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71
“이게 바로 성수구나!”
성민우는 배추밭에 뿌리려 연결한 호스를 들고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수도시설이 돌아간다. 그게 정말 좋았다.
“전기는……. 간당간당하구만?”
다만, 시설의 보온을 유지하는 전기는 나간 곳이 대부분이고 극히 일부만 전기가 통했다.
아무튼,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하하, 겉절이 먹는 것도 아니고.”
주하나는 씻어낸 배추 조각을 입에 물었다.
봄동이라 불리는 봄배추는 특성상 이파리가 작다. 어찌 보면 처량하기도 했다.
그동안 따뜻한 밥과 간식이 있었다. 불과 하루 만에 모든 게 바뀐 거다.
설동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상인이도 살아있어. 구할 거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 오로지 살기 위해, 참아야 한다.
태희가 작게 말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 많겠죠.”
지금이야 운 좋게 비닐하우스에서 배추라도 씻어서 먹을 수 있지만, 나중에는 그러지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근데, 상대적으로 멀쩡한 게 없네.”
동현은 배추밭을 뒤지면서, 썩거나 제대로 자라지 못한 배추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온전한 배추는 극히 적었다. 아니, 오히려 온전한 배추가 소수라도 있다는 데에 감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
도하연이 덧없이 흐르는 중랑천 방향을 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유상인 때문에 왔지만, 어차피 유상인은 이곳을 벗어났다.
급하게 도망칠 때, 손쉽게 만나기 위한 집결지였을 뿐이다.
설동은 도하연에게 다가왔다.
“하연아. 단체로 도망칠 때,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알아?”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도망쳤는데, 알잖아? 난장판인 거. 물론, 무리를 지어 탈출하는 사람들도 있긴 했는데…. 이곳에서 아래쪽으로 갔었는데…. 용마산 쪽인가…….”
“흠. 한번 둘러봐야겠어.”
“지금?”
도하연이 놀란 듯 물었다. 설동은 비닐하우스 바깥을 보았다.
이제 날이 저물고 있었다. 숨 막히는 여정. 그 하루가 지금 끝나려는 거다.
여기서 자도 된다. 온도 관리 정도는 가능하니까. 하지만 사방이 다 보이고 뚫린 곳에서 누가 자겠는가.
일단 차량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 도하연이 아파트 단지를 가리켰다.
“이 비닐하우스가 저기 보이는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됐다면, 저쪽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요?”
“감염자가 아주~높은 확률로 있을 걸? 아니, 기다리고 있겠지.”
동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아파트 단지는 문을 걸어 잠그고 버틸 수 있지만 반대로 그 안에 고립될 수도 있었다.
도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반대로 감염자 있다면 식량도 그대로일 확률도 높다는 거죠. 우리 이제 상황을 파악했잖아요. 도망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음식 종류를 다 가져가요. 반대로 감염자 있는 집은 역설적으로 식량이 있고요. 감염자가 한두 마리 정도면 설동이를 앞세워서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사태가 일어나고 집안에서 버틸 거면 문은 다 잠갔으니 감염자 있다 하더라도 철문을 부수고 나올 확률은 낮잖아요. 그 이상한 감염자만 아니면.”
“음.”
이것도 맞는 말이다. 설동은 이제 자신이 결정해야 함을 깨달았다.
은연중에 그는 사실상의 리더였으니까.
“좋아. 위험을 감수하고 더 좋은 데로 갈 수 있다면야.”
이들의 다음 목적지는 근처 아파트. 조심스레 밤을 틈타 이들이 움직였다.
사태 1개월째.
다랑 아파트에서는 크나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좀비…….? 감염자? 그게 뭔데? 시방, 고것들이 사람이야?”
입주자 대표회의. 이들은 지금 한대 모여서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아직도 감염자의 위험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냥 정신 이상자들 아니야?”
“무슨 감염도 된다던데?”
정확한 정보가 없는 이들은 멋대로 추측하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아니, 미쳤어! 옆집 진숙이네는 집을 내놓고 도망쳤다잖아.”
“미쳤어? 땅값 떨어지게? 내놓은 부동산 어디야! 당장 따져서 내리게 해야지. 지금, 정신이상자 소동 조금 났다고….”
이들은 다른 무엇보다 집값이 내려갈 걸 염려하고 있었다.
“정부에서도 조금만 기다리면 괜찮아진다고 하고, 다들 집 밖에 나오는 건 당분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참 내!”
“웃겨. 뭐가 무섭다고….”
“그런데, 지금 군대도 동원될 정도면 위험하지 않나요?”
“아니, 그래도 그냥 집안에서 버티면 되지 않누. 어차피 상대가 정신이상자라면 문 안에만 있어도 될 텐데.”
이들은 감염자의 위험성을 얕보고 있었다. 나이든 자들이기에 요즘 세대에 유명한 좀비를 모른다.
이들은 일단, 식량을 갖추고 버티기에 들어간다.
입주자 회의에서 확인한 결론은 하나였다. 어차피 이 사태는 금방 지나간다.
서울은 안전하다.
이 말만 믿고 다랑 아파트의 대부분은 그렇게 장기간 버티기에 돌입했다.
1월의 차가운 밤공기는 설동 일행을 괴롭혔다. 하지만 반대로 안심하고 있었다.
쌩쌩 부는 바람이야말로 감염자들의 청각을 방해할 테니까.
설동을 앞세운 이들은 조심스럽게 다랑이라고 큼지막이 적힌 아파트로 달리고 있었다.
맨 앞의 설동이, 뒤쪽에는 동현이 총을 나눠 호위하듯 간다.
중간에는 성민우가 버틴다.
그들이 발견한 다랑 아파트는 불이 켜진 곳도 있고, 안 켜진 곳도 있었다.
“불이 켜진 곳으로 갈까요?”
주하나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불을 켜고 있다는 건, 감염자가 있을 확률이 무지 높다는 게 아닐까요?”
“생각해보니 감염자가 다 처리되지도 않았을 텐데, 굳이 불을 야밤에까지 켜고 있다는 건…….”
그렇다. ‘불상사’가 일어났을 확률이 높다. 이들이 원하는 건, 도망간 집이다.
도하연은 그걸 노리고 있었다.
‘빈 집을 거점으로 잡고 식량을 모아야 해.’
빈 곳을 잡고, 감염자가 있는 집에 침투하여 식량을 가져온다.
위험성을 담보하여 안정을 찾으려는 도하연의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실로 옳았다. 지하 주차장에서 나는 괴상한 소리를 제외하면, 아파트 단지는 고요했다.
“다 셔터가 내려가 있어요.”
주하나가 외쳤다.
안타깝게도 입구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철저하게 봉쇄된 형국이다.
“1층부터 가볼까요?”
“그렇지만, 1층은 지상에서 다른 감염자들이 뭉치면 위험해요. 전부다.”
성민우 2층을 가리켰다. 설동도 그 의견에 동조했다.
1층은 접근하기 쉬운 대신, 이 아파트 단지 어딘가에 있을 좀비가 몰려왔을 때 매우 위험하다.
2층 이상. 그게 정답이다.
설동은 1층의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된 네모난 공간을 붙잡았다.
‘옛날식 아파트여서 다행이군.’
그나마 난간을 붙잡을 수 있고, 창문만 열면 들어가기도 쉽다.
설동은 하나하나 붙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동현이 따랐다.
“형씨. 여차하면 총으로 쏴요.”
동현의 총은 민우에게 넘긴 상태였다. 그렇게 이 두 사람은 차례대로 2층을 붙잡았다.
그리고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감염자가 갑자기 기습한다 해도 설동이라면 버틸 수 있다.
그렇게 베란다 앞에 도착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들겼다.
만약 감염자가 있다면 바로 반응할 것이다.
통. 통.
조심스럽게 두들겨 보았지만, 반응이 없다. 설동은 조심스럽게 베란다의 문을 열어보았다.
“아….”
그리고 작게 신음을 흘렸다.
끼익. 끼익.
밤바람에 목을 맨 시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썩은 냄새가 강하게 풍겨 나왔다.
설동은 코를 막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자뿐일까?
평수는 18평정도 되어 보이는 방이었다.
설동은 혹시 몰라 다른 이가 없는지 방문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하지만 갑자기 여러 마리가 덮친다면? 두렵다. 지금부터는 실수해서는 안 된다.
문을 열기 전, 설동은 도착한 동현에게 총을 건네주었다.
“지금부터 문을 열 테니까, 여차하면 쏴버려.”
“댁도?”
동현이 씨익 웃자, 설동도 마찬가지로 웃었다.
“상관없어.”
“걱정하지 마. 사격은 잘한다고.”
“그럼 믿지.”
동료가 있다는 건, 크나큰 이점이다. 설동은 마음속으로 안심하고 있었다.
이제 하나하나 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다행히 좀비는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추가적으로 찬장이나 장롱도 빠짐없이 확인했다.
“후우. 일단 사람들을 끌어올리자.”
호구조사를 마친 설동은 동현과 함께 사람들을 하나하나씩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와요. 천천히!”
동현도 힘이 좋고, 설동도 힘이 좋다. 이들은 밑에서 받쳐주는 성민우 덕에 그야말로 콩나물 뽑듯이 여자들을 대부분 2층에 넣는 데 성공 했다.
물론, 시체를 보고 경악했지만.
“희연아 눈 돌려.”
“일단, 이불로 덮을게요.”
태희가 나섰다. 희연이를 방 한쪽에 보내고 이불로 시체를 감싸 내렸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에게 걸레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들이 이러는 사이 바깥에서는 생각 외의 비상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꺼억…. 컥…….”
동현과 설동이 이제 성민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1층에서 이변이 생겼다.
갑자기 1층 베란다가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성민우가 사색이 되고 위쪽 두 사람도 경악했다.
베란다를 뚫고서 감염자들이 튀어나온 거다.
“아….”
“비명 지르지 마.”
설동이 재빨리 소리쳤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감염자가 나오고 있었다.
설동은 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단숨에 뛰었다.
“어…….! 어!”
성민우가 놀라서 뒷걸음질 치고, 감염자가 손을 내밀며 달려들 때였다.
쿵!
설동의 무릎이 좀비의 머리통을 찍어버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구아아악!”
밤소리를 울리는 감염자의 괴성. 곧이어 1층 곳곳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이? 이 근처가 전부 감염자로 변했다고?’
박사의 보고서를 생각하면 살짝 이상하긴 했지만 그걸 따질 새가 아니었다.
설동은 꿈틀거리는 감염자의 목을 그대로 돌려버렸다.
“올라가!”
성민우가 황급히 베란다에 올라가고 감염자들이 서서히 베란다를 깨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전의 기억이 있는지, 베란다를 밀어버리는 좀비도 보였다.
“후우….”
설동은 성민우의 뒤를 이어 황급히 베란다를 붙잡고 올라가려 했다.
“구아아악!”
감염자 6마리가 순식간에 설동의 근처로 모였다.
아니, 이것뿐이 아니었다.
3층에서 기묘한 소리가 났다. 설동이 위를 바라본 순간, 부패한 얼굴의 좀비가 자신을 쳐다보는 게 보였다.
‘시발.’
당연히 욕이 튀어나오는 상황이었다.
감염자란 단순하다. 목표가 있으면 자기 상관없이 덤벼든다.
즉, 떨어진다는 거다.
밑에는 감염자 떼가 모여 있다. 이게 뭘 뜻하겠는가.
“구아아악!”
약속이나 한 듯이 감염자가 떨어지며 설동의 몸을 할퀴고 지나갔다.
“큭!”
설동의 손이 미끄러지듯 풀렸다.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8마리가 넘는 감염자 떼들.
잡히는 순간, 저항도 못 하고 온몸을 뜯길 터다.
“아….”
설동이 추락할 때였다.
“잡아!”
갑자기 추락에 제동이 걸렸다. 감염자들의 손길이 신발에 느껴졌다.
위를 쳐다보니, 동현과 성민우가 한쪽 팔씩 자기를 붙잡고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봐, 댁이 먹이가 되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맞아. 제일 탱커잖아요.”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설동을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