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74
‘가방이 어디 없나.’
설동은 방을 뒤져 넉넉한 등산 가방을 하나 구했다.
거기다가 일단 휴대폰부터 다 집어넣었다.
“후.”
긴박한 순간은 없다. 이제 가려고 하는 찰나, 설동은 방문 너머에서 들리는 감염자소리를 보았다.
“그래, 이걸 그냥 놔두고 가면 꼭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
후환을 철저하게 없앤다. 설동은 조심스럽게 방문으로 다가갔다.
“저 사람 무지 부지런하네.”
주하나는 설동에게 받은 식량들은 냉장고에 집어넣고 있었다.
감염이라는 공포 속에 좀비를 맞상대한다는 건, 심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동반한다.
“진짜 우리는 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주하나는 이중에서는 가장 오래 설동과 다녔다.
정작 설동이 이상한 신체라는 건 치료센터에서 알았지만, 그런다고 이미지가 변하지 않는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괴물 취급하고 무서워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태희가 옆에서 다가왔다.
“사실, 이성적인 것보다도 감성적인 거죠.”
“체질 자체가 비정상적이에요. 보통이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해요. 단지, 우리를 도와주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감정이 있으니까 그런 거죠.”
“하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공포겠네요.”
“사실…….”
태희는 뭐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 중에서 제일 접점이 없었던 그녀다.
주하나는 그 시선에서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무서워요?”
“……네. 도움 받아놓고 이런 말을 하기 그렇지만….”
“현실적인 반응이네요.”
주하나는 멋쩍게 웃었다
“사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게 진짜 현실인지 의심될 정도긴 하죠. 거기에 감염자…. 거기다가 재생하는 사람. 이거 영어로 힐링팩터라 그러나? 엑스맨의 울버린 같은 사람도 있고요.”
“전투 능력만 더 있다면 그렇겠네요.”
태희는 호실 안으로 들어가는 설동의 뒷모습을 보았다.
일단 아파트 바깥쪽을 순회하는 격이다. 태희는 다시 시선을 현관문으로 돌렸다.
저기를 열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일단 모두 감금되어 있다면 움직여도 되긴 하다.
‘아니야. 너무 위험해.’
하지만 찰나의 가능성. 그 선을 넘었다간 모두가 망할 수 있다.
생존에는 철저한 안전이 필요하다.
“태희 씨는 생각이 복잡한가 보네.”
주하나는 현관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 설치된 작은 렌즈를 통해 바깥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시야 상 바로 앞 말고는 보이지가 않는다.
“일단은 없는데. 열었다가 바로 끔살 당하는 거 아니죠?”
“영화에서는 자주 나와요.”
태희가 바로 답했다.
확실히 열면 안 된다. 호기심에라도. 저 밖은 판도라의 상자다.
“설동 씨나 기다리죠.”
“네. 감정적으로 정말 믿음직하네요.”
태희는 베란다에서 여전히 열심히 움직이는 설동을 보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도하연은 침대에 누워 숨만 헐떡였다.
아프다.
온몸이 찢어질 듯이 말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살려줘요. 살려줘요.]귓속으로 소리가 들렸다. 누가 이렇게 절망에 겨운 소리를 내는가.
‘아현이?’
눈을 뜨기 힘든 두통 속에서 자신의 귀에 들리는 메아리에 강제적으로 깨어났다.
‘환청인가.’
도하연은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팔팔 끓지는 않지만, 상당히 뜨거웠다.
그렇다. 환청일 거다. 이곳은 이미 좀비 투성이다.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
‘설동 씨는 어디 갔지?’
그녀는 설동부터 찾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그야말로 중력이 달 수준이 된 것처럼 휘청이며 쓰러졌다.
[살려줘……. 살려줘…….]‘환청?’
또다시 들린다. 희미하게 저 멀리서 메아리치는 소리.
도하연은 온 신경을 집중했다.
너무나도 희미한 메아리였지만 곧 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다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도하연은 아직 그 소리의 의미가 뭔지 몰랐다. 하지만 이 아파트가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건너편?’
아파트 단지니까 당연히 이 아파트 말고도 여러 아파트가 근처에 있다.
하지만 도하연은 더 버티지 못하고 침대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1. 다랑 아파트
벌써 며칠 째인가. 다랑 아파트 2동 지하실은 숨 막히는 슬픔이 감돌고 있었다.
지하 주차장. 이곳은 야위고 지친 이들이 가득했다.
대략 16명.
의외로 많은 수가 살고 있었다. 각종 취사도구가 여기저기 있고, 침낭과 난로도 있다.
유일한 탈출구인 통로는 셔터를 내렸다.
빈 곳은 아예 장판지로 막아버리고 차들로 받쳐놓아 감염자들의 습격을 방지하려 했다.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죠?”
젊은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모두가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뒤에서 한 중년 남자가 일어섰다. 이 남자는 얼굴 한쪽이 짓이겨져 있었다.
“우리 가족이 볼모라고! 우리 딸이….”
“더 이렇게 못살아요. 어차피 제 가족은 감염자가 됐는데요.”
“이 시발, 이기적인 새끼야!”
다른 남성이 일어섰다. 이 모인 사람 중에는 유달리 남자 비율이 높았다.
여자는 극히 드물었다.
“너 하나가 사라지면, 우리 가족이 죽을 수 있다고 그런데, 간다고?”
“시발, 네 새끼들이나 신경 써. 보니까 어제 다른 동에서 소리가 나던데. 감염자들도 그쪽에 갔겠지. 더 못 참아. ‘그 괴물’ 놈한테 핍박당하며 살기 싫단 말이야!”
“잡아! 저 새끼 잡아!”
순간, 주변의 남자들이 움직였다. 다수의 힘으로 도망치려는 남자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개새끼야! 좋게 봐준 것도 한두 번이지!”
“니만 살려고? 니만?”
남자들의 무지막지한 폭력이 이어졌다. 도망치려는 남자는 비명을 내지르다가 이내 기절하고 말았다.
잔인한 폭력의 향연. 이들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후욱! 후우….”
“허억 허억….”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그때였다. 이들은 무언가를 느끼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진동. 아주 작은 진동에 그들의 발이 떨리고 있었다.
“아….”
동시에 모든 이들의 얼굴에 공포가 새겨졌다. 이미 경험한 공포가 다시금 들리고 있었다.
“퉤! 퉤! 퉤!”
기묘하게 침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지상으로 향하는 비상문 쪽이 거칠게 열렸다.
“아….”
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얇고 긴 다리가 보였다.
2m정도 되는 문에 다리만 보인다.
사람 정도의 보폭, 하지만 너무나도 가느다란 발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흉물스러운 남자의 상징이 덜렁거리며 보였고, 곧이어 상체가 내려왔다.
미라 같은 몸이 보인다. 이제 그 몸 위에 삐쩍 마른 계란형의 얼굴이 보였다.
눈이 유별나게 돌출되고 입에서는 침을 흘리고 있었다.
“퉤. 시, 시끄러워. 시끄러워. 퉤.”
놀랍게도 말을 한다. 일반적인 감염자, 또는 소장이 말한 진보된 존재들도 말을 못 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 기괴한 것은 말을 한다.
“왜…. 시끄러…. 시끄러…. 퉤!”
연신 입술을 움직이며, 문어처럼 긴 몸이 다리부터 해서 들어오는 게 아닌가.
모두가 뒷걸음질을 쳤다.
지하 주차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거대한 신체.
이 괴물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한 발, 한 발, 중량감이 다른 움직임에 이들은 쓰러트린 남자를 가리켰다.
“이, 이놈이 분란을 일으켜서 처리했습니다.”
“퉤! 부…. 분란? 퉤!”
“멋대로 나, 나가려 했습니다.”
이들은 쓰러진 사내를 가리키자, 긴 다리가 움직였다.
빡!
묵직한 소리 후, 이 사내는 수 미터를 날아갔다.
“퉤! 퉤! 짜증……. 나! 여자…. 발견했는데 창문과……. 문을 닫고…. 있어서…. 퉤!”
그러더니, 저 멀리 날아간 사내의 목을 붙잡고 힘을 주었다.
뚝.
불쾌한 소리 하나에 사내는 그대로 이곳과 다른 형태로 이별하게 되었다.
모두가 침묵했다.
이대로 끝이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이 괴물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퉤! 짜, 짜증 나. 짜증나……. 잠이 깼어…. 잘 자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큰 키에서 기묘하게 고개를 꺾었다. 차라리 공포영화의 귀신이 더 예쁠 지경이었다.
기묘하게 꺾은 채로 이들에게 물어왔다.
“퉤. 어, 어떻게 해야 해? 퉤! 퉤!”
“여자가 새로 온 거 같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제일 먼저 청년에게 반발한 중년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순간, 이 괴물은 움직이려던 손을 멈췄다.
“여…자?”
“네. 1동 쪽인 거 같습니다. 거기에 새로운 여자가 있습니다.”
“퉤! 퉤! 퉤!”
이 괴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긴장하며 이 괴물의 커다란 눈알만 바라볼 뿐이었다.
괴물은 아무 말 없이 이 문을 빠져나가는 게 아닌가.
괴물이 나가고, 사람들은 중년에게 몰려들었다.
“박 사장. 무슨 생각이야? 없으면 어쩌려고?”
“걱정 마슈. 내가 소리를 들었어요. 멍청하게 이 아파트에 새로 온 집단 말이요. 여자 목소리가 틀림없어.”
박 사장이라 불린 남자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러자, 이들은 놀랍게도 안심했다.
“그놈들도 같은 꼴을 당하겠군.”
“어쩌겠어요. 똑같이 당해야지. 지금까지 자기들끼리 잘 놀았을 텐데. 우리만 지옥에서 살 수 없잖아요.”
이들은 슬프게 웃었다.
하나는 한숨을 쉬었다.
“역시 턱없이 부족하네요.”
잔뜩 모아온 식량은 슬프게도 라면박스 하나만도 못했다.
하나의 말에 설동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나의 말에 화가 난 게 아니다. 소득이 적어 어서 빨리 수색에 나가지 못한 게 짜증이 난 거다.
‘이걸로는 며칠 버티지도 못하겠어. 상인이랑 아빠, 엄마까지 오면 빠듯해.’
안정적인 거점을 만들고 부모님과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설동은 2층 현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1층은 이미 그가 신나게 돌았다.
2층.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손쉽게 들어가기가 힘들다.
“현관문으로 갈게. 2층도 돌 테니까 절대로 나오지 마.”
그렇다면 평범한 루트인 아파트 복도를 통해 간다.
설동은 여기서 최대한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설동은 그러면서 3층을 바라보았다. 도하연이 혼자 쉬고 있다.
어차피 괴상한 감염자가 아니고서야 현관문을 뚫을 존재는 없었다.
‘괜찮겠지.’
별일은 없을 거다. 설동은 그렇게 2층 현관문 앞으로 갔다.
그의 손에는 도끼는 아니지만, 피가 묻은 식칼이 들려 있었다.
“조심해요.”
“하나 씨도 어지간해서는 문 열어주지 마요.”
주하나가 배웅해주고, 설동은 아파트 2층 복도로 나섰다.
구형 아파트이기에 구조는 우리가 옛날에 보는 바로 그 구조다. 호수별로 쫘르륵 서 있고, 끝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설동은 일단, 셔터가 닫힌 쪽을 무시하고, 각 방을 하나씩 점검하기 시작했다.
‘잠겨 있군.’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철저하게 문을 닫은 상태였다.
열쇠도 없으니 그 역시 열 수가 없다.
그렇게 하나하나 점검하던, 설동은 운 좋게 문이 열리는 걸 하나 확인했다.
‘이변이 있는 집이야.’
정상적이면 문을 잠가놓고 간다. 일전에 보듯이 자식이 감염되면 문을 잠그거나 가둔 다음 나간다.
하지만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