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66
30대 남자는 유상인을 노려보았다.
“보니까 그놈이 잘 대해주더라? 이것도 이를 거냐?”
“……아뇨. 저도 싫어요.”
“싫어? 하하. 보통 사람이라면 싫어하는 게 보통이지.”
30대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막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유상인은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생존자 무리지만, 생존자 무리가 아니다.
그는 이럴수록 친구인 설동이 생각나고 있었다.
‘그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놈이라면 뭐든지 했을 거야.’
밖에 나가서 겨울을 지낼 나뭇가지라도 주워야 한다.
유상인은 산으로 움직였다.
날씨가 춥지 않다고 착각하기 쉬운 사실로, 산의 기온은 보통 체감 온도보다 낮다. 그러니 여름만 되면 계곡이 붐비는 거다.
즉, 땔감이 필요한 거다.
‘미리 모아둬야 해.’
이런 건, 원래 단체로 해야 한다. 하지만 강민호는 그런 건 모른다.
그래서 몇몇 눈치 빠른 이들만 지금 나무를 하고 있었다.
아직은 그냥 아무거나 주어서 대강 집어넣어도 될 정도지만 인원이 무려 25명이 넘는다.
이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나무들은 서서히 동이 난다.
유비무환.
그나마 패기 쉬운 작은 나무들로 도끼질을 했다.
그저 신문이나 책에서 보던 나무꾼. 이게 이렇게 힘들 줄 누가 알았으랴.
아무리 몸이 강제적으로 단련된 유상인이라도 근본적으로 허약하다.
도끼로 그냥 작은 나무를 후려치고 나뭇가지를 모았다.
“후욱…. 후욱….”
땀이 뻘뻘 흐르고, 시야가 어지러웠다. 예전처럼 편하게 보일러 틀고 노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생존해야 한다.
‘모두를 살려야 해. 부모님을 위해서…….’
유상인은 강제적으로 몸을 일으켜서 나무를 베었다.
어설픈 도끼질이지만, 이게 추운 밤을 보내게 하는 원동력이다.
무정하기 그지없는 바람에 퉁퉁 부은 손이 새빨개졌다.
그렇게 한 품 가득, 나뭇가지들을 들고 유상인은 터벅터벅 돌아왔다.
불을 피우는 건, 다행히도 토치가 있다.
공사 현장의 그것처럼, 빈 통을 주어 거기다가 재료를 넣었다.
“어이구, 누구냐? 자기 홀로 땔감을 구한 게?”
토치를 써서 불을 피우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유상인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강민호 패거리 중 한 명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야, 마침 우리 땔감이 부족해서 그런데. 좀만 빌리자.”
“뭐?”
“왜, 안 돼?”
순식간에 정색을 하고 유상인을 노려본다.
“강민호나 널 봐주지. 우린 안 봐준다. 그리고 시발, 달라고 하면 줘야지. 혼자 독점하려고.”
“…..”
유상인은 어쩔 수 없었다. 살기 위해 결국, 기껏 구해온 땔감을 반이나 바치고 말았다.
무력하다. 무섭다.
유상인은 부모님이 있는 막사를 보았다. 살아야 한다.
그리고 지켜야 한다.
그 의지로 이 굴욕을 참았다.
‘이럴 때, 설동이라면 좀 다르려나?’
자신과는 다르게 매사에 감정적인 게 특징인 형제이자 친구.
그가 이 상황이었으면 들이박았을 거다. 하지만 유상인은 그러지 못한다.
간신히 피운 통 안의 불꽃에 퉁퉁 부은 손을 녹였다.
내일 또 하러 가야 한다.
고되다. 뺏고, 뺏기고. 유상인은 이런 게 싫었다.
“저…. 저…. 미안하네. 청년.”
불을 피운 통에 몸을 녹이고 있을 무렵, 식량을 배급받지 못한 노부부가 서성거렸다.
이들은 땔감이나 이런 걸 구하는 것도 힘겨운 수준이다.
유상인은 미소 지었다.
“이리 와서 몸이나 녹여요.”
“고맙네.”
노부부가 이 통 곁으로 왔다. 유상인은 배급받은 통조림을 두 사람에게 주었다.
“아니, 이건….”
“많이 받아서 괜찮아요.”
유상인은 속으로 켕겼다.
사실, 거의 남지 않는다. 그야말로 짜내고 짜낸 여유분. 그걸 준거다.
자기도 왜 이러는지 몰랐다. 하지만 마음은 도와주라고 말하고 있었다.
‘보고 싶어.’
유상인은 이런 세상에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다.
남들이 멍청하다고 할지언정 선의를 베푼다.
“고맙네…. 정말…….”
노부부는 시린 바람에 애틋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때, 유상인은 깨달았다. 이 노부부의 눈물,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피어나는 선의의 꽃을 말이다.
답답한 기분이 조금씩 풀어진다. 자신은 저걸 보고 싶었다.
사람다운 냄새. 사람이 낼 수 있는 기쁨의 감정을 말이다.
유상인은 작은 행복을 느꼈다.
“이야, 역시 여고생이라 그런지 맛도 좋네.”
강민호는 너덜너덜해진 여고생을 놔두고 천막 바깥에 활활 타오르는 통으로 옮겼다.
“지금 천막 안은 그렇다 치더라도 해도, 밤마다 계속 추운데? 이거 어떻게 하냐? 겨울이라도 오면 어떻게 해?”
그의 패거리는 강민호에게 이 겨울을 어떻게 버티는지, 혜안이 있을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리더라는 자의 말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땔감이나 캐게 할까?”
“야, 네가 그러면 어떻게 해?”
패거리는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괜찮아. 당장 자동차들 다 있잖아. 연료라도 연결해서 써야지.”
“기름이 떨어지면?”
“구해야지. 주유소로 내려가서….”
강민호는 뭐가 문제냐는 태도였다. 확실히 기름만 구할 수 있다면 겨울을 버틸 수 있을 거다.
단지, 밥 먹거나 움직일 때 나와야 해서 귀찮을 뿐이지.
“진짜 여름이 다가오는데, 산은 춥다니까. 난 겨울인 줄 알았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오래 버티려면, 혹독한 겨울까지 버텨야 한다.
강민호가 대책 없이 흥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의 뒤로 끈적한 손이 당도했다.
“우리 자기…. 이제 여고생도 손대는 거야?”
“어? 지아…….”
강민호가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살짝 피곤한 인상이 여성이 있었다.
유지아.
그녀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방금 난잡하게 논 천막을 보았다.
“어차피 이런 시대니까 다른 여자랑 하는 건, 상관없어. 게다가 저건 전리품이잖아.”
“하하, 역시 내 여자 친구야. 이해해주는 구만.”
강민호는 킥킥 웃었다.
하지만 유지아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희 위생은 신경 써?”
“여기서 어떻게 해. 콘돔도…. 애매하고.”
“그래도 저 애 불쌍한데 씻겨주기는 해야지.”
유지아는 여고생이 있는 창을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물이라도 끊일까? 목욕은 또 어떻게 하고.”
“다른 사람이 하면 되지. 어차피 다 자기 부하 아니야? 자기가 명령만 내리면 가능하잖아.”
유지아는 강민호에게 안겨서 사랑스럽게 미소 지었다.
강민호는 헤벌쭉하고 웃었다.
“그렇지. 내가 말만하면…….”
“우리는 이제 위치가 다르잖아. 우리, 천막치고 목욕탕 정도는 만들자. 응?”
“근데, 애들 반발도 있을 거 같은데.”
“그 정도도 안 돼? 자기 말을 안 듣는다는 거 자체가 문제 있는 게 아니고? 우리는 조금 특별해질 필요가 있잖아.”
달콤한 유혹. 강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특별하다. 이제 이곳에서 왕이다. 그가 바라던 생활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흑흑……. 엄마, 아빠…….”
벌써 몇 날 며칠을 울고 있었을까? 이 소녀는 드디어 그들의 손길이 사라지자, 몸을 추슬렀다.
머리카락은 부스스하게 산발이 되어있었고, 온몸에는 불쾌한 냄새가 났다.
“…….”
이 무슨 악몽일까. 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이다. 자기가 오자고만 안 했어도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깨어난 소녀는 옷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움직였다.
터벅.
하지만 발소리에 소녀는 소스라치며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전라임에도 난로가 있어 춥지는 않다. 유일하게 현 상황에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렵다. 당장 저 발자국이 이쪽을 향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화하였다. 발소리가 이쪽을 향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남성의 발자국보다는 작았다. 소녀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무서울 뿐이었다.
천막의 입구가 걷혔다.
“어머, 일어났네?”
여성의 목소리가 났다.
남자와는 다른 목소리.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어머나, 얼굴 봐봐. 완전 다 상했네. 남자 새끼들은 짐승이라니까?”
유지아. 이 생머리의 여성은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놀라는 여고생의 손을 잡았다.
“일단, 씻는 건 어때? 우리가 노력해서 욕실을 만들었어. 어때?”
“…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여고생은 그렇게 유지아의 손에 이끌려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보았다. 자신을 쳐다보는 음흉한 시선들을.
유지아는 앞장섰다.
“지금부터 씻을 거니까 헛된 생각 말아. 이 아이는 쉬어야 한다고.”
“…….”
소녀는 이 여성을 보고 왠지 모를 안심을 느꼈다.
자기를 보호해준다.
이들이 만든 욕실이라는 건, 단출했다. 작은 천막 안에 촛불과 욕탕을 논 게 전부.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여기서 세수 말고 목욕을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하다.
유지아는 밝게 웃었다.
“‘약간의 노동력’을 썼지만 이 정도만 해도 어디야. 그렇지? 씻자.”
“네? 네….”
욕실은 한 명 정도가 들어가면 딱 맞았다. 허리까지 오고 앉아야 전신을 담글 수 있었다.
뒤에서 유지아가 여고생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후후, 어때? 기분 좋지? 더러운 게 다 씻기는 느낌이야?”
“……네.”
이 여자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 여고생은 그대로 목욕을 할 수 있는 사실에 안심했다.
유지아는 머리부터 손수 씻겨주고 있었다.
“이봐! 여기 뜨거운 물 더!”
거기에 혹시나 식을까 물까지 더 뿌려주며 따뜻함을 더했다.
여고생은 이 따뜻함에 울기 시작했다.
“어머, 우니? 넌 피부가 좋구나.”
하지만 유지아는 그녀가 우는 것에 관심도 없었다.
보드라운 피부와 머릿결을 매만졌다.
“부러워. 나도…. 5살만 더 어렸으면….”
“흑 아…. 엄마….”
“사실, 너한테 관심 가질지 몰랐어. 하지만 남자들에게는 아니었나 봐.”
갑자기 유지아가 여고생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울던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네?”
“내가 더 낫잖아. 너보다. 얼굴도 몸매도. 그냥 젊은 거 외에는……. 근데, 네가 오자마자 남자들이 달려드네. 난, 질린 건가? 뭐가 문제일까?”
어깨를 잡은 손이 더할 나위 없이 강하게 쥐고 있었다.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고 있었다.
“아…. 아….”
소녀가 뿌리치듯 몸을 앞으로 했다. 유지아의 표정은 악귀가 되었다.
“내가 질렸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이 개 같은 년!”
분노한 유지아가 머리채를 잡고 그대로 바닥에 집어넣었다.
기습적인 공격. 여고생은 물을 잔뜩 먹으며 공포에 질렸다.
1분 후. 유지아는 컥컥대는 여고생의 머리카락을 잡아 올렸다.
“그 피부로 남자들을 유혹한 거야? 창녀 같은 년.”
“커럭. 콜록! 커억!”
비통한 기침을 하는 소녀를 두고 유지아는 나가버렸다. 여고생은 벌벌 떨며, 울고만 있었다.
“콜록. 콜록.”
유난히 추운 아침. 기침은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기침은 위험하다.
“방금 기침 소리, 누가 냈냐?”
강민호가 다급히 뛰쳐나왔다. 그는 엉망으로 풀어진 바지춤을 잡았다.
밖에는 그의 부하가 서 있었다.
“야, 방금 어디서 났어?”
“…….”
“시발 새끼가!”
강민호는 다급히 주먹으로 부하의 얼굴을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