하연의 뇌리 저편에 묻었던, 감정이 샘솟았다.
‘이게 그런 기분이구나.’
도하연은 지긋이 설동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아현이 생각났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말을 놓지?’
무언가 질투심도 느꼈다. 도하연은 조심스레 설동에게 속삭였다.
“그……. 우리도 말 놓으면 안 될까요?”
“말이요?”
설동의 눈이 동그래졌다. 도하연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아현이도 같이 말 놓잖아요. 저도 그래도 될까요?”
“그래.”
설동은 손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대답.
도하연은 살짝 당황하면서도 기뻐했다.
“그러면…. 고마워. 그러면 다음에 또 모여서 이야기하자. 한번 논의를 해서 다들 주의를 시켜야겠어, 알았지?”
영화에서나 보던 상큼한 웃음 그대로 도하연이 웃어 보이자, 설동도 그때만큼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