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72
덕분에 설동도 안심하고 2층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시체는 아예 자기 목을 매면서 심장을 찔렀어요.”
태희가 부검 결과(?)를 공표했다. 동현이 놀라서 물었다.
“그게 가능해?”
“가능하긴 해. 자살 준비를 한 상태에서 심장을 노리면 돼. 목을 매고 바닥에 의자를 발로 차면서, 동시에 찌른 거겠네. 왜 그랬을까?”
“감염자로 변하는 게 두려운 거겠지.”
설동은 그전에 펜션 주인을 떠올렸다. 분명히 목을 맸는데도 감염자로 변한 상태였다.
“즉, 이 사람은 자기가 감염자로 변할 거로 생각한 거지. 근데 그걸 어떻게 안 거지? 그냥 감염자로 변할 거 같아서…?”
“아무렴 어때요? 중요한 건 이 시체를 처리해야 하는 거죠.”
도하연이 말했다.
그렇다. 언제까지 이 시체를 곁에 둘 수는 없다.
패륜 같긴 해도 처리해야 한다. 설동은 가스 불을 만졌다.
“나오네. 이거 불에 붙인 다음 던져버려야겠어. 당사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죄송합니다.”
도하연은 이불에 감싼 시체에 고개를 숙였다. 막돼먹은 행동이지만 살기에 어쩔 수 없다.
설동은 어차피 그래야 자기들이 편한 걸 잘 알고 있었다.
‘버려. 살아야 해. 살아서 상인이랑 아빠 엄마를!’
목표가 확실해졌다. 곧, 이들은 밑에서 아우성치는 감염자들을 살폈다.
“근데 당장 불붙여서 던진다 해도 다 옮을 수 있을까요?”
도하연은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기름이 있으면 딱 좋은데…. 식용유는 불가능하겠죠?”
주하나가 자기가 말하고도 웃긴 지, 식용유를 들고 웃었다.
그러자, 도하연이 눈을 번뜩였다.
“달군 다음에 불을 붙이면 돼요. 그러면 잘 붙어요!”
“아하, 도하연 씨. 머리 좋네?”
하나가 대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가 빨라졌다.
곧장 튀김기 수준으로 기름을 냄비에 팔팔 끓이기 시작했고, 감싼 이불에 불을 붙일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
“구아아악!”
“구워….”
감염자들은 밑에서 그들을 향해 팔을 벌렸다. 설동이 냄비 째로 단숨에 던져버렸다.
펄펄 끓는 기름세례에 감염자들의 피부가 녹기 시작했다.
다음은 성민우와 동현이 불을 붙인 이불 째로 시체를 던졌다.
화려한 불꽃이 타올랐다.
좀비들의 괴로운 아우성이 고요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우…. 이제 끝났네요.”
도하연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중에 큰일 날 뻔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들은 드디어 안정적인 주거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확실한 거점이 있으면, 설동 씨가 친구 찾고 데려올 때도 편할 거예요.”
도하연이 밝게 웃었다.
설동도 마찬가지로 웃었다. 안정적인 주거지를 잡고, 친구를 찾는다. 정말 꿈에도 그리는 최상의 상황이다.
“근데…. 방이 두 개인데. 좀 좁긴 하죠?”
태희가 난감해하며 말했다. 이들은 모두 7명. 거실까지 계산해도 꽤나 자기 힘들다.
“음.”
거기다가 웃기게도 도하연과 희연, 설동을 제외하면 다 커플이다.
커플끼리 자라고 하면 문제없지만, 나머지 도하연과 설동은 그들대로 문제였다.
애매한 순간, 설동은 3층을 떠올렸다.
“이왕 아지트를 한 군데 더 늘려볼까?”
“뭐?”
도하연이 고개를 들자 설동은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막판에 떨어진 놈이 3층에서 떨어졌는데, 다른 감염자가 안 따라 나왔다는 건, 비었을 수도 있다는 거지.”
설동은 바로 총을 메고 베란다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3층의 베란다는 깨져 있었고, 고요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동현과 성민우가 따라 올라와 본격적인 수색을 가하고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확인되었다.
동현이 여기저기 들쑤셨다.
“여기도 같은 구조라서 그런가? 18평 언저리네.”
성민우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자 살았던 걸까?”
“아니.”
설동은 고개를 저었다.
“버리고 간 거야.”
설동은 거실 주방에서 쪽지와 함께 썩어버린 음식이 보였다.
[성민아. 정신 차리면 이거 먹고, 기다리고 있어. 친척 집에 가 있을 테니까 연락 해.]이런 집안도 있었다. 변해버린 자식을 집에 가둬두고 떠난 집.
설동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 두 채라면 가능하다. 안정적인 주거지, 그것도 7명이 다 같이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 거였다.
‘행복하다.’
안심할 수 있는 공간. 짧은 행복감을 느끼는 설동이었다.
12. 의문의 존재
간신히 구한 두 채의 집. 이제 문제는 인원 배분이었다.
사실, 급한 상황이어서 아무렇게나 자라고 하고 싶어도 이들도 사람이다.
동현은 다시 모인 상황에서 태희의 귀를 잡아당겼다.
“자기야, 어떻게 분배하지? 이거 소리가 다 들리면 민망하잖아.”
“이 상황에서 그 생각이 잘도 떠오르네?”
태희는 어이없다는 듯이 동현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녀도 싫지 않다. 단지, 너무 눈치가 보일 뿐.
어떻게 해야 이득인가.
남자들, 정확히 설동을 제외하고는 목표가 똑같았다.
‘하나랑 같은 방에…. 근데 희연이는 어쩌지?’
‘태희랑 같은 방에…. 근데 설동은 어디로 보내지?’
남는 인원은 도하연과 신설동, 주희연.
상황상 주희연이 하나와 민우와 붙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자유(?)가 없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18평의 집에서 펼쳐지는 눈치싸움. 도하연은 그 광경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아현이가 살아있었으면 나랑 희연이가 자면 괜찮았나?’
가슴이 아파온다. 도하연은 자신의 마음을 전보다 확실히 알고 있다.
설동을 좋아한다.
하지만 친구 때문에 가까이 가는 게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접근한다는 거 자체가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같이 있고 싶었다.
그렇게 다들 우물쭈물할 때였다.
설동이 대뜸 3층의 베란다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설동아?”
“난, 위에서 잘게. 그냥 커플 두 사람이 여기서 자면 되잖아.”
설동은 모두의 속내를 한 방에 드러내어 버렸다.
그는 이제까지 보지 못한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사실, 섞여도 상관없는데 굳이 따지면 두 커플은 서로 조심할 테니 훨씬 낫지. 또 굳이 상대방 방에 갈 일도 없고.”
“……하하.”
주하나가 민망해하며 머리를 만졌다. 그리고 설동이 올라가자, 한마디 했다.
“저 사람, 성격 원래 저랬어요? 뭔가 좀 달라 보이는데.”
“본래 성격 아닐까요?”
태희가 작게 말했다.
사실, 이 중에서 누구도 설동의 본 성격을 본 사람은 없었다.
만났을 때의 설동은 심각한 얼굴에 심각한 일만 벌이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화를 잘 내는 무뚝뚝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저런 모습은 너무나 색달랐다.
실제 설동의 성격은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다.
장난기 많고, 농담도 잘 친다.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있기에 도하연은 살짝 웃었다.
‘저게 원래 모습이구나.’
연기자인 그녀는 저 미소와 행동에서 진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도하연은 희연과 같이 올려 달라 했다.
“어차피, 희연이가 거실에서 잘 수 없잖아요.”
도하연은 마찬가지로 장난기 넘치는 웃음을 품고 올라갔다.
도하연은 화장실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이미 설동은 샤워를 마쳤다. 남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15분 만에 스피드하게 샤워를 했다.
다만, 더러운 옷차림 그대로다.
도망쳐 나오면서 옷을 챙길 수가 없지 않는가.
도하연이 고민하는 건, 자신과 희연이었다.
같이 들어가는 건 둘째 치고, 깨끗한 옷이 필요했다.
그런데 기존 옷은 세탁기로 돌려도 마르는 시간까지 입을 옷이 없었다.
‘더러운 옷을 그대로 입어야 하나. 샤워하는데.’
기분이 싱숭생숭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희연아 언니랑 같이 씻자.”
“으…. 너무 졸려.”
희연은 고작 10살의 소녀다. 거실 소파에 기댄 채, 계속 자려 했다.
“자자, 그래도 씻고 자야지.”
“아…. 네…….”
귀찮아하는 희연을 데리고 급한 대로 샤워실로 들어갔다.
마치 보모가 된 것처럼, 희연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씻겼다.
‘이 정도쯤이야. 나도 아이가 생기면….’
지금 같은 사태가 지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얼마나 행복한 상상인가. 아이 아빠를 맞이하고 아이 눈치를 보며, 키스한다.
“아…. 좋다.”
“언니…. 아파!”
희연이 그때 소리를 질렀다. 머리를 강하게 지압하던 도하연은 망상을 깨버리고 황급히 샤워기로 아이의 머리를 씻겨주었다.
“미안해. 희연아. 자자, 제대로 해줄게.”
쓸데없는 망상이다. 어차피 지금 연애는 달콤한 꿈에 가까웠다.
‘그래도….’
지금 상황은 희연이만 재우면 완벽한 단둘이다.
뭔가 일어나도 되는 분위기.
‘정신 차리자. 아현이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도하연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하면 안 될 짓이다.
죽어간 친구에게 미안한 행동이다.
하지만 가까이하고 싶다. 이런 모순적인 감정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똑. 똑.
“네에?”
갑자기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도하연이 화들짝 놀랐다.
당연히 두드리는 사람은 신설동.
도하연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왜, 왜요?”
“여기에 보니까 남자 옷이 많아. 일단 그거라도 입는 게 어때?”
“아…. 남자 옷이요?”
“치수가 커서 무조건 들어갈 거 아니야? 싫어? 와이셔츠 하나만 줄까?”
설동은 장난치며 웃었다. 그냥 옆자리 친구가 하는 것 같다.
도하연은 그런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꼈다. 원래 성격이 저런 타입이다.
“갑자기 그러니 적응이 안 되네요. 혹시 트레이닝복은요? 여자 옷은 없나요?”
“기다려.”
발소리가 몇 번 들리고 설동이 다시 문 앞에도 옷가지를 놔두고 갔다.
“고마워요.”
“뭘.”
짧게 대답하면서도 도하연은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이제 샤워를 다 마치고 조심스레 화장실 문을 열었다.
바깥에는 약간 짧은 트레닝복과 외투 2개가 있었다.
‘이거 작은데?’
왠지 디자인이 어머니나 입을 법한 트레이닝복 있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집주인 구성이 부모와 아들뿐이니까.
도하연은 174cm로 여자치고 장신이다. 아줌마들이 입는 옷이 전반적으로 다 안 맞는다.
‘그래서 트레이닝복을 달라 했는데. 이것도…….’
작다. 거기다가 속옷은 입지도 않았다.
왠지 모르게 창피해졌지만, 이런 세상에서 별걸 다 따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냥 입을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자.’
분명 허리와 엉덩이는 편했지만, 다리 길이에서 에러가 났다.
도하연은 검은색 긴 팔 티까지 입으며 준비를 마쳤다.
“희연이……. 너는….”
“뭐야, 이 옷 너무 커!”
도하연은 순간, 웃음보가 터질 뻔했다. 희연은 성인 남성 긴 팔 티에 반강제로 원피스 형태가 되고 말았다.
소매를 넘지도 못한 팔 길이는 더더욱.
“오빠…. 이 옷 너무 커.”
“여기에 그것밖에 없어…. 크하하하. 그게 뭐야!”
설동이 저 멀리서 주스 하나를 든 채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