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8
“미친놈들아! 내가 장군이라고! 난 죽이면 안 되잖아!”
“제 가족도 쏘라고 하신 분 아닙니까? 왜 본인만 관대합니까!”
“난, 아니야. 아니라고. 콜록! 감히 장군한테 총을 들이대? 크…. 으아아악!”
곧, 우동철은 벌집이 되며 바닥에 쓰러졌다. 혼돈.
지금 이 곳은 혼돈으로 변하고 있었다.
동현과 태희 커플이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온 건, 신설동 일행이 총성에 내려가고 2시간 뒤였다.
우람한 체격에 동현은 건들거리는 지승준과 마주했다.
“이거 어쩌시나. 혼자 영웅이라도 되려고 가셨는데…. 소득이 없어 보이네?”
“펜션 위쪽은 이미 이상한 것들이 가득해. 식량을 구할 수 없었다. 정찰 노고라도 이해하지그래? 아무것도 못 하는 겁쟁이?”
동현이 지승준을 노려보았다. 덩치와 얼굴에서 보이는 패기는 지승준을 겁먹게 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 패기보다 현재 지승준의 상황이 너무나 좋았다.
“덩치. 미안한데? 나 아니면 너희 못 나가.”
“전에도 그 개소리하다 나한테 맞지 않았나?”
지승준은 동현의 험악한 목소리에 박수를 쳤다.
“미안한데, 진짜야. 진짜로 군이랑 연락됐거든.”
“뭐?”
동현의 가는 눈동자가 커졌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하연의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강장구 감독이 나섰다.
“승준이가 좀 건들거리기는 해도 덕분에 연락됐어.”
“연락을 어떻게 했다는 거죠?”
동현은 태희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짐은 그 여자가 변해버려서 어떻게 덤비지도 못하지 않는가.
지승준의 곁으로 윤선 달라붙으며 비웃었다.
“아래쪽 게스트하우스랑 연락이 돼서 그 사람들이 휴대폰을 빌려줬거든요? 우리 오빠 좀 그만 괴롭혀요!”
“자기야. 그만하자.”
동현의 여자친구, 태희는 단발머리를 매만지며 부엌으로 남자친구를 끌고 들어갔다.
지승준은 거기다 대고 소리쳤다.
“진짜 구출되고 싶으면 이제 나한테 깝죽거리지 마. 곧 올 테니까 말이야. 엑스트라 새끼가 어디서 주연이 되려고. 그죠, 감독님?”
“….”
생사여탈을 쥐고 있다. 동현은 입을 다물고 침실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들이 방으로 들어가자 거기에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여성이 고개를 돌렸다.
“바깥이 여러모로 시끄러워요. 동현 오빠.”
“하, 저 새끼. 진짜 패버릴 수도 없고. 엑스트라? 아유 진짜….”
동현은 여자 친구와 같이 다친 도하연의 곁에 앉았다.
태희는 능숙하게 구급상자를 꺼내 들었다.
“근데, 동현이 너도 엑스트라로 온 거잖아. 말은 맞네.”
“아니, 저놈은 날 놀리려고 한 거잖아!”
동현은 투덜대면서 커튼을 들춰보았다. 고요하다.
“그래도 연락이 돼서 다행이네. 저 개 같은 면상을 안 봐서 다행이네.”
“하하, 오빠 없는 사이에 저한테 와서 너무 말을 걸어대서 미칠 거 같아요.”
도하연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여자친구도 옆에 있는데?”
“그러니까요. 태희 언니처럼 간호사도 아니고, 뭔 치료를 해주겠다는 건지…. 거부하니까 갑자기 여자 친구가 저한테 소리를 지르고.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도하연은 배시시 웃었다. 그 미소는 소녀와 여인의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동현도 태희도 확실히 연예인의 위엄을 느낄 정도였다. 다쳤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진짜 차가 전복되고 힘들었는데 동현 오빠네가 도와줘서 다행이에요.”
“우리도 마찬가지야. 도로로 나가려는데, 지승준 새끼가 오라고 해서 다행이었지. 총성이 장난 아니었지.”
동현은 그러면서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 진짜 누가 식량 창고를 잠근 거야.”
“좀만 참아. 곧 오니까.”
커플은 서로를 껴안으며 굶주림을 달랬다. 차 안에서 변한 여자 때문에 그들은 상어떼가 가득한 바다에서 지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이제 그들은 구출될 것이다.
그렇게 희망을 품고 기다렸지만, 안타깝게도 희망은 오지 못했다.
설동 일행이 물러가고 지승준은 tv를 보면서 여유를 부렸다.
다들 배가 고픈 상황이었지만, 희망이 생겼기에 버틸 수 있었다.
[정부는 제주도에서 소요 사태가 일어났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군사작전으로 안전하게 주민들을 보호하고 있으며 조속히 사태가 해결될 것임을 자신했습니다.] [생화학 무기와 미세먼지의 연관성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이들을 고소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제주도 학살은 가짜뉴스라고 말하며 유포자를 색출하겠다고 전했습니다.]뉴스들은 돌아가면서 제주도 사건을 하나둘 보도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시대에 그 난리를 치고도 이태까지 보도가 안 된게 용할 정도였다.
지승준은 귀를 후벼 팠다.
“유언비어는 무슨…. 그냥 감염자들이랑 민간인을 구분하기도 전에 쏴대면서 말이야.”
“우리는 오빠 덕에 다행이네. 진짜 다행이야.”
옆에서는 다소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가 지승준에게 달려들었다.
지승준은 그런 여자를 귀찮은 듯 쳐다보았다.
“윤선아. 오빠, 힘드니까 좀 떨어져.”
“우리 사이에 왜? 우리 어차피 구출될 거잖아. 어때?”
윤선이라 불린 여자는 지승준의 가슴팍을 쓰다듬었다.
“어이고. 역시, 극한상황에서도 젊은이란…. 영화 찍어줄까?”
뒤에서 강장구가 낄낄거렸다. 윤선은 표정이 구겨졌다.
“참내. 오빠, 여기는 사람이 많네. 산으로 갈까?”
“야야. 이상한 것들이 있는데. 위험해. 군대가 올 때까지, 얌전히 있어.”
지승준은 귀찮다는 식으로 떼어내었다. 그들에게 남은 식량은 없었다.
‘그때 너무 아무렇게나 먹어 댔어.’
오지 말라는 주인장을 패버리고 온 건, 좋았는데 도하연 일행이 도착하자, 선심 쓴다고 파티를 벌인 게 문제였다.
‘제기랄. 덕분에 쫄쫄 굶고, 도하연년은 대주지도 않고. 까다로운 년.’
지승준은 도하연이 들어간 방문을 보았다.
지금이라도 들어가고 싶지만, 망할 엑스트라 커플이 있었다.
‘확실히 화장 지워도 예쁘단 말이야. 배우는 배우야.’
혀를 날름거린 그는 도하연의 힘이 없는 가련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첫날에 숨을 몰아쉬며 기진맥진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 자태 자체가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지고 싶다.
‘시발, 지승준 니가 지금까지 안 넘어트려 본 여자 있어? 위기 상황에서 여자 마음이 잘 흔들리잖아.’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망이 불길처럼 드러난 상황이었다.
‘아빠 잘 만난 건, 다행이야. 이걸 빌미로…’
지승준은 아버지 지학선의 힘을 언제나 그렇듯 이용하려 했다.
“사람이 많군.”
“뭐가?”
윤선이 다시 목을 감싸 안으며 다가왔다. 지승준은 그녀를 보았다.
겨울인데도 얇은 티셔츠에 스키니 진으로 긴 다리라인이 보인다.
모델 출신으로서 괜찮은 여자지만 이미 놀대로 논 사이.
‘도하연이랑 있으니 졸라 비교되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도하연을 덮치고 싶지만, 강장구도 있고, 엑스트라 커플도 있다.
게다가 조금 있으면 군대가 오지 않는가. 사실상 기회는 없다시피 한다.
그때, 침실 문이 열리고, 거기에는 도하연이 멍한 눈으로 나섰다.
그 청초한 모습에 지승준의 표정이 밝아졌다.
“도하연 씨. 조금만 참아요. 조금 있으면 올 테니까.”
“네.”
도하연은 화장실로 향하고, 지승준은 조마조마했다.
‘일단 친절한 이미지라도 심어 놔야 하나? 나도 부드러운 남자란 말이지.’
무언가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지승준은 그것을 참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제 곧 이 비현실이 끝나고 현실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점심이 저녁이 될 때까지, 구조는 오지 않았다.
동현과 태희 커플이 잠시 거실로 나가고 홀로 있는 도하연은 기력이 없었다. 다친 건, 회복이 다 되었지만 순전히 배고프기 때문이다.
‘하루 정도는 참을 수 있지만, 기약이 없으니 불안해.’
그녀만이 아니라 이곳 모두가 그렇다. 도하연은 다이어트로 고생하던 예전을 떠올렸다.
‘그래, 그때를 생각하는 거다. 아니, 난 그때는 먹을 거 먹고 운동해서 다이어트 했는데?’
사실, 다이어트는 무작정 굶는 것은 효율이 높지 않다.
먹고 운동하며 빼야한다.
도하연은 굶어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태가 괴로웠다.
‘버티자. 버티자. 영화 촬영 때를 생각해.’
이것도 일이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버티려 할 때였다.
“도하연씨. 있나요?”
지승준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하연은 순간, 표정이 굳었다.
“지승준 씨?”
“네. 맞아요. 하하.”
눈앞에서 건들거리는 말끔한 인상의 남자가 들어왔다.
국무총리 지학선의 아들이자, 난봉꾼으로 유명한 그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사태인지 모르겠어요. 이거 영화 같지 않아요?”
“아….”
도하연은 자기가 찍던 영화를 떠올렸다. 비슷하기는 하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지만 말이다.
“감독님도 이거 영화소재로 쓰고 싶다고 하시는데 말이에요.”
“하하, 귀중한 경험이네요. 살아나간다면.”
“물론 가능합니다.”
지승준은 갑자기 도하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를 믿으세요. 제가 사고 좀 쳤지만, 아버지의 힘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요.”
“그건 고마워요.”
도하연은 이때, 순수하게 선의로 된 인사를 했다.
지승준이 어떠한 남자든, 그의 능력으로 구출이 확정됐으니 말이다.
지승준은 수줍게 웃었다.
“하, 역시, 마음씨도 예쁘시네요.”
“감사합니다.”
여기서 대화가 끊겼다. 도하연으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승준은 다시 대화를 이으려고 노력했다.
“이왕 이것도 인연인데 서로 통성명이나 하죠? 이런 상황에서 더 친하게 지내자는 거죠. 제가 22살인데, 도하연씨 프로필 나이가 맞죠?”
“네. 맞아요. 딱히 속일 이유도 없으니까.”
“그럼 오빠네. 편하게 불러.”
다짜고짜 편하게 지내자는 지승준의 행동은 당황스러웠지만 도하연도 연예계에서 수년간 구른 몸이다.
사람을 대하는 법은 잘 안다.
“네. 오빠.”
“캬하! 하연이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은데? 좋아. 내가 넌 무조건 VIP로 해줄게.”
도하연은 어설프게 웃었다.
‘진짜 사회생활이 힘들구나. 싫다. 싫어.’
지승준에게 호감이 개미만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질게 대할 이유는 없고, 배우라는 직업상 모두에게 친절해야 했다.
아무튼, 지승준이 혼자 신나서 떠드는 순간이었다.
방문이 발칵 열렸다.
“오빠. 뭐해?”
거기에 여자친구인 윤선이 쌍심지를 켠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윤선아? 그냥 이야기 중이야 심심해서.”
“근데 왜 여잔데?”
“아니, 난 좀 이야기하면 안 되냐!”
지승준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는지, 톤을 낮췄다.
“지금 이 상황에서 쓸데없이 분란 일으키지 마. 모두 힘든 상황이잖아. 공연히 의심하지 말고 나가.”
“…..”
윤선은 나가지 않았다. 대신 시선이 도하연에게로 향했다.
뭘 의미하는 건지는 잘 안다.
‘확실히 좀 아니라고 말해야 하나?’
고작해야 방 하나와 화장실이 전부인 이곳에서 피하는 건, 쉽지 않았다.
윤선은 지승준에게 달려와 팔짱을 꼈다.
“저기요. 쓸데없는 생각 마시죠?”
“윤선이 넌 왜 그러냐!”
지승준이 열 받아 팔을 뿌리쳤다.
“거, 사람들끼리 이야기도 못 하게 하네.”
“오빠!”
두 사람이 떠나가고 도하연은 머리를 쥐어 싸맸다.
‘그래, 확실하게 말해야 했어. 생각해보니 그때도….’
영화촬영 때 껄떡대던 ‘그것’에게도 도하연은 배우로서의 앞날을 생각했다.
그래서 매몰차지 못했다.
‘힘들다. 사회생활.’
도하연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바깥에서는 승준과 윤선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방에는 동현과 태희 커플이 투덜대며 들어왔다.
“언제 구출 오는 거야? 이야기한 지 하루나 됐는데…. 안 오다니. 심지어 폭격도 하고. 아유 그냥!”
동현은 난데없이 방에서 푸쉬업을 하기 시작했다.
태희는 그녀의 곁에 와서,
“스트레스 받으면 저래요.” 라고 짧게 알려주었다.
아무튼, 동현의 뜬금없는 스트레칭 쇼를 본 도하연은 작게나마 웃었다.
일부러 사회생활의 미소가 아니라 웃겨서 미소를 지은 거다.
동현은 우락부락한 팔뚝을 매만졌다.
“진짜 운동을 못 하니 몸에 가시가 돋네. 그 녀석들도 사람이면 상대할 거 같은데.”
“그것들, 사람이었죠?”
도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충격적인 광경이긴 하지만, 사람이 변했다.
동현은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옆 사람이 미친것처럼 덤벼들어서 때려눕혔는데, 곧장 다시 일어나더라고요. 이래 봬도 대회에서 상도 받은 몸인데.”
“차에 치이니까 죽더라고요.”
도하연이 입을 열자, 두 사람은 피식 웃었다.
태희는 바깥의 차량을 보았다.
“확실히 차량에 치이면 전신이 무너지니까 말이죠. 하지만 확실히 다 죽는 건, 아닌가 봐요. 그지?”
“맞아요. 도하연씨가 차 타고 뒹굴고 있을 때 촬영현장도 난리가 났잖아요. 그래서 제가 스태프 하나랑 도망치다가 온몸이 박살 난 그놈들을 봤는데,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잖아요? 그런데 머리만 우리를 향해 움직이면서 이를 세우더라고요. 불사신도 아니고….”
이들은 그것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했다.